257화. 어쩌다 보니 스카웃
“오펜, 주인에게 이야기해서 위층에 조용한 방 하나 쓰게 해달라고 해.”
“알겠습니다.”
“발드 선장이랑 아인델프 선장은 어디 있어? 우르타, 두 사람 찾아서 위층 방으로 올라오라고 해.”
“우와압, 자, 잠깐, 이거 좀 치, 우웁!”
“꺄아, 간지러워! 그렇게 좋아요?
“…….”
관두자.
나는 여자들 사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우르타를 깔끔하게 포기하고 맞은편에 앉은 조리장 비에론에게 시선을 옮겼다.
“…비에론, 선장들 좀 찾아서 이쪽으로 불러줘.”
“하하, 알겠습니다.”
나는 두 사람의 불신을 걷어내기 위해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지시를 내렸다.
어리고 미소년스러운 내 외모 때문에 이런 불신의 눈빛을 받는 것은 너무 익숙해서 딱히 화가 나지도 않는다.
하지만 내가 자연스럽게 선장들을 호출하는 것을 보면 지금 가지는 의심과 불신 따위는 단번에 날아가게 마련이지.
“전쟁이 코앞이라 사람을 구하기 어려울 줄 알았는데 의외네요. 설마 우리 선단이 이번 토벌전에 참가하는 것을 모르고 오신 것은 아니죠?”
이미 항구에 토벌전 참전 선단과 용병함대에 대한 소문이 파다한데, 그 정도 사전 조사도 없이 왔을 정도면 볼 것도 없이 불합격이다.
판단력이 부족한 사람을 항해사로 쓸 수는 없는 노릇이지.
“물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장, 아니, 선장이 아니고 선단장이시군요?”
“정확하게 말하면 오트라스 호의 선장이고, 피오렐과 리버티를 함께 지휘하고 있죠.”
“어, 음. 젊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생각보다 너무 젊으셔서 그만.”
우당탕탕!
빠각!
“이 자식! 결투다!”
“오냐, 해적 몇 놈 잡았다고 네놈이 으스대는 꼴이 보기 싫었는데, 이번에 배에서 내리게 해주마!”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로 시끄러운 소음의 원인을 찾아 눈을 돌리니 두 놈이 씩씩대며 멱살을 잡고 있는 꼴이 보였다.
주변에는 의자 서너 개가 바닥을 뒹굴고 있었고, 개중 한 개는 다리 하나가 부러진 채 애처로운 모습으로 흔들렸다.
참자, 흔한 일이잖아. 참아야… 참긴 개뿔이!
나는 테이블에서 빈 맥주잔(나무잔이다)은 집어 들고 쾌속하게 집어던졌다.
빠악!
퍽!
“아악!”
“크어억!”
좋아, 일타쌍피구만.
한 놈의 어깨를 맞은 맥주잔은 그대로 다른 녀석의 얼굴을 직격했고, 두 사람은 맞은 부위를 부여잡으며 서로 떨어졌다.
그리고 곧바로 눈을 부라리며 범인은 찾는다.
“어떤 놈이야?!”
“으윽, 코피?! 걸리면 가만 안 둔다!”
나는 먼저 두 사람에게 양해를 구했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아, 네….”
“나다, 이 자식들아!”
내가 소리를 지르자 시끄럽던 술집이 단박에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
“실컷 돈 들여서 술을 사줬더니 뭐? 결투우? 내 선원을 배에서 내리게 하겠다고? 둘 다 사지가 부러져서 배에서 내리게 해줄까? 앙?!”
“제, 제독….”
“선장님….”
두 사람은 나를 보고는 정신이 들었는지 어쩔 줄 몰라 한다.
평소라면 이렇게까지는 안 하겠는데, 지금 상황이 좀 그렇잖아.
괜히 전투력에 문제가 생길 상황은 만들고 싶지 않다.
최근에 심각한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선박이 나뉘면서 선박 간의 묘한 경쟁심리 같은 것도 있는 것 같고 말이야.
물론 칼부림까지야 안 하겠지만, 워낙 무식한 놈들이라 이대로 분위기가 과열돼서 패싸움이라도 했다가는 골절 환자만 열댓 명 생기는 것은 일도 아니다.
“하여간 이번에 총점검 실시해서 어디 부러진 놈은 절대로 배에 안 태울 테니까 알아서들 해. 알았어?!”
“네에, 제독.”
“알겠습니다아….”
매가리가 빠진 음성이 여기저기에서 중구난방으로 튀어나왔다.
이렇게 말해봐야 몇 분만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신나게 몸싸움을 벌일 놈들이다.
그래도 이제 뼈가 부러지도록 죽자고 싸우는 미친놈은 없겠지.
“부르셨습니까, 제독.”
그때 내게 다가온 아인델프와 발드가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두 사람 다 어지간히 마셨는지 술 냄새가 풀풀 풍긴다.
“어, 여기 두 사람은 탈리스와 에오멕. 항해사라는데 일자리를 찾는 모양이야. 인사들 나누지.”
“반갑습니다, 피오렐 호의 선장, 아인델프입니다.”
“반갑소, 리버티 호의 선장을 맡고 있는 발드요.”
서로 악수를 하면서도 탈리스와 에오멕의 표정이 영 떨떠름했다.
선단장은 20대의 애송이, 선장이라는 사람들도 한 사람은 선단장과 비슷한 어린놈에, 다른 한 사람은 절름발이니 영 신뢰가 가지 않는 눈치다.
“선장님, 2층 안쪽 끝에서 두 번째 방을 쓰시랍니다. 여기 열쇠요.”
“음, 수고했어, 오펜. 맥주 다섯 잔만 방에 옮겨줘.”
“네, 선장님.”
열쇠를 내게 건넨 오펜이 자리를 뜨자 나는 네 사람에게 말했다.
“여기는 너무 시끄러우니 자리를 옮기시죠.”
“아, 알겠습니다, 선단장님.”
***
경력이나 신분을 증명할만한 수단이 없는 세상이라 면접이 무슨 소용이냐 싶겠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면접이 매우 중요했다.
특히나 배의 핵심 인원인 항해사라면 더욱 그렇지.
괜히 항해사를 사칭하는 사기꾼이나 해적의 끄나풀을 고용했다가는 배가 위험해지니 말이다.
그런 ‘신용’이라는 측면에서 두 사람은 일단 합격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다른 배에 몸을 담고 있다는 말이군요?”
“몸을 담고 있기보다는 선장에게 이야기를 못 한 거죠, 다음 항해에는 배에 탈 수 없다는 말을요.”
“이쪽 분도 같은 배에 타고 계시고?”
“네. 제가 일등항해사, 이 친구가 이등항해사를 맡고 있습니다.”
아이고, 하루아침에 일등항해사랑 이등항해사가 배에서 내리면 그 배는 어쩌냐?
이 말이 사실이라면 해적도 아니고 사기꾼도 아니라서 ‘신용’할 수는 있는데, 인간 됨됨이가 영 신용이 안 간다.
일등항해사랑 이등항해사가 동시에 배에서 내리는 것은 선장에게 엿 먹으라는 거잖아.
“일부러 전쟁에 참여하고 싶어서 이러는 것은 아닐 테고, 이유가 뭡니까?”
아인델프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물었다.
그러자 두 사람은 머뭇거리며 서로 눈치를 보더니, 일등항해사라는 탈리스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애니스타 호의 선장은 음, 평범하죠. 적당히 나쁘고, 적당히 이기적이고…. 상종 못 할 정도는 아닙니다. 하지만 전투에서는 영, 솔직히 목숨을 맡기기에는 많이 불안합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애니스타 호도 이번 토벌전 참가가 결정되었죠. 그래서 너무 불안하던 참에 선단장님의 소문을 듣고 이렇게 찾아오게 된 겁니다.”
애니스타 호라, 좀 익숙한 이름인데?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토벌전에 참가하는 선박은 확실한 것 같기는 하다.
대답을 들은 발드 선장이 담담한 어조로 반박했다.
“항구의 소문에 허풍이 얼마나 섞였는지는 다 아실 것 같은데, 고작 소문만 믿고?”
“아, 물론 외날의 라프나를 잡아 죽였다는 소문을 믿지는 않습니다. 아마 라프나를 사칭한 해적을 상대하신 것이 아닌…. 앗! 그렇다고 그게 대단하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술술 이야기를 하던 탈리스가 무심결에 속마음을 흘렸고, 실수를 깨달은 그는 화들짝 놀라며 어떻게든 말을 주워 담으려고 했다.
내가 보통의 허세 가득한 뱃사람이었다면 자신을 무시한다며 화를 낼 수도 있는 일이기에 탈리스의 반응은 정상적이었다.
하지만 현재 알려진 소문만 가지고는 그런 결론을 내리는 것이 정상이다.
소문 그대로 믿었다면 오히려 문제가 있는 거지.
내 입장에서는 의도한 대로 소문이 잘 퍼진 것 같아서 오히려 다행이랄까?
말을 끊고 눈치를 살피던 탈리스는 내 표정에 변화가 없자 살짝 안심하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심지어 이번에도 배를 한 척 나포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외에도 제가 확인한 것만 적어도 세 번 이상 해적과의 전투에서 크게 이겼다고 하더군요. 짧은 시간에 이렇게 세를 불리신 것도 해적에게 나포한 배들이 많아서였다고 들었습니다만.”
좋아, 판단력은 나쁘지 않다.
술집의 소문에서 정보를 걸러내는 능력도 그렇고, 전투 지휘 능력이 부족한 선장과 전투에 참여하느니, 차라리 실력이 입증된 다른 선장의 밑으로 들어가겠다는 거잖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원론적인 한 가지 의문이 남았다.
“차라리 잠시 쉬는 게 낫지 않습니까? 보아하니 선장이 누군지를 떠나서 전투를 즐기는 분들은 아닌 듯한데.”
이 시대 전투의 백미는 육상이건 수상이건 결국 백병전이다.
아무리 멀리에서 포를 쏘고 쇠뇌를 쏘아붙여도, 그건 어디까지나 기선 제압, 사전 피해 강요 정도에 불과한 것이다.
앞에서 무슨 난리를 피웠건 대부분의 전투에서 결국은 1미터 남짓, 혹은 그조차 안 되는 짧은 거리에서 서로의 목숨을 탐하는 백병전만이 승패를 결정지었다.
그러니까 전쟁을, 전투를 즐기는 인간의 체형이라는 것은 거의 대부분 비슷하게 근육질이 되게 마련이다.
예외가 있다고 해도 최소한 친절한 빵집 아저씨 같은 푸짐한 몸매의 탈리스나, 아무리 짜도 기름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처럼 마른 에오멕은 확실히 전투를 즐기는 인간의 체형은 아니다.
“그게, 빚이 좀 있어서….”
“빚?”
“아아앗! 그렇게 심각한 것은 아닙니다! 술집에서 바가지를 좀 쓰는 바람에….”
나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대충 봐도 경력이 10년 차는 넘어 보이는 사람이 항구 술집에서 바가지를 썼다고?
아무리 관대하게 생각해도 상식적이지 못하잖아?
“능력이 조금 부족해도 괜찮습니다. 초면에 절대적인 신뢰를 할 수도 없겠죠. 그런데 말입니다, 그래도 처음부터 거짓을 말하는 사람을 배에 들이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내 말에 두 사람이 시선을 교환하더니 어색하게 웃었다.
“이것 참, 입에 담기도 민망한 일이라….”
“사소하다면 숨길 이유가 없고, 중요한 일이라면 그래서 말씀을 해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으음, 알겠습니다….”
약간 붉어진 얼굴로 탈리스가 설명을 시작했다.
그런데 듣다 보니 이거, 어디서 들었던 이야기 같은데?
“그러니까 두 사람이 술을 마실 때 여자들이 접근했고, 함께 술을 마시다가 정신을 잃었다는 말이죠?”
“네,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나보니 돈은 한 푼도 없고 지불하지 않은 술값이 무려 2만4천 로스더군요.”
“으음….”
둘이 함께 정신을 잃었다면 약을 쓴 모양인데, 약이 워낙 고가여서 선원들에게는 잘 쓰지 않는다.
소위 말하는 가성비가 안 좋아서 그렇다.
선원들이 가진 돈이라고 해봐야 뻔한 수준이고, 두 사람의 경우처럼 가짜 빚을 지어놔 봐야 변제할 가능성이 0%에 수렴하는데 굳이 비싼 약을 쓸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 두 사람이 돈이 어느 정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말인데.
냄새가 나네?
“뭐, 그래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 정도로 형편이 좋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가불해달라는 말이죠?”
내가 선수를 치자 두 사람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뱃사람들이 항구의 술집이나 창관에 빚을 달아놓고 있다가 그를 고용하려는 선장이나 선주에게 가불 받는 것은 흔한 일이기는 하다.
지구의 신용카드 같은 느낌이랄까?
공식적으로 노예가 없는 세상인데도 카드빚의 노예가 되어 일하는 거지.
“일단 내려가서 조금 기다리시죠. 우리끼리 이야기를 할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아, 술은 편하게 드셔도 좋습니다.”
“네, 선단장님.”
“잘 부탁드립니다.”
두 사람이 방을 떠나자 아인델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일단 고용하시죠. 어차피 사람도 부족하고….”
“맞습니다. 가불이야 뭐, 어차피 이번에 출항하면 가불한 값을 하고 돌아오거나, 죽거나 둘 중의 하나 아니겠습니까?”
발드 선장 역시 시니컬하게 동의했다.
도의적으로 볼 때 애니스타 호의 선장에게는 살짝 미안한 일이지만, 당장 내 코가 석 자라 나 역시 일단 고용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내가 스카웃 제의를 한 것도 아니고 저쪽이 먼저 다가온 것이니까 마음의 부담도 좀 적기도 하고.
“두 사람이 괜찮다면 채용하는 것으로 하지.”
전쟁터라는 곳은 사람의 민낯을 살펴보기 가장 쉬운 곳이다.
굳이 전쟁 전에 채용되려는 사람이 없어서 그렇지, 채용 후 그 사람의 됨됨이를 살피기에는 가장 적절한 타이밍이 지금 아니겠어?
다시 1층으로 내려온 나는 두 사람에게 손을 내밀었다.
“합류한 것을 환영하네, 두 사람의 직책은 회의를 통해 정하도록 하지. 일단 두 사람은 애니스타 호와의 일을 정리하고 오트라스 호로 와주게. 빚 문제도 그때 해결해주도록 하겠소.”
“감사합니다, 선단장님.”
“감사합니다.”
“그런데 혹시, 그 술집 이름이?”
“네? 그건 갑자기 왜……?”
“아니, 우리 선원들도 좀 주의를 시키려고.”
“‘종달새의 노래’라는, 선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술집… 입니다.”
나는 탈리스의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술집은 술집인데, 선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술집 중에는 좀 비싼 술집이다.
여자도 함께 파는 곳이거든.
“아악! 내, 내 다리! 으으으, 왜 때려요?!”
“오호호, 미안해! 실. 수!”
낯익은 비명이 터진 곳을 보니 정강이를 부여잡고 쩔쩔매는 우르타가 보였다.
그러고 보니 다들 왜 이렇게 조용해?
게다가 저 화려한 복장은 창녀가 아닌데, 으응?
나는 두 사람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양해를 구하고 재빨리 그쪽으로 다가갔다.
“릴리안 아가씨? 이런 곳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어? 선장 오빠?”
“여기는 아가씨가 올 만한 곳이 아닙니다. 시간도 늦었는데 어서 돌아가시지요. 하실 말씀이 있으면 내일….”
“싫. 어. 요!”
“……네?”
내가 언제나처럼 그녀를 따라다니는 호위들에게 시선을 주자, 호위들이 딴청을 피우며 내 눈을 피했다.
가만 보면 저놈들, 일을 아주 날림으로 하는 것 같아.
“어쨌든, 잘생긴 오빠. 여기서 술을 더 마신다구요?!”
“아아니, 그걸 왜 릴리 아가씨가… 아얏!”
“그만 마시고 당장 돌아가지 못해요?!”
“왜 나만 가지고 그래요?!”
우르타가 꼬집힌 옆구리를 부여잡고 억울하다는 듯이 항변했지만, 바로 반대쪽 정강이를 대차게 차일 뿐이었다.
“아악!”
콰당!
한쪽 다리를 들고 있다가 다른 쪽 다리를 맞으면 어떻게 되겠어?
우르타는 요란한 비명과 함께 바닥에 넘어졌고, 사방에서 폭소가 터졌다.
“뭐가 웃기다고 웃어요! 다들 조용하지 못해요?!”
그녀의 신경질적인 하이톤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거짓말처럼 웃음소리가 잦아든다.
이 아가씨, 아주 장군감일세.
결국 우르타는 우리에게 큰 웃음과 안줏거리를 주고 릴리안에게 잡혀서 강제로 술집에서 퇴장해야만 했다.
***
다음 날 오후 늦은 시간에 탈리스와 에오멕이 오트라스 호를 찾아왔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애니스타 호의 선장이 씩씩거리며 방문했다.
“나와! 당장 선장 나오라고 해!”
“에헤이! 누군데 우리 선장님을 나오라 마라 하쇼?”
“애니스타의 선장인 웨버다! 당장 선장 놈 나오라고 해!”
탈리스를 피오렐 호의 일등항해사로, 에오멕을 리버티 호의 이등항해사로 임명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현문 당직을 서던 선원이 찾아와서 나가 보았더니 이 난리였다.
웨버 선장, 아니, 선단장을 막고 있던 트레비스가 나를 발견하고는 반색을 하며 소리쳤다.
“선장님! 여기 다른 배의 선장이라는 사람이….”
“웨버 선단장님?”
“응? 리안 선단장?”
제기랄, 하필이면 아는 사람일 건 또 뭐야?
두 사람에게 선장의 이름을 물어보지 않은 것이 한이었다.
수많은 선장 중에 하필이면 나와 안면 있는 선장일 줄 알았겠냐고?
어쩐지 애니스타라는 이름이 상당히 익숙하더라니.
일단 우리는 선장실로 자리를 옮겼다.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나건 선원들이 봐서 좋을 꼴은 아닐 것 같으니 말이다.
“이 배신자 놈들! 그리고 리안 선단장! 당신이 이럴 줄은 몰랐소!”
웨버 선단장의 분노는 자리를 옮겨서도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보는 사람이 없으니 더 난리를 치는 것 같기도 하고.
“웨버 선단장님, 잠시 흥분을 좀 가라앉히시고 제 말을…….”
“지금 내가 흥분하지 않게 생겼소?! 도대체 나는, 애니스타는 어떻게 움직이라고 두 사람을 빼가는 거요?!”
화가 나는 건 이해를 하는데, 애초에 내가 잘못한 일은 아니잖아.
몇 번이나 그를 진정시키려던 나도 슬슬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덜컥!
“선장님, 그만하십시오!”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에오멕이 웨버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어우! 저 친구, 생긴 거랑 다르게 아주 패기가 넘치네?
“에오멕! 네놈이!”
“솔직히 그렇지 않습니까? 이번 전쟁 참여 건도 그렇고, 저번에 필라비스 항구에서도 그렇고! 매번 그렇게 뭔가를 숨기시는데 언제까지 우리가 선장님을 따를 거라고 생각했습니까?”
“뭐? 지금 뭐라고….”
좋은 선장이 드문 세상이지만, 웨버 역시 그 수준을 벗어나지는 못한 모양이다.
어쩌면 탈리스가 포장해준(?) 것과 다르게 더 나쁠지도 모르고.
하지만 괜한 분란을 만들 필요는 없었기에 나는 얼른 자리를 정리했다.
“에오멕 항해사, 자리에 앉게. 아무리 전에 모시던 분이라도 선단장님께 그러면 안 되지.”
“후, 죄송합니다, 리안 선단장님.”
짐짓 에오멕을 나무라는 척 상황에 끼어든 나는 기가 막혀서 할 말을 잃은 웨버 선단장을 향해 진지하게 말을 꺼냈다.
“웨버 선단장님, 먼저 확실히 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저는 탈리스 항해사나 에오멕 항해사에게 우리 선단에 오라는 말을 꺼낸 적이 없습니다. 두 사람이 먼저 찾아왔죠. 그리고 하나 더.”
“뭐, 뭔가?”
“이미 선단장님과 두 사람의 계약은 끝났다고 들었는데, 아닙니까?”
고용노동법이 없다는 말은, 고용계약 파기에 대한 기준이 없다는 뜻이다.
고용주와 고용인 상호 간에 부채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한쪽의 일방적인 파기 요청으로도 고용계약이 파기될 수 있다는 것이지.
그렇다 보니 고용주가 일방적으로 해고를 해도, 고용인이 이렇게 뜬금없이 사직을 해도 제재할 방법이 없다.
“그건….”
웨버 선단장이 당황하며 말을 얼버무린다.
그도 지금 자신의 행동이 그저 화풀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물론 선단장님의 마음은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제가 이 두 사람을 고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과연 두 사람이 다시 애니스타 호를 타겠습니까?”
“으음….”
“다행스럽게도 의용 1함대는 2함대보다 더 늦게 출항하지 않습니까? 시간은 많으니 새로운 항해사를 알아보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지금 같은 상황에서 누가 배를 타려고…!”
나는 그가 발작하기 전에 어깨를 으쓱거리며 탈리스와 에오멕을 보았다.
내 몸짓의 의미를 알아챈 웨버는 신음성을 삼키며 반쯤 일으켰던 몸을 다시 의자 위에 실었다.
그렇잖아, 지금 상황에서 자신은 항해사를 못 구한다고 말하면 자기 능력이 나보다 부족하다고 인정하는 꼴이니까.
일단 나는 그와 똑같은 상황에서도 항해사를 새로 두 명이나 구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