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9화. 귀인(貴人)
- 6월 23일 델라 항구 술집, 종달새의 노래 -
손님 하나 없는 썰렁한 술집의 문이 열리며 험악한 인상의 남자가 들어왔다.
물론 일반적인 시각에서 봐서 그렇다는 것이지, 종달새의 노래에 오는 손님 대부분이 선원들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매우 평범한 인상이었다.
“형님, 오늘은 썰렁한데요?”
“왔어? 배가 다 떠났잖냐. 그래도 이번에 워낙 크게 땡겨서 한동안 손님 없어도 살만하겠다.”
“흐흐흐, 얼마나 땡겼는데요?”
“알 거 없고, 특별히 이상한 건 없지?”
“배들이 싹 빠지면서 용병 놈들까지 거의 다 사라졌는데, 별일이 있겠수?”
데리고 있는 동생 놈의 대답에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은 술집 주인이 다시 돈을 세기 시작했다.
전쟁을 앞둔 인간들이 돈을 펑펑 써재낀 터라 최근 열흘 정도는 평소 수입의 열 배 이상이 들어왔다.
돈푼깨나 있어 보이는 일부 손님, 그러니까 일반 선원보다 수당이 더 많은 항해사나 갑판장들 같은 이들을 고오급진 방법으로 작업한 것이 주효했다.
약값이 조금 비싸기는 했지만, 그 정도야 뭐.
“야, 위에 가서 애들 좀 깨워. 그동안 고생했는데 오늘은 문 닫고 쉬어야지.”
“역시! 내가 이래서 형님을 좋아한다니까. 잠시만 기다리쇼!”
약간의 탐욕을 담아 수북이 쌓인 돈을 바라보던 남자는 신이 나서 벌떡 일어섰다.
꽈당!
“뭐야?!”
타이밍이 절묘했다.
균형을 잃은 의자가 나뒹구는 순간에 엄청난 소리를 내며 술집의 문이 열린, 아니, 부서진 것이다.
과장된 표현이 아니라 진짜 한 쪽 문의 경첩이 반쯤 빠져서 삐그덕거렸다.
“항구경비대다! 모두 가만히 있어!”
술집 주인은 뒷목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가끔은 뒷골목 패거리보다 더 잔인한 놈들이 바로 항구경비대였다.
특히나 저렇게 당당하게 폭력을 행사할 경우에는, 보통 상황이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그래도 가만히 앉아서 두들겨 맞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그는 한달음에 제법 낯이 익은 고참 경비대원에게 달려갔다.
문을 발로 차고 들어와 소리를 지른 그 경비대원이었다.
그동안 소소하게 먹인 돈이 있으니 잘만 하면….
“아이고, 여기까지 무슨 일이십, 아아악!”
빠각!
털썩! 짜르르륵!
소싯적에 배워둔 소매치기 기술을 역이용해 경비대원의 주머니에 작은 주머니를 넣던 주인이 갑작스러운 정강이 통증에 주머니를 놓치며 바닥을 굴렀다.
주머니에서 삐져나온 은화가 바닥에 흩어지고, 그동안 그렇게 믿음직스럽던 동생 놈은 몸이 굳어서 눈알만 데굴데굴 굴리고 있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났을 정도로 아픈 정강이도 정강이지만,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라는 말인가?
치안관까지야 손이 닿지 않았지만, 그래도 항구관리소나 경비대에는 충분하게 기름칠을 해 두었는데.
“뇌물? 죄를 자백하는 건가?”
“나으리, 도대체 왜….”
“위층까지 다 뒤져서 모두 포박해!”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십여 명의 경비대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개중 두 명은 술집 주인에게 다가와 우악스럽게 손발을 묶기 시작했다.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그동안 제가 드린, 아악!”
어쩌면 부러졌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 정도로 아픈 정강이에 다시 일격이 가해졌다.
그리고 비명을 지르느라 정신없는 그에게 머리를 들이댄 경비대원이 메마른 목소리로 속삭였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목숨이라도 건지고 싶으면.”
그리고는 다시 허리를 펴고 냉랭하게 소리쳤다.
“이곳에서 불법적인 약물을 사용하여 손님들의 금품을 갈취했다는 제보를 받았다. 밀주 신고도 있었고, 허가받지 않는 매춘업도 했더군? 변명은 그만둬라, 난 네놈을 잡아 오라는 명령을 받았지, 변명을 들어주라는 명령을 받지 못했으니.”
술집 주인은 기가 막혔다.
세상에 밀주를 빚지 않는 술집이 항구에 몇 개나 될 것이며, 매춘은 개나 소나 다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약물은, 여기저기에 기름칠을 한 것도 모자라 분명히 문제가 될 만한 사람은 다 걸렀다고 생각했는데….
종달새의 술집 주인을 비롯한 일당 다섯 명은 그대로 치안대에 끌려가서 이후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후, 부동산에 대한 압류 절차를 진행하기 위해 술집을 다시 방문한 경비대원이 혀를 찼다.
그 사이에 내부의 집기는 거의 다 털려버린 상황이었다.
“그런데 선배님,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시키는 대로 하기는 했는데, 지금까지는 괜찮다가 하필이면….”
“자세하게 알 것 없다. 짬밥 먹다 보면 이런 일이 한두 번인 줄 아냐?”
“아니, 그래도 뭔가 이해가 안 돼서 말이죠.”
“원래 술집에서 약을 쓰는 것은 위에서도 별로 안 좋아해. 뱃놈들 사이에서 평판이 안 좋아지면 항구 자체에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니까. 어차피 뒤질 놈이었지.”
선배의 말에도 젊은 경비대원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애초에 막던가, 미리 잡았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흐흐흐, 야, 신입. 세상을 살면서 제일 큰 실수가 뭔지 아냐?”
“음… 도박이요?”
평소에 소소한 내기 도박을 좋아하던 고참 경비대원의 얼굴이 팍 구겨졌다.
“에이씨, 그거 말고!”
“그, 글쎄요?”
“빽 좋은 놈을 건드리는 거다. 여기 주인 놈도 원래 당분간은 좋게 넘어갈 수 있었는데 하필이면 후작 가문의 사람을 건드린 모양이야. 치안관님이 경비대 막사까지 직접 뛰어와서 난리를 피웠다더라. 미친놈이지, 감히 이 항구에서 후작 가문의 사람을 건드리다니.”
“후, 후작이라면 스코타 후작 말입니까?”
“델라 항구에서 말하는 후작이 스코타 후작밖에 더 있겠냐?”
“아….”
신입 경비대원은 그제야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문득 자신과 또래로 보이는 남자가 출항 전에 부두에서 항구관리관과 이야기하던 모습을 보았던 것이 기억났다.
(진짜)항구관리관이 직접 부두까지 행차하는 경우는 워낙 드물어서 눈여겨보았더랬지.
…에이, 아니겠지.
이번 토벌전에 스코타 후작은 운용하는 선박들을 참가시키지 못해 물자만 댔다고 들었다.
***
- 6월 30일 오트라스 호 갑판 -
무장상선(솔직히 용병함대도 무장이나 장갑이 군함과는 차이가 있다)이 31척, 수송선이 8척이나 되는 대선단이 움직인다.
이 정도 규모는 나조차도 처음 보는 대선단이다.
바다 위가 배로 가득 찬 느낌이랄까?
그런데 규모가 있다 보니 속도가 아주 그냥… 거짓말 조금 보태서 내가 걷는 속도랑 비슷할 것 같다.
게다가 대부분의 배들이 무장을 강화하고 선원을 평소보다 더 많이 태운 것도 속도 저하의 큰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오트라스의 경우 설치된 대포의 구경을 더 키우고 선수포 1문과 선미포 2문을 추가하여 총 21문(9+9+1+2)의 대포로 무장을 했고, 피오렐은 양현에 1문, 선수포 1문, 선미포 4문을 추가해 총 29문(12+12+1+4)의 대포로 무장했다.
덩치는 오트라스가 조금 더 큰데 무장은 피오렐이 더 중무장인 셈이다.
원래 피오렐 자체가 군함에 더 적합하도록 설계되기도 했었지만, 그나마 비벼볼 만했던 이전(18문vs22문)에 비해 화력 차가 더 벌어졌다.
어찌 되었건 원래 상선치고 과무장이었던 이 두 척은 전열에 배치되었고, 리버티 호는 수송선으로 편성되었다.
함대사령관을 맡은 알센더트와 나의 불쾌한 첫 만남을 고려하면 나름 공과 사를 구분한 정석적인 배치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후작이 샌더슨 제독에게 보낸 편지의 영향으로 그럴 확률이 높기는 하지만, 이유가 뭐건 간에 일단 한숨은 돌린 셈이지.
무려 39척의 대선단이 지나가다 보니 근처로 접근하는 배조차 없었다.
덕분에 뭔가 기세 좋게 출항한 것 치고는 상당히 심심한 나날이 계속되고 있었다.
원래 이 시대의 전쟁이라는 것이 ‘시이작! 꾸우웅! 꽈아앙!’이 아니라 ‘전쟁이다!’라고 하고 실제 전투는 몇 개월 후에 벌어지는 게 예사이기는 했다.
그러니까 심심하고 평화롭다는 것은, 멀리서 선단 전체를 보면 그랬다는 뜻이다.
하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던가?
대다수 선박의 내부 사정은 아주 혼란 그 자체였다.
가장 큰 문제는 나와 같은 선택을 강요받은 ‘정신 나간 선장’이 한둘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당연한 말이다.
우리가 워낙 늦게 선원을 모으기 시작한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애초에 놀고 있는 선원 수에 비해 사람을 필요로 하는 배가 너무 많았다.
그렇다 보니 충분히 선원을 확보하지 못한 다른 선장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나와 같은 선택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
바로 무식하기 그지없는 용병 놈들을 임시 선원으로 고용한다는 선택 말이다.
처음 며칠이야 나쁘지 않았다.
나름 처음, 혹은 자주 겪지 않았던 환경이라서 용병들이 몸을 사리는 것도 있었고, 전체 용병 중의 90%가 지독한 멀미로 만 하루 만에 초죽음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독한 멀미를 겪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고작 토하는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온몸을 지배하는 탈력감 때문에 숨 쉬는 것마저도 귀찮게 느껴지는 것이 바로 멀미 아니던가.
하지만 반대로, 멀미는 아무리 지독하다고 한들 죽을병도, 불치병도 아니다.
시간이 흐르자 용병들은 하나씩 회복되었고, 뱃일을 할 줄 몰라 빈둥거리기만 하던 뇌까지 근육으로 이루어진 멍청이들이 여기저기에서 사고를 치기 시작한 것이다.
오히려 오트라스는 굉장히 양호한 편이었는데, 그 이유는 내 앞을 지나가는 이 남자 때문이었다.
“좀 괜찮아? 많이 안 좋아 보이는데?”
나는 절뚝거리며 걸어가는 거구의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이 친구의 이름은 발타, 라프나와의 해전이 끝나고 모르아가 발탁한 피오렐의 돌격대장이다.
피오렐의 돌격대장이 여기에 와 있는 이유는 피오렐에 정식으로 편제될 돌격대와의 훈련 때문이다.
…는 핑계고, 네이선이 군기도 잡을 겸, 실력도 봐줄 겸, 겸사겸사 매일같이 두들겨 패는 중이다.
물론 새로 편성된 돌격대원(두 배에 9명씩 편제하기로 했다)들 역시 함께 두들겨 맞은 것은 당연했다.
“제도으억, 괘, 괜찮습니다.”
그러게, 나는 ‘제도으억’이 아닌데 말이야.
아무리 봐도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는데?
사흘 후면 다시 자기 배로 넘어가야 할 녀석을 이렇게 곤죽을 만들어 놓으면 어떡해?
내게 고개를 돌리기에 무심결에 그의 얼굴을 보았는데, 볼은 시퍼렇게 부어 있고, 눈 한쪽은 절반밖에 뜨지 못한 것이 악전고투를 겪은 권투선수를 방불케 했다.
“닥터에게는 가 봤어?”
“지금 가는 길입니다. 흐헤헤, 그래도 오늘은 저도 한 대 때렸습니다!”
“…….”
솔직한 감상을 말하자면, 네이선이 미안해서 한 대 맞아준 것 아닐까?
하여튼 네이선이 이렇게 애들을 쥐 잡듯이 잡아대는데 얼마나 미친 정신상태를 가져야 사고 칠 생각을 하겠나?
물론 용병 놈들은 대부분 적당히 미친놈들이라 소소한 사건은 끊이지 않았다.
당연히 가장 빈도수가 높은 것은 싸움이었다.
용병과 선원이 싸우고, 용병과 용병이 싸우고, 아는 사람이 맞아서 싸우고, 침이 튀어서 싸우고, 밥이 적어서 싸우고, 입 냄새 난다고 싸우고, 생긴 게 맘에 안 들어서 싸우고… 세상에, 싸울 거리가 많기도 하다.
우리 선단에서 용병이 탑승한 배는 오트라스 뿐이다.
리버티와 피오렐에는 순수 선원들만 채워 넣었다.
수송선인 리버티는 가능하면 싸우지 않는 것이 좋으니 당연히 용병이 필요 없었고, 피오렐에 못 믿을 용병 놈들을 두어 걱정하느니 그냥 네이선에게 다 때려잡도록 하는 쪽이 더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오트라스에 선원은 포격을 담당하는 우르타와 20명, 돌격대를 맡을 행크와 9명, 총 29명뿐이고, 용병은 82명이 타고 있어서 조금 불안불안하기는 하다.
아, 조만간 피오렐로 옮겨 탈 발타와 피오렐 돌격대 9명은 제외한 숫자다.
아 참, 용병들은 선원처럼 철회가 자유로운 장기계약이 아니라 이번 토벌전 한정 계약이다.
급여는 동원 일수에 대해 몸값을 지불하고 전투마다 추가 수당을 지불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말 그대로 용병 계약을 맺은 꼴이지.
데굴데굴데굴데굴.
못생기고 지저분한 병 하나가 갑판을 굴러서 내 발치에 멈춰 섰다.
낯익은 싸구려 진이 담겼던 병이다.
내가 말은 싸구려라고 하지만 일단 유리병에 담겼으면 기본 품질은 되는 술이다.
아무리 지구의 중세보다 유리가 흔한 곳이라고 해도, 유리병을 마구 찍어낼 정도로 산업이 발달한 세상은 아니니 말이다.
“어, 미안하우, 제독.”
중년의 남자가 건들건들하게 한쪽 손을 들며 대충 고개를 숙였다.
왼쪽 눈썹 위에서 입꼬리 부근까지 곧게 뻗은 칼자국이 인상적인 남자, 애꾸였다.
“애꾸, 병은 똑바로 버리라고 한 것 같은데?”
“버린 게 아니라 놓친 거요. 그리고 애꾸가 아니라니까?”
확실히 그의 눈 위를 가로지른 흉터는 눈을 찌르지는 않았는지 눈동자는 매우 정상적이었다.
하지만 얼핏 본 첫인상이 애꾸인 걸 어쩌라고.
아마 몇 년인가 몇 개월인가 배를 타본 경험이 있다고 해서, 건들거리는 것이 마음에 안 들어도 뽑았던 사람 같은데.
“뭐라고 부르건 내 맘이야. 집어.”
내가 발로 병을 툭 밀자, 병이 다시 데굴데굴 굴러 애꾸 앞에까지 갔다.
바닥에서 병을 잡고 일어서서는 한껏 목을 젖히며 술병을 뒤집어서 남은 술이 없다는 것을 굳이 증명한 애꾸가 나에게 툭 던지듯이 말했다.
“쩝, 제독, 내가 들어보니 제독에게 꽤 괜찮은 술이 있다던데, 좀 나눠주시면 안 되오?”
“…….”
나는 분노하기에 앞서 가만히 그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작고 어두워서 생각을 읽기 어려운 눈.
하지만 최소한 취해서 미친놈처럼 구는 것은 아니다.
발음도 정확하고 조금씩 흔들리는 배 위에서도 상체에 미동도 없다.
습관적으로 허리 아래에서 흔들림을 완전히 상쇄하고 있다는 뜻인데, 네이선이 말하기를 그 정도만 돼도 선상 전투에서는 엄청난 고수란다.
“…가격만 맞다면 못 줄 것도 없지.”
“하, 하하하학, 쿨럭! 소문보다 더 대단하시구만. 당연히 가격은 섭섭지 않게 내리다.”
“따라와.”
나는 애꾸를 데리고 선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술병 거치대에서 마음에 안 들던 녀석을 하나 잡아서 그에게 던졌다.
“위스키?”
“응, 나 위스키만 마셔.”
“쩝, 남자가 위스키가 뭐요, 위스키가? 좀스럽게.”
지금 일부러 긁는 거 맞지?
“후우, 싫으면 내놓던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경고하지. 배에서만큼은 선장에 대한 예의를 지켜. 그게 싫다면 고용주에 대한 예의라도.”
“크흠, 알겠습니다.”
“술값을 내려면 앉아. 아니면 그대로 병은 테이블에 놓고 가고.”
내 말에 술병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잠시 고민하던 애꾸는 결국 슬며시 의자 하나를 빼서 앉았다.
나는 말없이 술장에서 얼마 남지 않은 꼬냑을 꺼내 반 컵을 따라서 그에게 주었다.
…갑판장님이 오면 가끔씩 주던 술이다.
“와우, 이거 엄청 좋은 건데? 차라리 이걸 파실 생각은 없으… 으음, 미안하우, 제독.”
꼬냑의 향을 음미하던 애꾸가 작은 눈을 두 배로 확장시키며 내게 말을 하다 말고 사과했다.
쯧... 아직 마음이 다 아물지 못한 모양이네.
빠르게 싱숭생숭한 기분을 털어버리고 상석에 앉은 내가 물었다.
“…그래, 술값은 뭘로 지불할 건데? 참고로 그거 꽤 비싼 녀석이다.”
“제독은 지금 저 망나니들 데리고 제대로 전투를 할 수 있을 것 같소? 배에서는 육지보다 섬세하게 움직여야 한다고 알고 있는데 말이오.”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솔직하게 말하자면, 애꾸의 말이 맞다.
일단 급한 대로 머릿수는 채웠는데, 과연 용병 놈들이 전투상황이 되었을 때 지휘를 따를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는다.
지금도 뺀질거리는 놈들 투성이니 원.
“배도 그렇지 않소? 우두머리 몇 놈이 애들 데리고 일하잖소? 용병도 똑같소.”
“잠깐, 용병들은 다 개인적으로 받은 놈들이야. 서로 아는 놈도 거의 없던데.”
“벌써 열흘 가까이 부대끼지 않았소? 이 정도면 대충 서열도 나뉘고 무리도 지어지기에 충분한 시간이지. 그러니까 그 대가리들만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면 제독의 손발 같은 선원들만큼은 아니더라도 제법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을 거요.”
호오, 일견 단순한 이야기이기는 한데, 용병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미처 생각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확실히 술값은 한 것 같은데, 고작 술값으로 굳이 이런 이야기를 해주지는 않았을 것 같고.
“거스름돈이 남을 것 같은데?”
“으하하하하, 거, 그럼 나도 그럴듯한 감투 하나 만들어 주쇼. 돌격대장이라는 이름이 아주 멋지던데.”
“용병대장, 나가서 갑판장과 돌격대장 좀 이리 오라고 전하게.”
“시원시원하시구만! 수당도 올라가는 겁니까?”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래, 알량한 충성심은 개뿔,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돈이지.
“당연한 말을. 빨리 움직여.”
“넷! 제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