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화. 멍청이와 더 멍청이
“쩝, 마중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뭐가 말입니까?”
“해적들 말이야. 출항 전에 마지막 회의에서 들은 바로는 해적 무리가 연합 함대를 구성했다고 하더라고. 도대체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이번 토벌전은 석연치 않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구심점도 없는(라프나는 내가 바다에 빠뜨렸으니까) 해적들이 연합 함대를 구성했단다.
이것만 해도 이게 말이야 방구야 싶은데, 연합군 쪽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이 더 미스테리다.
게다가 뭔가 기본 구도가 이상하지 않아?
일레드 왕국이 정말 케르빈 제도를 자국 영토로 생각한다면, 케르빈 제도로 함대를 보내 해적을 격파하고 우리를 막아야 하는 거잖아.
당연히 론 항구에서 출발한 연합 함대에게 견제 정도야 당하고 있겠지만, 아직 세 나라가 서로 선전포고를 한 상태는 아니다.
지금은 어디까지나 연합 함대가 ‘해적 토벌로 발생할 여러 위협에 대한 선제적 조치’를 취한 상태니까, ‘우리가 해적을 쳐부술 거다!’ 하고 나오면 연합 함대가 막을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거 저런 거 다 떠나서 일단 구도 자체가 벨로키나-쿠샤 연합에 대항해서 일레드-해적 연합이 만들어진 구도잖아.
이래서야 돌아가신 갑판장님이 가지고 있던 의혹인 ‘일레드가 해적을 통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에 대해 부정할 방법이 없어진다.
아, 그러고 보니 그동안 깜빡 잊고 있던 게 있네.
“정말 아찔하군요. 저기, 저기, 저기, 저기…. 당장 눈앞에 보이는 섬 네 개만 해도 배를 대 여섯 척 정도는 숨길 수 있는 규모네요.”
“그러게 말이야. 이제 초입인데 정말 골치 아프겠군.”
잠시 나만의 세계에 빠져있던 나는 문득 들리는 그레이그의 말에 얼른 맞장구를 쳤다.
여러 번 생각할 필요도 없는 대답이었다.
당장 알센더트가 타고 있는 의용함대 기함인 마르티엘 호의 견시대에서 쉴 새 없이 신호기가 흔들리는 중이었다.
지금 현재 대형으로는 도저히 제도 안쪽으로 진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기함으로부터 신호입니다! 340도 방향의 큰 섬 좌측으로 진행하랍니다!”
“음, 일등항해사가 지휘하지.”
“네, 선장님.”
나는 선교를 그레이그에게 맡기고 내려와 우현에 서서 망원경을 들었다.
델라 항구를 출항하기 전에 케르빈 섬과 케르빈 제도가 표시된 지도를 받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지도처럼 그리 자세하지는 않았다.
눈에 보이는 섬을 피하는 것이야 그레이그가 알아서 잘할 테니, 나는 혹시 모를 암초 같은 위험에 대비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일은 다른 이들에게 시켜도 되지만, 지금 선원들의 근무 피로도가 너무 높은 상태고, 망원경 성능이 가장 좋은 내가 하는 게 효율적이었다.
“선장님? 여기서 뭐 하십니까?”
“어? 용병대장?”
“저쪽에 뭐가 있습니까?”
“아니, 혹시라도 뭐가 있나 싶어서.”
“뭘 그런 일까지 직접 하시고 그러십니까?”
나는 잠시 망원경에서 눈을 떼고 갑판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용병들을 보았다.
그래도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나니까 용병들이 나름 협조적으로 굴고 있어서 선원들이 조금 편해지기는 했다.
일부 중요한 몇 가지 일을 뺀 뱃일의 대부분이 특별한 스킬이 필요하기보다는 몸과 힘을 쓰는 잡일이거든.
그중의 일부만 용병들이 해결해 주어도 선원들이 훨씬 편해진다.
“내가 하는 게 효율적이니까. 그보다 용병들은 다 휘어잡은 거야?”
“대가리 몇 놈에게 그럴듯한 직함 하나 던져주고 돈을 더 준다니까 바로 꼬리를 치더군요. 선장님 말대로 말이죠, 흐흐흐.”
“사람이 다 거기서 거기지. 그래도 전에 말한 대로 방심하지 말고 친위세력 만들어 둬.”
“별걱정을 다하시네. 걱정 마십쇼, 그거야 진작 해 뒀으니까.”
***
“제기랄, 엉망진창이네.”
“끄응, 39척이 많기는 하죠.”
“으아아, 선장님 저기! 부딪히겠어요!”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었다.
다섯 갈래로 나눠서 다시 합류하는 계획은 좋았다.
그런데 합류할 공간이 생각보다 좁았고, 도착하는 시간대도 예상과 달랐는지 모두의 침로가 꼬여버렸다.
통신 수단이 고작 수기 신호밖에 없으니 도저히 난장판 수습이 안 된다.
애초에 사령관인 알센더트라는 인물조차 10척은 무슨, 5척도 이끌어본 적이 없는 인간이다.
그런 이에게 39척을 맡겼으니 어쩌면 예정된 사고일지도 모르겠다.
“오펜! 지금 당장 피오렐과 리버티의 위치 확인하고 좌우현에 견시수 추가 배치해! 지금 기습이라도 당하면 끝장이다!”
“네! 선장님!”
“포술장! 지금 당장 포대 점검하고 언제든지 포격할 수 있도록 준비해!”
“넷! 선장!”
“갑판장! 용병대장에게 용병들 전투 대기시키기라고 하고 무기고 개방 준비!”
“알겠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여러 개의 분함대를 만들어서 움직이는 것이 나을 뻔했다.
물론 그렇게 하면 각개격파 당할 확률이 높아서 이런 방법을 취했겠지만….
“일등항해사, 단정 준비해. 내가 직접 기함에 가봐야겠어.”
“선장님!”
“이번 일은 나 말고 시킬 사람이 없어. 내 말도 들을지 모르는데 고작 항해사나 갑판장이 가면 만나주기나 하겠어?”
“이미 사령관을 맡은 이와 크게 싸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하지만 이대로 멍 때리다가는 다 죽어.”
잠시 나를 보며 입술을 짓씹던 그레이그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배를 조금 더 기함에 가까이 가져다 댄 후에 단정을 내리겠습니다. 그리고 갑판장은 반드시 대동하십시오.”
“그러지.”
***
잠시 후 단정을 타고 기함인 마르티엘에 접근하자, 난간에서 지저분한 얼굴 하나가 쏙 튀어나오며 물었다.
“누구슈?!”
“오트라스 호의 선장 리안이다. 줄사다리 내리고 알센더트 제독에게 전달해!”
“선장? 아, 잠시만 기다리쇼.”
잠시 후 줄사다리가 내려오자 네이선이 먼저 그것을 붙잡았다.
“너희는 계류상태로 대기하고 있어. 나와 갑판장만 올라간다.”
“네, 선장님.”
노를 저어 온 선원 두 명이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네이선의 뒤를 이어 줄사다리를 타고 올랐다.
“이쪽입니다. 리안 선장님.”
“음.”
나는 항해사로 보이는 남자를 따라 마르티엘의 함교로 안내되었다.
그곳에는 인상을 찌푸린 채 연신 사방을 둘러보는 알센더트가 있었다.
“리안 선장? 여기까지 무슨 일이신가? 놀리려고 온 거라면 좀 기다리지. 지금 좀 바빠서 말이야.”
“제독, 이대로는 수습이 안 됩니다. 시간을 더 끌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제독도 알고 있겠지요?”
“놀리려고 온 거라면 좀 기다리라고 했을 텐데?”
알센더트는 거의 으르렁거리듯 낮은 목소리로 말하며 나를 노려보았다.
“이쪽, 저기 보이는 저 섬을 전초기지로 삼고 순차적으로 점령합시다. 섬이 워낙 많아서 시간은 오래 걸리겠지만, 지형을 잘 모르는 우리 입장에서는 차라리 그게 나을 것 같은데.”
“…이봐, 리안. 스코타 후작의 밑에서 일한다지? 하지만 나에게 그딴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내가 네놈을 그냥 두는 것은 지랄 맞은 싸가지와 별개로 능력과 배짱이 있기 때문이야. 하지만 감히 나를 상대로 월권을 벌이는 것까지 용납해줄 거라고 착각하지는 마라.”
진심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진짜라면, 그리고 진심이라면 알센더트의 볼리야 용병함대가 유명한 이유를 알겠다.
최소한 공과 사를 구분하고 목적을 위해 감정을 접어둘 정도의 능력은 있으니 이름을 날릴 수 있었겠지.
“알센더트 제독, 월권을 하자는 게 아닙니다. 어차피 기함에서 보낼 수 있는 수기 신호는 한계가 있잖습니까? 지금 서로 겹치는 배도 많아서 신호도 제대로 전달이 안 되구요. 차라리 뒤쪽부터 저 섬 인근에 정박시키고, 공간에 여유가 생기면 분대를 만들어 큰 섬 위주로 탐색과 점거를 진행하는 겁니다. 섬에 바로 움직일 수 있는 전력을 대기시키면 분대에 위협이 닥치더라도 쉽게 구원할 수 있을 겁니다.”
일단 제도라는 지형 자체가 원래 대규모 함대를 운용하기 어려운 곳이다.
심지어 서로 손발을 맞춰본 적도 없는 오합지졸 의용함대가 그걸 해낼 수 있다고 판단한 것 자체가 오류인 셈이다.
어떤 놈이 대전략을 세운 건지 원.
잠시 내 눈을 바라보던 알센더트가 잇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렸다.
“…칫, 틀린 말은 아니군. 리안 선장, 자네 제안을 받아들이지. 하나 더, 여기까지 왔으면서 제안만 던지고 그냥 놀 생각은 아니겠지? 자네에게 자네 인근에 있는 여섯 척을 지휘할 권한을 줄 테니, 지금 당장 좌측으로 빠져서 집결지 외곽에 위협이 있는지 확인하게. 필요하다면 임의로 교전을 시작해도 좋고, 지원이 필요하다면, 음….”
“불을 피우겠습니다.”
“뭐? 크크큭, 진짜 미친놈이 여기 있구만. 배 위에서 불을 피우겠다고?”
“일단 지금은 연기가 가장 잘 보이지 않겠습니까?”
내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하자, 알센더트가 피식거리면 웃다가 결국 대소를 터뜨렸다.
“푸훗, 크하하하하! 그래 뭐, 그 정도 배짱은 있어야 바다의 사나이지. 좋아, 그렇게 해. 그렇다고 불장난을 하다가 돛을 태워 먹지는 말게, 리안 선장. 크크크큭.”
***
다시 오트라스 호로 돌아온 나는 주변의 선박들에게 기함의 명령을 전달했다.
다행스럽게도 알센더트가 먼저 수기 신호로 내 지휘권을 인정해줘서 내 주변, 그러니까 함대 전체로 따지면 좌측 외곽에 있던 여섯 척이 오트라스를 따라 천천히 집결지를 빠져나왔다.
애석하지만 리버티와 피오렐은 여섯 척에 포함되지 못했다.
오트라스를 선두로 종대를 구성한 우리는 천천히 좌측 외곽으로 빠져서 섬 사이를 누비기 시작했다.
그렇게 긴장되는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급박한 견시수의 보고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견시 보고! 우현 030도 섬 그늘에 마스트, 마스트가 보입니다!”
견시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와 그레이그는 망원경을 들어 30도 방향의 섬을 유심히 살폈다.
나무가 우거진 꽤 커다란 섬이었는데, 아무리 봐도 마스트 비슷한… 어?
“선장님! 확인했습니다! 저놈들도 걸린 것을 눈치챈 모양입니다!”
그래, 나도 봤어. 벌써 돛을 올리기 시작한 길쭉한 마스트가 눈에 들어왔다.
거리는 대략 1,200m 정도, 약간 멀기는 하지만 저놈들은 이제 막 돛을 올리기 시작했으니 우리가 역으로 기습할 수도 있다.
“견시! 너 오늘 포상 1만 로스다! 총원 전투 배치! 후열에 현 상황 전파해! 이대로 일렬로 지나치며 포격한다!”
“총원 전투 배치! 조타수 우로 30도 잡아! 삼등항해사, 상황 전파해!”
내 명령이 떨어지자 그레이그가 득달같이 세부 명령을 내렸고, 곧 배 전체가 소란스러워졌다.
이런 좋은 기회를 해적 놈들이 그냥 보고 있을 리가 없지.
우리가 발견하는 것이 조금만 늦었다면 아주 초장부터 낭패를 볼 뻔했다.
***
콰과과과과광!
포성이 울리고 이제 굼뜨게 움직이기 시작한 해적선의 근처에 십여 개의 물기둥이 치솟았다.
그리고 포성이 가시기 무섭게 견시수가 보고를 해 왔다.
포상을 받아서 그런지 목소리가 상당히 상기된 상태였다.
“해적선 총 세 척, 세 척 확인했습니다!”
고작 세 척이면 직접 뭔가를 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정보수집차 파견된 분함대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혼란에 빠진 지 꽤 시간이 지났으니까….
“일등항해사! 최후미 선박에게 전달! 적의 지원군 경계!”
“네? 지원군 말입니까?”
“고작 세 척으로 39척의 대함대에게 뭔가 해볼 생각은 아니었을 테니, 아마 어떤 식으로건 해적들의 본대에 신호를 보냈을 것 아냐. 그럼 지금쯤 놈들의 본대가 이쪽으로 오고 있을 수도 있어.”
“아, 알겠습니다!”
그레이그가 오펜에게 지시하는 것을 확인한 나는 네이선을 불렀다.
“갑판 위에 올려둔 자재에 불 붙여.”
“어? 벌써? 말입니까?”
“이미 적이 지근거리에 있어. 지원을 보내건 안 보내건 저쪽도 알아야지.”
“알겠습니다.”
이미 분함대를 구성하자마자 수십 개의 자재를 바닷물에 적셔서 태우면 검은 연기가 나도록 준비해 둔 상태였다.
재수 없으면 불을 붙인 갑판 바닥이 화기에 내구력이 떨어져서 다 갈아야 할지도 모르지만, 열기는 원래 위를 향하게 마련이니, 빨리 끄면 괜찮을 수도 있다.
오히려 불똥이 튀어서 돛에 옮겨붙을까 봐 더 걱정이다.
콰과과과과광!
다시 한번 우현 포대가 불을 뿜었다.
그리고 우리 바로 뒤를 따르던 배에서도 질 수 없다는 듯 포성이 터져 나왔다.
콰쾅콰콰쾅콰콰쾅!
어째 소리가 애매한 것이 사격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것 같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이쪽은 7척인데 저쪽은 고작 3척, 심지어 우리는 이미 포격 종대를 이루어 순차 사격을 가하고 있으니, 포탄을 뒤집어쓸 각오를 하고 덤벼들지 않는 이상 해적선들은 백병전을 걸 엄두도 낼 수 없었다.
***
“좌현 전타! 이대로 역행하며 다시 포격한다!”
우리는 무사히 해적들에게 네 번의 포격을 퍼붓고 사거리를 이탈했다.
그리고 우리 뒤를 이어서 다른 배들이 연속으로 포격을 퍼붓는 중이다.
처음에는 이쪽으로 다가오려는 움직임을 보이던 해적선들은 지금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허둥대고 있었다.
지금이야 최대 사거리에 살짝 걸쳐있으니 운 좋게 피격을 피했지만, 거의 10초에 한 번씩 쏟아지는 강철 구슬의 비 사이로 치고 들어올 엄두가 안 나는 것이다.
“안쪽으로 도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우측으로 꺾어서 해적선들에게 더 가까운 안쪽으로 들어가면 포격 정확도가 높아지기는 한다.
하지만 저 해적들만큼 우리도 손발이 안 맞는다는 것이 문제다.
우리가 안으로 돌아 들어와서 사격 사정거리에 들어온 것도 모르고 다른 배에서 포격해버리면 근거리에서 아군의 오사를 뒤집어쓰고 박살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돌면 뒤이어서 다른 배들도 빨리빨리 돌면서 포격 공백을 최소화해야 하는데, 그게 잘 될지도 의문이다.
하지만 ‘나는 아군을 믿을 수 없어.’라고 대놓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잖아.
“저놈들은 아무것도 아냐. 만약 아까 내가 말한 놈들의 지원군이 있다면, 안으로 들어갔다가는 포위되어 옴짝달싹 못 하고 죽을 수도 있어.”
“아, 그런 뜻이… 알겠습니다.”
우리가 반전하는 사이에 운 좋게도 6번 함이 유효타를 냈는지 갑판 위에서 함성이 올랐다.
얼른 망원경을 들어 살피니, 눈에 잘 띄지 않는 것이 큰 피해는 아닌 듯했다.
하지만 우리가 거의 다 지나는 것을 보고 해적선들도 선수를 돌려 이쪽으로 접근할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어차피 잠시 후면 오트라스의 좌현 포대가 놈들을 사거리에 넣으면서 2차 포격이 시작되겠지만, 지금은 행복한 꿈이라도 꾸라지.
콰과과과과광!
상쾌한 진동과 함께 좌현 포대가 불을 뿜었다.
그리고 저 멀리 해적선에서 판자 조각이 비산하는 것이 보였다.
명중이다.
“정말 이해가 안 되는군. 저걸 초탄으로 맞춘다고?”
“하하하, 진짜 포술장의 감은 놀랍습니다!”
맞춘 우리도 어이가 없는데, 맞은 놈들은 얼마나 황당하겠어?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실룩거리는 것을 애써 참았다.
이렇게만 간다면 첫 전투의 승리를 내가 가져가게 되고, 피해가 전혀 없는 압도적인 승리로 충분히 군공이라고 자랑할 만한 일이 될 것이다.
“우현 견시 보고! 우현 섬 뒤쪽, 다수 선박 포착!”
“뭐?!”
“정정합니다! 우현 섬 뒤쪽, 본 선단 후미에 다수 선박 포착! 포위당했습니다!:
“정신 차려! 아직 앞쪽 뚫렸다! 조범수 풀 세일로! 후열에 전달! 지금 당장 전장에서 이탈한다! 빨리!”
견시수도 사람인지라 한쪽에 시선이 가면 다른 쪽은 신경을 덜 쓰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적의 지원에 대해 충분히 경고를 했다고 한들, 조금 발견이 늦은 것으로 뭐라고 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해적들의 지원 함대와 아직 거리는 충분히 멀었기 때문에 이탈하기에는 그리 어렵지 않아 보였다.
“배 돌리는 게 10분, 아니 5분만 늦었어도….”
배를 선회시키기 전에 포격 범위에서 벗어났다고 하지만 만약 오른쪽으로 조금 꺾어서 움직였다면 한두 발 정도는 더 쏠 수 있었다.
그러면 다시 방향 돌리기가 힘들 것 같아서 깔끔하게 포기했는데, 그게 신의 한 수가 된 것이다.
빵빵하게 바람을 받은 돛이 부드럽게 선체를 밀어낸다.
다행히 바람도 좋은 편이라 아슬아슬하게 이탈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