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흙수저 선원으로 살아남기-263화 (264/420)

263화. 초전 압승

“우현에 적 선단 출현! 총 네 척입니다! 방향 080, 거리 4500!”

“좌현 섬 그늘 뒤쪽으로 마스트 확인했습니다! 거리 500!”

흠, 예상을 벗어나지 못하는군.

솔직히 섬의 크기가 애매하게 크다 보니 섬의 남쪽을 돌아서 전선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서둘러야 했다.

너무 늦게 도착하면 지원 온 함대가 먼저 박살이 나서 각개격파 당할 판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우회할 때 섬에 최대한 붙어서 돌아야만 했고, 그렇게 움직이는 우리의 선두를 섬에 매복한 선단이 기습하는 것이 해적들의 그림이었을 것이다.

일단 그렇게 기습을 해서 오트라스, 혹은 2열 함선까지 백병전을 걸어버리면 그 배들은 당장 속도를 잃게 된다.

그리고 지금처럼 선박 간의 거리가 가깝게 일렬종진으로 움직일 경우, 선두가 속도를 잃으면 후열부터는 어느 쪽으로든 방향을 돌리는 수밖에 없다.

지금 당장 방향을 바꾸지 않으면 백병전을 벌이고 있는 아군을 들이받을 판인데 어쩌겠어?

주어진 시간은 얼마 없고 당장 보이는 방향은 오른쪽뿐이니, 모든 배가 오른쪽으로 돌 것이다.

지휘를 해야 할 기함조차 제대로 된 명령을 내릴 수 없는 상황(백병전 상태)이라면 거의 확실하다.

그렇게 되면 나머지 배들이 배치된 형태는 거리도 뭣도 없는 횡진 비슷한 무진, 그 옆구리를 누군가 때린다면 때리는 대로 맞을 수밖에 없다.

그 상태에서는 진의 옆쪽에 포격을 할 수 있는 배라고 해봐야 끝에 한 척뿐이니까.

그렇게 대열이 무너진 사이에 멀리 대기하던 저 네 척이 다가와서 취약한 옆구리를 들이쳐서 처리한다는 생각이 아니었을까 싶다.

생각 자체는 좋았다.

고작 우리가 섬을 돌아오는 짧은 시간에 무식한 해적들이 생각해냈다고 보기 힘들 정도다.

한 가지 문제라면, 내가 이런 상황을 대충 예측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건 내가 잘나서가 아니고 당연한 일이었다.

전에 말했듯이 우리를 막지 않으면 양면에서 포위당해서 두들겨 맞을 테니까.

최소한 막는 시늉이라도 했어야 매복에 대한 걱정을 덜었겠지.

“섬 뒤쪽의 적을 먼저 친다. 풀 세일로 바꾸고 후열에 전달해. 최후열 함선은 우현의 해적선을 주시하고 나머지 함선은 섬 쪽에 매복한 적을 두들긴다.”

“알겠습니다!”

힘차게 대답한 그레이그가 전령 역할을 맡은 선원들에게 부지런히 지시했고, 나는 우르타와 시선을 교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포술장, 저놈들 아직 제대로 기동도 못 하고 있어. 최대한 붙여 줄 테니까 박살 내버려!”

“넵, 선장님!”

우현에서 다가오는 해적선들은 아무리 빨라도 15분 후에나 이곳에 도착한다.

매복한 배의 수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 정도 시간이면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매복한 해적선들을 박살 낼 수도 있는 시간이었다.

우르타가 잰걸음으로 선교를 내려가는 것을 보던 나는 섬과의 거리를 확인한 뒤 조타수에게 말했다.

“조타수 좌로 15도! 지금 저 하얀 바위 뒤쪽으로 보이는 마스트를 기준으로 거리 200까지 접근한다.”

“좌로 15도!”

타륜을 잡은 낯익은 선원이 큰 소리로 복창하며 부드럽게 타륜을 돌렸다.

***

섬이 크다는 것은 돌아가기에 조금 멀 정도로 크다는 것이지, 배가 열댓 척이나 숨을 정도로 크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섬 뒤에서 매복하던 해적선은 고작 세 척에 불과했다.

대략 배수량 500톤 전후의 중형 범선들.

갤리선과 다르게 범선은 급가속이 불가능하니까 우리가 돌아 들어올 때 기습이 가능한 거리에 배치될 수 있는 함선의 수는 딱 그 정도였다.

콰과과과과과광!

어떻게든 속도를 붙여서 방향을 돌리려는 해적선이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포대가 불을 뿜었고, 거의 대부분의 포탄이 가장 앞쪽 해적선의 근처에 떨어지며 물기둥을 만들었다.

“메인마스트 내려! 조타수, 좌로 5도!”

저쪽의 속도는 이제 막 1~2노트 수준, 최소한 4~5노트 이상은 유지하고 있는 우리가 조금 느려져도 뒤를 잡힐 리가 없다.

그렇게 서로의 거리가 거의 변하지 않은 상태에서 두 번째 포격이 날아갔다.

그리고 여지없이 사방에서 나무 파편이 튀었다.

“명중! 명중입니다! 최소 세 발이 명중했습니다!”

견시수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명중을 외쳤고, 갑판에 나와 있던 선원과 용병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그 함성이 끝나기도 전에 우리의 뒤를 쫓던 후열 함선에서 불을 뿜었다.

아무리 해전에서 포격으로 배가 침몰하는 것은 어렵다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뜻은 아니다.

그리고 결국 수 차례의 포격을 뒤집어쓴 해적선이 크게 기울기 시작했다.

아마도 재수 없게 한쪽이 손을 쓰지 못할 정도로 침수된 것으로 보였다.

우리는 기울기 시작한 배를 지나서 다음 배를 포격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의 전과는 아니었지만, 어찌 되었건 아군의 사기는 하늘을 찢을 듯이 치솟았고, 남은 두 척의 해적선은 사기가 지하 심층수까지 처박히는 것처럼 보였다.

한쪽으로 넘어가기 시작한 해적선은 마스트의 방향을 볼 때 이미 30도 이상 기울었다.

저 정도면 균형을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배 위에 사람들이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할 상황이다.

침몰은 확정이고, 해적들은… 글쎄, 섬이 가까우니까 헤엄을 잘 친다면 당장은 살 수 있겠지.

하지만 우리가 전투에서 승리하면 이 섬은 우리 전초기지에서 가까운 만큼 빠른 시일 내에 점령당할 것이고, 그때는 죽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을 것이다.

먼바다에서 접근 중인 네 척이 합류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약 10분.

포격으로 놈들을 완전히 무력화하는 것은 역시 쉽지 않다.

그리고 지금 우리보다는 지원 함대 쪽이 더 걱정된다.

우리를 잡기 위해 할애한 전력이 7척이라면, 지원 함대는 9척으로 11척을 막아야 했다.

당장은 큰 차이가 아니지만, 백병전이 시작되면 시간이 지날수록 아군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질 테니 최대한 효율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가장 멀리 있는 해적선의 좌현에 접근해서 접현한다! 후열에 신호 보내! 우리와 2번 함선이 가장 멀리 있는 해적선을, 3번과 4번 함선은 다른 해적선을 백병전으로 때려잡는다. 5번과 6번, 7번 함선은 그대로 진행해서 적 본대의 후열을 때린다. 5, 6, 7번 분함대는 5번 함선이 기함을 맡도록.”

“알겠습니다!”

나는 이어서 선교에 올라와 있던 돌격대장 행크에게 말했다.

“돌격대장, 지금 바로 내려가서 갑판장과 함께 백병전 준비해. 바리케이트는 필요 없고 좌현에서 돌격한다. 선수 쪽은 갑판장과 돌격대가 맡고, 나머지는 용병들에게 맡겨. 선원들은 배에 남아서 지원한다.”

“알겠습니다!”

선수 방향을 굳이 돌격대를 찍어서 맡긴 이유는, 배라는 것이 선수로 갈수록 더 많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물론 오늘 바다가 잔잔해서 큰 의미는 없겠지만, 아무래도 배를 타던 돌격대를 선수에 배치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것이다.

…는 대외적으로 밝힐만한 변명이고, 실제로는 선수 쪽 해적이 더 적기 때문이었다.

해적선과 우리는 서로 마주 보는 상태라서 우리의 선수는 해적선의 선미에 붙게 되는데, 이 선미라는 곳이 사람이 설만큼 넓은 공간이 별로 없어서 대기 중인 해적의 수가 적었다.

대충 보이는 것으로 볼 때, 네이선과 행크만 건너가도 선미 쪽은 다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400톤 남짓해 보이는 해적선이니 해적이 많아 봐야 100여 명.

이미 사기의 고하가 극명한 지금, 우리 혼자서도 충분히 상대할만했다.

하지만 머릿수가 더 압도적일수록 우리 쪽 피해가 적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약간의 늑장을 부리며 2번 함선이 해적선의 우현에 더 접근하기를 기다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2번 함선보다는 조금 빠를 수밖에 없었고, 결국 5m도 안 되는 가까운 거리까지 접근한 해적선과 오트라스 사이에서 함성이 터지며 줄갈고리가 서로를 향해 날아들었다.

해적선 입장에서는 압도적인 화력 차이 때문에 포격으로는 도저히 상대할 방법이 없고, 당장 도망도 불가능한 판이니 그나마 자신 있는 백병전을 받아주겠다는 것이겠지만, 과연 이 선택의 결과가 마음에 들지는 모르겠다.

거의 멈춰버린 두 배의 사이에 널빤지가 놓이는 것을 보며 다시 파고를 확인했다.

0.5미터 정도, 바다는 우리를 응원하듯이 여전히 잔잔했고, 드디어 흥분한 용병들이 널빤지를 딛고 달리기 시작했다.

용병들을 고용하면서 조금 더 넓고 단단한 것으로 준비한 널빤지는, 이번에 그 가치를 똑똑히 증명했다.

***

처음에는 기세를 올리면서 오트라스를 점령하겠다는 듯이 이쪽으로 로프를 타고 달려들고, 널빤지로 뛰어올라 용병들을 밀어내려던 해적들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크아악, 이 미친놈들, 갑옷을 입고 있어?!”

“바, 방패? 커허헉!”

“괴, 괴물이다!”

네이선이 선두에 달리고 행크와 돌격대가 보조하는 쐐기형 돌격진의 파괴력은 어마어마했다.

내 예상대로 선미 쪽에 있던 해적들은 하나씩 다가와서 네이선과 행크에게 목숨을 상납했다.

그렇게 눈 깜빡할 사이에 선미를 쓸어버린 네이선과 돌격대는 바로 주갑판에 진입했다.

네이선이 있는 곳은 쉴 새 없이 피보라가 터졌고, 그 압도적인 광경을 목격한 해적들이 기겁하며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갔다.

물론 네이선만큼 인상적이지는 않았지만, 용병들이 있는 곳도 압도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선두에 선 것은 방패를 들었거나 갑옷을 입은 자들이었고, 짧은데다가 적당히 휘어져 베기에 특화된 커틀라스는 선두 용병들의 방어구를 뚫지 못했다.

“낙승이군요.”

“예상했던 일이지. 그보다 다른 쪽을 잘 살펴. 혹시라도 해적들에게 다른 지원군이 있거나 하면 곤란해.”

“네. 선장님.”

그레이그가 내게 살짝 목례를 하고 다시 망원경을 드는데, 오펜이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해적선 우현에 아군 2번 함선이 접현했습니다!”

해적들도 완전히 바보는 아니라서 2번 함선이 접근하는 우현에는 바리케이트를 쌓고 쇠뇌를 든 해적들도 배치한 상태였다.

그러나 1분도 안 되는 그 짧은 시간에 우리를 밀어내려던 해적들의 절반쯤은 바닥에 누웠고, 나머지는 공포에 휩싸여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쇠뇌를 들고 대기하던 해적들도 눈과 귀가 있는데 그 상황을 모를 리가 없었다.

첫 쿼럴이 발사되기는 했다.

하지만 발사되는 타이밍도 그렇고 방향도 엉망진창이라 2번 함선에게 큰 피해를 주지는 못했다.

선원 한 명이 맞은 것 같은데, 치명적이지는 않아 보였다.

그리고 두 번째 쿼럴은 심지어 발사되지도 못했다.

“네 이놈! 그만 까불어라, 건방을 떨어대는 네 놈의 사지를 잘게… 아악, 크르륵!”

아마 갑판장이나 해적 선장쯤 되는 것 같은 거구의 사내가 소리를 지르며 네이선에게 달려들었는데, 첫 번째 칼질을 막다가 오른팔이 위로 들리며 휘청거렸고, 두 번째 칼질에 가슴을 사선으로 베였다.

그리고 하던 말을 마치지도 못한 채 세 번째 칼질에 목이 베였다.

거구의 남자가 눈 깜짝할 사이에 치명상을 입고 쓰러지자 해적들의 혼란은 더 커졌다.

쿼럴을 재장전해야 할 쇠뇌수들은 쇠뇌를 내팽개치고 칼을 잡았다.

바로 뒤에서 동료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고 있는데 복잡하고 어려운 쇠뇌의 재장전을 할 수 있다면 그게 인간인가? 기계지.

***

2번 함선의 선원들이 함성을 지르며 돌격하는 시점에서 이미 전투는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30여 명쯤 남은 해적들은 바다로 뛰어들거나 선실 안으로 도망치고 있었고, 용병들은 단단한 진형을 이룬 채 배 위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었다.

네이선은 학살을 멈추고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사실 저렇게 흩어지면 아무리 작은 배라도 수색이 쉽지 않다.

500톤도 안 된다고 무시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격실(칸으로 나뉜 배의 구역)이 100개는 넘을 거다.

그중 많은 격실은 사람이 들어가서 생활하는 공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곳에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것은 아니니까 배를 수색하는 것은 참 지난한 일이다.

물론 천천히 차근차근 진행하면 피해 없이 배를 나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투가 한창인 지금 상황에서 저 배를 나포하겠다고 나서면 진짜 돈에 미친놈인 거지.

“일등항해사, 지금 포갑판으로 가서 포술장과 포대 인원들 데리고 건너가서 해적선을 자침시켜. 용병들은 먼저 퇴거시키고 호위는 돌격대에게 맡겨. 아 참, 단정들은 모두 파괴해.”

“으음, 알겠습니다.”

소소한 전투가 아니라 전쟁 상황이다.

적의 병력과 물자를 아군이 취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대부분 그게 쉽지가 않기 때문에 ‘파괴’하는 것을 우선으로 해야만 했다.

“삼등항해사, 지금 2번 함선에 신호 보내. 해적선 자침시킬 테니 인원 퇴거시키라고.”

“알겠습니다!”

***

빠르게 가라앉기 시작하는 해적선을 두고 우리는 방향을 돌렸다.

이상을 눈치챈 해적들이 갑판으로 올라와 아우성을 쳤지만, 어차피 항복을 해도 교수형을 당할 놈들이다.

나머지 해적선 역시 아군의 3, 4번 함선 사이에 샌드위치가 되어 탈탈 털리는 중이었다.

아무리 해적들이 선원들보다 백병전에 능하다지만, 지금 내가 이끄는 함선들은 보통 상선이 아니라 용병함대에 소속된 반(半)해적(?)들이었다.

같은 머릿수라고 해도 해적들이 이긴다고 확신하지 못하는데, 두 배의 병력에게 앞뒤로 공격당하니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3번, 4번 함선에 신호, 해적선 정리되면 자침시키고 따르라고 해.”

“알겠습니다.”

다시 속도를 내기 시작한 오트라스와 2번 함선은 동쪽으로 침로를 잡았다.

이쪽의 상황을 눈치챘는지 풀 세일로 달려오던 네 척의 해적선이 살짝 느려진 것처럼 보였다.

그 사이에 풍향이나 풍속이 크게 바뀌지는 않았으니까….

아마 보이지 않게 미즌 마스트 쪽 돛을 몇 개 접었거나, 방향을 조금 틀어서 바람을 흘리는 중이겠지.

그리고 그러는 이유는 딱 하나다.

“새끼들, 쫄았네. 우리는 풀 세일이다. 2번 함선에 전달해!”

내 말에 오펜이 살짝 주저하며 조언했다.

“하지만 선장님, 우리는 아직 두 척에 불과합니다. 방금 전의 상황이 반대로 펼쳐질 수 있습니다.”

“오펜, 이성적으로 냉철하게 따지면 그렇겠지. 그런데 저놈들은 해적이야. 조직력이 모래알 수준인 우리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은 놈들이라고.”

해적들은 피해를 입는 것을 싫어한다.

2:4니까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접근하는 사이에 4:4가 되면?

혹시라도 다른 녀석들이 머뭇거리는 사이에 우리만 저들에게 끼어서 주요 타겟이 되어 버리면?

해적들이 과연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그래도 우리 의용 함대는 무모한 명령만 아니면 명령에 일단 복종하는 편이고, 이익을 포기하라는 자침 명령에도 토를 달지 않았다.

하지만 해적들은 과연 그런 명령이 통하기나 할까?

아니, 애초에 상하관계가 명확하기나 하겠어?

예상대로였다.

이쪽에서 풀 세일로 돛을 펼치며 당당하게 접근하자, 가장 멀리 있던 배가 슬그머니 방향을 돌렸다.

그리고 그걸 확인한 두 척이 방향을 돌렸고, 기다렸다는 듯이 나머지 한 척도 방향을 돌렸다.

“선장님… 정말 선장님이 말씀하신 대로…!”

“저놈들은 이제 전투에 못 나와. 침몰한 거나 마찬가지지.”

“네?”

“지금의 행동을 다시 해적 연합에게 가서 어떻게 설명하겠어? 전투 중 이탈? 포격은커녕 피 한 방울 튀지 않은 게 뻔히 보이는데?”

“아….”

감탄사를 터뜨리는 오펜에게 슬쩍 웃어준 나는 조타수에게 말했다.

“조타수, 좌현 전타! 지원 함대를 도와주러 간다. 우리를 도우러 왔는데 처맞도록 놔둘 수는 없지.”

“알겠습니다! 좌현 전타!”

조타수가 복명복창 후 타륜을 돌리는 것을 확인한 나는 그레이그에게 말했다.

“후열에 신호, 전 함선은 오트라스의 뒤를 따른다.”

3, 4번 함선에게 털리던 해적선도 이제 몸체를 반쯤 바다에 넣은 상태였다.

그런데 이미 아련하게 울리던 포성이 멎은 저쪽(지원 함대)의 상황이 계속 신경이 쓰인다.

급한 대로 세 척을 먼저 보내기는 했지만, 상황이 아주 불리해진 상태였다면 그 정도는 언 발에 오줌 누기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게 짧다면 짧을 첫 전투가 끝났다.

아군 7척, 적 7척의 동수로 붙어서 적선 3척을 완파, 침몰시켰고, 4척은 도주했다.

아군의 피해는 아직 집계되지 않았지만, 선박 피해는 전무, 오트라스 호의 인명 피해는 선원 부상 1명, 용병 사망 2명, 중상 1명, 부상 9명이었다.

선장이라는 타이틀을 단 이후로 직접 손에 피를 묻히지 않은 첫 전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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