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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흙수저 선원으로 살아남기-269화 (270/420)

269화. 얄궂은 인연

“자세하게 말해봐. 아인델프.”

“으음, 처음에는 다른 배들과 같은 포탄을 사용한 것 같습니다. 물론 빗나가서 그랬을지도 모릅니다만….”

“맞았을 때 현상만.”

내가 단호하게 중요한 이야기만 하라고 말을 끊자, 아인델프가 약간 당황하며 말을 이었다.

“처음에는 거대한 화염밖에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생각만큼 피해는 크지 않더군요. 선원 몇 명이 폭발에 날아가고, 또 몇 명은 화염으로 화상을 입은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대규모 화재로 이어지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계속해.”

“그 뒤로 몇 번의 포격을 보니, 배 한 척에서만 그런 포탄을 쓰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한 번은 아군 함선의 어디를 때렸는지 마스트에 불이 옮겨붙더군요. 마스트에 불이 옮겨붙은 배는 단번에 기동력을 상실해서 곧 반파 당했습니다.”

흐음, 네이선과 우르타의 말대로 예전에 제국에서 개발 중이라던 마력포탄과 완전히 흡사하기는 하다.

그런데 그거 비용도 어마어마한데다가 대포 내구성에도 치명적이던데?

“들어보니 위력은 어떨지 몰라도 심리적인 압박감이 상당했을 것 같은데?”

“물론입니다. 덕분에 대열이 엉망이 되어서 피해가 커진 부분도 있습니다.”

“흐음, 그런데 고작 이 정도 피해라고?”

“그 이상한 포탄을 쏘아대던 배가 곧 침몰했으니까요. 돛을 태우고 두어 번 정도 포를 더 쏜 것 같은데, 잠시 후에 엄청난 화염에 휩싸이면서 폭발하더군요. 아마 피격을 당하면서 화약고에 불이 붙었던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만….”

“터졌군….”

“네?”

“아니야, 이 상황을 누가 알고 있지?”

“누구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전투에 참가한 사람치고 두 눈이 달린 사람은 거의 다 봤을 겁니다. 오히려 선장님이 참가하신 회의에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은 게 더 이상한데요?”

그러게 말이다.

왜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

충분히 중요한 내용인 것 같은데?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제국의 개입이었다.

해군력은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그래도 몰로스 제국이 일레드 왕국과 군사동맹을 맺었다면 진짜 심각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인델프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몰로스 제국이 수년 전에 테일러라는 인물을 통해 이미 진행했던 테스트를 굳이 다시 할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굳이 가능성을 제기한다면 일레드 왕국에서도 동일한 포탄을 개발 중이었거나 제국으로부터 포탄 관련 제작 기밀을 빼돌려 개발한 것이겠지.

그리고 시제품을 실전에서 테스트해보기 위해서 해적에게 주었다면….

뭔가 좀 어색한 부분이 있는데, 대충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테일러가 테스트할 때보다 전혀 나아지지 않은 포탄의 성능과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추측되는 부작용이 설명되지 않으니까.

어찌 되었건 지금 당장은 괜찮다.

만약 포탄이 더 있다고 해도 가격을 떠나서 부작용 때문에 현재 대포로는 제대로 활용하기도 힘들고, 위력도 그리 대단하지 않다.

하지만 조만간 쓸만한 화염탄, 혹은 작렬탄이 개발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아마 해전의 양상이 꽤나 바뀌게 되겠지.

오히려 중요한 것은 이 이야기를 왜 회의 시간에 제대로 하지 않았냐는 것인데….

이건 내일 천천히 알아봐야겠군.

“아인델프 선장, 선체 피해는 어때?”

“수리에는 이틀 정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자재는 충분하지만, 수리를 위한 시설이 전혀 없으니까요. 그래도 피오렐은 하부 쪽에는 큰 이상이 없어서 수리가 가능하지만 하부에 물이 들어찬 몇 선박은 수리 불가 판정이 나온 모양입니다.”

“후우, 나도 초전에 이렇게까지 피해가 클 줄은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어쩔 수 없지.”

내 눈치를 보던 아인델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앞으로 어떻게 되겠습니까? 혹시 철수하는 겁니까?”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알센더트가? 그럴 리가. 지금 여기서 싸우다 죽으나 철수하나 그에게는 똑같은 결과만 기다릴 뿐이야. 이만한 전투에서 졸전을 펼친 그가 계속 용병함대를 유지할 수도 없고, 설혹 유지한다고 해도 스코타 후작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현재 아군 전력이 너무 엉망이지 않습니까?”

“지원을 요청해야지. 최소한 손실된 인원을 충원하고 이곳에 임시 수리라도 가능할 정도의 시설을 만들어야 해.”

내 말에 네이선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말했다.

“인원을 충원하는 것도 문제지만 시설까지? 해적 놈들이 그때까지 손가락만 빨면서 보고 있을까?”

“놈들도 꽤 놀랐을 거야. 그쪽이라고 피해가 적은 것은 아니니까. 게다가 그들의 계획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어그러졌어. 이 정도면 분란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지. 아마 당분간은 사태를 관망할 확률이 높아.”

“언제까지?”

“당분간. 물론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서 떠난 선단이 돌아오기 전에는 어떤 식으로든 행동을 취하겠지.”

“그것을 버텨내는 것이 관건이겠군요.”

아마 본대를 기습한 해적 놈들도 꽤 당황했을 것이다.

시작부터 확인된 본대의 규모가 보고받은 것보다 적었으니, 나머지가 어디에 갔는지 모르는 놈들은 일단 불안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특수한 신무기나 전략 무기 정도로 생각한 신형포탄을 쏘아대던 녀석이 몇 발 쏴보지도 못하고 침몰당했다.

심지어 자신들이 포격과 원거리 공격으로 시선을 끄는 사이에 뒤쪽에서 백병전을 준비한 부대가 결정타를 날려야 하는데 웬걸,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내가 이끄는 다섯 척의 배가 튀어나왔으니 놀랄 만도 하지.

단일화된 강력한 명령체계가 없다면 이 상황은 충분히 문제가 된다.

연합이라는 것이 늘 그렇다.

이렇게 피해가 심하면 누군가는 더 큰 피해를, 누군가는 상대적으로 작은 피해를 입게 되고 이는 늘 분란의 씨앗이 된다.

게다가 자신들의 회심의 전략이 결과적으로 완전히 파훼 당했으니 배신론이나 첩자론이 불거질 가능성도 있었다.

당장 이쪽만 해도 문제가 좀 많잖아?

“혹시 생각해두신 것이 있으십니까?”

“완벽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는. 딱 한 번만 버티면 저놈들도 함부로 날뛰지 못할 거고, 행동까지 시간이 필요할 테니 최대한 많은 준비를 해야겠지. 지상이나 해상이나 준비만 한다면 늘 방어가 공격보다 유리한 것은 진리니까.”

그때 우르타가 갑자기 박수를 치며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그럼 우리 좀 쉬자. 우리 선장님에게 쉴 시간을 줘야지!”

어쭈? 웬일로 그런 기특한 생각을?

“우르타 말이 맞아. 지금 이렇게 이야기한다고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도 아니니까 일단 좀 쉬자고. 내일부터는 힘든 일정이 기다릴 거야.”

“알겠습니다, 제독.”

***

“리안 제독 아니십니까?”

“??”

아침 식사가 끝나기 무섭게 알센더트의 호출이 와서 걸어가던 중인데, 한 남자가 친근하게 인사를 하며 접근했다.

이마에 패인 굵은 주름과 뱃사람치고 말끔한 복장이 인상적인 40대 남자였다.

복장으로 볼 때 어떤 배의 선장으로 보이는데, 낯이 익숙하지 않으니 선단장이나 용병함대장은 아닌 모양이다.

그런데 나에게 제독이라고?

지금 의용 2함대에서 제독 소리를 듣는 사람은 알센더트 뿐이다.

나머지야 내부에서 자기들끼리는 제독이라고 부를지는 몰라도 다른 소속의 인물이 제독이라고 불러주는 경우는 없었다.

특히나 용병함대 놈들이 상선을 무시하는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라서 선단장이라고 불러주는 사람조차 드물고 대부분 선장이라고 부르는 판이다.

“아, 제가 리안은 맞습니다만.”

내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대답하자, 그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베기어라고 합니다. 제독이 지휘하는 분함대의 5번함을 맡았던 드라이언 함의 함장입니다.”

“아아…!”

5번함이면 마지막까지 나를 따라온 네 척 중 한 척이다.

“어제는 끝까지 믿고 따라줘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회의 때 멀리서 뵌 적이 있습니다. 물론 제독께서는 기억하지 못하시겠지만 말이죠. 유난히 젊고 자신만만했던 분이라 기억에 남았습니다.”

“하하하,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로? 아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지금은 좀 바빠서요.”

“수뇌부 회의에 소집되신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냥 인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어제의 지휘가 매우 인상 깊어서 말이죠. 저는 개인적으로 제독 덕분에 우리가 살아있다고 생각합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민망하게 아침부터 왜 이렇게 내 얼굴에 금칠을 하시는 거야?

그래도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정신 제대로 틀어박힌 인간이라면 내 덕에 살아남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이니까.

“다 같이 용감하게 맞선 덕분이죠. 저야말로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적당히 말을 마무리하고 발걸음을 재게 옮기는데 용건이 끝난 것 같던 베기어가 나를 따라 걸으며 말꼬리를 이었다.

“하실 말씀이라도?”

“우리 제독이 무례를 저질렀다고 들었습니다.”

“제독이라면, 설마….”

“네, 바냐도르 제독이 이끄는 크록커스 용병함대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보며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하필이면 그 대머리 멍청이가 이끄는 함대 소속이라니.

“바냐도르 제독의 의견은 그의 개인적인 의견이라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크록커스 용병함대는 그의 개인함대가 아니니까요.”

“음, 알겠습니다. 베기어 함장님. 그럼 전 이만.”

***

“그러니까 퇴각하자는 말이잖소!”

“지금 퇴각하면 뒷감당은 할 자신 있고?!”

“고작 해적에게 한 대 맞고 꼬리를 말자는 거야?!”

“그 해적에게 영혼까지 털린 놈이 누군데?”

“놈? 노옴?! 말 다 했어?!”

“네 놈이 먼저 반말했잖아!”

어우야, 막사 밖에서부터 시끌시끌하더니 안에 들어가자 헬게이트가 열린 기분이었다.

분명히 어젯밤만 해도 퇴각론이 절대다수였던 것 같은데, 밤이 지나니 퇴각론이 힘을 많이 잃은 모양이다.

테이블 위는 이미 엉망진창이었고, 침을 튀기어가며 삿대질하는 사람은 상당히 점잖은 축에 속할 정도로 난장판이었다.

애초에 함대장이니 선단장이니 해도 무식한 뱃놈 혹은 용병 놈, 혹은 그 중간의 어딘가라는 사실은 변할 리가 없으니 우아하고 이성적인 회의가 될 턱이 없다.

“아침부터 패싸움하자고 부르신 겁니까?”

자기들만의 세계에 빠진 사람들을 요령 있게 피해 알센더트에게 다가간 나는 살짝 빈정거렸다.

알센더트도 이미 포기한 것인지 관자놀이를 누르며 테이블에 팔꿈치를 기대고 있었다.

“늦었군.”

“그걸 지적하시기에는 지금 상황이 적당하지 않군요.”

“후우, 모두 조용!”

어우 씨, 깜짝이야.

사람이 옆에 있는데 왜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지랄이람?

쩌렁쩌렁한 알센더트의 노호성이 터지자 장내는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그러나 그 침묵은 고작 3초짜리에 불과했다.

“제독, 어떻게….”

“제독! 퇴각은 안 됩니다!”

“제독….”

두 손을 살짝 들며 중구난방으로 떠들어대는 삐약이들을 다시 진정시킨 알센더트가 말을 했다.

“의용 2함대 사령관으로서 명령한다. 퇴각은 없다. 지원을 얻어 낼 방법과 방어….”

“제독! 그러다가 우리… 커억!”

함대장중의 한 사람이 불만스럽게 알센더트의 말을 끊다가 배에 나무로 된 잔을 얻어맞고는 배를 움켜쥐며 뒤로 넘어갔다.

“다들 대가리만 하다 보니 감을 잃은 건가? 내 명령에 따르기 싫다면 지금 당장 떠나면 돼. 물론 앞으로 바다로 기어 나올 생각은 하지 말아야겠지만.”

“…….”

바닥에 쓰러졌던 남자가 끙끙대며 다시 일어나 알센더트를 노려보았지만, 그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말을 이었다.

“가장 효과적인 지원 요청 방법과 지원이 올 때까지 현 위치를 사수할 방법에 대해서만 이야기해.”

“수송함 다섯 척과 피해가 큰 전투함들을 보내시죠.”

“미쳤나? 전력을 그렇게 빼면 해적 놈들을 어떻게 막아?”

“피해가 큰 전투함들이 무슨 전력이 된다고 헛소리를 하는 거야?”

“한 척만 보냅시다. 지원이야 거기에 있는 다른 배들을 징발해서 가지고 오면 될 일 아뇨?”

“한 척?! 무슨 일이 생길 줄 알고?!”

“그래, 한 척은 심하군. 한 세 척은 보내야 하지 않겠소?”

개판이군.

내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다시 시작된 개싸움을 구경하는데, 옆에서 따끔거리는 시선이 느껴졌다.

“생각이 있군.”

알센더트였다.

“무슨 말씀이신지….”

“자네가 아니더라도 지금 내 인내심은 바닥이야. 준비한 게 있으면 빨리 털어놔.”

“지금 털어놓을 상황이 아닌 것 같은데요?”

나는 눈짓으로 다시 삿대질을 시작한 원숭이들을 가리켰다.

“모두 조용, 좀 조용해!”

다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여기 리안 선장은 스코타 후작 각하로부터 그 뛰어난 식견을 인정받은 자다. 젊은 나이에 승승장구하는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말이지. 리안 선장이 밤새워서 준비한 계획이 있다니 일단 들어보지.”

후작에게 인정을 받은 것도 아니고 밤을 새운 것도 아닌데?

역시 어떤 단체의 수장이 되려면 거짓말을 잘하는 것은 패시브 능력으로 갖추어야 하는 건가?

***

“그렇게 하면 방어가 가능하기는 하겠소?”

“솔직히 나는 신뢰가 안 가는데….”

“적어도 네놈이 말한 방법보다는 낫지.”

“뭐?! 이 자가 아까부터!”

“만약 적이 다른 방법을 사용한다면 다 무용지물 아니오? 오히려 선원들의 피로도만 늘리고 함선의 무장만 약해지는 꼴이 아닐지.”

“수송대도 마찬가지요. 선장의 말대로 하면 서너 척의 해적선이 기습해도 수송대는 전멸이오.”

내 설명이 끝나자 여기저기에서 불만과 의문이 터져 나왔다.

알센더트도 반신반의하는 표정이다.

어차피 알센더트만 설득하면 뭐….

“제독, 우리의 전력이 해적 연합보다 약하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숨겨놓은 비장의 한 수가 없다면 함대 간 정면 대결은 아군의 필패죠. 그렇다면 이미 부족한 전력을 제외한 나머지를 최대한 강화해서 싸워야 합니다.”

“으음… 하지만 지원을 요청하는 것도 그렇네. 하필이면 론 항구란 말인가. 차라리 스코타 후작의….”

나는 얼른 그에게 귓속말을 건넸다.

“어제 한 이야기를 잊으셨습니까?”

“으음….”

나는 침음성을 삼키는 그에게 말하는 척 다른 사람들이 들리도록 크게 이야기했다.

“이번 일을 주도한 스코타 후작은 이미 많은 재원을 사용했습니다. 게다가 근거지인 델라 항구는 용병들까지 우리가 싹 쓸어왔죠. 우리가 떠나면서 남은 용병들도 다 흩어졌을 테니 사람을 모으려면 한세월이 걸릴 겁니다. 무엇보다도, 론 항구보다 델라 항구가 더 멀다는 것은 확실하지 않습니까?”

“이봐, 리안 선장. 하지만 론 항구도 얼마 전까지 벨로키나 왕국과 쿠샤 왕국의 함대가 전투를 준비하며 주둔하던 곳일세. 그곳이라고 선원들이 남아 있을까?”

누군가가 약간 회의적인 표정으로 물었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막힘없이 대답을 했다.

“론 항구는 명실공히 대륙 최고의 교역항입니다. 비록 한동안 해군이 행패를 부렸더라도, 그 스케일이 어디 가지는 않을 겁니다. 세상의 모든 상선이 징집된 것이 아닌 이상, 지금쯤이면 꽤 많은 상선이 모여들 것이고, 일자리를 찾는 선원들도 상당할 겁니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른 자가 질문을 던졌다.

“문제는 거기까지 가는 것도 일이지 않나. 선장의 말대로면 호위함 없이 수송선들로만, 그것도 최소인원만으로 가자는 건데, 해적을 만나기라도 하면 그대로 끝장일세.”

“무슨 해적이요?”

“뭐?”

“이 근방에서 활동할만한 해적은 이 제도 안에 다 모여 있고, 다른 해적들도 당분간은 몸을 사릴 겁니다. 그런데 무려 8척짜리 선단을 공격한다구요? 그것도 아무런 준비도 없이?”

“으음….”

사실 그렇잖아.

여기에서 상선단이 출발한다는 것은 외부인이 알 수가 없다.

유일하게 알 수 있는 녀석들은 이 제도에 모인 해적 연합 놈들인데, 설마 저 수송선들을 잡자고 전력을 쪼개지는 못 할 거다.

다른 해적들?

애초에 지금처럼 살벌한 시국에 배짱 좋게 영업하려는 해적이 많지도 않겠지만, 만약 있다고 해도 8척짜리 수송선단은 너무 부담스러울 것이 뻔하다.

평시라고 해도 항해계획이나 선원 수 등의 정보를 수집한 후에 치밀한 계획을 세워서 공격해야 할 먹이를 즉흥적으로 공격한다?

세상에 그런 멍청한 해적은 없다.

그리고 원래 배라는 것이 멀리서 보면 몇 명이나 타고 있는지 알기 어려운 법.

8척을 공격하려면 최소한 동수의 해적선을 동원해야 하는 것이 이 세상의 상식이니, 지원을 요청하러 가는 8척짜리 수송선단이 공격당할 확률은 아마 한없이 0%에 수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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