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3화. 죽음이 유예된 자들
우리가 가까이 다가가니 해협 입구에서 천천히 선회하고 있는 세 척의 선박이 보였다.
신호기를 주고받을 거리가 되자 저쪽에서 먼저 메시지를 보냈다.
“잉그라 함에서 신호입니다. 해협 진입 불가.”
당연한 말이다.
만약에 진입이라도 했다가는 우리가 만든 함정에 우리가 걸리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었으니까.
보안 때문에 해협에 설치한 함정에 대해서는 설치에 참여한 당사자들 외에는 함구했다.
그래서 아군조차 대부분 모르고 있다 보니 경계망을 만들 때도 문제가 좀 있었다.
크게 보면 우리가 거점으로 만드는 지점은 남쪽, 서쪽, 북쪽이 열려있다.
물론 크게 우회한 적이 섬의 동쪽으로 상륙해서 육상으로 공격한다는 발상이 가능하기는 하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이 낮은 모든 부분을 다 대응하기에는 가용 자원이 너무 부족하다.
특히 섬의 동쪽은 상륙하기에 적당한 지점도 없고, 어렵게 상륙한다고 해도 길도 없는 산을 최소한 이틀 이상 걸어야 우리 주둔지에 도착할 수 있다.
애초에 행군이라는 개념조차 없는 해적들에게 그런 일이 가능할 리가 없잖아.
그래도 산 위에 초소 하나를 세워 놓기는 했는데, 그곳에서 경계를 섰던 선원들 말을 들어보니 그냥 하품만 하다가 왔다고 한다.
서쪽의 진입로는 내가 통과했던, 그리고 함정을 설치한 곳이다.
알센더트가 경계 대상에서 이곳을 제외하자 다른 선장과 함장들이 바로 반론을 제기했다.
당장 내가 통과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증명했고, 그 사실을 해적들도 알고 있을 테니 당연히 경계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었으니 딱히 반론을 제기하기도 힘들었다.
먼저 내가 한 번에 다수의 선박이 진입하기 어렵다는 것을 주장했다.
함께 통과했던 베기어 함장도 내 말에 동의를 표했다.
그리고 알센더트는 적이 포착되면 반대쪽 경계 함대가 두 곳을 함께 감시하면 된다는 논리를 펼쳤다.
세 곳을 모두 틀어막으려면 쉴 시간이 부족해지거나 경계함대 전력을 줄여야 하는데, 그게 더 위험하다는 논리는 그럴듯하게 들리기는 했다.
어찌 되었건 우리와 몇 번 신호를 주고 받은 잉그라와 다른 한 척은 다시 남쪽 경계 함대로 복귀하기로 결정했고, 우리와 피오렐이 해협 입구에 남게 되었다.
잉그라의 함장이 누군지는 몰라도 꽤 센스가 있는 사람인 것 같다.
***
“어후, 잉그라 함장이 피오렐만 남기고 간 이유가 있었군요.”
해협 입구에 도착해서 상황을 살피던 그레이그가 피식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나 역시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저들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준비한 함정에 적이 걸려줬을 때의 쾌감이 내 온몸의 세포를 일깨우는 기분이 들었다.
해협의 중간쯤 되는 물살이 빠르고 폭이 좁은 곳.
내가 특별히 공을 많이 들인 모래톱에 700톤 정도 되어 보이는 갤리선이 비스듬하게 서 있었다.
선수 쪽이 살짝 들린 것을 보니 바닥을 보지 않아도 뻔했다.
모래톱 위에 완전히 얹혀있겠지.
자루에 담은 흙과 바위가 가장 많았지만, 망가진 대포나 금속제 선박 구조물도 꽤 많이 던져 넣었으니, 어쩌면 하부가 손상되어 아예 접근도 못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저렇게 되면 어떤 배도 자력으로 탈출은 불가능했다.
해협이라고 해도 무슨 동네 강줄기 수준으로 좁은 것은 아닌지라, 아무리 중간에 좌초한 배가 있다고 해도 한 척 정도가 더 지날 수 있는 공간이 나오기는 했다.
그런데 방금 좌초되어 훈련용 표적이 되어버린 아군을 보고 그 옆을 지날 수 있는 배짱이 있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솔직히 그런 일은 나도 못 한다.
심지어 그 뒤에는 적 함선 두 척이 나란히 서서 포를 겨누고 있으니, 죄다 도망가지 않은 것만 해도 충분히 칭찬할 일이다.
아, 그렇다고 아무도 도망가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고, 대부분 진작 선수를 돌려 멀어지는 중인데 두 척만이 근처를 얼쩡거리고 있었다.
좌초된 해적선이라고 손 놓고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든 움직이려고 지금도 노를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고, 갑판 위도 아주 부산스러웠다.
우리가 버티고 있는 것이 뻔히 보임에도 불구하고 단정까지 내려서 뭔가를 해보려고 아주 난리가 아니다.
심지어 후방에서는 얼쩡거리던 갤리선 두 척이 슬금슬금 다가오고 있었다.
좌초된 배를 끌어낼 생각인 모양인데….
“우리가 보이지도 않는 모양입니다.”
“이왕이면 포를 안 쏘고 항복을 받아주려고 했는데.”
좌초된 해적선은 반항할 방법도, 도주할 방법도 없으니 우리가 죽음을 선고하지 않는다면 자살하거나 항복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거점 건설에 바쁜 지금, 적어도 200명은 타고 있을 갤리선의 포로는 굉장히 유용하다.
가능하다면 뒤에서 접근 중인 두 척의 갤리선도 해치우고 싶기는 한데, 아직 거리가 조금 애매하다.
“잠깐 기다려봐.”
“네?”
피오렐과 포갑판에 포격을 지시하려고 전령을 불렀던 그레이그가 의문에 찬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저놈들은 어차피 자력으로 탈출이 불가능하잖아. 수영 잘하는 놈이라면 섬으로 도망갈 수도 있겠지만 뭐….”
사람도 없고, 배도 없고, 음식도 없고, 수원(水原)도 없는 작은 섬에 맨몸으로 혼자 들어가서 며칠이나 살겠어?
해협 양쪽의 섬에 제대로 된 수원이 없다는 것은 이미 탐색을 한다고 이 근처 섬은 다 훑어본 우리가 더 잘 안다.
그렇게 오트라스와 피오렐이 공격을 하지 않고 기다리자 갤리선 두 척이 좌초된 해적선의 근처까지 다가왔다.
망원경으로 살펴보니 좌초된 배의 선수에서 이쪽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 녀석도 보인다.
“웃기는 놈들일세. 일등항해사, 피오렐에 신호. 타겟은 좌초된 적함에 접근 중인 갤리선 중 왼쪽, 그리고 우리는 오른쪽을 공격한다. 적이 침몰하거나 백기가 올라 올 때까지 쏴버려.”
“으하하하, 역시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해적 따위를 내가 용서할 리가 없잖아?
***
좌초된 해적선에 근접해서 자기들끼리 신호를 주고받던 두 해적선은 패닉에 빠졌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우리가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여간 좌초된 배가 있는 곳보다는 조금 넓지만 그렇지 않아도 좁은 해협에 배 두 척이 들어왔으니, 배를 돌리기도 영 쉽지가 않았다.
갤리선은 노를 젓는 만큼 선회반경이나 선회속도가 범선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빠르지만, 그래도 배였다.
공격을 받는다고 바로 후진해서 빠져나간다든가, 방향을 180도 돌려서 튈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게 긴장감이라고는 전혀 없는 포격전이 이어졌다.
두 번째 포격부터 나오기 시작한 명중탄은 매 사격마다 쉬지 않고 나왔고, 가장 먼저 좌초된 해적선이 백기를 올렸다.
일부러 맞추려고 한 것은 아닌데, 포격 경로상에 있다 보니 자꾸 얻어맞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좌초된 해적선이 백기를 올렸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나는 내가 보고 있음을 알면서도 일부러 보고하는 그레이그를 힐끗 보고는 무심하게 말했다.
“무시해.”
“네? 하지만….”
“일등항해사, 저놈들은 해적이고 우리는 아직 적을 제압하지 못했어. 그런데 고작 항복하는 적 때문에 남은 적과의 교전을 포기해야 하나?”
교전(交戰, 서로 싸움)이라고 말하자니 너무 일방적이라서 조금 민망했지만, 내 단호한 태도를 본 그레이그는 바로 물러섰다.
그리고 해적선에서 조그맣게 들리는 비명 소리를 배경 삼아 우리의 일방적인 포격이 계속되었다.
얼마 후, 오른쪽으로 접근하던 해적선이 피오렐에게 얻어맞으며 무리한 방향 전환을 시도하다가 사고를 냈다.
꾸우우웅!
둔중한 굉음이 여기까지 들려왔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균형을 잃고 기울어진 해적선이 눈에 들어왔다.
이번에는 처음 좌초된 해적선보다 심했다.
측면을 이쪽에 그대로 보여주고 있으니, 갑자기 배를 드러낸 채 애교를 부리는 리아가 생각….
크흠, 하여간 이후로 딱 한 번의 포격을 더 받은 그 해적선은 부랴부랴 백기를 올렸다.
그리고 우리가 담당(?)했던 해적선의 운명도 딱히 좋지는 않았다.
두 번째 해적선에 백기가 오르기 무섭게 피오렐까지 화력을 집중하자, 그렇지 않아도 엉망이던 배가 삽시간에 걸레 조각처럼 변했다.
“어우야, 저 안에 난리 났겠다.”
내가 눈살을 찌푸리며 얼른 망원경을 눈에서 떼자, 그레이그 역시 혀를 차며 망원경을 내렸다.
“쯧쯧, 노가 적어도 열 개는 부러진 것 같습니다. 최소한 20명은 죽였군요.”
“고작 그것만 죽었겠어?”
“크흠.”
갤리선에서 사용하는 노는 성인 남자도 들기 힘든 상당한 크기와 무게를 가진 구조물이다.
반을 물속에 집어넣고 움직이는데도 보통 성인 남자 둘을 붙일 정도니 말 다 했지.
그런데 그 노가 단번에 열 개쯤 부러진 것이다.
안쪽이 어떻게 되었겠어?
물론 노가 부러지거나 노잡이가 죽는 것을 대비해 예비 노나, 예비 노잡이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처럼 포격을 오지게 처맞는 상황에서 여유 있게 열 개쯤 되는 노를 교체하고, 새 노잡이를 자리 잡게 할 시간이 있을 리가 없었다.
치열한 포화를 뒤집어쓰며 거의 배를 돌리는 데 성공했던 마지막 해적선.
끈질기게 버티던 그 녀석도 오트라스에서 발사한 포탄 하나가 우현의 노를 절반쯤 부러뜨리자 결국 백기를 올렸다.
항복을 해도 대부분 사형을 당하기 때문에 패전이 확실해도 웬만하면 항복하지 않는 해적선을 무려 세 척이나 항복시킨 역사적인 날이었다.
무엇보다 기쁜 것은, 건장한 노예가 한 400명쯤 생기게 되어 선원들과 용병들의 주요 불만 사항인 삽질을 좀 줄여줄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다.
***
점심을 먹기 전에 시작해서 해가 기울기도 전에 끝난 2차전은 완벽에 가까운 아군의 대승이었다.
해적 연합 소속 범선 2척, 갤리선 2척이 전투 중, 혹은 사후 조치로 침몰했고, 반파 당해 나포당한 범선이 3척, 갤리선이 1척이었다.
도주에는 성공했지만 당장 전선 복귀가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진 것으로 보이는 선박도 3척쯤 된다고 했으며, 해협에서는 갤리선 3척이 항복했다.
그에 반해 아군은 해적 연합보다 확실히 부족한 전력으로 상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량이 완파 1척, 반파 2척에 불과했다.
오늘 몰려온 전력이 해적 연합의 모든 전력이었다면, 이제 해적 연합에 남은 선박은 범선과 갤리선이 각각 10척 정도에 불과했다.
아군은 이제 21척이 남았으니, 전력이 비슷하거나 우리가 약간 우세한 상황이 된 것이다.
모두의 보고를 바탕으로 결과를 정리하자 회의실에 처음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눈만 마주치면 욕은 아니지만 욕에 한없이 가까운 말투로 상호 간의 우정을 확인하고, 상대방 말을 듣기도 전에 반대를 외치던 바다의 용사들이 모두 사라졌다.
지금 회의실을 차지한 사람들은 서로를 향해 덕담을 하고, 수고했다는 치하를 아낌없이 날리며, 겸손과 칭찬을 윗니와 아랫니에 장착하고 숨을 내뱉는, 소위 교양 있다는 정치인, 상인, 사기꾼 뭐 그런 종류의 인간들 같았다.
“으하하하하!”
“허허허허!”
다들 자기가 가장 호탕한 웃음소리를 낼 수 있다고 자랑하는 듯한 끝없는 청각 고문을 30분쯤 당하다 보니 정신이 나갈 것 같다.
“선장님!”
나와 아인델프가 회의 장소를 나오자 인파를 헤치고 그레이그를 비롯한 다른 간부들이 다가왔다.
닥터도 보이고 새로 영입한 탈리스 일등항해사도 보인다.
“갑판장, 아니, 네이선 갑판장은? 우르타 포술장도 없네?”
피오렐의 모르아 갑판장이 대표로 대답했다.
“포로들 관리하는 곳에 있습니다. 우르타 포술장도 함께 있고, 다른 배의 간부들도 몇 명 있습니다.”
“아, 포로.”
더 이상의 공격은 없을 것이라는 판단에 의해 모든 배가 정박한 상태였다.
각 함선의 피해 상황을 확인하고 경계조를 다시 짜야 했으니 말이다.
그러면서 나포한 선박들도 끌고 오고 포로들도 끌고 왔는데, 여기저기에서 긁어모으니 포로의 수가 무려 422명에 달하는 터라 선원이나 용병들만 두어 관리할 수는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쪽은 내가 관리하기로 했어. 뭐, 임시지만.”
포로를 관리한다는 것은 꽤나 귀찮은 일이기도 하고, 배를 타지 못하니 이후의 행동에 대한 발언권도 줄어든다.
어차피 발언권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었지만, 이 정도면 노골적인 견제라고 봐도 무방할 지경이다.
“그럼 오트라스 호는 출항하지 않습니까?”
“나만 빼고 출항시키려고 하는 걸 겨우 막았어.”
“쯧, 심하군요.”
노골적으로 인상을 구기는 그레이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다독였다.
“사람 많은 데서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 일단 포로들 모아둔 곳으로 가지. 아, 아인델프 선장은 바로 움직이도록 해. 야간까지 고생이 많겠어.”
“아닙니다, 제독.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래, 아까 말했듯이 야간에 기습을 걸어 올 수도 있어. 해가 진 다음에는 긴장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탈리스, 바우어, 크리스티앙, 모르아, 발타, 클라톤. 모두 힘들겠지만 아인델프 선장을 잘 보좌해주면 좋겠어.”
내가 피오렐의 간부들에게 한 명씩 눈을 맞추며 이름을 부르자 모두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아무래도 같은 배에 있지 않은 간부들이다 보니 이렇게 기회가 될 때마다 눈도장을 자주 찍어 놓는 편이 좋다.
특히 거의 대부분 용병으로 채운 오트라스보다는 오래된 선원들을 몰아놓은 피오렐 쪽이 내게 더 중요한 전력인 지금은 더욱 그렇다.
***
주둔지 외곽의 공터에 죽상을 한 일단의 무리들이 모여 있었다.
손발이 굵은 줄로 묶여있는 포로들이었다.
이렇게 모아놓고 보니 정말 엄청나게 많구나.
처음에 포로를 잡아서 공사에 써먹자는 말을 했을 때 알센더트를 비롯한 다른 함장과 선장들이 대부분 반대했던 이유를 알겠다.
비록 우리가 장기전을 대비해서 식료품을 많이 가지고 왔고 적지 않은 인원을 전투로 잃었지만, 막상 포로를 모아놓고 보니 저놈들 먹이는 것이 덜컥 겁이 난다.
“선장님.”
나를 발견한 네이선과 우르타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서 살짝 고개를 숙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네이선이 살짝 고개를 숙이자 눈치를 보던 우르타가 얼른 따라 숙인 것이다.
아무래도 포로들은 물론 아직 다른 배의 인원들도 있다 보니 평소보다 더 깍듯하게 대하는 느낌이다.
“다 제대로 묶였는지 확인했어?”
“네, 혹시라도 숨겨놓은 무장이 있는지도 확실히 검사했습니다.”
“알다시피 이놈들이 탈출해서 소요사태라도 벌어지면 진짜 큰일이야. 절대 긴장 늦추지 마. 그리고 관리할 인원은 전부 오트라스에서 뽑아.”
내 말에 네이선이 더 설명해보라는 무언의 눈빛을 보냈다.
“후우, 포로 관리를 내가 맡기로 했어. 당분간 오트라스 호는 출항하지 않을 거야.”
알센더트가 내게 포로 관리를 맡기자 내가 바로 오트라스 호 전체 인원과 함께 관리하겠다고 말했으니 출항을 못 하게 된 것은 내 탓이다.
그런데 상황이 어쩔 수 없었다.
누구나 싫어할 만한 일이다 보니 나는 못 하겠다고 거절할 명분도 없었고, 괜히 모르는 놈들과 함께 관리하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일이니까.
막말로 누군가의 사주를 받은 다른 함선의 선원이 일부러 적당한 규모의 소요사태를 일으킬 수도 있잖아.
그렇게 되면 그 사태의 결과에 상관없이 나는 끝장나는 것이다.
포로를 잡자고 제안한 사람도 나, 최고 관리를 맡은 사람도 나.
이 정도 상황이면 내 사람(?)으로 가득 채워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것이 옳다.
***
다른 함선의 파견 인원을 모두 돌려보내고 가장 먼저 한 일은 포로들이 사용할 화장실을 만드는 것이었다.
원래 포로수용소부터 만들 생각이었지만, 포로들이 모여 있는 곳에 다가가니 인간의 분뇨에서 나오는 악취가 장난이 아니었다.
죽음이 확정되었으나 단지 우리의 필요에 의해 그 죽음의 시기가 유예된 자들이다.
그런 자들이 얌전한 학생들처럼 손들고 화장실 다녀오겠다고 말한다고 해서 화장실에 보내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다 보니 꼴이 아주 가관이었다.
손발이 묶인 채 힘없이 삽질하는 놈들을 보다가 뒤에서 대기하던 오펜을 불렀다.
“오펜, 일등항해사와 조리장에게 전달해. 오늘 저녁은 우리만 먹는다. 포로들은 물 한 바가지씩만 줘.”
“네?!”
내 말에 오펜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러더니 곧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서, 선장님, 저 사람들 오늘 점심도 안 먹었습니다. 저녁까지 안 먹으면….”
“오펜, 저놈들은 사람이 아니다. 네 형을 10년이나 부려 먹다가 죽게 한 놈들과 같은 놈들이지. 그리고 며칠 굶는다고 목숨이 그렇게 쉽게 끊어지지 않아.”
“하지만….”
“어서!”
“……네, 선장님.”
나는 단순하게 저놈들이 꼴 보기 싫다고 밥을 굶기는 것이 아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식료품이 모자란 것도 아니고.
단지 저놈들의 체력과 독기를 빼기 위한 것이다.
배고프고, 힘들고, 피곤하면 의지도 꺾이고 다른 생각을 할 여지도 줄어들게 마련이거든.
당연히 비인간적인 처우는 맞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대우를 받으려면, 최소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다른 인간을 죽이지는 말았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