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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흙수저 선원으로 살아남기-274화 (275/420)

274화. 경력과 실력

화장실은 겨우 만들었지만, 포로들이 잠을 잘 만한 시설을 만들지는 못했다.

아무리 머릿수가 400명이 넘더라도 손발이 묶여있어서 노동효율이 워낙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격렬한 전투를 겪고 고작 물 몇 모금만 마셨으니 힘이 날 리가 있나.

심지어 포로들도 알고 있었다. 자신들의 죽음은 확정적이고, 단지 유예되었을 뿐이라는 것을.

밤바람과 새벽이슬을 막아줄 최소한의 조치도 없이 시체처럼 늘어져 자는 포로들을 보던 닥터가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공터에 가득하던 오물은 화장실 완성 후 치웠지만, 여전히 역한 냄새는 남아서 도저히 사람이 거주할 환경은 아니었다.

“선장, 저대로 두면 단 며칠 만에 사망자가 나올 걸세.”

“어차피 죽을 놈들입니다. 그 며칠을 더 사는 것만 해도 감사해야죠.”

“선장….”

나는 일부러 단호하게 말했다.

“닥터, 이 부분은 아무리 닥터라도 관여하실 수 없는 부분입니다!”

사람을 치료하고 살리는 것에 평생을 바친 닥터이니 왜 이러는지 이해는 된다.

하지만 저놈들에게 편안하고 희망찬 삶을 제공한다면 먼저 죽은 내 선원들, 그리고 돌아가신 갑판장님께 너무 면목이 없잖아.

그들은 개똥 같은 삶이라도 이어갈 기회를 박탈당했는데.

“선장, 내가 걱정하는 것은 저들이 아니야.”

“무슨 말씀을 하셔도 소용없습니다.”

“자네 괜찮나?”

“……네?”

내가 뭘?

엉뚱한 닥터의 말에 내가 그를 돌아보자 닥터가 한숨을 내쉬었다.

“저 많은 이들이 자네 명령으로 죽어 나가는 걸세. 괜찮겠나?”

살인이라….

이제 너무 익숙해져서 감흥조차 없다.

내가 지금까지 죽인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내 명령으로 죽어 나간 사람은?

“…닥터, 지금까지 제가 몇 명이나 죽였을 것 같아요?”

“나는 잘 모르지만, 목숨을 걸고 싸우다가 상대를 죽이는 것과 저렇게 무력한 상대를 죽이는 것은 정신적인 피해가 다르다고 알고 있네.”

“…그렇다고 저들을 살려줄 수는 없습니다.”

만약 내가 저들을 살려주고 싶다고 해도,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스스로를 너무 몰아붙이지 말게. 사령관을 맡은 이가 자네를 견제한다는 이야기는 이미 들었지만, 설마 자네가 맡은 일을 포기하는 것까지 막지는 않을 거야.”

닥터의 말대로 알센더트에게 이번 일을 못 하겠다고 하면 다른 이에게 일을 맡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걸로 내 입지는 끝장이겠지.

자칫 잘못하면 오트라스, 피오렐은 물론이고 지금 떠나있는 리버티를 손도 써보지 못하고 잃을 수도 있다.

***

이후로 닷새 동안 탈출 시도가 세 번 있었고, 포로 49명이 죽었다.

탈출 시도를 하다가 죽은 이가 25명, 사고로 죽은 이가 8명, 나머지는 의문사.

왜 의문사냐고?

당연히 이유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몇 명은 작업 중에 갑자기 쓰러져서 죽었고, 몇 명은 병이나 상처 악화로 죽었지만, 몇 명은 자살 혹은 타살의 흔적이 있었다.

살인자가 본인인지, 다른 포로인지, 관리를 맡은 오트라스의 선원이나 용병인지 딱히 조사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사인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그냥 의문사다.

다만 포로끼리 서로 죽여대기 시작하면 노동력이 급격하게 감소하는 것도 문제고, 방치했다가는 강력한 리더를 중심으로 포로들이 단결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타살 의심 시체가 나올 때마다 배식 제한, 구타, 일정 추가 같은 강력한 육체적 제재가 가해졌다.

포로들은 이제 처음 보았을 때보다 더 야위었으며, 눈동자에는 모든 생기가 사라졌다.

포로 관리라는 한직으로 쫓겨났지만 난 여전히 오트라스 호의 선장이자 함선 세 척을 소유한 상단장이었기에 회의만큼은 꼬박꼬박 참여했다.

회의에서까지 나를 배제하기에는 내 뒤에 있는 후작의 그림자가 무서웠을 것이다.

전력은 비슷하게 남은 것으로 추측되지만 현실적으로 해적 연합이 다시 전초 기지를 공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판단하에 닷새 동안 12척으로 이루어진 분함대가 주변의 섬을 하나씩 점거했다.

그 와중에 해적의 초소로 추정되는 구조물을 몇 개나 발견해서 파괴했고, 거주 구역과 조잡한 접안시설이 있는 마을도 하나 발견했다.

물론 마을은 비어있었지만, 일단 해적의 근거지 토벌이 이번 전쟁의 원 목표라는 것을 감안하면 주목할만한 성과였다.

“크하하하하, 그러니까 이미 해적 놈들은 튀고 없다니까? 이제 12척이나 뭉쳐 다닐 필요 없이 더 작게 쪼개져서 이놈들 근거지를 다 불태우면 되는 거요!”

그래서 내가 저 대머리 아저씨의 귀 아픈 헛소리를 계속 듣고 있어야 하는 거다.

하필이면 마을을 발견하고 불태운 함대가 크록커스 용병함대였기에 함대장인 바냐도르의 어깨는 최근에 머리 위까지 올라간 상태였다.

한마디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일단 참고 상황을 살펴보기로 했다.

처음에 주어졌던 알센더트의 배려(?)가 사라진 지금은 바냐도르와 부딪혀서 좋을 것이 없었다.

“하지만 놈들에게 남은 함선이 아직 20여 척이고, 그들이 흩어졌다는 보장이 없소.”

“거, 지금까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걸 보면 모르겠소?”

“바냐도르 함장, 만약 분함대를 더 쪼갰다가 해적 놈들에게 당하기라도 하면 당신이 책임질 거요?”

“책임이라니? 이미 박살 난 해적 놈들에게 당하는 놈이 바보인 거지, 내가 왜 책임을 져야 하지?”

“하, 그럼 크록커스 용병함대는 20척이 넘는 해적선을 상대로 이길 자신이 있나 보구려?”

참고로 대머리 바냐도르가 이끄는 크록커스 용병함대는 총 4척으로 구성되어 있다.

할 말이 없어진 대머리가 벌겋게 물들어갈 때쯤, 상석에 앉은 알센더트가 한 손을 들어 올리며 묵직하게 말했다.

“그만!”

곧 소란이 가라앉았다.

최근에 일이 잘 풀리면서 알센더트의 권위도 상당히 높아졌다.

“내 생각에도 벌써 함대를 쪼개는 것은 너무 성급한 것 같군.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하루 안에 왕복할 수 있는 섬은 모두 훑어봤소. 더 멀리 나간다면 사실상 이곳과 연계가 끊어질 판이지.”

확실히 알센더트는 무능하지 않다.

분명히 처음에는 당황하고 실수하는 모습이 보였는데, 어느새 상황에 적응하고 매끄러운 판단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무리 용병함대에서 잔뼈가 굵은 그라도 이런 대규모 토벌전의 주장(主將)을 맡은 것은 처음일 테니, 처음의 어설픈 모습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기도 했다.

현재 우리가 점거한 전초 기지는 해안 포대를 무력화하지 않는 이상 해적의 남은 전력으로는 도저히 공격할 수 없다.

분함대의 경우는 조금 애매한데, 20여 척의 해적선과 12척의 분함대가 정면 대결을 벌이면 이쪽이 필패다.

하지만 분함대가 왜 절대다수인 적과 정면 대결을 하겠는가?

멀리에 적이 출현하면 내빼면 그만인 것을.

해적선이 아무리 빨라도 사람과 고작 이틀 치 식량, 식수와 무장만 채운 용병함들을 추격해서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굳이 방법을 말하자면 아주 치밀한 매복과 기습으로 분함대를 포위한다면 전투를 강요할 수는 있다.

하지만 분함대의 목적이 각 섬을 탐색, 점령하는 것이니 매복과 기습이 제대로 될 리가 없지.

오히려 매복한답시고 서너 척씩 쪼개져서 섬에 숨어있다가는 오히려 각개격파 당할 확률이 더 높다.

하지만 거점에서 분함대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해적이 선택할 수 있는 전략, 전술의 폭은 넓어지고, 분함대의 속도는 줄어들며, 후퇴 성공률도 감소한다.

그래도 이틀거리까지는 괜찮지 않을까 싶은데.

“제독, 그렇다면 거점을 옮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바냐도르 함장의 공을 깎아내리려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놈들의 잔당을 박살 내고 그들의 본거지를 불태워야 끝나는 일 아닙니까?”

“흐음….”

“제독, 이곳도 이제야 겨우 사람 살만한 곳이 되었소. 그런데 바로 이곳을 포기하고 다른 곳에 새로운 거점을 세운다고 하면 선원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거요.”

한동안 여러 가지 의견이 나왔다.

분함대를 쪼개자는 바냐도르에게 동의하는 사람은 서너 명에 불과했고, 결국 왕복에 이틀 정도 걸리는 거리의 섬까지 점거해 가기로 했다.

회의가 끝나고 나오는 길에 누군가가 내 어깨를 살짝 쳤다.

“응?”

“리안 제독.”

“아, 베기어 함장. 무슨 일입니까?”

나는 제법 낯이 익은 베기어 함장과 악수를 나누고 함께 걸었다.

그나마 얼굴이 마주치면 약간씩이라도 돌아가는 상황을 전해주는 고마운 사람이다.

“고민이 있으신 모양입니다?”

“아니, 뭐 고민이라기보다는….”

대충 얼버무리는 내 대답에 베기어가 살짝 고개를 끄덕거렸다.

“물론 알센더트 제독의 처사가 좀 너무하긴 하지요.”

전혀 엉뚱한 추측을 하고 있는 그에게 나는 황급히 변명했다.

“그런 게 아닙니다! 단지 해적들의 거점이 어디쯤 있을지 추측해본 것뿐입니다.”

베기어가 그동안 나에게 정말 잘해준 것은 맞다.

나도 상당히 고맙게 생각하는 중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를 상대로 남의 귀에 들어가면 문제가 될 만한 내 속마음을 털어놓을 필요까지는 없는 법이다.

적당한 대화를 이어가다가 베기어를 떠나보낸 나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우리가 언제 어디에서 출항하는지는 딱히 비밀도 아니라서 해적 연합이라고 몰랐을 리가 없다.

그러니까 첫 번째 전투는 저놈들이 미리 준비했다고 하면 그들의 본거지가 어디에 있는지와는 큰 상관이 없다.

하지만 두 번째 전투는 다르지.

저들이 첫 전투에서 낭패를 보고 과연 근처 아무 데서나 모여서 다음 계획을 짰을까?

그럴 리가 없지.

당연히 그들은 일단 본거지로 돌아갔을 거고, 고작 사흘 만에 놈들은 두 번째 전투를 걸어왔다.

그러니까 이 섬에서 왕복 이틀거리면 아슬아슬하게 해적들의 본거지가 있는 곳을 발견할 확률이 생긴다.

***

열흘 정도, 그러니까 열흘하고 며칠쯤?이 더 흘렀다.

사실 매일 똑같은 일상이니 날짜 가는 것이 헷갈린다.

…어쩌면 열흘이 안 지났을지도 모르겠다.

해적의 본거지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마을 세 곳을 더 발견해서 불태웠고, 탐색이 끝난 섬의 숫자도 100개를 훌쩍 넘어섰다.

뭐, 대부분은 수원지도 없고 서너 시간이면 섬의 한 바퀴를 다 돌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섬이었지만, 숫자가 그 정도 되니 벌써 기가 질리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보된 구역은 지도에 표시된 케르빈 제도의 1/4조차 넘지 못했으니, 해군이 굳이 이곳을 토벌하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다.

해적 포로의 숫자는 이제 304명이 되었다.

그리고 이틀 전부터는 매일 나오던 사망자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전초기지 공사가 완료되어 노동량이 상당량 감소했기 때문이겠지.

무려 보름을 넘게 배에 타지 못한 선원들은 슬슬 불안해하거나 짜증을 내기 시작했고, 몸이 근질거리는 용병들은 자기들끼리 패싸움을 벌였다.

얼굴에 튄 몇 방울의 피를 닦지 못하고 온 네이선, 한쪽 눈이 퍼렇게 멍이 들어서 온 용병대장 레건.

“혹시 두 사람 싸웠어?”

어이가 없어서 내가 묻자 네이선이 화들짝 놀라며 부정했다.

“그, 그럴 리가! 아닙니다, 선장님!”

“어허허, 이것 참 쪽팔려서 못 살겠군.”

레건은 민망한지 멍이 든 눈을 손으로 가리며 시선을 돌렸다.

뭐야, 더 수상하잖아?!

“…네이선?”

“아, 아니라니까?! 진짜 아닙니다, 선장님!”

“갑판장의 말이 맞수다. 나는 거, 애들을 좀 말리다가… 으흠.”

“어휴, 알았어. 그렇지 않아도 분위기나 물어볼까 해서 불렀는데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겠네.”

나는 두 사람을 돌려보내고 그대로 알센더트의 막사로 향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오늘은 알센더트가 분함대를 이끌지 않는 날이라 아마 막사에 있을 것이다.

“제독. 리안입니다.”

막사 안쪽에서 약간의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잠시 후에 문이 젖혀졌다.

“리안 선장? 무슨 일인가? 약속은 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보직을 바꿔주실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나는 자리에 앉기 무섭게 바로 돌직구를 던졌다.

평소처럼 분위기 봐가며 말을 돌리다가는 내 인내심이 버티지 못할 것 같아서 그렇다.

나라고 육지 생활이 싫은 것은 아니다.

누누이 말했지만, 사람은 땅을 밟고 살아야 하는 법이다.

그래서 뱃사람들도 장거리 항해가 끝나면 육지에서 배로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매일 돈을 인출(?)해야 하는 우리 선원들이나 배에 들르는 것이지, 보통 장거리 항해를 마친 선원들은 받은 돈이 다 떨어질 때까지 배에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 역시 장거리 항해가 끝나면 일부러 여관방을 빌려 여관에서 자고는 한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발적으로 배에 타지 않는 때에 해당하는 것.

타의에 의해 배를 타지 못하는 지금과는 상황이 너무 다르다.

나 역시 최근 들어 금단현상처럼 불면증에 시달리는 중이다.

“음? 요즘은 일도 별로 없어서 더 편하지 않나?”

알센더트가 능청스럽게 물었다.

표정만 보면 왜 편하고 쉬운 일을 굳이 포기하려고 하는지 이해가 안 되는 것 같다.

가증스럽긴.

“저도 그렇지만 선원들의 불만이 적지 않습니다. 뱃놈들이 보름이 넘도록 배를 못 타지 않았습니까?”

“어? 벌써 보름이나 지났었나?”

여전히 능청을 떨어대는, 아니, 아마도 나를 놀리는 듯한 알센더트에게 나는 최대한의 인내심을 발휘해서 내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내일 작전에 나가는 분함대에 포함시켜주십시오.”

“정 자네가 원한다면 뭐. 하지만 분함대 사령관 자리는 줄 수 없어. 알지?”

“…물론입니다.”

분함대 사령관은 용병함대장들이 돌아가면서 맡아왔다.

물론 똑같이 돌아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하여간 ‘모두’가 맡아 왔다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까지 분함대 사령관을 해보지 못한 사람은 ‘상단장’인 나 뿐이다.

***

오랜만에 오트라스에 오른 선원들은 꽤나 들떠있었다.

이제 제법 미운 정이 든 용병들 중 일부가 선원들을 도와 여기저기를 청소하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기함 리에나로부터 신호입니다. 오트라스에 할당된 번호는 7번, 대열 후미 중앙입니다.”

“음, 계류색 걷어.”

“계류색 걷습니다.”

씩씩하게 대답한 이등항해사 오펜이 선교 앞으로 달려가서 소리쳤다.

“갑판장님! 계류색 걷으랍니다!”

“네, 이등항해사님!”

멀리서 장난스러운 네이선의 대답이 들려오고, 얼굴이 새빨갛게 변한 오펜이 다시 내 근처로 다가왔다.

그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좋아?”

“감사합니다, 선장님!”

“감사는 무슨, 실력이 충분하니까 맡긴 것뿐이야. 실제로 하는 일은 지금과 별로 달라지지 않을 거야.”

“그래도요.”

짜악!

“컥!”

“으하하하, 이등항해사! 이제 진짜 항해사가 되셨구만?!”

“으아아아… 일, 일등항해사님.”

언제 다가왔는지 그레이그가 오펜의 등짝을 두들기며 호쾌하게 웃었다.

놀랍게도 오펜의 이등항해사 임명을 먼저 제안한 사람이 그레이그다.

사실 이전부터 오펜의 이등항해사 임명은 나 혼자 생각만 해오던 것이다.

뭐랄까, 내가 오펜을 아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수습 선원 출신에 경력도 짧은 녀석을, 그것도 아직 20살도 안 된 꼬맹이를 이등항해사로 임명하려니 마음에 걸리는 점이 너무 많았다.

어젯밤 출항 전 간부회의를 마치고 그레이그가 먼저 내게 제안을 해왔을 때도 나는 이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아직 오펜을 인정 못 하는 선원들이 있는 것 같은데 너무 무리하지 않겠냐고 말이다.

그러자 그레이그는 호탕하게 웃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뱃놈들이 언제부터 출신과 경력을 따졌습니까? 실력만 있으면 되는 거죠. 경력만 놓고 보면 제가 선장을 하고 선장님은 이등항해사를 하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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