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화. 절망을 이기는 것
“이 보자기만 해도 가격이 만만치 않겠는데?”
“그런데 담을만한 게 이것밖에 없어. 상자들이 다 낡아서 부서질 것 같거든.”
“그, 그래.”
아마 실크인 것으로 보이는 부드럽고 조직이 치밀한 넓적한 천에 뭔가가 잔뜩 담겨 있었다.
그런데 나무도 썩어나가는 환경에서 천 조각이 어떻게 상하지 않고 여태까지 보관된 거지?
“그런데 아주 멀쩡하네? 수십 년은 방치되었을 텐데.”
“그, 아주 단단한 상자에 밀봉되어 있더라고. 너무 단단하게 봉인되어 있길래 한 번 부셔, 아니, 열어봤는데 이런 천 쪼가리만 있더라.”
그냥 천 쪼가리가 아닐걸?
내가 알기로 실크가 생산되는 곳은 제국 남동쪽 내륙지방뿐이다.
생산량도 보잘것없어서 제국 최고위 귀족들과 각국 왕궁에서나 조금씩 쓴다고 들었다.
그걸 아는 사람이 고작 포장지로 쓰고 있냐고?
그 포장지 안에 들어있는 것이 고급 마정석 정도 되면 그냥 고급스러운 포장 정도로 생각하면 되는 거다.
그리고 이거는….
“잠깐, 이건 내가 들고 갈게. 함부로 다루면 안 되는 녀석이야. 잘 깨지거든.”
“아, 알겠습니다.”
내 말에 내 손에 들려있던 짐을 받으려던 선원이 선선히 물러섰다.
유리냐고?
오래된 고급 와인?
해적씩이나 되는 놈들이 술을 보고 이게 고급인지 아닌지 따져가면서 보관하고 그랬겠어?
“그거 뭔데 그렇게 난리야? 그냥 금붙이 아니야?”
“그, 금붙이….”
네이선의 말대로 금붙이는 맞다.
금세공품이지.
그런데 금세공에 대해 아무런 지식이 없는 내가 봐도 보통 물건이 아니란 말이지.
금이라는 것이 워낙 무른 금속이라서, 아무에게나 들려 보내기에는 좀 그렇다.
괜히 어디에 찍히거나 찌그러지면 가치가 훼손될 테니 말이다.
“그건 그렇고 저게 그렇게 비싸? 내가 보기에는 그냥 예쁜 돌멩이던데.”
“나라고 뭐 다르게 보이겠냐? 그런데 각국의 전략물자로 분류될 정도면 귀한 녀석이겠지.”
그래서였을 것이다.
저 비싼 고오급 마정석을 자루째로 비밀 창고에 처박아 둔 이유 말이다.
아무리 잘나가는 해적단이라도 국가의 전략물자로 구분되는 녀석을 처분할 루트는 미처 구하지 못한 것이다.
그 가치를 알고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각국의 왕실 관계자나 고위 귀족들이 아닌 우리 같은 일반 사람에게는 네이선의 말대로 예쁜 돌멩이에 불과하니, 처분 자체가 불가능했겠지.
어쩌면 다른 이유, 그러니까 더 음험하고 살 떨리는 이유로 보관했을지도 모르지만, 하여튼 붉은모래 해적단은 전멸했고, 이 고오오오급 마정석은 내 것이 되었으며, 나는 이것을 구매해줄 좋은 구매자를 알고 있지.
“선장님, 입구입니다!”
앞서 있던 선원이 살짝 상기된 목소리로 외쳤다.
고개를 들어보니 그의 말대로 저 멀리 밝은 빛이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
“선장님, 마지막 인원까지 다 올라왔습니다.”
“어, 수고했어, 갑판장. 이쪽으로 앉지.”
동굴탐사에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벌써 사위가 어둑어둑한 것이, 한 시간 이내에 완전히 어둠에 잠길 것 같다.
사실 탐색 자체보다는 뱀 잡는 시간과 물건과 사람을 위로 올리는 시간이 더 오래 걸렸지만, 처음 생각한 일정이 어긋났으니 새로운 계획이 필요했다.
맛은 없지만 따듯하기는 한 건빵육포죽…을 마시며 내가 먼저 운을 뗐다.
“일행을 나눠야 할 것 같아.”
“음, 어떻게?”
“나는 네이선과 헤어지는 거 반대야.”
기본적으로 네이선과 우르타 모두 일행을 나눠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했다.
부상자들을 데리고 일정을 강행하는 것도 부담스럽고, 동굴에서 획득한 뱀 대가리를 포함한 물건들을 굳이 섬의 남쪽까지 가지고 갔다가 돌아올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응? 네이선은 왜? 네이선이 아니면 분대를 이끌 사람이 없어.”
물건을 가지고 돌아가는 본대는 당연히 내가 이끌어야 한다.
돌아가서 상륙지점을 지키고 있는 베기어에게 설명도 해야 하니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 있는 종류의 일이 아니었다.
부상자들은 나와 함께 돌아가는 것이 옳고 우르타는 부상자 중의 한 명이기 때문에 섬 남쪽의 약속지점까지 갈 분대를 이끌 사람은 사실 네이선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네이선이 없으면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리안을 보호할 사람이 없잖아. 나는 몸이 이래서….”
조용히 속삭이는 우르타가 슬쩍 가슴을 풀어헤쳤다.
우르타의 가슴은 축구공만 한 면적이 시퍼렇게 멍들어 있었는데, 나도 처음에는 크게 다친 줄 알고 깜짝 놀랐을 정도였다.
사실 지금도 숨을 쉴 때마다 아프다고 해서 영 불안하기는 하다.
그런데 누가 누구를 보호한다고?
“야, 너 지금 네가 아파서 날 보호할 수 없다고 말한 거야?”
“응! 내가 몸만 괜찮으면 막! 아야.”
참고로 우르타는 지금까지 칼질로 나를 이겨 본 적이 없다.
신나게 도망 다니다가 무승부를 기록한 적은 많지만.
도대체 이건 무슨 근자감인가 싶지만, 하는 짓이 귀여워서 그냥 넘어가기로 하고….
이유는 웃기지만 우르타의 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었다.
견물생심이라고, 막상 금화와 마정석 무더기를 보면 누군가는 눈이 돌아갈 수도 있으니 말이다.
만약 그 사람이 우리 내부 인원이거나 베기어라면 조금 골치가 아파진다.
“흐음, 그건 그렇지. 어떻게 한담?”
“혹시라도 금화 때문에 눈 돌아가는 녀석이 있을 것 같아서 그러는 거야? 그러면 그냥 선원들만 보내면 되지 않아? 어차피 그쪽은 아인델프 선장이 있으니까 얼굴 아는 친구를 보내면 될 것 같은데.”
가볍게 대답하는 네이선을 보며 잠시 생각을 해 보았다.
하긴, 다른 명령도 아니고 기존의 명령대로 복귀하라는 것만 전하면 되니까 상관없을 것도 같은데.
“그러면 네이선이 아침에 여덟 명만 뽑아줘. 혹시 가는 길에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여덟 명이나 빼면 물건 들고 갈 인원이 좀 부족하지 않을까?”
8명을 빼면 남는 선원이 12명인데, 이쪽에는 혼자 걷기 힘든 환자가 1명, 짐을 나를 수 없는 환자가 4명이니 실제로는 일곱, 아니, 여섯 명인 셈이다.
발목이 퉁퉁 부은 녀석은 누군가가 부축을 해야 할 것 아냐.
“두 명이 금화를 들고 세 명은 마정석을 들게 하면 돼. 네이선 너랑 나머지 한 명이 앞뒤 경계를 맡고.”
“너무 빠듯한 인원 편성 같은데? 한 명만 다쳐도 문제가 생기는 편성이잖아.”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저쪽으로 가는 길에 뭐가 있을지 모르잖아. 난 정말 우리 애들 잃기 싫어. 우리는 오늘 왔던 길이니까 괜찮을 거야.”
특히 오늘 데리고 온 인원들은 말 그대로 함대의 최정예들이다.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한 명이라도 잃으면 최소한 며칠 동안 후회할 거다.
***
동굴이 있는 근처에서 하룻밤을 보낸 우리는 일행을 둘로 나누었다.
다행스럽게도 방향을 읽을 줄 아는 고참 선원이 있어서 그에게 일곱 명을 붙여서 아인델프에게 복귀명령을 전하라고 했다.
설마 손바닥만 한 섬에서 길을 잃지는 않겠지.
“그런데 어차피 아인델프도 가지고 있는 식량에 한계가 있으니까 굳이 전달하지 않더라도 알아서 복귀하지 않을까?”
우르타가 갑자기 생각난 듯 물었다.
“당연히 아인델프도 바보가 아니니까 식량이 떨어지기 전에 복귀는 하겠지. 그런데 그 전에 우리를 찾겠다고 무슨 무리한 짓을 벌일지 모르잖아. 걱정도 많이 할 거고.”
다른 것보다 내가 그런 식으로 행동하면 훗날 다른 일이 생겼을 때도 이번 일과 비슷하다고 쉽게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양치기 소년의 일화가 그냥 있는 것이 아니다.
예상한 대로 돌아오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물론 번듯한 길이 닦여있지는 않았기 때문에 부상자들, 특히 발목을 크게 다친 선원은 고생을 하기는 했다.
하지만 팔이 부러져도 침 바르면 낫는다고 허세를 떨어대는 선원들이 그 정도로 앓는 소리를 할 리가 있나.
상륙지점에 도착해서 보니 얼굴은 백지장에 발목은 밤보다 더 부어 있었지만, 그래도 끝까지 괜찮다고 웃어 재끼고 있었다.
저 정도로 부으면 크게 웃기만 해도 발목이 흔들려서 아플 텐데, 어휴.
“제독, 무슨 일입니까?”
우리를 발견한 경계병이 보고를 했는지 베기어가 가장 먼저 헐레벌떡 뛰어나왔다.
“아, 베기어 함장님. 별일 아닙니다. 중간에 괴물을 만나서요. 이 녀석입니다.”
내가 손짓으로 뱀 대가리를 들고 있는 선원들을 부르자 베기어가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굉장히 큰 뱀이군요. 이런 녀석들이 살고 있었습니까?”
“녀석들이 아니고 녀석이요.”
“네?”
“이거 세 마리가 아니라 한 마리입니다. 머리가 세 개인 뱀, 도마뱀? 하여튼 괴물이었어요.”
“허, 이거야 원. 생김새가 보통 뱀처럼 보이지 않기는 합니다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일단 부상자를 수습해야 하니까 좀 비켜주시겠어요? 자세한 이야기는 제가 사람을 보내도록 하죠. 논의할 이야기도 좀 있구요.”
나는 슬쩍 선원들이 들고 있는 보따리를 눈짓으로 가리켰다.
내용물이 보이지도 않고 겉면이 흙과 풀로 지저분해지기는 했지만, 비단 특유의 고급스러움이 완전히 숨겨지지는 않았다.
이런 것은 괜한 오해가 생기게 하느니 빨리 공개하는 게 좋겠지.
보따리를 살펴보며 몇 번 표정이 변하던 베기어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진짜 뭔가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괴물과 보물이라. 마치 애들 동화에나 나올법한 이야기군요. 그럼 기대하고 있도록 하죠.”
“하하, 깜짝 놀라실 겁니다.”
베기어와 헤어진 나는 이제 소식을 들었는지 이쪽으로 달려오던 그레이그와 행크를 만났다.
“선장님!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왜 인원이…?”
“아, 궁금한 게 많겠지만 일단 닥터부터 불러 줘. 다친 사람이 꽤 많아.”
“알겠습니다.”
두말없이 몸을 돌리는 행크에게 나는 급하게 말을 더 전했다.
“아, 돌격대장! 닥터 먼저 호출해서 부상자들 돌보게 하고, 회계사는 내 방으로 불러 줘.”
“네, 선장님.”
“일등항해사는 나랑 같이 가지.”
“네.”
***
똑, 똑, 똑.
“선장님, 게론드입니다.”
“어, 들어와.”
문이 열리고 바짝 마른 한 남자가 선장실로 들어왔다.
남자의 왼쪽 소매가 힘없이 펄럭이는 것이 눈에 띄었다.
“회계사?”
“네, 선장님.”
이거야 원, 왼팔이 없는 게 문제가 아니라 곧 영양실조로 죽을 것 같아 보인다.
“자네 도대체, 요즘 식사는 제대로 하는 거야?”
“네…. 그런데 무슨 일로 저를?”
게론드를 부른 이유는 내가 애지중지 가져온 금세공품과 비단, 마정석같은 녀석들을 감정하기 위해서였지만, 지금은 그게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무슨 일이 중요한 게 아니잖아, 지금! 그대로 누워있으면 사람들이 시체로 착각할 몰골이라고!”
함께 있던 그레이그와 네이선도 게론드의 이런 모습을 처음 봤는지 당황스러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하지만 게론드는 씁쓸한 미소를 지을 뿐 가타부타 반응이 없었었다.
뭐야, 거의 삶을 놓아 버린 것 같은 이 쓸쓸한 기운은?
“…그저 요즘 의욕이 조금 없을 뿐입니다. 딱히 할 일이 없으니까요.”
“아니, 아무리 봐도 그게 문제가 아닌데? 일단 이쪽으로 와서 앉지.”
내 말에 테이블로 다가와 의자를 빼고 앉은 게론드를 다시 살펴보았다.
전체적으로 살이 엄청나게 빠지기는 했지만, 딱히 질병의 징후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닥터랑 이야기를 한 번 해봐야 할 것 같은데?
“본인이 괜찮다니 일단 넘어가고, 이것 좀 봐줘.”
내가 천을 그의 앞으로 밀어놓자, 탁하게 죽어있던 게론드의 눈동자에 약간의 생기가 돌았다.
“흐음, 비단, 그것도 꽤 고급이군요. 도대체 어디서 나신 겁니까? 일반적인 유통경로로 돌아다닐 상품이 아닌데요?”
“일반적인 유통경로가 아니다?”
“네, 비단 자체가 워낙 귀한데다가, 원산지가 완전히 내륙인 것도 모자라 수요처도 워낙 뻔하다 보니 일반 상품처럼 공용 유통망을 따르지 않습니다. 항구의 어떤 교역소에서도 취급하지 않는 물품이죠.”
“교역소에서 취급하지 않는다는 말이지?”
“이미 알고 계셨군요. 선장님께서는 고위 귀족들을 몇 명 아시지 않습니까? 그들에게 제공한다면 만족할만한 가격을 받으실 수 있으실 겁니다. 돈이나 혹은 다른 것으로요. 물론 이거 한 장으로는 말도 안 되고 수량이 조금 되어야 할 겁니다.”
비단은 처음부터 그냥 품질 확인이나 받을 생각이었다.
이것까지 아등바등 팔아 치워서 돈을 만들어야 할 만큼 급박한 상황이 아니니 팔 생각은 애초에 없었고, 앞으로 필요한 일이 있으면 그때그때 사용할 생각이다.
남자들에게는 그냥 희귀한 사치품이지만, 여자들에게는 굉장한 뇌물이 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좋아, 이해했어. 다음 이거.”
내 손을 떠난 푸르스름한 빛을 내는 크리스탈 같은 돌멩이가 테이블을 굴렀다.
비단을 한쪽으로 치우고 천천히 그 돌멩이를 집어 든 게론드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곧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도대체 이런 것은 어디에서 구하신 겁니까?”
“고급 마정석 맞지?”
“네. 저도 실물을 보지는 못했지만, 제가 알기로 이렇게 자체적으로 신비한 빛을 내는 광물은 없으니, 고급 마정석이 맞을 겁니다. 그나마 가끔 볼 수 있는 하급 마정석과는 확실히 다르네요.”
“자네도 확신은 못 하는 거야?”
“아무래도 실물은 본 적이 없으니까요. 아, 닥터라면 알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대학에서 오래 계셨으니.”
“그런가? 다음에 한 번 물어봐야겠군.”
“그런데 이건 자칫 큰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급 마정석만 해도 국가에서 통제하는 품목인데, 이런 고급 마정석이면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로도 문제가 될지도 모릅니다.”
“그거는 후작에게 처리를 부탁할 생각인데. 괜찮지 않을까?”
내 말에 심각한 표정으로 잠시 고민하던 게론드가 뭔가를 결정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마 후작이라면 잘 처리해 줄 겁니다. 받고 그냥 입을 닦을 수도 있습니다만, 고작 마정석 한두 개로 선장님과 척지려고 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어… 한두 개는 아닌데….”
“…네?”
“여기, 이만큼 있어.”
내가 의자 옆에 내려놓았던 마정석 자루를 들어서 테이블에 올려놓자, 게론드의 눈이 사정없이 떨렸다.
“하, 하, 농담하지 마십시오. 그게 다 고급 마정석이라구요?”
“어? 농담 아닌데? 못 믿겠으면 와서 봐.”
내 말에 불신과 호기심과 기대감이 뒤섞인 기묘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내 옆으로 다가온 게론드는 자루를 열어 보더니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꽈당!
“으악, 게론드! 괜찮아?!”
“도대체 얼마나 힘이 없으면 걷지도 못하고 넘어져?!”
“이봐, 회계사!”
나와 네이선, 그레이그가 갑자기 바닥에 넘어진 게론드를 부축했다.
“저는 괘, 괜찮습니다만. 선장님, 도대체 무슨 짓을 하신 겁니까?”
“어? 아니, 내가 뭘?”
“저 정도 양이면 후작이 아니라 후작 할애비라도 처리 못 합니다. 아니, 처리는 하더라도 아마 선장님 목부터 따려고 할 겁니다. 무조건! 무조건 숨기셔야 합니다!”
“그, 그 정도야?”
“말도 마십시오. 그 정도 양의 고급 마정석이면 아마 마정석 광산에서 일 년 내내 나오는 고급 마정석 양보다 많을 겁니다. 가격의 문제가 아니라 나라 하나를 혼란의 도가니에 빠뜨릴 수 있는 양의 전략물자란 말입니다!”
그렇게 심각한 건지 몰랐지!
나 같은 평범한 소시민이 고급 마정석 따위를 만져볼 일이나 있을 줄 알았냐고!
나를 따라 네이선과 그레이그의 표정도 대번에 진지해졌다.
“야, 네이선. 선원들은 이거 못 봤지?”
“네. 확인은 저랑 선장님만 했고, 선원들은 포장된 것만 들고 왔으니까요.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보석 원석 정도로 생각하는 모양이던데요.”
“그럼 아는 사람이 이제 네 명이군.”
내 말에 미심쩍은 표정으로 네이선이 물었다.
“우르타는 못 봤습니까?”
“응, 아프다고 징징대느라 바빴거든.”
“아….”
엉덩이를 문지르며 자리에 앉은 게론드가 진중하게 제안했다.
“그렇다면 이 사실은 최대한 숨기는 것이 좋겠습니다. 베기어 함장이나 아인델프 선장에게도 가능하면 숨기시지요. 이건 정말 화약고 수준입니다.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습니다.”
“알았어. 그럼 회계사는 저쪽에 있는 금화 상자까지 해서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 계산 좀 해줘. 마정석은 그 정도 크기와 양의 보석 원석이라고 가정하고 말이야. 그리고 그 뱀 대가리 그것도 꽤 가치가 있을 것 같거든? 가죽이 얼마나 질긴지 칼도 안 들어가.”
“알겠습니다. 그럼 이것들을 금고로 옮겨도 될까요?”
“응, 갑판장이 도와줘. 선원들 시키지 말고.”
“네, 선장님.”
어느새 게론드의 눈에 생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아픔을 잊기 위해 일에 심취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던데, 어쩌면 그 방법이 옳은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네이선과 게론드가 선장실을 나가자 살짝 멍한 표정이던 그레이그가 고개를 한 번 털더니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이거야 원, 이럴 거면 힘들게 교역을 할 게 아니고 그냥 보물섬이나 찾으러 다니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그냥 운이 좋았던 거지. 보물섬, 보물 지도에 홀려서 인생 말아먹은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니라는 건 일등항해사도 잘 알잖아?”
“아아니, 그래도 이 정도 대박이면 인생 한 번 걸어볼 만하지 않습니까?!”
“그만둬. 인생에 대박이 한 번이면 충분하지 두 번이나 터지겠어? 일등항해사랑은 이제 상관없는 이야기니까 포기하라고.”
“거참. 그런데 아까부터 품에 안고 계시는 그건 도대체 뭡니까?”
“품에?”
그레이그의 말에 시선을 내려보니 둥지 안의 아기 새처럼 내 품에 안겨있는 물건이 하나 보였다.
“어? 그러고 보니까 이걸 물어보려고 했는데!”
이 금세공품, 도대체 정체가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