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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흙수저 선원으로 살아남기-292화 (293/420)

292화. 찝찝한 소문과 불편한 명령

“어? 배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메인 마스트 접어.”

“메인 마스트 접습니다!”

오펜이 내 명령을 받아 조범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안전거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섬을 멀리 도는 바람에 아직 배에 달린 식별기는 보이지 않지만, 일단 눈에 보이는 함선의 수가 너무 많았다.

남은 함선의 숫자야 내가 뻔히 알기도 하고, 하루 종일 해적들의 거점을 감시해야 하니까 함대의 모든 함선이 거점에 정박해 있을 리가 없지 않나.

그런데 당장 눈에 들어오는 정박된 선박의 수가 열 척이 넘는다.

“계속 접근합니까?”

“음, 천천히 접근하자. 저쪽도 우리를 발견할 때가 된 것 같은데, 발견하면 어떤 식으로든 반응이 오겠지.”

갑자기 저놈들이 동시에 출항하면 바로 뒤돌아 내빼면 된다.

우리가 180도로 돌아야 한다고 해도, 이제 막 출항하는 배보다는 빠르다.

실제로 180도도 아니고 100도 정도만 돌아서 순풍을 타면 되니 그보다도 더 빠를 테고.

잔뜩 의심을 품고 천천히 접근했지만, 내 걱정은 기우인 것으로 밝혀졌다.

“아군 함대입니다. 아무래도 지원을 요청하러 간 분함대가 도착한 모양이군요.”

“그러네. 그런데 조금 빠른데? 아무리 빨리 선원을 모집하고 물자를 채웠어도 이 정도면 거의 론 항구에 정박하자마자 선적을 마치고 출발한 느낌이잖아?”

“그렇기는 합니다만….”

그때 오펜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제시했다.

“혹시 그 발레리아 백작인가 하는 사람에게 거절당한 것은 아닐까요? 급한 대로 항구에 있는 물자 약간과 새로 용병 계약을 맺은 선박만 함께 왔을지도 모르잖아요.”

“아니, 그건 아닐 거다. 발레리아 백작이 거절할 이유도 없을뿐더러, 만약 거절했다면 물자 보급도 제대로 못 하고 론 항구에서 쫓겨났을 테니까. 그리고 용병 계약의 고용주가 스코타 후작인데, 피어스 선장이 무슨 권한으로 새로 용병 계약을 맺겠니?”

“그, 그런가요?”

나는 얼굴을 붉히는 오펜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부끄러워하지 말고 궁금한 건 물어봐. 내가 알려줄 수 있는 것은 다 알려줄 테니.”

“감사합니다, 선장님!”

“거참, 누가 보면 이등항해사가 선장님의 아들, 크흠, 친동생인 줄 알겠습니다.”

“하하핫, 오펜이 나를 처음 만날 때 그런 말을 하기는 했지. 흐흐흐.”

“아앗, 서, 선장님!”

그나저나 수송선들을 제외하고 처음 보는 선박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

“발드 선장님!”

“제독! 걱정했습니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미리 기다리고 있던 발드 선장이 다리를 절면서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다른 항해사와 간부들도, 안면이 있는 선원들도 서로 안부를 물었다.

물론 절반 정도는 욕설이었다.

거기에 피오렐의 인원까지 합류하니 아주 난장판이 되었는데, 그런 인파를 헤치고 베기어 함장이 다가왔다.

“알센더트 제독은 지금 자리에 없다고 합니다. 저녁에는 들어온다니 그전까지는 조금 쉬어도 되겠습니까?”

“아, 인사하지. 여기는 리버티 호의 발드 선장, 여기는 이번에 우리 선단에 합류하기로 한 드라이언 호의 베기어 함장.”

“잘 부탁합니다, 발드 선장님.”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함장님. 아주 든든하군요.”

두 사람 외에도 다른 간부들이 가볍게 통성명을 하고 악수를 나눈 뒤 나는 베기어 함장을 풀어주었다.

친해지는 것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진행할 일이지 서둘러서 될 일이 아니다.

다들 뱃사람들이라 자존심들이 있어서 괜히 억지로 붙여봐야 싸움만 날 뿐이지.

“그럼 베기어 함장님은 저녁에 있을 회의 때 보도록 하죠. 다들 고생했는데 푹 쉬게 하세요.”

“알겠습니다, 제독. 그럼 이만.”

베기어와 일행들이 완전히 멀어지자 발드 선장이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괜찮은 사람 같습니다. 완전히 우리 편으로 돌아선 겁니까?”

“일단 말로는 그래요. 아직 완전히 믿을 수는 없지만요.”

“어련히 잘하시겠지만, 음흉한 짓을 꾸밀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건 두고 봐야죠.”

겪어본 사람의 수는 발드 선장이 나보다 압도적으로 많겠지만, 나는 그의 말만 듣고 쉽게 의심을 풀 생각이 없다.

남을 속이고 뒤통수를 치기 위해서 영혼까지 갈아 넣는 놈들이 좀 많은 세상이어야지.

***

혹시 모를 보안 유지를 위해서 편안한 육지의 시설을 뒤로하고 오트라스의 함장실에 사람을 모았더니 오랜만에 아주 북적북적하다.

앞으로 드라이언과 폰테 섬에 있는 콘베르테의 인원까지 수용하려면 귀빈실을 개장해서 회의실로 만들던가 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아직도 서로 할 말이 많은 사람들을 조용히 시킨 뒤 발드 선장에게 물었다.

“발드 선장님, 일단 상황부터 간략하게 설명해 주시죠. 몇 가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는데.”

“네, 제독. 먼저 발레리아 백작은 우리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왕실에서 직접 움직인 것인지 몰라도, 물자 확보는 물론 부족한 선원의 충원까지 일사천리로 이루어져서 오히려 당황스러울 정도였습니다.”

“흐음, 왕실이 확실한가요?”

왕실이 직접 개입했을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그런데 이번 전쟁 자체가 스코타 후작의 입김이 가장 강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굳이 왕실이 발레리아 백작에게 그런 전폭적인 지원을 했다고?

스코타 후작과 정치적으로 척을 지겠다는 게 아니라면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을 것 같은데?

“확실하지는 않습니다만, 왕실 말고는 그 정도 힘을 투사할 세력이 있을까요? 그것도 발레리아 백작의 거점인 론 항구에서요. 다른 것은 몰라도 새로 용병 계약을 맺었다고 합류한 용병함들은 그 정도 뒷배가 없다면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발레리아 백작이 고용한 함선들 아닙니까?”

“피어스 제독과 함께 백작을 방문했는데, 전혀 모르는 눈치였습니다.”

“흐음, 그건 그렇고 선원들 충원은 어떻게 했습니까?”

“왓킨 갑판장이 발 빠르게 움직여서 충분한 인원을 확보했습니다. 총 52명을 고용했으니 오트라스와 피오렐에 나누어 태우면 될 것 같습니다.”

“좋네요. 회의 끝나는 대로 각 갑판장들은 재편성 실시해. 신규 인원은 리버티에 절반 정도 채우고 나머지는 적당하게 배치해. 아, 용병은 피오렐에 스무 명 정도만 남겨.”

내 지시에 세 갑판장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그리고 내 말이 끝나자 발드 선장이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덧붙였다.

“그런데 신경 쓰이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소문이요?”

“공식적인 발표는 아니지만, 시논 섬 인근에서 대치하던 해군들 사이에 충돌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충돌이라고? 내가 지금 잘못 들은 게 아니지?

설마 그 충돌이 실수로 서로 부딪힌 그런 단순 충돌을 말하는 것은 아닐 거다.

그리고 정말 해군들 간에 물리적 충돌이 있었다면 결코 그 여파가 작을 수 없었다.

다들 의외의 소식에 놀랐는지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했다.

“모두 조용! 충돌이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내 말에 잠시 생각을 정리한 발드 선장이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어디까지나 소문입니다만, 시논 섬 인근에서 대치 중이던 벨로키나 1함대와 쿠샤 2함대가 교전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상대가 일레드 왕국 해군이라는 말도 있고, 제3의 세력이라는 말도 있더군요.”

“조금 더 자세한 내용은 없습니까?”

애초에 벨로키나-쿠샤 연합 함대의 목표는 일레드 왕국 해군을 견제하는 것이었던 만큼, 그들이 먼저 도발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무려 두 개의 정규 함대다.

심지어 벨로키나 1함대는 다른 2, 3함대보다 강력한 전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 함대들을 상대로 누군가 도발을 했다는 건데, 그게 말이 되나?

“사실 저도 신뢰할 수 없는 루트로 얻은 정보라서 반신반의하고 있습니다. 쓸데없는 소문 중에는 이미 일레드 왕국의 모든 항구가 점령당했다는 말도 있다 보니…. 그런데 충돌이라면 아무래도 해군들 간의 충돌이 아니겠습니까? 이유야 알 수 없습니다만, 워낙 자존심 덩어리인 자들이니 가능성이 없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장거리에서는 통신 자체가 불가능하다 보니 별별 억측과 뜬소문이 도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지금 전쟁, 아니, 대치 상황만큼 이슈몰이하는 사건이라면 백만 가지 소문이 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지.

하지만 발드 선장이 그걸 모르는 것도 아니고 굳이 왜….

“이 소문에 대해서 의용 함대 수뇌부도 알고 있어요?!”

“아마 모르지 않을까요? 피어스 제독이 알센더트 제독에게 보고하는 자리에는 함께하지 못했습니다만, 피어스 제독은 이 소문의 진위를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후우, 일단 이 건은 조금 더 깊게 생각해 보자.

정확하지도 않은 뜬소문으로 함부로 움직이기에는 사안이 너무 심각하다.

마지막 한 대만 때리면 되는 다 이긴 싸움에서 갑자기 전면 퇴각을 주장해야 하는데, 근거가 빈약하다 보니 첩자나 배신자로 몰리기 딱 좋다.

그런데 그 소문이 사실이라면 정말 상황이 똥 쌀 시간도 없이 급박한 건데, 미치겠군.

내가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자고 하자 왓킨 갑판장이 입을 열었다.

“제독이 떠난 뒤로 두 차례 해적들의 탈출 시도가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두 번 다 저지당했구요. 그래서 말단 선원까지 조금만 더 봉쇄를 유지하면 항복을 받거나 크게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전면 공격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수뇌 회의에서 나온 이야기는 아니죠?”

내 반문에 발드 선장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아직 공격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도 왓킨 갑판장의 예측이 맞을 확률이 높아 보인다.

어찌 되었건 저 해적들의 마지막 거점을 박살 내야만 의뢰가 100% 완수된다.

원래도 아군이 적을 압도하고 있었지만, 이제 증원군까지 와서 알센더트의 자신감은 지금 최고조에 달해 있을 것이다.

거기에 경험 많은 전투함이 세 척이나 되는 우리까지 합류했으니, 전면 공격이라는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정말 일레드 왕국과 벨로키나-쿠샤 연합이 단순한 적대적 대치 상황이 아니라 전쟁 상황이 되었다면, 여기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너무 위험했다.

심지어 저 해적 놈들을 싹 쓸어버린다고 하더라도 전략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

일레드 해군이 개입하는 순간 우리는 도주와 전멸 외에는 선택지가 없으니 말이다.

지원군의 합류로 전투함이 28척으로 늘었다고 하지만, 정규 해군 함대와 맞붙을 전력은 절대로 아니다.

전쟁이 아닌 적대적 대치 상태에서는 일레드 왕국 해군이 이쪽 전역에 개입할 명분이 조금 부족하다.

어찌 되었건 표면적으로 의용 함대는 어디까지나 ‘해적’을 토벌하는 것이지, 일레드 왕국에 적대하는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굳이 걸고넘어질 수 있는 것이라면 자신들이 선포한 군사지역에 대한 무단 침범인데, 그들이 군사지역으로 선포한 것은 시논 섬과 케르빈 섬이니 그것도 너무 억지스럽지.

하지만 ‘전쟁’ 상황이라면 많은 것이 달라진다.

전쟁 중인 적군에 대한 ‘사략활동’은 딱히 비난받을 행동은 아니니까.

***

마음속 한켠에 자리한 찝찝함과 상관없이 회의가 끝나갈 무렵에 전령이 도착했다.

“각 함선의 선장과 함장들은 다 모이라는 전언입니다.”

“후우, 알았어. 아인델프, 발드 선장. 함께 이동하지. 나머지는 모두 해산하도록 해. 밤늦게라도 회의가 소집될 수 있으니 모두 긴장 늦추지 말고.”

“알겠습니다.”

서둘러 회의를 마치고 거점의 중심에 위치한 중앙 막사에 도착하니 우리가 가장 마지막인 듯 막사 안은 이미 빽빽하게 사람들이 들어차 있었다.

분명히 전령이 오자마자 출발했는데도 가장 늦었으니, 일부러 전령을 늦게 보낸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그래도 늦은 것은 늦은 것이라 나는 모르는 척 고개를 숙였다.

“나름대로 서둘렀는데도 조금 늦었습니다.”

“어서 앉지. 별동 작전에 대한 대략적인 보고는 베기어 함장에게 들었네.”

“네, 제독.”

자리에 앉으며 살짝 눈치를 보니 베기어가 걱정 말라는 듯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적당히 알아서 잘 포장한 모양이다.

“다 모였으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내일 아침을 기해 우리는 해적 놈들의 마지막 거점을 향해 전면 공격을 감행한다. 수송선들도 후방에서 대기하고 모든 전투함은 최대 무장을 챙겨서 화력을 쏟아붓는다는 생각으로 공격하도록 해. 내일 전투는 승패에 상관없이 마지막 전투가 될 테니까 뒷일은 신경 쓸 필요도 없어.”

웅성거리는 사람들을 관찰해 보니 몇몇 사람은 전혀 당황하지 않는 것이 보였다.

이미 알센더트와 어떤 식으로든 의견을 맞춘 사람들일 것이다.

그 수는 전체의 1/3 정도.

수송선의 선장들은 전투에 관해서는 발언권이 미약하니 얼추 절반 정도가 이미 알센더트에게 동조하는 꼴이다.

물론 지금이 우리가 낼 수 있는 최대 화력을 가진 상태이기는 하다.

추가 지원을 요청하기에는 염치도 없고, 요청한다고 해도 언제 가능할지 기약도 없으니까.

하지만 굳이 저 무식하게 요새화된 곳을 정면으로 공격한다고?

왓킨 갑판장에게 들어보니 해적들의 거점 앞을 막고 있는 섬은 말 그대로 해안포대 그 자체가 되어버린 것 같은데, 그런 곳을 무식하게 공격하면 얼마나 피해가 나올지 뻔하지 않나.

공격을 하기도 전에 일단 서너 척, 많으면 너댓 척은 전투 불능에 빠질 거다.

심지어 그 피해를 감수하고 포격 거리에 진입해도 포신만 빼꼼히 내놓고 있는 적의 포대를 무슨 재주로 맞춘단 말인가.

마지막으로 근접해서 병력을 상륙시키는 것이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작전인데, 그냥 멀리서 눈으로 봐도 그 섬은 지형적으로 대형선의 접근이 어렵다.

결국 수백 미터를 단정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말이고, 그사이에 발생할 피해는 상상도 안 간다.

“제독, 다시 한번 숙고하시지요. 정면 공격은 무리입니다.”

저질렀다.

저질러 버렸어!

하지만 나는 정말 우리 애들을 저런 무식한 작전에 갈아 넣기 싫다고!

“리안 선장? 무슨 말이지?”

서늘한 알센더트의 눈빛이 송곳처럼 파고든다.

심지어 그 옆에 앉은 대머리는 입 모양으로 욕을 지껄이고 있었다.

“아군의 전력이 지금 최고조라는 것과, 토벌 기간이 계속 늘어지는 것에 제독의 마음이 초조한 것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요새화된 해안포대를 함대로 공격하면 얼마나 큰 피해가 나오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실제로 우리도 해안포대로 불리한 상황을 극적으로 역전시키지 않았던가.

하지만 내 말에 알센더트가 차갑게 되물었다.

“그래서 어쩌자는 건가? 계속 이렇게 기다리자고? 자네의 주장대로 주변 탐색이나 하면서? 예전부터 느낀 건데, 리안 선장은 이 함대의 지휘권자가 본인이라는 사실을 자꾸 잊는 모양이군.”

말을 해도 참, 꼭 저렇게 밉살스럽게 해야 할까?

그런데 막상 저 미친 해안포대를 무력화 시킬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차라리 아군 전력이 충분하니 정면에서 공격하는 척하며 섬 뒤쪽으로 인원을 상륙시키는 것은 어떻습니까? 어차피 해안포대가 된 섬은 본거지가 없으면 무용지물 아닙니까?”

“그 생각을 안 해봤을 것 같나? 이미 몇 번이나 섬을 돌면서 확인했지만, 그 작전은 불가능하다고 결론이 났네. 아무런 장비도 없이 대규모 병력이 섬을 가로지를 지형이 아니야.”

“그렇다면 야음을 틈타 공작부대를 해안포대에 상륙시키는 것은….”

“그러니까 대낮에도 맞출 수 있을지 확신이 안 서는 해안포대를 야간에 상대하자?”

“저들도 우리가 잘 안 보일 테니….”

“내일은 보름일세. 우리는 적을 못 봐도 적은 우리가 아주 잘 보일 것 같네만.”

“…….”

답답하다.

그런데 대안도 없이 그저 ‘우리 애들 다치는 게 싫어서 반대!’라고 주장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솔직히 오트라스와 피오렐, 드라이언은 오늘 돌아왔으니 하루나 이틀 정도는 피로를 풀 시간을 줄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그렇다면 하루라도 저희가 재정비할 시간을 주실 수 없습니까?”

“베기어 함장에게 보고받은 바로는 격렬한 전투는 없었다고 하던데, 내가 잘못 알고 있나?”

“하지만….”

“그만, 쓸데없는 말은 그만하지. 리안 선장은 내 명령에 따르기 싫은 모양인데, 그렇다면 계약을 파기하고 돌아가면 되네. 그것까지는 막지 않겠어. 하지만 그대의 주인인 스코타 후작에게 할 말이 궁하겠지. 일이 마무리되면 내가 반드시 이번 일을 가. 감. 없. 이! 보고할 테니까.”

…아, 복어가 먹다 버린 말미잘 촉수 같은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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