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흙수저 선원으로 살아남기-294화 (295/420)

294화. 몰락한 해적의 최후

젊은 남자, 디아즈 에이디엘 남작의 말이 떨어지자 장내에 있던 모든 함장과 선장들이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섰다.

귀족이라는 말에 몸이 절로 반응한 것이다.

그건 나와 알센더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국가를 떠나서 귀족과 평민의 신분 차이는 절대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흠, 좋군.”

모두 자리에서 일어서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확인한 디아즈는 얄팍한 입꼬리를 올리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리고 준비된 자리에 앉더니 고갯짓을 하며 말했다.

“모두 앉지. 본관은 국왕 폐하의 명을 받아 본국 내에서 불법적 군사 활동을 하고 있는 자들을 잡으러 왔다.”

마치 그의 부하라도 된 듯 디아즈의 말에 따라 자리에 앉으려던 일행들의 낯빛이 변하며 소리 없는 눈짓을 주고받았다.

불법적 군사 활동이 뭘 의미하는가?

전제왕권을 행사하는 국가에서 ‘불법적’이란 것은 왕명을 거역한 것과 같은 의미이고, 왕명을 어긴 군사 활동은 보통 반란이거나, 또는 반란이거나, 반란이다.

쾅!

“거, 아무리 귀족 나으리라지만 말이 심하잖소?! 우리가 뭐 그쪽 부하도 아닌데, 무슨 반역이라도 저지르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야!”

웬 미친놈인가 싶어 시선을 돌리니 대머리 바냐도르였다.

어째서 인간이 저렇게 생각이 없을 수 있지?

저런 머리로도 함대장을 할 수 있단 말이야?

베기어가 진절머리를 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바, 바냐도르 함장, 말을….”

기겁한 누군가가 바냐도르를 말리려고 했지만 이미 때는 늦은 후였다.

“난 반역이라는 말을 한 적이 없는데, 혹시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그런 건가?”

빙글거리며 웃는 표정과 달리 섬뜩한 디아즈의 말이 분위기를 꽁꽁 얼려 놓았다.

“아닙니다, 남작님. 반역이라니요? 하지만 불법적인 군사 활동이라는 것은 말씀이 과하시군요. 저희는 어디까지나….”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알센더트가 나서서 대답하자, 디아즈가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한 표정으로 그의 말을 끊으며 물었다.

“흠, 그대는?”

“…토벌대의 지휘를 맡은 볼리야 용병함대의 대장, 알센더트라고 합니다.”

“오, 볼리야 용병함대라면 들어봤지. 그래, 알센더트 제독이라고? 난 사실 그대들을 다 쓸어버리고 돌아가는 것이 편해. 하지만 폐하의 명을 따르기 위해 그대들에게 한 번의 기회를 주는 것일 뿐이다.”

거기까지 말을 마친 디아즈는 좌중을 한번 둘러보더니 못을 박듯이 말했다.

“9월 12일부로 본국과 벨로키나 왕국은 전쟁에 돌입했다. 원칙대로라면 벨로키나 왕국에 협력 중인 그대들 역시 나포의 대상이다. 하지만! 대륙 전체의 공공이익을 위한 해적토벌을 목적으로 움직였다는 점을 감안하여, 폐하께서는 현 위치에서 조용히 퇴거한다면 지금까지 그대들의 죄를 불문에 부치기로 하셨다. 또한 추후 전쟁 중에 벨로키나 왕국이나 쿠샤 왕국에 부역하는 활동을 하지 않는다면 그대들의 안전을 보장한다고 하셨다.”

제발 아니기를 바랬는데 결국 세 나라가 전쟁에 돌입한 모양이다.

심지어 일레드 왕국이 12척이나 되는 분함대를 이쪽으로 빼돌릴 정도로 여유가 있다는 것은 벨로키나 - 쿠샤 연합군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데 굳이 왜 우리를 상대로 이런 자비를 베푸는 것이지?

지금이야 우리도 나름 준비를 하고 있으니 제압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새벽에 처음 조우했을 때 저들이 우리를 공격했다면 우리는 형편없이 패배했을 것이 분명한데.

“하지만 남작님. 저희는 계약을 받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저 해적들을 토벌하지 못하면 저희는 그동안의 전투에서 발생한 손해를 회복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죠. 그러니 하루 정도만 더 기다려주실 수는 없습니까?”

“지금 내 앞에서 감히 본국의 영토를 공격하겠다고 말하는 건가?”

“아, 아닙니다. 그건 아니지만….”

디아즈의 함대를 격파할 자신도 없지만, 만약 승리할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감히 디아즈를 공격할 수는 없었다.

목격자를 모조리 죽이지 않는 이상 디아즈의 함대를 공격한다는 것은 그대로 일레드 왕국을 적대하겠다는 말과 다름없으니, 감히 일개 용병함대나 상선대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나저나 저 디아즈라는 녀석, 꽤나 낯이 익은 얼굴인데 어디서 봤지?

당연히 나는 일레드 왕국 해군 4함대의 부사령관 따위는 알지 못한다.

그보다 일레드 왕국에 4함대가 있다는 사실도 오늘 알았으니 뭐.

추측해 보자면 내가 스코타 후작의 명령으로 시논 섬에 방문했을 때 숨기고 있던 해군 전력이 아마 4함대가 아닌가 싶다.

아, 시논 총독?

그러고 보니 시논 총독의 성도 에이디엘이었지.

다시 한번 디아즈를 살펴보니 눈썹이나 코, 얼굴형이 시논 총독과 닮은 것도 같다.

젊은 나이에 함대 부사령관에 오르는 것은 실력만으로 될 일이 아니니, 시논 총독과 꽤나 가까운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그만! 지겹군. 쓸데없는 말은 그만하지.”

한동안 이어지던 디아즈와 알센더트의 설전은 디아즈의 짜증 어린 목소리로 막을 내렸다.

애초에 힘과 명분을 저쪽에서 쥐고 있으니 지금까지 상대해준 것만 해도 디아즈가 상당히 봐준 것이다.

“마지막 제안이다. 그대들이 해적이라고 주장하는 저들에게 본관이 항복을 권할 것이다. 저들이 항복한다면 본국에서 정당한 재판을 통해 죄의 유무를 확인할 수 있겠지. 설마 본국의 영토에 살고 있는 신민들의 신병을 양도해 달라고 하지는 않겠지?”

“하, 항복이라니요…?”

“그대들이야 어떤 식으로든 해적을 토벌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대들이 해적들을 확실히 쓸어버렸다는 확인서를 내가 직접 써 주지.”

이거구나.

뭐라고 해야 할까?

토사구팽? 증거인멸?

이제 해적연합 따위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데다가 형편없이 세력이 쪼그라들었으니, 훗날 명분상의 걸림돌이 될 만한 녀석을 직접 입막음하려는 것이다.

일레드 왕국은 해적연합과 상관이 없고, 직접 토벌에 가담했다는 것을 보고 알려야 할 눈으로 우리를 선택한 거지.

합리와 불합리를 따지기에 디아지의 기세는 너무 흉흉했고,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것을 알아도 감히 디아즈에게 ‘너는 해적이랑 같은 편이잖아!’라고 떠들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그, 그렇다면 놈들이 항복하지 않는다면 어찌하실 겁니까?”

“감히 폐하의 영토에서 불법적으로 무장하고 있으니 그 죄를 물어 토벌할 것이다.”

“…항복한다면 저희가 그 마을을 불태워도 되겠습니까?”

“똑같은 말을 자꾸 반복하게 만드는군. 본관은 어떤 경우에도 폐하의 영토에 대한 공격을 방관할 생각이 없다.”

“그, 그렇다면 저들의 마을을 제압할 때 저희도 함께 진입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흐음…. 뭐, 그 정도야. 하지만 저 비좁은 곳에 모든 배가 정박할 수는 없으니 다섯 척 정도만 정박을 허락하고, 상륙은 각 선박마다 세 명으로 제한한다.”

“…알겠습니다.”

고개를 숙인 알센더트가 침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

예상대로 일레드 왕국 함대에서 항복을 권하는 사절을 보내자 해적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항복을 청해왔다.

그리고 항복을 받아들인 디아즈 남작은 자신의 함대를 진격시켜 해적의 거주지를 막고 있던 요새화된 섬을 무장 해제시키고, 거주지의 사람들을 한곳에 모아서 관리했다.

“선장님, 오트라스도 정박하라는 신호입니다.”

“웬일이지?”

“의뢰 마무리가 엉망진창이 되었으니 선장님께 잘 보이고 싶은 걸까요?”

나는 오펜의 추측을 듣고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무리 알센더트가 실망했더라도 그건 좀 과하지.

“그렇게까지야 하겠냐. 알센더트의 자존심이 얼마나 강한데. 그냥 주변의 눈치를 보는 것이겠지.”

어찌 되었건 디아즈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아 둘 필요는 있었기 때문에 나는 두말없이 오트라스를 정박시키고 배에서 내렸다.

네이선과 행크가 나를 호위하기 위해 함께 내렸고, 우리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을 향했다.

항복한 포로들이 모여 있는 곳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알센더트를 포함해 낯익은 함장들과 디아즈까지 모여 있는 곳이었다.

“그러니까 이놈이 그 ‘외날의 라프나’라는 말이지?”

디아즈가 시체처럼 쓰러져있는 남자를 발로 툭툭 차면서 물었다.

그러자 그 뒤에 꿇어앉은 덩치 큰 남자가 바로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네, 맞습니다! 사실 해적질은 이놈이 시킨 겁니다! 저희는 죽지 않기 위해 그를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발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남작 나으리.”

이게 무슨 같잖은 연극이야?

외날의 라프나를 직접 수장시킨 사람이 바로 여기에 있는데.

“저런 볼품없는 놈을 라프나라고…. 어휴.”

“…….”

“그렇지, 네이선?”

“…….”

“네이선?”

계속 대답 없는 네이선이 이상해서 고개를 돌리자,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쓰러진 남자를 노려보는 네이선이 보였다.

이놈은 또 왜 이래?

터벅, 터벅.

“야, 네이선! 갑판장! 지금 뭐 하는 거야?”

네이선이 갑자기 사람들을 헤치고 나서는 바람에 내가 깜짝 놀라서 말리려고 했지만, 행크의 말이 나를 멈추게 했다.

“선장님, 저놈 진짜 라프나 같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럴 리가 없다.

분명히 침몰하는 배 옆으로 떨어지는 것을 내 눈으로 봤는데?!

내가 당황하는 사이에 네이선은 벌써 디아즈의 앞까지 나아가고 말았다.

“응? 넌 뭐지?”

이상을 눈치 챈 디아즈가 앞으로 다가온 네이선을 보며 물었다.

디아즈를 호위하는 해군들이 일제히 칼을 뽑아 들었음은 물론이다.

“디아즈 제독님. 저는 라프나를 본 적이 있습니다. 확인해보아도 되겠습니까?”

“호오, 직접 라프나를 본 적이 있다? 기세를 보아하니 실력이 좀 되는 것 같기는 한데….”

“부탁드립니다.”

다행이야, 정신이 아주 나간 것은 아니라서.

그런데 디아즈 저 건방진 놈이 부탁을 들어줄 리가….

“그러지. 본다고 닳는 것도 아니니까.”

있군.

진짜 라프나인 건가, 라프나와 닮은 사람인가, 아니면 디아즈는 이 연극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인가…?

내가 혼란에 빠지거나 말거나 그 자리에 쪼그려 앉은 네이선이 남자의 얼굴을 거칠게 들어올렸다.

“…라프나.”

“…….”

“그런가. 다 네가 자초한 일이지.”

디아즈 앞에 시체처럼 쓰러져 있던 남자에게 말을 할 기력은 있었는지, 녀석과 뭔가 중얼거리던 네이선은 자리에서 일어나 디아즈에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제독. 이 자, 정말 ‘외날의 라프나’가 맞습니다. 저 뒤의 버러지 같은 자에게 배신을 당한 모양입니다.”

“으하하하하, 재밌군, 재밌어. 너, 이름이 뭐지?”

“네이선입니다. 오트라스 호의 갑판장을 맡고 있습니다.”

“그래, 네이선 갑판장. 제독이라, 정말 어감이 좋군. 너, 나를 따를 생각이 없나? 지금 같은 용병 나부랭이로 사는 것보다는 더 멋질 것이다.”

“버러지 같은 놈이라니 말이 좀, 크억!”

뒤에서 무릎을 꿇고 연신 디아즈에게 조아리던 남자가 네이선의 말에 발끈하며 언성을 약간 높이자, 번개처럼 다가온 디아즈가 그 입에 친히 아밍소드를 쑤셔 넣어주셨다.

“벌레 같은 놈이 감히 내 말을 끊어?”

순식간에 장내의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항복을 했으니 저놈은 그러니까 일종의 항장(降將)인데, 가차 없이 그 목숨을 빼앗은 것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고작 자기가 말을 하고 있는데 끼어들었다는 이유로 말이다.

“벌레 놈의 말은 신경 끄고, 어떤가, 네이선 갑판장?”

“죄송합니다, 제가 지켜주기로 약속한 친구가 있어서….”

“친구? 그럼 그 친구도 함께 고용하지.”

“작지만 선단을 이끄는 친구입니다. 제독의 제안은 감사하지만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궁금하군. 그 친구가 누구지?”

나는 별수 없이 앞으로 나섰다.

눈뜨고 네이선을 빼앗길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에이디엘 남작님, 오트라스의 선장 리안이라고 합니다.”

“선장? 상선단을 이끄나?”

“네, 스코타 후작 각하의 밑에서 작은 상선단을 이끌고 있습니다.”

“…스코타 후작이라고?”

갑자기 디아즈의 눈매가 날카롭게 변했다.

망할, 잘못 말했나?

시논 총독이었던 마일러 에이디엘과 스코타 후작 사이에 뭔가 관련이 있어 보여서 일부러 꺼낸 건데.

설마 이번 전쟁을 주도한 게 스코타 후작이라서?

그렇다고 보기에는 지금 당장 전쟁에서 너무 유리한 쪽이 일레드 왕국이잖아.

하지만 이제 와서 ‘말이 헛나왔네요, 스코타 후작이 뭐죠?’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네…. 가신까지는 아닙니다만.”

소심한 변명을 덧붙였지만 일단 내가 수긍을 하자, 그는 묘한 눈길로 한동안 나를 바라보았다.

“너, 혹시 아버님께 후작의 전갈을 전한 적이 있나?”

“네, 그런 이유로 시논 섬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랬나. 너였군. 후후….”

야이씨! 네가 그렇게 웃으면 내 입장이 뭐가 돼?!

“뭐, 보다시피 해적토벌은 끝난 것 같은데? 그대들은 이만 해산하도록 하지. 여기 이놈, 외날의 라프나라고 했지? 이놈은 그대들에게 주지. 이만하면 내가 베풀 수 있는 호의는 모두 베푼 것 같군.”

***

나는 앞서 나가는 알센더트의 마르티엘 호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정말 라프나였어?”

“…네.”

“어떻게 살아남았지?”

“…우리가 떠난 후에 다른 해적선이 그를 건졌을지도 모르죠.”

“거참, 여러모로 대단한 놈이네.”

잠시 마르티엘 호를 바라보던 네이선이 고개를 흔들며 조용히 속삭였다.

“그렇게 대단하면 뭐 해. 결국 저 꼴을 봐. 아까 보니까 눈도 하나 안 보이던데. 그렇게 악명을 떨치던 놈이 고작 부하의 배신으로 저 꼴이 되다니 정말 우습네.”

“그래서 무슨 말을 나눈 건데?”

“그냥 그런 이야기들, 자기가 배신당하지 않았으면 좋은 승부가 되었을 거다, 나와 한 번 더 붙어보고 싶었다. 자신이 없는 오합지졸들이라서 우리가 이긴 거다, 뭐, 그런 말들.”

웃기는 소리다.

라프나 따위가 아무리 정상이었다고 해도 네이선이 이겼을 것이다.

이제 내가 그 경지를 알아볼 수는 없지만, 네이선은 매일 성장하고 있고, 한 번 이겼던 상대를 다시 이기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지 않으니까 말이다.

“신경 꺼. 어차피 죽을 놈이잖아. 마지막 승부는 네가 이겼고.”

“으응.”

그때 옆으로 다가온 그레이그가 내게 질문했다.

“선장님, 그럼 앞으로 일정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일레드 왕국 해군과 대차게 붙어서 깨질 생각이 아니라면 이제 돌아가야지. 라프나를 얻었으니 알센더트도 체면치레는 한 꼴이니까. 앞으로 전쟁이 어떻게 진행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초전에서 박살 난 것으로 추측되는 벨로키나 - 쿠샤 왕국 연합군이 이길 확률은 굉장히 낮아 보인다.

그런데 이건 정말 심각한 문제인 것이, 이대로 전쟁이 끝나면 일레드 왕국의 해상 지배권은 완벽해진다.

해군 전력 2, 3위 국가가 연합해서 덤벼도 1위를 이기지 못한 꼴이니, 이후로 감히 바다에서 일레드 왕국에게 덤비려는 세력 자체가 없을 거다.

한 나라가 바다를 독점하면 당연히 바다를 이용하는 상선들에게 딱히 좋을 게 없다.

그들이 아무리 횡포를 부려도 막을 방법이 없어지니까.

“그것 말고 우리 말입니다. 우리는 계속 알센더트 그자와 함께 움직입니까? 솔직히 의뢰는 끝난 것이니 따로 움직여도 상관없는 것 아닙니까?”

“어? 그렇긴 하네.”

내가 이번 토벌전에 참전한 대가는 다른 용병함대나 상선대와 달리 명시적 계약에 의해 받기로 한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후작의 ‘부탁’에 의해 후작의 이름으로 참전한 형태니까.

따라서 지금부터 따로 행동해도 그리 큰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만약, 정말 만약의 말이지만, 일레드 왕국 해군이 마음을 바꿔서 의용 함대를 없애버리기로 결정한다면, 차라리 따로 움직이는 쪽이 위험을 피하는 방법이었다.

위성으로 우리를 추적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배가 서너 척 없어졌다고 우리를 찾아 헤매지는 않겠지.

“일단 복귀부터 하고 생각해보도록 하지. 보급품도 다시 채워야 하고, 전리품 분배도 받아야 하니 말이야.”

물론 나는 굳이 전리품이 아니더라도 엄청난 수익을 얻었다.

그런데 그건 어디까지나 나만의 정보, 나의 노력으로 얻은 거잖아.

전리품은 별개지.

돈이나 돈이 될 만한 물건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큰 전리품은 배다.

나포한 배들이 적지 않으니 분배를 받아 본토까지 가지고 갈 수만 있다면 상당한 돈이 되겠지.

알센더트가 오트라스와 피오렐 등의 공을 아무리 깎아내리려고 해도 아주 무시할 수는 없을 테니, 나도 한 척 정도는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포한 배를 끌고 가는 것은 상당한 고역이다.

거리가 가까운 것도 아니고 최소한 열흘은 항해를 해야 하는데 그 거리를 반쯤 망가진 배를 예항해서 간다고?

차라리 포기하고 돈을 조금 더 받는 쪽으로 하거나, 욕심 많은 놈에게 그 자리에서 싸게 매각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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