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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흙수저 선원으로 살아남기-298화 (299/420)

298화. 떠나고 싶지 않은 남자

“빨리빨리! 오늘따라 왜 이렇게 느려?!”

“갑판장님, 곧 끝납니다, 조금만 참으세요!”

“에에잇! 나머지는 행크, 네가 해!”

“으악! 갑판장님!”

가관이다.

평소보다 충분히 빠르게 정박을 하고 있는데도 침을 튀겨가며 선원들을 독촉하던 네이선이 참지 못하고 난간에서 부두로 뛰어내렸다.

쿵!

데굴데굴.

“저, 저! 선장님! 아무리 갑판장이라도 이건 문책하셔야 합니다!”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 꼴을 보고 있던 그레이그가 결국 인상을 구기며 소리쳤다.

입항 과정을 총괄해야 할 갑판장이 직무 유기를 하고 이탈했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쩝, 임신한 이후로 딱 한 번 본 마누라와 아이를 보러 가겠다는데 어떻게 말려? 그리고 벌써 뛰고 있잖아. 잡지도 못해.”

“허, 허허, 허허허!”

그레이그가 허탈한 표정으로 헛웃음을 짓고, 나는 일단 그레이그를 달래기로 했다.

“돌아오면 문책은 할 거야. 그것 좀 기다리면 무슨 일이라도 생기는 것도 아닌데 좀 심하긴 하네.”

“그래도 무심한 아비보다는 낫지 않나?”

갑자기 대화에 끼어드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닥터 롱베르가 푸근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아, 닥터. 기분이 어떠세요? 데보라 양을 딸처럼 아끼셨잖아요.”

“그게 좀 애매하네. 괜히 나 때문에 이역만리 타향에서 임신한 그 아이를 생각하면 미안하기도 하고, 그래도 짝은 잘 만난 것 같아서 좋기도 하고… 나도 잘 모르겠군.”

“현문 설치되면 닥터도 가보세요.”

나름 여유를 가장하고 있지만, 정신없이 꾸물거리는 손을 보니 닥터도 꽤나 애가 타는 모양이다.

“오펜, 돌격대장에게 돌격대원 두 명 차출해서 닥터에게 붙여달라고 해.”

“알겠습니다, 선장님.”

옅은 웃음을 머금은 오펜이 빠른 걸음으로 선교를 내려간 뒤, 닥터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자네는 안 가볼 텐가?”

“저도 가 봐야죠. 그 전에 처리할 일이 좀 있어서요. 일등항해사, 손님들은 다 준비시켰나?”

“네, 입항 전에 짐을 싸라고 해 놨습니다. 그런데 인원이 적지 않은데 괜찮을까요?”

“그렇기는 한데, 여기가 아니라면 안심하고 맡길 곳이 없잖아.”

“그냥 델라 항구에 가서….”

“거기서 누구를 믿고 맡겨? 죄다 여자랑 아이들 아니면 노인들뿐인 집단을 말이야. 그렇다고 그들을 지키기 위한 인원을 차출할 수도 없잖아.”

“으음….”

아직 누구에게도 말하지는 못했지만 불안한 부분이 있다.

과연 스코타 후작은 이번 토벌전을 끝으로 나를 자유롭게 풀어줄까?

어쩌면 나를 포함해서 의용 2함대가 전멸하기를 바랐을지도 모르는 사람이?

만약 그가 내게 계속해서 이 전쟁에 끼어들기를 요구한다면 저들을 폰테 섬으로 언제 데리고 갈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기반이 있는 드웰에게 맡기는 편이 낫겠지.

실컷 어렵게 구출해와서 허무하게 잃을 수는 없는 일이니 말이다.

***

내 옆을 따르던 에른스트 촌장이 아련한 표정을 지으며 작게 웃었다.

“허허, 이게 얼마 만인지….”

“뭐가?”

“제대로 된 항구에 오는 것 말입니다.”

하긴, 론 항구에서는 에른스트 촌장 일행을 절대로 항구에 나가지 못하게 했으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아마 아이들과 여자들 중에는 단 한 번도 살던 섬을 떠난 적이 없던 사람도 있겠지.

성인 여자들은 그래도 조심하느라고 최대한 고개를 숙이고 움직이고 있지만, 아이들은 연신 사방을 둘러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나마 시끄럽게 떠들지 않는 것만 해도 아이들로서는 최대한의 인내심을 발휘하는 중일 거다.

“해적질이 무슨 자랑이라고….”

내가 퉁명스럽게 대답했지만, 그는 여전히 허허거리고 웃었다.

“그런데 에른스트 갑판장과는 어떤 관계셨습니까? 저희들에게 해 주시는 것을 보면 딱히 나쁜 관계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만. 그런데 또 해적은 굉장히 싫어하시는 것 같고.”

“…….”

해적은 싫다.

에른트스 갑판장님이 해적이었다는 것도 싫다.

하지만 상대가 살인자라도, 범죄자라도,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가족, 부모, 그래, 아버지.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예전에 아버지랑 같이 나쁜 짓 하고 다니던 친구까지 좋아할 수는 없는 거잖아.

“그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군. 그보다 절대로 옛날 생각하고 사고 치지 마. 그럴 힘도 없겠지만 그랬다가는 진짜 용서치 않을 거야.”

“허허허, 물론입니다, 제독.”

한참을 걸어 드웰의 마을에 도착하자 마을은 난리가 났다.

아마도 내가 올 것을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인데, 내가 호위를 맡은 인원까지 근 80여 명을 이끌고 나타났으니 난리가 날 만도 했다.

“이, 이게 대체 뭔가?”

“드웰 씨, 오랜만입니다. 별일 없죠? 그보다 데보라 양과 아이는 어때요?”

“어, 어? 데보라와 아이는 건강하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뭔가?”

“한 70명쯤 되는데, 묵을 공간이 있을까요?”

내 말에 드웰이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말이 되나? 여기가 무슨 교통의 요지라서 숙박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고, 70명이나 되는 사람이 묵을 곳이 어디 있어?”

“절반이 애들인데 어떻게 안 돼요?”

“아무리 그래도 아무런 준비 없이 어떻게….”

말을 멈추고 잠시 고민하던 드웰이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빈집은 없지만, 적당히 수리하면 되는 집이 몇 채 있긴 하네. 그런데 다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도 바쁜 사람들이라….”

그렇게 말하면서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여자들과 아이들을 힐끔 보았다.

멀쩡한 남자가 있었으면 그 사람에게 집수리를 시키면 되지만 여자와 아이들밖에 없으니 일을 시키기도 그렇고, 대신 수리를 해주기도 애매하다는 뜻이다.

게다가 아무리 마을을 지배하는 귀족이나 권력자도 아닌 드웰 입장에서는 한두 명이면 몰라도 이 인원을 자기 재량으로 받을 수는 없는 일이겠지.

하지만 이럴 때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이 있지.

“이 정도면 되겠어요?”

내가 품 안에서 주머니를 하나 꺼내서 건네주자 내키지 않는 표정을 짓던 드웰의 표정이 약간 밝아졌다.

“그런데 이 사람들 먹을 것은 어떻게 하려는 건가? 하루 이틀이면 몰라도 집을 필요로 할 정도면 그 정도는 아니지?”

“지금 드린 건 리버티 호 용선료. 이건 이 사람들을 겨울까지 맡아주면 드리는 돈.”

나는 품에서 조금 더 작은 주머니를 꺼내서 더 공손하게 건네주었다.

“이봐, 리안. 지금 인원이 몇인데, 헉!”

투덜거리며 주머니를 열어본 드웰 씨가 깜짝 놀라는 것을 보며 나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평소에 보기 힘든 금화가 들어있으니 놀랄 만도 하겠지.

“그 정도면 충분하잖아요?”

“도대체 무슨 짓을 꾸미는 거야? 돈은 어디서 났고?”

“나중에 이야기합시다. 해 지기 전에 이 사람들 임시 거주지라도 만들어야 하잖아요.”

“알았네, 내가 사람들을 좀 불러오지.”

***

“아, 이 아이가….”

놀랍다.

저 조그만 얼굴에 눈, 코, 입이 오밀조밀하게 다 있는 것도 신기한데, 조막만 한 손가락에 말랑한 손톱까지 붙어있다.

“진짜 예쁘지?”

세상에서 가장 바보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네이선이 헤헤거리며 물었지만, 솔직히 예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때까지 어떻게 참았는지 우르타가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리안, 그런데 애기가 원래 이렇게 못생겼어?”

“닥쳐. 애 앞에서 못 하는 소리가 없네.”

아무리 작게 말했다지만 네이선과 거리가 1m도 안 된다.

감각이 기민한 네이선에게 안 들릴 리가 있나.

“우르타, 잠깐 따라 나와.”

“어, 어? 아니, 잠깐만! 왜, 왜 그러는데?!”

네이선에게 끌려 나가는 우르타가 애처로운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그것을 싹 무시하고 닥터와 함께 있는 데보라에게 시선을 옮겼다.

“수고하셨습니다, 데보라 양. 건강하고 예쁜 아이군요.”

“후후, 조금 늦기는 했지만 그래도 애 아빠를 무사히 데려다주셔서 감사해요, 선장님.”

네이선이 무사하지 못할 정도면 아마 복귀를 못 하지 않을까 싶은데….

쓸데없는 생각을 지운 나는 애써 웃으며 닥터에게 물었다.

“닥터, 산모와 아이 건강은 어때요?”

“아주 좋아, 아무런 문제 없네.”

닥터는 시종일관 흐뭇한 미소를 띠며 대답했고, 내 말을 들은 데보라 양은 약간 새침하게 말했다.

“교수님만큼은 아니지만, 저도 이제 이 근처에서는 제법 유명한 의사예요. 설마 제 몸도 못 챙겼을까요?”

“그건 압니다만, 그래도 남의 몸과 자신의 몸이 같을 수는 없는 거니까요. 그런데 아이의 이름은 뭡니까? 아직 못 들은 것 같은데요.”

“아, 그게….”

내 질문에 갑자기 데보라가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피했다.

닥터에게 시선을 옮기자 닥터 역시 내 눈을 피하며 괜히 헛기침을 한다.

아, 설마 이름이 네이선 주니어라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설마 이름이 네이선 주니어는 아니죠?”

말이 좋아 네이선 주니어지, 이름은 그냥 네이선이다.

아비랑 이름이 똑같은 케이스인데, 이거야말로 그 옛날 외부인의 유입 없이 장원 제도가 살아 숨 쉬던 시절에 직업을 대물림하던 구습의 잔재인 것이다.

그리고 요즘 세상에 이름을 이렇게 지으면 아비 되는 사람이 진짜 자식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대놓고 증명하는 꼴이다.

“…그러면 안되나요?”

“당연히 안되죠! 가만 있어 봐요, 내가 이 자식을 당장…!”

내가 잔뜩 화가 나서 네이선을 잡으러 나가려고 하자 데보라가 급하게 나를 불렀다.

“아앗! 잠깐만요! 아니, 아니에요! 그런 이름 아니라구요!”

“네이선이 아니에요?”

“네. 그이도 그렇게까지 이름을 대충 짓지는 않았다구요.”

“어휴, 깜짝 놀랐잖아요. 그래서 이름이 뭔데요?”

“그게….”

“어흠! 참고로 난 괜찮다고 생각하네.”

아, 그래서 아이 이름이 뭔데?!

***

“이거 이렇게 지어도 괜찮은 것 맞아요?”

“내가 조선공이지, 건축업자인가? 그걸 어떻게 알아?”

“아니, 드웰 씨가 섭외한 사람들이잖아요?!”

“나야 필요한 이야기만 한 거지. 저 사람들 말로는 한 달이면 충분하다고 했으니 그렇게 믿어야지 어쩌겠나?”

상식적으로 한 달 만에 지은 집이 정상적일 리가 없을 것 같은데?

“거참, 걱정이 많으시구만. 어차피 십 년, 이십 년 살 집은 아니라고 하지 않았소? 대충 이번 겨울만 나면 된다며?”

갑자기 끼어드는 걸걸한 목소리에 시선을 돌리니 회백색 머리의 고집스러운 눈매를 가진 노인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아, 인사하게. 이쪽이 그러니까, 이름이 뭐더라?”

“계약서에 잉크도 안 마를 시간인데 벌써 이름을 까먹으셨소?”

“이름이 뭐 중요한가?”

민망해하는 드웰의 말에 노인은 가볍게 응수하며 내 쪽으로 몸을 돌려 손을 내밀었다.

“그렇긴 하지. 나는 쿨렌이라고 하오. 그쪽이 이번 공사의 물주신가?”

“네? 아, 리안입니다. 물주는 아니고….”

“어제 입항한 상선들의 주인이라고 하던데?”

“주인은 아니지만 제 선단이기는 합니다.”

“그 말이 그 말 아닌가? 혹시 다음 행선지가 어떻게 되시오? 아니, 그 전에 공사가 끝날 때까지 이곳에 머물 거요?”

쿨렌이라고 자신을 밝힌 노인은 내가 얼떨결에 그의 손을 마주 잡기 무섭게 폭풍 같은 질문을 퍼부었다.

처음 보는 내 행선지가 왜 궁금한지는 모르지만, 딱히 숨길 만한 일도 아니었기에 그냥 대답해주기로 했다.

“우리는 델라 항구로 갑니다. 그리고 집을 짓는 데 적어도 한 달은 걸린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한 달이나 배를 항구에 묶어둘 수는 없죠.”

“에잉. 하긴 그렇지. 움직여서 돈을 벌어야 하는 배가 한 달이나 항구에 정박할 리가 없지. 조금만 일찍 알았으면 이런 푼돈 계약 따위 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오.”

“네?”

“프레티아 왕국의 내전이 끝났다고 해서 그쪽에 일거리가 많을 것 같아 이동 중이었소. 그런데 요즘 전쟁이다 뭐다 배를 구할 수가 있어야지. 겨울은 다가오고 배는 못 구했고 답답하던 차에 일거리가 있다기에 일단 겨울이라도 날 생각으로 덜컥 받은 게 이 계약이오.”

“아하하….”

나는 그저 머리를 긁는 수밖에 없었다.

쿨렌이 이끄는 건축인부들은 대략 20여 명, 여객선은 아니라지만 특별히 싣고 갈 것도 없는 멜라나인에서 돈을 주기만 한다면 태울 수 없는 인원도 아니었다.

물론 론 항구에서 몇 가지 교역품을 사기는 했지만 당장 해적 잔당, 아니, 포로, 아니, 난민? 하여간 원래 있던 인원 70여 명이 빠졌는데 그 정도 공간이 없겠나.

“그럼 이왕 이렇게 된 거 건물 하나 더 지으시죠?”

“하나 더? 겨울이라 작업이 쉽지는 않겠지만… 요구사항은 똑같은 거요? 임시로 머물 정도?”

“네, 그래도 사람이 겨울을 날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해요.”

“그 정도야 뭐. 그런데 아마 진짜 오래는 버티지 못할 거요. 아마 최대로 잡아도 2, 3년? 괜히 생목숨 날리지 않고 싶다면 그 전에 철거하는 것을 추천하오.”

아무리 대충 짓는다지만 2, 3년은 너무한 거 아니야?

말 그대로 대놓고 부실 공사를 하겠다는 거잖아?

“아무리 대충 짓는다지만 2년이요?”

“대충? 젊은 사람이 말을 함부로 하는군. 아무리 시일이 촉박하다지만 그래도 우리가 이 일만 몇 년짼데… 대충까지는 아니오! 다만, 뼈대가 되는 목재가 너무 좋지 않으니 어쩔 수 없소.”

“엥? 드웰 씨? 이게 무슨 말입니까?”

내 질문에 드웰이 살짝 당황하며 말했다.

“원래는 나도 이왕 짓는 건물이니 괜찮게 짓고 싶었는데, 요즘 목재값이 장난이 아니야. 전쟁을 한답시고 큰 항구에서 쓸만한 목재를 죄다 쓸어가고 있단 말일세. 지금 멜라나인 항구의 조선소들도 몇 달째 파리만 날리고 있어.”

드웰의 말을 듣고 보니 이해가 되었다.

원래 건축용이나 함선 건조용 목재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서 전쟁 같은 특수 상황으로 물량이 빨려 들어가면 재수급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하아,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래서 급이 조금 떨어지는 나무를 썼다는 거죠?”

“조금? 솔직히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이 아니었다면 무조건 거절했을 걸세. 저 나무들은 절대로 집에 써서는 안 되는 것들이야.”

이후로 목재의 종류와 건조법에 대해 장광설을 내뱉는 쿨렌을 겨우 떨쳐낸 나는 드웰에게 조용히 부탁했다.

“드웰 씨, 혹시 그 섬에 다시 가실 생각… 은 없죠?”

섬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드웰의 얼굴이 굳어지는 것을 보고 재빨리 말꼬리를 바꿨다.

그러자 표정이 살짝 풀린 드웰이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절대로! 영원히 갈 생각 없네!”

“어제 데리고 온 여자들과 아이들은 그쪽으로 옮길 거라서요.”

“자네 미쳤나? 그런 오지에 여자와 아이들을?”

기함하는 드웰을 진정시킨 뒤 내 계획을 털어놓았다.

“정치적으로 섬을 제가 소유하기는 힘들 것 같아요. 스코타 후작이 좋게 말하기는 했지만 단 한 번도 확실히 ‘섬을 주겠다’라고 한 적도 없고…. 무엇보다 평민인 제가 어떻게 그 커다란 땅을 온전히 소유하겠어요? 그래서 섬에 제 사람을 많이 심을 생각인데….”

내 이야기를 다 들은 드웰은 여전히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나는 믿기지가 않네. 노던테라도 그렇고, 그 섬의 위치가 그렇게 절묘하다는 것도 그렇고, 자네의 그 무모한 계획도 그렇고…. 하지만 이주할 사람을 암암리에 모집하는 정도는 해 줄 수 있지. 걱정 말게. 자네 말대로 이왕 짓는 거, 건물을 조금 더 짓더라도 떠돌이나 이주를 원하는 사람들을 모아보도록 하지.”

“고맙습니다, 드웰 씨.”

“그런데 말이야, 데보라는 어찌할 건가?”

“네?”

“설마 저 불쌍한 아이를 계속 여기에 둘 생각은 아니겠지? 네이선 그 친구가 배를 그만 타지는 않을 것 같고, 솔직히 말해서 자네가 교역항도 아닌 이곳에 오는 게 쉽지는 않지 않나? 차라리 자네가 자주 들러야 하는 델라 항구에 집을 구해주는 게 더 좋을 것 같은데.”

“글쎄요, 그건 네이선이 결정할 문제겠죠. 그리고 아직 애기가 어려서 당장 장거리 여행을 하기에는 무리니까, 당분간은 지금처럼 데보라 양을 부탁드립니다.”

“우리야 뭐, 데보라와 함께 지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

“선장님, 전 이곳에 남겠습니다.”

“응?”

이건 또 무슨 헛소리야?

나는 어이없는 내 마음을 한껏 담아 게론드를 쏘아 보았다.

최근 좀 나아지는 것 같더니 또다시 얼굴이 퀭하다.

“이만 배에서 내리게 해 주십시오. 저, 이제 배 그만 타겠습니다.”

“이봐, 게론드.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배에서 내린다고 하더라도 델라 항구까지는 가야지!”

“…그곳에 가고 싶지 않습니다.”

“회계사! 정신 차려! 자네가 이러면 내가 무슨 낯으로 자네 부친을 뵙겠으며, 시니아 양에게는 뭐라고 말을 전하겠어?”

내 말에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던 게론드가 결국 눈을 질끈 감고는 기어드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냥… 그냥, 죽었다고 해 주십시오.”

“?!”

이 미친놈이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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