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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흙수저 선원으로 살아남기-331화 (332/420)

< <331화> 충성을 사는 방법 >

처참하다.

배 두 척을 털었는데 약탈품을 몽땅 모아봐야 배 한 귀퉁이에 다소곳하게 자리할 정도다.

약탈품을 보는 선원들의 표정도 어둡기 그지없었다.

열흘 넘게 쫓기다가 극적으로 승리를 해서 약탈을 했으면 뭔가 보상이 있어야 하는데, 자기들이 봐도 도주하느라 파기한 대포 값도 안 나오게 생긴 것이다.

약탈 중에 작은 물건을 슬쩍한 놈이 없지는 않겠지만, 보통 이런 경우에 선원들에게 떨어지는 몫은 없다.

“제기랄, 다 해봐야 50만 로스도 안 되겠네.”

내가 푸념을 내뱉자 모여있던 선장들과 간부들이 어색하게 웃는다.

그나마 함장실과 함교, 금고에서 나온 항해 용품들과 몇몇 고가품이 있어서 이 정도지, 나머지 잡동사니들은 가격을 매길 가치조차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게론드 회계사, 지금 자금 여유가 얼마나 되지?”

“현금을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모두 58만 로스 정도 될 겁니다.”

물론 은행에 맡겨둔 돈이야 충분히 여유가 있었지만, 속이 쓰린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교역도 제대로 안 했는데 무슨 돈이 그리 많냐고?

후작에게 받은 돈이 한두 푼이어야지.

사실 전 후작은 속을 알기 어려워서 그렇지, 쪼잔한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당장 재무장이 힘들 정도로 돈이 없다면 몰라도 이럴 때 ‘힘든 상황이니 우리 모두 허리띠를 졸라매고 이 위기를 극복합시다!’라고 하면 인기 없는 고용주가 되는 거다.

그리고 나는 돈 몇 푼보다 사람을 중요하게 여기는 훌륭한 고용주다.

“모든 승조원에게 1,000로스씩, 다친 사람은 2,000로스, 죽은 사람에게는 5,000로스를 지급해.”

인원이 많다 보니 나에게는 큰돈이지만, 막상 그 돈을 받는 개개인에게 1,000로스는 초라한 금액이다.

일반 선원의 하루 항해 수당이 평균적으로 700로스 정도니, 열흘을 넘게 고생한 대가로는 정말 처참하기 그지없다.

그렇지만 단돈 1로스라도 받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상황이 아무리 거지 같아도 부수입은 함께 나눈다는 믿음을 심어 줄 수 있으니 말이다.

“선장님, 그렇게 되면 손실이···.”

“그만. 대포를 파기하건 내 선택이야. 그 선택까지 승조원들에게 책임지라고 할 수는 없어. 선장이니 제독이니, 결국 책임을 지기 때문에 존중받는 거니까.”

나름 비장하게 말을 마친 나는 모여있는 선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다들 고생 많았다! 비록 상황이 거지같이 꼬여서 약탈품은 얼마 안 되지만! 그래도 단 1로스 씩이라도 서로 나눠 가져야 그게 동료 아니겠어? 그러니 금액이 너무 적다고 불평하지 말고, 항구에 기항하면 내가 거하게 쏠 테니 그때까지만 좀 참자고!”

내 말이 끝났지만, 선원들은 웅성거릴 뿐 반응이 영 별로였다.

에이, 쪽팔림을 무릅쓰고 말한 건데 괜히 역효과였나?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

“제독이 최고입니다!”

“선장님! 평생 따라다닐 겁니다!”

“오트라스 만세!”

“리안 제독 만세!”

“와아아아아!”

얼굴에 피가 몰리는 것 같아서 재빨리 돌아서는데 뒤에서 어마어마한 함성이 들려왔다.

나와 눈이 마주친 우르타가 입술을 o자 모양으로 하고 앞으로 쑥 내밀며 양쪽 엄지를 치켜세웠다.

쑥스러운 마음에 짐짓 화난 표정을 지었지만 우르타는 그저 싱글벙글 웃을 뿐이었다.

* * *

“뭘 그렇게 생각하나?”

“어? 닥터?”

“추격전도 훌륭하게 마무리 지었고, 전황도 좋게 바뀔 것 같은데 표정이 왜 그런가?”

“그냥 몇 가지 생각할 게 있어서요. 그보다 그놈은 좀 어때요?”

“아, 그 친구? 운이 좋았어. 장기가 상하지는 않았던 모양이야. 상처만 다 아물면 다시 뱃일도 할 수 있을 걸세. 물론 아무는 데 시간은 좀 오래 걸리겠지만 말이야.”

“휴우, 그나마 다행이네요.”

트레비스 녀석.

악연으로 시작했지만 나름 신경이 쓰이던 녀석인데 죽지 않았다니 다행이다.

닥터가 아무리 열성을 다해 치료하더라도 배라는 곳이 워낙 위생적으로 취약한 공간이라 반쯤 포기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래도 상처가 그쯤 되면 당분간은 배에서 내리는 편이 좋을 거다.

이참에 델라 항구에 다치거나 쉬는 선원들이 대기할 수 있는 공간이라도 하나 만들어 둘까?

다쳐서 지금 당장 쓸모가 없다고 배에서 내리라고 하는 것은 너무 비인간적이기도 하고, 그렇게 평생 고용을 약속한다면 선원들의 충성도도 상당히 올라갈 것 같다.

물론 폰테 섬이 있기는 한데, 다친 사람이 나올 때마다 폰테 섬으로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적당히 하루에 한 끼 정도만 제공하고 치료만 해 주는 정도는 큰돈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았다.

정말 방탕하게 생활한 것이 아니라면 내 배를 어느 정도 탄 녀석들은 돈도 조금 모여있을 테니, 추가로 필요한 음식이나 술, 여자는 자기 돈으로 해결하면 될 거고.

회복이 끝난 녀석들을 위해서 단기로 할 수 있는 소일거리를 알선해줘도 좋겠지.

오스팔트 가문이라면 늘 짐꾼을 모집 중이니 적당한 일거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입항하면 얼마나 머물 생각인가?”

“이번에는 좀 오래 쉴 생각입니다. 생각하고 있는 일도 알아봐야 하고, 선창에 가지고 온 베르엘바도 팔아야 하니까요.”

“오, 이번에 침대에 들어간 풀 말이지? 정말 놀라울 정도로 부드러우면서 탄력이 있더군. 내가 장사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잘 팔릴 거라고 생각하네.”

“수량이 얼마 되지 않으니 고급화 전략을 취하려고 합니다. 교역소에 넘기는 게 아니고 귀족이나 유력자들 위주로 직접 판매하는 거죠.”

“직접?”

“직접은 아니더라도 교역소에 뭉텅이로 넘기지는 않을 겁니다. 돈이 있어도 아무나 쉽게 구할 수 없는 특별함, 고급화 전략의 핵심이죠.”

대답이 없어 닥터를 돌아보니 기묘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는 그와 눈이 마주쳤다.

“어, 왜 그렇게 보십니까?”

“아니, 난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아. 분명히 자네는 어떤 교육시설도 다니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그렇긴 하죠.”

“그런데 말하는 것부터 생각하는 것까지, 도저히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이라고 믿기 어렵단 말이지.”

뜨끔.

“···뭘 또 새삼스럽게. 제가 생각이 좀 많은 편이긴 하죠.”

“흐음, 생각이 많다고 지식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란 말이지. 고급화 전략이라, 아무런 기반 지식 없이 그런 것을 생각해 낼 수가 있다고?”

“에이, 그럴 수도 있죠.”

말하지 못할 것도 없지만 내가 지구라는 다른 세상의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 미친놈 소리밖에 더 듣겠어?

“허허, 알겠네. 그럼 너무 오래 있지 말게. 날이 춥군.”

휘적휘적 멀어지는 닥터의 등을 보고 있자니 짠내 나는 바닷바람이 불어오며 머리가 흩날렸다.

몸이 부르르 떨리는 것을 보니 겨울은 겨울이다.

* * *

“남작님, 항해는 편안하셨습니까?”

“아, 항구관리관. 몇 가지 일이 있었지. 그보다 평소보다 항구가 북적거리는 것 같군? 무슨 일이 있나?”

“그게···.”

대답을 회피하며 시간을 끌던 델라 항구의 항구관리관은 선창에서 올라온 경비대원과 눈빛을 주고받더니 은근하게 말을 걸었다.

“남작님, 잠시 조용히 이야기할 시간을 내주시겠습니까?”

“선장실로 가지.”

나와 그레이그, 게론드와 함께 선장실에 자리한 항구관리관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먼저 말을 꺼냈다.

“어디에서 소문이 흘러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남작님이 놀라울 정도로 부드러운 침구용 내장재를 가지고 온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항구에 모여있는 인파 중 절반은 어떻게든 남작님과 거래를 트려는 사람들이구요. 귀족 가문에서 파견된 사람도 꽤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 이거지!

내가 배짱 좋게 대포를 다 버릴 수 있었던 이유다.

베르엘바는 이미 전대 후작의 은근한 홍보로 인해 방귀깨나 뀐다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알음알음 유명했던 녀석이다.

전대 후작이 생전에 출처까지 밝히지는 않았겠지만, 생각이라는 것을 할 줄 아는 이라면 폰테 섬과 베르엘바, 그리고 나를 연관 짓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쓸데없는 짓들을 하는군. 후작 각하께 보고드리기 전에는 단 한 줄기도 내보낼 수 없으니 헛물켜지 말라고 해.”

“아···.”

항구관리관의 표정에 실망이 내려앉았다.

검문이라는 이유로 나를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사람이 항구관리관이니, 뭔가 딜을 쳐보려고 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무려 후작에게 보고를 해야 한다는데 감히 먼저 침을 바를 수가 있나.

말이 좋아 보고지, 사실상 후작의 허락이 없으면 처분할 수 없는 후작의 소유물이라고 봐도 무방한 것이다.

사실은 조금 다르지만, 굳이 그런 것까지 알려 줄 필요는 없고.

“그래도 자네가 특.별.히. 나를 챙겨준 것도 있고 하니 내 재량으로 한 뭉치 정도는 빼줄 수 있지. 게론드, 나가서 상품 베르엘라 한 묶음을 가지고 오라고 시키게.”

게론드에게 고개를 돌리며 항구관리관이 보지 못하게 눈을 찡긋거리자, 게론드가 씩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선장님.”

역시 똑똑한 놈은 눈치가 빨라서 좋다.

상품이라고 했지만, 분명히 최하급으로 빼놓은 것 중에 하나를 들고 올 거다.

우리는 특급(후작에게 넘길 것), 1급, 2급, 등급외로 나누었지, 상중하로 나누지 않았거든.

“항구관리관도 알겠지만, 상품 자체가 새로운 것이라서 세금이나 가격이 전혀 정해지지 않았어. 그래서 후작 각하께 먼저 보고해야 하는 거고. 한 묶음이면 침대 하나를 채울 정도는 될 거야. 그 정도로 만족하게.”

“아이고, 저야 그저 감사할 따름이죠! 당연히 후작 각하께 먼저 보고하는 것이 순서겠죠. 제가 수하들을 닦달해서라도 옮길 마차를 준비하겠습니다!”

언제 흐렸냐는 듯 항구관리관의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

인간은 대부분 자신이 특별하다고 믿는다.

특히 보통 사람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입장에 있다면 더 좋은 옷, 더 좋은 집, 더 좋은 음식을 원하게 되고, 그것은 결국 남들이 갖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으로 이어진다.

항구관리관도 그런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였다.

오트라스에 오르기 전까지는 그저 그런 신상품인 줄 알았다가, 이제는 줄을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귀족가 심부름꾼들조차 확보하지 못한 신상품이 되어버린 것을 갖게 되었으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상품성이 떨어지는 것을 준 것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남에게 팔 정도의 양은 아니니 분명히 본인의 침대 내장재로 쓸 텐데, 아무리 자랑을 하고 싶다고 해도 다른 사람보고 자기 침대에 누워보라고 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저 침대가 얼마나 부드럽고 탄력 있는지만 이야기하겠지.

어차피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만 이야기할 테니 나중에 풀릴 고급품들보다 품질이 더 좋은지 나쁜지는 누구도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다 옮길 마차는 필요 없네. 견본만 보여드리면 되니 짐마차 두 대만 부탁하지. 그리고 우리가 입항하면 엉뚱한 생각을 하는 놈이 있을 것 같은데 말이야.”

“하, 그런 미친놈이, 아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경비대를 보내서 그런 일은 미연에 방지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맙군.”

내가 슬쩍 웃으며 가볍게 고맙다는 말을 하자 그는 손사래를 치며 웃어 보였다.

“아닙니다, 항구의 치안 유지는 원래 제가 할 일 아니겠습니까? 으하하핫.”

“그래도 잘 부탁하네. 귀족들도 있다니 외압도 적지 않을 거야.”

“남작님이 후작 각하의 봉신이라는 것은 이미 유명합니다. 아무리 귀족분들이라도 후작 각하의 봉신이신 남작님의 재산에 손을 뻗는 정신 나간 사람은 없을겁니다.”

그건 그렇지.

델라 항구에서 후작의 심기를 거스르는 것은 귀족이 아니라 왕족에게도 무모한 짓이다.

“선장님, 가장 괜찮은 녀석들 중에 한 묶음을 빼놓았습니다. 여기로 가지고 오라고 할까요?”

“앗차, 제가 남작님의 시간을 너무 오래 뺏었군요. 전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게론드의 보고에 항구관리관이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꼴을 보아하니 빨리 확인을 하고 싶어서 몸이 단 게 빤히 보였다.

“바쁜 사람이니 오래 붙잡는 것도 무례겠지. 돌아가 보게. 베르엘라의 활용법은 가는 길에 우리 회계사에게 듣게.”

“네, 남작님.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크하하하하핫!”

항구관리관이 떠난 뒤로 계속 얼굴을 씰룩거리던 그레이그가 결국 방정맞은 웃음을 터뜨렸다.

나 역시 피식 웃으며 물었다.

“뭐가 그렇게 웃겨?”

“웃기지 않습니까? 흐흐흐, 제가 배를 타면서 저자가 저렇게 저자세로 나오는 꼴은 처음 봅니다. 이거, 선장님이 귀족이 되니 별 재밌는 꼴을 다 보는군요. 저놈이 거들먹거리던 것을 생각하니 웃음을 참을 수가 있어야지요. 으헤헤헤!”

“실없는 소리. 그보다 약속 잊지 않았지?”

“네? 무슨 약속 말입니까?”

“앞으로 내 명령에 토 달지 않기로 했잖아.”

“아, 그거 말입니까?”

그는 웃음을 멈추고 진지한 표정으로 가슴을 팡팡 두드렸다.

“이래 봬도 한 입으로 두말하는 놈은 아닙니다. 앞으로는 아무리 이해가 안 되는 명령을 내리셔도 믿고 따르겠습니다! 선장님이 없었다면 전 이미 죽은 목숨이었으니 죽어도 딱히 아쉬울 것 없죠!”

“그렇게 말하면 내가 죽으라고 하는 것 같잖아.”

“그게 또 그렇게 됩니까? 하하핫!”

호탕하게 웃던 그레이그가 웃음을 그치더니 다시 진중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선장님이 갑판장과 포술장을 얼마나 믿는지, 아인델프 선장과 오펜 항해사를 얼마나 아끼시는지 압니다. 그들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저도 믿어주십시오. 최소한 그다음 정도는 제가 차지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에이,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내가 일등항해사를 얼마나 믿는데. 자네가 아니면 오트라스를 믿고 맡길 사람이 누가 있겠어?”

“말이 나온 김에 이번에 입항하면 항해사와 숙련된 선원들을 충원하시지요. 지금 상황을 보면 외부로 돌아다니는 선단과 별도로 폰테 섬을 지킬 함대가 필요해 보입니다. 미리 인원을 확보해 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음, 좋은 생각이야. 나도 생각은 하고 있었어.”

그때 문이 열리고 게론드가 헐렁한 소매를 펄럭이며 안으로 들어왔다.

“항구관리관은 갔습니다. 슬슬 움직여도 될 것 같은데요.”

“응, 수고했어, 회계사. 일등항해사는 그럼 입항 준비하지.”

“알겠습니다.”

“그럼 저도 이만.”

“아, 잠깐만. 회계사는 잠깐 기다려봐.”

“네?”

나는 서랍 깊숙한 곳에 숨겨놓은 계산기를 꺼냈다.

“이게 뭡니까?”

“예전에 내가 회계일까지 하려고 했었거든. 그때 우연히 구한 마도구야. 계산을 빠르게 할 수 있는 도구지.”

“계산에 무슨 도구까지···.”

“나도 회계사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알아. 하지만 아무래도 도구를 쓰면 일이 더 편하지 않겠어?”

“글쎄요.”

나는 미심쩍은 표정을 짓는 게론드에게 계산기를 쓰는 법을 보여주었다.

처음에는 시큰둥한 표정을 짓고 있던 게론드의 표정이 점점 진지하게 바뀌었다.

“이, 이건··· 세상에 이런 도구가 있다구요?”

“보시다시피.”

“세상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아무리 게론드라도 다섯, 여섯 자리 곱셈이나 나눗셈은 암산으로 풀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입력과 동시에 값이 나오는 계산기를 봤으니 놀라울 수밖에.

“앞으로 자네가 맡은 일은 점점 늘어날 거야. 간단한 계산과 검산에 자꾸 시간을 쓰게 되면 힘들지 않겠어?”

“설마 이걸 제게 주시려고?”

“응, 세상에 회계사는 많지만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자네뿐이니까. 결국 모든 서류를 자네가 검토해야 하잖아.”

게론드의 눈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똑똑한 사람이니 계산기의 가치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을 터, 그런 것을 선뜻 준다고 했으니 지금쯤 감동의 쓰나미가 밀려들고 있을 거다.

예나 지금이나, 문화권에 상관없이, 심지어 시공을 초월해서 충성도를 올리기 위해서는 돈을 풀어야 하고, 보물을 하사하면 충성도 100을 찍는 것은 국룰이다.

“···정말 감사합니다, 선장님. 이런 귀한 선물을 받을 줄이야.”

“앞으로도 잘 부탁해, 게론드 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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