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4화> 다루기 힘든 칼 >
밖으로 나와보니 쓰러진 나무로 인해 길이 막혀 있었다.
사람은 몰라도 마차가 지나가기에는 무리인 것처럼 보인다.
마부가 마차를 세운 이유도 아마 저 나무 때문이겠지.
아니면 내 이름을 알고 있는 저 건방진 남자 때문이거나.
딱 봐도 귀족은 아니다.
어떤 미친 귀족이 용병 나부랭이들이나 입는 거적때기를 입고 다니겠어?
슬쩍 둘러보니 풀숲에서 속속 모습을 드러내는 남자들의 수는 대략 열댓 명, 뒤쪽이 소란스러운 것을 보니 뒤를 차단한 놈들도 있는 모양이다.
아주 본격적인 습격이라는 말인데, 나라는 것을 알고도 이런 짓을 할 놈이라면···.
···너무 많아서 짐작도 가지 않는다.
젠장, 평소에 착하게 살걸.
짐마차에서 뛰어내린 경비병 여섯 명 중에 두 사람이 이쪽으로 합류했지만, 그래봐야 우리는 앞에 여섯 명, 뒤에 네 명이고, 마부까지 포함해도 고작 열셋에 불과했다.
게다가 싸움에 능숙하지도 못하고 무기조차 없는 마부들과 다리를 절어서 제대로 싸울 수 없는 발드 선장을 빼면 실제 전력은 열 명이 채 되지 않는다.
“뒤에는 적이 얼마나 있어?”
나름대로 나를 호위하겠다고 내 옆에 붙은 항구경비대 중 한 사람에게 묻자, 그는 당황하며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여, 열 명입니다!”
그냥 광고를 해라, 광고를 해.
그나저나 그럼 대충 전력비가 3:1정도 되는 건데, 이거 쉽지 않겠는걸?
네이선이 있었다면 걱정할 일도 아니겠지만, 지금 전력은 객관적으로 봐서 우리가 좀 불리해 보인다.
전대 후작은 꼬박꼬박 호위대도 편성해 주었는데, 지금 후작 놈은 그런 센스가 없다는 것이 천추의 한이었다.
“보아하니 네가 리안이군. 보다시피 네놈들에게 승산은 없다. 곱게 항복하면 고통스럽지 않게 죽여주마.”
‘살려주겠다’도 아니고 ‘죽여주겠다’라니, 항복할 의욕이 안 생기잖아.
내가 한마디를 하려는 순간 한 박자 먼저 치고 나가는 사람이 있었다.
“이놈! 델라 항구경비대 앞에서 감히 칼을 뽑아 들어?! 그리고 이분이 누구신 줄 알고 그따위 망언을 지껄이는 거냐!
대충 돌아가는 꼴을 보니, 대장인 것으로 보이는 덩치 큰 남자가 내가 제지할 새도 없이 튀어나온 경비병의 대거리에 눈에 띄게 당황했다.
“어? 항구경비대? 그런 말은 없었는데?”
뭐야, 이 덜떨어진 놈은?
어리숙한 도적 대장(?)의 대답에 경비병이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멍청한 놈! 지금 당장 저 나무를 치우고 비키면 이번 한 번만 용서해주마. 썩 꺼져!”
호오, 이게 이렇게 쉽게 풀린다고?
내가 살짝 기대를 가지고 그를 노려보자, 그는 뒤에 서 있던 부하들과 잠시 쑥덕거리더니 비장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에잇,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지, 다 죽···!”
“잠깐!”
남자의 전투 명령이 떨어지기 직전에 내가 나섰다.
나무 뒤에 숨어있던 쇠뇌를 든 남자 셋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저쪽에 쇠뇌까지 있다면 소수인 우리는 절대로 불리하다.
“뭐냐! 유언이라도 남기려고? 크크크.”
“멍청한 소리 그만하고, 너 내가 귀족이라는 것은 알고 있어? 감히 왕국의 귀족을 죽이겠다고? 그러고 네놈이 며칠이나 살 수 있을 것 같아?
“어억, 귀, 귀족?! 야, 보르마르! 이건 말이 다르잖아!”
비열하게 웃던 녀석은 내가 귀족이라고 하자 화들짝 놀라며 뒤를 보고 소리를 질렀다.
혹시나 해서 말한 건데, 아주 가지가지 하는구나.
하여간 남자의 외침이 다 끝나기도 전에, 바로 뒤에 있던 눈이 쫙 찢어진 남자가 앞으로 슥 나서며 말했다.
“달라질 게 뭐가 있습니까? 어차피 다 죽이면 그만인데. 항구경비대를 죽이나 귀족을 죽이나 뭔 상관이오? 어차피 우리는 돈만 받아서 잠적하면 되잖수.”
“응? 그런가?”
뭐가 ‘그런가?’야?! 네 머리는 속이 비어 있는 모자걸이냐?!
“아니, 그래도 귀족은 좀···.”
“그래, 귀족을 죽이다니 반드시 잡힐 거야.”
멍청한데다 팔랑귀인 대장 놈과 반대로 다른 녀석들이 동요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내 한 마디가 아주 효과가 없었던 것은 아닌 모양이다.
“귀족이라고 배때지에 칼 안 들어가냐? 어차피 뒤지면 아무도 몰라!”
“그래!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곱게 끝나기는 틀렸잖아! 그냥 다 죽여!”
···물론 모두가 내 말에 넘어간 것은 아니다.
분위기가 흉흉해지자 일행들이 내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베기어 함장이 낭패한 음성으로 조용히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최선을 다하기야 하겠습니다만, 다들 무장이 좀···.”
베기어 함장의 말대로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우리에게 제대로 된 무기가 없다는 것.
실전용은 아니라고 해도 짧은 커틀라스라도 가지고 있는 베기어 함장과 달리 나를 포함해서 나머지 세 사람은 품 안에 들어가는 단도가 고작이다.
예전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후작의 봉신인데 후작을 만나러 가면서 중무장을 하고 갈 수는 없잖아.
하여튼 이따위 무기로는 본래 실력을 발휘할 수도 없었다.
“공격!”
다행히 난감한 질문에 대답할 필요는 없었다.
대장 놈의 공격 명령이 떨어지자 습격자들이 함성을 지르며 돌격해 온 것이다.
제기랄, 도대체 이게 무슨 꼴이야?
전투가 개시되기 무섭게 피바람이 몰아쳤다.
“으악!”
“컥!”
“크윽, 너···.”
한쪽에서 쉴 새 없이 개성 있는 비명이 튀어나왔다.
우리는 아직 칼도 휘두르지 않았는데 말이지.
“뭐, 뭐야?”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의외의 상황에 대장의 당황한 음성이 터지고, 그것은 그의 마지막 말, 즉 유언이 되었다.
원래 목이 잘린 사람은 더 이상 말하지 못하는 법이니 말이다.
순식간에 일곱 명의 목숨이 스러졌다.
그리고 피를 뚝뚝 흘리는 아밍 소드를 쥔 남자가 나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왔다.
고수였다.
칼날이 번쩍거리는 것만 봤지, 그가 휘두르는 칼의 궤적조차 제대로 쫓아가지 못했다.
이 정도 실력자는 알렌 경 이후로 처음, 응?
다른 습격자들처럼 복면을 하고 있던 남자가 입 쪽에 손가락을 가져다 댄다.
만국 공통 바디랭귀지, 닥치라는 말이다.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의문을 도로 집어넣으면서 알아들었다는 표시로 고개를 슬쩍 끄덕이자, 그는 적당한 위치에서 뒤로 돌았다.
그러니까 우리 편에 가담했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다.
“미친놈들, 스코타 후작의 영지에서 델라 항구 경비병을 죽이고 귀족까지 죽이면 걸리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나? 난 이 미친 짓에서 손 떼겠어.”
“저, 저, 배신자 새끼!”
“다들 뭐해! 아직 우리 숫자가 더 많아! 다 죽여버려!”
음, 보통 대장이 죽으면 다 내빼는 게 정상 아니었나?
그러고 보니 뒤쪽의 소란은 영 가라앉지 않는다.
“거기 두 사람! 이쪽은 걱정 말고 뒤에 가서 동료들 지원해!”
“네?! 하지만 남작님!”
“지금 저 친구 실력 못 봤어? 여기는 저 친구 혼자서도 괜찮으니까 빨리!”
“아, 알겠습니다!”
동료에 대한 의리 때문인지, 뒤쪽이 도주하기 쉬울 것 같아서인지, 내 말을 믿어서인지 모르겠지만 경비병들이 몸을 뺌과 동시에 다시 전투가 벌어졌다.
다른 일행들은 영문을 몰라 하는 것 같았지만, 살아남아야 질문도 할 수 있기에 덤벼오는 습격자들에게 각자 무기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발드 선장을 빼면 대충 13:4 정도의 전투였지만 예상대로 전투는 압도적이었다.
전향한 친구의 실력이 워낙 출중해서 혼자서 순식간에 일곱 명의 목숨을 더 끊어버렸던 것이다.
나와 베기어 함장이 각자 한 명, 아인델프가 두 명을 죽이는 사이에 벌어진 일이니, 거의 살인 기계 수준이었다.
30초가 채 지나기도 전에 동료들이 다 죽어 나자빠지자 남은 두 사람은 피범벅이 되어 항복을 외쳤지만, 전향한 친구에게는 자비심이 없었다.
그대로 두 사람의 목을 날려버린 것이다.
그런데 원래 사람 목이 저렇게 쉽게 분리되는 게 아닌데,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건가?
* * *
경비병은 두 사람이 죽고 세 사람이 다쳤다.
막판에 우리가 달려가서 도와주기는 했지만, 10:6으로 싸운 것이니 나름 선방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죽은 두 친구는 너무 안됐지만 말이다.
“이렇게 된 이상 이 근처에서 쉬도록 하지. 나무는 우리가 치울 테니 자네들은 다친 자들의 부상을 보살피게. 그리고 죽은 경비대원들 시신도 잘 챙겨두고.”
“알겠습니다, 남작님. 그럼 저자는···.”
“아, 그에게는 내가 물을 것이 조금 있네. 질문이 끝나면 포박해서 보내주지.”
“넷!”
막판에 이쪽으로 돌아섰다고 하지만 결국 나를 습격하기 위한 그룹에 속해 있던 자였다.
‘우리 편이 되어 반갑군!’이라고 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유일하게 부상이 없는 경비대원과 마부들이 마차 뒤쪽으로 사라지자, 우리 편으로 전향한 남자가 조용히 복면을 벗었다.
“으음.”
“음···.”
“헛, 당신은?!”
“알렌 경, 오랜만입니다. 오늘 일은 고맙습니다.”
발드 선장과 베기어 함장이 불편한 신음성을 흘리고 아인델프가 깜짝 놀랐지만, 이미 예상하고 있던 나는 살짝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전에 비해 너무 마르기는 했지만, 확실히 알렌 경이었다.
처음에 그를 알아보지 못했던 이유는 고작 복면 따위의 문제가 아니라 회백색으로 물든 거친 머리카락 때문이었다.
분명히 몇 달 전만 해도 새치 하나 없던 사람이 왜 반백이 돼버린 거야?
어디서 보약을 잘못 먹었나?
“남작의 말대로 일단 날 포박해서 경비병들에게 보내는 편이 좋겠소. 항구에 도착한 후에는 스펜서 남작이 알아서 잘해주리라고 믿소.”
“잠깐, 알렌 경. 아무리 그래도 목적은 말해 주셔야죠. 내가 어떻게 해주기를 바랍니까?”
잠시 깊은 눈빛으로 나를 보던 그가 당연한 것을 왜 묻냐는 투로 대답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이미 알고 있지 않소? 나를 왕녀님께 데려다주시오.”
그의 말대로 물어보나 마나 한 질문이었다.
이런 중증 집착남 같으니라고.
이런 성격을 가지고 지금까지 용케도 후작에게 걸리지 않고 지냈구만?
“일단 무슨 말인지는 알겠습니다. 확실한 대답은 다음에 만나서 드리도록 하지요. 일단 불편하시더라도 좀 참으시길.”
대충 대답을 얼버무린 나는 아인델프에게 고갯짓을 했다.
그러자 어색한 표정의 아인델프가 쭈뼛거리며 포박용 줄을 들고 알렌에게 다가갔다.
알렌은 아인델프에게 순순히 손을 내밀었지만, 그 손을 묶는 아인델프의 손은 애처로울 정도로 사정없이 떨리고 있었다.
보다 못한 발드가 나섰다.
“아인델프 선장, 이리 주게. 내가 하지.”
“그, 그래 주시겠습니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뒤로 재빨리 물러선 아인델프가 발드에게 줄을 건네주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하하, 아까 너무 긴장했는지 손이 말을 잘 안 듣네요.”
당연히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래서 누구입니까? 이런 멍청한 짓을 지시한 사람이.”
“남작도 어느 정도 짐작은 하는 것 같은데. 보나후드 백작이오.”
“아, 생각보다 발 빠른 놈이군요. 벌써 움직일 줄은 몰랐거든요. 이렇게 무식하게 움직일 줄도 몰랐지만. 그나저나 경은 어떻게 된 겁니까? 습격대에 끼어 있을 줄이야.”
묶여있는 손을 꼼지락거려 약간의 여유를 만들어 낸 알렌이 힘겹게 코를 긁었다.
“나는 기사요. 도망치고 숨는 방법 따위는 배우지 않았지. 하지만 신분이 밝혀지면 곤란한 상황이라는 것은 인정하오. 그때 하필 고위 귀족이 호위를 구한다고 하더군. 그래서 지금까지 용병행세를 하고 있었소.”
선원들의 과거를 잘 묻지 않는 것처럼, 용병 역시 실력만 있다면 딱히 과거를 문제 삼지 않았다.
선원들이야 배를 타고 나가면 무슨 짓을 하건 도망갈 곳도 없는 망망대해라서 맨정신으로는 사고를 치는 미친놈이 별로 없기 때문이었고, 용병들은 의뢰를 받을 때 신뢰라는 부분을 완전히 배제하고 받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건 자존심만 버린다면 알렌에게는 나쁘지 않은 기회였으니 잘된 일이다.
“그 고위 귀족이 하필이면 그 보나후드 백작이었다는 말이죠?”
“그렇지 않아도 남작이 돌아왔다는 소문을 듣고 몸을 빼려던 참이었소. 그런데 타이밍 좋게 남작을 습격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더군. 성공하면 인당 1만 로스. 상대 일행의 수가 10명가량이라니 용병들로서는 눈이 돌아갈 만한 액수였지. 물론 남작의 이름 외에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소.”
그 백작이라는 놈은 도대체 뭘 바라고 일을 벌인 거야?
얻을 수 있는 이득이라고 해봐야 자기 분이 풀리는 정도인데, 그에 비해 감당해야 할 리스크가 너무 크잖아?
귀족끼리 암습과 습격하는 경우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의외로 밝혀진 경우는 많이 드문 편이다.
그리고 밝혀진다면 귀족사회의 비난을 피할 수 없기도 하고.
그것을 모르지는 않을 텐데 이런 짓을 했다? 확실히 제정신은 아니군.
* * *
혹시 모를 2차 습격에 대비해서 습격자들이 가지고 있던 무기까지 챙겼지만, 다행히 아무 일도 벌어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다음 날 항구 경계에 도착하자, 다친 곳이 없는 경비대원이 마차에서 뛰어내려 급히 어디론가 달려갔다.
그리고 잠시 후, 십여 명의 경비대가 합류했고, 잠시 후에는 항구관리관이, 직후에는 치안관이 나를 보러 왔다.
날이 차서 부패 속도는 느렸지만 계속 시신과 함께 다니는 것이 그리 좋지는 않기에 일단 죽은 경비대원부터 수습하라고 지시한 나는 치안관의 안내를 받아 한 고급 술집의 VIP룸에 앉았다.
“많이 놀라셨겠습니다.”
“아니네. 그보다 치안관, 사로잡은 친구 말이야, 내가 좀 데리고 가고 싶은데.”
“네? 갑자기 그건 왜···?”
뜬금없는 내 말을 들은 치안관의 표정에 의문이 떠올랐다.
하지만 나는 그가 긴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빠르게 몰아쳤다.
“대충 이야기는 들었겠지만, 그 친구 덕에 수월하게 일이 풀리기도 했고, 실력도 괜찮아 보여서 말이야. 그렇지 않아도 이번에 후작 각하께서 명령하신 일을 도울 사람이 필요했는데 그자가 적격인 것 같거든.”
“하지만···.”
“문제 될 게 없지 않나? 그는 나를 공격한 것도 아니니까 잡아 둘 이유도 없고.”
“하지만 배후를 캐내야 합니다.”
“배후? 그건 내가 알려주지. 보나후드 백작이네.”
“어엌!”
“배, 백작이라니···.”
내 폭탄 발언에 항구관리관과 치안관의 낯빛이 하얗게 변했다.
귀족들 간의 파워게임과 상관없이 평민들에게 귀족은 접근 불가의 어떤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잘나가는 평민이더라도 그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나?”
“그게···.”
치안관이 난감한 표정으로 눈알을 굴렸다.
습격을 당했으니 치안관의 담당 사건이기는 한데, 상대가 둘 다 귀족이니 골치가 아픈 것이다.
막말로 치안관이 보나후드 백작에게 쳐들어가서 ‘이놈! 오라를 받아라!’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니 서로 좋게 해결하자고. 어차피 그자만 없으면 습격 사실을 아는 사람은 경비대들과 우리밖에 없잖나. 백작은 잊어버리게. 그자는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당연히 백작을 처리할 방법은 없다.
그냥 두 사람에게 이 사건에서 완전히 신경을 끄라는 뜻으로 이야기한 것뿐.
“아닙니다! 남작님이 습격을 당하셨는데 저희가 어찌! 꾸엑!”
눈치 없는 항구관리관이 갑자기 의협심에 불타오르려고 했지만, 옆구리에 혼신의 손가락 찌르기 한 방을 맞고 장렬하게 침몰했다.
그리고 치안관이 되지도 않는 거짓말을 너무 거짓말스럽게 늘어놓기 시작했다.
“하하하하, 이 자가 술이 과한 모양입니다. 남작님 뜻대로 하시지요. 나가는 즉시 오늘 잡은 녀석을 석방하고 기록도 삭제하라 이르겠습니다.”
아직 술병은 따지도 않았지만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솔직히 이런 사람들과 함께하는 술은 별로 마시고 싶지도 않다.
“그럼 자네라도 한잔하지.”
“아, 네, 감사합니다.”
잽싸게 잔을 내미는 치안관 옆에서 억울한 표정의 항구관리관이 자기 잔에 손을 뻗다가 손등을 얻어맞았지만 나는 못 본 척해주기로 했다.
그러길래 사람이 눈치가 있어야지, 어휴.
저런 눈치로 어떻게 항구관리관까지 오른 거지?
* * *
“갑판장, 돌격대장, 인사해. 여기 오늘부터 돌격대에 배속될 발리에.”
네이선의 표정이 형편없이 구겨지고 행크가 똥 씹은 표정을 지었다.
“잘 부탁한다.”
···지금까지 어떻게 안 걸린 건데?
“그냥 대충 그러려니 해, 뱃일은 시키지도 말고. 남들이 물어보면 실력이 좋아서 전문적인 훈련을 시키는 중이라고 해.”
“휴우, 알겠습니다.”
“네, 선장님.”
“조금만 참아줘.”
“으음, 나도 노력하지.”
제기랄, 노력을 할 거면 그 말투부터 좀 어떻게 하라고 이 양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