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5화> 마법사 길드 >
우여곡절 끝에 알렌, 아니, 발리에의 처우를 확정하고 선장실로 향하는데 뒤를 졸졸 따라오는 녀석들이 있었다.
“왜 따라와? 나 피곤해.”
“어? 진짜? 되게 되게 재밌는 소식이 있는데.”
“음, 이번에는 우르타 말이 맞아. 피곤해도 알아야 할 것 같아.”
네이선까지 우르타에게 동조하자 호기심이 일었다.
보통 우르타가 가지고 오는 소식(이라고 쓰고 소문이라고 읽는다)은 쓰잘데기없거나 허황된 내용이라 영양가가 거의 없거든.
“알았어, 일단 들어나 보자.”
선장실에 들어서기 무섭게 술부터 탐색하는 네이선과 달리, 우르타는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기도 전에 입을 열었다.
“은행 있잖아 은행!”
“그래, 은행이 뭐?”
이제 와서 은행이 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말을 하면 일단 한 대 쥐어박으려고 준비하던 나는 이어지는 말에 기가 막혀서 말을 잃고 말았다.
“은행이 마법사야!”
“······.”
이게 무슨 개소리야.
저 문장이 ‘다람쥐는 멀미약이야.’라는 말과 다른 점이 뭔데?
따악!
언제 돌아왔는지 한 손에 술병과 컵을 쥔 네이선이 우르타의 뒤통수를 시원하게 내리쳤다.
“너는 왜 어휘력이 갈수록 감퇴하냐? 내년에는 다섯 살짜리 애랑 비슷해지겠네.”
“왜 때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반격하는 우르타를 요리조리 피하면서 안정적으로 컵에 술을 따르는 묘기를 펼치던 네이선이 끝내 바닥을 드러낸 빈 병으로 우르타를 제압하고 말했다.
“은행이 직접 마법사 길드 설립을 선포했대. 정확하게 말하면, 원래 마법사 길드였는데 지금까지 숨기다가 이제 공식적으로 말했다고 해야 하나?”
“갑자기 마법사 길드라고? 너무 뜬금없잖아.”
“나도 처음에는 주정뱅이들의 헛소리인 줄 알았는데 소문이 너무 구체적이더라고. 심지어 모르는 사람도 별로 없고.”
“자세하게 말해봐.”
나름대로 최대한 차분하게 이야기하는 네이선과 맞은 것을 잊었는지 신나서 추임새를 넣는 우르타의 이야기를 종합해보자면 대충 이런 이야기다.
우리가 출항한 이후 보름쯤 지나서 갑자기 프레티아 왕국 동남부의 린드넬이라는 도시 근처에 거대한 하얀 탑이 생겨났다고 한다.
당연한 상식이지만, 원래 건축물의 높이가 높을수록 건축 시간이 늘어난다.
그래서 그 탑은 상식을 파괴한 존재였다.
소문대로라면 구름조차 뚫어버릴 정도로 높은 탑이 하루아침에 나타난 꼴이니까.
애초에 지금 대륙의 건축기술로는 그 정도 높이의 탑을 세울 수도 없다.
문제는 이 기이한 현상을 두고 은행에서 미리 준비라도 한 듯이 그 탑은 ‘지혜의 탑’이며, 마법사만 출입할 수 있고, 앞으로는 마법사 길드인 은행에서 관리하겠다고 공표했다는 부분이었다.
마법사가 없는 세상에서는 은행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있던 마법사 길드가, 마법과 마법사가 나타나면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고 보는게 옳을 것이다.
물론 은행은 여전히 은행업을 하고 있지만, 갑자기 나타난 마법사 길드가 과연 대륙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요즘 세간의 최대 관심사라는 것이다.
덕분에 전쟁 이야기가 쏙 들어갔을 정도라고.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제먼 씨를 만나고 오는 건데.”
“아, 맞다! 제먼 아저씨 마법사라고 했잖아! 뭔가 알지 않을까?”
“그런데 왜 제먼 씨를 안 만난 거야? 그분 성격이라면 네가 왔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이야기를 하려고 널 불렀을 것 같은데.”
네이선의 의문에 나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제먼 씨는 후작 저택에 있잖아.”
“어, 지금 네가 다녀온 거 아냐?”
“지금 후작이 왜 저택에 있겠냐. 스코타 성에 있지.”
“아!”
“응? 왜?!”
내 말을 듣자마자 상황을 이해한 네이선과 달리 우르타는 진짜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얘는 진짜 나이를 먹을수록 지능이 떨어지는 것 아닐까?
* * *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나는 일단 내가 직접 소문을 확인해보기로 하고 후작과 있었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으음, 쉽지 않겠는데.”
“그냥 안 하면 안 될까?”
“거절하면 아마 섬을 빼앗길 거야. 솔직히 지금은 후작과 맞서는 것은 불가능하잖아. 나도 딱히 내키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어.”
내 말을 들은 네이선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그래도 무리야. 아무리 그래도 우리 전력으로 여섯 척과 싸우는 것은 힘들다고. 이긴다고 해도 피해가 얼마나 될지 몰라.”
“아, 맞다! 그 티벡 상선단이면 1,000톤도 넘는 대형 상선이 세 척이나 있잖아. 그놈들이라면 대포도 엄청 많이 실을 수 있을 텐데?”
“그래, 나도 그게 걱정이다.”
우리 선단은 대략 600~700톤 수준의 중형 선박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다면 동일한 무장을 했을 때 1,000톤이 넘는 대형 선박 세 척만으로도 우리를 화력에서 압도할 수 있다.
그런데 거기에 우리와 비슷한 수준의 중형 선박 세 척까지 있으니, 실제 전력은 2배를 훨씬 웃돌게 되는 것이다.
물론 노려볼만한 구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건 조금 더 정보를 얻고 난 다음에 생각해보자.
“걱정만 할 게 아니고 뭐라도 해야지!”
태평한 표정으로 밉살스러운 말을 하는 우르타를 때릴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데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슬쩍 열렸다.
“아, 선장님. 일등항해사입니다.”
“그레이그? 무슨 일이야? 일단 들어와.”
선장실로 들어온 그레이그는 우르타와 네이선을 보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
“갑판장과 포술장이 벌써 이야기 한 모양이군요.”
“아, 그 마법사 길드 이야기라면 이미 들었어. 혹시 다른 할 말이 있나?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면 내일 회의 때 이야기하지. 그렇지 않아도 피곤해서 이놈들을 쫓아낼···.”
“마법사 길드요? 그건 우리와 별 상관이 없지 않습니까? 어제 찾아왔던 항해사들 이야기입니다만.”
“응?”
내가 의문을 담아 두 놈을 바라보자 재빨리 눈을 피하는 녀석들.
이 새끼들, 알고 있으면서 그런 이야기를 먼저 안 했다고?
“둘 다 나갓! 이 자식들이 쓸데없는 이야기만 잔뜩···!”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두 사람은 바람 소리가 들릴 정도로 도망갔고, 호탕하게 웃어 재끼는 그레이그만 남았다.
“하하핫, 너무 화내지 마십시오. 두 사람은 지금 선장님의 친구로 왔던 것 아닙니까? 이런 내용을 보고하는 것은 제 일입니다.”
“그렇기는 해도 괘씸하잖아.”
“그보다 다른 선장들 표정이 썩 좋지 않던데 무슨 일이 있습니까?”
“으음, 후작이 시킨 일 때문인데, 그 이야기는 내일 다 모인 자리에서 하자고. 모두 설명하자면 좀 말이 길어지거든. 그보다 항해사라니 무슨 말이야?”
내 질문에 그레이그가 품에서 종이 몇 장을 꺼냈다.
“우리가 입항하기 얼마 전에 탐험선 에이벌리 호가 돌아왔다고 합니다.”
“들은 적이 있어. 마다카트 섬 북쪽에 거대한 섬이 있다는 소문의 진위를 확인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오, 기억하고 계시는군요. 하긴, 선장 베일리건은 꽤 유명한 탐험가죠.”
“그런데 그게 항해사랑 무슨 상관이야?”
“베일리건 선장이 죽었답니다.”
“엥? 그 사람 아직 팔팔할 나이일 텐데?”
“세이렌의 유혹에 빠졌다, 인어에게 홀렸다는 둥, 별말이 많습니다. 중요한 건 항해 중인 배 위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거죠.”
“바다에 빠지는 걸 본 사람도 없고?”
“네, 덕분에 저주를 받았느니 하면서 항구에 복귀하자마자 선단이고 선원이고 뭐고 다 흩어진 모양입니다. 배를 댄 선주들은 포기를 외치며 배를 회수했구요.”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항해 중인 배 위에서 사람이 사라지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실수로 빠지는 경우도 있고, 선원들 간의 불화로 인해 타의에 의해 빠지거나 살해당한 후 버려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이 간부, 더 나아가 선장쯤 되면 거의 불가능하다.
선상 반란이라는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아무런 사고도 없이 배 위에서 선장이 실종되는 경우는 들어본 적도 없다.
“흐음, 선원들이 선장을 상대로 손을 쓰기는 힘들었을 거고, 간부 중에 누군가가 장난을 쳤을까?”
내 말에 그레이그가 자기 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자신 있게 말했다.
“하하, 제가 만나본 자들은 그런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도 도대체 영문을 알 수 없다고 하더군요. 자신들도 혹시 선원들 중에 누군가가 일을 꾸미나 싶어서 복귀하는 내내 잠도 제대로 못 잤다고 합니다.”
왜 갑자기 다른 이야기를 하나 했더니, 항해사들이 하필이면 그놈들인가?
“그러니까 방문한 항해사라고 말한 사람들이 그 에이벌리 호의 항해사들이야?”
“네,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결론적으로 자신들은 탐험가고, 노던테라를 발견하려고 한다는 선장 밑에서 일하고 싶다는 겁니다.”
“갑자기 노던테라?”
“네, 이미 항구에선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그 마법사 탑? 그 이야기에 묻히기는 했지만 폰테 섬과 선장님의 노던테라 항로 개척에 대한 이야기는 술집 여급도 알더군요.”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소문이라는 것은 저절로 생기기도 하지만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흘리기도 한다.
노던테라에 대한 이야기는 명백히 후자일 것 같은데···.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하는 거지?
가장 먼저 떠오르는 용의자는 후작이었다.
하지만 나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 만나 본 후작은 노던테라는커녕 개척이니 개발이니 하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던 것이다.
폰테 섬을 군사기지로 만들어야 한다는 사람인데 말 다했지 뭐.
게다가 그가 관심이 있다고 해도 이런 소문은 그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는 사람이 많을수록 방해하거나 숟가락을 얹으려는 사람만 늘어날 테니까.
나는 일단 의문을 접어두고 손을 뻗어 그레이그가 꺼낸 종이 뭉치를 당겨왔다.
“이게 그 친구들 서류인가? 그래서 자네는 이 친구들을 고용했으면 하는 거지?”
“물론입니다. 탐험선에 탄 경력이 많으니 실력은 충분할 테고 앞으로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하지만 일등항해사. 베일리건 선장이 사라진 이유가 밝혀지지 않았다며. 솔직히 제일 의심스러운 자들이 바로 배의 간부들 아냐?”
“그럴 녀석들이 아닙니다. 제가 다 만나보고 술도 마셔봤거든요.”
“어제 왔다고 하지 않았어?”
“네.”
“그러니까 만난 지 이제 하루 된 거잖아?”
“하하, 사내끼리 하루는 무슨, 한 시간이면 친구가 되기에 충분한 시간 아닙니까? 선장님도 직접 보시면 바로 이해하실 겁니다.”
그게 무슨 헛소리야?
난 지금 그레이그 당신도 이해가 안 되는데.
* * *
정신없는 밤이 지나가고 새벽이 되었다.
피곤하다면서 왜 새벽에 일어났는지 의문이 들었다면 당신의 사고력은 매우 정상이다.
나도 내가 이 새벽에, 이제 막 해가 뜨기 시작해서 가장 추운 이 시점에 왜 일어나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되거든.
“이게 도대체 무슨 난리야?”
나를 깨운 가빈이 난처한 표정으로 연신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단잠을 깨운 죄는 괘씸하지만, 상황을 보니 나를 깨우지 않고는 해결이 되지 않을 것 같기는 했다.
실제로 내 옆에는 답답한 표정의 그레이그를 비롯해 간부들이 모조리 집합해 있었다.
야간 당직이 아마 오펜이었을 테니 다들 나보다 먼저 불려 나온 것이다.
“쩝, 가능하면 제가 해결하려고 했습니다만, 저 개자ㅅ, 아니, 귀족 놈들이 도대체가 말을 들어 처먹지 않습니다.”
그레이그의 말을 흘려들으며 상황을 보니 한숨이 나왔다.
그의 말대로 여기저기에 보이는 고급스러운 복장의 인간들이 한두 놈이 아니었다.
수행원과 하인, 짐꾼들에 짐마차, 짐수레 등 별걸 다 가지고 와서 부두가 콩나물시루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빽빽했다.
그들끼리도 자리를 두고 치열하게 말싸움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었지만, 부두 입구 쪽에도 다른 배의 보급물자로 보이는 짐수레와 짐꾼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었다.
딱 봐도 하늘 같은 귀족 나으리들이 부두를 점령하고 있으니 차마 말도 못 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꼴이다.
오늘 아침 출항이 예정된 선박에 물건을 배달하지 못한 상인도 골치가 아플 테고, 물자를 보급받지 못해 출항 일정을 늦춰야 할 판인 선장들도 미칠 노릇이겠지.
“저 인간들, 베르엘라를 사겠다고 모여든 거야?”
“네, 한참 전부터 하나둘 모이더니 지금은 이렇게···.”
“도대체 왜 싸우는 건데?”
내 질문에 돌격대장 행크가 졸음이 덕지덕지 묻은 얼굴을 구기며 대답했다.
“그게, 자리싸움이랍니다.”
“자리싸움?”
“선장님과 먼저 교섭할 권리를 가진 게 누구냐를 가지고 싸우는 거죠.”
얼핏 생각하면 먼저 온 순서대로 하면 되지 않나 싶지만, 귀족들에게 선착순은 없다.
아무리 빨리 왔어도 뒤에 온 놈의 힘이 더 세면 알아서 기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쎈 놈부터 쭉 줄을 세우면 되지 않냐고?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귀족의 힘이라 함은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정치력, 권력, 금력, 군사력에 더해 모시는 군주의 위상, 지리적, 정치적 입장 등 별별 요소가 다 섞여 있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나를 봐도 그렇지 않나.
고작 벼락출세한 단승 남작 따위가 무슨 힘이 있겠어?
내 힘의 절반은 내가 이끄는 선단이고, 나머지 절반은 스코타 후작의 봉신이라는 위치에서 나온다.
그러니까 나를 습격하라고 사주한 멍청한 백작 놈의 경우 나라는 사람을 눌러버리는 것은 일도 아니지만, 감히 스코타 후작의 봉신을 핍박할 힘은 없는 것과 같다.
“일단 길부터 만들자. 지금 보급 못받고 있는 다른 배들은 무슨 죄야? 일등항해사, 저기에 있는 귀족들에게 선원들을 보내서 ‘바다뱀의 노래’로 모이라고 해. 수행원은 각 두 명씩. 내가 아침··· 그래, 아침 식사에 초대했다고 하고.”
“이 시간에 말입니까?”
“귀족들은 그런 거 좋아해, 그냥 그렇게 해.”
“네에···.”
“그리고 바다뱀의 노래에도 사람 보내서 귀족 나으리들과 그 수행원들이 식사하실 테니 준비 좀 해달라고 하고. 대충 60인분쯤 하면 되겠네. 이른 시간이지만 웃돈 좀 얹어준다고 하면 해줄 거야.”
그레이그가 알아들었다는 표시로 고개를 살짝 숙이고 물러서자 나는 게론드를 불렀다.
“회계사는 창고에서 각 품질별로 샘플 서너 개씩 만들어 줘. 그리고 각 함선에 적재된 수량이 표시된 서류도 준비해주고.”
“알겠습니다.”
“그리고 갑판장은 각 창고 경계에 만전을 기하고 각 함선에 같은 지시사항 전달해. 그리고 각 함선장과 회계사는 모두 바다뱀의 노래에 모이라고 하고.”
지시를 마친 나는 코트 자락을 여미며 중얼거렸다.
“하여간 별 볼 일 없는 것들이 온갖 민폐는 다 끼친다니까. 저런 놈들을 고객님이라고 존중해줘야 하는 내가 불쌍할 지경이네.”
* * *
“오늘은 말썽 피우면 진짜 가만 안 둔다.”
“말썽? 내가? 아니, 제가요? 전 말썽 따위 피우지 않는데요?”
과장된 표정으로 부정하는 우르타의 눈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이 자식은 도대체 뭘 기대하고 있는 거야?
“그런데 선장, 아니, 남작님. 귀족들의 식사 초대는 그, 저택이나 성, 이런 데서 하는 것 아닙니까? 위치가 좀···.”
급하게 돌격대원 네 명으로 편성된 호위대의 대장을 맡은 행크가 주의 깊게 사방을 살피며 물었다.
내가 돌아오는 길에 습격을 당한 것은 알만한 녀석은 다 아는 일이라서 행크가 평소보다 더 긴장한 상태였다.
이왕이면 네이선을 데리고 오고 싶었지만, 내가 없는 오트라스를 지킬 일등항해사와 무력으로 보해줄 네이선을 뺄 수는 없었다.
베르엘라를 사고 싶은 귀족이 내가 식당에 모이라고 한 이들이 전부일 리가 없잖아.
...그리고 알렌도 걱정이 되고.
“나는 저택도 성도 없잖아. 그렇다고 귀족 나으리들을 갑판에 모아놓고 쉽비스킷을 던져줄 수도 없고. ‘바다뱀의 노래’ 정도면 귀족들도 가끔 찾는 고급 식당이니까 괜찮을 거야.”
“그렇기는 합니다만.”
행크는 애매한 표정으로 입을 닫았고 잠시 후 고급스러운 천 뭉치(안에 베르엘라가 들었다)를 소중하게 안고 있던 게론드가 조용히 속삭였다.
“귀족들을 상대로 경매를 여실 생각이십니까?”
“호, 눈치챘어?”
“그렇지 않고서야 굳이 저들을 한자리에 모을 필요가 없으니까요. 경매를 하지 않으려면 차라리 선장님께 도움이 될 것 같은 사람부터 하나씩 만나는 게 낫죠.”
“흐흐흐, 어차피 잔챙이들이지만 귀족이라고 거들먹거리던 것들에게 거하게 한 방 먹이면서 돈도 쏠쏠하게 챙길 수 있을 거야. 회계사가 잘 보조하라고.”
“이런 면을 보면 확실히 선장님이 젊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물론 판단력과 임기응변도 대단하지만 말이죠, 제가 어렸을 때는···.”
“회계사, 나보다 몇 살 많지도 않잖아.”
고작 나보다 한 살인가 두 살이 많은 회계사의 어이없는 ‘라떼’발언에 제동을 걸자, 그가 머쓱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그가 소중하게 안고 있는 천 뭉치는 1급으로 분류된 베르엘라가 들어있는 것으로 샘플도 딱 한 개만 준비해 왔다.
내가 이런저런 설명을 하지 않아도 내 의도를 알아서 챙기니, 확실히 게론드가 인재는 인재였다.
계산기를 준 것이 전혀 아쉽지 않아, 음음.
제법 밝아진 항구를 배경으로 저 멀리 익숙한 얼굴의 선원이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내 앞까지 전력 질주를 하다시피 달려온 선원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겨우 준비가 끝났습니다. 지금까지 식당에 들어온 귀족은 총 8명입니다.”
“고작 8명?”
“네?”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힘들게 뛰어온 선원에게 은화 하나를 튕겨주었다.
“아냐. 준비한 동료들과 맥주라도 한 잔씩 마셔. 수고했어.”
“감사합니다, 선장님.”
반짝이는 은화에 표정이 밝아진 선원이 떠나고 나는 아주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열 발자국쯤 갔을까, 참다못한 우르타가 입을 열었다.
“선장님, 어디 아프세요? 왜 이렇게 천천히 걸어요?”
“이봐, 포술장. 원래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하는 법이야.”
“으응?”
“모르면 그냥 따라오기나 해.”
모처럼 비린내와 짠내가 섞인 항구의 공기가 상쾌하게 느껴진다.
바람에 돈 냄새가 섞여서 그런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