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1화> 수준 차이 >
“이게 도대체 무슨···.”
“우와! 선장님, 봤어?”
존대를 하든가 반말을 하든가 하나만 하라고 이 자식아!
그보다 이게 무슨 난장판이야?
소리를 쫓아 온 곳은 선수에 위치한 수련실이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그토록 찾아 헤매던 돌격대장 행크를 비롯한 돌격대원들이 입을 헤 벌린 채 한 쪽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리고 하얀 옷자락, 아아악! 사제들이 왜 여기에 있는 건데?!
그리고 그들이 바라보는 곳에서는 정신없는 공방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제 나름 칼질에 자신이 붙었지만, 그런 내 눈으로도 쫓을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휘둘러지는 목검의 잔상이 현란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묵직한 타격음이 들리더니 한 인영이 엄청난 속도로 튕겨져 나간다.
쿠우우웅!
또다시 배를 울리는 진동음이 들려왔다.
“···크으윽.”
비칠거리며 일어서는 네이선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럽다.
뭐, 연약한 인간의 몸으로 단단하게 보강된 수련실의 벽과 강도 테스트를 했으니 당연한 일이기는 한데···.
아니지, 어떻게 하면 인간의 몸이 벽에 부딪혔다고 배 전체가 울리는 건데?!
“세상에, 로쉬암 사제님 보셨어요? 저분은 몸이 강철로 되어있는 모양이에요!”
“허허, 그러게 말이다. 보통은 어디가 부러져도 단단히 부러졌을 것 같은데.”
“사제님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우리 갑판장이 외날의 라프나도 때려잡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갑판장도 못 이기는 저 사람은···.”
옹기종기 모여있는 돌격대원들 사이에 낀 이질적인 사제복 둘.
돌격대원의 친절한 설명에 두 사람이 감탄의 표정을 숨기지 않는다.
억지로 고개를 돌려보니, 네이선보다는 낫지만 그래도 꽤나 낭패한 모습의 알렌 경, 아니, 발리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바닥을 몇 번 구른 듯 옷은 형편없이 구겨지고 지저분했으며,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낭패감이 떠올라 있었다.
그리고 그 알렌, 아니, 발리에를 그 지경으로 몰아붙인 네이선은···.
“그만, 그만! 지금 뭐 하는 겁니, 거냐!”
도저히 말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겨우 몸을 일으키기는 했지만 멀리서 봐도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이 이미 쓰러지기 직전이다.
내가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나서자 팽팽하던 긴장감이 겨우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발리에는 나를 보고 말없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자연스럽게 연습용 칼을 내렸고, 네이선은 허둥지둥 자세를 풀며 머리를 긁으려다가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 팔을 내렸다.
“서, 선장님. 그러니까 이게···.”
“그만, 갑판장은 지금 바로 의무실로 가봐. 그리고 발리에.”
“···으음, 선장··· 님, 왜 부르시··· 십니까?”
아오, 연기를 하려면 그 표정부터 좀 어떻게 하라고!
내가 앓느니 죽지, 죽어!
“후우, 발리에는 나를 따라오고, 나머지는 해산. 돌격대장은 여기 정리 좀 해. 아, 선교에 사람 보내서 별문제 아니라고 전하고.”
“알겠습니다.”
두 사람의 공방에 정신이 팔려있던 행크가 내 존재를 눈치채고 찔끔하더니 부랴부랴 내 지시를 수행했다.
그리고 말을 잠시 끊은 나는 민망한 표정으로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로쉬암 사제와 채피 견습 사제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저, 사제님들. 제가 두 분의 행동을 구속하려는 것은 아닙니다만, 배는 생각보다 위험한 곳입니다. 두 분이 다치시기라도 하면 제가 입장이 매우 곤란하니 꼭 선원을 대동해 주셨으면 합니다.”
“허허허, 미안합니다, 선장님. 이 녀석이 궁금한 것을 못 참는 바람에 그만.”
“우와아, 사제님! 사제님도 좋다고 하셨잖아요! 왜 나만···!”
“어허, 조용히 하지 못하겠느냐!”
입을 삐죽거리는 채피 견습 사제를 보니 절로 머리가 아파 왔다.
왜 이 배에는 사고뭉치만 모이는 것 같지?
* * *
“알렌 경.”
“그게··· 미안하오, 스펜서 남작.”
“아니, 제가 어려운 부탁을 한 것도 아니잖아요? 그냥 눈에 띄지만 않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입니까?”
한숨을 동반한 내 질책에 알렌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이보시오, 스펜서 남작. 내 비록 이 지경이 되었지만, 기사의 본분은 잊지 않았소. 어떻게 기사도 아니고 실력도 모자란 자에게 가르침을 받는단 말이오?”
“그럼 그냥 가만히···.”
“그자가 먼저 도발했소.”
“당연히 도발을 했, 네? 뭐라구요?”
“갑판장이라는 자가 먼저 도발했다는 말이오.”
“어···.”
네이선 이 미친 새끼가?
실력이 좀 늘었다고 눈에 뵈는 게 없는 건가, 썩어도 준치라고 했다.
저 알렌 미우라프가 어떤 인간인가?
예전에 들었던 테일러의 말에 따르면, 몇 년 전만 해도 전 대륙에서 내로라하는 강호 중의 강호였다.
아무리 소국이라지만 무려 일국의 근위기사단장 후보였다고.
한참 알렌이 이름을 날리고 있을 때 고작 얼치기 선원에 불과했던 네이선이 상대가 될 리가 없···.
나는 다시 한번 알렌의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선장실까지 오는 길에 옷매무새를 고치기는 했지만 제법 낭패한 모습이 여실하다.
그리고···.
“경, 원래 왼손잡이셨습니까?”
“으음.”
알렌의 얼굴이 살짝 상기되며 급히 오른손을 숨긴다.
하지만 이미 나는 다 보았다.
그의 오른손에 간헐적으로 작은 경련이 일고 있는 것을 말이다.
나는 굳이 그 사실을 지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서로 알 수 있는 것이 있는 법이지.
알렌은 대단한 사람이다.
세상에 귀족은 한 줌에 불과하고, 그 한 줌 중에서도 기사는 일부이며, 개중에 진짜 기사라고 할만한 이는 더 적다.
하지만 그래도 상당한 수의 기사들 중에서 실력으로 최상단에 위치했던 남자가 알렌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칼을 잡은 지 고작 10년도 되지 않은 네이선이 저만큼이나 몰아붙인 것이다.
칼질을 제대로 배운 적도 없는데도.
만약 네이선이 어려서부터 체계적인 검술 훈련을 받았다면···.
“후우, 어찌 되었건 앞으로 이렇게 요란스러운 일은 좀 피해주십시오. 지금 경의 정체가 탄로 나면 경과 나만 죽는 정도로 끝나지 않습니다. 당연히 폰테 섬에 있는 사람들도 무사하기 힘들겠죠.”
나를 보는 알렌의 눈에서 섬뜩한 기운이 흘러나온다.
바보가 아닌 이상 내가 말한 ‘폰테 섬에 있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왕녀님이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을 테니.
강렬한 눈빛에 살짝 움츠러들었던 나는 바로 어깨를 폈다.
노려보면 어쩔 건데?
그는 왕녀님을 다시 보기 위해서 무조건 내게 엎드려야 할 입장이다.
“그자가 더 이상 도발하지 않는다면.”
알렌이 나름 최대한 양보한다는 듯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지만, 나는 이렇게 대충 끝낼 생각이 전혀 없다.
만약 저 알렌 놈의 정체가 밝혀지면 후작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않나.
이건 후작이 알렌과 왕녀님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후작가의 자존심 문제다.
그런 상황이 되면 그냥 일레드 왕국으로 망명하는 것을 고려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일레드 왕국에서 망명을 받아 준다면 말이지.
“이미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절. 대. 로! 다른 사람의 시선을 끌 일을 하지 않겠다구요. 막말로 뱃일도 못 하고, 갑판장의 지시도 따르지 않는 선원을 제가 고용했다고 하면 의구심을 품을 놈이 없을 것 같습니까?”
“이익···!”
“왕녀님을 다시 뵙기 위해 그동안 몸을 숨기고 온갖 더러운 꼴을 보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제 와서 고작 갑판장의 훈련에 따르는 것이 어려워서 경뿐만 아니라 왕녀님의 목숨까지 위태롭게 하고 싶으신 거요?!”
이를 악물고 한참 동안 나를 노려보던 알렌의 눈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남작의 말을··· 명심하겠소.”
“지금이야 이렇게 따로 불러서 말할 수 있지만, 앞으로는 어려울 겁니다. 그래도 제가 선단을 이끄는 제독인데 일개 신입 선원을 계속 독대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니까요. 그러니 앞으로 저지르게 될 무례에 대해서는 미리 사과드리지요.”
“아니요, 귀하는 이제 당당한 남작이고 나는 고작 도망자에 불과하니 무례랄 것도 없소. 오히려 내가 무례를 저지르고 있다면 몰라도. 말투는··· 차차 고쳐보리다.”
“차차요?”
“···아닙니다, 제독.”
흘려들으면 욕처럼 들릴 것 같은 말투로 말하기는 했지만, 일단 한번 꺾어두었으니 앞으로는 좀 나아지겠지.
원래 내 자리가 선원들과 자주 대화를 나눌 자리가 아니기도 하고.
“후우, 나가보셔도 좋습니다. 앞으로는 제발 아무 일도 없었으면 좋겠군요.”
알렌이 나가고 이제 거의 만성이 되어버린 두통을 잊기 위해 술을 들이켜고 있는데, 문이 슬쩍 열리며 그 틈으로 머리통 하나가 빼꼼 튀어나왔다.
“헤헤, 나 들어가도 돼?”
이미 들어와 놓고 뭔 개소리야?
문을 열고 한 발을 들여놓은 우르타의 말에 나는 대꾸하기도 귀찮아 대충 손을 내저었다.
“오늘 진짜 끝내주지 않았어?! 막 칼이 보이지도 않았다니까?!”
잠깐만, 생각해보니까 열받네?
“야 이 자식아! 그런 일이 있으면 재깍재깍 나한테 달려와서 보고를 하든가 말리든가 했어야지! 거기에서 침 흘리면서 구경할 게 아니라!”
“응? 그냥 훈련인데?”
오, 지고스 님. 제게 이 애물단지를 왜 보내신 겁니까?
그게 그냥 훈련이면, 훈련 두 번만 하면 오버훌(전체 수리)이라도 맡겨야겠다, 이놈아!
“어휴, 내가 너한테 무슨 말을 하겠냐. 그런데 왜 왔어?”
“저녁에 뭐 할 거야? 응?”
“저녁? 글쎄. 저녁 먹고 뒷골목이나 가보려고 했는데, 네이선이 저 꼴이니 원.”
“뒷골목? 아! 나도 데리고 갈 거지?”
기대에 찬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는 우르타를 보니 거절할 엄두가 안 난다.
어차피 딱히 위험할 일도 아닌데 괜찮겠지.
아무리 뒷골목 놈들이 오늘만 사는 놈들이라지만 설마 귀족인 나를 상대로 무슨 짓을 하겠어?
* * *
“어우야, 넝마 조각이 따로 없네. 괜찮냐?”
“끄응, 말 시키지 마. 숨 쉴 때마다 뼈가 아프다.”
“에라이 미친놈아! 그러길래 왜 그런 무모한 짓을 해?”
“제독, 그만하시게. 죽을 정도는 아니지만 적어도 열흘은 꼼짝없이 누워있어야 할 환자야.”
닥터가 몇 가지 약과 물을 들고 와서 네이선에게 건네주며 나를 말렸다.
하지만 온몸에 붕대를 감고 눈 한쪽은 뜨지도 못할 정도로 부어있는 꼴을 보니 부아가 치미는 걸 어떡해?
전투를 하다가 다친 것도 아니고 고작 훈련, 어휴···!
“닥터, 얼마나 다친 건데요?”
“대부분 타박상이네만, 왼쪽 아래 갈비뼈 세 개는 금이 간 것 같아. 오른쪽 팔과 다리뼈에도 실금이 생겼을 수도 있고. 아주 부러지지 않아서 다행이지만. 그보다 머리가 문제야.”
“네?!”
머리라는 말에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외상이라면 몰라도 내상, 특히 머리 쪽 내상은 치료할 방법이 없다.
운이 좋으면 가벼운 후유증, 운이 나쁘다면 사망.
“도, 도대체 얼마나 다친 건데요?!”
내 질문에 닥터가 말없이 네이선의 얼굴과 머리 부분을 살펴보다가 손으로 그의 머리를 살살 더듬었다.
“일단 두개골은 괜찮네. 그런데 충격을 많이 받은 것 같아. 며칠 두고 봐야겠지.”
하긴 대포알 같은 속도로 벽에 그렇게 부딪혔는데 머리라고 충격을 받지 않았겠나.
“이런 미친 새끼가!”
욱하는 마음에 손을 들어 네이선을 쥐어박으려던 나는 곧 힘없이 손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머리다.
괜히 툭 쳤는데 악화되기라도 하면 그 후회를 어떻게 감당하겠어.
“야, 네이선. 많이 안 좋냐?”
“말 걸지 마, 진짜 골이 울린단 말이야.”
“닥터, 잠깐 나 좀 봐요.”
네이선에게 들리지 않도록 자리를 옮긴 나는 진지하게 물었다.
“상황이 어떤데요?”
“일단 오른쪽 손가락이 잘 움직이지 않더군. 다행히 감각은 살아있는데 문제는 이 증상이 머리 때문인지 팔의 부상 때문인지 알 수 없다는 거야. 그리고 지속적인 두통과 어지러움도 있는 것 같고.”
나도 모르게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지구의 지식을 최대한 뒤적여봤을 때 최악은 내출혈에 의한 뇌 손상, 최상은 충격에 의한 일시적 마비 증상.
내 반응을 보던 닥터가 부드럽게 내 어깨를 다독였다.
“너무 걱정하지 말게. 생각만큼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도 있어. 심각한 충격에 의한 일시적 마비는 따로 치료하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회복되니 말이야.”
“후우, 알았어요. 걱정한다고 나아지는 것도 아니고. 닥터가 잘 보살펴 주세요.”
“허허허, 그나저나 저 친구를 저렇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있다니, 놀랍구만.”
별것 아니라는 듯이 말을 돌리는 닥터를 보니 기분이 더 가라앉는다.
제발 별일이 아니어야 할 텐데···.
* * *
“왜 나는 안 돼? 나도 네이선 보러 갈래!”
“안된다고 이 자식아! 말 좀 들어라, 어?!”
“치잇, 자기는 갔다 왔으면서.”
“포술장, 한 번만 더 까불면 출항할 때까지 외출 금지야.”
“···치사해.”
입을 삐쭉거리는 우르타를 무시하고 저만치 보이는 행크를 불렀다.
“돌격대장!”
“네, 선장님!”
“하역 작업은?”
“저기 보이는 상자들만 내놓으면 끝입니다.”
“혹시 모르니 돌격대원 차출해서 호위 붙여.”
“이미 왓킨 갑판장 지휘하에 선원 중에 실력 있는 녀석들로 스무 명이나 붙였습니다. 오스팔트 상회에서 온 인원도 있구요.”
“혹시 모르잖아. 이제 베르엘바가 유명세를 타고 있으니 눈 돌아간 놈이 있다고 해도 이상할 거 없어. 오트라스와 피오렐에서 돌격대원 다섯 명씩 차출해서 붙여. 전원 무장시키고.”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요? 경비대도 있고···.”
“저놈들? 저놈들도 못 믿어.”
말이 좋아 항구경비대지, 저놈들이 도적놈들과 결탁하지 않았다고 어떻게 확신하나?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후작의 비호를 받는 귀족(나)의 물건을 델라 항구에서 탈취하는 것은 무모하기 그지없는 짓이지만, 원래 인간은 욕심에 눈이 멀면 멍청한 짓도 거리낌 없이 하는 법이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어디 가십니까?”
“어, 잠깐 다녀올 데가 있어. 금방 돌아올 거야.”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호위 인원을 편성하겠습니다.”
“무슨 호위까지.”
내가 손사래를 치자 행크가 정색을 하며 말했다.
“선장님이 방금 경비대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화물들보다 선장님이 더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에이 설마. 이미 우리 대금 다 받고 소유권은 오스팔트 상회로 넘어갔는데.”
“이번만큼은 양보 못 합니다.”
단호한 행크의 표정을 보니 나도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알았어. 뒷골목 갈 거니까 이쪽 생리 잘 아는 놈들로 뽑아봐.”
* * *
내 앞을 지나던 행인들이 겁먹은 표정으로 좌우로 갈라진다.
두꺼운 겨울옷으로도 숨길 수 없는 근육질의 몸과 험악한 인상을 한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니 당연한 결과였다.
“이거 좀 과한데?”
“난 앞이 잘 안 보여.”
행크가 이끄는 돌격대원 다섯이 선두, 내 뒤를 따르는 선원이 열두 명이다.
이 정도면 뒷골목에 전쟁이라도 선포하러 가는 줄 알겠다.
쩔그럭, 쩔그럭.
심지어 죄다 허리에 칼을 차고 있어서 걸을 때마다 위압적인 쇳소리까지 난다.
진짜 전쟁이라도 하러 가는 것 같잖아!
* * *
- 델라 항구 뒷골목 소렌 패밀리 본거지 -
쾅!
“두목! 두목! 큰일 났습니다!”
의자에서 반쯤 헐벗은 채 여자와 적나라한 애정행각을 펼치던 소렌은 여자를 밀치고 소리를 질렀다.
“야 이 미친 새끼야! 내가 들어올 때 노크 하랬지?! 그리고 분명히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했을 텐데?!”
쾅! 데구르르르···.
“힉! 노, 노크 했···.”
보고하던 부하는 머리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간 탁자 장식이 벽에 부딪혀 떨어지는 것에 눈길을 돌렸다가 바로 소렌을 보며 소리쳤다.
“지금 이러실 때가 아닙니다! 이상한 놈들이 쳐들어왔어요!”
“뭐? 베커드 놈들이냐?!”
“아니요! 처음 보는 놈들입니다!”
“하, 감히 델라 항구에서 이 소렌 님에게 덤비는 놈이 베커드 말고 또 있다고?”
“부두목이 애들을 끌어모으고 있습니다만 놈들의 기세가 만만치 않아요!”
옷을 대충 추스르며 옆에 있던 아밍소드를 집어 든 소렌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몇 놈이냐?”
“네?”
“몇 놈인데 애들을 끌어모을 정도냐고?”
“스무 명입니다.”
소렌의 얼굴이 기괴하게 구겨졌다.
“고작 스무 명 가지고 이 소란을 떨어?!”
“숫자가 문제가 아니라니까요! 다들 칼을 차고 있는 게 만만치 않아 보입니다!”
소렌의 표정이 진지하게 바뀌었다.
아무리 뒷골목 놈들이 법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지만, 단검이나 단도가 아니라 진짜 살상용 무기를 들고 돌아다니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조직 간의 대규모 항쟁 때야 항구관리관이나 치안관에게 뇌물을 먹이고 한바탕 벌이기도 하지만, 평소에 그런 무장을 하고 다니면 좋은 꼴을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젠장, 어떤 빌어먹을 새끼들이. 다 같이 죽자는 건가? 야, 가서 무기고 풀고 애들 무장시켜. 내가 직접 간다.”
미리 언질도 없이 난장판을 벌이면 항구관리관이나 치안관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조직을 쓸어버리겠다고 단단히 무장하고 오는 놈들에게 공손히 목을 바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일단 놈들이 먼저 무장하고 덤볐으니 사후에 뇌물을 잔뜩 먹이면 그럭저럭 무마할 수는 있을 것이다.
애먼 돈이 깨져나가겠지만 그래도 조직이 무너지고 죽는 것보다는 낫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