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7화> 조우(1) >
“그래서 이렇게, 가장 느린 리버티가 이쪽으로 항해하면···.”
내 말에 에반이 당황하며 말을 끊었다.
“제독, 잘 모르시는 모양인데 이쪽은 암초와 여울, 급류 때문에 접근이 금지된···.”
“에반 항해사, 내가 그걸 모를 것 같아?”
쏘아보는 내 눈빛에 에반이 입을 뻐끔거리다가 결국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선장님, 에반 항해사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닙니다. 어차피 리버티는 전투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차라리 뒤따라오라고 하는 것은 어떨까요?”
그레이그가 절충안을 제시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안돼. 만약 놈들을 발견하면 어떤 식으로 급기동을 해야 할지 몰라. 괜히 리버티 혼자 떨어트려 놓았다가는 사고를 당할 수 있어.”
그리고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일단 머릿수가 좀 아쉬운 상황이기는 했다.
6:3보다는 6:4가 조금 더 압박이 되잖아.
“암초는 견시수를 추가 배치하는 것으로 해결하고, 여울과 급류를 대비해서 바로 옆에 항해하는 오트라스가 더 신경을 쓰면 돼.”
“지금 말씀하신 항로라면 오트라스도 위험합니다.”
에반이 지치지 않고 다시 우려의 목소리를 냈지만 나는 이번에는 부드럽게 말했다.
이제 막 배에 타서 아직 적응하지도 못한 항해사의 의견을 계속 찍어눌렀다가는 할 말도 하지 못하는 바보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에반 항해사, 원래 금지구역은 좀 여유 있게 정하는 거잖아. 그러니까 여기, 이렇게 한 1km쯤 안으로 들어가도 괜찮을 거다.”
“그렇기는 합니다만···.”
“자네는 지금 우리 상황이 얼마나 급박한지 전혀 이해를 못 하는 모양인데··· 하아, 다음에 이야기하지.”
하긴 아직 폰테 섬에 가본 적도 없고, 나와 후작 사이의 미묘한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에반으로서는 이렇게까지 무리하게 조나단을 쫓는 나를 전혀 이해할 수 없겠지.
어쩌면 지금쯤 속으로 괜히 지원을 했다고 투덜거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네에···.”
“혹시 지금 속으로 내 욕을 했다거나···.”
“딸꾹!”
“···설마 괜히 이 배에 탔다고 후회를 한다거···.”
“아, 아닙니다! 딸꾹! 절대로 아닙니다! 무슨 그런, 딸꾹! 말씀을 하십니까, 제독. ···딸꾹!”
에이씨, 맞는 거 같은데?
내가 생각해도 조금은 위험한, 아니, 솔직히 말해서 상당히 위험한 항해 계획이었지만 리버티 호의 발드 선장은 담담하게 내 명령을 받아들였다.
물론 신호로만 의사를 전달받았으니 정말 담담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 * *
사흘째 아침, 조리장 비에론이 배식량을 줄이거나 물자 재분배라도 하자는 제안을 해 와서 마음이 무거웠다.
오트라스 호에 남은 물자라고 해봐야 식수 네 통과 이틀분의 식량뿐, 더 이상 추격을 지속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전투력 감소를 막는다면서 배식량을 줄이지 않았던 것이 패착일까?
답답한 마음에 짠 내 나는 바람이라도 쐬려고 선수갑판을 서성이고 있는데, 도도도도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제 꽤 익숙해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안 제독님! 좋은 아침입니다!”
나는 하얀 사제복을 입고 더 하얀 웃음을 짓고 있는 채피 견습 사제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왕이면 활짝 웃어주고 싶은데 어른의 사정이라는 것이 안면근육을 뻣뻣하게 만들어서 어쩔 수 없었다.
“채피 견습 사제님, 그렇게 뛰어다니시면 위험하다니까요.”
“하지만 오늘은 중요한 날이잖아요!”
“네? 무슨 중요한 날이라는 건지···?”
오늘이 무슨 기념일이었나?
그리고 중요한 날이랑 뛰어다니는 거랑 도대체 무슨 상관인데?
“오늘이에요, 오늘! 그러니까 그렇게 찡그리지 마시라구요. 모든 일은 지고스 님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거랍니다!”
“아, 네···.”
음, 이 채피 견습 사제는 뭔가 문장에 필요한 단어 몇 개를 자주 빼먹는다.
그렇다고 그걸 자세하게 물어보면 엉뚱한 대답만 늘어놓기 때문에 그냥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는 쪽이 속 편했다.
지고스 님의 뜻이라··· 신의 뜻이 내가 폰테 섬에서 손을 떼는 것이 아니라면 결국 조나단 놈을 쫓아서 향료 제도까지 가야 한다는 말인데.
일단 바흐카덴 연안을 벗어나기만 하면 거의 공해나 다름없으니 사고를 쳐도 별 상관이 없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시일이 상당히 길어지게 된다.
그리고 시일이 너무 길어지면 ‘대해전이 끝나기 전에’라는 후작의 제시한 제한을 지키지 못할 가능성도 있었다.
지금쯤이면 마법사 길드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벨로키나-쿠샤 연합군이 시논 섬으로 진격을 개시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아니, 아직 론 항구에 함대가 집결하지 못한 것 같았으니 시간이 조금 더 있으려나?
지금 위치로 볼 때 오늘 정오가 되기도 전에 쿠샤 왕국의 영해에 진입할 예정이다.
전쟁 때문에 해군 전함들이 많이 차출되었다고 해도 영해를 지키는 최소한의 경계 병력은 남겨져 있을 테니, 현실적으로 바흐카덴 항구에 도착하기 전에 조나단을 잡는 것은 거의 물 건너 갔다고 봐야 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바흐카덴까지 갈 물자조차도 없지.
어디에서 물자를 보급하고 조나단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머리가 복잡한 그 순간, 견시수의 우렁찬 보고가 울려 퍼졌다.
“드라이언에서 신호! 표적 선단 발견! 표적 선단 발견!”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보고에 얼떨떨해하고 있는데, 내 표정을 보고 깔깔거리는 채피 견습 사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하하하! 거 봐요! 제가 오늘이라고 했잖아요! 부디 지고스 님의 뜻대로 이루시길 바라요, 제독님!”
견시수의 외침과 거의 동시에 활짝 웃으며 제 할 말을 다 해버린 채피는 내가 무슨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도도도도 소리를 내며 선실로 향했다.
도대체 저 녀석은 뭐··· 아니, 내가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지!
“총원 전투 배치! 갑판장, 갑판장 어딨어?!”
나는 방금 전에 채피에게 갑판에서 뛰지 말라고 했던 것을 까맣게 잊은 채 선교를 향해 전속력으로 뛰며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나의 격한 반응에 살짝 늘어져 있던 선원들이 화들짝 놀라며 전투 배치를 소리치며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선을 돌려 태양을 보니 정오까지 남은 시간은 대략 4시간, 아슬아슬하게 벨로키나 왕국의 영해에서 놈들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 * *
“표적 선단과 거리!”
선교에 뛰다시피 올라간 내가 고함을 치듯이 묻자 에반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4km 밖입니다. 현재 속도로는 세 시간쯤 후에 조우합니다!”
에반의 대답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급히 망원경을 잡았다.
저 멀리 수평선 근처에 떠 있는 여섯 척의 선박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 식별이 가능한 거리는 아니었지만 여섯 척이나 되는 대형 선단이 흔할 리 없으니 높은 확률로 티벡 선단일 터였다.
“후작 가문 문장은 확실히 올렸지?”
“네, 매일 확인하고 있습니다.”
“드라이언은 계속 우측으로 진행하고 피오렐은 우리와 거리 500m 유지하라고 전해. 리버티는 위험해역 벗어나서 우리 뒤로 빠진다.”
“네, 제독!”
잠시 후 약간 피곤해 보이는 네이선이 누군가를 데리고 선교로 올라왔다.
“선장님, 전투 배치 완료했습니다. 그런데···.”
“응?”
“그, 이분, 아니, 이 친구도 전투에 참여시킵니까?”
나는 네이선의 뒤에서 불편한 표정으로 서 있는 알렌을 힐끔 보았다.
전략 병기 수준의 네이선을 두들겨 팰 정도의 인간이 전투에 가만히 있는 것도 이상하기는 하지.
닥터가 이제 안심해도 된다고 했지만, 네이선의 몸도 아직 걱정되고.
“어, 그러니까 알, 아니, 이름이 뭐였지?”
“···발리에입니다.”
“그, 그래! 발리에! 갑판장은 전체 지휘를 하고 돌격대는 발리에가 맡도록 해.”
“네? 그럼 돌격대장은···.”
“···.그러니까 돌격대장 지휘하에 돌격대의 선봉, 에이 씨, 갑판장이 알아서 해.”
가능하면 싸우고 싶지 않다.
어떻게든 말로 해결을 보고 싶은데, 해전에서는 서로 말을 하는 게 너무 어려웠다.
조나단 이놈이 선단에 소속된 모두를 속이고 있는 것 같으니 적당히 얼러주면 말로 해결이 가능할 것도 같은데 말이야.
“어허험, 제독, 슬슬 내가 움직일 시간인 듯한데? 드디어 위대한 마법사···.”
“제먼 씨는 여기 왜 올라왔어요? 당장 포갑판으로 가서 우르타랑 포격 준비하셔야죠!”
“어? 아, 알겠네.”
머쓱한 표정으로 몸을 돌리는 제먼을 보자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잠깐! 제먼 씨!”
“응? 무슨 일인가?”
“혹시 목소리를 크게 하는 마법이라거나 그런 건 없어요?”
“목소리를? 글쎄, 한 번도 해보지는 않았지만 흠··· 생각 좀 해봐야겠군.”
“···그냥 내려가세요.”
“조금만 시간을 주면···!”
쓸모없는 제먼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자 그는 이내 헛기침을 하며 빠른 걸음으로 선교에서 내려갔다.
* * *
두어 시간이 흐른 뒤, 당장이라도 들이받을 듯이 후방에서 접근하는 우리를 향해 티벡 선단에서 신호기가 미친 듯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더 이상 접근하면 적대 행위로 간주하겠답니다!”
“티벡 선단에 신호! 즉시 정선하고 명령을 받을 것!”
“또 보냅니까?”
“어, 놈들이 이상하다고 느낄 때까지 계속 보내.”
조나단은 무시하고 싶겠지만 계속해서 외치는 견시수를 막을 수는 없을 거다.
그리고 같은 이야기를 몇 번이나 들으면 누군가는 의구심을 품겠지.
심지어 오트라스 호에는 후작 가문의 깃발이 당당하게 걸려있으니 의심은 증폭될 것이다.
하지만 그 후로 몇 번이나 같은 신호가 오갔지만 이건 뭐 이종족 간의 대화나 다름없었다.
서로 자기 할 말만 하고 있으니 진전이 있을 리 있나.
그런데 저놈들 분명히 우리보다 느린데 어떻게 내 계산을 벗어난 거야?
“조타수, 좌로 15도!”
조타수가 급히 타륜을 돌리는 것을 보던 오펜이 심각한 표정으로 해도실로 들어갔다가 뛰어나오더니 작게 속삭였다.
“선장님, 위험해역의 꽤 안쪽까지 들어왔습니다. 위험할 수 있습니다.”
“쯧, 그렇다고 저놈들 사이로 파고들 수는 없잖아. 좌우현에 임시 견시수 다섯 명씩 배치해.”
우리가 추격하는 것을 알고는 급히 좌측으로 선수를 튼 녀석들 덕분에 위험해역 안쪽까지 들어 온 판이라 더 좌로 돌기에는 조금 위험해 보이기는 했다.
하지만 당장 놈들의 측면을 잡지 못하면 포각이 나오지 않으니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이대로 시간을 질질 끌다가 순시를 도는 해군에게 발견이라도 되면 해적질로 오해받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괜히 중재한답시고 해군이 중간에 끼어들어 놈들이 도망치면 그나마 다행, 무식한 해군 놈들은 높은 확률로 추격 중인 우리에게 대포부터 갈기고 볼 거다.
“좌현 340도 방향 암초! 거리 100!”
좌현에 배치한 선원이 외치는 말에 나는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우로 10도! 조타수 빨리, 에잇! 비켜!”
한겨울에 땀범벅이 된 조타수를 밀쳐내고 내가 직접 타륜을 잡았다.
암초, 암초, 와류, 암초, 급류··· 어우 씨발, 욕이 절로 나오네,
조타수가 왜 땀범벅이 되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젠장! 조범수 새끼들 뭐 하는 거야! 멀어지잖아! 일등항해사!”
“선장님, 방향을 너무 자주 바꿔서 속도가 나지 않습니다!”
다급한 그레이그의 변명에 목구멍까지 올라온 욕을 꿀꺽 삼켰다.
그레이그의 말이 옳았다.
이렇게 자주 침로를 바꾸면 항해술의 대가가 오더라도 속도를 내기 어려웠다.
이를 악문 나는 티벡 선단의 가장 왼쪽에서 우리가 가야 할 진로를 방해하는 대형 상선을 노려보았다.
현측에 삐쭉삐쭉 솟은 새카만 대포가 약 올리듯이 햇빛을 반사하면 반짝거렸다.
“신무기 좀 써보나 했더니···.”
콰라라라락!
온 힘을 다해 타륜을 돌리자 힘차게 타륜이 돌기 시작했다.
“으아악! 선장님 지금 뭐 하시는?!”
잠시 후 오트라스 호가 크게 휘청하며 방향을 돌리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팔에 힘을 줘서 완강하게 저항하는 타륜을 반대로 돌렸다.
“씨발, 쫄리는 놈이 뒤지는 거야. 총원 충격 대비!”
놈들의 마스트에 붉은색 교전기가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미리 준비되어있던 대포들이 굉음과 함께 연기를 뿜었다.
콰과과과과과광!
이번 주사위 운은 그리 좋지 않았다.
선수와 우현에 서너 발의 포탄이 꽂혔고, 재수 없는 선원 몇 사람이 바다에 빠지는 것이 보였다.
“오펜! 선원 다섯 명 데리고 급한 부분만 수리해! 갑판장과 돌격대는 현 위치 대기!”
선체 전체를 들썩이게 만든 충격이 지나가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바로 명령을 내리고 다시 타륜을 잡았다.
재장전까지 빨라봐야 1분, 상선 놈들이 포격 훈련을 하지는 않았을 테니 최대로 잡으면 2분, 그 시간이면 우리도 한 방 먹일 수 있다.
저 멀리서 중형 선박(중형이라고 해도 오트라스와 비슷한 덩치다) 두 척이 이쪽을 지원하려는 셈인지 선수를 돌리는 것이 보였다.
저놈들이 오기 전에 결판을 내야 했다.
“전령! 포술장에게 포각 나오는 대로 갈겨버리라고 해! 선체 말고 마스트와 상갑판을 노린다!”
“네? 마스트 말입니까?”
“빨리!”
“넷!”
해전에서 상대방의 마스트를 꺾어버리거나 돛을 손상시킬 수 있다면 상대방의 전투력이 급감하게 할 수 있다.
기동력, 선회력이 떨어지니 이쪽의 공격에 제대로 대응하기 힘들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수십 미터가 넘는 선체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것이 이 세상의 포격 수준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선체에 비하면 비교적 얇은 마스트를 노려서 맞추는 것은 야구공을 발로 차서 스트라이크 존에 꽃는 수준의 묘기나 다름없었다.
돛은 말할 것도 없다.
아무리 크다고 해도 돛에 비하면 밥알 크기에 불과한 포탄이 몇 번 돛을 찢고 나가봐야, 기동력에 유의미한 타격을 주기 힘들었다.
운 좋게 돛을 크게 찢는다면 모르겠지만, 그것을 노리고 포를 쏘느니 차라리 마스트를 맞추는 게 백 배는 쉬울 거다.
하지만.
고장 난 듯이 쿵쾅거리는 심장, 땀으로 진득해진 손바닥··· 긴장감과 고양감에 취한 채 거리를 재던 나는 온 힘을 다해 타륜을 돌렸다.
잠시 후 적 선박의 좌현을 향해 돌진하던 오트라스가 좌측으로 급선회를 시작했고, 갑판은 아수라장이 되며 미처 고정하지 못한 물건들과 운 없는 선원들이 데굴데굴 굴렀다.
“우르타아아아! 쏴! 날려버려!”
어차피 들릴 리가 없음에도 내가 악에 받쳐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거짓말처럼 내 외침이 끝나기 무섭게 우르타의 대답이 들려왔다.
콰과과과과과광!
오트라스가 움찔하며 굉음과 함께 포탄을 토해냈다.
그리고 거대한 불꽃놀이가 펼쳐졌다.
각도가 그리 좋지 못해서인지 명중한 포탄은 고작 두 발, 그것도 선미와 미즌 마스트에 달린 선미 돛에 맞았지만, 맞는 순간 거대한 화염이 적 선박을 휩쓸었다.
빗나가서 수면에 착탄된 포탄도 폭발을 일으켰는데, 덕분에 삽시간에 기화된 수증기가 일순간 시야를 가릴 정도였다.
망할··· 저러니까 마법사가 포탄을 직접 활성화시켜야 하겠지.
신관이 도대체 얼마나 예민한 거야?
쏜 우리 쪽도 놀랐는데 처맞은 저쪽은 얼마나 놀랐겠는가.
그 혼란스러움이 멀리 떨어진 우리에게까지 느껴졌다.
그리고 망연자실하게 불타는 선미 돛을 보고 있는 적선의 선원들도 보였다.
불타는 돛의 불을 끄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돛을 내려서 꺼야지, 암.
“조나단 이 개 호로 자식, 아니, 사생아 새끼야! 목 닦아놓고 기다려라! 돌격대 돌격 준비!”
들릴 리가 없지만, 목이 찢어져라 소리를 지른 나는 벌써 속도가 떨어지기 시작한 상대 선박을 보며 다시 타륜을 돌렸다.
티벡 선단도 후작의 재산인데 너무 많이 부수면 후작이 무슨 트집을 잡을지 모르니 조나단 새끼의 목만 깔끔하게 수확해야겠다.
이미 한참 전부터 티벡 선단을 앞질렀던 드라이언에서도 전투가 시작되었는지 저 멀리 포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