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8화> 조우(2) >
사방에 치솟았던 물기둥이 부서지며 갑판을 적셨다.
우현에 몇 발이 더 명중한 것 같았지만 항해에 큰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고, 다음 포격이 있기 전에 접현할 수 있을 정도로 두 배의 사이는 가까워진 상태.
“에반! 타륜 잡아! 지금부터 그레이그가 지휘한다! 전령, 포격 중지시켜!”
“선장님! 설마 또···?”
“이번에는 무조건 내가 나서야 해!”
“매번 이러시면 안 됩니다! 갑판장도 있고 돌격대장도 있는데 왜 자꾸 굳이 직접 나서시는 겁니까?”
화를 내는 듯한 말투지만 그 안에 담긴 염려가 느껴져서 나는 간단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아무리 잘 싸워도 티벡 선단의 전력은 우리의 두 배 이상이야. 정면으로 붙으면 승산이 없어.”
“그렇다면 차라리 전력을 강화하거나 다른 방법을 찾아봅시다! 선장의 실력이 대단하기는 하지만 그래봐야 갑판장이나 돌격대장만큼 뛰어난 것은 아니잖습니까?”
“하지만 나는 남작이지.”
“그게 무슨···.”
나는 말없이 미리 준비해 둔 준비물을 꺼냈다.
“그건 뭐, 백기?”
그레이그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내 왼손에 들린 깃발을 보았다.
백기는 만국 공통어다. 항복 또는 교섭 요청.
그래서 전장의 사신들이 많이 들고 다니지.
여기는 전장이니까 음, 백기가 맞을 거야.
혹시 몰라서 후작 가문의 문장도 함께 달았다.
“아군을 강화하기엔 시간이 부족했잖아. 그러면 적을 약하게 해야지.”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저놈들은 조나단에게 속고 있을 뿐 아직도 자기들이 후작 가문 소속인 줄 알고 있어. 내가 나서면 굳이 피를 보지 않아도 돼.”
“휴우··· 절대로 위험한 행동은 하시면 안 됩니다!”
“걱정 말라고!”
* * *
내가 갑판 위에 설치된 바리케이트 뒤에 도착하자 네이선이 당황하며 급히 다가왔다.
“여기까지 왜 내려오셨습니까? 손에 들고 있는 건···.”
“일단 숙여!”
파파파파팍!
내가 네이선의 어깨를 힘껏 내리누름과 동시에 살기 넘치는 쿼럴이 날아들었다.
“사격 준비!”
선원 몇몇이 지르는 비명을 들은 네이선이 인상을 험악하게 구기며 소리쳤다.
그러자 미리 장전을 마치고 있던 쇠뇌를 든 선원들이 동시에 이쪽을 보았고, 네이선이 이내 소리를 질렀다.
“보이는 대로 쏴버리고 은폐해!”
이후로 몇 번이나 쿼럴이 오갔지만, 양쪽 다 바리케이트를 단단하게 쌓아둬서 서로 간에 별 피해는 없었다.
거리가 제법 가까워졌기에 기회를 봐서 급하게 만든 확성기(원뿔형으로 만든 얇은 황동판)를 사용할까 했는데 상대편에 서 있는 놈들의 눈에 독기가 가득 찬 걸 보니 일단 머리를 식혀줘야 귀가 뚫릴 것 같았다.
하여간 무식한 뱃놈들.
드디어 두 배 사이에 널빤지가 놓이고, 몸을 벌떡 일으키는 네이선에게 다가가서 빠르게 말했다.
“빠르고 강하게! 너무 많이 죽이지는 말고 기선 제압만!”
“···어?”
네이선이 얼빠진 표정으로 나를 보았고, 나는 바닥에 던져두었던 깃발을 세우며 네이선의 등을 밀었다.
“일단 그렇게 해!”
“지금 뭐 하는, 어휴. 돌격대 앞으로! 쇠뇌 견제!”
네이선, 행크, 알렌을 필두로 돌격대가 널빤지를 건넜고, 그 사이를 노린 쇠뇌수를 우리 쪽 쇠뇌수가 노렸다.
“우와아아앗!”
무엇보다 눈 깜짝할 사이에 널빤지를 건너서 칼을 휘두르기 시작한 네이선과 알렌의 역할이 컸다.
그들을 노리고 쏘아진 쿼럴은 허무하게 바다에 빠지거나 배에 틀어박혔고, 오히려 그들을 노린 쇠뇌수들이 꼬치가 되어 비명을 질렀다.
두 사람의 뒤를 행크가 이끄는 돌격대가 바쳐주자 적들은 형편없이 밀려나기 시작했다.
“쯧.”
나는 혀를 차며 깃발과 확성기를 들고 널빤지를 건넜다.
자기들이 왜 공격당하는지도 모르는 것 같은 불쌍한 적들을 위해서라도 빨리 이 사태를 수습할 필요가 있었다.
널빤지를 다 건넌 나는 천천히 확성기를 입에 대고 소리쳤다.
“나는 스코타 후작 각하를 모시는 리안 스펜서 남작이다! 모두 전투 중지!”
금속관을 타고 증폭된 소리가 울려 퍼졌고, 전장의 소음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형편없이 밀려나던 놈들은 얼빠진 표정으로 물러서기 바빴고, 네이선을 포함한 돌격대는 제 자리에 서서 살기 어린 표정으로 놈들을 노려보았다.
“선장은 어딨나?!”
내가 다시 한번 소리치자, 뒤쪽에서 머리숱이 없는 중년의 남자가 앞으로 나왔다.
“?, 갑자기 공격해놓고 전투 중지? 그리고 뭐, 남자악?”
“갑판장, 죽여.”
“뭐? 마, 막아!”
아마 갑판장으로 보이는 중년 남자가 깜짝 놀라며 주변에 명령을 내렸지만, 그보다 네이선의 칼이 더 빨랐다.
정확하게 말하면 네이선의 앞을 가로막은 선원 둘은 어느새 다가선 알렌에게 목을 내놓았고, 그 사이에 네이선의 칼이 중년 남자의 목을 쳤다.
“으아악! 고, 공ㄱ···!”
“닥쳐! 감히 후작 각하의 명을 따르지 않겠다는 것이냐!”
그 꼴을 본 선원 한 놈이 발작적으로 소리를 질렀지만, 네이선이 무시무시한 기세를 풍기며 그 말을 잘라냈다.
다시 한번 언급된 ‘후작 각하’라는 말에 발작하려던 선원들이 움찔거렸다.
이번에 선장이 나서지 않으면 위험하겠는데?
지금이야 기세에 밀려서, 후작이라는 권위에 눌려서 어정쩡한 태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대로 몇 명이 더 죽으면 무식한 선원 놈들은 다시 죽자 살자 덤벼들게 뻔했다.
네이선과 알렌이라는 쌍두마차를 앞세우고 있으니 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티벡 상단의 6척을 모조리 상대하려면 우리 쪽의 피해가 너무 커질 게 뻔했다.
그리고 애초에 놈들이 1:1로 계속 상대해 줄 리도 없고.
그렇게 30초 정도가 흘렀을까?
몇 사람을 뒤에 달고 있는 남자가 선원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왔다.
복장을 보아하니 선장인 것 같았다.
“내가 이 배, 제라도나의 선장 바벨로요. 당신은···.”
나를 잠시 노려보던 바벨로 선장이 말을 마치기 전에 네이선이 차가운 표정으로 그의 말을 잘랐다.
“건방진! 이분은 스코타 후작 각하를 모시는 리안 스펜서 남작님이시다! 당장 예의를 갖추도록!”
“···남작이라고 하셨소?”
“무례를···!”
“잠깐, 갑판장!”
칼을 반쯤 뻗었던 네이선이 예상했다는 듯이 바로 칼을 회수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이루어진 퍼포먼스였다.
칼의 잔영이 사라지고 나서야 바벨로 선장의 앞머리가 슬쩍 흔들렸을 정도니 그 쾌속함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지.
기분 탓인지 퍼포먼스를 본 바벨로 선장의 얼굴이 조금 창백해진 것 같았다.
“조, 좋습니다, 남작님. 그렇다면 이 상황을 설명해주실 수 있습니까? 우리 티벡 선단은 후작 각하의 직속 상선단입니다. 후작 각하의 진노가 두렵지 않으십니까?”
말은 남작이라고 부르지만, 그의 눈은 내 말을 전혀 믿고 있지 않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스코타 후작의 봉신인 남작이 자신들을 공격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했다.
“후작 각하의 명을 전한다. 티벡 선단은 지금 당장 모든 활동을 중지하고 델라 항구로 복귀하라.”
“갑자기 그게 무슨? 고작 그런 이유로 우리를 공격했다는 겁니까?”
“반역자 조나단이 수개월 전부터 티벡 선단의 공금은 횡령하고 후작가의 명령을 무시해왔다. 선장은 전혀 몰랐다고 할 텐가?”
“그, 그럴 리가 없습니다! 조나단 제독은···!”
“그럼 묻지. 델라 항구에 마지막으로 들른 게 언제인가? 이번에 왜 델라 항구에 기항하지 않았지?”
“그, 그건···.”
당황하는 선장을 보며 나는 일부러 더 차갑게 말했다.
“어차피 너희는 우리와 함께 델라 항구로 복귀한다. 반항하겠다면 나는 이 배만 가지고 돌아갈 것이다.”
반항하면 다 죽이겠다는 말이었다.
관심이 없는 척하며 주변을 둘러보니 오트라스의 뒤쪽과 제라도나의 뒤쪽으로 접근 중인 두 척의 선박이 보였다.
저들이 붙기 전에 결론을 내야 일이 편해질 텐데.
잠시 고민하던 바벨로 선장이 겨우 입을 뗐다.
“그렇다면 남작님께서는 우리를 나포하실 생각이십니까?”
“···반항하지 않고 따라온다면 무장을 해제하지 않아도 좋다.”
마음 같아서는 개인 무장과 화약을 모두 빼앗고 나포해서 가고 싶지만 그래서야 해적질과 다를 게 없었다.
상대가 바보가 아닌 이상 그런 조건을 수락할 리도 없었고.
“알겠습니다. 일단 델라 항구로 가도록 하죠.”
“현명하군. 접근 중인 두 척의 설득은 선장에게 맡기지. 나는 반역자 조나단의 목을 가지고 가야 해서.”
말을 마친 나는 네이선에게 고갯짓을 했다.
“철수한다.”
“네? 네, 네···.”
앞장서서 널빤지를 건너는데 네이선이 내게 바짝 붙으며 속삭였다.
“진짜 이렇게 마무리 해? 난 지금 뒤통수가 너무 간지러운데?”
“내 예상대로야. 선장들이 전부 조나단에게 넘어간 것도 아니고, 의심을 가지고 있는 선장도 있어. 운 좋게 그런 선장이 걸린 것일지도 모르지만. 중요한 건 조나단 그 새끼를 잡는 거야. 그놈만 잡으면 싸우지 않고 델라 항구로 같이 복귀하면 되니까.”
중요한 것은 저들은 후작을 상대로 반기를 들 생각도 없고, 자신들이 반역으로 지정되었다는 것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다른 사람도 아니고 후작 휘하의 귀족이 함께 델라 항구로 돌아가자는 것이니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한 거지.
물론 우리가 당장 무장을 해제하고 우리를 따라오라고 했다면 저항을 했을 확률이 높다.
상황이 그 정도 되면 우리가 자신들을 델라 항구가 아닌 다른 곳으로 끌고 가도 저항할 방법이 없으니까.
하지만 일단 델라 항구로 가서 후작에게 시시비비를 가리자고 하는데도 그 말을 거절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딱 한 사람, 조나단만 빼고.
긴장을 유지한 채 널빤지를 철거하면서 보니 제라도나의 견시수가 미친 듯이 신호기를 흔드는 것이 보였다.
일단 눈에 보이는 신호의 내용은 교전 중지.
그렇다면 일단 뒤통수 걱정은 잠시 내려놔도 될 것 같다.
“전속력으로 다른 놈들을 제압한다. 피오렐과 드라이언은?”
“드라이언은 남쪽 항로를 막아선 상태로 포격 중이고 피오렐이 후방에서 압박 중입니다.”
“흠···.”
선교에 복귀하자마자 그레이그의 보고를 듣고 망원경을 들었다.
드라이언과 포격을 주고받으며 우리가 있는 동쪽으로 선수를 돌린 대형선 한 척과 서쪽으로··· 응?
“망할, 저 새끼가?!”
“선장님···.”
그레이그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접현하자마자 선수를 돌렸습니다. 서쪽으로 빠져나가려는 모양입니다.”
“피오렐에게 당장 추격하라고 신호 보내! 저놈들을 잡아야 한다!”
딱 봐도 도주 중인 대형선이 기함이다.
조나단이 타고 있는 배라는 뜻이었다.
다른 놈들을 다 잡고 조나단만 놓쳐도 반쪽짜리 임무 완료인데, 선단의 1/3을 함께 놓친다면 성공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했다.
“신호가 닿지 않습니다···.”
“젠장!”
그레이그의 말대로 서로 시야에 보이기는 하지만 신호기를 읽을 수 있는 거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아인델프도 바보가 아니니까 추격을 하지 않을까?
조나단을 잡거나 죽여야 한다는 것은 아인델프도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
아니지, 괜히 혼자서 추격해봐야 각개격파 당하겠구나.
그런데 조나단 저 미친놈은 도대체 어디로 갈 생각인 걸까?
지금 서쪽으로 향해봐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은 잘하면 해적 소굴인 에스피온사 제도, 재수가 없으면 폭풍 해역이다.
번개 맞고 살아날 확률로 에스피온사 제도의 해적들을 피하고 폭풍 해역을 돌파한다고 해봐야 해도도 없는 망망대해.
설마 지금 상황을 다 예상하고 선창에 식량과 식수를 가득 채우지는 않았을 테니 굶어 죽기 딱 좋을 텐데?
물론 적당히 도주하다가 방향을 돌리는 방법도 있지만, 그것도 우리가 바흐카덴이나 론 항구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꼼짝없이 사로잡히게 된다.
“추격합니까?”
“우리가 더 빠르지?”
“그게,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짐을 다 버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금은 비슷할 것 같습니다.”
“일단 최대한 빨리 이동하지. 피오렐이 어떤 선택을 하건 지원해야 하니까.”
* * *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배의 속도는 노력과 의지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드라이언과 포격을 주고받던 대형선은 다른 배들이 항복(백기를 올린 상태였다)하고 오트라스와 피오렐이 가세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백기를 내걸었다.
그리고 각 함선의 선장들이 모인 오트라스의 선장실.
조리장 비에론이 나름 최선을 다해서 만든 만찬이 식어가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음식에 손을 대지 않고 있었다.
“그러니까 조나단 제독이···.”
“제독은 무슨, 반역자다.”
“네, 죄송합니다, 남작님. 그럼 조나단이 후작 각하를···.”
차마 뒷말을 입에 담지 못하겠는지 말을 하다 말고 말꼬리를 흐린다.
어떻게든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나이가 지긋한 선장이 나섰지만, 분위기는 더욱 냉랭해졌을 뿐이었다.
젠장, 처음부터 조나단이 탄 배를 노려야 했었는데.
물론 그때 상황은 선단 중심에 있는 조나단의 배를 노리기는 너무 위험했지만, 막상 놈을 놓치고 보니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하지만 조나단 제ㄷ···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조나단이 후작 각하를 배신했다면 지금까지 그렇게 태연하게 다녔다는 게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놈이 후작 각하를 배신했다고 하면 그대는 따랐을 것 같나?”
“무, 물론 아닙니다만!”
깜짝 놀라는 선장에게 나는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설명했다.
내 기분이 어떻든 간에 이놈들이라도 내게 협력을 해줘야 한다.
“그래서 놈이 향료 제도로 향한 것이다. 아마 향료 제도에서 본색을 드러내고 자기 사람으로 선단을 장악했겠지. 아마 여기에 앉아있는 선장들은 다 죽었을 테고.”
충분히 시간을 들여 설명했음에도 불신이 남아있는 눈빛을 하는 선장들을 보고 나는 짜증스럽게 손을 내 저었다.
“어차피 델라 항구로 가면 모두 밝혀질 일이다. 내가 너희들에게 다른 제약을 가하지 않은 이유도 어차피 나를 믿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니까.”
“정말 이대로 델라 항구까지만 가면 됩니까?”
“아, 그대들이 가진 상품은 바흐카덴에 매각해야겠지?”
내 말에 선장들이 서로 눈치를 보다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후작 각하의 재산이니 일단 바흐카덴에 기항해서 상황을 보도록 하지. 조나단 그놈이 방향을 돌려서 바흐카덴으로 올 수도 있으니까. 놈들이 가진 식량이 얼마나 되는지 아는 사람이 있나?”
내 질문에 제라도나의 바벨로 선장이 대답했다.
“출항 전에 식량과 식수는 비슷하게 실었습니다. 그러니 대략 8일 분량 정도 남았을 겁니다.”
“8일이라···.”
8일이라면 너무 길기는 하지만 일단 은행을 통해 후작에게 상황 보고를 하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바흐카덴에서 열흘간 대기하도록 하지. 가능하면 은행을 통해 후작 각하의 명령을 받아도 될 것이고. 그 정도라면 그대들도 믿지 않을 수 없을 터.”
“은행을 통해 전해지는 후작 각하의 명령이라면 당연히 믿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은행이 저희의 부탁을 들어주겠습니까?”
“그건 내가 알아서 하지.”
은행의 통신망을 이용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비용도 비싸다고 하지만 제먼이 있으니 어떻게든 되겠지.
이제야 조금 안심이 되었는지 슬슬 음식에 손을 가져가는 선장들을 보며 나는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우리의 식량과 식수 사정이 조금만 좋았더라도 죽이 되건 밥이 되건 추격을 했을 것이다.
여기 앉은 이들은 그냥 델라 항구로 복귀해서 후작의 명령을 받으라고만 해도 알아서 그렇게 할 인사들이었으니까.
그리고 놈들이 화물을 많이 버렸다고 해도 애초에 화물이 없던 피오렐이나 오트라스에 비해서 빠르지도 않았다.
물론 대형 상선과 중형 상선을 한 척씩 가지고 있지만 조나단이 재기할 확률은 매우 낮았다.
당장의 위협인 해적과 폭풍을 이겨내고 어떻게 살아서 항구에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후작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 말이다.
지금까지야 혹시라도 티벡 선단을 완전히 잃거나 후작위 승계상에 오점이 될까 봐 쉬쉬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 선단의 2/3를 되찾은 것은 물론 명백히 조나단이 후작의 명령을 거역한 이상 수배령을 내리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후작이 수배령을 내리면 배를 다 팔고 어딘가에 은거하지 않는 이상에야 사로잡히는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아니면 해적으로 전직하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