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9화> 마법 통신 >
“음, 바흐카덴 항구는 여전히 북적거리네. 전쟁 중인데 말이야.”
“전쟁 중이니까 더 그렇겠지. 이곳은 전쟁이 벌어지는 내해에서 한 발 떨어져 있으니.”
난간에 기대어 술을 홀짝거리던 네이선의 중얼거림에 나는 가볍게 대꾸했다.
그러자 망원경까지 동원해서 여기저기를 살펴보던 우르타가 해맑게 웃으며 환호성을 질렀다.
“이제 좀 쉴 수 있겠다!
박수까지 치며 기뻐하는 우르타를 보고 있는데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뭔가 매우 중요한 일을 놓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찬찬히 상황을 점검했다.
항복이라기보다는 내 제안을 받아들인 티벡 선단의 4척은 군소리 없이 우리를 따라오고 있었고, 마력 포탄의 위력도 확인했다.
물론 제국에서 개발 중이던 마력 포탄의 문제점이었던 대포 내구성도 문제없다는 것을 확인했고.
그럼 찜찜한 게 뭐···.
“그런데 우리 전에 여기 왔을 때 한참 난리 치지 않았나?”
“난리? 아, 뒷골목?”
“케일린이라고 했나? 발레아스 아저씨의 딸이라던. 그 여자 진짜 예뻤는데!”
잠깐만. 그러고 보니?
우리 세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얽혀들었다.
아마 똑같은 생각을 한 것이겠지.
“하, 하하하, 괘, 괜찮겠지?”
“···어음, 그, 뭐랄까, 그냥 우리만 배에서 내리지 않으면 뭐.”
어색한 웃음을 짓는 우르타와 확신 없이 희망적인 예측을 내놓는 네이선.
녀석들이 걱정하는 부분은 이해가 되었지만 나는 생각을 마치고 피식 웃었다.
“걱정 마라, 그때랑 상황이 다르니까.”
“그, 그렇지? 이제 리안은 남.작.님! 이니까 뒷골목의 잭들도···.”
나는 여전히 어색하게 웃는 우르타의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말했다.
“물론 아무리 타국의 별 볼 일 없는 남작이라도 일단 귀족이니 뒷골목 놈들이 손대기 힘든 것도 있을 거야. 그런데 굳이 내가 남작이 아니어도 괜찮아.”
“응? 왜?”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거 아냐? 너도 알겠지만, 뒷골목 놈들은 시간이 좀 지난다고 옛날 원한을 잊지 않아.”
네이선이 신중하게 의문을 제기했지만 나는 내 판단을 믿었다.
붉은 전갈 놈들에게 공격을 당하고 발레아스 아저씨의 딸이라고 주장하는(솔직히 너무 안 닮았잖아!) 케일린에게 도움을 받았던 당시 그녀가 해준 말이 있었다.
붉은 전갈파 뒤에 치안관이 있고, 치안관은 친 일레드 파인 그 다시마인가 하는 남작··· 그놈의 수족이라고 했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을 보면 쿠샤 왕국은 벨로키나 왕국과 동맹을 맺고 일레드 왕국과 전쟁 중이다.
그러니 그 다시마 남작은 정치적으로 꽤 타격을 입었을 테고,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된 치안관 역시 진즉에 죽거나 자리에서 밀려났겠지.
치안관이라는 뒷배를 잃은 뒷골목의 잭들 정도는 굳이 귀족이라는 방패를 내세우지 않아도 딱히 두려울 것도 없다.
“쓸데없는 걱정은 그만하고 일해라, 갑판장! 입항해야지!”
“네에, 제독.”
검문을 받으면서 특별히 귀족의 권위, 그러니까 나 말고 후작의 이름을 팔아서 우리 선단은 물론 티벡 선단까지 두 개 부두에 배정을 받았다.
바다에 가까운 쪽은 오트라스와 리버티, 피오렐과 드라이언이 틀어막고 있으니 티벡 선단이 몰래 빠져나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당직은 조금 빡빡하게 돌려야겠군.
어차피 열흘이나 머물러야 하니 당직이 조금 빡빡해도 불만이 크지는 않을 거다.
* * *
“확실히 그 포탄은 대단하긴 하더군요. 그런데 실용성은 조금 문제가 있는 것 같던데요.”
“자네는 마력 포탄의 진짜 힘을 아직 제대로 본 게 아니야. 고작 한 번 쏴보지 않았나?”
“한 번이면 충분하죠. 포술장 말로는 대포에 큰 문제가 없다고 하니, 몇 번 더 쏠 수 있다는 것은 잘 알겠습니다.”
내 인정에 우쭐한 표정을 짓던 제먼이 갑자기 정색하며 물었다.
“그런데 방금 실용성에 문제가 있다고 했나? 도대체 무슨 문제를 말하는 거지?”
“말 그대로요. 크게 두 가지가 있네요.”
“응?! 두 가지나 있다고?!”
“네, 첫 번째는 배에 마법사가 필요하다는 거죠. 세상에 마법사라니. 저는 이 세상에서 아는 마법사라고는 제먼 씨 딱 한 명입니다. 그런데 다른 선장이나 함장들이라고 해서 딱히 저보다 더 나을 것 같지는 않아서 말이죠.”
“어? 그, 그건, 음······.”
표정을 보아하니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닌 모양이다.
“그, 그건 차차 개선될 걸세! 막대한 연구 인력을 퍼붓고 있지만, 이 민감한 폭약에 대한 안정성을 확보한다는 것이 참 쉽지 않은 문제거든. 게다가 어딘가에 부딪혔을 때 터져야지, 너무 일찍 터지거나 너무 늦게 터지면 안 되지 않나.”
지구에서는 그런 부분을 위해 기술적으로 충격신관인가 뭔가 하는 장치를 만들어냈다.
마법의 도움이 없이도 말이야.
그 말은, 내가 그 충격신관을 기술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당장 희귀하기 그지없는 마법사를 고용해야 하는 사태를 피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름도 생소한 충격신관 따위 내가 알고 있을 리가 없잖아.
만드는 방법은커녕 기본적인 개념조차도 잘 모르겠다.
“특히나 포가 발사될 때의 충격에는 터지지 않아야 하는데, 그게 쉬운 일인 것 같나?”
“그건 그렇네요.”
터지는 꼴을 보면 진짜 장전할 때 대포에 포탄을 밀어 넣는 정도의 충격에도 곧잘 터질 것 같은데 그걸 어설픈 기술적인 장치로 막아봤자 괜히 폭발사고만 더 발생할 게 뻔했다.
“하지만 그 문제는 조만간 해결을···.”
“아니, 그건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에요. 오히려 더 큰 문제가 있죠.”
“더 큰 문제가 있다고? 그게 뭔가?”
“포탄이 너무 비싸잖아요! 무슨 포탄이 한 발에 15,000 로스나 해요?! 그 돈이면 선원이 보름 내내 배를 타야 받을 수 있는 항해 수당이라고요.”
“가격 말인가? 전쟁에서 가격이야 부차적인 문제 아닌가?”
이 아저씨 정말 속 편한 소리 하고 앉아계시는군.
전쟁이란 결국 보급, 보급, 그리고 보급의 문제다.
보급을 하려면 충분한 자금력이 필요하고, 이런 가성비 최악인 무기를 쓰다가는 전쟁에서 지기도 전에 파산으로 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차피 이번에 길드가 지원을 하니 상관없지.”
“이번이라면 준비 중이라는 대해전 말이죠?”
“그래! 자네도 대충 느끼겠지만 길드의 힘은 대부분 말도 안 되는 자금력에서 나오니까 말이야.”
“물론 이번 전쟁에서는 그렇겠죠. 하지만 결국 무기라는 것은 범용성이 필요한데 고작 이번 대해전 한정으로 쓴다구요?”
“그, 그거야 이제 개량을···.”
“쩝, 이래서야 예전에 봤던 몰로스 제국의 프로토 타입 제품과 딱히 다를 것도 없네요.”
“끄응···.”
내 말에 반박하지 못해서 얼굴이 형편없이 구겨진 제먼이 잠시 생각할 시간을 준 나는 슬슬 본론으로 넘어갔다.
“그런데 은행이 마법사 길드고 마법사 길드가 은행이잖아요?”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네!”
“네?”
뭐야, 은행이랑 마법사 길드가 한 몸인 거 아니었어?
“은행은 그저 길드를 숨기는 거대한 장막이자 하부기관에 불과하네.”
“아, 네···.”
그러니까 말하자면 그 엄청난 힘을 가진 은행이 고작 마법사 길드의 계열사에 불과하다는 말이지?
거참, 조만간 마법사 길드가 세상을 지배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네.
“어찌 되었건 제먼 씨는 은행에서 어느 정도 권한이 있겠네요?”
“어? 아무래도 그렇지. 자네도 알다시피 이번에 대포와 포탄도 응? 내가 얼마나 말이야···.”
“그럼 그것도 쓸 수 있어요? 통신망.”
내 말에 한참 자기 자랑을 늘어놓던 제먼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 * *
다음 날, 반신반의하며 나를 따라 온 티벡 선단의 선장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물론 전화기처럼 후작과 직접 통화를 한 것은 아니었다.
심지어 후작에게서 온 서신도 아니고 그저 전달된 신호를 기반으로 구성된 메시지에 불과했다.
결국 신뢰도라고는 1g도 찾을 수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은행이라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일하는 직원이 하는 말은 없던 신뢰도도 만들어내는 위력이 있었다.
다들 상계에서 적잖은 시간을 보낸 사람들이니만큼 은행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었고, 뇌물이나 협박으로는 이런 상황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이, 이게 진짜 후작 각하께서 보내신 전언이라는 말이오?”
한참 동안 침묵을 유지하던 늙은 선장이 손을 부들부들 떨며 물었다.
하지만 꽤 고위직으로 보이는 직원은 눈썹 하나 까딱이지 않고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여기 스펜서 남작님과 고문님께 부탁을 받아 특별히 어제 본 점에서 스코타 성에 전문을 보냈고, 이것은 오늘 아침에 받은 대답입니다.”
눈에 핏발이 서도록 메시지가 적힌 종이를 노려보던 늙은 선장이 끝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혹시나 하는 생각이 없지는 않았지만, 진짜일 줄이야. 후작 각하께 어찌 사죄해야 할지 모르겠군.”
“이제 정말 델라 항구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군요. 의심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스펜서 남작님.”
“다들 불만이 없다면 가지고 온 교역품을 매각하고 델라 항구로 가지고 갈 상품을 구하도록 하게. 앞서 말한 대로 우리는 바흐카덴에서 열흘간 머물며 배신자의 움직임을 경계할 것이니.”
“알겠습니다, 남작님.”
분분히 고개를 숙이는 선장들을 보니 이제 한숨 돌려도 될 것 같다.
오늘 밤에는 애들이랑 술이나 한잔해야겠네.
* * *
“그런데 이렇게 술 마시고 놀아도 되나? 혹시 조나단이 돌아오면 어떡해?”
네이선, 그 말을 하기에 이미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냐?
네놈이 마신 술의 흔적이 벌써 저기 저만큼 쌓여있다고!
알코올 가성비가 매우 떨어지는 네이선의 뱃속에 꾸역꾸역 들어가는 아까운 돈, 아니, 술을 보다가 적당히 대답해주었다.
“벌써 항구관리관에게 다 이야기해 놨어.”
“응? 항구관리관?”
“내 예상대로 치안관이고 뭐고 죄다 물갈이돼버렸더라고. 대충 후작 각하의 특별 명령으로 이런저런 선박을 찾고 있으니 입항 즉시 내게 보고하라고 했지.”
그때 어디선가 싸구려 화장품 냄새가 풍기더니 머리통 하나가 우리 사이에 끼어들었다.
“헤헤헤, 기분 좋다! 그런데 조나단이 우리 보고 도망가면 어떡하지?”
“항구까지 왔으면 제까짓 게 뛰어봐야 벼룩이지. 우리 보고 대가리 돌리는 순간 연안 경비대가 전부 나포할 거야. 물론 그렇게 되면 이놈들에게 대가를 좀 크게 줘야 하니 약간 피곤해지지만, 후작의 지시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그으런가아아아억!”
헤실거리던 우르타가 이상한 말꼬리를 남기며 어딘가로 끌려갔다.
시선을 돌려보니 창녀들 사이에 끼어서 헤롱거리는 우르타가 보였다.
“젠장, 부러운 자식.”
야, 너 유부남이잖아, 임마.
어이없는 표정으로 네이선을 보고 있는데 오른쪽에 인기척이 느껴지더니 가벼운 꽃내음 같은 것이 느껴졌다.
“흐음, 이제 꽤 거물이 되셨나 봐요, 스펜서 남작 나으리?”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예상했던 얼굴이 방실거리며 웃고 있었다.
“케일린 양, 오랜만이군요.”
“호호, 제가 귀족 나으리께 이런 정중한 대접을 받는 날이 올 줄은 몰랐네요. 기분이 나쁘지 않은데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어머?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거나 아픈 데는 없는지 먼저 물어보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우리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나 꽤나 위험한 상황이었던 것 같은데.”
하아, 여전히 피곤한 아가씨로군.
고작 내 얼굴이나 보자고 찾아온 것은 아닐 텐데 말이야.
“건강은 좋아 보이고 지금 이 자리에 당당하게 앉아있다는 것은 잘 지냈다는 뜻이겠죠. 굳이 질문이 필요할까요?”
“스펜서 남작님은 능력은 있으신데 여자를 잘 모르시네. 여자친구도 없죠?”
뜨끔
“호호호, 농담이에요, 농담!”
“······.”
“···어, 진짜 없어요?”
뻔뻔한 여우가 당황하는 표정을 짓는 것을 보니 통쾌하기는 한데, 왜 하필이면 그런 포인트에서 당황하는 거야?
“우와아앗! 예쁜 사람! 리안 나빠! 나랑은 여자랑 놀지 말라고 했으면서!”
갑자기 끼어드는 우르타를 보니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렸다.
난 놀지 말라고 한 적이 없다.
저번처럼 주머니 털리지 않게 조심하라고 염려의 말을 몇 마디 건넸을 뿐.
그리고 애초에 내가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 네놈 마음대로 놀고 있잖아?!
“어머머, 여기 잘생긴 분은 기억이 나요. 흐응, 더 잘생겨지셨네?”
케일린의 말에 고개를 흔들며 억지로 초점을 맞춘 우르타가 눈을 몇 번 껌뻑거리더니 소리를 빽 지르며 펄쩍 뛰어 물러섰다.
“우아악! 그, 그때 무서운 누나!”
“무서운··· 누나?”
“어··· 예쁘고 무서운 누나?”
빠직.
억지로 웃고 있는 케일린의 이마에 파란 핏줄이 도드라져 보였다.
우르타 너, 이런 재능을 숨기고 있었구나?
* * *
“하지만 선장님, 인원이 너무 단출하지 않습니까? 하필이면 그 위험한 뒷골목을···.”
“에헤이, 초대받아서 가는 거라니까?”
“그래도 고작 다섯은 좀···.”
“내가 뒷골목이나 다닌다고 여기저기 광고할 일 있어? 호위 인원만 수십 명씩 끌고 가게?”
“그 건방진 여자가 잘못된 것 아닙니까! 남작님을 오라 가라 하다니요! 뒷골목의 더러운 계집··· 아, 죄송합니다.”
감정이 격해졌던 행크가 자기가 무슨 실수를 했는지 깨달은 듯 급히 사과했다.
하지만 딱히 화가 나지는 않았다.
발레아스 아저씨의 딸이라고 하지만 내가 케일린과 특별하게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비즈니스 관계일 뿐이니까.
“그런데 원래 선장님 취향이 그런 쪽이셨습니까? 좀 위험한···.”
물론 행크 저 녀석은 다르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호위라기보다 내 동행들의 면면은 충분히 화려했다.
네이선과 알렌, 행크와 아인델프, 마지막으로 우르타까지 총 다섯 명.
마지막에 옥에 티가 붙은 것 같지만, 일단 비좁은 뒷골목에서는 거의 무적에 가까운 파티 구성이었다.
“여기까지 오시게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스펜서 남작님.”
“그런 공치사는 관두죠, 케일린 양. 그래서 무슨 말을 하려고 여기까지 부른 겁니까?”
“먼저 선물을 드려야겠죠?”
“선물이라.”
“사흘 전에 론 항구에서 엄청난 수의 함대가 출항했어요. 벨로키나 왕국의 1, 2함대, 쿠샤 왕국의 1, 2함대, 그리고 은행, 아··· 이제 마법사 길드라고 해야 하나요? 하여간 그들이 지원하는 34척의 지원함대까지. 사실상 두 나라의 가용 가능한 해군 전력이 모두 움직인 셈이죠.”
“대해전이군.”
“흐응, 이미 알고 있었나보네요?”
“뭐, 적당히. 고작 이런 걸 선물이라고 주신다면 조금 실망스럽군요.”
내 말에 기묘한 표정을 짓던 케일라가 서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전쟁 소식은 민감한 부분이죠. 그래서 늘 확인하고 있구요. 이건 일레드 왕국의 대응이에요.”
찬찬히 종이를 훑어보았다.
일레드 왕국은 원래 시논 섬 인근에 주둔하던 3, 4함대뿐만 아니라 2함대까지 추가로 배치했고 1함대는 일레드 왕국 본토에 넓게 퍼져 있었다.
특별히 이상한 것은 보이지 않는데?
론 항구를 출발한 함대가 시논 섬을 향한다는 정보가 들어가면, 일레드 왕국도 1함대까지 총동원하여 시논 섬 방어전에 나설 게 분명했다.
그리고 아마 그 전투가 이 전쟁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전투가 되겠지.
“흠, 일레드 왕국의 전력이 이 정도 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소.”
“물론 그렇겠죠.”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싱글거리는 그녀를 보니 왠지 지는 기분이 들었지만 나는 솔직하게 물어봤다.
감이라도 잡혀야 밀당이라도 해보지.
“뭐가 문제라는 것이오? 내가 보기에는 당연하고 정석적인 대응인데.”
“선물이 꽤 마음에 들 것 같아서 기분이 좋네요. 여기를 봐요, 그리고 여기, 또, 아, 여기랑···.”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 내 어깨에 밀착하듯이 붙은 그녀의 향기에 순간적으로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맨날 사내놈들의 땀 냄새와 짠내만 맡다 보니 향기에 오감이 너무 격하게 반응한다.
나는 잡념을 없애려고 최선을 다해 그녀의 손가락에 집중했다.
오밀조밀하고 고운 이목구비와 다르게 수십 개의 흉터는 물론 굳은살이 단단하게 박여있는 투박한 손이었다.
“이렇게 하면 대충 빠진 선박들로 이런 구성이 가능하죠.”
“···너무 억측인 것 같은데?”
“그래서 그 폰테 섬이라는 곳, 방어 시설이 얼마나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