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0화> 전설! 폭풍의 6인조! >
생글생글 웃는 그녀의 얼굴을 보면서 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비단 내가 폭력적인 사람이라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사실 그녀의 추측은 과장된 면이 꽤 많았다.
분명한 정보에 기반했음에도 불구하고 ‘추측’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몰랐다면 몰라도 의심이 생긴 이상 확인하고 싶은 것이 인간의 심리지.
잠자코 우리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아인델프도 결국 작게 한숨을 내쉬며 속삭였다.
“제독 말씀대로 근거는 빈약하지만 아주 확률이 없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전투 결과에 따라 조금 달라질 수는 있겠습니다만.”
아인델프의 목소리가 조금 컸는지, 대답은 케일린의 입에서 나왔다.
“폰테 섬 공격은 이번 대해전의 결과와 별 상관이 없어요. 그래서 일레드 왕국에서 일부러 병력을 뺀 것은 아닌지 의심을 한 거구요.”
“케일린 양, 하고 싶은 말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정보만 전달해주시오. 난 당신에게 판단까지 맡기고 싶지 않으니까.”
기분이 좋지는 않았기에 점점 내 말투가 딱딱해져 갔다.
하지만 그녀는 상관없다는 듯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
“일레드 왕국이 패전한다면 시논 섬과 케르빈 섬 일대를 내놓을 수밖에 없어요. 애초에 전쟁이 시작된 이유가 그거니까. 그렇다면 일레드 왕국이 자신들의 본토를 겨누는 비수가 될 수 있는 폰테 섬을 그냥 둘까요?”
“끄응···.”
죄다 옳은 소리라 뭐라고 말을 못 하겠네.
게다가 그녀의 말대로···.
“일레드 왕국이 이긴다고 하면 더 확실하죠. 일레드 왕국이 폰테 섬을 그냥 두고 볼 리가 없잖아요? 그리고 폰테 섬을 유지할 정도로 벨로키나 왕국이 여유가 있을 리는 만무하고···. 막말로 남작님 혼자 힘으로 폰테 섬을 지켜낼 수는 없잖아요?”
그렇다.
아무리 돈 좀 있고 배 좀 있다고 해도 일국의 해군을 상대로 내가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지.
심지어 그 상대가 내해의 제해권을 꽉 틀어쥔 일레드 왕국이라면 얌전히 내 사람들을 데리고 철수하는 것이 상책이다.
대충 생각을 정리한 나는 케일린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좋습니다. 선물은 잘 받았고, 필요하신 게 뭡니까?”
“훗, 역시 말이 잘 통할 줄 알았다니까요? 남작님은 인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
어우, 들어올 때 깜빡이 좀 켜고 들어오면 안 되나?
솔직히 순간적으로 숨을 못 쉴 뻔했다.
“쿨럭!”
···이미 틀린 것 같은데.
얼굴이 빨갛게 되도록 기침을 참고 있는 아인델프를 보다가 최대한 담담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최근 여기저기에서 인어 이야기를 듣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원래부터 괴담처럼 떠돌던 소문이니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았습니다만.”
“흐음··· 정말 듣기만 하셨다구요?”
이 여자가 뭘 알고 있나?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데?
여전히 그 속을 알 수 없는 케일린의 눈을 보며 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설마 하고 싶은 말이 인어를 찾아달라는 허황된 이야기라면 이만 일어나죠. 선물 값은 따로 지불할 테니.”
“···흐응, 뭔가 아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일까요?”
그녀의 눈이 자연스럽게 아인델프를 향했다가 따로 앉아있는 네이선, 우르타, 행크를 향했다.
그녀의 눈을 따라가 보니 오줌이 마려운 듯한 표정의 세 사람이 보인다.
젠장, 하지만 그녀에게 확실한 증거가 없다면 계속 나를 몰아칠 수는 없을거다.
“아인델프 선장, 일어나지.”
“쿨럭, 쿨럭, 아, 네, 제독, 쿨럭.”
나와 아인델프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다른 세 사람도 분분히 일어서는 것이 보인다.
상황을 잘 모르던 알렌도 엉거주춤 따라 일어선다.
그렇게 내가 뒤로 돌았을 때 작은 웃음소리와 함께 케일린이 가볍게 말했다.
“꼭 인어를 본 것처럼 발끈하시긴. 인어에 관심이 많은 분이 있어서 그랬어요. 저도 뭐 그렇게 믿는 편은 아니지만 확인차 물어 본 거라구요. 아무래도 최근에 남들이 가지 않는 바다를 가장 많이 가보신 분이 남작님이시니까.”
“기분이 썩 좋지는 않군. 오늘 일은 발레아스 아저씨와의 인연을 생각해서 그냥 넘어가지.”
내가 기분이 나쁘다는 것을 확실하게 어필했지만, 그녀는 거침없었다.
“좋아요, 그건 그냥 그렇다고 넘어가고, 사람 좀 빌려줘요.”
“이봐, 케일린 양. 내 인내심을 시험하는 거라면 이제 그만하기를 정중하게 권고하겠소. 내 성격이 그렇게 좋지 않아서 말이야.”
“그러지 말고 말은 좀 들어봐요. 그래도 내가 생명의 은인 아닌가?”
다른 건 몰라도 배짱 하나는 발레아스 아저씨보다 낫군.
발레아스 아저씨는 내가 남작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기 무섭게 바로 꼬리를 말았는데 말이야.
“후우, 좋아, 이야기는 들어보죠. 사람을 빌려달라니 무슨 말입니까?”
* * *
치안관의 옹호 아래 무섭게 세를 늘리던 붉은 전갈파는 발레아스 아저씨를 쫓아내고 뒷골목을 거의 다 장악했었다.
저항하는 세력이라고 해봐야 케일린이 이끄는 한 줌도 안 되는 인원뿐.
하지만 그녀가 끈질기게 저항을 이어가는 사이에 결국 전쟁이 터졌고, 치안관은 물론 그 뒤를 봐주던 니콜라 데시마 남작까지 모조리 폐기처분당하는 극적 반전이 일어난 것이다.
새로 부임한 치안관에게 전 치안관과 짝짜꿍을 하던 붉은 전갈파는 눈엣가시였고, 케일린은 그 기회를 잡았다.
“경비대가 붉은 전갈파 놈들을 쓸어버린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쉬웠어요. 놈들에게 저항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으니까. 문제는 그 다음이었죠.”
그녀의 설명이 이어졌다.
“니에라, 웨스티베인, 페로모다··· 이 근처 거의 모든 도시와 성에서 하이에나 같은 놈들이 몰려들었죠. 여기만큼 목이 좋은 곳은 없으니까요. 붉은 전갈파는 와해 직전이고 신흥 세력이라고 해봐야 어린 여자아이가 이끄는 조무래기들이니 얼마나 만만해 보였겠어요?”
“흠. 그쪽 수완으로 볼 때 그냥 당하고 있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비꼬는 듯한 내 칭찬에 그녀는 살짝 웃으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럭저럭 유지는 하고 있어요. 문제는 세력이 정립이 안 돼서 지금도 매일같이 크고 작은 칼부림이 난다는 거예요. 치안관도 언제부턴가 내게 회의적인 눈길을 보내는 것 같고.”
“강력한 한 방이 필요하다는 말이군.”
“빙고. 많이도 필요 없어요. 그때 잘 싸우던 저기 저 남자와 싸움 잘하는 인원으로 몇 명만 붙여줘요. 어차피 너무 많으면 외부 세력을 개입시켰다고 불만이 튀어나오니까.”
결국 네이선과 돌격대를 빌려달라는 말일 거다.
그녀의 꼼꼼함으로 볼 때 이미 돌격대의 존재 정도는 알고 있을 테니.
하지만 네이선과 돌격대에게 이번 일을 강요할 수는 없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뱃일을 하는 조건으로 나와 계약한 것이지, 내가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용병이 아니니까.
“다른 방법도 있지. 당신이 원한다면 발레아스 아저씨에게 데려다줄 수 있어. 당신을 따르겠다는 사람들까지 모두 데리고 가 주지.”
“싫어요.”
재고할 가치도 없다는 듯 단호한 대답에 다시 물었다.
“아저씨와 관계가 나쁜가? 아저씨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은데.”
“아빠는··· 아빠는 좋아해요. 하지만 난 이미 성인이고, 언제까지 아빠 등 뒤에서 살 수는 없으니까. 그렇다고 내가 아빠를 치울 수도 없잖아요?”
그녀의 맹랑한 말에 기가 막혔다.
말랑말랑해 보이는 외모에 내가 그녀를 너무 쉽게 생각한 모양이다.
보기에는 예쁘장한 아가씨 같아도 결국 뒷골목 출신의 보스라는 말이겠지.
보통 뒷골목의 세력 승계는 전 보스의 죽음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 전 보스의 목숨을 거두는 사람은 보통 다음 보스다.
그러니까 그녀가 지금 아저씨 밑으로 가면 보스가 되기 위해 자신의 아버지인 아저씨를 죽여야 한다는 뜻이고, 그런 살벌한 말을 저렇게 눈도 깜짝 안 하고 말하는 거다.
이런 패드립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다니, 하여간 뒷골목 놈들은 상종을 못 하겠다니까.
“내가 저들을 고용하고 있지만 이런 일까지 강요할 수는 없어. 차라리 돈을 내는 편이 쉬워 보이는군.”
“저 남자 실력이면 딱히 위험할 것도 없잖아요? 알고 계실 것 같은데. 그리고 바흐카덴의 뒷골목을 쥔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면 아무래도 두고두고 좋지 않겠어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생글거리는 그녀의 얼굴을 보면서 주먹을 꽂아 넣고 싶어지는 것은 결코 내가 폭력적인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 * *
“저는 선장님이 원하신다면 괜찮습니다.”
“어엉?”
뒷골목을 빠져나오자 마자 행크가 비장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두 눈에 가득한 의지를 보니 독립투쟁이라도 하는 것 같다.
“내가 뭘 원해?”
“그게 뒷골목이건 해적 소굴이건! 선장님이 원하신다면 이 한 몸 불사르겠습니다!”
절로 이마가 뜨뜻해지며 뒷목이 당겨왔다.
“이봐, 행크. 자네 지금···.”
“나도! 나는 리안을 위해서 죽을 수도 있어!”
우르타가 반짝거리는 눈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글쎄, 내가 너 때문에 고혈압으로 죽을 확률이 더 높을 것 같지 않냐?
어찌 되었건 케일린의 제안이 딱히 나쁘지는 않았다.
선원들을 뒷골목 전쟁에 동원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그냥 지원자만 받으면 되니까.
막말로 네이선과 행크만 지원해줘도 정면 대결에서는 무시무시할 거다.
똑똑똑
“어, 들어와.”
갑판장들과 돌격대장들이 온 줄 알고 가볍게 대답하자 문이 열리며 의외의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응? 알렌, 아니, 발리에? 여기는 무슨 일인가?”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남작님.”
“흠, 들어오게.”
문을 닫고 들어온 발리에는 내 손짓에 따라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내가 자리에 앉기도 전에 입을 열었다.
“파견을 보낼 생각이라면 저도 보내주십시오.”
“으응? 그게 무슨 말··· 입니까?”
역시 저 남자에게 평대를 하는 건 쉽지가 않다.
“들으신 그대로입니다.”
나는 인상을 구기며 알렌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하늘을 찌르는 자존심의 대명사인 기사, 그 표본과 같은 알렌 경이 더러운 뒷골목 싸움에 스스로 파견을 가고 싶어 한다고?
하지만 그의 표정에서는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었다.
“이유가 뭡니까? 필요한 일이라면 내가 먼저 요청을 드렸겠지만,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되는 일입니다.”
“이제 기사도 아니고 용병 짓까지 했던 사람입니다. 최소한 밥값은 해야지요.”
“이전 전투에서 충분히 활약하셨습니다만.”
“···갑판장이 다친다면 나를 용서하지 못할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그의 얼굴에 살짝 떠오른 죄책감을 보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자기 자존심의 문제인 거다.
은혜를 베푼 내게 피해를 안겼으니, 그것도 내가 아끼는 사람을 헤치는 짓을 했으니 그 고고한 자존심이 꽤나 상한 거지.
그런데 그 후유증으로 네이선이 덜컥 죽기라도 하면 안 되니까 근처에서 지켜보겠다는 의미이리라.
그런데 네이선 그 놈 다 나은 것 같던데?
이유야 어찌 되었건 그가 나서준다면 나로서는 고마울 일이다.
알렌이 함께한다면 굳이 돌격대원들까지 동원할 필요도 없을 거다.
“그렇게 하시죠. 갑판장에게 따로 이야기해두겠습니다.”
“그럼 이만.”
가볍게 목례를 한 알렌이 떠나고, 잠시 후에 건장한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네이선과 행크, 피오렐의 갑판장 로데스와 돌격대장 발타, 리버티의 갑판장 왓킨까지.
다들 한 덩치씩 하는 인물들이다 보니 나름 널찍한 선장실이 좁아 보인다.
“다들 앉지.”
“네, 제독.”
모여 앉은 다섯 사람에게 나는 상황을 찬찬히 설명해주었다.
“파견 기간은 길어봐야 닷새를 넘지 않도록 이야기를 해 두었어. 그쪽에서 주는 보상과 별개로 내가 따로 보상도 할 거고. 하지만 우리 일이 아니니까 빠질 사람은 빠져도 좋아.”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행크가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저는 가겠습니다!”
“어, 잠깐, 잠깐. 전부 다 가면 우리 애들 관리는 누가 해?”
왠지 행크에게 사람들이 선동당할 것 같아서 급히 제지하자, 덩달아 손을 들려던 사람들이 머뭇거리는 것이 보였다.
아무래도 이 친구들의 충성심을 너무 낮게 본 것 같다.
“피오렐과 리버티 선원을 관리할 사람이 필요하니 로데스와 왓킨 갑판장은 남도록 하지.”
내 중재안에 왓킨 갑판장이 짓궂게 웃으며 말했다.
“제독, 너무하시는 거 아닙니까? 우리도 용돈벌이 할 기회를 주셔야죠. 그리고 어차피 애들 관리야 항해사들도 있는데 무슨 상관입니까?”
* * *
“···저 그런데 남작님께서 누추한 곳까지 왜···.”
“흠, 차 향이 별로 좋지 않군. 너무 오래된 찻잎을 쓴 모양이야?”
내 말에 치안관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보아하니 내가 근본 없는 귀족이라고 싸구려 찻잎을 사용한 게 맞는 것 같다.
사실 귀족이라는 것들도 대부분 차의 미묘한 차이를 알아채지 못하니 당연한 반응이기는 한데 막 기분이 좋지는 않군.
“그, 그게···.”
“쯧, 차를 즐길 줄도 모르면서 이런 것을 내올 필요 없네. 차라리 포도주나 내오지.”
“아, 알겠습니다! 제가 사실 차는 그리 즐기지 않는 터라··· 포도주는 최고로 준비하겠습니다!”
부랴부랴 자리를 떠난 치안관이 가지고 온 것은 과연 괜찮은 포도주였다.
포도주를 마시고 만족스러운 감탄사를 터뜨린 나는 여전히 안절부절못하는 치안관에게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
싸우자고 온 것도 아니고 여기가 벨로키나 왕국도 아니니 어르는 것은 적당히 하는 게 좋았다.
“혹시 전임 치안관에게 내가 바흐카덴에 오지 않는 이유에 대해 들었나?”
“네? 그게 무슨··· 아, 아니! 사실 전임 치안관이 비리 혐의로 파직되는 바람에···.”
그건 파직이 되지 않아도 원래 인수인계 못 받는 내용이야, 이 사람아.
그때는 귀족도 아니었던 내가 바흐카덴에 오지 않는 이유를 치안관이 알 리가 없잖아.
물론 엮인 일이 있으니 나에 대해 아주 모르지는 않았겠지만, 그게 남에게 이야기할 만한 일은 아니지.
“뭐, 그럴 수 있지. 내가 전에 이곳을 방문했을 때 전갈파인가 하는 뒷골목 놈들에게 낭패를 당한 적이 있거든.”
“그런 일이!”
안타깝다는 듯 탄성을 터뜨리는 치안관의 표정에 여유가 감돌았다.
그 붉은 전갈파를 박살 내고 있는 게 자신이니 딱히 꿀릴 게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말인데···.”
“그놈들이라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취임과 동시에 아주 혼쭐을 내놓았습니다!”
“음, 지금도 보이는 것 같던데 말이야.”
“네? 아, 아. 지금도 잔당 놈들을 치우고 있습니다만, 이놈들이 워낙 바퀴벌레 같은 놈들이라 조금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하지만 곧 깨끗하게 치워 놓겠습니다!”
당당하게 말하는 치안관에게 씩 웃어준 내가 은근하게 본론을 꺼내 놓았다.
“그래서 말인데, 내 밑에 애들 중에 복수하겠다는 놈들이 좀 있거든. 그러니 며칠 정도는 눈감아 줄 수 있겠나?”
“네? 그게··· 그러면···.”
나는 미리 준비한 주머니를 치안관 앞으로 쓱 밀어주었다.
물론 주머니를 준비한 사람은 케일린이었다.
주머니를 준비하며 자기가 직접 갔다면 열 배를 내놔도 부족했을 거라고 이를 박박 갈았었지.
“우리 애들이 어디서 맞고 참는 애들이 아니라서 말이야. 뱃놈들이 단순 무식한 건 자네도 잘 알지 않나?”
“물론입니다! 뱃놈들이, 헉!”
무지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던 치안관이 기겁하며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당장 자기 앞에 있는 귀족 나으리가 그 단순 무식한 뱃놈 출신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린 후 잔에 남은 포도주를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잘 이해한 걸로 알겠네. 이 포도주 마음에 드는군.”
“아, 네! 마음에 드신다면 새로 한 병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그렇게까지는 할 필요 없는데, 고맙네.”
이야, 치안관을 상대로 포도주 삥도 뜯고, 이 맛에 귀족을 하는구나?!
* * *
내가 치안관을 만난 그날 저녁부터 바흐카덴의 뒷골목에 피바람이 불었다.
붉은 전갈파의 잔당들이 쓸려나갔고, 타지에서 온 불량배들의 단체 신체 분실 사건이 발생했다.
물론 신체 중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몇 사람은 추가로 목숨도 잃었지만, 그건 그렇게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았다.
그 와중에 뒷골목에 새로운 전설이 탄생하니, 그 이름도 찬란한 폭풍의 6인조!
폭풍처럼 뜬금없이 나타난 여섯 명의 남자는 폭풍처럼 바흐카덴의 뒷골목을 휩쓸었다.
이야기는 부풀려지고 부풀려져서 우리가 출항을 앞둔 시점에서는 그 6인조에게 목숨을 잃은 인원만 무려 천 명을 헤아리게 되었다.
“우헤헤헤, 포, 포, 폭풍의 6인조! 그들 중 가장 빛나는 두 자루의 검이 있··· 크헤헤헤헤!”
“거기 서, 이 미친놈아!”
“서면 때릴 거잖아!”
“아니, 넌 죽어, 내가 이번에는 반드시 죽인다. 서도 죽고 안 서도 죽어!”
“으헤헤헤헤! 폭풍! 폭풍의! 으히힉!”
오늘도 오트라스의 갑판은 평온했다.
그치 리아야?
“고롱고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