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5화> 작전관 >
“쉽지 않네. 어후.”
나는 책상에서 일어나 찌뿌둥해진 팔다리를 풀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처음 슬레어를 불러서 폰테 섬 인근의 지형을 확인할 때만 해도 이렇게 어려운 일일 줄은 몰랐다.
하지만 막상 계획을 세우려고 보니 구멍이 한두 개가 아닌 거야.
와르르르.
스트레칭을 하며 뭔가 잘못 건드려서인지 한쪽에 쌓여있던 폐기된 기획안이 바닥에 흩어졌다.
“젠장.”
치울 의욕조차 생기지 않아서 바닥에 흩어진 종이 쪼가리를 보며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동원할 수 있는 전력은 한정적이고, 달성해야 하는 전략적 목표는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다.
슬레어 덕분에 직접 지형 파악을 해야 하는 수고와 시간은 줄였지만, 그 정도로는 아무래도 부족한 감이 있었다.
차라리 시간이라도 여유가 있었다면 여러 가지 준비라도 해볼 텐데, 내가 쓸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게 문제다.
정보는 부족하고, 전장의 상황은 알 수 없으며, 아군의 전력 열세는 확실하니 나라고 뾰족한 수가 있을 리 있나.
일단 전력의 불리함을 뒤집기 위해서는 트리토나 함의 동원은 불가피했다.
예상되는 적의 전력은 최소한 여섯 척의 전투함과 한 척의 수송선.
물론 이 수송선이라는 것도 군용이라 기본적인 무장은 갖추고 있었다.
애초에 이 세상의 군함이라는 것이 수송선과 전투함의 구분이 애매하니 그냥 전투함 일곱 척이라고 보는 게 편하다.
그에 반해 트리토나를 제외하면 우리 전력이라고 해봐야 오트라스, 피오렐, 드라이언 뿐인데 심지어 이들의 대포 상태가···.
비록 오트라스에서 마력 포탄을 운용할 수 있다고 해도 고작 그 정도로 압도적인 전력 차를 메꿀 수는 없었다.
네이선과 알렌 경, 용병들을 이용한다면 백병전에서는 우세를 가져갈 수 있겠지만, 백병전이라는 것 자체가 접현 전까지 적의 포격에 노출되는 것은 물론이고 한 번에 한 척밖에 제압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아무리 계산을 해봐도··· 세 척쯤 잡히면 도주할 거야. 놈들이 바보 멍청이도 아니고.”
그리고 적이 도주하기로 마음을 먹으면 현실적으로 세 척이 네 척을 막는 것은 불가능했다.
게다가, 가장 큰 문제는 바로 트리토나 함이었다.
“망할, 무슨 놈의 운용 인원이 이렇게 많아?”
전력 차를 메꾸기 위해서 트리토나 함을 움직여야 한다고 했지?
그런데 이놈의 트리토나 함은 덩치가 덩치인 만큼 백병전은 상정하지 않더라도 운항과 포격에 필요한 인원만 대략 200여 명이다.
이정도 인원을 다른 배에서 빼면, 아무리 계산을 해봐도 오트라스나 피오렐, 둘 중의 한 척밖에 움직일 인원이 나오지 않는다.
결국 이러나저러나 동원할 수 있는 선박이 드라이언까지 포함해서 세 척이라는 뜻이다.
“이걸 누구랑 상의 할 수도 없고···.”
그나마 이런 일을 상의할만한 사람은 정식으로 사관학교를 다닌 아인델프나 용병 함장 경험이 많은 베기어 정도인데, 알다시피 두 사람은 모두 선장들이다.
지금처럼 급속기동을 하는 중에는 다른 배에 있는 사람과 상의를 할 방법이 없으니 두 사람의 의견을 물어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생각 없이 대포나 쏴 재끼다가 배 붙여서 칼질하는 것만 아는 놈들밖에 없으니 원.”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금 오트라스에 타고 있는 뱃놈 중에는 전략이니 전술이니 하는 부분을 이해할만한 사람이 없다.
그렇다고 닥터나 제먼 씨가 그런 쪽에 능할 리도 없고.
······.
그러고 보니 그들 말고도 배에 탄 놈들이 또 있었지?
* * *
“어··· 그걸 왜 저에게 물어보시는지?”
내가 열과 성을 다해 현재 상황과 달성해야 하는 전략적 목표(적 함선의 전멸)에 대해 설명하자 애꾸, 아니, 레건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렇게 물어보면 안 되지!
그래도 너는 용병질로 칼밥 먹으면서 전쟁이니 전투니 많이 참가 했을 것 아냐?
이번 벨로키나-쿠샤 왕국 연합과 일레드 왕국 간의 전쟁이 있기 전까지 한동안 큰 전쟁이 없었다지만 국지전이나 영주 간의 사소한 다툼은 끊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레건 정도라면 뭔가 좀 대국적 시야가 트여있지 않을까?
···는 개뿔, 이놈도 수준은 뱃놈들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한참 동안 머리를 쥐어짜서 한다는 소리가 이미 내가 파기했던 기획안 수준도 안 된다.
“아니, 이게 말이 되는 목표요? 차라리 적을 격퇴하는 정도라면 뭐,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 같기는 합니다만.”
“내가 오죽하면 자네까지 불러서 이러겠냐고. 그래도 전쟁이니 전투니 경험이 제일 많은 건 자네잖아?”
“그렇게 말씀하셔도 저도 얼마 전까지 일개 용병이었수다. 가라는 데로 가고, 싸우라는 놈과 싸우는 게 일인데 전쟁에 대해서 알아봐야 뭘 얼마나 알겠수?”
“그건 그러네···.”
레건의 말도 틀린 말이 아니라서 나는 결국 깔끔하게 포기하고 말았다.
이놈과 백날 이야기해봐야 내가 혼자 생각하는 수준을 넘어서기는 어려우리라.
“차라리 항해사들을 불러서 이야기라도 해봐야겠어. 그래도 공부라는 것을 한 놈들이니 좀 낫겠지.”
물론 항해학교 출신들이 전쟁과 전투에 대해서 얼마나 배웠을지는 모르겠다만.
“아, 그러지 말고 이번에 데리고 온 녀석 중에 이런데 관심이 많은 놈이 있는데 한 번 불러볼깝쇼?”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사람을 추천하는 레건에게 미심쩍음을 가득 담아 되물었다.
“자네가 데리고 왔다고? 그럼 용병?”
“당연히 용병 아니겠수?”
“용병이 머리를 쓴다고?”
“···음.”
내 말에 할 말이 없는 듯 머리를 긁적이던 레건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에잇, 어차피 나를 붙잡아놓고 백날 이야기해봐야 제독이 원하는 답은 안 나올 거요. 사실 제독에게 가면 일자리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던 놈도 그놈이니까 한 번 이야기나 해보슈, 어차피 제독도 지금 답이 없잖수?”
“···그래, 알았어. 나가 봐.”
그래도 내가 귀족이라는 자각 정도는 있는지 나름 어설프게라도 격식을 갖춰 인사를 한 레건은 혹시 내가 붙잡기라도 할 것처럼 재빨리 선장실을 나갔다.
똑똑똑.
레건이 나간 뒤로 방을 정리하고 있는데 노크 소리가 들렸다.
노크 소리가 다른 걸로 봐서 네이선이나 우르타는 아니었다.
무심결에 침대 근처의 칼을 잡으며 말했다.
“열려있어, 들어와.”
문이 열리고 들어온 사람은 낯선 남자였다.
남자가 들어오자마자 깊게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면 나도 모르게 칼을 뽑았을지도 모르겠다.
선장실이 무슨 신성불가침 구역 같은 곳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간부를 제외하면 일반 선원 중에는 그래도 내가 얼굴을 아는 녀석들 정도나 전령으로 오기 때문이었다.
“엘리엇이라고 합니다, 스펜서 남작님.”
“어? 어, 음. 무슨 일이야?”
공손한 행동과 달리 눈매가 날카로운 것이 보통 놈은 아닌 것 같았다.
“남작님께서 부르셨다고 레건 대장에게 전해 들었습니다.”
레건이라는 말에 조금 더 그를 관찰해보니, 두터운 옷 뒤로 제법 탄탄해 보이는 근육이 느껴졌고, 공손하게 모은 손은 거칠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자세히 보면 목덜미 쪽에 칼자국 같은 게 하나 있기도 하고.
나이는 대략 40쯤 되었을까?
“아, 자네가 그 전쟁에 관심이 많다는?”
“남들보다 조금 더 아는 정도입니다.”
겸손한 내용과는 다르게 대답에 거침이 없는 것을 보니 뭔가 있기는 한 모양이었다.
“그래? 그쪽에 앉지. 혹시 상황에 대해서 레건 대장에게 조금 들었나?”
“아닙니다, 레건 대장이 설명을 잘 못하는 편이라.”
그가 비무장이라는 것을 꼼꼼히 확인한 후에 살짝 긴장을 풀며 테이블의 상석에 앉으며 물었다.
“그럼 상황 설명이 필요하겠군. 그런데 그 전에 하나 묻지. 전략이나 전술에 대해서 스스로 얼마나 안다고 생각하나?”
“닥치고 돌격만을 외치는 멍청이들보다는 낫다고 생각합니다.”
단호한 대답에 약간의 호기심이 생겼다.
보통 용병이니 선원이니 하는 사람들은 머리로 하는 일에 별 관심도 없고, 허세를 부려도 머리 쪽으로는 안 부리는 편이거든.
“호오? 공부를 좀 했나?”
“공부라기보다는··· 역사서를 주로 보았습니다.”
나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책을 읽을 줄 안다면 확실히 용병 짓을 하기에 좀 안 어울리는 사람이기는 했다.
모든 용병이 문맹은 아니었지만, 문맹이 아니라고 해서 책 읽기를 즐겨한다는 뜻은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역사서? 나도 학을 뗀 재미없는 종류의 책이다.
“내 방에 역사서가 한 권 있는데, 혹시 아는 책인가?”
이전에 왕녀님이 읽으셨던 책이 아직 내 눈에 잘 띄는 곳에 꽂혀 있었다.
참고로 재미가 없어서 나는 아직 다 못 봤다.
“네, 트리브아나 왕국 흥망사군요. 총 42회의 전쟁에 대해서 기록된 사서죠. 생략이 심하기는 하지만 전투 진행에 과장이 없어 꽤 재미있게 보았던 책입니다.”
“···어?”
얼떨결에 멍청한 소리를 내뱉을 정도로 깜짝 놀랐다.
책에 대한 내용을 이야기하고 감상을 말하는 것 정도는 놀랄 일도 아니다.
그 정도는 아마 우리 왕녀님도 가능하지 않을까?
내가 놀란 부분은 바로···.
“재밌다고?”
“네. 사서 중에서는 꽤 재밌는 편입니다.”
“진심이야?”
“···네?”
이거 완전··· 변태잖아?!
* * *
변태, 아니, 엘리엇의 독특한 존중이야 일단 취향해주기로 하고 일단 그의 능력은 진짜였다.
최소한 내 이야기를 들으며 던지는 질문의 수준 자체가 레건과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내 이야기를 다 들은 엘리엇은 잠시 지도를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살짝 고개를 흔들었다.
“남작님,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해전의 전투 방식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제가 아직 해전은 겪어보지 못해서.”
“어? 해전? 그게 그러니까···.”
해적을 겪은 횟수가 적은 것은 아닌데 막상 설명을 하려니 이게 또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자꾸 말이 꼬이자 엘리엇이 잠시 내 말을 끊었다.
“남작님, 그럼 차라리 이전에 겪으셨던 전투들에 대해서 자세하게 이야기해주실 수 있을까요?”
“으음, 그건 시간이 좀 걸릴 텐데.”
“지금 상황을 들어보니 섬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시간이 있을 것 같은데요.”
“잠깐만 밖에서 기다려 주겠나?”
군말 없이 엘리엇이 선장실을 나가자 나는 재빨리 비밀장소에 숨겨둔 항해일지를 꺼냈다.
내가 무슨 컴퓨터도 아니고 지금까지 있었던 전투를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을 리가 없잖아.
“들어오게.”
다시 들어온 엘리엇이 자리에 앉기 무섭게 나는 항해일지를 펴서 이전의 전투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내 기억력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기록이 있으니 중요한 내용은 그럭저럭 설명할 수 있었다.
“흠, 그렇다면 말씀하신 그 ‘트리토나’라는 배는 어느 정도입니까? 이전의 전투에서 동원되었던 배들과는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만.”
“그건 뭐라고 해야 할까, 제대로 운용할 수만 있다면···.”
지구의 기준으로 말하자면 고작해야 캐러벨이나 카락, 잘해봐야 초기형 갤리온 수준의 배들이 돌아다니는 전장에 전열함이 뜬 셈이다.
비록 무적은 아닐지 몰라도 규격 외라는 것은 확실했다.
지금 최강이라고 불리는 최신예 전투함에 비해 대포의 수가 거의 두 배, 심지어 장착된 대포조차 성능이 한참 우월하니까.
장갑의 수준은 말할 것도 없지.
“좋습니다, 필요한 내용은 다 들은 것 같군요. 제게 시간을 조금 주실 수 있을까요?”
“얼마든지.”
필승법만 가져다줄 수 있다면 시간이야 얼마든지 줄 수 있었다.
아직 폰테 섬에 도착하려면 열흘도 넘게 남았으니까.
“응? 뭐가 더 필요한가?”
허락을 했는데도 빤히 나를 바라보는 엘리엇에게 물었더니 그가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조금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공간이 필요합니다만. 아시다시피 선실은 이런 작업을 하기에는 좀···.”
“아, 아!”
나는 빠른 걸음으로 책상으로 가서 서랍을 열어 열쇠 하나를 꺼내 그에게 건네주었다.
“귀빈실의 열쇠야. 종이와 펜은 거기에도 준비되어있어.”
“감사합니다.”
* * *
꼬박 하루를 귀빈실에 틀어박혀 있던 엘리엇은 다음 날 대여섯 장의 종이를 들고 나를 찾아왔다.
“전장의 불확실성은 모두 배제하고, 모든 상황이 최악이라는 것을 가정하고 만든 계획입니다. 한번 확인해 보시지요.”
“그러지 말고 자네가 설명해보지.”
그가 건네준 종이에는 깔끔한 글씨로 정리된 작전계획이 들어 있었다.
일부에는 상당한 솜씨의 그림까지 곁들어진 것이 보통 공을 들인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먼저 여기를 보시면···.”
한참 동안 이어진 그의 설명에 나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런 사람이 왜 굳이 험한 용병을 하고 있는 거지?
“뜬금없지만 자네 보직이 뭔가? 무기를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당연한 말이지만 용병들이 배에 타면서 그들이 가진 주 무장을 거두어 두었다.
선원들도 전투 상황이 아니면 호신용 단도나 단검만 들고 다니는데 외부인인 용병 놈들이 크고 무식한 무기를 들고 다니면 당연히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배에 탄 용병 때문에 문제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말이다.
다행히 레건이 잘 협조해 주었기 때문에 이전처럼 무기 회수로 인한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칼보다는 주로 쇠뇌를 다룹니다. 제법 잘 쏘는 편이죠.”
“쇠뇌라. 나쁘지 않지만, 자네는 적성이 그쪽이 아닌 것 같아.”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내 밑에서 일해 볼 생각은 없나?”
내 제안에 엘리엇이 조용히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는 그의 눈을 보는 순간 굳이 대답을 들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단은 작전관으로 하지. 오늘은 이만 돌아가서 기다리게. 곧 레건 대장과 이야기하고 부를 테니까.”
“감사합니다, 남작님.”
“불편하게 남작님은 무슨, 앞으로는 제독이라고 부르라고.”
“네, 제독.”
* * *
엘리엇을 내가 고용하겠다는 말을 들은 레건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흐흐흐, 역시 그럴 줄 알았수. 그 친구가 용병 짓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더라니까. 그 친구가 좋다고 했다면 내가 반대할 이유는 없수. 그런데···.”
말을 흐리는 레건을 보며 나는 준비한 주머니를 밀어주었다.
“좋은 사람을 데리고 와 줘서 고맙네. 이건 내 성의야.”
하지만 레건은 무거운 표정으로 주머니를 다시 내 앞으로 밀어놓았다.
뭐야, 용병이 돈을 거절해?
아, 돈을 좀 더 달라는 건가?
“일단 열어보지 그래? 나름 넉넉하게 넣었는데.”
“아닙니다, 제독.”
“뭐? 그럼 다른 원하는 게 있나?”
분위기를 잡고 고개를 끄덕이는 레건을 보며 나는 살짝 긴장했다.
얼마나 큰 걸 달라고 하려고 저렇게 분위기를 잡아?
물론 엘리엇이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고 탐나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고작 소개비로 뭘 달라고 하려는 거야?
“엘리엇 그 친구에게 작전관? 뭐, 그런 자리를 준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어쭈, 말투도 바꾸고?
말도 안 되는 조건이라면 그냥 무시하면 그만이다.
막말로 엘리엇이 레건의 부하이기는 하지만 노예도 아닌데 그를 채용할 때 굳이 레건의 허락을 받을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내가 돈을 주는 것은 어디까지나 도의적인 부분과 고마움을 표시하는 방법일 뿐이다.
“음, 지금 당장은. 이번 일이 끝나면 제대로 된 자리를 주겠지만.”
“그럼 제 자리는요?”
“어?”
엉뚱한 말에 내가 반문하자 그는 갑자기 분통을 터뜨렸다.
“아아니! 그렇지 않습니까?! 제독을 먼저 안 사람도 저고! 고용해달라고 한 사람도 전데! 왜 본 적도 없는 엘리엇 그놈은 작전관이라는 멋진 자리를 주고 저는 아직도 애꾸 대장입니까! 저도 뭐 하나 주십시오!”
이게 그 인사 청탁인가, 그거야?
이건 청탁이라기보다 ‘협박’이나 ‘강짜’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데.
“아 참! 급여도 제가 더 많아야 합니다! 무조건! 단 1로스라도!”
허허허, 꼴을 보아하니 이놈도 데리고 가야 할 것 같기는 한데, 뱃일도 모르는 무식한 용병 놈을 도대체 어디에 쓴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