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6화> 살아서 돌아가는 자가 없도록(1) >
“제독!”
“바, 바우어 항해사? 뭐야, 무슨 일 있었어?!”
우리가 폰테 섬 인근 해역에 도달하자, 섬이 보이기도 전에 인근을 순시 중이던 콘베르테 호에서 임시 선장인 바우어 항해사가 급히 승선을 요청해왔다.
그래서 급히 선단을 멈춰 세우고 승선 요청을 받아들였는데 처음 보이는 바우어 항해사의 얼굴이 가관이었다.
“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제독이 이렇게 빨리 오실 줄이야!”
“도대체 무슨 일인데?”
나를 보자마자 내가 아닌 신에게 감사를 올리는 바우어의 얼굴이 반쪽이었다.
게다가 다크서클은 거짓말 조금 보태서 무릎까지 늘어질 기세였고, 입술까지 부르튼 것이 병자가 따로 없었다.
일단 흥분한 바우어를 진정시키고 선장실로 이동해 이야기를 들어보니 바우어가 마음고생을 했을 만했다.
“그러니까 위치가 발각된 지 벌써 한 달쯤 지났다는 거지?”
“네, 정확하게 말하면 벌써 32일째입니다. 매일매일 혹시라도 불순한 의도를 가진 자들이 접근하는지 경계 중이었습니다.”
바우어의 말에 의하면 약 한 달 전에 순시를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섬에 상당히 근접해 있는 선박 두 척을 발견했다고 한다.
식별기가 없어서 정체를 알 수는 없었다고 했지만, 놈들이 일레드 왕국의 선박이라는 것은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그 두 척의 선박은 콘베르테를 발견하기 무섭게 바로 남쪽으로 선수를 돌려 사라졌다고.
“죄송합니다. 콘베르테의 무장도 그렇고 선원 수도 너무 적어서 차마 뒤쫓지 못했습니다.”
“죄송은 무슨, 당연한 일이지.”
바우어가 전설적인 명장도 아니고 고작 서른 명 정도의 인원이 타고 있는 비무장 선박으로 두 척의 탐험선(약 400톤 정도의 탐험선으로 보였다고 한다)을 상대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그리고 탐험선이 도주하기로 마음을 먹으면 설계 자체가 속도보다 용적량에 초점을 맞춘 콘베르테로서는 쫓을 방법도 없다.
어찌 되었건 섬의 위치가 발각되었으니 섬에서는 난리가 났다.
놈들이 교역이나 그런 것을 원하는 선한 의도를 가진 놈들이었다면 어떻게든 입항해서 말이라도 붙였을 텐데 아무런 말도 없이 도주했으니, 의도가 뻔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제독의 당부대로 모두 배에 태워서 도주하려고 했습니다만, 계절이 계절인지라···.”
“하긴 그렇지.”
“네, 본토보다 훨씬 추운 곳인데 남자들은 몰라도 여자와 아이들이 선상 생활을 오래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요. 섬 인원이 다 타게 되면 식량도 많이 싣기 어렵고···.”
내 눈치를 보며 여러 가지 변명을 주워섬기는 바우어에게 살짝 손을 들어 말을 멈추게 했다.
내 생각에 바우어의 판단은 나쁘지 않았다.
사람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라는 것이 내 지시였으니 이 정도면 내 지시를 훌륭하게 수행한 거다.
괜히 무리하게 사람들을 태우고 다니다가 막상 놈들이 쳐들어왔을 때 식량이 떨어져 다 굶어 죽는 엔딩은 피했지 않는가.
그 와중에 놈들이 나타나면 빨리 도주하려고 한 달이 넘도록 매일 눈이 빠져라 경계를 하고 있기도 했고.
선원들은 돌아가면서 쉬기라도 하겠지만 항해사라고는 바우어 한 명뿐이니 잠도 제대로 못 잤을 것이다.
“그럼 마을은 도주 준비가 끝난 상태인가?”
“네. 배에 실을 수 있는 식량들은 해안가에 미리 꾸려놓았고, 콘베르테가 입항할 때 미리 약속한 신호를 보내면 촌장님과 아가씨께서 사람들과 도주 준비를 마치기로 약속해 놓았습니다.”
“혹시 해안포대 건설은?”
해안포대라는 말에 바우어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놈들에게 발각되기 전에는 여유가 되는대로 기초공사를 진행 중이었습니다만, 놈들에게 발각된 이후에는 아가씨가 중지시키셨습니다.”
“아가씨께서?”
“네. 어차피 포대 몇 개로 저항한다고 적을 격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차라리 포기하자고···.”
그때 조용히 듣고 있던 엘리엇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며 말했다.
“제독, 외람되지만 지금은 상황 보고를 듣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최대한 빨리 움직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만.”
그 말을 들으니 살짝 풀려있던 긴장감이 빠르게 차올랐다.
엘리엇의 말이 옳았다.
최대한 서둘러서 적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니까.
“바우어 항해사! 보고는 나중에 듣도록 하지. 지금 당장 콘베르테로 돌아가도록. 바로 항구로 복귀한다. 지금 자네가 걱정하는 적들이 어디까지 몰려왔는지 알 수가 없어.”
“네? 네, 넷! 제독!”
* * *
활기차야 할 폰테 섬의 분위기는 어수선하기 그지없었다.
선착장 한쪽에 임시로 만든 것 같은 허술한 창고가 하나 있었고 그 앞에 온갖 짐들이 삐죽 튀어나와 있었으며, 사람들은 그 근처에 몰려있었다.
드디어 오트라스 호에서 현문이 내려지고 내가 선착장에 내려서자 몇 달 사이에 몇 년은 늙은 것 같은 촌장 허비 촌장이 안도한 표정으로 나를 맞이했다.
“총독께서 먼저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정말 다행이군요.”
“마음고생이 심하셨군요. 그리고···.”
허비 촌장 옆에 다소곳이 서 있는 엘리안에게 시선을 돌린 나는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피곤해 보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헤어질 때보다는 훨씬 보기 좋아진 모습이 눈부셨다.
희미한 미소를 머금고 있던 그녀의 입이 먼저 열렸다.
“어서 오세요, 총독님. 이제야 마을 사람들도 안심할 수 있겠네요.”
“아··· 네, 아가씨.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덕분에요.”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막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아 버벅거리고 있는데 구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독, 이럴 시간이 없습니다.”
“아, 그렇지. 다들 인사는 나중에 합시다. 지금 당장 전투를 준비해야 하니. 촌장님과 아가씨는 마을 사람들을 인솔해서 리버티와 콘베르테에 나누어 타세요. 바우어 항해사 말로는 며칠 정도 머물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하던데, 다른 연락이 있을 때까지 그곳에서 기다리시면 됩니다.”
“일손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하다못해 잡일이라도···.”
허비 촌장의 말에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마을 사람 대부분이 여자와 노약자 아닙니까. 괜한 희생을 늘릴 필요는 없습니다. 그보다 마을이 좀 부서질지도 모르는데, 촌장님이 사람들을 잘 다독여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마을 사람들이라고 해도 청장년층 남자들은 전부 뱃일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대부분 마을 여자와 가정을 꾸린 선원들이고, 이 섬에 오기 전까지 배를 처음 타봤던 사람들조차 지금은 그럭저럭 쓸 만한 선원이 되었으니까.
애초에 섬에 인원이 너무 적어서 누구는 배를 타고, 누구는 안 타고 할 정도로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장간을 운영해야 할 허비 촌장의 아들이자 슬레어의 동생인 레이튼마저 홋줄 정도는 잡을 줄 아니까 말 다 한 거지 뭐.
혼란한 와중에 그럭저럭 마을 사람들과 짐을 다 싣고 나서 발드 선장이 불편한 다리를 절뚝이며 내게 다가왔다.
“제독. 저만 이렇게 빠질 수는 없습니다.”
“바우어 항해사도 빠지잖아.”
“하지만!”
강하게 반발하는 발드 선장의 어깨를 가만히 잡았다.
“발드 선장, 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왜 싸우는지를 생각해. 마을 사람들이 없다면 굳이 싸울 필요도 없는 일이야. 땅이야 전쟁이 끝나고 천천히 되찾을 방법을 모색해 봐도 되는 거니까.”
물론 섬을 한 번 빼앗기고 나면 그렇게 쉽게 되찾을 수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일어나지 않을 미래의 일 따위가 뭐가 중요하겠나.
“······.”
“우리가 이기더라도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 리버티와 콘베르테, 그리고 그 안에 타고 있는 마을 사람들을 지켜 줄 사람이 필요하고, 만약···.”
“그만하십시오.”
“으음···.”
“제독은 이보다 어려운 전투에서도 잘 해내지 않았습니까? 그 작전관이라는 친구의 계획도 훌륭해 보이구요. 제독 말씀대로 마을 사람들은 제가 잘 지키고 있을 테니 승전보나 빨리 전해주십시오.”
만약 내가 진다면 마을 사람들을 데리고 델라 항구로 가서 어떻게든 살 터전을 마련해주라는 말을 재차 당부하려다가 쓴웃음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두 번이나 할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만약에 말입니다.”
“응?”
“만약, 제 다리가 이렇지 않았더라도, 그래도 똑같은 결정을 하셨을 겁니까?”
그의 질문에 나는 일부러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하지. 내가 이런 일을 맡길 만큼 실력과 경력이 되는 사람이 발드 선장 말고 누가 있겠어?”
이전에도 말했지만, 선장이라는 자리가 높은 신체적 능력을 요구하는 자리는 아니다.
하지만 무식한데다 마초 그 자체인 선원들에게 절름발이 선장이란 전투에서만큼은 아무래도 신뢰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뭐, 앞으로 나가서 싸우는 사람이 있다면 뒤에서 지키는 사람도 필요한 법이니까.
* * *
그레이그를 오트라스 호의 임시 선장으로 임명해서 맡긴 후 드라이언과 함께 섬의 경계를 맡겼다.
적들이 언제 나타날지 모르니 한순간이라도 경계를 줄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대략적인 정리가 끝나고 피오렐에 탑승해 트리토나를 숨겨 둔 동굴로 향했다.
바우어가 자주 관리를 했다고 하더니 트리토나 함은 여전히 깨끗하고 웅장한 자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 녀석마저 없었다면 어쩔 뻔했어?”
“그런데 괜찮을까요? 아무래도 이런 큰 배는 다들 처음이라서.”
“어차피 정교한 기동이 필요한 계획은 아니니까. 최대 속도로 달리는 정도는 가능하잖아?”
“후우, 전 아직 좀 불안합니다. 특히 작전관이라고 소개하신 저 친구, 해전은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걱정쟁이 아인델프는 여전히 불안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는데 어쩌겠는가.
“최악의 경우를 가정해도 우리가 지지는 않을 거야. 놈들이 도망가서 우리를 압도할만한 전력으로 재침공하는 게 최악이기는 한데, 그때는 그때 가서 다른 방법을 알아보면 되는 거잖아? 상황이 그 정도 되면 해군에 지원을 요청할 수도 있고.”
물론 벨로키나 왕국이 대해전에서 승리한다면 말이지.
이번 폰테 섬 방어전은 벨로키나-쿠샤 왕국 연합의 대해전 승리를 가정하고 이루어지는 전투다.
만약 대해전에서 일레드 왕국이 이긴다면 이번 방어전에서 살아 돌아가는 사람이 없다고 해도 일레드 왕국이 폰테 섬을 다시 공격할 여력이 충분해질 테니까.
하지만 대해전이 벨로키나-쿠샤 왕국 연합의 승리로 끝나고 일레드 왕국이 많은 해군 전력과 시논, 케르빈 섬 일대를 상실한다면 전력을 알 수 없는 폰테 섬에 대한 공격은 당분간 꿈도 못 꾸겠지.
“제독, 트리토나 함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지금 출항 가능합니다.”
함교에 오른 왓킨이 약간 흥분된 어조로 보고했다.
“응, 출항하자. 아인델프 부함장, 정해진 위치까지 항해하면서 선원들과 항해사들이 배에 최대한 적응하도록 해 줘.”
“알겠습니다, 제독.”
다부지게 대답한 아인델프가 함교에 있던 사람들에게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왓킨 갑판장, 닻 올리고 모든 마스트 반개로. 브로가넨 항해사는 함수에서 견시 지휘하고 오펜 항해사는 타륜을 잡도록 해.”
부산스러워지는 함교에서 내려온 나는 포갑판으로 향했다.
“엇! 제독?!”
“포술장님, 제독께서 오셨습니다!”
한참 포를 닦고 점검하던 선원들이 나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며 클라톤 포술장을 찾았다.
그러자 한쪽에서 참으로 군인스러운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딱딱한 걸음걸이로 내게 다가왔다.
“지시하실 일이 있으십니까?”
“아니, 대포들 상태는 어때?”
“한동안 방치되었다는 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좋습니다. 전부 살펴본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확인된 것으로 볼 때 지금 당장이라도 포격이 가능합니다.”
“다행이네. 배는 몰라도 대포랑 포탄은 조금 걱정했는데 말이야.”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거대하고 아름다운 대포들을 감상하고 있는데 조용히 나를 따르던 클라톤이 불쑥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제독, 이 배도 그렇고 대포도 그렇고, 도대체 어떻게 마련하신 겁니까? 이 대포들, 제가 군에서 보았던 것들보다 훨씬 뛰어난 것 같습니다. 구경도 그렇고 구조도···.”
트리토나를 처음 보면 누구나 가질 만한 의문이었다.
그런데 나라고 이걸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나?
지고스 님이 선물로 줬는데, 다른 세상에서 범선 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한 최종 테크의 군함이라고?
그딴 말을 했다가는 사람 놀리는 거냐고 욕이나 먹겠지.
“···우연치 않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런 배는 이 세상에 단 한 척뿐이고, 다시 만들 기술도 없다는 거야. 지금은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가 없네.”
“그렇습니까.”
납득을 한 것인지 포기한 것인지 몰라도 클라톤은 더 이상 묻지 않고 조용히 내 뒤를 따랐다.
그렇게 포갑판 전체를 확인한 나는 동굴을 빠져나왔는지 슬며시 새어 들어오는 빛을 보며 클라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했다.
“일단 경계 중인 오트라스, 드라이언과 접선할 거야. 그때부터 화약량과 사거리, 포각 같은 재원에 대해 최대한 빠르게 테스트하도록 해. 포술장도 들었겠지만, 이번 전투에서 우리의 역할은 성벽이야. 포가 많이 달린 화력 만땅인 성벽. 무슨 말인지 알지?”
“네, 숙지하고 있습니다.”
오트라스, 드라이언과 접선한 후에 포격 테스트를 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다.
아무 말도 없이 갑자기 우리가 있는 쪽에서 대포 소리가 나면 불안하잖아.
그러니까 경계를 맡은 두 선박에게 일단 우리에게 별일이 없다는 것을 확인시킨 후에 포격 테스트를 진행하려는 것이다.
이번 전투에 동원되는 선박은 트리토나, 오트라스, 피오렐, 드라이언 총 네 척.
원래라면 오트라스와 피오렐 중의 한 척은 운용이 힘들었지만, 극단적인 효율적 배치로 어떻게든 운항은 가능하게 만들었다.
다만 오트라스는 갑판원이 전무해서 백병전이 불가능한 수준이고, 피오렐은 모든 대포를 탈거하고 오직 백병전을 위한 선박이 되었다.
우리 계획대로 오트라스는 포격만 하고, 피오렐은 무너진 적 대열에 난입해서 백병전만 한다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역으로 카운터를 맞으면 제대로 싸워보지 못하고 박살 날 수 있는 위험한 배치였다.
* * *
빠듯하게 각 함선이 제 위치를 찾아서 매복한 다음 날, 콘베르테를 대신해서 경계 겸 미끼 역할을 맡고 있던 피오렐에서 연락이 왔다.
꽤 먼거리를 단정으로 이동하느라 온몸에서 김을 모락모락 피워 올리는 선원을 쉬게 한 뒤 작전관 엘리엇을 비롯해 아인델프 임시 함장을 비롯한 간부들을 불러 모았다.
“역시 놈들이 나타났어. 우리가 예상한 대로 적 함선의 수는 일곱 척. 작전대로 우리는 첫 번째 포성이 울리는 시점에 따라 행동을 개시한다. 모두 제 위치에서 최종 점검을 마치도록 해.”
“알겠습니다, 제독.”
모두 긴장한 표정을 숨기지 않은 채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총 세 군데에서 이루어지는 전투를 내가 모두 지휘할 수 없다 보니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무전기라도 있어서 실시간 보고라도 받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입술이 바짝바짝 마를 것 같은 긴장의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기다리던 포성이 울렸다.
포성이 연속으로 2회 울렸으니, 피오렐을 쫓아서 추격해온 적 함선이 두 척이라는 뜻이었다.
우리가 예상한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수준.
그 정도면 피오렐과 드라이언, 오트라스로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터였다.
작은 바위섬 뒤편에 매복하고 있던 오트라스와 드라이언이 후방에서 포격을 가할 테고, 그러면 적들은 피오렐을 계속 쫓기보다 매복에 대응하려고 할 것이다.
특히 오트라스는 마력 포탄을 사용하니 부족한 화력을 어느 정도 채울 수 있으리라.
게다가 놈들이 마력 포탄을 아주 모르는 것도 아니니, 벨로키나 왕국의 해군이 개입한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을 불러올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놈들이 혼란에 빠져 매복에 대응하려고 할 때 도주하던 피오렐이 방향을 돌려 놈들의 뒤에 붙어서 백병전을 거는 거다.
어쩔 수 없이 네이선을 빼야만 했지만, 갑판장 모르아를 비롯해 돌격대장 행크와 발타, 피오렐의 돌격대원들까지 넣어 두었으니 백병전에서 지지는 않겠지.
“아인델프, 닻 올려! 전속력으로 지정된 위치로 간다. 우리가 너무 늦으면 모든 계획이 어그러져!”
특히 상황이 꼬일 경우, 도주할 수도 없는 섬에서 적의 발목을 붙잡는 역할을 맡은 이들이 특히 위험했다.
놈들이 정찰에서 확인한 배가 콘베르테밖에 없어서 방심을 했다면 고맙겠지만, 그렇게 안일하게 우리에게 좋은 상황을 가정하고 계획을 세울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우리가 예상한, 선착장에 정박하는 최대 함선 수는 세 척, 상정할 수 있는 최대 전투원은 300명가량에 이르렀다.
심지어 그들은 정규군이니 고작 70여 명에 불과한 섬 방어 병력으로는 상대가 쉽지 않을 터였다.
섬 방어를 위한 병력은 주력이 레건이 이끄는 용병대였고, 네이선과 알렌이 이끄는 오트라스의 돌격대원들과 일부 선원들이 합류해 있었다.
물론 대형을 이루기 힘든 마을에 매복하고 있다가 기습을 가하기야 하겠지만, 네 배가 넘는 정규군을 넘기는 어렵겠지.
“좌현 340도 방향, 적 함선입니다!”
메인 마스트의 견시대부터 함교로 이어진 전성관(멀리까지 소리를 전달하기 위한 금속관)에서 웅웅거리는 견시수의 보고가 들려왔다.
역시 전성관이 있어야 해!
“부함장! 적함과 거리 500 유지해! 좌현으로 포격한다!”
“넷! 제독!”
아인델프에게 지시를 내린 나는 포갑판으로 이어지는 전성관 뚜껑을 열고 소리쳤다.
“포갑판, 좌현 포격 준비! 놈들에게 지옥을 보여줘!”
잠시 후, 전성관이 어색한지 약간 뭉개진 발음의 무뚝뚝한 클라톤 포술장의 대답이 들려왔다.
“알겠습니다, 제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