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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흙수저 선원으로 살아남기-357화 (358/420)

< <357화> 살아서 돌아가는 자가 없도록(2) >

피오렐을 추격해 간 곳에서 포성이 울리자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서인지 혼자서 움직이던 적 함선은 갑자기 바위섬 뒤쪽에서 나타난 우리에게 강렬한 인사를 받았다.

압도적인 덩치의 트리토나를 확인한 순간부터 정신이 없을 텐데, 현측에 달린 32개의 대포가 동시에 불을 뿜었으니 혼비백산했겠지.

양쪽이 아니라 한쪽 현에만 대포가 무려 32개다.

전 세계에 몇 척 되지도 않는 1급 전투함에 속하는 배들도 한쪽 현에 고작 20문 내외의 대포를 달고 있으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화력이란 말인가.

심지어 대포의 구경도 대구경이라서 맞으면 더 아픈 것은 자명한 일.

거짓말을 조금 보태서 하늘을 새까맣게 물들이며 날아간 포탄들이 일제히 바다에, 배에 충돌했다.

초탄에 적어도 세 발의 포탄을 명중당한 적 함선의 함수 부분이 걸레 조각처럼 찢겨졌다.

저 멀리 선착장이 있는 만 근처를 경계하던 적 함선 두 척이 부랴부랴 이쪽으로 선수를 돌리고 있었지만, 내가 보기에 저놈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우리 근처에 있는 저 녀석은 나무판자 더미로 바뀌게 될 것 같다.

피오렐을 쫓아간 녀석들이 두 척, 여기에 세 척, 그렇다면 섬에 정박한 배는 두 척이겠지.

아무리 트리토나라고 해도 다섯 척이 동시에 달라붙었다면 위험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나를 포함한 항해사부터 말단 선원까지 배에 익숙해지지도 못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바위섬을 옆에 끼고 한 놈을 먼저 두들겨 패버리면 지고 싶어도 질 수가 없다.

섬에 정박한 두 척이 지금 당장 튀어나오지 않는 이상 말이다.

콰과과과과과과광!

다시 한번 트리토나의 거체가 출렁이며 32개의 포탄을 내뱉었다.

그리고 대응 포격을 하겠다는 것인지, 방향을 돌려 도주하겠다는 것인지 의도를 알 수 없던 적함의 옆구리에 포탄이 안착했다.

···최소한 반격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군.

무려 다섯 발도 넘는 포탄이 적의 좌현을 두들겼고, 적들은 도저히 대응 포격을 할 수 없어 보였다.

포대고 갑판이고 다 박살이 났는데 무슨 재주로 대응 포격을 하겠어?

대응을 포기하고 뒤로 함수를 돌리던 적함은 결국 두 번의 일제 포격을 더 얻어맞은 후에 백기를 올렸다.

“한 번 더 쏘라고 합니까?”

진즉 대세가 기울었음에도 다가오는 자기 편을 믿고 끝까지 도주하려던 놈들이 다음 포격 직전에 백기를 올리는 것이 얄미웠는지 아인델프가 살기를 띠고 물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저놈들이 불쌍해서는 아니었고, 일단 놈들은 기동력을 거의 상실했기 때문이었다.

가장 중요한 마스트 자체에는 큰 피해가 없어 보였지만 선체가 저 정도로 너덜너덜해지면 제대로 된 항해가 불가능했다.

“뒤에 있던 두 놈을 잡아야 해. 저놈들 대가리 돌린다.”

내 말대로 방금 백기를 올린 적함을 지원하기 위해 이쪽으로 향하던 두 척의 함선이 급하게 함수를 돌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방향은 남서쪽, 역시 예상대로 도주하려는 것으로 보였다.

“조금 더 북쪽으로 밀어붙여야 해. 우리까지 말려들지 않도록 주의하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슬레어 항해사에게 몇 번이나 반복해서 들었으니까요.”

“그나저나 지금쯤이면 소리가 들려야 하는데···.”

“아, 정박한 배들을 제압할 방법이 있다고 하셨지요?”

그 순간 내가 걱정을 담아 바라보던 선착장 방향에서 섬광이 터져 나왔다.

꽈아아아아앙!

포성과는 다른 강렬한 폭발음이 수차례 들려왔다.

동시에 선착장이 있는 만 안쪽에 연속적으로 번쩍이는 섬광이 보였다.

그리고 뒤이어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 이 정도면 성공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다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자세한 내용을 설명하지 않아서 약간의 소란이 있었다.

다들 얼마나 놀랐는지 갑판 위를 뛰어다니던 선원 몇 명이 바닥에 나동그라졌고, 함교에 있던 아인델프를 비롯한 인원들도 급히 자세를 낮췄다.

분명히 비명 소리 같은 것도 들린 것 같은데?

“저쪽은 선착장 방향인데! 무, 무슨 일이?!”

“너무 놀라지 마. 이번 계획에서 제일 불안했던 부분인데 가빈 그 친구가 잘해준 모양이군.”

“도대체 무슨···?”

나는 당황하는 아인델프의 앞에서 손가락을 튕겼다.

“정신 차려! 질문은 다음에! 저놈들까지 처리를 해야 끝나는 거라고! 저놈들 중에 한 놈만 빠져나가도 우리가 실패하는 거야!”

“아, 넷! 조타수, 좌현 전타! 브로가넨, 메인 마스트 반개로!”

내 질책에 고개를 한 번 저으며 중요하지 않은 의문을 털어 낸 아인델프가 다시 부지런히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 * *

우리가 위풍당당하게 접근하자 적들은 기겁하며 선수를 조금 더 북쪽으로 틀었다.

만약 내가 적의 입장이라도 저들과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다.

적함 두 척은 대략 900톤급 정도로 보이는 대형함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이 합쳐서 한 번에 쏠 수 있는 대포는 30문 정도에 불과할 터였다.

대포수가 비슷하면 구경과 방어력에서 결판이 날 텐데 누가 봐도 그건 트리토나가 유리해 보이니까.

물론 두 척이 한 척을 조지는 108가지도 넘는 방법이 있으니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할 수야 있겠지만, 이 정도로 체급 차이가 나면 한 척은 무조건 대파된다고 봐야 한다.

예를 들어 만약 한 척이 희생을 각오하고 다른 한 척이 접근해서 백병전을 시도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는 비극인 대역전극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적은 훈련과 무장이 훌륭한 전문 군인들이고 우리는 200명이라고 해도 백병전에 능한 선원들은 모두 다른 곳으로 빼놓았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큰 배에 단독으로 백병전을 시도할 배짱을 가진 이가 있을까?

덩치만 보면 해병대가 한 200명쯤 타고 있을 것 같은 배에?

“조금만 더 밀어붙여!”

망원경으로 적의 위치를 살피던 내가 지시를 내리자 세부 명령을 내린 아인델프가 내게 다가왔다.

“제독 아무래도 저놈들이 일부러 천천히 움직이는 것 같은데요? 이건 마치 유인하는 것 같은···.”

아인델프의 우려 섞인 말에 조용히 전장을 주시하던 작전관이 대답했다.

“저들은 아마 섬에 정박 중인 자기 편들이 뛰쳐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네 척이 양쪽에서 포위하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그의 말에 나는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비죽 웃음이 흘러나왔다.

최근에 선물로 받은 다이너마이트에 화끈하게 구워졌을 정박한 배들이 생각 난 것이다.

놈들이 다시 바다 위로 나올 확률?

오히려 도화선에 불을 붙이기로 한 녀석들이 제대로 피했을지가 더 걱정이다.

그래 뭐, 위치로 볼 때 저들은 선착장에서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지는 못할 테니까.

소리도 듣고, 섬광도 봤을 거고, 지금도 올라오는 검은 연기는 보겠지만···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전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힘들게 건설한 선착장을 포기하고, 다이너마이트 150개 중 120개를 소모하면서 만든 트랩이다.

섬에 정박한 두 척은 절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제독, 그런데 정박한 배들은 정말 움직이지 못하는 게 확실합니까? 만약···.”

“폭발이 있었잖아. 그럼 놈들은 절대 움직이지 못해. 장담하지.”

작전관의 우려 섞인 질문에 내가 확신을 가지고 대답하자, 그의 얼굴에 어색하지만 미소가 분명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이번 전략은 성공입니다만, 보아하니 화약통 같은 것을 터뜨리신 모양인데 그렇다고 해도 저들이 큰 피해를 입었을지는··· 아, 물론 소리나 연기로 볼 때 양이 엄청난 것 같기는 하지만 말이죠···”

물론 화약통 따위였다면 절대로 쉽지 않았겠지.

아니, 애초에 화약통으로는 내가 원하는 트랩을 만들 수도 없었다.

탁 트인 선착장에 화약통을 설치도 힘들고, 선착장에서 폭파시켜 정박한 배가 타격을 입을 정도의 양을 매설하면 눈에 띄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게 다이너마이트라면?

다이너마이트 다섯 개 묶음이라고 해봐야 선착장 나무다리 아래나 뒤에 붙여두면 보이지도 않는다.

게다가 폭발할 때 위력은 2m 정도 떨어져서 정박한 배의 옆구리를 박살 내기에 충분하지.

그러니까 도화선에 불을 붙일 사람과 그 사람이 피할 때까지 도화선이 타들어 가는 동안 정신이 빼앗길 일만 있으면 된다.

마을에 매복한 네이선과 알렌이 이끄는 돌격대와 용병대가 상륙한 부대를 향해 기습해야 하는 이유였다.

뒤늦게 생각해낸 다이너마이트 덕분에 더 안전하고 피해가 적은 방법을 사용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작전관은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모든 작전이 생각대로 흐르지 않을 수도 있으니 최악을 가정해야 한다고 말이다.

예를 들어 다이너마이트가 터지지 않아도 자신의 원래 계획대로 상륙한 병력이 전투 중이라면 정박한 배들은 바로 몸을 뺄 수가 없었다.

음, 사실 나도 다이너마이트가 잘 터질지 확신이 없기는 했다.

안전한(?) 화약이나 만져봤지 다이너마이트 같은 위험한 폭발물을 내가 다뤄 본 적이 있어야지.

꾸우우우웅!

휘청!

물속으로 퍼지는 둔중한 소음과 함께 앞쪽에서 움직이던 적함이 고장 난 물리엔진을 적용한 것처럼 휘청거리며 급히 멈춰 섰다.

“우와아아아아!”

그리고 갑판과 함교 등 트리토나 전체에서 거대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타륜도 놓치고 아인델프에게 끌어안긴 오펜을 보니 나도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번 전투, 우리가 이겼다.

* * *

마지막 남은 한 척의 적함은 먼저 함정에 걸린 동료함 덕분에 모든 돛을 내리고 닻까지 집어던져 가며 겨우 함정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동력이 0이 되었으니 트리토나의 추격을 피할 수는 없었다.

트리토나가 여유롭게 접근하며 우현의 포문을 열자 두 척의 적함에서 백기가 올라왔다.

우리의 샌드백이 되어 물귀신으로 전직하는 것보다 살아서 포로가 되기를 선택한 것이다.

물론 멍청하게 그들에게 접근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다.

괜히 나포한다고 접근했다가 트리토나의 백병전 전력이 형편없다는 것을 들켰다가는 놈들이 무슨 생각을 할지 모르니 말이다.

어차피 처음 피오렐을 추격해 간 두 척을 처리하면 오트라스를 비롯한 세 척의 아군이 합류할 테니 뒷정리는 그들과 함께해도 충분했다.

“정말 이게 될 줄이야···.”

얼떨떨해하는 아인델프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것을 듣고는 새삼스럽게 작전관 엘리엇을 보았다.

비록 다이너마이트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다이너마이트가 없었더라도 그의 전략은 충분히 훌륭했다.

적이 아군의 전력을 오판하고 있다는 것과 선착장 입구 근처에 수심이 급격히 얕아지는 구역(평소에는 부표를 띄워 표시해 두는 곳)을 이용한 각개격파 계획.

시야 밖으로만 벗어나면 실시간으로 소식을 주고받을 수 없다는 것을 십분 활용한 계획이었다.

물론 부족한 전력 때문에 그의 최초 전략은 용병대의 희생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용병대를 고용하는 이유가 선봉이나 희생이 큰 부분을 맡기려는 의도이니, 사회 통념상 아주 잘못된 일도 아니었다.

그의 전략대로 용병대가 상륙한 군대를 물고 늘어지면 정박한 배들이 해전에 합류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찌 되었건 함선도 단순 항해가 아니라 제대로 된 전투력을 발휘하려면 적지 않은 수의 인원이 필요하니 말이다.

그래서 그 시간 차를 이용해 먼저 나온 배들을 수심이 낮은 곳으로 몰아 최대한 빠르게 항해 불능상태로 만들어버리고, 뒤늦게 합류하는 적함을 트리토나가 상대하는 것이 원래 계획이었다.

하지만 선착장과 함께 정박한 배들을 날려버렸으니 용병대가 옥쇄를 각오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엘리엇 작전관, 고생 많았네.”

내 치하의 말에 고요한 눈으로 잠시 나를 바라보던 엘리엇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제 부족한 생각을 제독의 지휘와 기지로 완벽하게 만들었으니 제독의 공이라고 할 수 있죠.”

거참, 말하는 거 보면 어디 대학에서 논문이나 쓰고 있을 것 같은 사람인데, 얼굴은 암살자같이 생겼고, 하던 일이 용병이라니.

정말 알면 알수록 헷갈리는 친구다.

* * *

전투의 흔적이 남기는 했지만, 그럭저럭 멀쩡해 보이는 오트라스, 드라이언, 피오렐이 합류한 후 항복한 적들을 수습했다.

피오렐이 한 척을 나포하여 나포한 선박이 무려 네 척이었고, 사로잡은 포로는 200여 명에 달했다.

비록 트리토나에게 신나게 얻어맞은 녀석은 반파 수준으로 부서져서 수리가 어려워 보였지만 대단한 전과였다.

아, 함정에 빠져 좌초된 선박도 당장 빼낼 수가 없어서 일단 키를 부수고 돛을 제거했다.

배를 이렇게 망가뜨리면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한 100명쯤 된다고 해도 저 배로는 아무 데도 못 간다.

그리고 당당하게 선착장이 있던 만에 들어서자, 아직도 검은 연기를 피워올리고 있는 처참한 모습의 선착장이 눈에 들어왔다.

선착장에 정박해 있던 배들은 육안으로 봐도 이상할 정도로 기울어져 있는 것이, 완전히 항해 능력을 상실한 것 같았다.

그리고 마을 쪽은 전투가 끝난 듯했다.

“피해가 너무 크지는 않겠죠?”

오펜이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용병들은 몰라도 네이선과 돌격대가 있다 보니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네이선이 평소에는 좀 멍청해 보여도 싸움에 있어서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놈이야. 그놈에 알, 아니, 그 사람까지 있으니 괜찮을 거다.”

대열을 갖추기 힘든 마을에서의 난전이다.

조직과 진형이 제대로 위력을 발휘하지도 못했을 것이고, 전투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저들이 타고 온 배가 굉음과 함께 박살이 났을 테니 피해가 크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네이선만 있는 게 아니고 그 네이선을 쥐잡듯이 잡는 알렌도 있지 않는가?

“전 선단에 신호, 모든 함선은 보유한 모든 단정을 동원해서 상륙한다. 상륙 인원은 전원 무장하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제독.”

다 이긴 싸움에서 방심하다가 뒤통수를 맞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혹시 모르니 무조건 최대 전력을 동원해야 했다.

“그리고 포갑판에 전달해. 만약 우리가 도주하는 것처럼 보이면··· 마을을 향해 쏴버리라고 해.”

내 말에 배에 남기로 한 오펜이 기겁을 했다.

“제, 제독님! 그러면 아군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당연한 말이었다.

아무리 사격 통제를 잘하더라도 해상에서 쏘는 대포는 오차범위가 클 수밖에 없다.

고작 몇 10미터 단위의 정밀포격은 불가능했다.

“알아. 그래도 다 뒤지는 것보다는 낫지. 일단 대포를 쏘면 상황을 모르는 놈들은 주춤할 테니까 그때 빨리 단정을 띄우면 돼. 그러니까 일제사로 딱 한 발만. 트리토나만 쏘라고 해.”

“···알겠습니다. 그런데 꼭 제독께서 가셔야 할까요? 그냥 아인델프 선장, 아니, 부함장에게 맡기셔도 되잖아요.”

나는 오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살짝 웃었다.

“혹시나 해서 대비는 하지만 봐, 누가 봐도 우리가 이긴 거 같잖아. 만약 놈들이 이겼다면 지금 배에 붙어서 열심히 불도 끄고 수리도 하고 있어야지. 지금 저놈들도 해상의 상황이 궁금해서 미칠 지경일 테니 말이야.”

“그렇기는 하지만···.”

* * *

다행스럽게도 오펜의 걱정은 기우로 끝났다.

우리가 선착장에 다가가자 낯익은 돌격대원 한 명과 용병으로 보이는 남자 두 명이 우리를 반긴 것이다.

저들이 여기에 있다는 것은 반쯤 침몰한 배에 남은 적도 없다는 뜻이겠지.

“어서 오십시오, 제독. 네이선 갑판장과 용병 대장이 마을로 모시고 오시랍니다. 포로가 너무 많아서 몸을 빼기가 어렵다구요.”

“그래? 피해는 큰가?”

“네? 아, 그게 조금··· 생각보다 크지는 않습니다.”

순간적으로 그의 얼굴에 씁쓸한 표정이 감돌았다.

아, 누가··· 죽거나 다쳤구나.

분명히 돌격대원 중 누가 죽거나 다친 것이 분명했다.

“닥터!”

“어서 가지. 치료 도구는 다 준비해 왔으니.”

“잠시만요, 행크, 앞장서. 발타는 후위를 맡는다.”

“네, 제독.”

“알겠습니다!”

아무리 급해도 닥터를 앞에 세울 수는 없지.

멀리서는 큰 문제가 없어 보였던 마을은 엉망진창이었다.

‘많이 부서졌다.’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제대로 남은 것이 없다고 봐도 무방할 지경이었다.

건물들이 무너지지 않아서 겉보기에만 멀쩡해 보였을 뿐.

사람이라고 다르지 않아서 아직 수습하지도 못한 시체들이 사방에 피비린내와 구린내를 풍기며 나뒹굴고 있었다.

대부분 통일된 복장의 일레드 왕국군이었지만 일부는 용병 복장을 하고 있었다.

“아직 아군 시체도 다 수습하지 못했어?”

“포로가 너무 많아서 시체까지 수습할 여력이 없습니다.”

“······.”

너무 많이 죽었다.

잠깐 사이에 내 눈에 들어온 용병 시체만 10구에 달할 정도였다.

그리고 잠시 후 눈에 핏발이 선 채로 내게 다가온 네이선이 보고했다.

“제독, 승리입니다. 전과는 확인 중이지만 함장 두 사람 중 살아남은 자에게 항복을 받았습니다.”

“수고했어. 살아남아 줘서 고맙다. 피해··· 는?”

입술을 씹으며 잠시 하늘을 보던 네이선이 담담하게 보고를 이어갔다.

“돌격대는 두 명이 사망하고 셋이 크게 다쳤습니다. 용병대는 레건 대장을 포함해 24명이 다치고 19명이 죽었습니다.”

“레건 대장이 다쳤어?”

“오른쪽 어깨를 창에 찔렸습니다.”

나는 불안한 표정으로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닥터가 있는 곳을 보았다.

레건은 오른손잡이다.

그리고 오른쪽 어깨에 후유증이 남는다면, 레건은 더 이상 칼밥 먹기를 포기해야 했다.

닥터가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돌아오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들리는 낯선 여자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예쁘게 생긴 사람이 나를 향해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주변에서 나를 경계하던 이들이 기겁하며 급히 칼을 뽑는 소리가 뒤늦게 들려왔다.

“누, 누구냐?!”

“언제 들어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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