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0화> 결혼 적령기입니다. >
왜 어색하지?
이전과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따라 오트라스의 선장실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왕녀님을 만나면 분명히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것 같은데 막상 입을 열려고 했더니 떠오르는 말이 없다.
“날씨가 좋죠?”
고작 한다는 말이 이따위 말이라니.
얼마나 뜬금없는 말인지, 그 말을 들은 왕녀님의 눈이 짙은 당황으로 물들었다.
“아, 총독님은 이런 날씨를 좋아하시는군요?”
이런 날씨라니? 오늘 날씨가 어떻···.
아침부터 당장이라도 눈을 흩뿌릴 것처럼 우중충하기 그지없던 하늘이 생각났다.
오, 젠장.
“어흠, 날이 좀 추워야 시체의 부패가 느려져서 처리하는데 손이 덜 드니까요.”
“으읍.”
그녀가 섬에 돌아왔을 때에도 미처 정리되지 않았던 전장의 처참함이 떠올랐는지 그녀가 급히 고개를 돌리며 작게 신음을 삼켰다.
심지어 총독 대리가 해야 할 일이라며 피해 현장을 직접 돌아다니기까지 했으니 더욱 적나라한 모습을 봤을 거다.
제기랄, 내가 원래 이렇게 말주변이 없는 사람이었던가?
그렇게 빙하기 수준으로 냉각된 분위기는 왕녀님이 어렵게 먼저 말을 꺼내면서 조금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
“다름이 아니라 경작지 확장에 관해서 논의드리러 왔어요. 지금까지야 제가 임의로 결정했지만, 총독님이 계시는 지금은 섬의 개발에 관한 건 허가를 받는 것이 맞으니까요.”
“그 정도는 그냥 아가씨께서 결정하셔도 됩니다.”
그 정도야 촌장과 상의해서 적당히 하셔도 되는데 말이다.
나라는 사람이 무슨 농경이나 개발에 대한 특별한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그녀의 생각은 나와 다른 모양이었다.
“아니요, 그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이 섬의 주인은 총독님이시니까요. 귀찮으시더라도 주요 사항에 대해서는 반드시 직접 허가를 내리셔야 해요. 지배권이라는 것은 아주 작은 곳에서부터 무너지는 거랍니다.”
정색하는 그녀의 말에 나는 찔끔해서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왕녀님이 내 뒤통수를 칠 리가 없지 않나.
그녀야말로 나라는 방패가 없어지면 이 섬에서 가장 불쌍해지는 사람이니 말이다.
“아, 알겠습니다. 그런데 경작지 확장까지 돌릴 인력이 되겠습니까? 지금은 아직 겨울이니 조금 더 천천히 해도···.”
“안 됩니다.”
“네?”
너무 단호한 거절에 내가 살짝 당황하며 반문하자 그녀는 오히려 더 당황하며 황급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포로들 때문에 갑자기 인원이 늘어난 것도 있고, 조만간 총독께서 난민들을 더 데리고 오시겠다고 말씀도 하셨고, 그래서 경작지를 조금 더 늘리기는 해야 하는데 파종이 되기 전에 준비를 해야 해서···.”
그녀답지 않게 허둥지둥 여러 가지 말을 빠르게 떠드는 것을 들으니 살짝 웃음이 나왔다.
그나저나 요 몇 달 동안 꽤나 노력한 모양이다.
평생을 존귀한 왕녀로, 귀족 가문 아가씨로 살아온 그녀가 경작에 대해서 뭘 알고 있었겠나.
섬에 온 지 아직 한 해가 지나지도 않았으니 일 년 농사를 관리해 본 것도 아니고, 일부러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봐서 알아냈겠지.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촌장님이 제안한 철광산 개발에 투입할 인력을 빼도록 하죠. 철광산보다 먹는 게 더 중요하니까요.”
“아, 그건 제가 촌장과 이야기를 해볼게요. 그럼 허락하시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본론은 경작지 이야기였던 것 같지만 왕녀님은 쉽게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이후로도 내가 없는 동안 섬에 있었던 사소한 일이나, 시니아와의 에피소드 따위를 조곤조곤 이야기하는데 보고라기보다는 친구들 간의 수다 같다고나 할까?
“···그래서 시니아는 하객도 없이 약식으로 결혼식을 했다지 뭐에요? 게론드 회계사도 참,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정말 재밌고 유익한(?) 시간이었지만 천년만년 왕녀님과 수다를 떨 수는 없었다.
지금도 당장 나가봐야 한다고.
“아가씨, 죄송하지만 제가 지금 밖에 나가봐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힘겹게 말을 꺼내자 왕녀님의 얼굴이 대번에 새빨갛게 물들었다.
“앗, 제가 시간을 너무 많이 뺏었군요. 죄송합니다.”
“아니, 죄송하실 것까지는···.”
“그, 그럼 이만!”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인사를 올리고 몸을 돌린 그녀는 서너 걸음을 황급히 떼었다가 우뚝 멈췄다.
“사실 문밖에서 이야기를 살짝 들었어요.”
“네? 무슨, 아. 괜찮습니다. 주민들이나 선원들에게까지 알릴 필요는 없지만, 주요 인원들에게는 딱히 비밀로 하는 이야기도 아니니까요. 다만 소문이 돌면 불안이 퍼질 테니 당분간 비밀을···.”
“총독님.”
“네?”
왕녀님은 완전히 돌아서서 나를 똑바로 보며 힘겹게 말을 꺼냈다.
“더 이상 왕녀로 살고 싶지는 않지만··· 총독님이 필요하다면 쓰셔도 괜찮아요. 그것으로 총독님과 마을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다면, 전 괜찮습니다.”
“······.”
순간적으로 숨이 턱 막혔다.
왕녀라는 타이틀이 내가 빌려서 쓸 수 있는 물건도 아니니 그걸 써도 좋다는 말은···.
지금 자기가 무슨 말을 한 줄은 알고 있는 걸까?
혹시나 해서 그녀를 자세히 살펴보고서야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그녀가 한 말이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알고 있음은 물론, 그 말을 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고민과 결심이 필요했는지 말이다.
“그 운명이 싫어서 목숨까지 걸고 이 섬에 오신 것 아닙니까. 그렇게 쉽게 말씀하실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제안을 드리고 싶군요. 들으셨다니 아시겠지만 섬의 상황이 그리 좋지 못합니다. 섬이 만약 후작의 손에 들어간다면 아가씨, 아니, 왕녀님에 대한 처우는 뻔하겠지요. 다행히 프레티아 왕국의 내전은 끝났고 이제 얼추 수습된 것 같으니 차라리 그곳으로 가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무려 1년이나 내전을 겪은 나라가 고작 몇 달만에 정상이 되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일단 내전은 끝났고, 최근 강대국들이 자기들끼리 전쟁을 하느라 정신이 없는 통에 혼란을 틈탄 더러운 꼴도 안 당한 모양이다.
그녀의 동생인 새 국왕은 아직 자녀가 없으니 프레티아 왕국에 왕녀라고는 그녀 하나뿐.
심지어 결혼 적령기(물론 조금 지나기는 했지만)인 왕녀니까 대우가 나쁘지는 않을 거다.
“그건 싫다고 이곳에 오기 전에 말씀드렸습니다만.”
그녀가 단호하게 대답했지만 이게 얼마나 모순되는 말인지 그녀도 아는 듯 얼굴이 조금 더 붉어졌다.
정략결혼이 싫어서 집에 안 간다는 아가씨가 나랑 정략결혼을 하자고?
* * *
그녀가 어떻게 방을 나갔는지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가끔, 아주 가끔 상상을 해보기는 했지만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리 상황이 그래도 왕녀님 같은 분이 굳이 나랑?
어, 물론 이 섬에서 평생 살 거라면 적당한 결혼 상대가 나밖에 없기는 하지.
섬에 무늬만이라도 귀족인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까 말이야.
감정은 일단 다 접어두고 현실만 보자.
일단 왕녀님과 내가 결혼을 하면 확실히 내가 전혀 가지지 못한 ‘정통성’ 부분이 상당 부분 해결된다.
그냥 귀족도 아니고 무려 왕녀다, 로얄 패밀리라고.
그러니 그녀와 결혼을 하면 어떻게든 국왕에게 얼굴을 비출 이유도 만들 수 있고, 적당히 잘하면 후작에 얽매인 내 상황이 좋아질 수도 있겠지.
물론 후작과의 관계는 더 나빠지겠지만··· 이미 더 나빠질 관계랄 게 남아있기는 하려나?
“흠, 왕실이라.”
무심코 혼잣말을 중얼거리는데 누군가가 내 어깨를 툭 쳤다.
“으힉!”
약간 비명 소리 비슷한게 나왔는데, 이건 순전히 내 어깨를 친 놈 탓이다.
내가 노역장(포로들이 일하는 곳)으로 걸어가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깜빡할 정도로 생각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얼마나 놀랐겠어?
“뭘 그렇게 놀라? 어디 가는 길인데 혼자 가고 있어?”
“어? 네이선이냐?”
“아무리 섬이라지만 혼자서는 다니지 말라니까. 총독 나으리가 혼자 다니고 그러면 권위가 안 산다고.”
“권위는 개뿔, 생각할 게 좀 있어서 아무도 따라오지 말라고 했어.”
그런데 잠깐, 이 자식 얼굴이 왜 이래?
가만 보니까 다리도 좀 저는 것 같고?
“야! 너 얼굴 좀 이쪽으로 돌려봐. 다리는 왜 그래?”
며칠 전 섬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참가한 70명 중 절반 이상이 죽거나 다치는 와중에도 남의 피로만 목욕을 했던 네이선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갑자기 다리를 전다고?
“아, 아무것도 아니야. 대련을 좀 빡세게 해서 그래.”
“대려언?”
네이선을 대련에서 이 꼴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이 섬에 한 명밖에 더 있나.
내 눈썹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본 네이선이 황급히 손을 내 저었다.
“아니야! 내가 하자고 그랬어! 그래도 기사씩이나 되는 양반에게 땅을 파라고 할 수는 없잖아. 혼자서 멍하니 바다만 보고 있는 게 영 청승맞아 보여서 그냥···.”
“야 이 자식아! 너 그때 진짜 뒤질뻔했어! 닥터가 없었다면 지금쯤 뒤졌거나 팔다리 중에 두어 개는 제대로 못 썼을걸? 그런데 그 괴물이랑 또 대련을 해?!”
하, 내가 진짜 알렌 그 자식을 그때 빨리 손절해야 했는데!
그래도 이번에는 아주 반병신을 만들어 놓지는 않은 모양이네.
“그래도 이번에는 꽤나 버텼다고. 그 사람도 나보고 실력이 늘었다고 했다니까?”
“그딴 게 무슨 필요야?! 어차피 너는 지금도 충분히 강하잖아! 배 타고 기사들 사냥하러 다닐 거야?”
배를 타면 만날 수 있는 사람이 보통 선원이거나 해적, 잘해봐야 해군이다.
셋 다 제대로 된 칼질을 배울만한 여건도 안되는 사람들이니, 네이선 정도 실력이면 굳이 힘들게 더 강해질 필요도 없다.
만나는 놈들 전투력이 1인데, 이미 20쯤 되는 놈이 200으로 만들면 뭐할 거야?
어차피 최대한 빨리 죽여봐야 한칼에 한 놈씩 뒤지는 건 똑같다.
“아, 아, 잔소리! 알았어, 알았으니까 가던 데나 같이 가자. 포로들 보러 가는 거지?”
“대충 넘어가지 말고! 진짜 앞으로 위험한 대련 같은 거 하지 마!”
“알았다니까, 어서 가자. 우르타 그놈은 혼자 두면 불안해.”
내 등을 미는 우악스러운 손길에 앞으로 밀려가면서도 계속 잔소리를 했다.
전문 외과병원도 없는 세상에서 왜 몸을 함부로 굴리는 거야?
그런데 알렌이 바다를 보고 있었다고?
난 당연히 왕녀님 옆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할 줄 알았는데 말이야.
나 만나는 동안 왕녀님이 쉬라고 했나?
* * *
마을이 지어지는 현장에 도착하자 약간 느슨한 정도로 손발이 묶인 포로들이 세상 잃은 표정으로 노역을 하고 있었다.
손발을 묶은 끈이 느슨하면 풀고 도망갈 수 있지 않냐고?
마법을 부리지 않는 이상에야 꽉 묶인 로프의 매듭을 푸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그들을 관리하는 용병들이 무기를 들고 매의 눈으로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데 탁 트인 공사판에서 무슨 재주로 그 시간을 벌 수 있겠나.
게다가 운 좋게 도주에 성공했다고 치자.
도대체 어디로 가겠나?
장거리 항해가 가능한 선박은 내가 가진 배들밖에 없고, 지금은 선착장이 다 부서져서 해안에서 좀 떨어진 곳에 배를 모조리 세워 둔 상태다.
유일한 가능성은 포로들 전원이 한마음 한뜻으로 반란을 일으켜서 배를 탈취하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그게 되겠나?
섬에서 영원히 숨어 산다면 이해는 하겠는데, 그렇게 힘들게 생존 투쟁을 하느니 그냥 포로로 있는 게 낫지 않을까?
최소한 여기는 밥이라도 제때 주잖아.
“여어어어!!”
저 멀리서 우리를 발견한 우르타가 활짝 웃으며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이내 뛰다시피 우리에게 다가온 우르타는 네이선의 얼굴을 보고는 화들짝 놀랐다.
“으악! 네이선 누구한테 맞았어? 얼굴이 왜 그 모양이야?”
“시끄러! 시킨 일은 잘하고 있어?”
“뭐어? 왜 네가 대장인 것처럼 말해? 리안도 가만히 있는데.”
만나자마자 십대 소년 소녀처럼 투닥거리기 시작하는 두 사람을 보자 복잡한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역시 사람이라면 이런 단순한 맛이 좀 있어야지.
“오셨습니까, 제독.”
포로를 관리,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포로들을 관리하는 용병들의 성향을 살피는 중요한 일을 우르타 단독으로 맡겼을 리가 있겠나.
게다가 공사관리라는 그럴듯한 명목도 필요해서 절대로 우르타에게 혼자서 맡길 수 없었다.
마을 공사를 우르타에게 맡기면 동화에나 나올법한 버섯 마을 비슷한 혼돈의 아수라장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고생이 많네, 상황은 좀 어때?”
“땅이 얼어서 조금 난항이 있습니다만, 제먼 씨가 도와주셔서 쉽게 풀렸습니다.”
“응? 제먼 씨가?”
아인델프의 뚱딴지같은 말에 깜짝 놀라서 되묻자, 그가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페리아, 아니, 원주민들과 토론인지 뭔지를 한다고 자주 얼굴을 비추지는 않습니다만, 그래도 매일 꼬박꼬박 나와서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언 땅에다가 처음 마법사로 각성했을 때 보여준 촛불 마법이라도 시전하나 싶어서 아인델프가 가리킨 방향을 유심히 살펴보았는데, 그냥 사람들이 조금 몰려있을 뿐 별다른 일은 없어 보였다.
“뭐야, 어떻게 도와준다는 거야?”
어리둥절한 내가 묻자 아인델프는 난감하다는 듯 머리를 한차례 긁적이고는 대답했다.
“저야 어떻게 하는지는 모르지요. 그런데 저렇게 제먼 씨가 눈을 감고 집중하면 저렇게 집 한 채 정도 들어가는 크기의 땅이 부드러워지더군요. 나중에 한번 물어보시죠? 전에 들어보니 예전에 제독이 시킨 마법도 완성했다고 하던데.”
“그래? 의외로 마법사라는 이들이 도움이 되는 모양이네?”
페리아 족에 관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시던데 잘만 엮으면 아예 섬에 눌러 앉힐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마법사 길드의 고문씩이나 되시는 분이니 본인은 힘들더라도 그 뭐야, 다른 핫바리 마법사의 파견을 요청한다던가···.
제먼 씨에 대한 생각은 지금 당장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라서 일단 치워두고 손짓으로 아인델프를 가까이로 불렀다.
“내가 알아보라고 한 것은?”
“제독의 우려대로입니다. 주민들에게는 순한 양처럼 굴면서 포로들에게 잔인한 면모나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는 이들이 꽤 보입니다.”
거기까지 조용히 말한 아인델프가 여전히 네이선과 투닥거리는 포술장을 힐끗 보고는 말을 이었다.
“역시 이런 부분은 포술장이 귀신같이 찾아내더군요. 제가 볼 때는 아닌 척 잘 숨기는 놈들을 포술장이 몇 놈이나 찾아냈습니다.”
이것 때문에 우르타를 붙인 거다.
아무래도 아인델프는 외부인이 보기에 대단히 높은 사람이다.
제독인 나 다음으로 큰 배의 선장이니 대충 우리 세력의 이인자 정도 위치로 보인단 말이지.
아무리 용병 놈들 대부분이 무식하다지만,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는 놈들이라면 아인델프 앞에서는 행동을 조심할 수밖에 없다.
특히 자신의 폭력적이거나 잔인한 성향을 숨기고 싶은 녀석들은 의외로 이런 쪽으로 민감한 경우가 좀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르타는 조금 다르다.
포술장이라는, 대충 무슨 느낌인지는 알지만 듣도 보도 못한 직책이라 평소에는 잘 눈에 띄지도 않는다.
게다가 어리고 곱상한 외모, 단순하고 순박해 보이는 말투, 아무하고나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성격을 보면 아무래도 긴장을 풀게 마련이지.
그런데 이놈이 눈치는 귀신같다는 것이다.
여우인 척하는 네이선은 오히려 미련 곰탱이고, 멍청하고 게으른 곰 같은 우르타가 오히려 여우지.
“좋아, 제대로 기록해 둬. 그런 놈들에게 합법적으로 무기를 쥐여줄 수는 없지.”
아직까지는 맹수도 없고 범죄자도 없는 폰테 섬.
하지만 사람이 늘어나면 결국 치안을 위한 병력이 필요했다.
섬의 위치상 외부의 지원을 바라기 어려우니 유사시에는 전투 병력으로 활용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고 말이야.
애꾸가 계속 자신을 고용해 줄 것을 강요하고 있어서 이 녀석에게 섬의 치안대 겸 수비대장을 맡기려고 하는데, 그 밑에 쓰레기 같은 놈들을 넣어주면 그도, 나도 힘들어질 게 뻔하다.
“나중에 개소리하는 놈이 없도록 저들은 범죄자가 아니라 전쟁 포로라는 것을 매일 상기시켜. 정도 이상의 폭력은 허용하지 않아.”
“매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아직까지 굵직한 사고는 없습니다만.”
굳이 매질까지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포로들 대부분은 나름대로 성실히 노역에 종사하고 있었다.
그냥 내가 대충 둘러만 봐도 그렇다.
그런데 굳이 과도한 폭력을 사용하는 놈들이라면 이놈들의 원래 성향은 따져 볼 필요도 없는 것 아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