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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흙수저 선원으로 살아남기-361화 (362/420)

< <361화> 합동 결혼식 >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일을 육지에서 하는데 머무는 방이 배에 있다는 것은 매우 불편한 일이다.

그렇다고 아늑한(?) 배를 두고 차가운 땅 위에 천막을 치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고.

무엇보다 선착장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아서 단정으로 오가야 한다는 것이 제일 불편했다.

거리는 고작 200미터 정도에 불과하지만, 애초에 신발을 적셔가며 작은 배를 타고, 그걸 큰 배 옆에 붙여서 줄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고··· 상상만 해도 매우 귀찮잖아.

이 귀찮은 짓을 집(?)에 갈 때마다 해야 하는 것이다.

그나마 아침에 나가서 저녁에 들어오는 섬 사람들이나 선원들은 좀 낫지, 나는 수시로 선장실과 섬을 오가야 하니 고역이 따로 없었다.

“임시로 만든 것치고는 제법 괜찮네요.”

임시로 만들어진 내 집무실(?)을 돌아본 시니아 양의 한 줄 평이었다.

회의 시간에야 가끔 얼굴을 본 적이 있지만 이렇게 개인적으로 보는 것은 참 오랜만이다.

델라 항구에서 보던 기품있는 아가씨의 모습은 많이 흐려졌지만, 그럼에도 더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저 열정 덕분이겠지.

아, 물론 엘리안 왕녀님에 비하면 많이 부족하지, 그럼 그럼.

“바쁠 텐데 고작 임시 거처 완공 축하를 위해 오신 것은 아닐 테고, 무슨 일이십니까?”

나는 같이 오기는 했지만 꿔다놓은 보릿자루같이 서 있는 게론드를 힐끔거리며 말했다.

게론드가 저런 자세를 취하는 것을 보면 회계 쪽 일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야.

내 말에 구경을 관두고 잠시 나를 마주 보던 시니아 양이 천천히 걸음을 옮겨 아직 나무 냄새가 다 가시지도 않은 새 의자에 다소곳하게 앉았다.

“총독께서는 이 섬에 결혼을 앞두거나 사실상 혼인관계인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아시나요?”

“네? 결혼 말입니까?”

그걸 도대체 나에게 물어보는 의도가 뭐지?

설마 누가 임자 있는 여자에게 손이라도 댔나?

남자건 여자건 결혼할 나이가 되면 적당한 상대와 적당히 같이 사는 게 일반적인 세상이다.

결혼식은 그나마 좀 여유 있는 집이나 하는 것이고, 진짜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들은 가족들이 모여서 한 끼 잘 먹으면 그때부터 그냥 같이 사는 거다.

그러니 무식하고 건장하기까지 한 남자들에 비해 여자는 한 줌도 안 되는 현재 상황상 말도 많고 탈도 많을 수밖에 없기는 한데···.

“지금까지 제가 파악한 바로, 이 섬에 오기 전에 이미 결혼을 했거나 이후에 공식적으로 연인관계가 된 사람들까지 총 47쌍이에요.”

“어···.”

많기도 하다.

할머니들 빼고 다 사귀, 아니, 할머니들도 사귀는 남자가 있는 건 아닌가 몰라.

“무슨 생각이 드셨나요?”

“글쎄요, 참 많다? 우리 섬에 여자가 남아나지 않겠구나?”

“정답이에요.”

뭐? 이게 정답이었어?

나는 그냥 농담 삼아 한 말인데?

“총독님 말씀대로 이 섬에 더 이상 짝이 없는 여자는 없어요, 아직 가슴도 나오지 않은 꼬맹이들 말고는. 심지어 그 아이들조차 이상한 눈초리로 보는 놈들이···.”

“그만, 거기까지만 하시죠. 더 들으면 그놈들을 찾아서 다 목을 따버릴 것 같거든요.”

더 들었다가는 귀가 썩을 것 같아서 일단 그녀의 말을 급히 막았다.

어디 순진한 애들을 상대로 말이야, 힘든 일을 포로들이 하니까 이놈들이 딴생각을 한다 이거지?

아이들을 음험한 어른들에게서 격리시키는 방법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데 시니아 양이 노골적으로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지금 중요한 점이 그쪽이 아니잖아요! 일부러 모르는 척하시는 건가요?”

인류의 미래인 아이들보다 중요한 게 뭔데 그럼?

하여간 아동보호의 개념도 없는 사람들 같으니라고.

하지만 괜히 충성스러운 부하의 부인과 싸워서 어렵게 올려 둔 충성도를 내리고 싶지는 않았기에 죄송하다는 표정을 연기하며 물었다.

“모른 척이라니요, 몇 명 되지도 않는 아이들이니 마음이 쓰였을 뿐입니다. 그래서 문제가 뭡니까? 애인을 못 만든 놈들이 난동이라도 피웠나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나를 살짝 흘겨본 시니아가 대답했다.

“역시 짐작하고 계셨군요. 아직까지 두드러지지 않고 있지만, 조만간 크게 한 번 터질 거예요. 남자들은 그, 그러니까, 하, 한 번씩 풀어줘야 한다고···.”

말을 하다 말고 얼굴이 새빨개진 시니아가 말꼬리를 흐렸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부부 앞에서 그런 말을 들은 내가 더 창피해야 하는 거 아닐까?

그나저나 이게 원래 이쪽 계통으로 보고가 올라오면 안 되는 걸 텐데?

어디까지나 섬의 관리를 맡고 있는 것은 왕녀님과 촌장이고, 시니아는 단지 회계 부분만 관리할 뿐이다.

“잠시만요, 그런데 왜 그 보고를 시니아 양이 하는 거죠? 담당자는 아가씨나 촌장님일 텐데.”

“그 부분은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제독.”

얼굴이 새빨개져서 연신 손부채질을 하는 시니아를 불안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게론드가 얼른 나섰다.

“아가씨나 촌장님은 아직 정확한 이유는 모르실 겁니다. 실제로 이 상황을 직접 보시기에는 너무 바빠서, 서류나 보고로만 상황을 파악할 테니까요. 보고서에는 대충 쌍방이 경미한 부상을 입은 작은 폭력 사태 몇 건이라는 식으로 쓰여있을 거구요. 그런데 빈말로도 교양있다고 할 수 없는 부류의 남자들을 잔뜩 모아놨으니 그런 사건쯤이야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지 않겠습니까?”

듣고 보니 그럴듯했다.

관리자라는 자리가 원래 그렇지 않나.

사건과 상황을 직접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서 파악한다.

무식한 놈들을 잔뜩 모아놨더니 폭력 사건의 발생 빈도가 늘었다는 보고에서 어떤 위화감을 느낄 수 있겠냐고.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런데 시니아 양은 도대체 어떻게 이 사실을 알게 된 거야?”

별것 아닌 내 질문에 이번에는 게론드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관두지. 별로 궁금하지 않아졌어. 이 일은 그럼 내가 신경을 좀 쓰겠네. 그러면 되겠습니까, 시니아 양?”

왠지 기분이 살짝 나빠진 내가 심드렁하게 대답하자 이제 겨우 원래 모습을 되찾은 시니아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어떤 대책이 있으신지 여쭤봐도 될까요?”

“아, 그건···.”

대책이 뭐 별거 있나?

결국 딴생각을 하는 이유는 몸이 편해서 그렇다.

뒤지기 전까지 굴리면 원래 잡생각이 다 사라지는 법이지.

그리고 여자들과 작업공간도 분리하고···.

“결혼식을 올리시죠.”

“네?!”

너무 놀라서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소리를 질렀다.

혹시나 했더니 왕녀님이 시니아에게 다 이야기를 한 모양이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결혼 같은 중차대한 일을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이 진행할 수 있겠어?

그리고 나와 왕녀님의 정략적 결혼이 가지고 올 파장에 대해서 조금 더 심도 있는 고찰을 해봐야 하기도 하고, 아, 물론 나는 괜찮기는 한데 왕녀님의 입장도 좀 고려를 해봐야 하고, 그사이에 생각이 조금 바뀌었을 수도 있고···.

“뭘 그렇게 놀라세요?”

“아아니, 그렇지 않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급하게 결혼식을···!”

“준비라면 걱정하지 마세요, 얼마나 대단한 결혼식을 생각하신지는 몰라도, 보통 사람들의 결혼식은 별다른 준비가 필요하지 않으니까요.”

시니아의 태연한 말에 살짝 화가 났다.

자기도 결혼식을 대충했다고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렇다고 왕녀님의 결혼까지 대충 치르려고 하는 건 선 많이 넘었지!

아무리 정략결혼이라지만 결혼 전에 프로포즈도 하고, 조금 명성 있는 하객들도 모으고, 그럴듯한 예식장도 짓고, 이 섬에서 웨딩드레스는 무리니까 본토에 가서 주문 제작도 좀 하고 뭐, 그 정도는 해줘야 하는 것 아닐까?

“그리고 다들 전투를 겪자마자 고된 일에 투입되고, 삶의 터전이 파괴되는 상실감을 겪어서 분위기를 전환할 필요도 있습니다. 그러니 마을의 축제를 겸해서 합동 결혼식을···.”

부연 설명하듯 시니아의 말을 받는 게론드의 말에 나는 고개가 홱 돌아갔다.

대충 급하게 하는 결혼식도 마음에 들지 않는데 거기에 축제를 겸해서어? 그리고 뭐? 합동 결혼식이라고?

“이봐, 회계사. 아무리 본인의 일이 아니라고 너무 가볍게 말하는 건 아닌가? 자네 그렇게 안 봤는데 말이야.”

“네, 네? 아,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니야! 아무리 자네가 결혼을 이미 했다지만 그래도 나는 어? 결혼이 처음이고!”

“···네? 아니, 제독이 결혼이 처음인 것이랑 이게 무슨 상관인지···.”

정말 기가 막히는군.

그럼 내가 결혼하는데 내가 상관이 없다면 누가 상관이 있다는 거야?

결혼식의 주인공은 신부인 왕녀님이니까 들러리인 신랑의 입장 따위는 고려할 가치가 없다는 그런 말인가?

이번만큼은 제법 화가 나서 한마디를 하려는데 시니아가 한발 빨랐다.

“이왕이면 이미 부부였던 사람들까지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밝혀서 쓸데없는 분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자는 겁니다. 그러니까 음, 저희까지 말이죠.”

그러니까 내 결혼식을 핑계로 본인들의 두 번째(?) 결혼식을 치르시겠다는 건가?

다시 얼굴이 빨갛게 변한 시니아에게 한마디 하려는 순간 퍼뜩 머리에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이거 나와 왕녀님 이야기가 맞기는 해?

게론드도 시니아도 왕녀님의 정체에 대해서 알고 있다.

그런 사람들이 왕녀님의 결혼을 이렇게 손쉽게 생각한다고?

“흐흠, 문제가 없다면 반대할 이유는 없는데, 언제쯤 실행하려고 합니까?”

“오늘은 무리고 내일쯤 진행하시지요. 아무리 크게 준비할 필요가 없다고 해도 준비할 시간이 어느 정도는 필요하고, 당사자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기도 해야 하니까요.”

태연한 시니아의 말에 나는 잠시 머릿속으로 말을 골랐다.

자연스럽게, 아주 자연스럽게 넘어가야 한다.

“그렇다면 행사의 주관은 누가 합니까? 일단 결혼식이니 주관하는 사람이 필요할 것 같은데. 원래대로라면 아가씨가 하셔야 하지만···.”

내가 슬쩍 말꼬리를 흐리자 시니아가 다행스럽게도 바로 뒷말을 받아주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아가씨가 아니라 총독님이죠. 아가씨는 어디까지나 총독 대리이니 총독이 직접 와 있는 상황에서는 전면에 나서지 않는 것이 옳으니까요. 하지만 이번만큼은 총독님도 아가씨도 뒤로 물러서 계시고 촌장님이 일을 주관했으면 합니다.”

“흐음?”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하다는 제스처를 취하며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자리에 앉자, 시니아 역시 조금 더 차분해진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갔다.

“두 분이 어떻게 생각하시건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두 분은 이 섬에서 단둘뿐인 귀족이고, 가장 높은 분들입니다. 아무래도 함께하는 자리가 부담스럽지요. 특히 평민들의 행사에 귀족이 관여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니 다들 불편해할 겁니다. 그동안 쌓인 피로와 부담을 덜기 위한 자리가 불편하다면 본말전도 아닐까요?”

이 정도면 왕녀님과 나의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구나.

괜히 설레발치다가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흑역사를 만들 뻔했다.

물론 얇아진 게론드의 눈초리가 영 불안하기는 하지만, 아직은 수습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럼 아가씨와 나는 내일 밤에 어딘가에 숨어 있으라는 말입니까?”

내가 일부러 조금 냉랭하게 말하자, 시니아는 미안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행사를 시작할 때 약간 떨어진 자리에서 말없이 자리만 지키고 계시다가 빠르게 자리를 뜨시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두 분이 드실 식사는 따로 준비해 두도록 하겠습니다.”

“그게 최선이라면 뭐···.”

내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빠르게 대화를 마무리하려고 하는데 게론드가 불쑥 끼어들며 물었다.

“그런데 제독, 아까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던 겁니까? 혹시···.”

* * *

허비 촌장의 주관하에 이루어진 47쌍의 합동 결혼식은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가장 행복해 보이는 커플은 다름 아닌 게론드와 시니아 커플··· 이 아니라 발드 선장 커플이었다.

매사에 진중한 성격이던 발드 선장의 얼굴에 하루 종일 웃음이 떠나지 않는 것을 보니 조만간 이 섬에 아이가 한 명 늘어날지도 모르겠다.

노산 아니냐고? 아 몰라, 알아서 하겠지.

물론 아주 사소한 몇 가지 문제가 있기는 했다.

공식적으로 대놓고 서로 사귀는 것을 알리는 커플이 있는가 하면, 굳이 티 내지 않고 조용히 서로의 마음만 확인한 커플도 있게 마련.

후자의 커플들이 공식적으로 발표되자, 욕을 하며 난장을 피우는 놈과 술도 마시지 않고 우는 놈까지 별놈이 다 나왔다.

아, 그리고 자신과 상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루 종일 욕을 달고 산 놈들도 있는데, 다름 아닌 포로들의 관리를 맡은 사람들.

다른 사람들에게는 약간의 음주(솔직히 양이 많지는 않았다)가 허용되었지만, 이들은 단 한 방울의 알코올도 입에 대지 못했던 것이다.

원래 남들 놀 때 일하는 것이 제일 힘들고 화가 나는 법이다.

하지만 200명이 넘는 포로들을 대충 관리했다가는 어떤 참사가 날지 몰랐기 때문에 내가 직접 순찰을 돌며(할 일이 없었다) 이들을 격려했다.

물론 제비뽑기에 져서 일을 맡은 것이 이들의 잘못은 아니니까 은화를 하나씩 쥐여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중에 특별 수당이야 게론드가 챙겨주겠지만, 그래도 사장님이 따로 챙겨주는 금일봉이 최고인 법이다.

똑똑똑.

“제독, 발드입니다.”

“응? 발드 선장? 잠깐만.”

밤늦게까지 이어진 축제 자리가 정리되는 것을 확인하고 나도 이제 눈을 좀 붙이려는데 뜬금없이 발드 선장이 나를 찾아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선장실에서 가져온 위스키를 한 잔 따라서 내밀자, 그는 평소와 다르게 가만히 잔을 잡고 쉽게 마시지 않았다.

“그거 아십니까? 배를 타기 전에는 저도 평범하게 여자 좋아하고 결혼을 꿈꾸던 남자였습니다.”

“그거야 누구나 다 그렇지, 뭐.”

갑작스러운 추억팔이에 내가 대충 고개를 끄덕이자 발드 선장이 피식 웃었다.

“그런데 배를 타다 보니 살짝 불안해지더군요. 뱃놈에게 결혼? 어림도 없는 소리죠. 한 번 나가면 수개월, 심하면 한 해가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고, 열 놈이 나가면 한두 놈은 꼭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뱃놈에게 딸을 주고 싶은 미친놈이 어디 있겠습니까?”

씁쓸한 현실이다.

그런데 육지에 남는 여자나, 그런 여자를 보는 여자의 가족들 입장을 생각해보면 그냥 뱃놈들은 뒤질 때까지 창녀와 노닥거리는 편이 세계 평화를 위한 방법이기는 하다.

“거기에 해적 놈들에게 잡혀서 노잡이 생활을 할 때는 정말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했죠. 제독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그 소원을 이룬 지 한참 지났겠군요, 클클클.”

지독한 블랙 코미디를 시전한 발드는 드디어 잔에 담긴 갈색 액체를 목구멍에 들이부었다.

“크으, 그래도 말입니다, 제독에게 그렇게 감사하면서도 제가 가정을 이루고, 내 여자가 생기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차라리 그때 제독에게 의탁하지 않았다면, 그냥 육지에 남았다면 여자가 생기지는 않았을까 하는 망상도 했었지요. 네, 압니다. 진짜 망상이죠. 돈도 기술도 없고, 나이는 든 데가 다리까지 저는 남자를 좋아할 여자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왜 갑자기 고해성사를 하시는 거야?

난 사제도 아니고 그런 거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데.

“감사합니다. 이 말을 꼭 따로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선원들이 감사하다고 전해달랍니다. 오늘 결혼한 놈들 말입니다. 제 놈들도 자기들이 결혼까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도 못 했겠죠, 흐흐흐흐.”

내부 인원은 턱없이 부족하고 외부인이라고는 선원들이 전부인 폰테 섬의 상황이 아니었다면 언감생심 뱃놈들이 결혼을 생각이나 했겠나?

결혼한 놈들의 충성도 오르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구나!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분위기 어때요? 욕구불만인 놈들도 적지 않을 것 같은데.”

그렇다.

이 비정한 결혼 시장에서 선택받는 자가 있다면 실패한 자들도 있게 마련이다.

심지어 지금의 성비는 기형적인 상황이니 실패자들이 한둘이 아니다.

성공한 자들이 내게 고마워하는 만큼, 실패한 놈들은 나를 미워하지 않을까?

“뭐, 그놈들이야 원래 그런 인생들 아닙니까? 탓을 하려면 못난 제 놈들 탓을 해야지요, 크흐흐흐.”

킬킬거리는 발드 선장의 표정에서 숨길 수 없는 가진 자의 여유가 보인다.

···기분 나빠!

“뭐 굳이 말씀드리자면 빨리 본토로 돌아가자는 놈들이 대부분이고, 일부는 그게··· 흠흠.”

“뭔데 그렇게 뜸을 들여?”

“섬에 창관을 만들어 달라는 놈들이 있습니다.”

말을 하고도 민망한지 발드 선장이 괜히 시선은 천장으로 옮겼다.

하여간 이 무식한 뱃놈들은.

그나저나 이런 임시 조치 말고 진짜 근원적인 해결책이 필요할 것 같기는 하다.

성욕이라는 것이 그냥 억지로 참으라고 한다고 계속 참아지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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