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6화> 구렁이 한 마리 추가요! >
오랜만에 나와 함께 배에 타겠다고 탈리스를 밀어내고 일등항해사 자리를 꿰차고 앉은 아인델프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필라비스 항구 말입니까? 델라 항구가 아니구요?”
“어, 만나기로 한 사람이 있어.”
“네?”
갑자기 만나기로 한 사람이 있다니까 아인델프가 어이가 없어 하며 나를 바라보았지만, 그저 어깨만 으쓱거렸다.
남에게 함부로 이야기할 만한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다른 일이라면 아인델프에게 굳이 숨길 필요는 없지만 다름 아닌 왕녀님과 관계된 일이다.
내가 함부로 입을 놀릴만한 일이 아니었다.
“아가씨와 관계된 일이야. 잠깐 들러서 사람만 만나고 떠날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아,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아가씨라는 말에 아인델프가 묘한 표정을 지으며 바로 수긍했다.
뭐야, 저 표정, 마음에 안 들어.
“그보다 그 페리아, 아니, 원주민분은 신경 쓰고 있지?”
“그게, 그렇지 않아도 워낙 아름다운 분이라 선원들이 자꾸 궁금해해서 골치가 아픕니다. 아직까지는 갑판장이 잘 제어하고 있습니다만.”
“하여간 무식한 선원 놈들이란.”
지금 오트라스에는 페리아 족은 물론이고 왕녀님과 시니아 양, 그리고 시녀 둘까지 여자 손님만 다섯 명이 타고 있다.
그나마 왕녀님과 시니아, 시녀 두 사람은 같이 지내는 것에 익숙해서 귀빈실을 내어주면 그만이었지만 페리아 족까지 같이 지내라고 할 수는 없지 않나.
그래서 개인실을 주기는 했는데, 이 친구가 말은 없지만, 호기심이 없는 것은 아니라서 자꾸 방을 나와서 배를 돌아다니니 선원들의 핫이슈였다.
그나마 적절히 정신계 마법을 사용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눈이 뒤집혀서 덤비는 놈은 아직 없었지만, 걱정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포술장은 요즘 뭐 해?”
“네? 그건 저도 잘···.”
아무래도 우르타를 전담으로 붙여놔야겠다.
우르타를 찾는다고 갑판을 돌아다니는데 뱃전에 기대고 서서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는 네이선이 보였다.
이 녀석 어울리지 않게 왜 폼을 잡고 있어?
“어이, 갑판장님. 뭘 그리 생각하시나?”
“누구, 아, 리안.”
감각이 워낙 예민해서 근처만 가도 눈치를 채던 네이선답지 않게 내가 바로 옆에 다가가도록 정신이 팔려 있었다.
내게 경고를 듣고도 뻑하면 몰래 알렌과 대련인가 처맞기인가를 하더니 어디가 잘못된 거 아냐?
“어디에 정신이 팔려서 사람이 오는 것도 몰라?”
“아니, 그냥. 좀 생각할 게 있어서.”
“뭔데? 심각한 일이야?”
“심각한 일인가? 흠···.”
잠시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있던 네이선은 나를 돌아보며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너는 저 폰테 섬을 네가 끝까지 지킬 수 있을 것 같아?”
뱃전에서 가볍게 물어보기에는 조금 무거운 주제였다.
그래도 무슨 생각인지 몰라도 꽤 심각해 보이니 최대한 성심성의껏 대답해 주었다.
“나는 정말 최악의 상황이 되지 않으면 어떻게든 지킬 생각이야. 정말 어렵게 마련한 거점이고, 사실 이런 기회가 또 오지는 않을 테니까. 섬을 잃으면 잘해봐야 조금 큰 규모의 선단장으로 끝나겠지.”
솔직히 그 정도라면 아마 드라이언의 배기어 함장도 곧 떨어져 나갈 거다.
내해의 제해권을 쥐고 있던 일레드, 벨로키나, 쿠샤 왕국의 해군력이 사이좋게 절반 정도로 떨어졌으니 개나 소나 해적질을 하겠다고 난리를 칠 게 뻔하지 않나.
해적이 숨을 죽였다고 해도 완전히 멸절된 것도 아니고, 오히려 향료 제도 쪽 해적들은 더 극성이라니까 말이다.
해상 권력의 공백을 이용해 지구의 무슨 만화처럼 해적왕이 되겠다고 설치는 미친놈이 나올지도 모르지.
그런 상황이면 드라이언의 입장에서는 굳이 몇 푼 되지도 않는 내 교역 이익을 나누어 먹기보다, 차라리 용병함으로 영업을 하는 게 돈을 더 많이 벌 테니까.
“최악이라··· 결국 후작이 욕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상황을 말하는 거지?”
“일단 지금 생각할 수 있는 최대 위협은 그거지.”
벨로키나 왕국은 귀족들의 사설 함대 창설을 금지하고 있다.
이번 전쟁의 여파로 정책이 바뀔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함대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나.
그러니까 후작이 물리적으로 나를 공격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았다.
하지만 정치적인 공격은 도저히 대응할 방법이 없다.
애초에 나는 후작의 봉신이잖아.
“나도 폰테 섬이 좋아.”
“어? 그, 그래.”
아무것도 없는 섬이 뭐가 좋다는지는 잘 모르겠다.
섬을 내 것이라고 해도 무방한 나랑 네이선은 입장이 조금 다르잖아.
“그래서 리안이 폰테 섬에서 살았으면 좋겠어.”
“어? 나는 그래도 배를 타야 할 것 같은데?”
뚱딴지같은 말에 나는 살짝 당황하며 대답했다.
한 십 년쯤 지나서 모든 것이 안정적으로 되면 섬에다가 저택이나 짓고 유유자적한 삶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좀 무리다.
그런데 내 대답을 들은 네이선이 지그시 나를 바라보았다.
뭐야, 저 눈빛은.
“뭐, 왜! 당장 내가 배를 안 타면 선단은 누가 이끄냐?”
“아니, 넌 당연히 배를 타야지.”
“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내 아들을 말한 거야. 걔도 리안이잖아.”
어?
나는 순간적으로 얼굴이 화끈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네, 쟤네 아들도 리안이었지.
“응? 우리 리아 이야기 하는 거야?”
“냐아아옹!”
어디선가 나타난 우르타가 우리 사이에 끼어들며 해맑게 웃었다.
우르타의 품에는 새하얀 돼지··· 어? 얘 왜 이렇게 살이 쪘어?
그나저나 리안에, 꼬맹이 리안에, 고양이 리아에, 아주 엉망진창이구만.
“야, 그 돼지, 아니, 고양이는 도대체 뭘 주워 먹은 거야?”
“왜! 얼마나 귀여운데!”
고양이가 귀엽기는 하지.
그런데 그 고양이, 쥐 잡으려고 키우는 거 아니었나?
그 덩치로 쥐를 잡기는 하겠어?
그 전에, 배불러서 쥐를 잡을 필요는 있을까?
귀찮은 표정의 리아를 끌어안고 어르는 우르타를 밀어낸 네이선이 단호한 표정으로 선언했다.
“나도 내 가족들 데리고 올 거야!”
“응?”
“가족?”
가족이라, 그렇구나.
이제 네이선은 가족이 있구나.
토끼 같은 마누라와 나 같은 아들, 이건 좀 어감이 이상한데··· 하여간 갓난쟁이 아들이 있지.
그런데 어디를 데리고 와?
“설마 폰테 섬으로 그 갓난쟁이를 데리고 갈 거라고?”
“어!”
“갓난쟁이? 아! 쪼꼬만 리안?!”
아직 젖도 못 뗀 아이를 험한 선상생활을 시킨다고?
이놈이 제정신인가?
“야, 그 쪼꼬만 애가 배에서 버티겠냐? 좀 크면 몰라도.”
“얼마나?”
“어?”
얼마나라고 물으니 막상 대답할 말이 궁했다.
얼마나 커야 하나?
걸어 다닐 수 있을 때? 오히려 더 위험하다.
말귀를 알아먹을 대여섯 살? 혹시라도 장난치다가 다치거나 빠지기라도 해봐, 그게 무슨 난리야?
그럼 한 열댓 살··· 이면 보통 이 세상 기준으로 독립을 준비할 나이다.
그래서 나는 조심스럽게 그나마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나이를 말했다.
“한 열 살쯤?”
“앞으로 십 년을 기다리라고?”
“좀 그런가···?”
그러고 보니 데보라와 작은 리안이 사는 멜라나인 항구는 교역항이 아니라서 자주 들를 일이 없다.
심지어 최근에는 언제 가봤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해.
솔직히 일 년에 한 번이나 겨우 보는 아빠가 무슨 아빠야, 가끔 오는 아저씨지.
이번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멜라나인 항구나 한번 들러야겠다.
오랜만에 드웰 아저씨 얼굴이나 보러 가야지.
* * *
별다른 사건 없이 우리는 필라비스 항구에 도착했다.
굳이 특이한 점을 꼽자면 항해 중인 배들이 꽤 많이 보였다는 정도?
전쟁이 시작된 이후로 두 세력의 해군이 하도 극성을 부려서 상선들이 드물게 보였던 것을 감안하면 진짜 전쟁이 끝나려는 것 같았다.
물론 일레드 왕국이 남은 해군력을 재편해서 역전의 한 방을 노릴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을 것이다.
처음부터 상대는 벨로키나와 쿠샤 왕국이라는 두 나라인데다가 은행의 재력과 통신망을 마음껏 쓸 수 있는 마법사 길드마저 저쪽의 편을 들고 있으니 말이다.
정박 절차를 아인델프에게 일임한 나는 귀빈실의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시녀가 열어주는 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니 테이블 근처에서 내게 정중하게 예를 올리는 왕녀님과 시니아가 보였다.
아무래도 두 사람이 저렇게 예의를 차리면 좀 부담스럽다.
특히 왕녀님은 내가 알량한 귀족이 되었다고 해도 굳이 내게 저런 예를 차릴 사람은 아니지 않나.
“필라비스 항구에 도착했습니다. 이전에 말씀드린 대로 폰테 섬에서 제먼 씨를 통해 이곳에서 만나자는 말을 전달했으니 곧 연락이 올 겁니다. 아가씨, 아니, 왕녀님.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저는 괜찮습니다.”
“그렇다면 괜히 외부인에게 모습을 보일 필요는 없으니 답답하시더라도 잠시만 실내에 머물러 주시기 바랍니다. 가능하면 그쪽 사람을 배로 불러 보겠습니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총독님.”
여자들만 있는 공간에 길게 머무르기에는 조금 불편해서 바로 나가려던 나는 시니아를 보며 물었다.
“시니아 양, 몸은 괜찮으십니까?”
“네? 아, 네.”
“제가 알기로 임신 초기에 몸을 격하게 움직이거나 피로하면 태아에게 안 좋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조금이라도 몸이 이상한 것 같으면 바로 닥터에게 말하세요.”
“···고맙습니다, 총독님.”
시니아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아무래도 첫 임신인데 타인이나 마찬가지인 내가 그렇게 말해서 조금 창피한 모양이다.
* * *
40대 중후반이나 되었을까, 멋들어진 콧수염이 인상적인 남자였다.
그런데 그 소개가 더 충격적이다.
“처음 뵙겠습니다, 스펜서 남작. 프레티아 왕국의 내무대신을 맡고 있는 블랑코 아스파니아 백작이라고 합니다.”
백작이라는 작위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다.
무려 내무대신이란다.
각국마다 내밀한 사정은 다르겠지만 보통 내무대신이면 왕국 내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권력자란 말이다.
“어, 어, 반갑습니다, 내무대신 각하.”
“각하라니요, 과분합니다, 허허.”
“설마 내무대신께서 직접 발걸음을 하실 줄은···.”
내 말에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던 블랑코가 목소리를 살짝 낮추었다.
“크흠, 보시다시피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일정이라··· 혹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눌만한 곳이 없을까요? 남작의 배라던지···.”
내가 은행을 통해 도착을 알리기 무섭게 찾아온 것을 보면 미리 와서 대기하고 있었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은밀한 장소를 마련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내게 그런 장소를 요청한다는 것은 무조건 배에 타고 싶다는 것이겠지.
굳이 배에 타려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딱히 막을 이유가 있나.
그렇지 않아도 가능하면 배로 부를 생각이었는데.
“그렇다면 누추하지만 제 배로 가시지요.”
우리는 서로 눈빛을 한번 마주치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상대의 목적은 명확했다.
그리고 내가 이 자리에 나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모를 리가 없고.
그런데도 아직까지 왕녀님의 안부를 묻기는커녕 자기감정조차 전혀 비치지 않고 있으니 보통 사람은 아니라는 뜻이겠지.
하긴, 그 정도도 안 되면 살얼음 같은 정치판에서 내무대신까지 올라올 수 있었을 리가 없구나.
배로 이동하는 동안 블랑코는 신변잡기로 대화를 주도해 나갔다.
주로 자신의 이야기보다 내 이야기를 물었다.
배를 타면 겪을만한 이야기들, 자기가 들은 바다에 대한 소문, 미신··· 아주 모르는 이야기는 아니라 어떻게든 대답을 하기는 했지만, 주제도 없고 중구난방인 이야기들이었다.
그럼에도 대화가 재미없지 않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호오, 여기가 선장실입니까? 신기하군요.”
“네, 내무대신께서 머무시기에는 많이 부족합니다만.”
“아닙니다, 별말씀을요, 손님 된 입장에서 감히 그런 생각을 하겠습니까?”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쪽으로 앉으시지요.”
나는 그를 떠보려는 심산으로 원래 내가 앉는 상석을 양보했다.
다른 자리라면 국가는 달라도 일단 고위 귀족인 백작인데다가 나이도 많고, 내무대신이라는 높은 자리에 있는 그가 상석에 앉는 것이 맞다.
하지만 여기는 내 배고, 나는 선장이자 제독이며, 이 방의 주인이었다.
지금까지 잡담을 한 내용으로 비추어볼 때 그는 배에 대해서 전혀 모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가 저 자리에 앉는지 앉지 않는지에 따라 그의 성향을 유추할 수 있겠지.
“음, 원래 그 자리는 남작의 자리가 아닙니까?”
“네?”
“손님이 주인의 자리를 탐할 수는 없는 법이지요. 저는 이쪽에 앉겠습니다.”
부드럽게 웃은 그가 택한 자리는 상석에서 가장 가까운 좌측 좌석. 이 정도면 나를 진짜 동격으로 대우한다는 뜻인데···.
나 역시 그를 두고 상석에 앉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자연스럽게 그와 마주 보는 우측 좌석에 앉았다.
“그런데 그 폰테 섬이라는 곳 말입니다···.”
솔직히 나는 그가 선장실에 들어오면 바로 본론을 꺼낼 줄 알았다.
왕녀님이 어디에 있는지, 왜 납치(?)를 했는지, 어서 그녀를 돌려달라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조리장이 내온 차와 다과를 다 먹고, 그가 흥미를 가진 내 방에 비치된 위스키 한 잔을 다 비우도록 그가 한 이야기는 쓸데없는 이야기뿐이었다.
이 사람, 자기가 여기에 왜 앉아있는지 기억을 못 하는 건가?
“요즘 스코타 후작과 남작의 관계가 예전과 같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네?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갑자기 훅 들어오는 그의 말에 뜨끔했지만 나는 일단 아니라고 잡아떼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그렇습니까? 흠, 분명히 후작이 바뀐 후로, 아차, 제가 괜한 말을 했군요. 죄송합니다.”
“아, 아닙니다.”
“제가 괜한 말로 시간을 너무 오래 끌었지요? 시간을 뺏어서 미안합니다, 남작.”
“괜찮습니다. 그런데···.”
답답해서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자고 말을 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그가 뭔가 생각이 났다는 듯이 내 말을 자연스럽게 잘랐다.
“이만 일어나야 할 것 같습니다만, 가기 전에 배를 좀 구경하고 싶은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그냥 일어나신다구요?”
“아, 마법사 길드를 통해서 전달한 내용은 너무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남작처럼 훌륭한 사람이 감히 왕녀님을 납치했을 리가 없지요. 아마도 잘못된 정보가 흘러들어온 모양입니다. 저희 입장에서는 왕녀님의 행방이 매우 중요한 일이라. 국왕 폐하께서 유일하게 남은 혈육을 매우 그리워하시고 있으니까요.”
뭐야? 뭐지? 이 새끼 지금 뭔가 약을 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런데 말입니다, 사실 이번 일은 폰테 섬이 공개되어 있었다면 발생할 리가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네?”
“물론 제가 남작께 섬을 공개하라 마라,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공개할 곳이니 우리 쪽 사람 한 명쯤이 들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죠. 그렇게 배려를 해주시면 우리 왕국에서도 폰테 섬에 대한 전폭적인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을 예정입니다.”
뭐야, 왜 갑자기 말이 그쪽으로 흐르는데?
“그런 부분은 제가 독단으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후작 각하의 허락이 있어야만···.”
어이없는 그의 제안에 내가 완곡한 거절을 표했지만, 그는 오히려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네? 그럴 리가요. 제가 듣기로 남작이 폰테 섬의 총독이라고 했습니다만. 총독이 그런 사소한 일까지 후작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말입니까?”
“사소한 일이 아니고 타국이 엮인 일이 아닙니까?”
“어허허, 고작 사람 한 명이 섬에 들어가는 겁니다. 심지어 저희는 섬이 공개될 때까지 그 사람을 귀환시킬 생각도 없습니다. 그저 이번 같은 상황이 있을 때 남작이 그에게 상황을 이야기해주면 그가 편지 한 통만 보낼 수 있어도 충분합니다. 물론 그 편지는 남작님이 먼저 보셔도 되구요.”
이 새끼가?
어차피 암호를 사용할 거잖아!
섬의 정보를 다 빼내겠다는 말이랑 뭐가 달라?
“어차피 섬에서 외부의 눈을 피해 뭔가 특별한 것을 획책하시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혹시 섬에 숨겨야 할 것이 있으십니까?”
이거였냐?
나는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그를 보며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일단 한 대 맞았으니 여기에서 말 한 마디만 잘못해도···.
똑, 똑, 똑.
“음? 실례하겠습니다.”
선장실 문 앞에는 네이선을 위시한 돌격대원들과 내무대신의 호위들이 대기 중이다.
네이선이 내 상황을 모르지 않을 텐데 지금 상황에서 노크를 한다고?
나는 의문이 일었지만 일단 자리에서 일어나 문 앞으로 다가갔다.
그래도 생각할 시간을 벌어서 다행이다.
“누구야?”
문을 열기 전에 질문을 던지자 잠시 정적이 흐르더니 네이선이 대답했다.
“제독, 그게··· 아가씨··· 께서 오셨는데 어떻게 할까요?”
뭐? 왕녀님이?
“총독님, 문 좀 열어주시지요.”
그녀의 차분한 목소리를 들은 나는 혼란에 빠졌다.
아니, 우리 원래 계획은 이게 아니었잖아요, 왕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