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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흙수저 선원으로 살아남기-371화 (372/420)

< <371화> 욕심이 아주 그냥···! >

내가 복잡한 심정을 숨기지 않은 채 시간을 달라고 하자 후작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하룻밤, 내일 오후에 알현 일정이 있으니 늦어도 오전 중에는 결정을 해달라고 했다.

그렇게 후작이 떠난 후 혼자서 생각을 정리하는 중인데, 기대하지 않았던 도움의 손길이 다가왔다.

“어? 어떻게 오신 겁니까?”

“으응? 나는 자네가 우리를 부른 줄 알았는데?”

“네, 시종이 제독을 만나게 해 주겠다며 따라오라고 하더군요.”

“흠···. 제독, 혹시 누구를 만나셨습니까?”

제먼 씨와 게론드, 엘리엇, 그리고 우르타까지.

우르타는 신이 나서 내 방을 뛰어다니며 감탄하는 중이다.

자기 방과 다르다나 뭐라나.

나는 우르타에게 신경을 끄고 심각한 표정으로 핵심을 짚어낸 엘리엇에게 시선을 돌리며 대답했다.

“어, 페이트 후작이라고 하더군.”

“페이트 후작 말입니까? 허!”

엘리엇이 깜짝 놀라며 감탄했다.

유명인사이기는 하지만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이미 내무대신을 맡고 있는 블랑코가 우리를 안내한 마당에 뭐···.

“페이트 후작이라면 전쟁영웅으로 유명한 이군요. 프레티아 왕국에서 꽤 목소리에 힘을 주는 사람일 것 같습니다만.”

게론드가 그럴듯한 추측을 내놓았지만 이어지는 엘리엇의 말에 밀려 큰 감흥을 줄 수 없었다.

“힘을 주는 정도가 아닙니다. 현재 국방대신을 맡고 있지만 그건 단지 그가 국무대신 직을 양보했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게다가 프레티아 국왕의 장인이 되는 사람이고, 국왕의 나이가 어려 대신들에게 상당히 의지한다고 하니, 실질적으로 프레티아를 지배하는 권력자에 가까운 사람입니다. 그가 직접 나서서 뭔가를 제안했다면, 그것이 바로 프레티아 왕국의 의견이라고 봐도 무방할 겁니다.”

“···?!”

게론드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엘리엇을 노려보았고, 나 역시도 처음 듣는 이야기인지라 바로 되물었다.

“나는 처음 듣는 이야기야. 그런 사람이 직접 내게 왔다고? 뭔가 잘못 알고 있었던 것 아니야?”

“제가 알고 있는 사실은 확실합니다. 물론 시간이 좀 흘렀으니 변동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일단 그가 아직 왕궁에서 돌아다닌다면 정쟁에서 밀려난 것은 아니라는 말이겠지요. 그렇다면 그의 힘이 더 강해졌으면 강해졌지, 약해진 것은 아닐 겁니다.”

그럼 그가 제안한 것이 다 사실이라고?

잠깐, 그럼 이들을 내게 보낸 이유가···?

의심을 담아 엘리엇을 보던 나는 곧 마음을 고쳐먹었다.

엘리엇이 첩자였다거나, 배신했다거나, 이 상황을 대비한 장기적인 한 수라고 의심하기는 어렵지 않겠나.

엘리엇을 만난 시점에 이 상황을 예상하는 것은 인간이라면 불가능한 일이고, 배신을 하기에는 엘리엇과 후작이 말을 맞출 시간이 너무 짧다.

“음, 엘리엇 작전관이라고 했지? 그렇게 널리 알려진 사실은 아닌데 잘 알고 있군. 그의 말대로네. 실제로 프레티아 왕국의 굵직한 내용을 결정하는 것은 젊은 국왕이 아니라 페이트 후작이야. 물론 형식적으로는 젊은 국왕이 대소사를 결정하지만, 그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후작이니까.”

“숨은 권력자 같은 겁니까?”

“그래, 적절한 표현이군. 예를 들어 스코타 후작이 벨로키나 왕국의 실세라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국왕에 이은 이인자에 불과하다면, 페이트 후작은 조금 미묘한 상황이지. 그가 국왕을 지지하고 있으니 국왕의 권위와 힘이 유지되는 상태일 정도니까 말이야.”

허 참, 그나저나 제먼, 이 아저씨도 정말 알 수 없는 사람이다.

스코타 후작 저택에 있을 때도 별 정보를 다 알고 있더니, 지금은 어찌 보면 프레티아 왕국의 내밀한 속사정까지 꿰고 있는 꼴이 아닌가.

도대체 정체가 뭐야?

“설마 페이트 후작이 원하는 것은···.”

국왕의 밑에서 권력을 가진 자와 달리, 예로부터 국왕의 뒤에서 권력을 휘두르던 자의 마지막 도전은 단 하나였다.

찬탈.

평범한 사람들은 어차피 왕과 같은데 왜 굳이 그런 위험한 짓을 하나 싶은데, 결국 대부분의 권력자들은 자기 스스로 왕이 되고자 했다.

그게 성공하면 왕이 되는 것이고, 아니면 반역자가 되는 거지.

“어? 아, 페이트 후작은 그럴 사람이 아닐세. 권력이라는 것에 취하면 사람이 쉽게 바뀌기는 하지만, 일단 지금까지는 그렇다는 말이지.”

“조금 자세하게 설명해 주시죠.”

내 요청에 잠시 생각을 가다듬던 제먼 씨가 설명을 시작했다.

“그래, 사실 페이트 후작의 상황을 보면 대부분 제독과 비슷한 의심을 하지. 하지만 페이트 후작은 상당히 냉철한 사람이네. 자기 스스로의 능력도 잘 알고, 과도한 욕심이 부르는 참사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어. 게다가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본인의 외손자가 다음 왕좌를 물려받을 텐데 굳이 더 욕심을 낼 이유가 뭐가 있겠나?”

아, 국왕의 장인이라고 했지. 그 말은 그의 딸이 왕비라는 뜻이니까 두 사람 사이에 정상적인 남아가 태어나서 잘 자라기만 하면 다음 왕위는 그의 외손자의 차지가 된다는 뜻이다.

“그보다 그는 흠, 뭐랄까, 다른 쪽으로 욕심이 좀 많아.”

“욕심이 없다면 그런 자리까지 올라갔겠습니까? 권력욕이나 명예욕 같은 건가요?”

“권력과 명예라, 그것도 없다고는 못하겠지. 하지만 그런 것은 그에게 수단에 불과한 것들이네.”

많은 사람들의 최종 목표인 권력이나 명예가 고작 수단이라고?

“그가 원하는 것은 개인의 영달이라기보다 국가의 발전이네. 정확하게 말하면 늘 약소국의 위치에 있던 프레티아 왕국의 힘을 강화하고 싶어 하는 거지. 프레티아 왕국을 제국을 압도할 정도의 초강대국으로 만드는 것이 인생의 목표랄까?”

“제국을 압도한다고요?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수백 년 동안 바다의 지배권을 가지고 국력을 강화해 온 쿠샤, 벨로키나, 일레드 왕국조차 거대한 몰로스 제국을 끝내 압도하지는 못했다.

고작 몰로스 제국이 해상 패권까지 가져가는 것을 저지한 것이 최선이었을 뿐이다.

심지어 제국의 해상 진출을 막기 위해서 세 나라가 암묵적으로 연합해야 했으니, 제국의 강력함은 그 정도로 절대적이었다.

애초에 국토 크기가 다른 나라들을 죄다 합친 것과 비슷한 덩치의 몰로스 제국을 육지에서 상대할 방법은 거의 없었다.

물론 국토의 일부가 생산성이 0에 가까운 사막지대나 고산지대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국의 인구가 대륙 인구의 40% 정도에 육박할 정도다.

그러니 제국을 상대하려면 다른 나라들이 서로 연합할 수밖에.

“현실적으로 그가 죽기 전에 프레티아 왕국이 그 정도 힘을 갖추지는 못하겠지. 하지만 최근에 가능성을 제시한 나라가 있지 않나.”

“일레드···.”

“그래. 만약 일레드 왕국이 벨로키나-쿠샤 연합과의 전쟁에서 지지 않았다면, 수십 년이 흐른 뒤에는 대륙의 판도가 어떻게 흔들렸을지 아무도 모를걸?”

“설마 그래서?”

제먼 씨가 나를 보며 씩 웃었다.

“대충 후작이 무슨 제안을 했을지 예상이 되는군. 후작은 폰테 섬만 가질 수 있다면 프레티아 왕국도 언젠가는 일레드처럼 국력을 크게 신장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을 테니까.”

“노던테라··· 그 말이 진심이라는 거군요.”

“노던테라에 대해서는 이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니까 말이야.”

그때 조용히 이야기를 경청하던 엘리엇이 끼어들었다.

“그렇다면 우리를 이곳에 불러 모은 사람도 페이트 후작이겠군요. 아마 제독에게는 다른 사람들과 논의할 시간을 주는 척하면서 제먼 씨가 이런 식으로 말할 것이라고 예상했을 겁니다.”

확신하는 엘리엇을 잠시 바라보던 게론드가 나를 보며 말했다.

“군인 출신이라고 들었는데 쉽게 생각할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독. 괜찮으시다면 후작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자세하게 해 주실 수 있습니까? 그래도 여러 사람이 머리를 모으면 더 나은 결론이 나올 겁니다.”

그렇지 않아도 숨김없이 털어놓으려던 참이라 기꺼이 게론드의 제안에 응했다.

후작이 자신과 나눈 말을 특별히 숨기라는 뜻을 비춘 것도 아니고, 엘리엇의 말대로 굳이 내 사람들을 이렇게 모아 주었다는 것은 마음껏 의견을 나누라는 뜻인 것 같으니까.

반대로 말하면 아무리 우리가 머리를 굴려봐도 자신의 제안을 받을 것이라고 확신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 * *

내 이야기를 들은 세 사람은 미비한 부분을 질문하며 생각을 정리했다.

하지만 결론은 만장일치였다.

“받아들이는 것이 좋지 않겠나?”

“받아들여야 합니다.”

“제안을 받으시죠.”

세 사람이 거의 비슷한 타이밍에 같은 결론을 내놓았고, 계속 경쟁심에 불타던 게론드가 재빨리 말을 이었다.

“다만 이쪽에서 몇 가지 확실하게 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응? 그게 뭔데?”

지금 후작이 내게 제시한 조건은 충분히 파격적이다.

프레티아 왕국의 이득이 없는 것도 아니고, 내가 감수해야 할 위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제안은 내게 터무니없이 유혹적이고 유리한 제안이었다.

그런데 거기에 대고 토 달게 있어?

“먼저 징세권입니다. 페리아 족은 몰라도 폰테 섬에 사는 사람들은 결국 어딘가 나라에 속해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세금을 부과하고 거두는 주체가 누구인지 확실히 하셔야 합니다.”

“아, 그건 그렇네.”

지금이야 세금을 거두려고 해도 거둘 게 없었다.

시장조차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고 그냥 집단생활을 하는 수준인 곳에서 무슨 세금을 거두겠나?

하지만 훗날을 생각하면 그 권리에 대한 소재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었다.

“당연히 세금을 얼마나 거둘지 정하는 것도, 거두는 것도 제독이 되어야만 합니다. 재정이 독립되지 않으면 결국 모든 것을 잃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리고 관세에 대한 것과 교역 우선권에 대한 것도 반드시 말씀하셔야 합니다. 특히 교역 우선권은 이미 약속한 자들이 있으니 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시면 훗날 아주 곤란해지실 수 있습니다.”

“아···.”

“그리고···.”

이후로도 게론드는 열정적으로 반드시 확보해야 할 권리, 확인해야 할 내용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원래 그쪽 일을 해서인지 대부분 돈과 경제에 관련된 내용이었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중요한 내용들이었다.

기본적으로 나도 상선단의 선단장, 그러니까 장사꾼이잖아.

그렇게 30여 분에 걸친 게론드의 강의가 끝나자 엘리엇이 조용히 손을 들고 입을 열었다.

“게론드 회계사님의 말씀은 적절합니다. 정말 중요한 내용들이죠. 그렇다면 저는 섬의 자위를 위해 필요한 몇 가지를 더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자위라고?”

내 말에 엘리엇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프레티아 왕국이 폰테 섬을 보호하겠다는 것처럼 들리지만, 페이트 후작의 말에는 몇 가지 맹점이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프레티아 왕국의 해군력이 미약하다는 것입니다.”

“그건 그렇지.”

고작 한 개의 함대.

그마저도 다른 강대국들의 정규 함대에 비하면 손색이 있는 수준이다.

그 강대국들의 해상 전력이 형편없이 쪼그라들었음에도 아직 비벼볼 수 있는 수준도 안 된다.

그나마도 일레드 왕국과의 국경을 경계하기에 정신없는 것 같고.

“이런저런 상황을 고려해볼 때, 폰테 섬이 타국으로부터 공격을 당하는 상황에서 프레티아 왕국의 군사적 도움을 바라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무엇보다 자위를 위한 무력 확보가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작전관, 자네도 알다시피 폰테 섬의 규모에는 한계가 있어. 무작정 군사력만 강화할 수 없다는 말이야.”

“그것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섬에서 거점방어를 할 경우 중대형 군함 20척 정도는 상대할 수 있는 전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척이라는 말에 기가 막혔다.

말이 쉬워 20척이지, 군함 20척은 전쟁 상황이 아니라면 모여 있는 것을 볼 일도 없는 규모다.

“해안포대, 지리적 유리함을 고려해도 20척을 상대하려면 최소한 비슷한 수준의 전투함이 15척은 있어야 해. 그런 규모를 만들 수 있냐 없냐를 떠나서 유지비가 감당이 될 것 같아?”

군대는 종류에 상관없이 가장 쓸모없는 집단이다.

생산성은 0이고 유지만 해도 실시간으로 돈을 빨아먹는 집단이라니, 이런 쓸데없는 집단이 또 있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이 군대를 만들고 유지하는 이유는 망할 욕심 때문이다.

그 욕심이 남의 것을 탐하는 내 욕심이건, 내 것을 탐하는 남의 욕심이건 말이다.

“그러니 유지비를 받아내야지요. 궁극적으로는 프레티아 왕국의 지원금이 없어도 군대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섬의 경제를 키워야겠지만, 일단 섬이 발전할 시간 동안 지켜줄 해군을 양성하고 유지할 돈을 받아내야 합니다.”

“후우, 그건 잘 말해볼게. 후작도 유지비를 주겠다고 했으니.”

“그리고 군함을 받아내십시오.”

“응?”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군함을 ‘받아’ 내라고?

군함은 현시대의 가장 강력한 전쟁 무기 중 하나다.

그러니 당연히 비매품이고, 비매품이고 자시고를 떠나서 가격도 상상을 초월한다.

상선보다 더 내구성이 좋은 목재를 사용하고, 더 두껍게 만들어야 하며, 늘어나는 무게로 인해 너무 느려지지 않도록 최신 공학 기술을 적용해야 한다.

그뿐인가?

포격에 대비해서 추가적인 장갑판도 씌워야 하고 대포도 설치해야 한다.

그걸 다 돈으로 환산하면 같은 크기의 상선보다 다섯 배는 훌쩍 넘어갈 거다.

그런 군함을 그냥 달라고 하라고?

프레티아 왕국의 정규 함대도 군함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는데?

“그건 힘들걸세. 아무리 페이트 후작이 폰테 섬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하지만, 정규 함대의 전력을 깎아 먹을 사람은 아니야. 결국 그가 원하는 것은 부국강병인데 자신의 전력을 깎아 먹는 짓을 할 리가 없지 않나.”

제먼 씨가 먼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그리고 내 의견도 제먼 씨와 똑같았다.

하지만 엘리엇은 전혀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물론 정규 함대 소속의 군함을 달라고 하면 단 한 척도 내어주지 않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정규 함대 소속이 아닌 군함도 있나?”

“각 항구의 연안 경비대가 있지 않습니까?”

“아···.”

이번에는 엘리엇이 실수한 모양이다.

아무래도 해전에 대해서 잘 모르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연안 경비대가 가진 함정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가장 큰 배라고 해봐야 700톤급 미만의 함정이다.

해군의 군함 분류에 따르면 1, 2, 3급 전투함이 아니라 호위함이나 초계함으로 분류되는 것들.

그리고 이마저도 한 항구에 대여섯 척 수준, 나머지는 100~200톤 수준의 경비정이었다.

정규 함대는 전투함 20~30척과 보조함정으로 구성된다.

그런데 선박이라는 것은 크면 클수록 공격력과 방어력이 크게 증가한다.

그러니 평균 배수량이 800톤에서 왔다 갔다 하는 함대 간의 전투에 연안 경비대가 동원되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양쪽 진영에서 1200톤급 2급 전투함이 십여 척씩 동원된 전투가 벌어진다고 가정해보자.

한쪽에 연안 경비대 소속의 600톤급 호위함 한 척과 300톤급 초계함 세 척, 150톤 정도의 경비정 스무 척이 합류했다고 하면 결과가 바뀔까?

놀랍게도 전투 결과는 그리 바뀌지 않는다.

물론 아주 간발의 차이로 승패가 결정된다면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그게 변수가 될 정도면 포탄을 어디에 맞는가, 파도가 어떻게 치는가, 바람에 어떻게 부는가에 따라 전투 결과가 달라진다는 말과 같았다.

애초에 불리한 판이라면 괜히 끼어들어 봐야 화력도 미미하면서 아군의 기동을 방해할 확률이 높았고, 유리한 판이라면 추격이나 퇴로 봉쇄 정도에나 쓰이겠지.

그런데 그런 일을 맡을 보조함정은 이미 함대에 포함된 경우가 많다.

“자네는 잘 모르겠지만, 연안 경비대 소속의 함선들은 실제 해전에서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아.”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상대가 적국의 정규 함대라면 말이지요.”

“그게 무슨 말이야?”

“연안 경비대가 정규 함대에게 전혀 상대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각국에서 주요 항구에 연안 경비대를 배치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거야 치안을 유지하고 외부의 위협을 조기에 알아··· 어?”

내가 묘한 감탄사를 내뱉자 엘리엇이 쐐기를 박았다.

“이제 폰테 섬의 공개는 필수가 되었습니다. 어느 국가의 소유가 아니니 페리아 족이 인간을 막겠다고 선언하지 않는 이상 폰테 섬 입장을 막을 수는 없으니까요. 별 인간군상들이 모여들겠지요.”

“우리는 그놈들을 컨트롤해야 하고?”

“네, 물론 제독이 가진 함선들을 써도 됩니다만, 애초에 제독이 가진 함선들의 용도는 그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한 척, 한 척이 아쉽기도 하구요.”

“음.”

“당장 최신의 좋은 함선들을 달라고 하면 들어주지 않겠지만, 아주 못 쓸 정도는 아니지만 쓰기에는 애매한 함선들을 내달라고 하면 거절하지 않을 겁니다.”

“그럴 수도 있겠네. 좋아, 한 번 시도해 보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게론드가 약간 뾰족한 말투로 딴지를 걸었다.

“좋은 의견이기는 한데, 뭔가 앞뒤가 맞지 않군요.”

“응?”

“작전관은 처음에 분명 외부의 위협을 타국의 해군으로 상정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고작 치안 유지를 위한 경비정을 내달라고 하라니요? 문제와 답이 묘하게 다릅니다만?”

어? 듣고 보니 그렇네.

치안 유지를 위한 연안 경비대를 만드는 것이 필요한 것은 맞는데, 그게 외부의 위협에서 도움이 되는 것은 확실히 아니지.

급조한 연안 경비대 따위, 전에 쳐들어온 규모와 수준의 전력이면 거의 피해도 주지 못하고 제압당할 거다.

“네, 그 부분은 지금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치안 업무를 배제함으로써 제독의 전투를 위한 함선들은 온전히 외부 침입에 대비하기 위한 용도로 유용할 수 있게 됩니다. 트리토나를 비롯해서 나포한 전투함들의 전력을 외부에 드러나지 않게 하기도 쉽지요. 경계 임무를 맡지 않아도 되니까요.”

트리토나에 대한 소문 정도야 떠돌 수 있다.

하지만 허풍과 과장이 숨 쉬듯이 자연스러운 인간들이 바로 선원들이니, 그 실물을 보지 못한다면 트리토나의 전력을 확신하는 것도 어렵다.

“그리고 군함의 건조를 위한 조선소 건설을 허가받고, 무장을 위한 화기(火器)류의 매수에 대한 제한을 없애달라고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당장 새로운 군함을 건조하는 것은 어렵더라도, 해안포대를 건설하고 나포한 전함들을 빠르게 전력화할 수 있게 될 테니 방어에 꽤 도움이 될 겁니다.”

“오··· 좋은 생각이야!”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새로운 사항을 종이에 열심히 적고 있는데 제먼 씨의 어색한 질문이 들려왔다.

“두 사람 모두 좋은 의견들이네. 하나하나 중요하고 빼놓을 수 없는 의견들이군. 그런데 그걸 다 요구하면 페이트 후작이 그리 좋아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괜찮겠나? 내친김에 하는 말이네만, 내가 듣기에 그걸 다 들어주면 그냥 독립국을 만들게 허가해 달라는 꼴이 아닌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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