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흙수저 선원으로 살아남기-389화 (389/420)

< <389화> 다른 여자를 만났지만 외도는 아님 >

“쩝··· 이 정도로 노골적으로 치사하게 굴 줄은 몰랐는데.”

뚱한 내 혼잣말에 옆에서 좌불안석이던 베일리가 화들짝 놀라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아, 당신 잘못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안다고.

“그, 하, 하지만 백작님을 환영하는 연회이니 조금 더 있으셔야···.”

“알아, 아니까 지금 이러고 있는 거잖아. 그래도 음식은 먹을 만하네.”

대충 300명쯤 모인 왕실 연회.

주빈(主賓)은 나다.

연회 제목이 사절단 환영 연회니까 사절단장인 내가 주인공인 게 맞잖아.

물론 사절단 중에서 초대받은 사람은 나와 베일리 뿐이다.

나머지는 뭐, 음식이나 좀 넣어줬으려나.

“에이 씨, 이럴 거 같으면 우르타의 헛소리나 듣고 있는 편이 더 재밌겠네.”

그 정도로 재미가 없다는 말이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처음 보는 풍경(?)과 맛있는 음식, 좋은 술이 있으니 썩 나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환영회라고 불러놓고 꿔다놓은 보릿자루를 만드는 건 좀 심하지 않냐?

처음에야 두 백작들을 필두로 이전 파티에서 얼굴을 익힌 몇몇 귀족들, 그 외에 같은 파벌로 보이는 사람들이 인사를 해줬다.

특히 두 백작은 꽤나 살갑게 말을 걸어주었지만, 두 사람은 좀··· 바빴다.

어찌 되었건 귀족들 사이에서도 꽤나 이름과 세력이 있는 사람들 같으니 나만 상대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비웠고, 그 이후로는 이 꼴이다.

중앙의 홀에서는 수십 쌍의 남녀가 빙글빙글 돌면서 기괴한 손발짓을 하는 요상한 춤을 추고, 여전히 내 귀에는 별로인 이상한 음악이 계속 연주된다.

파티장 여기저기에 무리를 이루어 하하호호 웃으며 대화를 주고받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내 옆에는 왜 베일리밖에 없냐고!

“그래서 나는 언제 가도 되는 건데?”

상황을 곱씹다 보니 더 짜증이 나서 벌써 몇 번이나 물어본 질문을 다시 던지자, 베일리는 주변을 살펴보더니 작게 속삭였다.

“이제 곧 음악이 바뀔 겁니다. 연회의 종반을 알리는 것이지요. 그렇게 한 곡이 끝날 때쯤에 피곤하다는 핑계로 떠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베일리의 대답에 살짝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얼마 남지 않았다니 다행이네.

적당히 음식이나 집어 먹으며 술을 마시다 보면 어떻게든 지나갈 거다.

평소에는 배 타는 게 지겹다, 지겹다 했지만, 결국 나도 뱃놈인 모양이다.

짠 내 나는 바닷바람과 더럽게 파랗기만 한 바다가 그리울 줄이야.

* * *

“흐으응, 연회의 주인공께서 왜 이렇게 궁상맞게 이러고 있어요?”

“음? 누구, 아. 아가씨.”

마침 베일리가 볼일을 보겠다고 자리를 비운 사이에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기껏 초대해놓고 개회 인사만 하고 사라져버린 국왕이랑 한 번 떠난 이후로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 두 백작을 마음속에서 백오십 번쯤 죽이고 있던 상황이라 누가 다가오는 것도 몰랐다.

애초에 누가 다가올 거라는 기대를 버린 지가 오래 돼서 그럴 수도 있고.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보는 여자는 낯이 익었다.

브라키오스 백작의 딸이라고 했던가.

당연히 이런 연회에 초대될만한 신분이기는 하겠네.

나이는 대략 20세 정도, 화장을 지우면 그보다 조금 더 어릴 수도 있겠다.

“호호, 아가씨라니. 재밌어요. 벌써 부인 소리 들은 지가 꽤 돼서 말이죠.”

“아, 무례를 용서하시오. 미처 몰랐소.”

“괜찮아요, 어차피 원해서 한 결혼도 아닌데.”

내용은 꽤나 심각했지만, 말투만 놓고 보면 밥 한 끼 굶었다는 정도의 느낌이다.

정략결혼이 디폴트인 세상에서 결혼 생활에 만족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마는.

“부군께서는···?”

“그 사람이요? 어디선가 잘살고 있겠죠? 마지막으로 편지를 받은 게 언제더라?”

그런 거 말고 남편이 누군지 물어본 건데.

두 사람의 부부관계 따위 전혀 관심이 없다구요.

“그런 재미없는 이야기 말고, 약속을 지키셔야죠!”

“네? 무슨 약속 말이오?”

이전에 나눴던 말조차 몇 마디 안 되는데, 무슨 약속을 말하는 거야?

“어머? 벌써 모르는 척하시는 건가요? 다음에 만나면 저와 춤을 추기로 하셨잖아요?”

뭐?

내가 그랬어?

비슷한 말을 듣기는 했는데, 내가 약속은 안 했던 것 같은데?

“어서, 어서! 이 음악은 쉽다구요! 한참 동안 다른 사람들이 춤추는 것을 봤으니까 금방 따라 할 수 있죠?”

가냘프기만 한 손이 끄는데 저항할 수가 없다.

그런데 한 번도 춘 적이 없는 저 기괴한 춤을 추라는 거야?

나를 주시하는 눈이 지금 한 50쌍은 되는 것 같은데?

‘어어’ 하는 사이에 나는 그녀의 손에 이끌려 춤추는 사람들 사이에 놓였다.

부지런히 주변을 살펴보니 나를 보느라 스텝이 꼬이거나 파트너에게 눈총을 사는 사람이 꽤 된다.

‘에라이, 이렇게 관심이 많았으면 먼저 와서 말을 좀 걸지 그랬냐, 이것들아!’

“자, 자! 집중해요. 오른손은 허리, 아니! 거기보다 조금 위요!”

어느새 내 어깨에 두 손을 올린 그녀가 부지런히 내게 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이게 맞는 건가?

이 정도 신체접촉은 아직 엘리안과도 안 해 본 것 같은데?

마주 보는 두 사람의 거리가 조금 벌어져 있지만, 사실 거의 끌어안은 자세였다.

가만히 있으면 가슴어림에 그녀의 숨길이 느껴질 정도다.

그리고 손에 느껴지는 여리고 부드러운 허리의 감촉은 음···.

“왼발부터 하는 거예요. 하나, 둘, 셋, 넷. 오, 잘하네요?”

“어, 아가, 아니, 부인. 죄송하지만.”

“설마 한 곡도 제대로 안 추고 퇴장하시려구요? 그럼 전 앞으로 사교계에 얼굴도 못 내밀걸요? 창피해서 아마 죽을지도 몰라.”

굉장히 소소한 것에 목숨을 거는 위험한 아가씨, 아니, 부인이었다.

* * *

“그거 알아요?”

“네?”

“아쉘린이에요.”

“아.”

아마 그녀의 이름이겠지.

그러고 보니 아직 통성명도 안 했구나.

“리안입니다.”

“쳇, 알고 있었다구요. 리안 리블르앙 백작님.”

살짝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어쩌다 보니 벌써 두 곡째 춤을 추고 있는데 함께 춤추는 여자가 누구인지도 몰랐던 것이다.

“세상에, 춤을 두 곡이나 추는 상대의 이름도 물어보지 않다니. 지금 저 조금 비참한 기분이 드는 거 알아요?”

“그, 그게,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그래서 아직 상대해 주는 거라구요. 다른 남자가 그랬다면 어림도 없지!”

참··· 특이한 아가씨, 아니, 부인이다.

그런데 이거 남의 부인이랑 막 이래도 되는 거야?

심지어 남편은 함께 온 것 같지도 않은데.

아, 그러고 보니 나도 문제구나?

“이만 들어가시지요.”

“그래요, 어차피 이번 곡이 마지막이니까. 아직 다음 곡까지 백작님과 출 정도는 아닌 것 같아서 말이죠.”

잠시 후에 알게 되었는데 확실히 다음 곡은 아쉘린과 출 만한 춤은 아니었다.

저게 애무야, 춤이야?

방금 전까지야 사절단 대표로서 해야 했던 일이라고 변명이 가능한 수준이었지만, 지금 홀에 남은 몇 쌍이 추고 있는 춤을 췄다면 엘리안에게 싸대기를 맞고, 국왕이 결혼식 취소하고 날 죽이겠다고 덤벼도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흐응, 춤을 처음 추는 것 맞아요? 생각보다 잘 추시던데.”

동작이 창피해서 그렇지, 그렇게 어려운 춤은 아니었으니까.

내 주변에서 춤추던 사람들이 간간이 비웃음을 날리는 것을 보면 세세한 동작이 조금씩 틀린 것 같지만, 어쩌라고?

정말 나는 그런 기괴한 춤은 처음 춰 본단 말이다.

“그보다 브라키오스 백작과 함께 오신 것이 아니오? 이만 백작을 찾아가야 하지 않을까 하오만.”

“음, 아버지가 가자고 하실 시간이기는 하죠.”

네, 어서 좀 가세요.

지금 살짝 떨어져서 히죽거리는 저 베일리 놈의 얼굴을 빨리 울상으로 만들어주고 싶으니까.

하 씨, 저놈 설마 엘리안에게 다 일러바치는 거 아냐?

나는 물론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지만, 교활한 악언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법이니까 입단속부터 좀 해야겠다.

“아쉘린? 오, 리블르앙 백작. 미안하오. 오늘따라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지 원. 조반니 경이 급한 회의 때문에 인사도 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전해달라 하였소.”

“아닙니다, 브라키오스 백작. 따님께서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진짜 그녀를 상대하는 순간은 아주 정신이 없을 정도였지.

“그것참 다행이군. 혹시 저 아이가 실수를 한 것은 없소? 결혼을 했는데도 여전히 저렇게 천방지축이니 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오.”

“전혀요. 괘념치 마십시오.”

“그보다 백작도 이제 피곤할 텐데 그만 돌아가시는 것이 어떻소? 나도 나가는 길이니 방까지 함께 가 드리리다.”

드디어 끝이냐!

브라키오스 백작이 저렇게 말하는 것을 보니 이제 떠날 수 있는 시간인 것 같다.

실제로 언제 빠져나갔는지 연회장에 남은 사람은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

“네, 그렇지 않아도 이만 돌아가려던 참이었습니다. 베일리 경?”

“네, 백작님. 이쪽으로 가시지요.”

베일리가 앞장서고 나와 브라키오스 백작 부녀가 그 뒤를 따르자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단단한 인상의 남자 셋이 우리 뒤에 붙었다.

복장을 보면 연회에 참가한 자들, 그러니까 귀족이었다.

몸놀림이나 얼핏 드러나는 근육을 보면 상당한 실력자들이었고.

아마 기사단 출신의 호위병인 모양이다.

연회장을 벗어나자 안내를 위한 시종이 우리를 안내하기 시작했고, 연회장의 소음이 완전히 들리지 않게 되었을 때쯤 브라키오스 백작이 입을 열었다.

“답서는 아마 이틀쯤 후에 완성될 것이오. 다행히 결론은 좋은 쪽으로 날 것 같고.”

“힘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볍게 감사의 인사를 건네기는 했지만, 이건 어차피 ‘답정너’였다.

친서는 교섭이나 요청이 아니라 통보에 가까웠으니까.

기분 나쁘다고 ‘거절’하거나 조건을 제시할 상황이 아니라는 거다.

다른 나라들이 다 그렇게 하겠다고 할 텐데 혼자 아니라고 우기면 그게 되겠는가.

“답서를 받는 날 바로 출발해도 되겠습니까? 저희 국왕 폐하께 최대한 빨리 답서도 드리고 싶고, 아시다시피 결혼식이 얼마 남지 않아서 말입니다.”

“관례대로라면 닷새 정도 더 머물다 가는 것이 좋지만, 상황이 이러하니 그렇게 하셔도 될 것 같소. 가는 길에는 델라 항구까지 호위할 병력을 준비하도록 하지. 그의 입김이 들어가지 않는 근위대와 수도방위군에서 뽑아 보낼 테니 걱정하지 마시오.”

나는 감사의 인사를 건네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출발하겠다는 이유는 방금 말한 표면적인 이유가 아니라 스코타 후작의 눈이 돌아가서 또 엉뚱한 짓을 꾸미기 전에 빨리 튀겠다는 뜻이었다.

브라키오스 백작은 혹시 모를 사태에 대한 준비를 이미 해 두었다고 대답한 것이고.

“아 참, 본국에서의 봉신 관계 해지도 깔끔하게 마무리되었소. 그의 얼굴이 아주 볼만하더군. 하하하.”

“감사합니다, 백작.”

“그리고 국방대신은 당분간 이번 사태에 대한 대응을 구상해야 해서 바쁘게 되었소. 그래서 봉신 관계 해지에 관한 것을 서류로만 전달하는 것에 대해 양해를 해달라고 하더군. 괜찮으시오?”

“물론입니다.”

국방대신은 당연히 스코타 후작.

바쁘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바쁘게 만들었다는 의미일 확률이 높았다.

아무리 후작이라도 왕궁에 붙들려 있는 동안은 경거망동을 하기 어렵겠지.

동원할 수 있는 인력이나 자금 등도 여의찮을 거고.

어차피 서로의 이익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브라키오스 백작 정도면 꽤 괜찮은 사람 같다.

그 계산 빠른 전 후작이 엘리안을 보내서라도 굳이 이 사람과 척을 지지 않으려 한 이유를 알겠군.

* * *

“제독! 무사하셨군요!”

“어, 어. 별일 없었지?”

“물론입니다!”

나름대로 꽤나 걱정을 했는지 나를 반기는 아인델프의 표정이 상당히 밝았다.

하지만 내 뒤를 따르는 일행들을 본 아인델프의 표정이 바로 굳어졌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세상에, 갑판장! 다쳤나?”

“일단 들어가서 이야기하지.”

“아, 네. 거기 너희들 이리 와! 부상자들 골라서 의무실로 보내고 다른 사람들도 편히 쉴 수 있게 좀 해줘.”

오랜만에 제독이 돌아왔다고 모여들었던 선원들이 한목소리로 구시렁거렸다.

빈둥빈둥하고 있었는데 괜히 호기심에 모였다가 일거리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아인델프, 그리고 지금 당장 오스팔트 상회에 사람 보내. 가능하면 오늘, 늦어도 내일 아침까지는 출발 준비 마치라고.”

“넵.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미 큰 짐들은 대부분 선적 완료해 놓았습니다.”

“잘했네.”

우리의 대화가 끝나기를 조용히 기다리던 중년의 남자가 내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리안 경, 사절단 일행이 모두 승선하는 것을 확인했으니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부디 무사히 귀국하시기를 바랍니다.”

“고맙소, 죠안 경. 아, 이건 내 감사의 표시요. 돌아가는 길에 가볍게 목이나 축이시구려.”

나는 병사 80여 명을 데리고 나를 호위해 준 기사에게 주머니 하나를 건네주었다.

적은 돈은 아니지만 이런 곳에서 괜히 쩨쩨하게 굴면 안 주니만 못 한 거다.

“이런 것을 받으려고 한 일이 아닙니다.”

“물론 그러시겠지만, 괜한 고생을 한 병사들에게 술 한 잔 정도는 사셔야 체면이 서지 않으시겠소? 그러니 편하게 받으시오.”

“으음, 알겠습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예의상의 거절은 딱 한 번.

꼴을 보아하니 돌아가는 길에 싸구려 선술집에서 술이나 쬐끔 사주면 다행이겠네.

그래도 덕분에 별문제 없이 오트라스에 도착했으니 그걸로 충분했다.

돈 좀 좋아하면 어떤가, 자기 할 일만 제대로 하면 되는 거지.

죠안 펠리오라고 했던가?

괜찮은 사람인 것 같다.

죠안이 호위 병력을 데리고 떠나간 후, 몇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일단의 사람들이 오트라스에 접근했다.

“백작님.”

“란데르 상단주.”

“이쪽은 저의 부친이십니다.”

“어서 오게.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군. 내가 리안이네.”

내가 가벼운 미소로 환대하자 늙은 상인의 허리가 절로 굽어졌다.

“이제야 인사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백작님 덕분에 가문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군요.”

“쩝, 이 사달을 낸 사람이 본인이라 그런 말을 듣기는 민망하군.”

“흘흘흘,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상인은 자신의 투자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지는 법입니다. 오히려 마지막까지 저희를 배려해 주신 백작님이 특별한 경우지요. 보통 이런 경우에는 적당히 상대방의 화풀이용으로 버려두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아, 할아버지 참, 할 말 없게 만드시네.

어쩔 수 없잖아, 조금 더 양보해야지.

“걱정 말게. 폰테 섬이건 프레티아의 다른 항구건, 그대들이 원하는 곳에서 가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하도록 하겠네. 가문이 뿌리내리고 살아온 곳을 떠나는 것이 달갑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뻔히 보이는 가시밭길을 감수할 필요는 없지 않겠나?”

“감사합니다, 백작님.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저 같은 늙은이가 아니라 란데르에게 하십시오. 저야 상단 일에서 손을 뗀 지 오래니 말입니다, 흘흘흘.”

손은 떼셨다는 양반이 참 시의적절하게 나서시는군요.

은퇴했어도 상인은 상인이라는 건가.

“그대의 직계 가족들은 귀빈실을 사용하게. 물론 폰테 섬으로 갈 때는 양보해야겠지만 다음 기항지인 니파 항구까지는 사용해도 괜찮아.”

“흘흘, 귀빈실이라니 늙은이가 죽기 전에 호사를 누리는군요.”

거짓말도 잘하시네.

저번에 대충 보니까 여기에 있는 저택 수준이 웬만한 귀족 뺨치게 생겼던데.

물론 규모는 많이 아담하지만 말이야.

거기에 대면 오트라스의 귀빈실은 여관방 수준이다.

음, 여관방은 좀 심한 것 같고 대충 비즈니스호텔 스텐다드 룸 정도···?

최종적으로 물자 점검을 마친 나는 지체 없이 출항을 명령했다.

마지막까지 팔리지 않아서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거점용 건물이 눈에 밟혔지만 어쩌겠나.

그보다 더 많은 재산을 포기한 오스팔트 가문도 있는데.

그래도 그 건물을 막 부수거나 소유권을 바꾸기는 힘들 거다.

어찌 되었건 타국 귀족의 재산으로 분류되는 건데 그렇게 막장 행정을 할 수는 없지.

내가 앞으로 한동안, 혹은 영원히 델라 항구에 오지 못할 테니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일 뿐.

아차! 실화인 척하고 불은 지를 수 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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