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3화> 그 남자의 집착 >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발레리아 백작은 식사 내내 말을 쉬지 않으며 호탕한 웃음까지 아끼지 않았다.
심지어 나를 비롯한 나머지 인원들은 그저 그의 말에 마지못해 추임새나 넣는 정도에 불과했지만, 화제가 끊길 일은 없었다.
사회, 정치, 경제, 문화는 물론이고 신화, 설화, 소문, 가십까지 주제가 하도 미친년 널뛰듯이 움직여서 듣기만 해도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으니까.
박학다식이야 그럴 수 있다고 쳐도 이렇게 쉴 새 없이 새로운 이야기를 꺼낼 수 있다는 것도 능력은 능력이다.
“···그래서 내가 궁금함을 참을 수 없더란 말이오. 경도 알다시피 내가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좀 강하지 않소?”
“아, 백작의 왕성한 지식욕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요.”
그것이 순순한 호기심인지는 몰라도 뱃사람들의 소문이나 듣겠다고 평민과 한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는 귀족은 발레리아 백작밖에 없을 거다.
“하하하, 역시 경은 내 마음을 이해해 주는군. 그래서 말인데, 그 금지(禁地)라는 곳, 어떻게 구경을 해볼 수 없겠소?”
반쯤 혼이 나가서 기계적인 대답을 내놓던 나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지금까지 한 말이 이 말을 위한 빌드업이었나?
“아, 아, 오해는 하지 마시오. 내가 거기에서 뭘 해보겠다는 것은 아니고 그저 궁금할 뿐이오. 어차피 외부인들의 출입을 금한 이유가 페리아 족의 보호를 위해서 아니오? 그렇다면 나 하나쯤이야 적당히 둘러봐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은데.”
폰테 섬에는 세 곳의 금지(禁地)가 있다.
첫 번째는 당연히 페리아 족의 마을이 있는 섬의 북동부 일부.
물론 그곳에 간다고 해서 결계로 보호되는 마을을 찾아낼 수는 없지만, 그래도 페리아 족들이 불편해할 게 뻔해서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시켰다.
아주 좋지 않은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는 놈들이 없다고 장담할 수도 없으니까.
두 번째는 페리아 족의 마을로 이어지는 포탈(?)이 만들어지는 곳이다.
첫 번째 지역은 워낙 넓고 현실적으로 접근이 어려운 곳이라서 치안대에서 파견하는 순찰 인원이 가끔 도는 정도라면, 두 번째 지역은 아예 교대로 상주 병력을 파견하고 있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페리아 족들이 우리와의 교역이나 교섭을 위해 가끔씩 활성화되기 때문에 신경을 많이 쓰는 곳이다.
세 번째는 트리토나 함을 숨겨둔 해상 동굴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금지가 페리아 족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약간 의도한 부분도 있었고 말이지.
그래서 해상 동굴도 페리아 족과 연관된 곳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그렇게 착각해 주는 쪽이 아무래도 트리토나의 정체를 숨기는 것에 유리하다 보니 일부러 3대 금지라면서 같이 묶어 놓은 것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트리토나에 대한 소문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당장 실체가 보이지 않으니 그저 소문으로 남을 수밖에.
섬 북쪽 해안의 거대 오징어인지 문어가 있는 곳은 왜 금지가 아닌지 궁금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금지(禁地)’라는 건 갈 수는 있지만 못 가게 막는 곳이지, 갈 수 없는 곳을 말하는 게 아니잖아.
섬 북쪽 바다는 아예 암초 지대를 뜻하는 빨간 부표를 잔뜩 띄워놔서 아무도 접근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타국의 상선은 물론 프레티아 왕국 상선도 폰테 섬 인근의 측량은 금지(禁止)되어 있으니까 애초에 섬 북쪽을 갈 일도 없었다.
그런데 원래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고, 하지 말라고 하면 꼭 해보는 놈들이 있잖아.
그러니까 분명히 부표를 무시하고 들어간 놈들이 있기는 할 거다.
그래도 별로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괴물을 죽이기 전까지 그곳은 진짜 들어가면 못 나오는 곳이니까.
나는 분명히 경고를 했는데도 죽을 자리를 알아서 찾아가겠다는 걸 내가 어쩌겠어?
각설하고, 발레리아 백작의 갑작스러운 폭탄 발언에 장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발레리아 백작 말고는 떠드는 사람이 없었으니 그가 입을 다물자 조용해진 것이지만,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크흠, 발레리아 백작. 금지라는 거창한 말이 아니더라도 인간의 출입을 막은 것은 다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아무리 그렇게 요청을 하셔도···.”
기분이 나쁘다고 막 대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기에 정중히 거절하려고 했지만 발레리아 백작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 입을 열었다.
“딱딱한 이야기는 하지 맙시다. 그렇다고 그곳에 사람이 아주 안 가는 것도 아니지 않소? 최소한 경계 병력은 갈 테니까. 설마 나를 다른 잡인들과 같은 취급을 하시려는 것은 아니잖소?”
그건 그래.
차라리 다른 인간들이 더 낫지, 당신보다는.
“음··· 그게···.”
“허어, 어차피 내가 좀 가본다고 한들 페리아 족과 마주칠 일도 아니지 않소? 난 그냥 내가 보지 못한 것에 대해 궁금함을 참을 수 없을 뿐이오. 정 불안하다면 백작과 함께, 그래, 시찰! 시찰을 갈 때 내가 동행하는 정도면 어떻겠소?”
뭐가 이렇게 집요해?
내가 모르는 금덩이라도 숨겨놓은 거야?
솔직히 페리아 족과 관련된 1, 2 금지야 눈 딱 감고 관광시켜주는 거야 일도 아니다.
위치를 안다고 해서 다른 수작을 부릴 수 있는 곳은 아니니까.
그런데 트리토나를 숨겨둔 해상 동굴은 아니잖아.
트리토나를 다른 데로 옮기면 안 되냐고?
그 거대한 덩치를 도대체 어디에 숨겨두겠어?
“지금 확답을 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아무래도 페리아 족의 양해도 구해야 하고···.”
“굳이 그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소? 그냥 한 번 둘러보는 것뿐인데. 물론 그들의 마을을 방문할 수 있다면 내 충분히 기다릴 수 있소만.”
왜 자꾸 말을 하면 할수록 수렁에 빠지는 기분이지?
“그것은 제가 제안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들이 마을을 공개하는 것을 매우 꺼리기는 합니다만, 그렇다고 가본 사람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니까요.”
“좋군! 역시 백작이라면 말이 통할 줄 알았소! 하하하하하!”
그렇게 일단 생각할 시간을 번 내가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어떻게든 이 식사를 끝내야겠다고 상황을 살피고 있는데, 이 백작 놈이 또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그나저나 전설에서나 나오던 페리아 족이 실존한다면 다른 이종족들도 있을 수 있지 않겠소?”
“다른 이종족이요?”
“그렇소, 예를 들어 인어라던가.”
인어라,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했나?
내가 만났던 존재들이 그나마 소문으로 떠도는 인어와 가장 비슷한 형태이기는 한데 말이지.
그런데 그날 이후로 나도 그들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들이 작정하고 인간의 눈을 피하려면 그냥 물 밖으로 나오지만 않으면 되니, 당연한 일이기는 했다.
“하하하, 인어라니요, 그건 그냥 전설이 아니오?”
최대한 당황스러운 마음을 숨기며 어떻게든 웃음으로 때워보려고 했지만 발레리아 백작은 집요했다.
“얼마 전까지 페리아 족은 더한 전설이었지. 최소한 인어에 대한 소문은 끊인 적이 없지만 말이오. 그렇지 않소?”
그건 그렇지.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면 그냥 그렇다고 적당히 맞장구라도 쳐줄 텐데 찔리는 게 있다 보니 그것도 영 개운하지 않았다.
“하지만 페리아 족은 기록이라도 남아있는 반면 인어는 말 그대로 뱃놈들 사이에서나 돌고 도는 소문에 불과하지 않소? 그렇게 말하면 배를 집어 삼기는 거대한 오징어도, 산만한 고래도, 유령선도 다 있어야··· 하지 않겠소?”
어우 씨, 말하고 보니까 다 있잖아?
“으하하, 말이 그렇게 되나? 하지만 말이오, 인어만큼은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하오. 우리 가문에 내려오는 기록에 확실히 기록되어 있으니까. 그들을 찾아내기만 한다면 나도 그대만큼 유명해질 수 있겠지.”
“인어를··· 음. 만약에 인어라는 이들이 있고 그들을 발견하면 어떻게 하실 거요?”
사진기가 없는 세상이니 사진을 찍어서 공개하겠다는 건 아니겠지.
“일단 잡아야 하지 않겠소? 그리고 모두에게 공개하는 거지. 그대가 페리아 족 대사를 각국의 대표에게 소개한 것처럼 말이오.”
“말이 통하지 않을 수도 있소.”
“그렇다면 페리아 족과 달리 우리와 비슷한 이종족이라고 볼 수 없으니, 짐승으로 봐야 하지 않겠소?”
그래, 어쩐지 그럴 것 같았어.
“그런데 어째서 그런걸 묻는 거요? 마치 인어를 만나 본 것 같군.”
뜨끔.
침착하자.
그렇지 않아도 이 사람 ‘인어의 눈물’ 사건을 알고 있잖아.
이제 일방적으로 얻어맞을 체급은 아니더라도 ‘론 항구’의 지배자와 척을 지는 것은 피하는 게 좋았다.
“선원들과 부대끼다 보면 별별 이야기를 다 듣지만, 인어와 대화를 해봤다는 놈은 못 봐서 말이오. 노래를 부른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물론 그 노래를 들으면 홀려서 죽는다.
그 정도면 사실 인어라기보다는 세이렌에 가깝겠지.
명확한 존재가 규정되지 않아서 구분하는 것이 별 의미는 없지만 아무래도 인어는 신비한 행운의 존재, 세이렌은 무서운 바다의 재해라는 개념에 가깝다.
“뭐, 그거야 발견한 후에 확인하면 될 일이고. 그래서 언제쯤이면 확답을 줄 수 있겠소? 아 참, 그 전에 섬의 다른 곳을 돌아보는 것 정도는 괜찮겠소?”
“일단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소. 나도 그들을 원한다고 접할 수 있지는 않아서 말이오. 그리고 볼 것 없는 작은 섬이지만 백작이 원한다면 안내할 사람을 붙여드릴 테니 편하게 돌아보시오.”
“하하하, 고맙소! 이거 기대가 되는군!”
누구를 붙여줘야 안심이 되려나.
* * *
“하아, 늦은 시간에 모이게 해서 미안해.”
“아닙니다, 오히려 엄한 자를 허락 없이 데리고 와서 송구스럽습니다, 총독 각하.”
대표로 대답하는 아인델프의 얼굴에 그늘이 내려앉아 있었다.
하지만 별로 그를 탓하고 싶지는 않았다.
일개 상선단의 임시 단장이 부탁을 거절할 수 없는 상대가 아니지 않나.
게다가 내 초청을 받았다고 했으니 아인델프에게는 다른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잘못한 것도 아닌데 뭘. 막말로 발레리아 백작이 오겠다는 것을 자네가 어떻게 막겠어? 그건 나도 힘들어.”
차라리 예전처럼 폰테 섬에서 다른 사람들의 방문을 거절하는 상황이라면 모르겠다.
군대를 이끌고 오는 게 아니라면 누구나 방문할 수 있는 곳이 되었는데 무슨 핑계로 그를 막겠는가.
차라리 백작의 선단을 이끌고 오는 것보다는 이게 나을 수도 있었다.
백작의 수족이 수백 명쯤 되면 나도 골치 아프거든,
“그래도···.”
“그만, 그만. 누구 잘못도 아닌데 자꾸 이야기해서 뭐 해? 그보다 특이 사항부터 보고해봐.”
“네. 그럼···.”
한참 보고를 듣던 나는 손을 들어 아인델프의 말을 막았다.
“해적이 그렇게 많이 늘었어?”
“아무래도 각국의 해군은 아직 전력을 회복하지 못했으니까요. 우리 같은 대형 선단을 공격할 정도로 큰 놈들은 아직 없는 것 같지만 작은 배들은 꽤나 많이 당하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이대로 두면 언젠가는 큰 놈들도 생기겠지.”
내 우려의 말에 작전관 엘리엇이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총독 각하께서 우려하시는 일까지는 발생하지 않을 겁니다.”
“응?”
“예전이야 내해에서 대규모 해적단이 쓸 수 있는 거점이 있었습니다.”
“케르빈 제도.”
“네. 하지만 지금 케르빈 제도는 대규모 해적단이 숨어들기 어렵지요.”
“하긴, 그쪽의 섬 하나를 개발 중이라지?”
“네, 위치가 위치인 만큼 난도가 높은 것 같지만, 어찌 되었건 개발이 진행은 되는 모양입니다.”
케르빈 제도의 섬들은 항구로서 가치가 없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래도 수백 개의 섬 중에 진짜 항구를 만들 수 있는 섬이 하나도 없겠나.
만약 모든 섬이 인간이 거주하기 어려운 곳이었다면 해적들의 거점으로 활용되지도 못했을 거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가 확인한 것처럼 소규모의 마을 정도는 만들 수 있는 섬들이 꽤 있었다.
다만 그곳에 항구를 만들어도 별 쓸모가 없으니까 버려졌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 노던테라의 존재가 거의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분위기가 된 만큼, 케르빈 제도의 북동쪽에 항구가 생긴다면 꽤 쓸모가 있어지게 되었다.
심지어 굳이 노던테라가 아니더라도 벨로키나 왕국 입장에서는 일레드 왕국 본토와 폰테 섬에 더 가까운 거점을 만듦으로써 주변의 영향력 강화와 유사시 군사력 투입에 이점을 가져갈 수 있게 되었으니 개발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그걸 주도적으로 하는 놈이 지금 총독 관저의 귀빈실을 차지하고 있는 벨로키나 왕국의 해군대신, 발레리아 백작이다.
생각해보니까 이 자식 나랑 매우 껄끄러운 사이잖아?
“흐음, 그러면 우리와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가 되나?”
“해적은 그렇지요.”
“해적은 그렇다고?”
“해적은 각 상선단 무장 강화의 좋은 핑곗거리가 됩니다.”
엘리엇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었다.
상선단의 무장이 강화되면 무장 상선단이 되고, 무장 상선단은 가끔 본업보다 부업에 더 빠지기도 한다.
그렇게 용병함대가 되기도 하고, 가끔은 연줄을 이용해 국가의 공인을 받고···.
“사략함대가 생길 수도 있겠군.”
종전에 합의했음에도 벨로키나 왕국과 일레드 왕국은 여전히 서로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상황이다.
서로 확전을 원하는 것은 아니라서 내해에서야 적당히 눈치를 보지만, 서해 항로 쪽은 아주 난리가 아니라고 한다.
졸리로저보다 상대방 국가의 국기가 더 무서울 지경이라니 말 다 했지 뭐.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흠, 그건 이곳에 와 있는 애물단지부터 치우고 이야기하자고. 지금 편재를 골자로 해서 2함대(내 사설 함대)를 2개 전대로 나누는 것으로 하지. 21전대는 섬의 방어를, 22전대는 항로 순시를 맡는 것으로 하자고.”
“상선단은 해체하실 겁니까?”
“그건 안 돼. 상선단은 유지해야지. 폰테 섬의 수입이 괜찮아졌다고 해도 앞으로 돈 들어갈 일이 얼마나 많은데.”
단호한 내 말에 한쪽에 쭈굴이처럼 앉아 있던 녀석이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왜 학교 같은 걸 세워서···.”
“우르타.”
“네! 제독! 아니, 총독!”
“다 들려.”
“에헤헤헤···.”
그런데 우르타의 말이 아주 틀린 것도 아니었다.
체계적인 교육과 충성심 고취를 위해 내가 야심차게 추진한 교육 시스템은 말 그대로 돈 먹는 하마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교육이 왜 필요한지 이해도 못 하고, 애들은 원래 잡일을 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애들을 학교로 보내게 하려면 상당히 큰 당근이 필요했다.
심지어 내가 만든 초급학교(1년), 전문학교(3년)을 다 수료해 봐야 기대할 수 있는 직업이 선원, 치안대원, 징수원, 총독부 사용인 수준이니 혹할 리가 있나.
다들 그 정도 일은 굳이 학교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다.
실제도 다른 곳에서는 다 그렇고.
하지만 나는 그저 그런, 아쉬운 대로 대충 뽑아 쓰는 사람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직업에 대한 최소한의 전문성을 갖추고 내게 고마워하며 충성하는, 진짜 내 사람을 갖고 싶은 거지.
지금이야 딱 기본적인 지식과 기술을 배우는 수준이지만, 언젠가는 전문적인 행정관, 의사, 군인, 항해사 등을 배출하는 고급 교육기관을 설립하고 말 거다.
그러면 내 아이는 조금 더 편하고 좋은 삶을 살 수 있지 않겠어?
똑똑똑.
“총독 각하, 네이선 갑판장님입니다.”
“어? 쉬라고 했는데? 일단 들어오라고 해.”
회의에 불참할 정도로 네이선이 특별 대우를 받는 이유는 딱 하나였다.
둘째를 임신했거든.
나는 엘리안이 임신했다는 이유로 항해까지 내팽개쳤는데, 임신한 아내를 두고 항해를 마치고 온 녀석을 재촉하기는 좀 그렇잖아.
갑판장이라는 자리가 막 내게 중요한 보고를 올려야 하는 것도 아니라서 그냥 오늘은 쉬라고 했다.
우리끼리 밀린 회포를 푸는 것은 내일 해도 되니 말이다.
발레리아 백작 때문에 쉽게 시간이 날지 모르겠지만.
“늦어서 죄송합니다, 총독 각하.”
“아니야, 그런데 오늘은 쉬라니까 왜 왔어?”
내 질문에 말없이 내 근처로 다가온 네이선이 작게 속삭였다.
“아무래도 잠깐 나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조용히.”
“응? 여기에 있는 사람들도 몰라야 해?”
“그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너무 많이 가면 이목이 쏠릴 수 있으니까요.”
가끔 나사 빠진 모습을 보여서 그렇지, 네이선은 쓸데없는 말은 잘 안 하는 편이다.
특히 이렇게 정색하고 말할 정도면 진짜 중요한 말이라는 뜻이고.
“그럼 엘리엇, 함대 재배치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어 봐. 내가 있는 것처럼. 무슨 말인지 알지?”
내가 발레리아 백작이 있는 귀빈실 방향을 눈짓하며 말하자 엘리엇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십시오.”
“그래, 그럼 아인델프만 같이 가도록 하지.”
“네, 총독 각하.”
“······.”
우리 셋(네이선, 나, 아인델프) 외에 발소리가 하나 더 들려서 뒤를 돌아보니 자연스럽게 따라붙은 우르타가 보였다.
“우르타, 지금 뭐 하는 거야?”
“아아니, 나는, 아니, 저는 여기에 있어 봐야 소용없으니까···.”
란데르가 두 손 두 발 다 들 정도로 릴리안이 우르타를 쫓아다니는 것은 섬사람들이 다 알고 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아직도 결혼은커녕 제대로 된 연인이라고 보기에도 애매할 정도다.
원래 ‘남자+여자=부부’가 될 수 있어도 ‘꼬맹이+꼬맹이’는 그냥 친구거든.
그래서 말인데, 우르타 저 자식··· 결혼은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