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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흙수저 선원으로 살아남기-394화 (394/420)

< <394화> 통역이 필요해! >

얄밉기는 했지만, 우르타의 말대로 회의 자리에서 우르타가 있어야 할 필요도 없었기에 그냥 데리고 가기로 했다.

이런 일에 빼놓으면 삐져서 한동안 귀찮단 말이지.

그런데 무슨 일인데 이렇게 심각해?

굳은 얼굴로 일행을 안내하던 네이선에게 가볍게 질문을 던졌다.

“무슨 일인데 그래? 표정이 상당히 심각해 보인다?”

“그게, 작은 리안 녀석이 제가 타고 온 배를 보고 싶다고 고집을 피워서 말입니다.”

“그거야 뭐, 보여주지 못할 것도 없잖아? 밤이라서 아이에게 위험하기야 하겠지만 네가 안고 움직이면 될 일이고.”

“그래서 오트라스가 정박된 곳으로 갔는데··· 후, 가서 보면 총독도 알 겁니다.”

오트라스에 무슨 문제가 있나?

분명히 입항할 때까지만 해도 외관상 문제가 있어 보이지 않았는데?

다른 상선들이 입항해 있는 상태라면 몇 가지 예측할 수 있는 사고가 있기는 하지만 지금 섬 내에 있는 외부인이라고 해봐야 발레리아 백작 일행밖에 없으니 무슨 일인지 감도 오지 않았다.

선착장에 들어서자 오트라스가 계류된 선착장 근처에 몇 개의 횃불이 어른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횃불에 비치는 인영이 꽤 있었다.

숫자를 보아하니 정박한 선박에 있는 당직자들이 거의 다 나온 모양인데?

“앗, 총독 각하!”

“오셨습니까, 제독!”

우리 역시 작은 등불을 들고 있었기에 우리를 발견한 이들이 먼저 이쪽으로 뛰어왔다.

불빛에 언뜻언뜻 비치는 얼굴의 표정들이 다들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무슨 일인데 다들 그렇게 모여있어?”

“저기, 저쪽을 보십시오!”

“저쪽도 마찬가지입니다!”

앞다투어 선원들이 가리키는 곳은 배들이 정박한 곳이었다.

그런데 어두워서 그런가, 아무리 봐도 별다른 게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뭘 보라는 건지 잠시 어리둥절한 사이에 구름 사이에 숨어 있던 달이 드러나며 파도치는 바닷물이 반짝거렸다.

그리고 바다 위에 동그란 부표··· 응?

잠깐, 나 이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 * *

깜짝 놀라서 미리 챙겨온 랜턴을 켜서 둘러보자 역시 내 예상대로였다.

바다 위에, 그것도 해안 가까이에 잔뜩 솟아있는 머리통들.

예전에 보았던 것처럼 수백 개까지는 아니었지만 대충 헤아려 봐도 50은 충분히 넘어 보였다.

그런데 이 녀석들이 왜 여기에 있는 거야?

심지어 인어 집착남 발레리아 백작이 와 있는 이 타이밍에 말이지.

우리가 먼저 적대하지 않으면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나는 랜턴을 내리고 천천히 선착장에 올라섰다.

그런데 내가 발을 내딛자마자 뒤에서 누군가 거칠게 내 옷을 잡아당겼다.

“잠깐, 총독 각하. 위험할 수 있습니다.”

“무슨 소리야, 저들이 위험하지 않다는 건 자네도 잘 알고 있잖아.”

우리의 대화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선원들을 일별한 아인델프가 조용히 속삭였다.

“그때야 좋게 끝났습니다만, 저들이 이곳에 일부러 찾아온 이유가 호의인지 적의인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심지어 저 선착장 위에서 떨어지면 바로 놈들의 한 가운데지요.”

“우리를 적대하려고 했다면 진즉 일을 벌이지 않았겠어? 보아하니 상선단을 따라온 것 같은데, 그 전에 공격하거나 배를 다 침몰시킬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분위기가···.”

“음.”

아인델프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

얼핏 보면 첫 대면 때와 똑같은 것 같은데 뭔가, 조금 적대적인 느낌이랄까.

그리고 그의 말대로 굳이 폰테 섬을 찾아올 이유가 없지 않나.

꺼림칙한 마음에 선착장에 올렸던 발을 다시 내려놓자, 인어들에게서도 변화가 생겼다.

몇 개체가 비슷한 속도로 해안을 향해 다가온 것이다.

슬쩍 랜턴을 들어 다가오는 놈들을 비추자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캬아아악!”

“캬아악!”

음, 역시 사람이나 마찬가지로 랜턴 불빛을 정면으로 맞는 것은 싫은 모양이다.

그리고 의사소통은 아예 불가능하겠군.

위협적인 울음소리를 내는 동안 대충 놈들의 구강구조를 봤는데, 상어 수준의 날카로운 이빨이 촘촘하게 난 것은 물론 혀도 뱀처럼 얄팍해 보였다.

저런 구조로는 아마 인간의 말을 하기는 어려서 울 거다.

해안가로 어느 정도 다가오던 그들은 한 지점에서 멈춰 섰다.

예상하기로 수심 2m 정도 되는 곳, 내가 서 있는 곳에서 15m쯤 떨어진 곳이었다.

그 상태로 잠시 대치하고 있는데 그들이 멈춰 선 공간의 가운데에서 뭔가 볼록 솟아오르더니 곧 다른 머리 하나가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어?”

“아!”

“이, 인어닷!”

“인어?!”

선원들 사이에 소동이 일었고, 이미 이들, 인어(人魚)의 존재를 알고 있던 나와 아인델프, 네이선, 우르타도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새로 나타난 개체의 생김새는 충격적이었다.

“모두 조용히 햇!”

소란이 커지자 급기야 네이선이 물리력까지 동원해서 다급하게 선원들을 조용히 시키는 것이 보인다.

모습을 드러낸 개체의 머리카락에 매달린 바닷물이 달빛을 받아 반짝거린다.

해초 같은 짙은 초록색의 긴 생머리, 그리고 어렴풋이 드러나는 이목구비는 상당한 미인이다.

음, 놀랍게도 진짜 미인이다.

머리카락도 없고 외피가 비늘 같은 것에 둘러싸인 다른 개체들과 완전히 다른 외형이었다.

저들 가운데에 있으니까 망정이지, 따로 봤다면 바다에 빠진 인간 아가씨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쪽의 소란이 가라앉을 때까지 모습을 드러내고 기다리던 여성형 인어가 조금씩 이쪽으로 다가왔다.

14m, 13m, 12m···10m···.

대략 10m 근처까지 다가온 그녀(?)는 인상을 찡그리더니 시선을 아래로 돌렸다.

그리고는 다시 시선을 들어 정확하게 나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못 가, 이리 와, 작은 배, 여기.”

조금 어눌하고 문장 구조도 이상했지만, 인간의 말이었다.

어? 그럼 인간인가?

어쨌건 그녀가 원하는 것은 명확했다.

내가 다가오기를 바라는 것이다.

“보트 가져와.”

“총독 각하!”

“딱 봐도 저쪽에서 내세운 대표잖아. 내가 가야지. 심지어 우리가 경계하니까 다른 개체들은 저만큼 떨어져 있어. 이만하면 저쪽도 할 만큼 한 거 아닐까?”

“하지만···!”

아인델프는 기를 쓰고 반대했지만, 네이선은 잠시 고민하더니 선원 두 사람을 지목하며 말했다.

“옆 선착장에 보트 하나 있지? 가지고 와.”

“네이선 갑판장!”

“대신 제가 같이 갑니다. 보아하니 저들은 뭍에 올라오지 못하는 모양인데, 만일의 사태가 벌어져도 제가 시간을 끌면 리안은 탈출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비장한 말을 할 상황까지는 아닌 것 같은데 말이야.

내가 말했다시피 저놈들이 우리를 적대할 생각이었다면 진즉에 배에 구멍을 내었으면 될 일이다.

콕 찍어서 나에게 원한이 있는 것은 아닐 것 아냐?

* * *

결국 나와 아인델프, 네이선에 천둥벌거숭이 같은 우르타까지 탄 보트가 위태롭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배가 그녀의 근처에 멈추자, 그녀는 미끄러지듯 보트로 다가왔다.

그리고 나를 보며 베시시 웃는다.

“너, 맛있다, 고마워.”

응? 내가 맛있다고?

“아무래도 우리가 준 음식들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아, 아. 그럴 수 있겠네.”

아인델프의 추측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잠시 말을 골랐다.

괜히 어려운 말을 해봐야 이해도 못 할 것 같고.

“나도 고마워. 그때 준 선물.”

내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녀는 다시 밝게 웃었다.

웃으며 드러나는 치아를 보니 인간보다 날카롭기는 해도 배열은 비슷해 보였다.

성대와 혀는 뭐, 비슷하니까 인간의 말을 하는 거겠지.

그나저나 진짜 같은 개체 맞아? 이렇게 외형이 다를 수 있나?

그렇게 웃던 그녀는 곧 표정을 굳히더니 보트에서 약간 멀어졌다.

그리고는 화가 났다는 것을 표현하듯 거세게 물보라를 튕겨냈다.

“나빠! 가시! 죽어! 왜!”

이건 뭐라고 하는 거야?

이번만큼은 아인델프도 이해가 안 되는지 굳은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었다.

“뭐라고 하는 거야?”

하는 수 없이 내가 묻자, 그녀는 흥분한 듯 제자리에서 몇 번이나 물을 튕기며 물속을 오르락내리락했다.

“선물! 가시! 나빠! 친구! 죽어!”

“······.”

“친구가 된 선물로 우리를 죽이겠다는 걸까?”

우르타의 맹한 소리에 발끈한 네이선이 우르타를 쥐어박는 소리가 들렸다.

아, 진짜 통역기 마렵네.

나름대로 인간의 말을 배워서 하는 모양인데, 상황을 유추하지 못하면 이런 단어의 조합으로는 절대 내용을 알아낼 수 없다.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오지 않는 이상에야··· 음?

“내일, 내일 여기로 와! 무슨 말인지 알겠어?!”

“내일?”

“그래 내일! 내일 밤에! 낮에는 꼭꼭 숨어 있고!”

“숨어? 숨어! 바다, 집, 몰라, 친구.”

이해한 거 맞아?

불안한 마음에 몇 번이나 ‘내일’과 ‘숨어’를 반복하자 그녀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수중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그녀가 다시 나타나지 않기에 주변을 둘러보자, 수면 위로 드러났던 수많은 인어들의 머리가 다 사라진 후였다.

“잘 된 겁니까?”

“모르지. 중요한 건 저들이 뭔가 화가 나 있고, 다짜고짜 공격하기 전에 내게 마지막 기회를 줬다는 거야. 이거 제대로 못 풀면 앞으로 진짜 피곤해질 수 있겠어.”

잠수함이라도 개발되지 않는 이상 바닷속은 인간에게 미지의 영역이다.

그러니 수중에 사는 인어들을 적대하게 되면 항해는 포기하는 게 맞다.

그래도 섬에 있으면 공격당할 일은 없겠네.

“그나저나 저 친구들 입 막는 것도 일이겠군요.”

“아, 그러네. 갑판장.”

“네, 총독 각하.”

“인어에 대해서 아는 사람들은 저기 모인 사람들 뿐이야?”

“네, 그 외에는 작은 리안이 있습니다만.”

“그 녀석이야 뭐라고 하건 누가 믿지도 않을 테니 상관없고.”

네 살 먹은 아이가 하는 말을 누가 믿겠어.

그것도 갑판장 아비를 둔 아이가 인어 이야기를 하면, 어휴, 나도 안 믿겠다.

“미안한 일이지만 저 친구들, 발레리아 백작이 돌아갈 때까지 격리시켜.”

“알겠습니다.”

“상황 잘 설명하고 격리되는 동안 불편한 일 없도록 잘 돌봐줘. 술이랑 음식은 충분히 넣어주고.”

“네.”

발레리아 백작과의 일을 정확히 모르면서도 네이선은 한 치의 의심 없이 대답했다.

“그런데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응? 아, 우리에게 최고의 통역사가 있잖아.”

“네?”

아인델프가 의문을 표했지만 나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어차피 내일이 되면 다 알게 될 테니까.

그런데 발레리아 백작이 섬에 온 것과 함께 인어가 나타나다니, 이거 진짜 우연의 일치일까?

심지어 저 인어들이 오트라스를 쫓아왔다면 내가 목적이 아니라 발레리아 백작을 쫓아왔다는 말이 될 수도 있는 거잖아.

* * *

“이쪽은 오펜이라고 합니다. 내 밑에서 항해사를 맡는 아이요.”

“오펜이라고 합니다, 발레리아 백작님.”

“오, 그렇소? 항해사를 소개해주는 거라면 혹시 바다에 있다는 세 번째 금지를 안내해 주려는 거요?”

하, 이 골칫덩어리가 하필이면 제일 보여줄 수 없는 곳을 보여 달라네.

“하하, 그건 아니고 일단 이 친구에게 섬을 안내받으시면 될 것 같소. 그리고 금지에 대한 건은 페리아 족에게 먼저 이야기를 해본다고 하지 않았소?”

필사의 노력으로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하자 발레리아 백작이 손사래를 쳤다.

“하하핫, 이거 내가 너무 성급했군. 너무 흥분돼서 어제는 한숨도 못 잤지 뭐요? 그러니 경이 좀 이해해 주시오. 그럼 거기 오펜이라 했나? 먼저 그 선착장을 둘러보고 싶은데.”

“네, 발레리아 백작님. 저를 따르시지요.”

“하하, 고맙소, 리블르앙 백작. 그럼 나는 섬을 둘러볼 테니 잘 좀 부탁하겠소!”

억지웃음으로 발레리아 백작을 내보낸 나는 날카로운 눈으로 멀어지는 발레리아 백작 일행을 살펴보았다.

달라진 점은 없었다.

인원수도 똑같고.

굳이 선착장을 먼저 가보겠다는 이유가 뭘까?

선착장이야 볼 것도 없고, 어제 입항하면서 충분히 보지 않았던가.

혹시 모를 어제 사건의 증거 같은 것은 이미 지우라고 했지만···.

발레리아 백작이 묵고 있는 귀빈실에서 선착장이 바로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진짜 그가 잠을 자지 않았다면 선착장 쪽에 무슨 일이 있었다고 유추할 수는 있을 거다.

원래 조용한 한밤중에는 작은 소란도 멀리 퍼지는 법이거든.

“후우, 번트. 오펜이 요청하는 것은 최대한 들어주도록 해. 나는 잠시 자리를 비울 거야.”

“어디로 가시는지 여쭈어도 될까요?”

“페리아 족 마을에. 그쪽에서 언제쯤 오기로 되어있지?”

“특별한 일이 없다면 사나흘 후에나 올 겁니다. 보통 그 정도 주기로 방문하니까요.”

“그래? 오늘 왔으면 좋았을 텐데.”

“우리가 먼저 연락할 방법이 없으니까요.”

난처한 듯 눈꼬리를 내리는 번트의 어깨를 몇 번 두들겨 주었다.

할 수 없는 일을 가지고 뭐라고 할 만큼 인정머리 없는 놈은 아니거든, 내가.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아쉬운 내가 움직여야지.”

“하지만 아무리 총독 각하라고 해도 그들이 쉽게 마을에 들이지 않을 텐데요.”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할 일이고. 아 참, 이따가 네이선이나 아인델프가 몇 가지 음식을 요청할 거야. 달라는 대로 내주도록 해. 발레리아 백작 일행은 물론이고 아는 사람이 최대한 적게 해서.”

“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걱정하는 엘리안을 안심시키고 밖으로 나오자 근위대와 농담 따먹기를 하고 있는 우르타가 보였다.

“넌 여기서 뭐 해?”

“안녕하십니까, 총독 각하! 오늘은 제가 수행하겠습니다!”

다부지게 말하는 것과 달리 두 눈에는 호기심과 장난기가 가득 차 있다.

하, 릴리안은 도대체 어디서 뭐 하는 거야, 이놈 안 잡아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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