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흙수저 선원으로 살아남기-401화 (401/420)

< <401화> 아, 기억났다! >

내 질문을 듣고 자신이 처한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한 카이덴의 입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카이덴에게 최악의 상황은, 내가 여기에서 카이덴을 쓱싹하고 리든세이를 꿀꺽하는 것이다.

상선이 해적선도 되고 해적이 교역도 하는 세상인데, 반푼이 함대가 아무도 모르게 약탈 좀 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

이 새끼, 왜 백기를 걸어놨나 했더니?!

와, 어이가 없네.

그러니까 나를 대충 그렇고 그런 놈으로 봤다는 말이지?

진짜 짜증 나는 사실은 나도 카이덴의 마음이 얼추 이해가 된다는 것이다.

[선원≒해적≒해군]이라는 기괴한 공식이 얼추 맞는 세상에서 [최고의 해적 사냥꾼≒최고의 해적]도 얼추 들어맞는 공식 아니겠어?

“솔직하게 하나만 대답해 보게. 무슨 대답을 하더라도 벌하지 않을 테니. 백기를 건 이유가 뭔가? 대충 예상은 하고 있으니까 적당한 핑계를 댈 생각이라면 그냥 입을 열지 말고.”

침묵을 지키던 카이덴이 내 말에 살짝 당황하며 시선을 피하더니, 결국 뜨거운 내 눈길을 이기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명하시니 무례를 무릅쓰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처음에는 총독 각하의 함대도 위장한 해적인 줄 알았습니다. 장시간의 추격전 때문에 정상적인 판단이 어려운 상황이었음을 감안해서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해적인 줄 알았는데 왜 우리에게 항복했나?”

“그게··· 어차피 물이 없어서 여기를 빠져나가도 살길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기도 했고, 이왕 항복한다면 반나절을 추격하느라 우리에게 악감정을 가지게 되었을 놈들보다는 각하의 함대가 더 낫다고 생각해서··· 아앗, 물론 지금은 전혀 아닙니다! 절대로요!”

아저씨, 그렇게 발작적으로 부정하면 오히려 사실 같다고···.

하, 내가 30 평생 거칠고 힘들어도 옳은 길만 걸어왔다고 생각했건만, 내 평판이라는 게···.

크흠, 아니, 뭐, 조금은, 다들 조금씩은 실수하잖아?

“그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자네가 보는 것처럼 우리는 해적이 아니니 그렇게 불안해할 필요 없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땀, 모터라도 달고 있는 것처럼 떨리는 손이 애처로울 지경이다.

내 정체를 밝혔어도 여전히 불안하다는 뜻이다.

이렇게 일방적으로 상대방의 자비에 모든 것이 걸리게 되면 불안할 수밖에 없는 것이 뱃사람의 숙명이기는 하지만, 고작 중형 상선 한 척 얻자고 애꿎은 사람을 수십 명(선원들도 다 처리해야 하니까)을 죽일 정도로 내가 망가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다시 묻네만, 앞으로 어쩔 셈인가? 만약 폰테 섬으로 가겠다면 물과 식량 정도는 나누어 줄 수 있네.”

600톤 정도의 상선이면 승조원 수가 많아 봐야 50~60명 정도일 거다.

내가 의도한 바도 아니고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나를 롤모델로 삼아 내 섬에 오려고 했던 사람이라고 하니 그 정도 호의는 베풀 수 있었다.

하지만 폰테 섬에 간다고 한들, 카이덴에게 희망이 있을 리가 없었다.

푼돈 정도야 남아있겠지만, 말을 들어 보니 대부분의 자금을 화물을 사는 데 사용한 모양이니까.

배를 수리하고 선원들의 급료를 지불할 돈이나 있을지 모르겠다.

치열하게 머리를 굴리는 듯 차마 입을 열지 못하는 카이덴을 보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괜히 재촉해봐야 좋은 답이 나올 리가 없어 보인다.

“쯧, 함장.”

“네, 제독.”

절도 있게 고개를 숙이는 아인델프에게 명령을 내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카이덴 선장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리든세이 호의 선원들에게도 간단한 식사를 제공하게. 점심을 먹기에는 조금 이르지만, 우리도 식사를 하면 되겠군. 내 식사는 따로 가져다주고.”

“알겠습니다.”

“죄송, 아니, 감사합니다, 총독 각하!”

내 명령이 떨어지자 그제서야 자신의 실책을 깨달은 카이덴이 허겁지겁 내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인지 감사인지 모를 인사를 건넸다.

아인델프도 그동안 경험이 좀 쌓였으니 이 정도 돌발 상황 정도는 알아서 잘 처리할 거다.

어떤 식으로 처리해도 딱히 내게 문제가 되는 일도 아니고.

* * *

카이덴 선장은 식사를 대접받고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한다면서 우리에게 잠시 기다려 달라고 한 뒤, 자기 배인 리든세이 호로 건너갔다.

생각보다 일정이 꽤 지체되는 것에 조금 짜증 났지만, 너무 간절한 표정으로 부탁을 해서 어쩔 수 없었다.

그나저나 벌써 몇 시간째 함대가 멈춰 서 있는 거야?

다시 우리 배로 돌아오려는지 리든세이 호에서 몇 사람이 단정에 내리는 것을 보고 있는데, 문득 리든세이를 어디에서 봤는지 기억이 났다.

“아! 이거 그러고 보니 그때···!”

리버티 호를 타고 갈 때였던가? 확실히 오트라스 호를 얻기 전이었던 것 같다.

‘인어의 눈물’ 때문에 한바탕 소란이 생긴 다음이었지.

해적에게 쫓기는 것으로 위장한 해적선 ‘이스트렐리아 호’를 구출할 때, 상선 주제에 용감하게 전투에 참전했던 배였다.

그때도 고작 600톤급 선박에 포가 16문이라서 해적이 아닌가 하고 의심했었지.

해적은 오히려 구출한 ‘이스트렐리아 호’였지만.

옛 추억에 잠겨 있는 사이에 오트라스에 도착한 단정에서 몇 사람이 줄줄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예상보다 사람이 많자, 내 뒤에 서 있던 네이선이 은근슬쩍 앞으로 한 발 나서며 내 몸을 반쯤 가렸다.

걱정해줘서 고맙기는 한데, 저 인원으로 뭘 해볼 수 있는 것도 아닌데다가 내게 뭔가 수작을 부리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지 않냐?

다시 함장실로 안내된 카이덴 선장은 뒤에 선 사람들을 소개했다.

두 명의 항해사와 갑판장이라고 했다.

사실상 배를 운용할 수 있는 핵심 간부들은 모두 온 것이다.

단순하게 감사를 표시하기 위해서라고 보기에는 좀 과한데?

“총독 각하,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리든세이 호를 사주실 수 있으십니까?”

“뭐?”

너무 맥락 없는 말이라서 순간적으로 난 내가 뭔가를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반문하자, 카이덴은 눈을 질끈 감더니 고개를 푹 숙이며 소리쳤다.

“리든세이 호의 선주가 되어주십시오!”

뭐야,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닌 것 같은데,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지?

“그러니까 나보고 리든세이 호를 사 달라고? 지금 상황에서?”

“네, 총독 각하.”

“배에서는 제독이라고 불러.”

“네? 넷! 제독 각하!”

제독 각하라는 말은 좀 이상했지만, 그 정도로 넘어가기로 했다.

지금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잖아.

“얼마나 받을 생각인데? 아니, 그보다 지금 내가 리든세이를 사겠다고 하면 내가 부르는 가격대로 팔아야 하지 않나?”

사방을 둘러봐도 배를 사줄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 가격은 내가 주고 싶은 대로 줘도 되는 거잖아.

내 질문을 들은 카이덴은 살짝 고개를 들고 간절한 표정으로 간청했다.

“현실적으로 리든세이 호는 자력으로 현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없습니다. 제독 각하께서 호의를 베푸셔서 물과 식량을 제공하셔도, 빈 배로 폰테 섬에 도착해봐야···.”

“흐음···.”

어려운 것은 아니라서 바로 이해가 되었다.

어차피 이 상태라면 카이덴이 리든세이 호를 유지하기는 힘들다.

잃어버린 미르다스 호가 화물을 가득··· 은 아니더라도 절반을 채워서 기적처럼 폰테 섬에 나타나지 않는 이상 말이다.

하지만 선원들이 카이덴의 사정까지 봐줄 리는 없을 테고, 죽기 싫으면 폰테 섬에서 리든세이 호를 매각해서라도 선원들의 급료를 지불해야겠지.

그리고 알다시피 폰테 섬에서 배를 살 수 있을 정도의 재력을 갖춘 사람은 한정되어 있다.

나를 제외하면 오스팔트 가문의 란데르 정도?

란데르를 모르고 있다면 구매 가능 고객은 나 하나로 한정된다.

그뿐인가?

만약 선원들에게 지급할 현금 정도는 있다고 한들,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이제 미르다스 호의 대여료가 아니라 미르다스 호의 원래 가격을 은행에게 지불해야 할 판이니 말이다.

당연히 그 가격은 급매로 처리한 리든세이 호보다 비싸겠지.

당당한 중형 상선의 선주에서 빚쟁이로 전락하는 거다.

자, 이런 상황에서 지금 당장 내게 리든세이 호를 매각하면 딱 한 가지 이점이 있다.

당장 인원이 없는 내 입장에서 리든세이 호의 선장 자리에 카이덴을 유임시킬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추가적으로 그가 기대할만한 것이 있기는 한데, 그건 이제 다음 이야기를 들어 보면 될 것 같고.

“자네 사정은 알겠네. 지금 내게 배를 매각하려는 이유도 알 것 같고. 그럼 나는 배를 사주기만 하면 되나? 다른 조건이 있을 것 같은데. 어디까지 자네를 데려달라거나 그런 요청 말이야.”

살짝 떠보자 급하게 머리를 치켜든 카이덴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정확하게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배만 꿀꺽하고 자신을 내치겠다는 뜻으로 들렸을 것이다.

“그, 그게, 조건은 아니고 부탁드릴 것이···.”

“편하게 이야기하게.”

내가 느긋한 표정으로 대답하자 카이덴은 잠시 주저하다가 말을 꺼냈다.

“제독 각하께서도 지금 당장 리든세이 호의 가격 전부를 지불하시기는 힘드실 겁니다. 배의 운용자금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러니 그 대금을 조금 늦게 지불하시는 대신, 한 번, 딱 한 번만 제가 본토에서 교역품을 사서 폰테 섬에 팔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피식.

대충 예상했던 대답이라 헛웃음이 나왔다.

그러니까 리든세이의 매각 대금으로 다시 교역품을 사서 폰테 섬에 판 다음에 배를 넘기겠다는 거다.

그러면 대충 빚쟁이 신세는 벗어날 수 있다고 계산한 것이겠지.

그사이에 내 눈에 들어 선장 자리를 계속 유지하겠다는 욕심도 섞여 있을지도 모르고.

나쁘지는 않았다.

적당한 욕심은 꼭 필요한 법이니까.

욕심이 없는 사람은 더 나아지지도 않는 법이다.

“일단 내가 생각하는 리든세이 호의 가격은 500만 로스. 현재 상황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그 정도면 충분할 것 같은데.”

정상적으로 구매했다면 아무리 중고라고 해도 600~700만 로스는 줘야 했을 선박이다.

그런데 이런 유리한 상황에서 정가에 사는 호구 짓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그래도 고작 100만 로스밖에 안 깎았으니 정말 양심적인 가격을 제시한 거다.

“제, 제독 각하, 리든세이 호 정도면 원래 700··· 후우, 아닙니다. 그 가격에 팔겠습니다. 그럼 제 부탁은···?”

확실히 무능한 사람은 아니다.

가격을 많이 후려쳤다고 해도 가격 흥정을 할 입장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는 바로 포기했으니 말이다.

애초에 중형 상선 한 척을 가지고 바다를 누비면서 최소 5년 이상을 사지 멀쩡하게 살았다는 것 자체가 유능하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먼저 자네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네. 나는 지금 당장 500만 로스를 지급할 수 있어.”

당연한 말이었다.

다른 배와 다르게 오트라스에는 교역을 위한 운용자금과 더불어 항구에 기항하면 대규모 인출 사태가 날 것을 대비한 선원들에게 지급할 예치금까지 금고에 보관 중이니까.

그리고 선단의 배가 네 척이다.

교역을 위한 미리 확보해 놓은 현금도 상당한 양이었다.

“그리고 거래를 마치면 내 소유가 되는 리든세이 호를 가지고 자네가 교역을 하겠다고? 세상에 그런 조건을 들어 줄 사람이 어디에 있겠나? 뭐, 상황의 특수성을 고려해서 우리가 가려는 목적지까지 무상으로 데려다줄 수는 있네.”

내 말에 카이덴의 얼굴이 잿빛으로 물들었다.

그가 밝힌 대로라면 실종된 미르다스는 배수량 750톤의 누벤테급 선박.

아무리 구형이고 낡았다고 해도 500만 로스로는 미르다스의 배상금도 내기 힘들 확률이 높았다.

“···그렇다면 염치없지만 기항하는 항구에서 은행에 한마디만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포기가 빠른 친구네?

“은행에서? 무슨 말을 해달라는 건가?”

“제독 각하께서는 은행, 아니, 마법사 길드와 깊은 인연이 있으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 미르다스의 실종에 대해서 배상금 건을···.”

나는 카이덴의 말이 끝나기 전에 단호한 표정으로 그의 말을 잘랐다.

“나보고 길드의 정당한 채무 독촉을 막아달라는 건가? 상당히 무례한 말이군. 자네가 워낙 다급한 상황이라는 것을 감안해서 이번만큼은 못 들은 것으로 하겠네.”

“아니요! 아닙니다! 제가 어찌 그런 무리한 부탁을 드리겠습니까?! 단지 조금만, 제가 배상해야 할 금액을 다시 벌 수 있을 때까지만 기간을 늘려달라고 해주실 수 없는지···.”

나는 탐색하듯이 카이덴이라는 남자의 행동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500만 로스의 현금이면 얼추 한 사람이 적당히 살아가기에 부족한 금액은 아니다.

물론 성공적으로 은행의 눈을 피해 잠적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 ‘은행’을 상대로 도주가 가능할까?

그건 나도 별로 자신이 없는데 말이야.

목적이 도주가 아니라면 다시 재기를 노려보겠다는 뜻이겠지.

일단 선박의 크기는 조금 작아지겠지만 그래도 다시 배를 마련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동안 해온 가락이 있으니 한 5년, 대충 그 정도면 미르다스의 배상금을 마련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당연히 그동안 타던 배의 가격까지 포함해서.

“좋아, 합격.”

“네?”

“500만 로스는 기항하는 대로 은행과 이야기해서 자네의 채무에서 변제하도록 하겠네. 나머지는 내가 갚아주지. 아, 갚아준다기보다는 빌려준다고 해야 맞겠군. 자네가 앞으로 내 밑에서 일하며 갚아야 할 테니.”

“그, 그렇다면?!”

“좋아하기엔 일러. 능력이 부족해 보이면 항해사로 강등시킬 테니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제독 각하!”

“그리고 그 제독 각하라는 말 좀, 그냥 제독이라고 하던가, 총독 각하라고 하게.”

“알겠습니다, 제독 각하!”

하···.

연신 내게 고개를 숙이는 카이덴의 뒤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듣던 세 사람(항해사들과 갑판장) 역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이 보였다.

그들로서는 달라질 것이 하나도 없으니 안도할 만도 했다.

선주가 카이덴에서 나로 바뀌는 것뿐인데, 카이덴이 선장에 유임되었으니 자신들도 일자리를 잃지는 않겠다는 확신이 든 것이다.

특별히 문제가 있는 경우만 아니라면 그냥 거두어도 되겠지 뭐.

“그런데 제독 각하, 앗, 제독. 그 매각 대금 중에 일부만 빼주실 수 없으십니까?”

“뭐?”

뭐야, 내가 사람을 잘 못 봤나? 태세 전환 속도 보소?

“다름이 아니라 그동안 고생한 선원들에게 조금이라도 보상을 해주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제 어리석은 판단으로 목숨까지 위험했으니··· 부탁드립니다. 평생 목숨을 바쳐 제독께 충성하겠습니다!”

“흐음.”

다행이네, 난 또 내가 사람 잘못 본 줄 알았잖아.

그래도 이런 문제는 확실히 해야겠지.

“함장, 회계사 불러오게.”

“네, 제독.”

회계사 게론드가 오기까지 약간 시간이 남았기에 나는 궁금하던 점을 물어보았다.

“리든세이는 선측포가 16문이나 되더군. 그런데 상선이 대포를 그 정도로 운용하려면 너무 부담스럽지 않던가? 당장 적재할 수 있는 화물이 크게 줄어들 텐데?”

“하하, 그게 사실은 위장입니다.”

“그럴 리가. 나는 리든세이가 한 번에 8개의 포탄을 쏟아내는 것을 본 적이 있네.”

“네? 그, 그걸 제독께서 어떻게···?”

카이덴의 화들짝 놀랐다.

자신들은 도주만 했을 뿐 단 한 번도 포를 쏜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미 화물을 파기할 때 대포를 다 파기해서 배에 대포가 있지도 않았다.

“그거야 중요한 일이 아니지. 내가 보았다는 것이 중요할 뿐.”

내 말에 약간 난처한 표정을 하고 있던 카이덴이 대답했다.

“어디에서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위장인 것은 맞습니다. 리든세이에는 원래 대포가 8문 밖에 없습니다.”

“응?”

“대포뿐만 아니라 포탄도, 화약도 정말 최소로만 적재합니다. 두 번이나 세 번 정도 쏠 정도지요.”

“아니, 말이 안 되는데? 대포를 한쪽 현에 몰아 놓는다면 수평을 맞추기가 쉽지 않을 텐데?”

“물론 항해 중에는 양 현에 4문씩 배치합니다. 그리고 남는 공간에 화물을 싣습니다.”

“굉장히 비효율적인 방법 같네만.”

“그게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전투 상황이 되면 가장 먼저 포갑판에 있는 물건을 빼서 바리케이트를 쌓습니다. 그리고 대포를 옮겨서 포를 쏴야 할 현측에 몰아 놓는 겁니다. 상선이 양현 포격을 해야 할 정도면 그냥 곱게 항복하는 편이 나으니까요.”

“어···.”

듣고 보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치열한 대규모 해전이 아닌 이상 양 현에서 포를 쏴야 하는 경우는 드무니까.

그래도 그렇지, 뭔가 비효율의 극치잖아.

“물론 물건을 넣고 뺄 때 조금 더 고생스럽고, 늘 포갑판에 들어갈 화물의 종류와 무게를 신경 써야 합니다만, 확실히 대포를 16문이나 가지고 다니는 것보다는 수입이 짭짤합니다. 무엇보다도 잔챙이 해적들은 포혈에서 8문의 대포가 튀어나오는 것을 보면 대부분 영업을 포기하니까요. 조금 더 버티는 놈들이라고 해도 일제사격 한 방이면···.”

그럴 수도 있겠다.

배수량 600톤에 포가 16문이면 상선으로 위장한 용병함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처음에는 포혈 자체가 위장인가 싶어서 덤볐다가도 그 포혈에서 죄다 대포가 튀어나오고, 심지어 발포까지 하면 그 정도 리스크를 감수하는 해적은 정말 드물겠지.

애초에 중형 상선을 노리는 해적들 수준이라고 해봐야 뻔한 수준이니까.

그렇게 카이덴과 몇 가지 잡담을 주고받고 있으니 아인델프가 게론드와 함께 돌아왔다.

생각해 보니 함장을 이렇게 심부름꾼처럼 부리면 안 되는 건데.

다음부터는 조금 자제해야겠다.

“게론드, 오면서 아인델프 함장에게 대충 들었지? 자네가 직접 리든세이 호의 선원들에게 ‘카이덴 선장’의 마지막 감사 표시를 전하도록 하게. 그렇게 해도 괜찮겠지, 카이덴 선장?”

내 의도를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카이덴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독. 한 몫으로 1만 로스 정도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리든세이 호의 선원은 총 36명입니다. 그리고 여기 있는 항해사와 갑판장들은···.”

“저희는 괜찮습니다, 선장님.”

“네, 저희까지 챙기시지 않아도 됩니다.”

“그, 그럼요···.”

마지막 녀석은 좀 아쉬워하는 것 같지만, 하여튼 훈훈하다, 훈훈해.

“자네들도 어차피 배로 돌아가야지. 함께 가서 회계사와 함께 선원들을 격려하도록 하게. 다음 항구에서 내리겠다면 말리지도 않겠지만, 원한다면 내 밑에서 일해도 좋다고 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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