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흙수저 선원으로 살아남기-403화 (403/420)

< <403화> 사략 함대(2) >

끓어오르는 분노를 겨우 꾹꾹 눌러 담고 있는데, 굳건한 엘리엇의 목소리가 나를 현실로 불러왔다.

“제독, 마음을 가라앉히십시오. 아직 모두 다 추측일 뿐입니다.”

“후우, 후우. 그래, 자네 말이 맞아, 작전관. 화를 낸다고 해결될 상황이 아니지.”

“다행히 아직까지 피해가 심각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걸 어떻게 알아?”

“얼마 전에 폰테 섬에 도착한 상선단이 있지 않습니까? 아직까지 규모 있는 상단을 건드릴 정도로 세력이 크지는 않다는 뜻입니다.”

그랬다.

나름 나와 인연이 깊은 게브너 상단의 상선단이 내가 출항하기 며칠 전에 폰테 섬에 도착했었다.

내가 약속한 우선 교역권 덕분에 요즘 꽤 잘나가고 있다지.

게브너 상단이 폰테 섬에 상선단을 보내는 주기는 대략 연 3회 정도, 그쪽 대리인인 안톤이 물량 좀 늘려달라고 징징거릴 정도니 꽤 수입이 짭짤한 모양이다.

“게브너 상단의 배들이 운이 좋았을 수도 있어.”

레이더가 있는 게 아닌 이상 특정 해역 전체를 감시하거나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니 게브너 상단의 배들이 운이 좋았을 수도 있었다.

마침 사략선들인지 해적선들인지 모를 놈들이 보급을 위해 잠시 항구에 들렀을 수도 있고.

“게브너 상단이 단지 운이 좋았다면 그놈들은 단순한 해적들이나 욕심에 눈이 먼 놈들일 확률이 높습니다. 만약 우리 추측대로 폰테 섬을 향하는 상선에 대한 제한적 사략 행위라면 폰테 섬을 향하는 상선단을 감시하지 않았을 리 없으니까요.”

“그건 그렇군. 폰테 섬을 오가는 상선단이라고 해봐야 몇 개 되지도 않으니. 폰테 섬에 올 때 선적하는 상품과 출항지도 거의 비슷하고.”

“그렇습니다. 그러니 게브너 상단을 건드리지 않았다는 것은 사략선인지 해적인지 모를 놈들의 세력이 미미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흐음, 일리가 있어. 어쩌면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수도 있고.”

내가 까끌까끌한 턱을 매만지며 동의하자 엘리엇이 바로 말을 이었다.

“단순하게 해적인지, 다른 분들의 생각처럼 일레드 왕국에서 폰테 섬으로 향하는 상선에 대한 사략 면장을 발부하기 시작한 것인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아직 규모가 크지는 않다면 수습할 방법이 있을 겁니다. 어쩌면 오늘 알게 된 것이 그나마 다행일 수도 있지요.”

모두들 고개를 끄덕여 엘리엇의 말에 공감했다.

카이덴처럼 대박의 꿈을 가지고 폰테 섬으로 첫 항해에 나서는 배가 아무리 많아도, 중간에 다 침몰하거나 나포당하면 우리로서는 알 방법이 없다.

그런 케이스가 많아지면 언젠가 소문이 돌기야 하겠지만, 그때쯤에는 세력이 커진 놈들이 지금 운항 중인 상단 소속의 상선이나 제법 규모 있는 상선단까지 잡아먹은 후일 확률이 높지.

그러니 일찍 알아낸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는 뜻이다.

“좋아, 일단 상황 분석은 그 정도로 하고.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어?”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놈들을 찾아서 박살 내고 싶습니다만, 현재 함대는 전투 준비가 미흡합니다. 일단 재정비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으음, 무엇보다 부족한 정보도 최대한 모아 보는 편이 불필요한 희생을 줄일 수 있는 길이겠지요.”

아인델프와 엘리엇의 의견을 들으니 뜨겁게 타오르던 분노가 조금 식는 느낌이다.

그들의 말대로였다.

지금 함대의 적재물이나 선원 구성은 어디까지나 무역에 최적화된 상태였다.

최소한의 자위를 위한 무장은 하고 있지만, 딱 그 정도, 아무래도 작정하고 전투를 위한 준비와는 거리가 있었다.

정말 일레드 왕국에서 사략 면장을 비밀리에 발부 중이라면 전투 한두 번으로 끝날 일이 아니었으니 꼼꼼한 준비가 필요했다.

적에 대한 더 상세한 정보도 필수고.

“그렇다면 어차피 본국에서 호출도 있으니 일단 그쪽부터 일을 처리하자고. 놈들에 대해서나 일레드 왕국의 동향에 대해서도 알아보도록 하고. 가능하면 본국의 지원도 좀 받아내면 좋겠지.”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 기항지는 본국의 니파 항구로 변경하시겠습니까?”

“아니. 아직 확실한 일도 아닌데 괜히 선원들이 동요하게 할 필요는 없겠지. 자네들도 쓸데없는 소문이 돌지 않도록 오늘 이야기는 떠들지 않도록 하고.”

“네, 제독.”

“알겠습니다, 제독.”

* * *

“작전관?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잠시 시간 괜찮으십니까?”

“응, 들어와.”

내가 내어주는 술을 정중하게 거절한 엘리엇이 가지고 온 종이를 펼쳐 보였다.

폰테 섬을 중심으로 일레드 왕국 북서부 해안까지 그려진 해도였다.

회의를 끝낼 때 표정이 애매하더니 지금까지 뭔가 고민한 모양이다.

“여기 보시면 이쯤이 리든세이 호를 만난 곳입니다.”

“음, 그렇지.”

“카이덴 선장의 말대로라면 리든세이 호의 원래 항로는 대충 이런 식이었을 겁니다.”

“그거야 다 아는 이야기고.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내 말에 엘리엇이 말없이 해도에 몇 개의 선을 추가했다.

“보시다시피 폰테 섬의 ‘연안’이라고 불리는 곳은 벨로키나 왕국과 일레드 왕국, 그리고 총독 각하의 암묵적인 합의에 의해 결정된 곳입니다만 리든세이가 습격당한 곳은 위치가 애매합니다.”

나는 엘리엇의 말을 들으며 해도를 노려보았다.

그의 말대로 리든세이가 습격당한 곳은 지금까지 암묵적으로 3국이 인정하는 폰테 섬의 연안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물론 타국의 영해라고 할 만한 곳도 아니고, 폰테 섬 연안이 명시적으로 ‘섬에서 몇km까지’라고 정해진 것은 아니라서 억지로 우길 수도 있기는 하겠지만···.

“이 일을 꾸민 게 일레드 왕국이라면 분명히 우리의 군사행동을 가지고 트집을 잡겠군.”

“항로의 치안 유지를 위해 해적을 토벌하겠다고 하면 명분이야 서겠습니다만, 습격자들이 해적이 아니라 은밀하게 사략 허가를 받은 일반 상선, 용병 함대라면 꽤나 골치가 아플 겁니다.”

“놈들이 미친 게 아니라면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공공연하게 해적질을 하지는 않을 테니 오늘처럼 현장을 덮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거고.”

“네. 사실 이번 일은 운이 좋은 경우 아니겠습니까? 발레리아 백작이 없었다면 함대가 굳이 이렇게 빨리 출항할 필요가 없었을 테니까요.”

발레리아 백작이 이 모든 일을 꾸몄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백작이 우리 함대의 일정에 적당히 영향을 줄 수 있어도, 카이덴 선단이 어디에서 공격을 당하고, 만 하루나 도주할지는 예상하지 못했을 테니까.

그렇다고 엘리엇의 말대로 이 모든 것을 우연의 일치로 치부하기에는···.

나는 꼬리를 무는 상념을 잠시 접어두고 엘리엇에게 물었다.

“문제를 제기하러 이 시간에 일부러 온 것은 아닐 테고, 어떻게 하는 게 좋을 것 같나?”

“듣기에 불편하시겠지만···.”

말꼬리를 흐리는 엘리엇을 향해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함께한 지 수년이 지났지만 엘리엇은 여전히 내게 깍듯하고 조심스럽다.

타고난 성격도 있겠지만, 그가 맡은 일 때문에라도 늘 행동거지를 조심하는 것이다.

작전관이 주로 하는 일은 내가 지시하는 일에 대한 세부 계획을 세우고 내 결정에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하는 것인데, 아무래도 내게 반대하거나 지시에 제동을 거는 발언을 많이 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편하게 말하게. 자네가 싫은 소리 좀 한다고 내가 앙심을 품을 사람은 아니란 걸 알잖나.”

“네, 그럼 편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의견이라는 것을 감안해주십시오.”

“그러지.”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번 일은 우리가 단독으로 해결하면 안 되는 문제입니다.”

“···자세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군.”

“아시다시피 제독의 기반인 폰테 섬은 아슬아슬한 정치, 군사적 균형 속에 유지되고 있습니다. 다들 페리아 족을 핑계로 대고 있지만, 사실 제독이 갖춘 군사력이 딱히 위협적이지는 않지만 적으로 돌리기에는 조금 껄끄러운, 그런 애매한 크기라는 부분이 가장 큰 균형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계속하게.”

“그리고 제독이 과한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지요. 하지만 지금까지와 달리 제독이 적극적인 군사행동에 들어가면 이 두 가지 추가 동시에 흔들릴 수 있습니다.”

“내 군사 활동에 위협을 느끼게 된다는 건가?”

솔직히 그 정도는 아니지 않나?

내가 동원할 수 있는 전력이라고 해봐야 정규 함대로 따지면 일개 전대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물론 트리토나를 포함하면 꽤 달라지겠지만, 그 녀석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면서 해적인지 사략 함대인지 모를 놈들을 두들겨 패고 다닐 수는 없으니까.

“위협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제독이 가진 힘을 상기하게 되면서 느슨해진 경계심을 끌어올리겠지요. 국가 단위로 보면 규모가 작을지 몰라도, 개인이 가지기에는 충분히 강력한 함대가 아닙니까?”

“그건··· 그렇지.”

“각국이 제독과 폰테 섬에 의심 어린 시선을 보내게 됨으로 인해 여러 가지 좋지 않은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만, 제일 큰 문제는 이로 인해 본국과의 관계에 금이 갈 수 있다는 겁니다.”

“응?”

“물론 국왕 폐하께서 제독을 얼마나 신뢰하는지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독, 우리는 왕궁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너무 과한 억측이 아니겠나? 본국에서 굳이 나를 견제할 만한 사람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어.”

정쟁, 권력투쟁은 결국 상대에게 뭔가를 빼앗아 오기 위함이다.

그런데 나는 국정에 특별히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내 권력이라고 할 수 있는 반푼이 함대나 폰테 섬은 내가 아니면 애초에 가질 수도 없는 것들이다.

기껏 빼앗아봐야 자기가 가질 수 없는 힘밖에 없으니. 내게 딱히 정적(政敵)이라고 할만한 이들이 없다는 말이었다.

물론 내 성공을 단순하게 시기하는 놈들이야 많지만, 그런 잔챙이들은 신경 쓸 가치도 없는 놈들이고.

“지금까지는 그랬습니다만, 만약 제독이 독단적으로 함대를 이끌고 다른 선박을 검문하거나 공격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

“거기에 왕실에 있는 이들 중 몇몇이 그럴듯한 소문을 흘리거나 국왕 폐하를 충동질한다면 말입니다.”

물론 그런 행동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2함대 창설 권한을 주면서 국왕의 동원령이 떨어지기 전에는 함대의 명령권이 내게 있다는 것을 확약받았으니까.

그러니까 내 명령을 받은 함대가 지나가는 상선을 검문하고, 해적을 토벌한다고 해서 뭐라고 할 수는 없는 거다.

하지만 색안경을 끼고 본다면 이런 행동들은 국왕을 무시하는 행동, 또는 프레티아 왕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는 행동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

특히 최근 들어 폰테 섬에 대해 요구하는 것(세금 인상이나 아이렌 목재의 추가 공급 등)이 많아졌기에 그 반발로 볼 가능성도 있지.

“끄응. 아주 불가능한 전개는 아니군. 내가 독립을 꿈꾼다거나, 다른 꿍꿍이가 있다고 오해할 수도 있겠어. 그게 아니더라도 내가 폐하를 무시한다거나 오만방자하다는 소문이 돌 수도 있고. 자네 말대로 내가 왕궁에 상주하면서 주기적으로 충성을 증명하고 소문을 무마할 수는 없으니까.”

내가 수긍하자 엘리엇이 드디어 방안을 내놓았다.

“그러니까 이번만큼은 조금 귀찮더라도 제독과 함대는 수동적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수동적이라?”

“네. 어디까지나 ‘명령을 받아서 수행하는’ 형태를 갖춰야 한다는 뜻입니다.”

“자네 말은 이번에 왕궁에 갈 때 이번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국왕 폐하의 공식적인 명령을 받으라는 말인가?”

내 말에 엘리엇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런 증거도 없는데 국왕 폐하라고 한들 무슨 명령을 내리실 수 있겠습니까? 단지 폰테 섬으로 향하는 항로에서 일레드 왕국의 깃발을 단 배들이 해적질을 했다고 해서 일레드 왕국을 상대로 뭔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해적 놈들이 위장하고 있는 국기만 보고 국제적으로 이의를 제기했다면, 지금쯤 세계의 모든 나라는 전쟁상태여야 할 거다.

게다가 공격당한 선박이 본국 소속의 상선도 아니지.

“그렇다고 우리 함대가 폰테 섬으로 향하는 선단 모두를 호위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요.”

“아직도 돈 들어갈 곳이 끝도 없어. 그랬다가는 조만간 내가 파산할걸세.”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섬 개발을 멈춘다면 몰라도 지금 상황에서는 함대를 놀릴 시간이 없다.

폰테 섬의 생산력이 조금씩 상승하고 있지만, 여전히 수입의 대부분은 함대의 무역에 의지하고 있으니까.

“제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그놈들을 공식적으로, 정정당당하게 잡아낼 방법은 없습니다.”

“으음···.”

그건 그렇지.

처음에는 분노 때문에 놈들이 돌아다닐 만한 곳을 순시하다가 잡아서 두들겨 패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상당히 문제가 많았다.

그놈들은 리든세이를 만신창이로 만들어가며 쫓아오면서도 끝까지 상선인 것처럼 위장하고 있었다.

그러니 내가 함대를 이끌고 근처 해역을 돌아다니다가 놈들을 만난다고 해도, 놈들이 먼저 적대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이상 때려잡을 명분이 없다는 말이다.

다짜고짜 의심스러운 선박을 다 때려잡으면 그게 해적질이지 다른 게 해적질이야?

물론 검문 정도야 할 수는 있겠지.

그런데 졸리로저나 사략면장을 발견하지 않는 이상 이놈들이 해적선인지, 상선인지, 사략선인지 알아낼 방법이 없잖아.

그런데 지금 느낌상 이놈들 졸리로저는 아예 안 가지고 있을 것 같고, 사략면장도 어딘가에 잘 숨겨놨을 것 같다.

사략 면장이라고 해봐야 종이 한 장에 불과할 테니 선장실에 숨겨도 단순 검문으로는 찾기가 거의 불가능하지만, 높은 확률로 배에 두지 않고 육지 거점에 어딘가에 보관하고 있을 것 같아.

“공식적으로 못한다면?”

“함정을 파시지요.”

“함정? 자세하게 이야기해 봐.”

“먼저···.”

엘리엇의 계획을 다 들은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계획이기는 한데, 이걸 굳이 국왕 폐하께 고할 필요가 있을까? 그, 사실 그렇잖아. 효과는 좋을 것 같은데 치사하고 얍삽한 것 같아서 남에게 권하기에는 좀.”

이제 어엿한 청년이 된 국왕은 사석에서 나에게 매형, 매형 하면서 친근하게 굴기는 한다.

하지만 그래도 태생이 왕족이고 평생을 자존심 강한 귀족들 틈바구니에서 살아온 국왕이 아닌가.

이런 사기나 기만에 가까운 짓을 대놓고 권해도 좋아할지 모르겠네.

“그렇기는 합니다만, 어떤 권력자도 자기가 모르는 일이 수면 아래에서 벌어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법입니다. 예로부터 권력을 쥔 자들은 의심이 많고, 한 번 의심하면 그 의심을 떨치지 못하니, 이런 부분은 신경을 쓰셔야 합니다.”

“후우, 알겠네. 자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자네 말대로 하지. 뭐, 국왕 폐하가 나서면 도움을 줄 상대도 찾기 쉬울 거고. 운 좋게 놈들에게서 사략 면장이라도 발견하면 국왕 폐하께도 꽤 쓸만한 패가 되겠지.”

아무리 본인들이 위조문서라고 우겨도 타국 왕실의 도장이나 고위 대신의 도장이 찍힌 사략면장이 있다면 외교적으로 괜찮은 패가 될 수 있었다.

“죄송합니다, 제독.”

엘리엇의 계획을 머릿속에서 다시 검토하고 있는데 갑자기 엘리엇이 사과를 했다.

뭐지?

“갑자기 왜?”

“제가 능력이 부족해서 고작 이런 얄팍한 수밖에 내지 못했습니다. 참모라는 놈이 불리한 싸움을 계획하고 제독과 다른 사람들의 능력에 기대야 하다니, 면목이 없습니다.”

“아, 그거야 뭐 어쩔 수 없잖아. 저놈들은 자기들보다 약해 보이지 않으면 본색을 드러내지 않을 게 뻔하니까.”

“하지만 희생이··· 크겠지요.”

“그걸 줄일 방법을 지금부터 고민해 보자고.”

쩝, 의도치 않게 신입들에게 전투의 처절함을 깨닫게 해주게 생겼군.

* * *

다음 날 아침, 귀빈실 테이블 위에 꽤나 고급스러워 보이는 길쭉한 상자가 놓여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게 얼마 만이야?

하도 오랫동안 주지 않아서 끝인 줄 알았는데 말이지.

여전히 이놈의 랜덤 선물상자는 어떤 기준으로 주어지는지 알 수가 없다.

“호오? 세 개나?”

이 녀석이 있다면 작전을 조금 더 정교하게 짤 수 있지.

누가 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재빨리 상자 안의 내용물을 챙긴 나는 곧 고민에 빠졌다.

이건 도대체 어디서 구했다고 해야 하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