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흙수저 선원으로 살아남기-406화 (406/420)

< <406화> 의외의 수확 >

자신을 조아킨이라고 밝힌 남자가 이야기해 주는 소문은 대부분 별 볼일 없는 것들이었다.

근거 없는 소문들, 흔한 이야기···.

그나마 건질만 한 내용이라고 해봐야 향료 제도에서 벨로키나 왕국와 쿠샤 왕국 함대가 험악하게 신경전을 벌였다는 이야기 정도일까.

애초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망스럽지는 않았다.

그냥 오늘은 옛날 생각이나 하면서 네이선, 우르타와 한잔하려고 나온 것이니까.

“재미없는 이야기들 뿐이네. 술도 다 마신 것 같은데 이만 자리 좀 비켜주지? 친구들이랑 할 이야기가 많아서 말이야.”

“뭐?”

내 정중한(?) 축객령에 조아킨이 발끈하며 나를 쏘아보았다.

“솔직히 말해서 그렇잖아. 허무맹랑한 이야기 아니면 뻔한 이야기뿐이잖나?”

내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하자, 몇 번 씩씩거리던 조아킨은 나에게 삿대질을 하며 이죽거렸다.

“흥, 처음부터 기대감 안 했지만, 고작 한다는 변명이 그거냐?”

뭐지? 나한테 받을 빚이라도 있는 것처럼 구네?

“그 손가락 치···.”

서늘한 기세를 뿜기 시작한 네이선에게 살짝 손을 들어 신호를 준 나는 그에게 물었다.

“도대체 내가 뭘 변명해야 하지? 그냥 자리 좀 비켜달라고 부탁한 것뿐인데.”

“분명히 네놈이 그 주둥아리로 추천을 해주니 마니 하지 않았나!”

아하, 그 이야기였구나?

그거야 어렵지 않지.

나는 어디까지나 ‘추천’을 해준다고 했지 ‘채용’해준다고 하지 않았으니까.

어차피 내가 나에게 추천해야 하는데 그걸 굳이 말로 할 필요가 있나?

응, 너 ‘탈락’.

“꼴을 보아하니 여기 이 친구에게 빌붙어 사는 것 같은데, 역시 입만 산 놈이었어. 그렇지 않나? 응? 자네는 그 뭐야, 돌격대인가 그쪽 소속인 모양이지?”

내가 뭐라고 대응을 하기도 전에 혼자서 큰 착각을 한 조아킨은 나를 비난하면서 네이선에게 친근하게 물었다.

네이선의 체격을 보면 충분히 오해를 할 수도 있기는 하지만, 네이선은 어디까지나 갑판장이다.

네이선이 돌격대 소속이 아니고 돌격대가 네이선에게 소속되어 있지.

그런데 조아킨 저 사람, 눈치는 참 없는 모양이다.

방금 전까지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던 네이선의 어깨에 겁도 없이 손을 올리다니 말이야.

네이선도 어이가 없는지 벙찐 표정을 하고 있다.

하지만 네이선의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모양인지 조아킨은 더욱 신나서 더 크게 떠들기 시작했다.

“자네도 이런 덜떨어진 놈들과 지내지 말고 나 같은 진짜 바다의 사나이와 함께 하는 게 어때? 돌격대라면 백작 각하와 안면 정도는 있을 테니 자네가 추천하면 각하께서도 거절하지 않으실 것 같은데. 보다시피 나도 칼질에는 자신 있거든! 기회만 있다면 나도 각하의 눈에 들어서···.”

“으으, 나 같으면 그만할 것 같은데.”

우르타가 재빨리 자기 몫의 술잔과 음식 접시를 집어 들고 진저리를 치며 중얼거렸다.

네이선과 함께한 세월이 얼마인데 그 미세한 표정 변화를 모르겠는가.

얼핏 보면 무표정 같지만, 네이선의 저 표정은 전투에서 제초기마냥 해적들의 팔, 다리, 머리를 수확할 때 짓는 표정이다.

“뭐? 지금 뭐라고 했어? 어디 계집애같이 생긴 게···!”

계집애라는 말에 우르타가 욱하는 표정을 지었다.

꼴을 보아하니 재밌다고 계속 두고 봤다가는 일이 귀찮아지게 생겼길래 얼른 진화에 나섰다.

괜히 시비가 붙었다가 재수 없으면 항구경비대가 출동할 거고, 그러면 내 정체를 밝히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불쌍한 조아킨은 귀족모독죄로 목이 날아갈 거고 나는 쪽팔림은 물론이요, 수많은 귀족들에게 ‘태생이 천한 것들은 어쩔 수 없다니까?’ 이따위 말을 들어야 하겠지.

“그만! 조아킨이라고 했지? 그 ‘추천’ 건은 내가 잘해줄 테니까 적당히 하고 이제 자리 좀 비켜주지. 우리 함대에 들어오고 싶다면서 설마 우리랑 싸울 생각은 아니겠지?”

“···이익!”

정곡을 찌르는 내 말에 붉으락푸르락하며 어쩔 줄 몰라 하던 조아킨은 결국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렇잖아, 설혹 우리가 일반 선원이라도 ‘입사지원자’ 입장에서는 괜한 시비로 우리와 사이가 틀어져 봐야 좋을 게 없지.

“후우, 그런데 아까부터 그쪽은 뭔데 추천을 하니 마니 하는 거지? 보아하니 돌격대 소속도 아닌 것 같은데.”

음, 뭐라고 한담?

“돌격대 소속은 아니지만, 간부들이랑 친한 편이니까. 며칠 전에도 회계사랑 단둘이 이야기했었지.”

“어? 회, 회계사? 아, 그쪽인가?”

적당히 오해할만한 떡밥을 던지자 냉큼 물고는 자기 혼자서 납득한다.

너무 쉽게 넘어가서 오히려 당황스럽네.

심지어 내게 막 던진 말이 기억났는지 눈알을 데룩데룩 굴리는 게 좀 귀여울 정도다.

다른 곳도 아니고 함대의 탈을 쓴 상선단의 회계사다.

돈줄을 쥐고 있는 사람이라 보통 선원들에게는 바가지긁는 마누라보다 무서운 사람인데, 그런 사람과 친하다고 했으니 지금쯤 마음속으로 대성통곡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아아, 오해하지 말라고. 난 그냥 ‘추천’ 건을 잊은 것 같아서 상기시켜준 것뿐이니까. 뱃놈들끼리 언성 좀 높아진 것 가지고 꽁해있고 그러지는 않겠지?”

놀라울 정도로 부드러워진 조아킨의 태도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재밌는 녀석이다. 한번 태워볼까?

“흐음, 어쩔까. 네 말대로 나는 워낙 별 볼 일 없는 놈이라서 말이지.”

피식 웃으며 농담으로 을러대자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이, 이봐! 남자가 뭘 그런 거로 꽁하고 그러나! 내가 진짜 중요한 정보도 가지고 있다니까? 이건 진짜 높으신 분들에게 살짝 말씀드리려고 한 건데···.”

오? 뭔가 있는 건가?

지금까지 떠들면서도 숨기고 있던 이야기라.

“이야기를 들어보고 결정하지.”

내가 흥미를 보이자 조아킨은 잠시 후회하는 눈빛을 하더니 별수 없이 테이블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진짜 회계사님과 친한 게 확실하지? 거짓말이라면 진짜 좋지 않은 꼴을 보게 될 거야.”

마지막까지 의미 없는 협박을 던지는 조아킨을 보는 네이선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리는 것이 보였다.

내가 말리지 않았다면 지금쯤 조아킨 저 친구, 의식불명이 될 때까지 처맞고 있을 거다.

“서론은 그만하고, 그렇게 대단한 이야기가 뭐야?”

“아 진짜. 이건 백작 각하께 직접 고해야 할 내용인데···.”

보통 포장이 이렇게 화려하면 내용물은 별 볼 일 없던데.

슬슬 짜증이 올라오려는 타이밍에 쓸데없는 말을 주절거리던 조아킨의 입에서 정신이 번쩍 들만한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요즘 귀족들이 이끄는 상선단들이 경쟁적으로 규모를 키우는 건 알고 있지? 특히 벨로키나 왕국 귀족들 말이야.”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왕실 직속의 해군력이 약해졌다는 것은 왕권이 약해졌다는 것과 같은 말이기도 하고, 왕실 입장에서는 약해진 해상 지배권의 공백을 귀족들의 힘으로라도 채워 넣을 필요가 있었으니까.

벨로키나 왕국의 경우 아직까지 왕실을 제외하고는 무장 함대를 소유할 수 없다는 정책은 그대로 유지하는 것 같지만 귀족들과 직, 간접적으로 연결된 상선단들은 은근슬쩍 규모와 무장을 키우고 있다지.

해군력이 약해지면서 해적들이 극성을 부린다는 이유를 대고 있어서 왕실 입장이 퍽 난감할 거다.

해군력이라는 것이 마음먹는다고 단시일 내에 강화하거나 복구할 수 없는 부분이니까.

“자네들도 잘 알고 있겠지만 리안 백작 각하와 스코타 후작 각하의 관계가 썩 좋지는 않잖아? 그런데 그 스코타 후작가에서 지금 비밀리에 무장 상선단 이상의 전력을 준비 중이라는군. 후작이 왜 그러겠어? 보나 마나 백작 각하의 함대를 공격하기 위해서 아니겠나?”

사실이라면 상당히 심각한 문제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도대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추측인지 알 수가 있나.

“정보의 출처는? 그런 출처도 불분명한 애매모호한 이야기를 제독에게 해봐야 들어주지 않을걸?”

애써 침착하며 출처를 캐물었다.

어디까지나 악의적인 뜬 소문이고 와전된 이야기일 확률이 높다.

어쩌면 저 조아킨이라는 남자가 지어낸 이야기일 수도 있지.

“백작 각하께 내가 헛소문이나 들고 갈 줄 알아? 내 고향 친구 놈이 스코타 성에서 하인으로 지내고 있는데, 그놈에게 들은 이야기라고!”

내부 정보라고?

내가 조용히 눈짓하자 네이선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조아킨의 퇴로를 막아섰다.

“뭐, 뭐야? 왜 그래?”

그쯤 되니 눈치 없는 조아킨도 상황이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다.

찔끔하며 엉덩이를 빼는 그의 어깨를 네이선이 우악스럽게 내리눌렀다.

“네이선, 너무 과하게 하지 마. 그리고 조아킨? 당신도 자세하게 이야기를 해보지. 정확한 정보라면 사례는 섭섭지 않게 하겠어.”

“네, 네이선이라면··· 흐힉! 서, 설마 그 ‘진홍의 칼날’ 네이선?! 당신이 그 네이선이라고?”

오, 우리 해적 학살자 선생의 명성이 상당하구만?

이름만 대도 알아볼 정도라니 말이야.

하긴, 저놈 칼날 아래 이승을 하직한 목숨만 최소한 세 자릿수다.

옛날 에른스트 갑판장님 못지않은 기록이라구.

우르타가 결국 참지 못하고 배를 잡고 테이블 위로 쓰러져 웃어 재끼고, 나도 피식 웃음을 터뜨리자 본의 아니게 분위기가 상당히 풀렸다.

다만 그 무서운 ‘진홍의 칼날’ 선생이 뒤에서 살기를 뿌리고 있으니 조아킨은 죽을 맛이겠지만.

“자, 잠깐! 진홍의 칼날 네이선이라면 오트라스의 갑판장을 하고 있을 텐데? 그런 네이선을···.”

“으히힉, 오오, 네이선. 너 되게 유명하구나? 좋겠다아아~ 푸헤헤헤!”

우르타가 칭찬을 탈을 쓴 놀리는 말을 던지고 술집의 눈이 하나씩 집중되기 시작했다.

네이선이 이 정도로 유명 인사일 줄 몰랐는데?

···하긴 최근 몇 년은 선원들이나 다니는 이런 선술집에 온 적이 없구나.

다른 선원들이나 간부들에게 보고 정도는 들었지만, 그들이 바보도 아니고 네이선이나 내 소문 같은 영양가 없는 이야기는 알아서 걸렀겠지.

이래서는 정체를 숨긴다는 첫 번째 명제가 깨질 판이다.

“안 되겠다. 우르타, 자리 옮기자. 조아킨, 자네도 당연히 함께 가겠지?”

“으응? 아앗, 네?! 어, 어디로 말입니까?”

“쉿. 자네 때문에 다른 손님들이 시끄럽다고 우리를 쳐다보잖아.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를 조금 더 하지. 술값은 내가 낼 테니까 말이야.”

물론 거부권 따위는 없네, 친구.

* * *

내가 가끔 이용하던 프라이빗 펍으로 이동한 우리는 종업원에게 조용한 방을 요구했다.

이런 경우가 익숙한지 파리한 얼굴의 조아킨을 힐끗 본 종업원은 한쪽 구석에 있는 방으로 안내했다.

여기 술집 아니었어? 왜 익숙한 표정인데?!

“흐응, 이런 방은 또 처음이네?”

나와 몇 번 온 적이 있는 우르타가 이상한 포인트에서 감탄했고, 네이선은 우악스럽게 조아킨의 어깨를 잡아 방에 집어넣었다.

아무래도 쌓인 게 꽤 많은 모양인데, 저 친구 고용하더라도 오트라스에는 태우면 안 되겠다.

“거 살살 하라니까.”

네이선에 의해 강제로 쇼파에 가장 먼저 앉게 된 조아킨은 쇼파에 스프링이라도 들어 있는지 엉덩이를 대기 무섭게 바로 벌떡 일어서더니 내 쪽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죄, 죄송합니다, 백작 각하! 제가 감히 알아뵙지 못하고···!”

머리는 제법 돌아가는 것 같은데 눈치가 왜 이렇게 없지?

지능과 눈치가 비례하는 건 아니지만, 좀 심하잖아.

“일어서게, 조아킨. 자네를 벌하려고 했다면 진즉에 했지, 뭐하러 귀찮게 여기까지 데리고 왔겠나? 아까 하던 이야기만 제대로 말하게. 괜히 과장하거나 내용을 숨기지만 않으면 자네가 원하는 대로 내 밑에서 일하게 해주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백작 각하. 그러니까 이 일이 어떻게 된 것이냐 하면···.”

조아킨의 이야기를 경청한 나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었다.

신뢰성 부분만 제외하면 아주 그럴듯한 이야기였다.

같은 내용을 방법만 바꿔서 질문해도 잘 대답하고.

그렇다면 아무래도 좀 신경이 쓰이는데···.

조아킨의 친구라는 스코타 성의 하인이 직접 들은 이야기는 아니라고 했다.

그 하인과 그렇고 그런 관계인 하녀에게 들은 이야기고, 그것도 큰일을 치른 후 잡담을 하다가 그냥 흘리듯이 나온 이야기 수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들었다는 이야기는 충분히 우려할 만했다.

“후작이 비밀리에 퇴역하는 군함들을 사고 있다고···.”

물론 퇴역하는 군함이라고 상업용으로 사용하지 못할 것도 없다.

하지만 스코타 후작이 굳이?

그의 상선단을 호위할 무장상선이라면 피오렐급이라는 이미 증명된 신형 함종이 있지 않나.

결국 외형만으로 소속을 특정하기 힘든 퇴역 군함들을 비밀리에 구하는 이유는 구린 짓을 벌이기 위해서라고밖에 볼 수 없다.

구린 짓이 반드시 나와 관련이 있다고 말하면 자의식 과잉이겠지만, 확률 자체는 좀 높지 않을까?

잠깐, 그럼 벨로키나 왕국 신형 해군의 신형 군함이 피오렐과 유사한 것도 후작이 일부러 설계도를 제공한 건가?

“이 이야기를 아는 사람이 또 있나?”

“네? 아, 아닙니다! 맹세코 오늘 처음 입 밖으로 올리는 겁니다. 무, 물론 제 친구 놈과 그 하녀는 알고 있겠지만···.”

“처신을 아주 잘했군. 흥미로운 이야기였어. 한잔 받지.”

내가 건네주는 시원한 주석잔을 받는 조아킨의 손이 애처로울 정도로 떨린다.

영롱한 호박색 술이 조금씩 밖으로 흘러넘쳤지만 조아킨은 손이 젖는 것도 모른 채 급히 잔 속의 술을 목구멍에 쏟아부었다.

아 씨, 그거 그렇게 마시기에는 진짜 아까운 술인데.

“케엑, 쿨럭, 쿨럭!”

“쯧쯧, 천천히 마시지, 왜 그렇게 급하게 마시나? 그보다 어디에서 일하고 싶은가? 돌격대?”

“쿨럭, 아, 아닙, 쿨럭, 아닙니다! 쿨럭, 쿨럭, 아무 데나 그냥 받아만, 쿨럭쿨럭!”

“그건 아니지. 네이선, 어때? 돌격대에서 받아줄 만해?”

여기에서 네이선이 오케이를 해도 그를 바로 돌격대로 보낼 수는 없었다.

돌격대 되겠다고 죽으라고 구르는 사람이 몇 명인데 이런 식으로 낙하산 인사를 할 수는 없지.

하지만 그들과 같이 구르게 해줄 수는 있지.

한 2년쯤 제대로 구르면서 충성과 실력을 증명하면 돌격대에 들어갈 수 있을지도.

“저 실력과 배짱으로요? 농담이 심하십니다, 제독.”

아니야, 쟤한테 보내면 안 될 거 같아. 사람 하나 죽겠어.

냉기가 풀풀 날리는 네이선의 대답에 조아킨의 고개가 홱 소리가 나도록 돌아갔다.

“네이선 갑판장님! 갑판장님 앞에서 말하기 부끄럽지만 제가 직접 때려잡은 해적만 열 손가락으로도 못 셀 정돕니다. 저도 충분히···!”

와, 진짜 눈치라는 부분이 아예 거세된 것 같은데?

그리고 어디 열 명을 죽인 초보 살인범이 네이선 앞에서 살인 횟수를 논하나?

얘 앞에서 사람 죽인 이야기를 하려면 세 자릿수는 돼야 한다고.

진짜 처음부터 나와 함께한 돌격대원들 중에는 100명을 넘게 죽였다고 으스대는 녀석들이 있었다.

사람을 많이 죽인 게 자랑할 일은 아닌데 말이지···.

물론 어떤 해적 놈들은 하는 짓이 이게 과연 사람 새끼인지 사탄의 새끼인지 구분이 안 가기는 하지만.

“보직이야 천천히 정하면 되고, 아까 말한 대로 내일 오트라스로 오라고. 그리고 오늘 한 이야기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그 정도는 말 안 해도 알겠지?”

“물론입니다, 백작 각하!”

“응, 앞으로는 제독이라고 불러. 백작 각하는 무슨.”

“넷, 제독!”

“어차피 여기 있는 술은 돈을 내야 하니까 자네가 천천히 마시고 와. 많이 놀랐을 텐데 내 사과의 표시라고 생각하게.”

“알겠습니다!”

기합이 바짝 들어간 조아킨을 두고 방을 나온 나는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지자 네이선에게 말했다.

“네이선, 지금 바로 가서 은밀하게 움직일 수 있는 선원 세 명 뽑아서 저놈 감시해. 누굴 만나는지, 이상한 짓을 하는 것은 아닌지.”

“응. 지금 바로 가볼게.”

네이선이 사라지자 우르타가 큰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조용히 물었다.

“왜, 왜? 저놈 뭐 잘못했어? 난 모르겠던데?”

“그건 아니지만, 혹시 모르니까 말이야.”

“혹시?”

“넌 몰라도 돼. 내일은 은행이나 가봐야겠다.”

“칫, 치사하긴. 은행은 왜? 그거 요즘 회계사가 다 하는 거 아니었어?”

으응? 아, 그런가?

언제부터 내가 게론드에게 다 맡기고 있었더라?

“카이덴 선장과 미르다스 호에 대한 건을 마무리 지어야지. 은행 놈들이 제정신이라면 나한테까지 바가지를 씌우지는 않겠지.”

“아, 그 호구 잡힌 거.”

누가 호구라는 거야, 이 자식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