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9화> 먹음직스러운 미끼가 되자 >
인간의 마음이란 이토록 간사한 것이었던가.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해먹에서 몸을 일으켰다.
“크윽, 도저히 버틸 수 없어!”
“응? 왜 그래? 리··· 앗차! 말콤?”
자다가 일어난 우르타가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물었지만 대답할 여유가 없었다.
코를 찌를 듯한 땀 냄새, 발 냄새, 입 냄새··· 하여간 인간이 낼 수 있는 모든 악취가 뒤섞인 냄새 때문에 잠도 못 자겠는데, 대답을 하면 그만큼 숨을 더 쉬어야 하잖아!
어두운 선실을 감으로 급히 지나다 보니 가벼운 접촉 사고가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간간이 비명과 욕설이 들리기도 했는데, 나에게는 신선한 공기가 더 급했다.
이 계획은 처음부터 틀려먹었다.
고귀한 피가 흐르는 귀족이자 종신 총독이라는, 지역의 왕에 버금가는 권력을 가진 남자가 저 지저분한 뱃놈들과 같은 공간에서 숨 쉴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얼마나 어리석은가.
그 멍청한 계획을 세운 놈이 나라서 차마 비난할 수 없다는 게 슬프다.
계획을 세울 때만 해도 괜찮을 줄 알았지.
내가 선원 생활만 5년을 넘게 했단 말이다.
···원래 개구리는 올챙이 적을 기억하지 못하는 법이야, 내가 정상이라고.
“후우, 흐으으읍!”
달리다시피 선실을 빠져나와 마지막 남은 숨을 내뱉음과 동시에 숨을 들이켜자 짜고 맑은 바다 내음이 폐에 가득 들어찼다.
평소에는 그렇게 지겹던 짠내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야간 당직을 서던 몇몇 선원들이 미친놈 보는 듯한 눈길로 나를 보고 있었고, 곧 쿵쾅거리는 소리와 함께 몇 사람이 선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뭐야? 무슨 일이야?!”
제일 먼저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네이선.
그 뒤로 눈도 제대로 못 뜬 우르타의 머리가 불쑥 튀어나온다.
“흐아암, 자다 말고 갑자기 왜 그래애워우억?!”
“어이, 길 막지 말고 비켜!”
우르타의 말꼬리가 이상하게 늘어지더니 낯선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거친 손길에 밀린 우르타가 형편없이 옆으로 밀려나면서 인상이 더러운 선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을 보니 낯이 익은 녀석이다.
아, 물론 하루 종일 비좁은 배에서 부대끼다 보면 아무리 낯선 사람이라도 하루 이틀이면 낯이 익을 수밖에 없지만, 저 녀석은 약간 뭐랄까··· 좀 안 좋은 쪽으로 유명 인사였다.
이제 막 진수를 마친 탐험선 엘리시아는 선장부터 견습 선원까지 죄다 경력직 신입(?)이다.
이전에 항해를 한 적이 없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엘리시아라는 배에서 합을 맞춰 본 그룹 자체가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 보니 그 알량한 주도권을 쥐겠다고 선원들끼리 기 싸움이 좀 심했는데, 그중 단연 돋보이는 녀석이었다.
선원들이 아무리 배운 것 없고 무식한 놈들이라지만, 코찔찔이들처럼 주먹질만 가지고 서열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배가 항해를 시작하면 승조원들은 좋으나 싫으나 공동운명체가 되는 것이니, 항해 경험이 많고 능력 있는 노련한 늙은(?) 선원들을 중심으로 모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여간 그런 곳에서 풍운을 몰고 온 이단아가 있었으니, 바로 저 녀석과 패거리들이었다.
배가 무슨 뒷골목쯤 되는 줄 안다니까?
뭐 저런 놈까지 뽑았나 싶겠지만, 그건 어쩔 수 없었다.
갑판장이 아무리 말을 잘하면 뭐 하나, 일단 탐험선인데.
‘노던테라’라는 먹음직한 떡밥을 던졌기에 그 자리에서는 호응이 어마어마했지만, 그 분위기가 깨지고 나면 생각이 있는 경력자들은 고개를 내저을 수밖에 없었다.
폰테 섬까지의 훈련 및 테스트로 알려진 이번 항해는 몰라도, 실제로 노던테라 탐사가 시작되면 살아서 못 돌아올 확률이 한 70%쯤 되는 거다.
그렇다 보니 제대로 된 선원을 모으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내가 슬쩍 언질을 주기도 했다.
다른 능력이 뛰어나도, 전투나 그에 준하는 위기 상황에서 벌벌 떨다가 칼 맞아 뒤질 놈들은 뽑지 말라고 말이다.
최소한 세 척, 최악의 경우 다섯 척 이상의 사략선과 숨 막히는 레이스를 펼쳐야 할 상황인데 간이 콩알만 한 놈들을 데리고 갈 수는 없잖아.
그리고 불량배, 도적, 용병, 깡패들이나 선원이나 수준이 다 거기서 거기인지라 저놈도 의외로 잘 굴리다 보면 괜찮은 선원이 될 수도 있었다.
“뭐 이런 비리비리한 놈까지 배를 태워서는, 쯧.”
“흐흐흐··· 갑판장에게 엉덩이라도 대준 거 아니겠습니까, 형님?”
“얼굴도 반반한 게 술 마시고 하면 대충 뭐··· 흐흐.”
뒤를 따르던 똘마니들이 선을 세게 넘는다.
아니나 다를까, 정의의 기사께서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잠깐. 지금 뭐라고 했지?”
차갑게 가라앉은 네이선의 말에 똘마니 1이 가래침을 뱉으며 껄렁하게 대답했다.
“카아악, 퉤! 뭐야? 너도 저리 꺼져. 아, 혹시 저놈 엉덩이 주인이 너냐? 흐흐흐흐!”
갑판에 침을 뱉었네.
지금은 정체를 숨기고 있지만 그래도 갑판장인 네이선이 그걸 참을 리가 없었다.
아무리 더러운 선원 놈들도 갑판에 피와 땀은 흘릴지언정 침을 뱉지는 않는다고.
“어떤 새끼가 감히 이 어르신이 주무시는데 치고 지나가나 했더니, 네놈이냐? 얼굴이 번지르르한 게 홧김에 가출한 상점 아들내미쯤 되는 모양인데···.”
애석하게도 타고난 동안에 관리까지 잘 된 내 얼굴을 보고 칭찬하던 대장 녀석의 말은 중간에 끊길 수밖에 없었다.
빠악!
쿠당탕탕!
찰진 타격음과 함께 자기 똘마니가 바닥을 뒹굴었으니 말이다.
“뭐, 뭐야?!”
앞에 나와 있었던 탓에 상황을 보지 못한 대장 녀석은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지만, 옆에 있던 똘마니 2의 반응은 조금 더 빨랐다.
“미친놈이?! 오냐, 먼저 쳤겠다? 배때지에 칼이 박히고도 계속 주먹질을 할 수 있는지 보자!”
아니야, 그러지 마.
너 여기에서 칼 꺼내면 진짜 죽어.
그사이에 잠에서 깬 선원부터 당직을 서던 놈들까지 신이 나서 몰려든 것이 보였다.
움찔거리며 나서려다가 몰래 내 눈치를 보는 녀석들은 원래 우리 함대 소속인 녀석들이고.
똘마니 2가 완전히 정신을 놓은 것은 아닌지 다행히 허리춤의 칼을 뽑지는 않았다.
대신 다른 똘마니 둘이 슬쩍 네이선의 뒤와 옆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니, 쓰러진 녀석의 상태를 제대로 보지 못한 모양이다.
아무리 방심하고 있었다지만 주먹질 한 방에 건장한 성인 남성이 기절을 했다.
단지 팔 힘이 좋아도 무서운 거고, 사람이 기절하는 급소를 정확히 쳤다고 해도 무서운 거다.
잠깐, 저거 눈알 돌아갔는데 설마 죽은 건 아니지?
“하아, 별 개 잡놈이 다··· 커어억!”
고개를 좌우로 틀면서 자신만만하게 몸을 돌리던 대장 녀석의 배에 네이선의 주먹이 틀어박히더니 그의 허리가 직각으로 굽었다.
발도 좀 뜬 것 같다.
보통 저렇게 맞으면 내장 파열 아닐까?
이번에는 제대로 본 것인지 똘마니들의 얼굴에 경악이 서렸다.
쿠당탕탕!
바닥에 널브러진 두 번째 희생자가 생겨나고, 그 소란은 필연적으로 누군가를 불러냈다.
“한밤중에 뭣들 하는 게야?!”
짜증과 분노가 서린 갑판장의 노호성이 밤공기를 가르자, 모여들었던 선원들이 바퀴벌레처럼 흩어졌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렇게 보이기는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선원들은 딴청을 부리면서도 이쪽으로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따분한 항해에서 이만한 이벤트를 놓치면 바보인 거다.
그나저나 이제 슬슬 연기를 그만해야겠네.
서열이 정리될 때까지 선원들 간의 다툼을 적당히 눈감아주고 있는 갑판장이라지만, 이만한 사건이면 네이선이 징계를 피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무엇보다도 도저히 저 썩은 내 나는 선실에 다시 들어갈 용기가 안 난다.
“갑판장, 이만하면 주요 항로와는 거리가 좀 벌어졌을 것 같은데?”
뒤늦게 나를 발견하고 살짝 눈치를 보던 갑판장은 갑작스러운 내 질문에 잠시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 자세를 바로 하고는 고개를 숙였다.
“네, 오늘 해가 질 때쯤에 주요 항로를 벗어났다고 항해사에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갑자기 내가 갑판장에게 하대를 하니 미친놈을 보는 듯한 시선을 던지던 구경꾼들은, 갑판장이 당연하다는 듯이 내게 공손하게 대답하는 것을 보고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특히 아직 정신이 있는 똘마니 2, 3, 4의 표정은 아주 가관이었다.
정확한 사정은 몰라도 자신들이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을 건드렸다는 것 정도는 아는 거다.
“쯧, 내일 아침까지 기다리려고 했는데 안 되겠군. 선교로 갈 테니 선장 호출하게.”
“네, 각하. 그런데 저기 쓰러진 놈들은···?”
바닥에서 미동도 하지 않는 두 사람을 보는 갑판장의 눈에 살짝 짜증이 어린 것은 놈들이 뿌려놓은 피와 토사물 때문일 것이다.
내가 아침까지 참지 못하고 한밤중에 소란을 피워서 그런 것은 절대로 아닐 거야.
“각하?”
“지금 각하라고 한 거야?”
“이게 무슨 상황이야?”
이제야 사방에서 선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어두운 와중에도 똘마니들의 하얗게 질린 얼굴이 아주 잘 보였다.
* * *
네이선에게 얻어맞고 기절한 두 사람을 제외한 선내의 모든 인원이 선교 앞에 모였다.
이미 나와 갑판장 사이에 있었던 일을 모르는 사람은 없는지라 한밤중의 소집에도 짜증을 내는 자가 한 명도 없었고, 내가 선교에서 모습을 드러냈음에도 놀라는 사람은 없었다.
웅성거림이 더 커지기는 했지만 말이다.
“모두 조용.”
잠시 시간을 주어 소음이 잦아들고 시선이 모일 시간을 준 나는 목에 힘을 주어 내 정체를 밝혔다.
“나는 르블르앙의 백작이며 국왕 폐하께서 임명한 폰테 섬의 종신 총독, 프레티아 왕국 제2함대 사령관인 리안이라고 한다.”
모여 있는 사람들 중 절반 정도가 경악했다.
놀라지 않는 녀석들은 내 함대가 떠나기 전에 아인델프가 차출한 인원들이다.
“정보를 통제하기 위해서 정체를 숨기고 있었으니, 그동안에 너희가 내게 저질렀던 무례는 없던 일로 할 테니 모두 동요할 필요 없다. 그리고···.”
나는 차분하게 현재의 상황과 우리가 해야 할 미끼 역할에 대해 적당히 설명했지만, 선원들의 동요는 그리 크지 않았다.
위험하다면 백작씩이나 되는 내가 직접 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믿음과 든든하게 동행중인 3급 전투함 레슬리 때문일 것이다.
1함대 소속 700톤급 고속전투함인 레슬리는 최근에 취역한 신형함답게 그 자태가 당당하기 그지없었다.
미끼 역할을 하는데 왜 전함이 따라붙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왕실의 후원을 받는다는 탐사선이 장거리 시험항해를 하는데 해군의 호위가 없다는 것이 더 이상하잖아.
속이기 쉽게 두 척 정도 붙이고 싶었는데, 그러면 세 척짜리 선단이 되어서 혹시 사략 함대가 몸을 사릴까 봐 한 척은 항구에서 출항한 지 하루 만에 돌려보냈다.
물론 함선에 이상이 생겼다는 그럴듯한 이유를 댔으니까 의심하는 녀석은 없을 것이다.
사략함대가 아니라면 폰테 섬으로 향하는 항로가 위험한 항로도 아니고, 교역품도 거의 싣지 않은 탐사선은 해적질의 목표로 삼기에는 너무 부실하니 불가피한 이유로 호위함이 한 척이 빠졌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고.
“그렇다고 해도 놈들이 굳이 해군이 호위 중인 이 배를 공격하겠습니까? 사략 함대라고 해봐야 무장상선으로 이루어진 반쪽짜리 함대라고 들었습니다만.”
제독실(귀빈실)로 자리를 옮긴 후 정식으로 인사를 마친 엘리시아 호의 긱스 선장이 걱정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긱스 선장의 걱정은 타당했다.
고작 한 척이라고 해도 무장상선들 입장에서는 해군 전함은 부담스러운 상대였으니까.
“선장은 사략 함대의 목표가 뭐라고 생각하나?”
“네? 그거야 당연히 폰테 섬으로 가는 물자의 차단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들은 바로는 그렇습니다만.”
그 정보의 출처가 당신이 아니냐는 눈빛을 보내는 선장에게 나는 살짝 웃으며 다시 질문을 던졌다.
“폰테 섬으로 가는 물자를 차단하는 이유는?”
“폰테 섬의 발전을 막는 것이지요.”
“그렇지. 그럼 폰테 섬의 발전을 막는 이유는 뭐겠나?”
스무고개 같은 질문에 긱스 선장의 표정이 기묘하게 변했다.
속으로는 이 젊은(긱스 선장은 50대다) 귀족 놈이 자기를 놀리는 건가 싶을지도 모르겠다.
“···폰테 섬이 노던테라 탐사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 아닙··· 아!”
기분 탓인지 살짝 퉁명스럽게 느껴지는 대답을 하던 긱스 선장이 깜짝 놀라며 깨달음을 얻은 표정을 지었다.
“그렇군요. 애초에 노던테라 탐사를 막는 것이 목적이니 무리를 해서라도 엘리시아 호를 제거하려고 하겠군요.”
“그래. 첨언하자면 지금이 노던테라 탐사 계획 자체를 무효화 할 수도 있는 가장 좋은 기회지. 시간이 지날수록 탐사선단은 커지면 커지지, 작아지지 않을 테니까.”
그랬다.
대외적으로 밝힌 것도 그렇고 실제로도 엘리시아 호를 시작으로 탐험선단은 계속 추가될 예정이었다.
시간을 주면 선단의 구성 선박은 점점 많아지고 선원들의 숙련도는 갈수록 올라갈 텐데, 일레드 왕국에서 그걸 보고 있을 리가 없지 않나.
반대로 이번에 엘리시아 호를 쥐도 새도 모르게 세상에서 지워버리면 최소한 탐사 계획을 지연시키거나 대대적인 계획 변경을 기대할 수 있었다.
어쩌면 전면 폐기나 무기한 보류 상태까지 볼 수도 있겠지.
그렇게 선장이 납득하며 물러나자, 이번에는 갑판장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총독 각하, 이번 작전이 성공해서 일레드의 사략 함대를 격파한다고 해도 근본적인 해결은 아니지 않습니까?”
“응? 무슨 말인가?”
내가 시선을 돌리자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은 갑판장이 머리를 벅벅 긁으며 대답했다.
“소인의 짧은 생각으로는, 어차피 일레드 왕국이 사략 명령을 계속 내리는 한 사략 선단이건 함대건 계속 생길 것 같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놈들을 사냥할수록 규모가 더 커질지도 모르지요.”
“아, 그건 걱정 말게. 저놈들도 계속 여기에 신경 쓸 수는 없을 거야.”
“오오, 역시 따로 준비한 것이 있으시군요?”
갑판장이 과장되게 감탄하며 내게 집중하는 모습이 영 부담스러웠지만, 나는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내 예상을 들려주었다.
“간단한 후속 처리 정도야 준비했지만, 기본적으로 상황 자체가 우리에게 유리하네. 폰테 섬 항로는 아직 통행량이 많지 않아. 해적질만으로는 제대로 무장한 함대나 선단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말이지. 심지어 소일거리로 할만한 교역 항로도 없지 않나? 그러니 아마 지금 사략 허가를 받고 날뛰는 놈들이 일레드 왕국에서 비밀리에 동원할 수 있는 최대 전력일 거야. 이 녀석들 엉덩이만 제대로 차버리면 지금 일레드 왕실의 제안에 고민 중인 놈들도 알아서 손을 털고 나갈걸?”
내 설명을 들은 갑판장은 여전히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사략 함대라고 해봐야, 본질은 민간 선박이다.
역사를 살펴보면 해군이 사략 함대로 활동한 기록이 없는 것은 아닌데, 지금 상황에서 일레드 왕국 해군이 사략 함대로 활동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거든.
그런 짓을 했다가는 다른 나라의 첩보망에 안 걸릴 수가 없고, 걸렸다 하면 다른 나라들이 개떼처럼 달려들어 물어뜯을 테니까.
결국 사략 함대를 민간 선박, 보통은 상선, 잘해봐야 용병함 정도로 구성해야 한다.
그것도 아무나 막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최소한의 전투력을 갖춘 녀석들로 모집해야 한다.
아무리 왕실과 군에서 무장 따위를 지원한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전투함과 수송함은 그 설계부터 갭이 있으니 말이다.
그뿐인가?
만약 말이 새면 일레드 왕국의 외교적 입장이 상당히 곤란해지니까 그중에도 믿을만한 녀석들만 모집해야 한다.
당연히 여러 나라에 다리를 걸치고 있는 거대 상회나 아쉬울 게 없는 대형 상선단은 제외다.
이 정도 조건에 부합하는 민간 선박이 도대체 얼마나 되겠는가?
카이덴이 봤다는 사략선박은 총 5척, 내 생각에 그 정도에서 7척 정도가 한계였다.
추가로 투입할 수 있는 녀석들이 없지는 않겠지만, 그래봐야 이놈들보다 강할 가능성은 거의 없고, 그나마도 이번 전투를 대대적으로 알리면 더 이상 지원하는 놈도 없을걸?
떳떳하지도 않고, 위험하고, 돈도 안 되는 일에 뛰어드는 상인 따위는 없으니까 말이다.
“그나저나 오늘 제독에게 무례를 범한 놈들은 어떻게 처리하실 겁니까?”
묵묵히 앉아있던 네이선이 불타오를 듯한 눈빛으로 나를 보며 물었다.
그런 눈빛으로 나를 보면 어떡하냐, 네이선.
냉정하게 살펴보면 네가 과잉 진압을 한 거라고.
물론 나도 우르타에게 개소리를 지껄인 놈들을 용서하고 싶지는 않다.
“어, 그건 조금 생각을 해보··· 그런데 맞은 놈들이 살아있기는 해?”
의무실로 옮길 때는 숨이 붙어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쯤 죽었을 수도 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