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3화> 이놈들 정체가 뭐야? >
백기가 제각각 올라간 거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통합된 명령체계가 만들어지지 않았거나, 최고위 지휘관이 이미 전투 불능이 되어버린 두 척, 혹은 도주한 두 척의 사략선에 타고 있다면 각 사략선의 선장들이 서로 자기주장을 내세울 테니까.
다른 것도 아니고 전투를 지속하다가 장렬하게(?) 뒤지는가, 일단 항복해서 일말의 기대를 걸어보는가 하는 문제이니 합의점에 도달할 리도 없고 말이지.
아, 저놈들이 해적인지 해군인지 궁금하다고?
일단 우리가 추측하기에 일레드 왕실의 사주를 받은 것은 맞다.
그렇지 않고서야 돌아다니는 배도 몇 척 없는 폰테 섬 항로에 죽치고 앉아서 해적질을 할 리가 없잖아.
그럼 놈들이 일레드 왕국의 지휘를 받는 사설 군사 집단이냐 하면 이게 좀 애매하다.
일단 프레티아 왕국과 일레드 왕국은 전쟁상태가 아니다.
사이가 좋지는 않아도 서로 상선을 공격할 정도로 적대적인 상황까지는 아니라는 거다.
그러니까 만약 우리가 나포한 배에서 사략 면장이 발견된다면 일레드 왕국은 이를 부인할 것이다.
포로들이 입을 모아 일레드 왕국에서 지시를 받았다고 증언해도 조작이라고 우길 거다.
‘눈 가리고 아웅’이지만 그렇게 얼굴에 철판을 까는 편이 적국도 아닌 나라의 상선을 조직적, 계획적으로 공격한 파렴치한 국가라는 오명을 뒤집어쓰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하여튼! 진실과 상관없이 이번 전투의 포로들은 해적으로 재판을 받게 될 거다.
이전에 말한 대로 해적질은 보통 사형이고.
하지만 사략 허가를 받았다는 말을 공식적으로 인정해주지 않더라도,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으니 잘하면 목숨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 정도는 할 수 있다.
거기에 전향적이고 적극적인 항복 및 협조는 당연히 가산점으로 주어지겠지.
···그래서 저러는 건가?
“선장님, 놈들이 꾸역꾸역 이쪽으로 다가옵니다. 어떻게 할까요?”
내게 말을 걸려고 하다가 잠시 머뭇거리던 항해사 하나가 긱스 선장에게 물었다.
긱스 선장이 지휘권 양도를 철회하지 않아서 여전히 내가 지휘권을 가지고 있지만, 내게 직접 보고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보고를 받고 망원경으로 한참 상황을 살피던 긱스 선장이 인상을 살짝 찡그리며 내게 물었다.
“아무래도 저희 쪽을 뚫고 지나가려는 모양입니다만, 레슬리 함에게 놈들의 예상 침로를 차단하라고 할까요? 다른 아군들은 조금 늦을 것 같습니다.”
“흠, 레슬리 혼자서 다 막을 수는 없겠지. 선두에 선 오른쪽 적함은 레슬리가 차단하고 바로 뒤에 붙은 왼쪽 적함은 우리가 차단한다.”
“알겠습니다, 각하.”
이번에는 치열하게 싸울 필요도 없었다.
잠시 속도를 늦췄던 여섯 척의 아군 함선들은 백기를 올리고 돛을 내린 두 척을 수습하기 위한 세 척을 제외한 나머지 함선이 다시 속도를 올리고 있었고, 역풍을 뚫고 온 두 척의 함선 역시 남서 방향을 틀어막은 것도 모자라 이쪽으로 접근 중이었기 때문이다.
적당히 놈들이 포위망을 빠져나가지만 못하게 하면 될 일이다.
“좌로 5도, 메인마스트 돛 내려.”
내 명령에 따라 엘리시아 호는 얄미울 정도로 놈들의 예상 항로를 틀어막았다.
우리와 충돌을 피하기 위해 급히 침로를 바꾸던 적 함선에서 갖가지 고함이 아스라이 들려왔다.
그쪽은 급선회한 레슬리와 충돌하는 각도였거든.
쿠우우우웅!
둔중한 충돌음과 함께 두 배가 충돌했다.
이제 끝이다.
범선은 저렇게 한번 속도를 잃고 나면 다시 제 속도를 찾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 상황이라면 굳이 백병전을 하지 않더라도 저 사략선이 제 속도를 받기 전에 후속하는 아군 함선들이 먼저 도달할 터였다.
우리가 막기로 한 남은 한 척 역시 별다를 게 없었다.
선두의 사략선과 레슬리가 충돌하면서 그렇지 않아도 비좁은 탈출구가 더 좁아졌으니, 점프를 하지 않는 이상 엘리시아를 뚫고 지나갈 방법이 없었다.
아무리 봐도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꿋꿋하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던 최후의 사략선은 결국 엘리시아 호와 역풍을 뚫고 접근한 1함대 소속 전투함 사이에 끼이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백기 올렸나?”
“아직입니다.”
항복한 제 편을 향해 포까지 쏴대던 녀석이니 꽤나 독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 상황에서도?
이건 좀 상식적이지 않은데?
우리야 조금 만만해 보인다고 해도, 맞은편에 접현한 해군 함정은 800톤은 훌쩍 넘을 것 같은 대형 함이었다.
최소한 3급, 어쩌면 2급 전투함이니 탑승한 병력만 해도 200명 전후일 테고, 해병대만 적어도 30명 이상 있을 텐데 그런 강력한 전력을 상대로 일개 사략선이 최후까지 저항을 한다니?
“이해가 안 되네. 직접 가봐야겠어.”
“네? 또 어디를 가십니까?”
긱스 선장이 기겁하며 나를 말렸지만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한쪽을 가리켰다.
“이번에는 진짜 위험하지 않을 것 같네만? 어차피 저쪽에 인사도 해야 하니 내가 직접 다녀오겠네.”
내가 가리킨 쪽에는 해병대 복장을 한 일단의 병사들이 단단한 경계를 유지하며 널빤지를 건너고 있었고, 사략선의 선원들은 기세에 밀려 제대로 공격을 해보지도 못하고 주춤거리며 물러서고 있었다.
“후우, 알겠습니다. 카이덴 항해사, 백작 각하를 호종하게!”
“네, 선장님. 제가 모시겠습니다, 제독.”
카이덴을 앞세워 좌현으로 다가가자 한참 널빤지를 고정하는 작업 중이었다.
저쪽은 이상하게도 저항하지 않고 있었다.
백기도 안 올리고, 저항도 안 하고, 도대체 뭐야?
“네이선, 어떻게 된 일이야?”
내 질문에 이마를 긁는 네이선의 몸에서 말라붙은 피딱지가 후드득 떨어졌다.
온몸에 피칠갑을 한 게 비주얼만 보면 싸이코패스 연쇄살인마다.
···난다긴다하는 연쇄살인마도 죽인 사람 수로는 네이선에게 감히 비벼 볼 엄두도 못 내겠지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처음 갈고리를 던질 때는 제법 저항을 했는데, 완전히 배가 멈춘 후로는 저항도 멈췄습니다.”
“허···.”
시선을 돌리니 이미 갑판을 점거하기 시작한 해병대가 선원들을 한쪽으로 몰아붙이고 있었다.
해병대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선원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뭐라고 하고 있는데, 여기까지 정확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가보자.”
“엉? 아, 네.”
* * *
갑판장, 네이선을 포함해 선원 십여 명과 함께 널빤지를 건너자 눈치를 보던 사략선의 선원들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상대가 적대적으로 나오지를 않으니 먼저 칼을 휘두르기도 애매했다.
이럴 거면 그냥 백기를 올렸어야지!
“해병대장?”
“뭐···? 크흠, 내가 해병대장 다이슨 대위요. 귀하는?”
“리안이라고 하네.”
“리안? 그렇게 말하··· 헉?! 리블르앙 백작 각하십니까?”
말없이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다이슨 대위는 급히 내게 군례를 올렸다.
“몰라봬서 죄송합니다, 각하.”
“아니야, 처음 보는데 못 알아보는 것이 당연하지. 그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그게··· 저도 지금 답답해하던 참입니다.”
해병대장이 작은 목소리로 짧게 하소연했다.
제일 먼저 한 일은 항복을 권하는 일이었다고 한다.
해병대가 옮겨타기 전부터 반항을 하지 않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해병대가 모는 대로 한쪽으로 몰리는 와중에도 항복은 하지 않고 서로 눈치만 보고 있단다.
적대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장을 해제한 것도 아니라서 마음 놓고 포박을 할 수도 없다고.
“무슨 말인지 알겠네.”
해병대장의 말을 들은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해병대와 선원들을 물리고 앞에 섰다.
“항복해라. 사형은 피하게 해주지.”
아닐 것 같은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사형을 피하게 해준다는 말에 몇 사람의 눈빛이 살짝 변했다.
설마, 진짜?
칼을 휘두르면 빼도 박도 못하고 사망 확정이고, 지금 항복해도 어차피 사형이니까 이렇게 애매하게 굴고 있었다고?
“그쪽이 누군데 그런 말을 하면서 믿으라는 거요? 헛!”
군중을 헤치고 앞으로 나서며 내게 질문을 던지던 한 사략선원이 말을 끝내기 무섭게 다급하게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보통 자기 목덜미에 핏자국이 얼룩덜룩한 칼날이 닿으면 그런 반응을 보이기는 하지.
“폰테 섬의 총독이신 리블르앙 백작 각하시다. 예의를 지켜라.”
칼날만큼 서늘한 말투로 경고하는 네이선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사략선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각하. 그런 약속을 함부로 하셔도 되겠습니까? 해적은 사형에 처한다는 것은 국왕 폐하께서···.”
머쓱한 표정을 하며 내게 다가온 해병대장이 중얼거렸지만 나는 가볍게 손을 저었다.
“외람된 말이 맞군. 자네가 신경 쓸 이야기가 아니네, 대위.”
함장인 대령 정도라면 상대해 주겠지만, 내가 고작 대위 나부랭이랑 정치적인 이야기를 할 위치는 아니잖나.
하는 짓이나 표정을 보면 귀족가 출신에 지금까지 승승장구한 녀석인 모양인데, 이런 놈들은 편하게 대해주면 머리끝까지 기어오르는 법이다.
아인델프와 정반대 성향이라고 해야 할까?
“항복! 항복입니다, 총독 각하! 저희는 진즉에 항복하려고 했습니다!”
“샨! 네놈이 기어이!”
갑자기 사략선원 중 한 명이 양손을 번쩍 들면서 항복을 외쳤고, 뒤이어서 욕설과 함께 칼이 날아들었다.
“이런 젠장, 모두 무기 들고 뒤로 빠져!”
갑자기 시작된 난전이었다.
샨이라고 불린 항복을 외친 친구는 내가 어떻게 할 사이도 없이 서너 개의 칼을 동시에 맞고 절명했고, 뒤이어 사방에서 칼부림이 일었다.
장내는 욕설과 악다구니, 비명과 저주로 가득 찼고, 해병대와 우리 선원들은 허겁지겁 뒤로 물러서야만 했다.
“무기 버려!”
“엎드려!”
“다가오지 마라! 정지!”
자기들끼리 죽고 죽이는 대환장 파티가 벌어지니 이쪽으로 도주하는 녀석들이 계속해서 발생했다.
하지만 우리라고 뭘 믿고 놈들을 받아줄 수 있겠어?
최소한 무기라도 버리고 반항이 불가능하도록 제압이라도 해야 믿어보지.
그런데 저놈들에게는 그게 또 앞뒤가 안 맞는 게, 지금 당장 뒤에서 칼부림이 벌어지는데 무기를 버리고 엎드리라니, 그냥 죽으라는 말이랑 똑같잖아.
“제기랄, 칼 들고 설치는 놈들을 맨몸으로 제압하라고 할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지요.”
누가 항복하겠다는 놈들인지 우리로서는 알 도리가 없었다.
그러니 항복하겠다는 놈들을 돕고 싶어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애초에 제압용 무기인 둔기 따위를 챙겨왔다면 몰라도, 다들 날붙이로 무장하고 있는데 피아 식별 없는 ‘적당한 제압’ 같은 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괜히 우리 애들 다치는 것도 싫고.
다행히 소란이 오래 이어지지는 않았다.
좁게 몰려있는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한 일이라 사상자는 어마어마했지만, 시간이 조금 흐르니 자연스럽게 서로 자기 편을 찾아서 두 패로 나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항복하겠소!”
우현에 몰려있던 패거리 중의 한 녀석이 상대하던 놈의 목덜미에 칼을 꽂아 넣고는 급하게 이쪽을 보며 외쳤다.
피 묻은 칼을 들고 사방을 경계하며 소리를 꽥꽥 지르는 것이라 항복과 잘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형식 따위가 뭐, 중요한가?
“갑판··· 음. 해병대장. 좌현 쪽에 모인 적도들을 제압하게. 반항하면 죽여도 좋아.”
“네, 각하. 전원! 무기 들어! 돌격!”
해병대장 다이슨 대위를 필두로 해병대와 선원들이 함성을 지르며 좌현으로 돌격해 들어갔다.
“응? 넌 안 가?”
“굳이 나까지 갈 필요 있겠어?”
내 말에 네이선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딱딱하게 굳은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하긴, 좌현에 멀쩡하게 서 있는 인원이라고 해봐야 20여 명, 그에 비해 아군은 50명도 넘는다.
우현에 몰린 항복하겠다는 20여 명이 ‘속았지?!’라고 외쳐도 머릿수로 압살할 수 있는 수준이다.
* * *
“지독한 놈들입니다. 전원 사망했습니다.”
갑판장이 인상을 찡그리며 혀를 내둘렀다.
“하!”
뭐지, 이놈들?
내가 한쪽으로 손을 까딱거리자 맨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던 사략선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입 모양만으로 ‘저요?’라고 묻는다.
“그래, 너 이리 와.”
난처한 표정으로 자신을 감시하는 해병대를 바라보던 놈은 결국 해병대원 두 사람에게 질질 끌려서 내 앞으로 왔다.
“상황을 설명해 봐. 왜 이렇게 일이 복잡해졌는지.”
“그게 원래 저희는 항복하려고 했습니다. 애초에 일이 틀어졌으니···.”
살짝 겁에 질린 녀석이 두서없이 주절거리고 있는데 다이슨 대위가 다가와서 말했다.
“선교를 장악하고 선장과 간부들을 체포했습니다. 이쪽입니다.”
“그래?”
이런 놈보다 선장이 낫겠군.
다이슨 대위를 따라가자 손을 뒤로 포박당한 채 바닥에 무릎을 꿇은 몇 사람을 해병대들이 감시하고 있었다.
“이들인가?”
“네. 처음에는 약간 저항했습니다만, 곧 순순히 사로잡혔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나는 앞으로 몇 발자국 나서며 물었다.
“누가 선장이지?”
잠시 후 한쪽에 무릎을 꿇고 있던 중년 남자가 초췌한 안색으로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내가 이 배의 선장이오.”
“흠, 어차피 항복할 건데 왜 백기를 올리지 않았지? 덕분에 일이 복잡해졌잖나?”
“흐흐흐, 항복해도 어차피 뒈질 목숨, 내가 왜 항복하겠소?”
“그럼 지금은 왜 항복했는데?”
그러면 끝까지 저항을 했어야지.
어이가 없네?
“그거야··· %#$#%@!*^##···.”
“뭐라고?”
웅얼거리는 말이 제대로 안 들려서 신경질적으로 소리쳤지만, 그는 오히려 피식하고 비웃음을 날렸다.
“됐소. 별로 말 하고 싶지도 않군.”
이 새끼, 날 화나게 해서 자기한테 좋은 게 없을 텐데 왜 이러는 거지?
“하, 네놈 설마 일레드 왕국에서 네 목숨을 구명해 주리라고 믿는 거냐? 설마 그렇게 멍청하지는 않지?”
일레드 왕국의 왕족쯤 되지 않는 이상, 아니, 그 정도라도 이놈이 살아날 확률은 0에 가깝다.
내가 그를 잡아먹을 기세로 으르렁거리며 다가가자, 지키고 있던 해병대원들이 황급히 한 발자국씩 물러섰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고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던 그놈의 고개가 들리는 순간 나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눈빛, 딱 걸렸다는 느낌의 득의에 찬 눈빛.
망할, 설마?
살짝 흥분한 나머지 놈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섰다는 것을 깨달음과 동시에 등 쪽으로 포박된 줄 알았던 그의 팔이 거짓말처럼 앞으로 튀어나왔다.
···이건 못 피한다.
섬광이 번쩍이고 미지근한 액체가 얼굴에 튀었다.
0.1초나 되었을까, 잠시 감았던 눈을 뜨자 경악에 찬 놈의 얼굴이 보였다.
내 쪽으로 뻗은 어깨, 그리고, 응?
털썩.
“끄아아아!”
머리가 쭈뼛할 정도로 처절한 비명이 터지면서 피보라가 뿜어져 나왔다.
팔꿈치 위쪽에서 잘려 나간 팔이 갑판 위에 떨어지며 나무를 붉게 물들였다.
“리안, 괜찮아?”
“어? 어, 어.”
얼마나 다급했는지 존칭도 까먹은 네이선이 어느새 내 앞을 가로 막고 섰다.
덕분에 비명을 지르며 팔이 잘린 단면을 왼손으로 움켜쥔 선장의 모습이 가려졌다.
그제서야 주변 상황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제일 안쓰러운 사람은 팔이 잘린 선장이 아니라 시체만큼 얼굴이 창백해진 해병대원들이었다.
저 친구들 머릿속에는 지금 무슨 생각이 떠오르고 있을까?
표정을 보아하니 일부러 포박을 헐겁게 하거나 한 것은 아닌 모양인데···.
“뭐, 뭣들 하나! 백작 각하를 보호하라!”
“백작 각하를 보호해!”
뒤늦게 누군가가 호들갑을 떨며 해병대들이 내 주변으로 몰려들었지만, 다시 한번 허공을 가르는 은빛 섬광이 그들의 접근을 막았다.
“모두 그 자리에 서! 더 접근하면 베겠다!”
네이선의 엄포에 해병대원들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그대로 굳었다.
“한 놈도 움직이지 마. 움직이는 즉시 목만 허공에 띄워 줄 테니.”
어쩐지 한기(寒氣)가 드는 기분이 들었다.
믿음직한 넓적한 등에서 눈에 보일 것 같은 농밀한 살기가 흘러나와 사방에 들어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