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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흙수저 선원으로 살아남기-416화 (415/420)

< <416화> 뼈다귀 하나도 못 가져가도록 >

“고생했네, 제독.”

“감사합니다, 총독 각하.”

내가 내민 손을 잡고 올라온 허쉬 제독이 싱긋 웃으며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는 이쪽을 기웃거리는 수병들을 쓱 둘러보더니 함교 방향으로 손을 뻗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함교에서 하시지요.”

“그러지.”

내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대기하고 있던 함장을 불러서 지시를 내렸다.

“함장, 지금 즉시 항해 준비하고 다른 함선에 신호를 보내도록. 예항 로프를 다시 조이고 경계 태세는 유지.”

“알겠습니다, 제독.”

대답하는 함장의 목소리가 유난히 밝게 느껴졌다.

함교로 자리를 옮긴 나는 허쉬 제독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출항 지시를 내린 걸 보면 이야기가 잘 풀린 모양이오. 너무 오래 걸려서 걱정했는데 말이지.”

“네, 총독 각하. 갑자기 난입한 벨로키나 측에서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만, 상당히 협조적으로 나오더군요.”

“다행이군.”

이건 놈들이 처음부터 이번 사태에 개입하기 위해 움직였다고 가정하면 당연한 일이다.

지금 상황에서 프레티아 왕국의 해군력이 약해져 봐야 자신들에게 딱히 이로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

폰테 섬을 놓고 벌어진 외교 문제와 스코타 후작 때문에 프레티아 왕국과 벨로키나 왕국의 분위기가 꽤 경색되었다고 해도, 감히 일레드 왕국과의 관계와 비할 바가 아니니 말이다.

물론 국력 차이가 워낙 심해서 외교적으로는 하하호호 하고 있지만, 무려 폐주(2왕자)를 부추겨 반란을 일으키게 만든 게 일레드 왕국이다.

심지어 두 나라는 국경까지 접하고 있으니 내부적으로 프레티아 왕국의 제1 적국은 일레드 왕국이었다.

“그런데··· 음···.”

나를 보며 잠시 눈치를 보던 허쉬 제독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작게 한숨을 쉬고는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그쪽은 총독께서 여기에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오히려 일레드 놈들은 전혀 모르는 것 같았지만 말입니다.”

말만 들어서는 그의 추측인 것처럼 들렸지만, 그의 태도는 방금 말한 사실을 확신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말에 나보다 먼저 반응한 사람이 있었다.

“그런! 말도 안 됩니다! 저조차도 출항 후에 제독께서 알려주시기 전까지 몰랐던 사실을, 어떻게 벨로키나 놈들이?!”

함장의 격한 반응도 이해가 되었다.

이번 계획을 총괄 지휘하는 사람이 허쉬 제독이라면, 실무 책임자는 분함대 임시 기함인 마들랜드의 함장이었으니까.

계획을 입안하고 세부 내용을 가다듬은 나와 국왕 및 일부 최고위 귀족들을 제외하면 가장 먼저 계획을 알아야 할 함장이 출항 후에 이야기를 들었으니, 이 계획이 외부로 새어 나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했다.

“함장,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게.”

조용한 내 말에 함장이 얼굴을 붉히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총독 각하. 너무 흥분해서 그만. 하지만 이 사실을 벨로키나 쪽에서 알았다면 그들의 첩보 수준이···.”

“···첩보가 아닐 수도 있지.”

“네?”

나는 어리둥절한 함장에게 시선을 돌려 허쉬 제독에게 물었다.

“제독, 벨로키나 쪽 대표로 나온 사람이 누구였소? 혹시 발레리아 백작이었나?”

“네? 아, 아닙니다. 대표로 나온 것은 저쪽 분함대 기함의 함장이었습니다. 이름이···.”

미간을 좁히며 기억을 더듬는 허쉬 제독을 보며 나는 조금 당황했다.

백작이 아니라고?

그럴 리가, 아! 나도 허쉬 제독을 보냈는데 발레리아 백작이라고 직접 나왔을 리가 없지.

아무래도 생각이 한쪽에 치우쳐서 시야가 좁아졌던 모양이다.

“아니, 내가 쓸데없는 말을 했군. 그보다 왜 그쪽이 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 거요?”

“다름이 아니라 회담을 마치고 서로 떨어지기 직전에 제게 조용히 말하더군요. 다음 교섭에서는 총독 각하께서 직접 나오셔야 할 것 같다고 전해달라고 말입니다. 저야 당연히 각하를 만나 뵈면 전달하겠다고 했습니다만···.”

“다음 교섭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오?”

“아차, 제가 말하는 순서가 반대로 되었군요. 이번 사건에 대한 시비는 본국의 벵가로쉬 항구에 입항해서 마저 가리기로 했습니다. 벨로키나 왕국 측은 중재를 위해 동행하기로 했구요. 일레드 쪽에서 계속 반대했습니다만, 벨로키나 왕국 측에서 이 제안에 동의하지 않으면 본 함대와 함께 강행 돌파도 감수하겠다고 하는데 어쩌겠습니까, 허허허허!”

협조적인 수준이 아니라 전폭적인 지원인데?

그런데 이게 공짜는 아닐 거란 말이지···.

“그렇군. 그래도 본국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경계에 만전을 기하는 게 좋을 것 같소.”

“물론입니다. 벵가로쉬라면 일레드 왕국에서도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니까요.”

“그럼 제독을 믿고 난 이만 가보도록 하겠소. 내가 계속 함교에 있는 것이 다른 이들 보기에 좋지 않을 테니 말이오.”

“아, 총독 각하께서도 피곤하시겠군요. 전령! 총독 각하를 모시게!”

“아니, 나는 내 부하들을 다독여야 하니 괜찮소. 다들 하루 종일 긴장하고 있었는데 이런 사소한 일까지 시킬 필요는 없을 것 같소.”

“각하께서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알겠습니다. 푹 쉬십시오.”

* * *

“너무 지나친 비약 아닐까? 그 발레리아 백작이라는 사람이 그렇게까지 똑똑해 보이지는 않던데?”

“맞아! 지금 리안이 말한 정도면 거의 예언자 수준이라고!”

개략적인 내 추측을 들은 네이선과 우르타는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이놈들 머릿속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은 나니까, 나보다 더 똑똑한 놈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나도 좀 의구심이 들었다.

이걸 다 예상하는 인간이 있다고?

그게 가능한가?

“잠깐만. 생각 좀 정리해 보자.”

내가 생각에 잠기자 우르타는 그대로 내 침대로 달려가 벌러덩 누워버렸고, 네이선은 언제 찾았는지 귀빈실에 비치된 술병을 꺼내 들었다.

···나도 아직 조금 불편한 귀빈실이 왜 너희에게는 편한 건데?

일단 발레리아 백작이 어떤 식으로든 일레드 왕국의 사략 선단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본국에서도 어느 정도 추측을 하고 있었으니 아주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카이덴이 폰테 섬을 향해 출항한 항구가 프롬힐이라고 했지.

프롬힐이라면 벨로키나 왕국과 인접하기도 했고, 제국의 해상진출에 늘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그들이니 카이덴의 선단에 대한 정보도 입수했을 수 있다.

특히 발레리아 백작은 지금 해군대신이 아닌가.

바다와 항구에 관한 정보라면 거의 첫 번째로 접할 수 있으리라.

일단 그 두 가지 정보를 조합하면 카이덴의 습격을 예측할 수는 있을 것 같다.

물론 습격 시간을 맞추는 것까지는 어렵지만 말이다.

아니지? 굳이 습격 시간까지 맞출 필요가 있나?

만약 내가 카이덴이 습격당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해도 결과는 비슷했을 것 같다.

왕궁에서 어차피 이야기를 들었을 테고, 어떤 식으로든 나는 대책을 강구했겠지.

그렇다면 결국 백작은 자기 때문에 내가 예상보다 더 빨리 왕궁에 가기만 하면 1차 목표를 달성한다고 본 건가?

좋아, 그렇다면 이번 계획에 대해서는···.

“···하, 그랬었나?”

“케헥, 쿨럭, 쿨럭!”

“으악, 드러워!”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혼잣말에 신나게 술을 목구멍에 때려 붓던 네이선이 격렬하게 기침을 하며 호응해주었고, 이 꼴을 본 우르타는 언제 누워있었냐는 듯 벌떡 일어나서 네이선을 놀려댔다.

“쿨럭, 우르타 너, 케헥, 쿨럭, 진짜 혼, 쿨럭, 혼난다?!”

“잡아봐, 잡아봐! 으헤헤헤! 못 잡겠지?!”

난 저 모질이가 한 대 맞는다는 것에 내 전 재산을 걸 수도 있다.

짜악!

···거봐.

“끄아아악! 아파! 아프다고! 네이선 나빠!”

“때려보라며?”

“내가 언제! 잡으라고 했잖아! 아아악, 아직도 아파! 네이선 멍청이!”

찰지게 얻어맞은 우르타가 온몸을 비꼬며 등짝을 문지르려고 버둥거리는 동안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온 네이선이 물었다.

“뭐가? 나도 뭔지 알려 줘!”

“하아, 너는 뭔 애를··· 네가 매번 반응해 주니까 재밌어서 계속하는 거잖아. 저 바보는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너까지 이러면 되겠냐?”

“아, 나도 아는데. 그런데 막상 저놈이 장난을 치면 열이 받는 걸 어쩌겠어?”

으음, 그건 그렇지. 나도 참기 힘들어.

“그나저나 뭔데? 뭔가 깨달은 것 같던데.”

“아, 별거 아니다. 발레리아 백작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니까 별로 어려운 건 아니더라고.”

“응? 어렵지 않다고?”

“나에게 사략 함대가 있다는 정보를 알게 하고, 내가 반응을 보이면 그 상황에 개입해서 이득을 취하기 위해 병력을 움직이면 되는 거니까.”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

여전히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네이선에게 다시 설명해 주었다.

“내 말은, 백작이 모든 사실을 예측할 필요가 없다는 거야. 어쨌건 내가 폰테 섬을 떠나게만 하면 나는 당연히 왕궁으로 가야만 하는 상황이었고, 그러면 무조건 사략 선단에 대해서 알게 되니까.”

“엥? 그럼 지가 그냥 알려주면 되지!”

“백작이 갑자기 내게 그런 말을 하면 내가 믿었겠냐?”

“아하?”

어느새 슬그머니 다가와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우르타를 위해 방금 했던 설명을 다시 하자, 우르타가 손을 번쩍 들며 물었다.

“그런데 저기 몰려온 해군은? 그건 말이 안 되는데?”

“그것도 어렵지 않지. 왕궁에서 소식을 들은 내가 어떤 식으로든 반응을 할 거라고 생각해서 우리 쪽에 집중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예정에도 없던 탐사선 시험 항해가 생긴 거야. 어떤 방식으로건 문제가 생길 거라고 본거지.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상황을 포착해서 이권을 챙기려면 함대를 보내는 수밖에 없잖아? 문제가 발생할 장소가 다른 곳도 아니고 바다 위니까.”

“하지만 어디서 문제가 생길지는 모르잖아?”

“정확한 위치는 몰라도, 대충 범위는 나오지. 그 범위를 내가 했던 것처럼 몇 개 분함대를 편성해서 돌아다니게 하면 되니까.”

반푼이 함대인 내 2함대를 빼면 정규 함대가 하나밖에 없는 프레티아 왕국과 달리, 벨로키나 왕국은 여전히 3개의 함대를 운용하고 있다.

그러니 해군대신쯤 되는 사람이라면 함선 20~30척 정도는 작전에 동원할 수 있지 않겠어?

일레드 왕국도 함대 수준의 함선을 동원했으니 말이야.

그리고 30척 정도면 문제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해역을 어느 정도 감시할 수 있는 병력이다.

“어··· 듣고 보니까 그럴듯하기는 한데?”

“뭐가 ‘그럴듯’이야? 내가 보기에는 리안이 한 말이 다 맞는데!”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멍청이 네이선은 모르겠지만 난 다 알아!”

그만하라고 이 자식들아!

그나저나 발레리아 백작, 도대체 뭘 노리고 이렇게까지 공을 들이는 걸까?

설마 또 인어 타령을 하는 것은 아니겠지?

* * *

우리가 뱅가로쉬 항구에 도착하자, 당연히 항구는 난리가 났다.

다들 자기들의 국적기와 소속 해군기를 올리고 있기는 한데, 어찌 되었건 무려 50척이 넘는 대함대가 나타난 거다.

그 가운데에 있는 내가 봐도 살 떨리는 광경인데,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얼마나 기겁하겠어?

지금 이 세 나라 연합 함대(?)가 보유한 함포만 1,000문이 넘을걸?

해군의 지원이 없다면 아무리 요새화된 항구라도 바로 백기를 내걸어야 할 전력인 거지.

우와, 생각해보니 지금 꽁지에 불이 붙은 듯 도망가는 상선들이 이해가 된다.

“진짜 민폐가 이만저만이 아니군요.”

씁쓸한 웃음을 짓는 허쉬 제독에게 나는 짐짓 쾌활하게 대답해 주었다.

“그래도 이제 조금은 안심해도 될 것 같소. 설마 저놈들이 본국의 항구에서 사고를 치지는 않을 테니.”

“그렇기는 합니다만, 이제 곧 있을 협의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습니다. 일레드 쪽의 요구야 그렇다고 해도, 벨로키나 쪽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허쉬 제독은 순수한 군인이다.

물론 함대 부사령관까지 오른 인물이 정치력이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용담호혈인 정계에서 직접 활동하는 사람은 부사령관이 아니라 사령관이라는 말이지.

게다가 허쉬 제독은 작전권은 위임받았을지 몰라도, 예정에 없었던 벨로키나 왕국과의 정치, 외교적 협상에 대한 권한은 전혀 받지 못했다.

그러니 그 자리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어차피 제독이 뭘 결정할 필요는 없소.”

“당연히 제게는 그런 권한이 없습니다만, 상대방 측에서 가만히 있겠습니까? 만약 그로 인해 벨로키나 왕국 측이 입장을 번복해 버린다면···.”

걱정이 가득한 허쉬 제독의 말에 나는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 벨로키나 왕국이 그리 쉽게 입장을 번복하지도 않겠지만, 번복해도 큰 문제는 없을 거요. 이미 여기까지 온 상황에서 일레드 왕국 측에서도 계속 억지를 부리기 어려울 테니.”

“하지만 벨로키나 왕국의 함대가 떠나고 저들이 난동을 부리면 지금 전력으로는 억지하기가 어렵습니다.”

“걱정 마시오. 저놈들이라고 전쟁을 일으켜도 된다는 명령을 받지는 않았을 테니까.”

“끄응···.”

여전히 얼굴이 펴지지 않는 허쉬 제독을 보니 조금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야 어쨌건 결국 내가 제안한 작전 때문에 엄한 고생을 하고 있는 거잖아.

저렇게 싫어하는 사람을 굳이 부려 먹을 필요 있나.

어차피 벨로키나 왕국 측에서도 내가 있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는 것 같으니까.

“정 내키지 않는다면 지금부터는 내가 나서도록 하겠소.”

“네? 하지만 총독 각하께서는 현재 이곳에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 않습니까? 게다가 불상사라도 발생한다면···.”

말로는 내가 나서는 것을 말리고 있지만 표정은 활짝 개어 있는 것이, 꼬리가 있다면 프로펠러처럼 흔들 기세다.

에이, 그냥 내가 나서서 싫은 소리 좀 듣지 뭐.

무리한 요구를 해오면 ‘나는 권한이 없으니 국왕 폐하께 직접 문의하라’를 시전하면 되겠지.

권한이 없다는데 지들이 뭘 어쩌겠어?

일레드 왕국 쪽?

걔들은 이제 그냥 비 맞은 개처럼 돌아가면 되는 거다.

뭘 기대하고 여기까지 꾸역꾸역 왔는지 모르겠지만, 뼈다귀 하나도 못 얻어가게 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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