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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흙수저 선원으로 살아남기-420화 (419/420)

< <420화> 부정(父情) >

“다 죽인다라. 이것 참, 이런 협박은 또 처음이라 새롭군요. 흐흐흐.”

“왜, 내가 못 할 것 같나?”

내 엄포에도 불구하고 놈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능글맞게 대답했다.

“아이고, 그럴 리가요. 각하께서 마음만 먹으면 저희 같은 놈들을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니겠지요. 그런데 오늘 데리고 오신 인원은 좀 적은 것 같습니다만? 제 부하들이 충성심으로 똘똘 뭉친 기사 나으리들도 아니고, 각하께서 공격을 명하시면 뿔뿔이 흩어질 것 같은데, 추격은 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때 잭들의 뒤쪽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다.

그리고 날렵해 보이는 한 남자가 튀어나와 대장 잭(?)의 귀에 대고 몇 마디를 중얼거렸다.

허쉬 제독이 내가 부탁한 일을 제대로 한 모양이다.

느긋해진 나와 달리 귓속말을 들은 대장 잭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었다.

“이제 소식이 도착한 모양이군. 들었겠지만 우린 추격 따위는 하지 않을 거야.”

내 말에 살짝 날이 선 목소리로 대장 잭이 대꾸했다.

“각하, 설마 이 뒷골목을 지우시기라도 하실 생각이십니까? 저희도 엄연히 프레티아 왕국 사람인데 이렇게 일을 크게 벌이시면 아무리 각하라도 수습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만?”

“웃기는군, 잭.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국법을 숨 쉬듯이 어기는 너희가 감히 국왕 폐하의 신민을 자처하는 건가?”

“······.”

골목을 틀어막고 있는 잭들의 숫자는 내가 데리고 온 병력을 한참 웃돌았지만 나는 여유롭게 웃을 수 있었다.

지금쯤이면 허쉬 제독의 요청에 의해 주둔군 소속 육전대 500여 명과 함대 소속 수병 300여 명이 뒷골목을 완전히 봉쇄하고 있을 테니까.

처음부터 대규모 병력이 투입되면 이 쥐새끼 같은 놈들이 죄다 굴속으로 숨거나 도망갈까 봐 일부러 내가 시선을 끄는 사이에 이루어진 포위 작전이었다.

애초에 각 도시의 뒷골목이 공권력의 전면적인 공격을 받지 않는 이유는 이들이 강해서가 아니다.

난폭하고 잔인하다고 해봐야 빈약한 무장을 갖춘 민병대 수준도 안 되는 놈들이 정규군과 상대가 될 리가 없지 않은가.

다만 이놈들을 아무리 때려잡아도 그 순간일 뿐, 어차피 또 다른 놈들이 똑같은 짓을 하기 때문에 방치하는 것에 불과하다.

“후우, 그래도 고작 저희를 때려잡자고 그 많은 병력을 동원하지는 않으셨을 것 같은데, 원하시는 게 뭡니까?”

“왜 같은 말을 여러 번 하게 만들지? 그놈들이 어디 있는지만 말해라. 그러면 하잘것없는 너희들의 목숨 따위는 거두지 않을 테니.”

대답이 들려온 곳은 전혀 다른 곳이었다.

“이런 젠장! 저놈을 믿는 게 아니었는데! 이보쇼, 총독 각하! 정말 그놈들이 어디 있는지만 말하면 그냥 돌아가는 거요?”

역시나 앞으로 나온 잭들은 서로 다른 세력이었던 듯, 반대쪽에서 나온 다급하지만 껄렁함이 느껴지는 외침에 네이선의 시선이 가장 먼저 돌아갔다.

“···그, 그러니까, 돌아가··· 시는 겁니까?”

무언의 압박으로 말투 교정을 해준 네이선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눈이 나를 향했다.

“젠장, 저 멍청한 놈이!”

나와 제법 대거리를 하던 잭은 바로 욕지기를 내뱉었다.

확실히, 이놈이 다른 놈들보다 배짱도 좋고 머리도 잘 돌아가는 것 같다.

뒷골목을 전전하기에는 재능이 아까운 놈이다.

인성만 제대로 갖췄다면 영입 제안이라도 해봤을 것을.

“너와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군.”

상대가 누구건 나에게는 별 상관없는 일이다.

어젯밤에 우리를 엿 먹인 암살자 놈들에 대한 정보만 얻을 수 있다면 말이지.

“일레드 놈들입니다! 지금은 다 튀었습니다만!”

뒤에서 터져 나오는 다급한 외침에 슬며시 떠오르는 미소를 겨우 참아냈다.

이 항구의 뒷골목을 삼분하고 있는 조직들의 수장들로 보이는 세 남자, 아마 내 앞에 나서기 전에 자기들끼리 물밑 교섭이 있었을 거다.

그나마 똑똑해 보이는 저 녀석이 협상을 주도하기로 했겠지만··· 애초에 서로 간에 신뢰도 없이 급조된 계획이 거짓말처럼 완벽하게 이루어질 리가 없다.

뭐, 내 입장에서 나쁜 일은 아니지.

“그건 나도 알아. 날 설득하려면 더 참신한 이야기를 해줘야 할 것 같은데?”

당연히 몰랐다.

심증이야 있었지만 딱 그 정도, 그래서 이렇게 거창하게 일을 벌인 것이기도 하고.

하지만 내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마지막에 말을 꺼낸 잭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그는 빠르게 아는 것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이 멍청한! 그따위로 다 내놓을 거면 도대체 왜 이 지랄을 떨어댄 거야?!”

두 번째로 나선 잭이 암살자들에 대한 내용을 다 내놓자 세 번째로 나섰던 잭이 분통을 터뜨렸다.

저 멍청이는 알고 있을까?

자기가 나서지 않았다면 놈들의 요구사항을 최소한 한 가지 정도는 들어줄 수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놈들이 헐렁한 연합을 한 이유야 뻔했다.

암살자들에 대한 정보를 대가로 뭔가를 요구하려고 했겠지.

“네이선, 너무 시끄럽지 않아?”

내 말에 네이선이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네이선이 반도 다가서기 전에 분통을 터뜨리던 잭은 사색이 되어 다른 잭들 사이로 숨는다.

“제, 젠장! 난 이번 일에서 빠진다! 네놈, 오늘부터 편안하게 잠들 생각은, 히익!”

부하들 사이에 숨어서도 두 번째 잭을 향해 악언을 퍼붓던 세 번째 잭은 네이선이 허공에 장난처럼 칼을 휘두르자 바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일단의 잭들이 우르르 물러서기 시작했다.

“포위는 풀어주시는 겁니까?”

“진즉 아는 대로 불었으면 이런 귀찮은 일은 안 해도 되잖아? 나도 무리해서 네놈들을 청소할 생각은 없거든.”

“···감··· 사합니다.”

처음부터 내가 이 항구의 영주나 주둔군 사령관도 아닌데 피해가 발생할 것이 뻔한 뒷골목 토벌 같은 무익한 작전을 강행할 수는 없었다.

아마 잭들도 대충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는 것이 발목을 잡았겠지.

미친 척하고 토벌을 강행하면 나는 정치적인 타격을 입는 정도로 끝나겠지만, 자기들은 대부분 목숨을 잃을 것이 분명했으니까.

“그래서, 더 할 말은 없나? 놈들을 추격할 방법이라던가, 놈들이 남긴 증거품이라던가.”

“말씀드린 대로 워낙 조용히 있던 놈들인데다가 어젯밤에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서··· 이미 도주할 준비까지 다 되어 있던 모양입니다.”

힘없는 잭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렇다면 더 할 말이 없군. 앞으로 똑같은 일이 발생하면 책임 소재 따위는 찾지도 않을 거야. 바로 이 뒷골목부터 쓸어버릴 거니까.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수상한 놈들이 나타나면 무조건 치안관에게 보고하라고. 알았나?”

“그건!”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는 잭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나는 몸을 돌렸다.

뒷골목에 흘러들어오는 수상한 놈이 한두 놈이겠냐마는, 아니, 뒷골목에 흘러들어오는 놈들 중에 수상하지 않은 놈이 있겠냐마는.

그건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잖아?

예상대로 아무런 수확도 없었다.

수년 전부터 흘러들어온 놈들, 어제가 되기 전까지 쥐 죽은 듯이 지내서 뒷골목의 잭들도 적당히 감시만 하던 놈들이었다.

몇 번의 도발을 깔끔하게 막아내서 상당한 실력자라는 것을 확인했고, 일레드 쪽에서 넘어오는 정황은 포착했다고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놈들의 아지트는 이미 먼지 한 톨 찾기 어려울 만큼 깔끔하게 비워졌다고.

“부탁이 있습니다! 각하.”

피식.

나도 모르게 썩은 미소가 흘러나왔다.

내가 몇 마디 말을 섞어줬다고 해도 지가 감히 내게 뭔가를 부탁할 처지가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난 이제 일개 선원 리안이 아닌데?

“거기까지. 이대로 물러나면 이번 한 번은 그냥 넘어가 주지. 내가 다른 귀족이었다면 넌 이미 죽었다, 잭.”

어렵지 않게 목적을 달성하게 해줬으니 이 정도 호의는 베풀어도 되겠지.

* * *

상황을 모두 정리하고 허쉬 제독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밤이 깊었다.

나도 피곤하지만, 제독 역시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직 현역이라고 하지만 백발이 성성한 노인네가 잠도 제대로 못 자고 하루 종일 긴장한 상태로 뛰어다녔으니 그럴 만도 했다.

“으음, 역시 그렇군요. 결과는 좋지 않지만 고생하셨습니다, 총독 각하.”

“제독이 잘 도와준 덕분이오. 크게 힘들 것도 없었고.”

“별말씀을요. 그럼 오늘은 여기에서 쉬실 생각이십니까?”

“굳이 이 시간에 배로 돌아가기도 그렇고, 사실 내 배도 아니잖소?”

내가 가볍게 농담을 던지자 허쉬 제독이 정색하며 대답했다.

“불편한 부분이 있었다면 미리 말씀하시지 그러셨습니까? 이럴 게 아니라 제가 지금 당장···.”

“하하, 농담이오, 제독. 그냥 오랜만에 육지에서 푹 쉬려고 그러니 너무 신경 쓰지 마시오. 그리고 혹시 벨로키나 쪽에서 손님이 오면 그··· 내가 과로로 몸이 안 좋다고 해줬으면 하는데.”

“아, 그 이오시프 함장 말입니까? 하긴, 총독 각하의 입장이 퍽 난처하시겠습니다.”

“쩝. 오늘 밤에라도 적당한 변명을 생각해야겠지.”

대화가 끝나자 허쉬 제독은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게 예를 취한 허쉬 제독이 대기하고 있던 수병들과 함께 여관 문을 나섬과 동시에 하품이 터져 나왔다.

“흐아아암. 오늘은 진짜 피곤하네.”

기지개를 켜며 찌뿌둥한 몸을 풀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방음이 잘 된다는 특실을 나서자 휑한 1층 홀이 눈에 들어왔다.

시간이 늦기는 했어도 알코올중독에 빠진 남자들이 몇 테이블 정도는 있을 법도 한데, 주인이 알아서 다른 손님을 받지 않은 모양이다.

아무리 돈 좀 있는 손님만 받는 고급 여관이라고 해도 진상 손님은 있었고, 괜히 진상 손님이 높으신 귀족 나으리에게 시비를 걸었다가는 영업정지를 맞을 판이니 알아서 몸을 사린 것이다.

시선을 돌려 계단 쪽을 보니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 위에 튀어나온 두 개의 머리통이 보였다.

“너네 거기서 뭐 하냐?”

“이제 끝났어?”

“내려가도 되나?”

올라가서 먼저 자라고 했는데 허쉬 제독이 떠날 때까지 날 기다린 모양이다.

“그냥 자라니까 왜 안 자고 있어? 피곤하지 않아?”

내가 피식 웃으며 묻자, 우르타와 네이선이 쿵쾅거리며 계단을 뛰어 내려왔다.

“나 배고파! 밥 먹자, 응?”

“이제 술 마셔도 되잖아? 여기 맥주가 엄청 맛있다던데!”

우르타 너 밥 먹은 지 이제 세 시간도 안 지났잖아.

오밤중에 무슨 밥 타령이야?

그리고 네이선 네놈은 오늘처럼 피곤한 날에도 꼭 술을 마시고 싶냐?

“야, 나 피곤해. 이오시프 그놈을 어떻게 할지 생각도 해야 한단 말이야. 술 마시려면 너희나 마셔.”

어떻게든 자리를 피해 보려고 했지만 두 마리의 찰거머리를 이길 수는 없었다.

결국 내 호위를 위해 같은 여관에 자리를 잡았던(내 돈으로···) 선원 여섯 명까지 합세해서 가벼운(?) 술자리를 갖고 있는데 갑자기 네이선의 눈초리가 바뀌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네이선이 자리에서 일어섬과 동시에 현관문이 열리며 후드를 뒤집어쓴 인영이 안으로 들어왔다.

“아이고, 손님. 죄송합니다만 오늘은 손님을 더 받을 수가 없습니다.”

음식과 술을 나르던 점원 하나가 황급히 뛰어가서 완곡한 입구컷을 시전했지만, 그는 말없이 후드를 뒤로 넘겼다.

우당탕탕!

채앵!

선원들이 들고 있던 식기와 음식, 술잔을 내던지고 급히 허리춤과 품 안으로 손을 넣었다.

그리고 네이선의 커틀라스가 뽑혀 나오며 맑은 쇳소리가 울렸다.

“뭐야? 꼴을 보니 술 마시러 온 것은 아닌 것 같고.”

서늘한 네이선의 말에 낯익은 얼굴의 남자가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칼슨이오. 아··· 두목이 전달하라고 했소.”

응? 잭이 아니야?

뒷골목의 잭들이 잭이 아닌 다른 이름을 밝히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었기 때문에 살짝 호기심이 생겼다.

굳이 이 시간에 우리에게 나름 위협(?)이 될 수 있는 놈이 혼자서 방문한 이유도 궁금했고.

내가 고갯짓을 하자 우르타가 냉큼 튀어 나갔다.

“응? 책인데?”

고개를 갸웃거리며 건네준 얇은 책자를 펼치자 쪽지 한 장이 흘러내렸다.

[최근에 입수한 것은 아니지만 놈들의 아지트에 잠입했다가 겨우 도망쳐 나온 부하의 진술 내용입니다. 부디 각하께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 책을 전달한 녀석을 받아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원하는 것은 그것 하나뿐입니다. 보신 것처럼 능력이 부족한 아이도 아니고, 지금까지 더러운 일은 한 번도 시키지 않았습니다. 뒷골목에 어울리지 않는 아이이니 제발 각하께서 거두어 주셨으면 합니다.]

맞춤법도 좀 틀린 데다가 글씨체도 엉망이었지만 대충 그런 내용이었다.

뒷골목에서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겼을 잭의 왕초 녀석이 이렇게 절절하게 뒷골목에서 빼주고 싶어 하는 녀석이라.

놈들의 조작이 섞였는지 확인할 수도 없는 진술서 따위보다 눈앞의 남자, 칼슨에게 흥미가 생겼다.

“칼슨이라고 했지? 너, 이 쪽지에 뭐라고 쓰여 있는지 알고 있어?”

“···네, 총독 각하.”

“하하, 네 두목과 무슨 관계지?”

“···아버지입니다.”

그래, 대충 그럴 줄 알았어.

그 정도 관계는 되어야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있겠지.

정말 눈물 나는 부정(父情)이라고 해야 할까?

자신은 똥 밭에 굴러도 자식만큼은 양지(陽地)로 내보내고 싶은 모양이다.

“형제는?”

“···모릅니다.”

“모친은?”

“7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내 밑에서 일하고 싶나?”

“받아주신다면.”

재밌네.

그런데 내가 아무리 출신 성분에 구애받지 않고 사람을 쓴다고 하지만, 뒷골목 출신, 그것도 아비가 뒷골목 두목이라면 좀 그렇단 말이지.

“네이선, 저놈이 막은 공격, 우리 함대에서 몇 명이나 막을 수 있어?”

“웬만한 놈들은 다 막을···.”

볼멘소리를 내뱉는 네이선에게 눈치를 한 번 주고 다시 물었다.

“솔직하게 말해.”

“끄응··· 다섯, 여섯··· 한 열 명쯤 될 겁니다. 그건 제가 전력을 다하지 않아서!”

주절주절 변명을 늘어놓는 네이선을 놔두고 앞으로 나섰다.

열 명이다. 네이선에게 몇 년이나 훈련을 받은 놈들 중에서 고작 열 명이라는 거다.

얼굴을 보아하니 나이도 이제 막 20대 후반이나 되었을까, 재능이 있다는 말이겠지.

“내가 용병 출신까지도 받아 봤는데 뒷골목 출신은 처음이거든. 내가 너를 믿어도 될까?”

“어차피 배 위에서는 배신도 못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딱딱하게 굳은 표정을 보니 영 내키지 않는 것 같은데.

두목 겸 아버지가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하는 것 같다.

“확실히 실력은 좋아. 이대로 뒷골목에 눌러앉으면 몇 년 후에는 두목 노릇도 할 수 있겠지. 그런데 굳이 내 밑으로 오겠다고?”

“어머니의 소원이셨습니다.”

내 밑에서 일하는 것이 소원은 아니었을 테니, 뒷골목을 떠나서 사는 것이 소원이었던 모양이다.

“효자네. 형제가 누군지도 모르는 것을 보니 어머니도 정식 부인은 아니었던 것 같고. 힘들게 살았나 봐? 아비의 본부인에게 괴롭힘도 당했을 것 같고.”

“아버지는 부인이 없습니다. 어머니도 하룻밤의 실수로 절 낳으셨을 뿐이지요. 제가 당신의 아들인 것은 인정해 주어서 어렵게 살지는 않았습니다.”

약점을 만들기 싫어서 가족을 꾸리지 않았던 건가?

그래도 하룻밤 실수로 생긴 아이를 죽이지 않고 아들로 인정까지 해주었다니 아주 쓰레기는 아닌 모양이다.

뒷골목에서 내보내 주려고 이렇게 노력도 하고 말이지.

“더러운 피를 물려주어 미안하다고, 아직 늦지 않았으니 떳떳하게 살라고 하셨습니다. 처음으로 아비 같은 말을 하더군요. 앞으로 찾아오지 말라는 말과 함께.”

···에이, 젠장.

이놈의 세상은 뭐 조금만 파면 다 아픈 사연이야?

< <420화> 부정(父情)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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