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 - 4. 여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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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적으로 사람들은 너무 충격적인 것을 보면 제대로 된 반응을 못 하는 모양이다.
벽에 날아가서 처박힌 엘리야가 긴급 투입된 의료진에게 실려 나가는 와중에도, 건물 전체에는 누군가 조금만 크게 숨을 쉬어도 들릴만한 침묵이 묵직하게 내려앉았을 뿐이었다.
모두의 시선에서 아예 영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으니.
“승리, 다우드 캠벨.”
하지만 심판에게서 어안이 벙벙한 기색으로 그런 선언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방금 그거 뭐야?!”
“저 놈 대체 뭐하는 놈이야?!”
귀가 찢어질 것 같은 폭음이 사방에서 터져나왔다.
다우드 캠벨이 누구냐. 캠벨 남작가가 대체 뭐하는 동네냐, 이럴 때가 아니라 빨리 저 녀석에 대한 정보를 긁어모아야 할 때다...
나를 중심으로 세계가 미친 듯이 시끌벅적해지는 상황에서, 나는 혼자 오롯이 서서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본인.
올스텟 F.
정체불명 스킬 2개가 스펙의 전부인 밑바닥 신입생.
현재 아카데미 입학 1일차.
학원 생활 시작과 동시에 주인공을 일격으로 제압해버렸다.
“...아, 씨발.”
이거 뒷수습 어떻게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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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립 아카데미 엘판테는 대륙 각지의 교육 기관 중에서도 한 손에 꼽힐만한 곳이다. 비견될 수 있는 곳은 기껏해야 성황국의 [대신전]이나 부족 연합이 건설한 [투쟁의 용광로]정도겠지.
그리고 그런 교육 기관쯤 된다면, 당연히 교수진의 면면도 화려한 인간들뿐이다.
“...”
“...”
그러니, 지금 상황은 틀림없이 이질적이다.
그런 사람들도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으니.
테이블 중앙에 박혀 있는 마력 수정에서는 안쪽에서는 엘리야 크리사낙스가 주먹 한 방에 나가떨어지는 영상이 절찬리로 재생되고 있었다.
“첫번째 경우의 수로는.”
기사학부의 학부장이 묵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탁월한 사기꾼인 것 같습니다. 이 다우드라는 학생.”
“...갑자기 평가가 박하구만, 콘라드?”
“아무튼 말이 안 된다는 소리입니다.”
총장의 웃음기 섞인 대답에, 얼굴에 십자 흉터가 새겨진 중년 남성이 머리를 쓸어넘기며 답했다.
“어느 정도 식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걸 보자마자 다 알아차렸을 겁니다. 이 다우드 캠벨이란 녀석, 분명히 대련 시작 전까지 아무것도 없던 놈입니다. 전투 기술은 물론이고 몸에 지니고 있던 이능조차 아무 것도 없었겠죠. 하지만...”
이어서 그가 영상을 조작해 엘리야가 얻어맞는 시점으로 화면을 조정했다.
“이 일격만큼은, 틀림없는 ‘진짜’입니다.”
“진짜라는 말은?”
“이 아카데미에 있는 인간 중 저걸 직격으로 맞았을 때 버틸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란 소리입니다. 일단 저부터 그러니까.”
그 말에 방 안에 얹힌 침묵이 훨씬 더 가중되었다.
당장 이런 말을 꺼내놓은 사람이 대륙 모든 기사들의 정점이라는 황실 근위대 출신이다. 출신을 생각하면 도저히 학생 신분을 달고 있는 이에게 바칠만한 찬사는 아니겠지.
이 방에 있는 인간들이 대륙에서 손 꼽히는 인재들로만 구성된 교수진이라는 걸 감안한다면 더더욱.
“불법적인 약물이든, 밝혀지지 않은 마도구든... 무슨 ‘수단’을 사용해서 일시적으로 강한 화력을 냈다. 그쪽이 확률이 높죠. 아마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것 같습니다만.”
왜냐하면.
그게 아닐 경우, 이 다우드 캠벨이란 놈의 존재는 훨씬 골치 아파지니까.
“그리고 다른 경우의 수는.”
그가 잠시 말을 멈추고 피식 웃었다.
마치 자신도 이런 말을 내놓는 게 어이가 없다는 것처럼.
“괴물이라고 불러도 될 천재입니다. 역대로 봐도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표현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겠지.
누가 보아도 다우드 캠벨이 승리할 가능성은 만분의 일조차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상대는 ‘그’ 엘리야 크리사낙스다. 황가에서도 예의 주시 중인 차기 [용사] 후보.
범재는 평생을 발버둥 쳐도 닿을 수 없는 영역에 닿은 전투 기술, 대해와도 같은 이능 보유량,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꺾이지 않는 강인한 정신력.
어느 것 하나 다우드가 가지지 못한 재능들이다. 적어도 서류상으로 이 남자는 정말로 벌레 수준의 재능이었으니까.
“...”
문제는, 그런 파멸적인 격차가 주먹질 한 방에 메꿔졌다는 점이다.
그 방법을 도저히 알 수 없어서 그저 ‘재능’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존재에 의해.
그리고 정말로.
만약 사기꾼이 아니라 정말 진실된 재능의 총체라면.
‘폭풍의 눈이 되겠지.’
일대 파란을 몰고 올 존재가 될 것이다.
콘라드가 그리 생각하며 턱을 쓰다듬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학생의 승리를 순순히 인정하기도 어렵습니다. 켄드리드 변경백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요.”
총장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꺼내놓은 말에 콘라드도 고개를 끄덕였다.
켄드리드 변경백. 트리스탄 공작가와 사이가 험악하기로 유명한 제국의 유서 깊은 명문가 중 하나.
엘리야 크리사낙스의 뒤를 열성적으로 봐주고 있는 후원가로서, 켄드리드 변경백은 엘리야가 가진 ‘상품성’을 조금도 훼손하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
콘라드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분명히 학생을 가르치기 위해 설립된 공간에서 대체 어느 순간부터 정치에 신경을 써야했단 말인가.
재능있는 학생을 발견했다면 응당 그에 걸맞는 대접을 해줘야 함이거늘.
“하지만 분명히 눈에 띄는 학생을 그냥 내버려 두는 것도 학원 입장에서는 큰 손해겠지요. 사기꾼인지 아닌지는 어차피 조만간 밝혀질 테니, 일단 두고 봅시다.”
그리고 그런 콘라드의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총장이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콘라드로서는 눈이 번쩍 뜨이는 문장이었다.
“두고 보자고 하심은?”
“올해는 특히 재미있는 신입생이 많죠. 따로 관리해야 할 정도로 개성이 강한 학생들도 많구요.”
그런 말을 꺼내놓는 어투는 여전히 가벼웠지만.
“만약 학장이 그런 말을 할 정도로 이 학생이 우수하다면... 분명히 맡아줄 역할이 있을 겁니다. 그들을 위해.”
틀림없이, 의미심장한 울림이 있는 문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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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주인공을 때려눕힌 상황의 뒷수습에 대해서 좀 생각해봤는데.
역시 그건 미래의 내가 해결할 문제다.
“...”
아니, 실제로도 그렇다.
지금도 내 기숙사 바깥에서는 나를 한 번만 만나게 해달라고 아우성치는 인간들이 수두룩했지만, 그걸 당장 내가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지 않나.
하필이면 보는 눈도 엄청 많은 자리에서 화려하게 저질러 준 덕분에 지금 내 인지도는 떡상의 떡상을 반복 중이다.
[ 켄드리드 변경백이 내세운 신성新星, 입학과 동시에 충격의 패배?! ]
[ 특집 기사: 화제의 인물 다우드 캠벨. 그는 누구인가? ]
쓸데없이 현실적인 고증 하나.
찌라시는 원래 세계나 빙의한 게임 세계나 별 차이가 없다.
고작 하루 만에 나에 대해서 말도 안 되는 정보들을 양산하고 있는 타블로이드지들을 훑어보며 쓴웃음을 짓는다.
내가 제국 기사단장의 숨겨진 자식이라 ‘카더라’. 사실 아카데미에서 비밀리에 키워낸 최강 생명체라 ‘카더라’.
장난하냐 진짜.
뭐, 하지만 그런 쓰레기 같은 매체 사이에서도 건질 건 있다.
하루 동안 방에 틀어박혀서 현재 상황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으니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이 있거든.
[ 켄드리드 변경백 가문, 엘판테 아카데미에 공식적으로 진실 규명 요청- ]
[ 대련이 완벽한 조작극이라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연이어- ]
인지도가 폭등한 것에 대한 반동인가, 생각보다 여론이 곱지만은 않다는 점.
엘리야는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전부터 온갖 업적을 산처럼 쌓아온 ‘초신성’으로 기대를 받던 몸이다. 팬층이 탄탄하다고 할까.
느닷없이 튀어나온 엑스트라 A가 일격에 쓰러트렸다고 해봐야 순순히 박수를 받기도 힘든 일이다.
‘뭐 그건 어쩔 수 없고.’
남들이 나에 대해 뭐라고 씹어대건 알 바 아니다. 내 목적은 아무튼 살아서 엔딩까지 직행하기 단 하나니까.
입학 첫날부터 주인공을 패서 생길 나비 효과 정도야 미래의 내가 어떻게든 할 거다.
이 세계에서 강해질 방법과 위기를 헤쳐나갈 방법 정도야 눈 감고도 줄줄 읊는다. 상황에 맞춰서 해결책을 짜 올리면 그만이지.
그것보다는.
< 기프트 관련 인물 알람 >
▼ 엘노어 에리나리제 라 트리스탄
[ 신뢰 1단계 ] >>> [ 신뢰 2단계 ]
[ 수령 가능한 보상이 있습니다! ]
[ 관련 이벤트 발생까지 D-1 ]
▼ 아르무트 남작
[ 호기심 2단계 ]
[ 수령 가능한 보상이 있습니다! ]
▼ 루펜 자작
[ 호기심 1단계 ]
[ 수령 가능한 보상이 있습니다! ]
▼ 그론트 자작
[ 관심 3단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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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기프트 관련 인물창에 촤르륵 나열되어 있는 인물들을 보고 있으니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아무래도 [치명적인 매력] 스킬의 영향이 있기도 했겠지만, 엘리야를 날려버린 내 모습이 어지간히도 인상적이었는지 수많은 이름들이 창에 찍혀 있었다.
각각 다른 단어가 찍혀 있는 인적 사항들을 보며 정보를 정리한다.
호기심 → 관심 → 신뢰 순으로 호감도 상태가 변하는 모양이지. 위쪽으로도 상태가 더 있는 모양이지만, 당장은 여기까지 밖에 없는 느낌이다.
각 상태 안에서는 총 5단계까지 존재하는 것 같고.
가장 높은 건 역시 엘노어다. 신뢰 2단계.
‘좀 이상하긴 해.’
스토리 안에 존재하는 ‘중요 악역’들도 분명히 내 모습을 봤을 텐데, 그 이름들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적혀있는 건 전부 엑스트라에 가까운 인물들뿐.
이유가 여러 가지 있겠지.
자기 에고가 너무 충만해서 남한테 관심이 없는 놈도 있을 거고. 태생이 미친놈이라서 세상살이의 관점이 다른 놈도 있을 거고.
문제는.
그중에서도 가장 나한테 관심이 없어야 할 최종 보스께서, 왜 가장 호감도가 높은 건데?
기껏해야 호기심~관심에서 머무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혼자서 신뢰 2단계를 마크 중이시다.
대체 왜?
“...”
잘은 모르겠지만.
엘노어의 관련 이벤트도 당장 내일이다. 보상을 준다고 하면 거절할 이유가 없지.
보상으로 받은 스킬 두 개 중 하나만으로도 주인공을 제압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뭐가 날아올지 기대가 되는데.
[ ‘엘노어’의 기프트 보상을 수령합니다. ]
[ ‘특성: 트리스탄류 검술劍術’을 획득하였습니다! ]
< Mastery Info >
[ 특성: 트리스탄류 검술 ] [ 등급: 기초 ]
[ 검술 명가 트리스탄 공작가의 검식입니다. ]
[ ■ 무기를 가리지 않고 일정한 수준의 위력을 낼 수 있습니다. ]
[ 특성 등급을 올려 더 많은 혜택을 얻어보세요! ]
“...이건 또.”
대박이네.
역시 최종 보스의 기프트 보상. 한 번에 EX급까지 올라가는 스킬을 던져주더니, 이제는 고성능 특성까지 한 큐에 넘겨 주신다.
트리스탄 공작가는 제국 전체를 뒤져도 손꼽히는 검술 명가다. 위력이야 이미 보장되어 있다고 봐도 되겠지.
“...”
문제는 그쪽 집안이랑 얽힌 능력은 대부분 악마랑 관련이 있다는 거지만.
당장 적혀있는 게 검술이라 할지라도, 트리스탄 공작가는 파면 팔수록 괴담이 튀어나오는 동네라서.
그쪽에서 파생된 능력을 익힐 시 나중에 어떤 쪽으로든 문제가 생길 수도 있지.
뭐, 그렇기는 한데.
‘몰라 시발.’
줬으니까 쓸 거야.
애초에 난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도 아니고, 이미 성능 자체는 검증된 특성이다.
뒷수습은 미래의 나에게 맡긴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머지 보상을 수령한다.
[ ‘아르무트 남작’의 기프트 보상을 수령합니다. ]
[ 100pt를 습득합니다! ]
[ ‘루펜 자작’의 기프트 보상을 수령합니다. ]
[ 50pt를 습득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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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어째 나머지 인간들의 기프트 보상은 포인트라는 재화로 대체되어있다.
이건 또 뭐람?
[ 포인트는 재화 상점에서 활용 가능합니다! ]
아, 그렇군.
엑스트라 악당들은 그냥 일괄 보상으로 대체한다는 소린가.
재화 상점이라면 나도 알고 있는 시스템이다. 각종 소모성 아이템이나 버프를 구매해서 플레이를 원활하게 만들어주는 도우미 같은 느낌이었던 걸로 기억하거든.
[ 현재 보유 포인트: 3,500pt ]
그런데 이건 너무 많지 않냐?
3,500포인트면 원작 기준으로 한참 뒤에나 도달할 수 있는 수치인데?
아무리 치명적인 매력 스킬의 효과가 있었다지만 대체 나쁜 놈들한테 얼마나 눈도장을 찍은건데?
“...좋은 게 좋은거지.”
그렇게 생각하며 창을 쭉 내린다.
준다는 데 더 깊이 생각하는 것도 좀 그렇거든.
그래도 일단 이 정도 모은 것만 해도 대단한 성과다. 적어도 내일 있을 이벤트에 가용 가능한 수단이 확 늘어난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창을 닫으려는 순간, 시야 끄트머리로 이상한 것이 스쳐 지나갔다.
창 맨 아래에 검은색 글자로 박혀 있는 문구가.
< 기프트 관련 인물 알람 >
▼ 엘리야 크리사낙스
[ 호기심 4단계 ]
[ 아직은 보상 수령이 불가능합니다! ]
“...”
넌 여기 왜 들어와 있냐?
“흠.”
턱을 쓰다듬으며 잠시 숙고한다.
분명히 기프트 관련 인물은 나에게 ‘호감’을 가진 ‘악당’인 경우에만 기재되는 걸로 알고 있다.
“...흐음.”
아니, 너 진짜로 여기 왜 있는데?
조건 두 개 다 연관이 없는 놈이 대체 왜?
그런 생각을 황망하게 떠올리고 있자니, 느닷없이 내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여기가 다우드 캠벨 씨의 방 맞나요?”
“...”
어째 익숙한 목소리다.
“엘리야 크리사낙스입니다. 들어가도 될까요?”
“...”
얼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내쉰다.
아무래도 양반은 못 되는 모양이지, 이 녀석.
느닷없이 왜 찾아왔는 진 모르겠다만, 아마 이대로 입 다물고 있으면 물러서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좀 품어보자.
“저, 선생님. 안에 있는 건 이미 알거든요? 대답 안 하면 부수고 들어갑니다?”
이거 또라이 새끼 아니야.
“...선생님은 무슨 얼어죽을 놈의 선생님.”
“어, 역시 안쪽에 계셨구나."
하지만 내 퉁명스러운 대답에도 건너편에서는 해맑은 목소리만 돌아왔다.
"문 열어주실래요?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데."
"...무슨 얘기."
"음, 그냥 서로에 대해서 조금 알아보자는 것 정도?"
"..."
급성 편두통이 몰아친다.
죽을 것 같다는 기색을 듬뿍 담은 신음을 흘리며 머리를 감싸쥔다.
다우드 캠벨. 아카데미 입학 2일차.
원작 주인공이 달라붙기 시작했다.
지랄 났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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