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 - 5. 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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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씨.”
엘리야가 옷에 묻어있는 먼지를 툭툭 털어냈다.
방금 전까지 다우드에게 친하게 지내자고 달라붙다가 결국 기숙사 사감에게 걸려 복도로 내동댕이쳐진 참이었다.
“좀 받아주지. 속 좁은 사람인가.”
입으로는 그렇게 투덜거리고 있었지만, 여전히 엘리아의 머릿속으로는 다우드 캠벨에 대한 생각만이 가득 차 있었다.
그렇게 흥미로운 사람도 오랜만이니까.
지금도 바깥에서는 대련 자체가 사기다, 조작이다, 뭐 그런 말이 나돌고 있지만. 엘리야는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자신을 한 방에 제압한 이 남자의 재주는 진짜라고.
대체 무슨 방법을 쓴 건지는 도저히 모르겠지만.
‘분명히 뭔가 있다고, 그 인간.’
적어도 드러나는 것 이상으로 수상한 인간이라는 건 알 수 있었지만.
그리고 그녀는 궁금한 게 있다면 절대 못 참는 성격이었다.
그렇게 해서 도출된 합리적인 결론.
그 재주도 좀 배우고, 옆에서 지켜보며 어떤 사람인지 좀 차근차근 알아볼 수 있는 최적의 포지션이 무엇이겠는가.
친구지, 친구.
친해져서 나쁠 것 없다.
‘...남자랑 어떻게 해야 친구가 될 수 있는진 잘 모르긴 하는데.’
어릴 적부터 수도원에서 동성들과 자라난 덕분에 그녀로서는 남자란 미지의 생물이었으니까. 친구를 만들기는커녕 말을 붙여볼 기회조차 몇 번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생각은 없긴 하지만.
‘그런데 태도가 저래서야...’
어딜 어떻게 비비고 들어가려고 해도 철저하게 그녀를 밀어내는 태도는 가히 철벽 그 자체였다.
심줄이 어지간히 굵은 그녀라도 상처를 받을 정도였으니.
당장 관계를 맺는 건 차라리 포기하는 게...
“아얏.”
그런 생각에 너무 골몰한 탓일까, 복도 끝의 모퉁이를 돌다가 건너편에서 오던 상대와 부딪히고 말았다.
“이런. 조심하지 그랬나.”
“아뇨, 저야말로...”
상대방에게서 날아오는 문장에 반사적으로 대답하려던 엘리야의 목소리가 그대로 멎었다.
부딪힌 대상이 누군지 확인했으니까.
“다친 곳은 없나?”
학생회장 엘노어가 무표정하게 그렇게 말하는 사이, 엘리야는 발작적으로 검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곧바로 절망했지만.
‘...못 이겨. 절대로.’
순식간에 상대방과 자신의 수준 차이를 가늠한 그녀가 속으로 신음을 흘렸다.
그녀 또한 지금 당장 정규 기사로 서임받는다 해도 손색이 없는 실력을 가지고 있지만, 상대방은 격이 다르다.
어딜 어떻게 찔러도 자신이 죽는 결말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게 트리스탄 공작가...’
대륙 정점이라고 평가받는 검술 명가의 영애답다.
고작 그녀와 몇 살 차이밖에 나지 않을 텐데도 이 수준의 성취라니.
그녀가 검에서 손을 떼며 대답을 흘렸다.
“...괜찮습니다.”
입술을 깨문 그녀가 그렇게 분하다는 듯 문장을 내놓자, 상대방이 살짝 고개만 끄덕였다.
엘리야로서는 다시 한번 울컥할 만한 반응이었다.
자신이 검을 잡는 걸 분명 봤을 텐데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마치 그 정도야 아무려면 어떻냐는 것처럼.
신경 쓸 가치조차 없다는 모양새로.
“...”
이 사람에게 엘리야는 딱 그 정도란 뜻이겠지.
무시해도 될만한 인간.
자신의 인생을 통째로 뒤틀어놓은 가문의 일원 주제에.
머리를 새하얗게 불태우는 분노가 일순 치솟아 올랐지만, 엘리야는 그걸 바깥으로 쏟아내는 대신에 속으로 꾹 억눌렀다.
당장 그런 걸 드러내 봐야 아무 의미 없겠지. 검으로 덤벼봐야 못 이긴다.
“이거 가져가세요.”
엘리야가 간신히 웃는 얼굴을 지어내며 엘노어가 부딪히면서 떨어트린 것을 주워들었다.
간단한 주전부리가 들어있는 봉투. 겉면을 보니 ‘다우드 캠벨에게’라는 글자가 아기자기한 글씨로 적혀있다.
‘그 사람은 뭔데 여기서도 튀어나와?’
그런 감상을 품으면서도 엘리야는 친절하게 말을 이어갔다.
"이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시는 건가요?"
"그렇네만."
“여기서 오른쪽으로 쭉 꺾으시면 찾으시는 곳 나올거에요.”
그런 말과 함께 봉투를 엘노어에게 넘기며 서둘러 자리를 벗어난다.
아무튼 이 사람하고 마주치고 있으면 별로 기분이 안 좋으니까.
“잠깐.”
하지만 엘노어가 다시 그녀를 불러세웠다.
“다우드 캠벨의 방이 어디인지 어떻게 알고 있지?”
“...?”
그건 왜 물어보는건가, 싶지만 일단 대답은 해야겠지.
“방금 전까지 같이 있다 왔는데요?”
그 말을 듣자마자 엘노어에게서 순간적으로 적의가 확 치솟아 올랐다.
살기라고 착각해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이었다.
‘...적의? 살기?’
왜?
아니, 진짜로 왜?
대놓고 자신을 향해 검을 뽑으려던 사람 앞에서도 표정 하나 안 바꾸더니, 왜 그냥 그 남자랑 같이 있었다는 사실 만으로 이렇게 화를 내는가?
엘리야가 무진 당황하고 있자니, 다시 질문이 날아왔다.
“무슨 용건으로?”
목소리의 기온이 아까보다 한참 내려간 느낌이다.
뭔가 여기서 친구 어쩌구 했다간 진짜로 공격당하겠다는 느낌마저 든다.
“어, 그냥 신입생들끼리 친목을 다지자는 의미로...?”
엘노어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녀가 방금 말한 게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분명한 기색이었다.
“신입생들끼리 이성 교제는 금지네.”
“...예?”
갑자기 대체 뭔 개소리야?
“아무튼 금지네.”
“그런 학칙이 있었...?”
“내가 방금 만들었네.”
“...”
그래. 원칙적으로 학생회장에게 그런 권리가 있기는 하지.
이런 식으로 남용하라고 만들어두진 않았겠지만.
“그러니 앞으로 그대는 다우드 캠벨의 방에 찾아가지 말도록.”
“저기, 혹시 학생회장님은 그 사람이랑 무슨 사이신가요?”
그녀가 꺼내놓은 말에 엘노어가 입을 다물었다.
오히려 질문한 엘리야가 당황할 정도로 기나긴 침묵이었다.
“...아무 사이도 아니네.”
대단히 힘겹게 나온 대답이었다.
불만이 엄청나게 섞여 있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런 사이라는 게 대단히 싫다는 듯.
“그럼 이만. 방금 당부한 것은 꼭 명심하도록.”
그런 말만 새침하게 남기고 휙 떠나가는 엘노어를 본 엘리야의 얼굴에 멍한 표정이 깃들었다.
“뭐야 대체?”
아무 사이도 아니면 이런 짓을 한단 말인가.
그런 말을 하는 것치곤 공작가 영애쯤 되는 사람이 먹을 걸 넣은 봉투 겉면에 남자 이름을 큼직하게 써놓고 직접 딸랑딸랑 가져가는 것부터가 이해가 안 간다.
다우드 캠벨이란 인간은 별 볼 일 없는 남작가 출신이라고 들었는데, 저런 사람이랑 엮일 일이 뭐가 있다고-
-나 그 사람 꽤 좋아하거든.
-겉치레지. 그것도 알아. 무슨 짓을 하고 다녔는지도 대충은 알고.
그렇게 생각하는 엘리야의 머릿속으로, 문득 어떤 문장들이 스쳐지나갔다.
바로 어제 그녀가 다우드에게서 직접 들은 문장이.
마치 학생회장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다는 것처럼 얘기했었지.
“흐으음.”
촉이 번쩍 서는 느낌이다.
뭔가 퍼즐이 착착 맞아들어가는 것 같다.
그 정체가 대단히 수상한 남자와, 표면적으로는 관계없음을 표명하지만 그쪽에 뭔가 연결점이 있는 학생회장이라...
‘뭔가가 있다...!’
아무 사이도 아니기는 개뿔.
이 두 명, 분명히 뭔가 감추고 있다.
이쪽으로 파고 들어가면 뭔가 복잡한 뒷이야기가 나오겠지.
어쩌면 트리스탄 공작가에 얽힌 대단한 비밀이라도 있다던가.
엘리야의 직감이 그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좋아. 일단 정보 수집을 위해서라도 친하게 지내는 건 강행해볼까.”
아마 다우드 본인이 들었다면 육성으로 비명을 지를 다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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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판테 아카데미의 입학 및 반 배정은 총 두 번에 걸쳐서 이루어진다.
첫 번째는 대충 짝 지은 1:1 대련으로 솎아낸 그룹 배정.
그 뒤로는 학생의 종합적인 능력을 세세하게 평가하는 ‘반 배정’ 시험.
1:1 대련에서 선보인 퍼포먼스에 따라서 그룹이 묶여 시험을 치루게 되지.
그리고 난 그 명성이 자자한 차기 용사 후보를 후려 팬 덕분에 최상위권 그룹에 배정이 되었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자신감과 자부심 가득한 얼굴로 자신이 이 그룹에 소속되었다는 걸 자랑스럽게 여기는 녀석들 뿐이다.
“...”
죽상을 짓고 있는 건 나밖에 없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커다란 거라면 역시 이 놈이다.
하필이면 나랑 같은 조랑 묶인 엘리야를 흘끗 바라보자, 녀석이 나와 눈을 마주치고는 손을 흔들었다.
구김 하나 없는 미소를 짓고 있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
나 어제 얘 진짜 죽도록 구박했거든.
생각해보면 나랑 주인공이랑 엮여서 진짜 좋을 게 하나도 없으니까.
중요 인물과 접점이 많아질수록 목숨을 위협받을 일도 늘어나기 마련이고, 그런 면에서 이쪽은 이미 엘노어 하나만 해도 벅차다.
따라서 나는 정말 최선을 다해서 이 녀석을 밀어냈다고 맹세할 수 있지.
< 기프트 관련 인물 알람 >
▼ 엘리야 크리사낙스
[ 호기심 4단계 ] >>> [ 호기심 5단계 ]
[ 아직은 보상 수령이 불가능합니다! ]
[ 호감도 상태 변화에 근접했습니다! ]
[ 중요 인물입니다. 상태 변화 성공 시 특별한 일이 벌어집니다! ]
근데 왜 호감도가 올라 있냐?
진짜로 뭔데?
왜 이렇게 불가사의한 일이 많냐고.
그러고 보니 어제는 느닷없이 방 앞으로 내 이름이 적힌 봉투가 배달되기도 했었다.
‘내일 시험 힘내게.’라는 쪽지 하나와 음식이 가득 들어있었던가.
분명히 나한테 이런 걸 보낼 사람이 없는데, 스토커라도 붙은 건가 싶어서 소름이 끼쳤지.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한숨을 내쉰다.
일단 ‘아직은’ 보상 수령이 불가능하다고 하는 걸 보니 이 녀석도 뭔가를 주긴 주는 모양이니까, 최대한 좋게 생각하려고 해야겠다.
그런데 진짜로 왜 보상을 안 주지. 악당이 아니라서 그런가?
“1조! 너희들 차례다!”
조교가 그렇게 호령하는 걸 들으며 몸을 일으킨다.
뭐, 일단 그건 그거고.
당장은 눈앞에 있는 일에 집중해야겠지.
입학 시험은 세라에서 메인 시나리오의 첫 번째 줄기로 사용되는 이벤트다.
스타디움 내부에서 펼쳐지는 여러 종목의 테스트를 통해 학생들의 능력치를 평가하는 내용이었지.
주인공이 능력을 드러내어 주변에서 인정받고, 좋은 보상도 얻고. 뭐 그런거다.
원작에서는 초반부답게 무난한 전개다. 어딜 어떻게 봐도 뭔가 험악하게 굴러갈 건수가 없지.
응.
원래대로라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 기프트 관련 인물 알람 >
▼ 엘노어 에리나리제 라 트리스탄
[ 신뢰 2단계 ]
[ 관련 이벤트가 곧 발생합니다! ]
이것만 뺀다면 그랬겠지.
창에 떠오른 문구를 훑으며 눈앞을 바라본다.
“만나서 반갑군. 시험 진행과 인솔을 맡은 엘노어네.”
그래. 이쪽도 양반은 못 되는 모양이다.
역시 최상위권 1조라고 해야 하나. 학생회장님이 친히 나와서 인솔을 다 해주시네.
“...”
우연 치고는 너무 공교롭다.
이 사람 관련 이벤트가 터지는 것도 오늘. 입학 시험에서 내가 속한 조를 인솔하는 것도 이 사람.
지금 이 시험 중에 무슨 사고가 안 터지는 게 더 이상할 것이다.
“그럼 일단 시험장 안으로 이동하도록 하지. 질문은 안쪽에서 받도록 하겠다.”
그렇게 말하며 앞서 걷는 엘노어를 따라서 스타디움 안으로 진입하면서도 긴장된 눈초리로 주변을 살핀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사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다 쓸데없는 짓이었다.
참 알기 쉬운 방식으로 사건이 시작됐거든.
스타디움 안쪽에 들어가자마자 철컹, 하는 소리와 함께 입구가 봉쇄되었으니까.
그와 동시에 건물 내부에 있는 조명이 싹 다 나가버렸다. 정전이라도 된 것 마냥.
“...”
“...”
어두컴컴한 실내로 침묵이 잠시 감돌다가, 어떤 녀석이 살짝 얼빠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기, 질문 받는다고 하셨죠? 이것도 시험의 일부인가요?”
글쎄. 그건 내가 대신 대답해줄 수 있을 것 같다.
[ ‘엘노어’ 관련 이벤트가 발생합니다! ]
【Event: 후속 암살 시도】
- 아직 살아남은 암살자들이 해당 인물을 노리고 있습니다!
- 해당 인물이 다치지 않도록 보호하세요!
이거 시험 아니다.
함정이지.
"..."
다우드 캠벨. 아카데미 입학 3일차.
벌써부터 목숨이 위협 받고 있다.
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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