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 - 6. 암살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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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바깥으로의 통신은 전부 막힌 모양이네.”
주변에 있는 기기를 이것저것 만져보던 엘노어에게서 그런 말이 흘러나왔다.
“너무 걱정하지들 말게. 분명 학원측에서도 조치를 취하고 있을 테니.”
물론 학생들의 그럼에도 크게 당황하지 않는 건 이런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통제를 이어가는 엘노어 덕분이겠지.
사실 침착하다기보다는 아까부터 안색 하나 안 바뀌고 있어서 거의 무서울 정도다. 이 사람 감정 표현이란 걸 하긴 하는 건지 모르겠네.
“그럼 저희는 여기서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건가요?”
유난히 안절부절 못하던 왜소한 체구의 학생이 그렇게 질문했다. 조그마한 완드와 로브를 보아하니 마도학부 지망생이겠지.
“아니. 그건 아닐 걸.”
이에 지금까지 잠자코 팔짱을 끼고 상황을 관망하던 엘리야가 그리 답했다.
엘노어가 그쪽을 돌아보자, 녀석이 싱글싱글 웃으면서 말을 이어갔다.
“아마 빨리 자리를 옮기지 않으면 좀 큰일 날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동의하시죠?”
“무슨 뜻이지?”
“회장님도 느끼고 계실 것 같은데요. 지금 여기에 저희들만 있는 것 아니에요.”
그 말에 엘노어의 표정이 살짝 찌그러졌다.
다른 학생들은 어리둥절한 와중에 이런 반응이 나오는 걸 보니, 이 둘은 진작에 어떤 상황인지 대강 파악한 모양이다.
“...”
어떻게 했냐.
나야 퀘스트창이 있으니까 그렇다 치고, 이 인간들은 무슨 무협지 고수마냥 살기라도 미리 감지하는 건가?
주인공하고 최종 보스는 진짜 아무나 하는 게 아닌 모양이다.
“딱 봐도 뭔가 우호적인 의도는 아니겠죠? 여기 학생회장님도 있으니까요.”
“무슨 뜻이지?”
“귀한 가문 소속이시잖습니까. 그쪽을 목적으로 일을 벌일 이유야 충분하다고 보는데요?”
문장으로야 고위 귀족의 자제를 노린 범죄 행위를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거 비꼬는 거다.
뒤 구린 일을 숨 쉬듯이 저지르고 다니는 트리스탄 공작가 소속이니까 험한 일이 벌어지는 거라고.
실제로 엘노어도 그렇게 해석했는지 순식간에 시선이 서늘해졌다.
“말을 좀 더 고르는 게 좋겠군, 신입생.”
“아, 별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기색이 험악해지는 엘노어의 모습을 보고 다시 싱글싱글 웃으며 시치미를 떼고 있다.
생각해보면 얘도 원작에서 꽤 영악하긴 했지. 이런 식으로 사람 살살 긁는 덴 도가 튼 녀석이다.
“아무튼 이 자리에서 그냥 기다리는 것보다는 어디라도 움직이는 게 더 낫지 않겠어요?”
“...내 생각에도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일행 중 가장 덩치가 커다란 남학생이 묵직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복장을 보아하니 제국 동부 지방에서 남아온 야만족 출신이겠지. 등에 걸려있는 대형 도끼가 인상적이다.
“확실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조금이라도 더 전투에 유리한 지형으로 이동해야 할 것 같군.”
그 말에 다른 학생들의 표정도 서서히 바뀌어갔다.
다만, 무서워한다기 보단 각오를 다지는 모습에 가깝다.
험악한 일이 벌어진다는데도 다들 빠르게 순응하고 극복할 방법을 모색하는 걸 보니 역시 최상위 그룹 학생다운 모습이겠지.
그리고 그 구성원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단순히 그런 명칭으로 퉁칠만한 놈들이 아니라는 것도 잘 보이고.
전사 루카, 마법사 팔코, 힐러 트리샤, 사수 그리드. 추가적으로 파티장이자 용사 역할인 엘리야.
‘원작 주인공 파티잖아.’
시나리오 진행을 생각해봐도 여기가 첫 만남이긴 하다.
입학시험에서 서로 좋은 합을 보여주면서 동료애가 싹 트고, 엔딩 끝까지 함께 달려나갈 파트너가 되던걸로 기억하거든.
즉, 여기에 있는 인간들은 나 빼고 전원이 시나리오에서 한 가닥 하는 녀석들이란 소리다.
“...”
음, 그러면.
나는 내가 생각한 대로 일을 진행하면 되겠군.
“그럼 중앙 회관이 제일 적합해 보이는데요.”
내가 그렇게 입을 열자 시선이 일제히 이쪽으로 쏟아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내 옆에 붙어있는 건물 지도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안쪽에 각종 장비나 구급품도 있을 거고, 무엇보다 공간이 넓어요. 기습당하기 쉬운 복도보다는 훨씬 나을 겁니다.”
내 말에 다들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뭐, 가장 합리적인 선택지니까 그렇겠지. 여기까지는 다들 납득할 내용이다.
문제는 이건데.
“그리고 저는 이쪽으로 빠지겠습니다.”
지도에서 전혀 다른 장소를 가리키며 당당하게 말하자, 정적이 주변을 뒤덮었다.
누군가가 황당한 목소리로 질문을 꺼내기까지도 한참의 시간이 걸릴 정도로 묵직한 침묵이었다.
“...왜 너는 혼자 그쪽으로 가는데?”
“필요하니까요.”
“그러니까 왜?”
“다 이유가 있어서입니다.”
미친놈처럼 보일 것이다. 주변에서 언제 싸움이 터질지 모르는데 느닷없이 자기 혼자 따로 행동하겠다니.
하지만 이유는 알려주지 않는다. 알려줄 생각도 없고.
왜냐고?
이거 나 혼자 튀는거니까.
“...”
아니. 물론 이벤트 자체가 엘노어를 지키는 내용이긴 한데.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누가 누굴 지키라는거야?’
지금 여기 있는 건 주인공을 포함한 원작 파티 전원에, 혼자서도 암살자쯤이야 전원을 다 썰어 넘길 수 있는 최종 보스 본인이시다.
이런 애들 사이에 올스텟 F인 내가 목숨 걸고 끼어있어야 해?
그냥 얘네들 중앙 회관에 전부 몰아넣어서 암살자들 어그로 끌게 내버려 두고, 나는 상황 종료될 때까지 어디에 숨어있으면 그만 아니냐?
“지금은 밝힐 수 없지만, 중요한 이유입니다. 나중에 꼭 설명해드릴게요.”
세상 진지하고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그렇게 선언한다.
어. 거짓말도 아니다.
내 목숨 살리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어디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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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되네.”
그렇게 중얼거리며 어두컴컴한 복도를 걷는다.
사실 나도 이게 될까 안 될까 걱정을 좀 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엘리야를 일격에 때려눕혔다는 인지도가 꽤 유효하게 작용한 모양이다. 역시 말의 신뢰도는 실적에서 나오는 건가.
목표는 이제 이벤트가 끝날 때까지 가만히 숨어있으면 되는 거지. 애초에 암살 목표는 엘노어일테니, 내쪽에는 별다른 신경조차 안 쓸 확률이 높다.
조용히 어디서 망중한이나 즐기면서 시간이나 때울-
“잠깐, 학생!”
-수는 없어 보이는군.
역시 나다. 운 한번 더럽게 없지.
속으로 그런 생각을 곱씹으면서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본다.
빼빼 마른 중년의 남자가 황급하게 내쪽으로 달려오고 있다.
“살았네, 정말이지...!”
이내 내 앞에 서서 뭐라뭐라 말을 쏟아낸다.
가슴에 패용하고 있는 건 교직원 명찰이다. 자기가 밤눈이 어두워서 이런 곳에서 제대로 걸음을 옮기기도 힘들었다는 모양이다.
실제로 움직임이 불편해 보이는 건 사실이고.
“그러니, 좀 도와줄 수 있겠나? 내가 말하는 장소로만 데려다 주면 내가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청해보겠네.”
“...건물 안의 전원은 전부 끊겨 있는데요?”
“에헤이, 이런 별 것도 아닌 일은 내가 손 대면 금방 고칠 수 있어. 그걸 복구부터 하면 되는 일 아닌가?”
그렇게 답하는 교직원을 대답 없이 바라본다.
흠.
얘 말인데.
[ 위기 상황이 감지됩니다. ]
[ 아직 직접적인 위협은 느껴지지 않으나, 명백하게 적대적인 의도가 있다고 판단됩니다. ]
[ 스킬: 절체절명을 F등급으로 적용합니다. ]
진짜 눈 하나 안 깜빡이고 거짓말 잘 한다.
시발.
‘이거 암살자겠지?’
굳이 지금 이 상황에서 나한테 ‘적대적인 의도’를 가질 수 있는 대상이라면 다른 인간일 수가 없다.
아니, 기껏 나한테 어그로 끌리지 말라고 다른 애들 다 뭉쳐서 한 장소에 쑤셔 넣었는데 왜 이런 놈이란 만난단 말인가.
불운 한 번 기가 막히네.
“...그럴까요.”
꾸며낸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답한다.
그래도, 뭐.
대처할 수는 있을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상황이 맞다면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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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리겠군.’
하스메드는 그렇게 생각하며 눈앞의 학생을 바라보았다.
정말 특징 하나 없는 평범한 학생처럼 보이는 남자였다. 그의 거짓말에도 의심 없이 속아 넘어가는 것을 보니 좀 어수룩해 보이기도 했고.
물론 그의 연기에는 어지간히 눈치 빠른 사람조차 쉽게 속아 넘어갈 테니 쉽게 탓할 수는 없겠지만.
현월弦月의 하스메드.
이번에 투입된 암살대의 수장.
죽인 이의 형상을 강탈하여 그 모습을 완벽하게 복제하는 것으로 유명한 암살자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의 다음 타겟은 바로 이 학생이었다.
‘같은 학교의 학생이라면 그 트리스탄 공녀조차 방심하겠지.’
앞서 투입된 선발대는 이미 그 악마같은 여자에게 걸려 전멸했다고 들었다.
비록 아직 아카데미의 학생이라고 했지만 도저히 방심할 수 없는 상대지.
하지만 그런 인간이라 할지라도 경각심을 낮춘 상태에서는 처리하기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당장 그가 교직원의 모습으로 변장하자 이 학생조차 이리 쉽게 속아 넘어가지 않았던가.
“그래서, 이 앞쪽이 설비실인데요.”
그렇게 말하는 학생을 보며 하스메드가 속으로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굳이 이 학생에게 안내를 시킨 것은 가까이에서 그 실력을 가늠해보기 위함이었다.
그 정도 되는 프로 암살자라면 단순히 몸을 움직이는 것만 봐도 어느 수준인지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으니.
그리고 이 녀석은 완전한 초짜였다.
그의 평소 취미처럼 마음껏 괴롭히다가 죽여도 적당할 정도로.
‘이대로 이 녀석의 몸을 탈취하고, 트리스탄 공녀를 죽인다.’
아마 통신으로 들은 바로는 트리스탄 공녀는 다른 학생들과 함께 중앙 회관에 집결해 있다고 들었다.
함께 투입된 그의 부하들이 그쪽을 습격하여 다들 정신이 없어질 때, 이 녀석의 모습으로 뒤로 다가가 급습하면 아주 쉽게 풀릴 일이겠지.
“그래?”
하스메드가 씩 미소지으며 품에서 암기를 꺼내들었다.
“그렇다면 수고했네. 상을 줘야겠군.”
그가 칼날을 들어올리며 음산한 어투로 말했다.
물론, 자신에게 죽어 그 거죽을 넘기는 것이 상이다.
이쯤에서 보통 희생자는 의문과 당혹을 느끼고, 그 다음에는 상황을 부정하며, 마지막으로 공포에 질리는 것이 일반적인 수순이겠지.
그가 제일 좋아하는 것도 그런 반응을 보며 즐기는 것-
“아, 다행이다. 역시 하스메드네.”
“...”
눈앞의 학생이 다행이라는 어투로 그렇게 말했다.
공포는커녕 의문이나 당혹조차 느끼지 않은 것이 분명한 기색이었다.
오히려 진짜로 안심했다는 듯 한숨과 함께 이마를 쓸어넘기고 있지 않은가.
“어중간하게 쎈 놈이었으면 오히려 위험할 수도 있었는데, 진짜 다행이다.”
“...대체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거지?”
“사실 아무리 봐도 그쪽 같은데, 긴가민가해서 나도 계속 보고 있었거든요. 어중간하게 제압하려고 드는 녀석이면 오히려 더 위험해서. 조금 애매한 암살자면 바로 튀려고 했거든요?”
“뭐?”
“근데 살짝 비염 있는 거나, 손가락 까딱거리는 거나, 팔자 걸음 이라거나... 내가 알던 버릇이랑 다 똑같아서 좀 안심했어요.”
“...!”
하스메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가 이 녀석을 살펴보는 사이, 이 녀석도 자신을 훑어보고 있었 던가.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이다.
언제나 남을 철저하게 사냥하는 위치에 있던 그가, 사냥감에게 간파 당하는 상황이라니!
‘쉽게 죽여서는 안 되겠군.’
어떻게 그런 것들을 알고 있는지는 전부 실토하고 나서 죽어주셔야겠다.
그렇게 다짐한 하스메드가 곧바로 돌진했다.
어차피 그런 것들을 알고 있어봐야 전투 역량은 약골에 불과하다. 단숨에 끝장을 낸다!
“보자, 절체절명은 A급 적용이고...”
그런데 이 정신이 이상해 보이는 녀석은 그가 달려드는 상황에서도 알 수 없는 소리만 중얼거리고 있는 것 아닌가.
심지어 근처에서 바닥에 떨어진 적당한 막대기 하나를 주워 들기까지 하고 있었다. 마치 그걸로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처럼.
‘어이가 없군.’
그가 속으로 헛웃음을 흘리며 암기를 휘둘렀다. 아마 그대로 치명상이 될 일격이겠지.
하지만.
이어서 펼쳐진 광경은 그의 예상과 완전히 동떨어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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