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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에게 사랑받는 운명입니다 (9)화 (10/258)

Chapter 9 - 9. 검신병자 (2)

 

 

사실 계획이야 완벽했다.

 

아무리 엘판테에서 이런저런 경비 마법을 준비해뒀다고 하지만, ‘비품실’은 세라 유저들에게 거의 초반부 앞마당 비슷한 곳이거든.

 

너무 많이 털면 결국 들켜서 페널티가 들어오긴 하지만, 그럼에도 필요한 물건 한두 개 꺼내쓰는 것 정도야 사실상 진행의 필수요소다.

 

어떤 루트로 어떻게 뚫고 가야한다는 것 정도야 눈 감고도 숙지할 수 있단 소리다.

 

그리고 나처럼 ‘포인트 상점’을 이용할 수 있고, 사용할 포인트까지 넉넉한 경우라면 가장 손쉽게 돌파할 수 있는 방법은 이거지.

 

 

◎ 헤이스트 포션

 

[ 아이템: 소모품 ]

[ 가격: 100pt ]

[ 복용자의 몸놀림을 잠깐 동안 빠르게 해줍니다. ]

 

◎ 그림자 가면

[ 장비: 액세서리 ]

[ 가격: 100pt ]

[ 착용자의 얼굴을 감추고, 목소리를 변조해줍니다. ]

 

◎ 캣워크 슈즈

 

[ 장비: 신발 ]

[ 가격: 200pt ]

[ 걸음에서 아무 소리도 안 난답니다! ]

 

 

포션 복용 후 빠르게 움직여서 각종 경비망을 돌파하고, 곳곳에 배치된 화상 녹화 마법은 그림자 가면으로 신원을 감추며, 잠입 중 일어나는 기척은 캣워크 슈즈로 차단한다.

 

초반부 은신&잠입 가성비 조합이지. 이 정도만 있어도 아카데미에 있는 상당수의 경비 시설을 회피할 수 있다.

 

 

‘...포인트가 좋긴 좋아.’

 

 

당장 몇백 포인트만 써서 원래대로는 며칠 단위로 사전 작업을 해야 할 비품실 잠입을 순식간에 단축시켜버렸다. 성능으로 따지면 암살자 트리에서 C급 은신 스킬 정도는 넉넉하지 않을까.

 

한 번 사용하면 사라진다는 게 흠이긴 하지만, 온갖 종류의 아이템을 구비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메리트지.

 

몇천 포인트를 넘어가는 비용을 요구하는 아이템들은 그것만으로도 위기 상황에서 일발 역전을 담당할 수 있을 정도니까.

 

 

“허억...”

 

 

낑낑거리며 기어오른 창문에서 반쯤 탈진한 상태로 뛰어내린다.

 

헤이스트 포션 덕분에 조금 민첩성은 붙었다지만 기초 체력부터가 올 스텟 F답게 가열찬 쓰레기다. 이런 간단한 운동도 힘들어.

 

 

‘죽을 것 같네...’

 

 

그렇게 생각하며 주머니를 뒤진다.

 

이럴 때 또 쓸만한 게 있거든.

 

 

◎ 원기회복 비스킷 x2

 

[ 아이템: 소모품 ]

[ 가격: 50pt ] x2

[ 몸이 예전같지 않으신가요? 이 비스킷으로 스태미너를 회복해보세요. 땅콩맛, 1봉에 10개입! ]

[ 남은 포인트: 2,000pt ]

 

“...”

 

 

어째 유난히 광고하는 것 같은 말투지만, 효과는 진짜로 쓸모 있다.

 

여기까지 진입하면서도 이래저래 잘 써먹었거든.

 

비스킷을 우물거리자 몸에 활기가 도는 것을 느끼며, 주변에 쌓인 물건들을 훑어본다.

 

찾던 건 금방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지.’

 

 

손바닥만한 사이즈의 향로. 의식에 사용하는 제구치고는 아담한 사이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띈다.

 

 

“음.”

 

 

비품실 안은 워낙 오래된 물건들이 얼기설기 쌓여 있다보니 정리가 제대로 안 되어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거의 천장까지 대충 쌓여있는 물건 중 밑바닥에 박혀 있는 향로를 낑낑거리며 빼낸다.

 

신성의 울트리마. 고대의 힘이 깃들어 있다는 천 년 묵은 향로.

 

사실 그런 어마어마한 설명에 비해 자체적으로 대단한 성능은 없지. 오직 한 가지 간단한 기능뿐이다.

 

이건 말하자면 ‘전화기’다.

 

받는 쪽이 좀... 어마무시한 존재라서 그렇지.

 

 

‘제일 중요한 건 먹었고...’

 

 

추가적으로 챙겨갈 걸 찾기 위해 시선을 돌린다.

 

원래대로 이걸 작동시키려면 온갖 종류의 레어 아이템이 필요하지만, 여기가 어디냐.

 

세라 유저들 공식 개꿀템 노다지 파밍 장소다. 그 정도야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지.

 

필요한 물건들을 하나씩 찾아서 품속에 집어넣는다.

 

불을 피우는데 사용할 일각수의 뿔을 갈아 만든 가루, 그걸 점화시킬 불사조의 깃털, 화로를 제어할 산호수 부채...

 

또 너무 많이 털어가면 나중에 꼬리가 밟히지만, 적어도 내가 추려온 물건 몇 개 가져가는 것 정도는 OK겠지.

 

 

“어이쿠.”

 

 

열중해서 물건을 가져가다보니 위쪽에 쌓여있던 것들이 스르륵 무너지긴 했지만, 딱히 커다란 소리가 날 정도로 와장창 무너진게 아니니 상관 없다.

 

 

“...?”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무너지는 물건들 사이에 파묻혀 있던 ‘사람’이 한 명 딸려 나오기 전까지는.

 

 

“...!”

 

 

나를 향해 직통으로 딸려 내려오는 조그마한 몸을 엉겁결에 받아낸다.

 

이걸 그대로 바닥에 직격하게 내버려뒀다간 더 큰 소란이 발생할 것 같은 직감에 행한 일이었지만.

 

받아든 인간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후회한다.

 

 

“...”

 

 

사슬로 꽁꽁 묶인 검을 끌어안고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조그마한 소녀.

 

잠든 것만 보면 진짜로 곪아 떨어진 고양이 같은 모습이다.

 

내 입장에서는 이게 누군지 확인하자마자 전신에 소름이 주욱 돋아났지만.

 

그래. 누가 상상이나 할까.

 

이렇게 평화롭게 자고있는 사람이 살인을 세 자릿수 넘게 저지른 인간 도살자란 사실을.

 

 

“...으음.”

 

 

그리고 나로서는 불행하게도, 아무래도 방금 전 활동으로 잠에서도 깨워버린 모양이다.

 

내 품에 안긴 상태에서 소녀가 밍기적거리며 기지개를 켰다.

 

 

“하아아...암...?”

 

 

그리고 쭈우욱 팔을 뻗으면서 뭔가 이상한 걸 느낀 것처럼 하품이 점점 잦아든다.

 

노란색 눈동자를 멍하니 끔뻑거리며 주변을 둘러본다. 이내 나와 눈이 마주친다.

 

 

“...”

 

“...”

 

 

일단 내려놓자.

 

양손으로 소녀를 붙잡고 바닥에 똑바로 세워둔다.

 

그러기를 몇 초. 서로 멍하니 눈만 마주친 상태로 침묵한다.

 

그리고 마침내.

 

소녀가 자신이 생판 처음 보는 남정네에게 ‘안겨있었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물론 이어지는 행동은, 끌어안고 있던 검 손잡이를 번개같이 움켜쥐는 거다.

 

 

[ 위기 상황이 감지됩니다. ]

[ 생명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 수준으로 판단합니다. ]

[ 스킬: 절체절명을 EX등급으로 적용합니다. ]

 

 

응.

 

난 좆됐다.

 

 

 

 

세라 안에서 인물이 악 성향으로 분류되는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분류 기준중 하나는 ‘카르마’다.

 

더 직관적인 단어로 바꾸면 ‘살인 횟수’겠지.

 

단순히 사람을 얼마나 쳐죽였냐에 따라 성향이 점점 악 분기로 접어들기 쉬워진다는 거다.

 

카르마 수치에 따라서 타락하기 쉬워지는 것도 그런 맥락이겠지.

 

시나리오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악역인 악마 쪽에서 보통 카르마 성향 높은 놈들한테 먼저 접근하거든.

 

그리고 그런 시스템의 극단을 온 몸으로 표출하고 있는 사람이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이다.

 

평소에는 그렇게 유해한 사람은 아니지.

 

가까이 다가가지만 않으면.

 

 

“...”

 

 

다가가면 무슨 일이 생기는진, 글쎄.

 

당장 기회만 있으면 사람을 베고 다니는 엘노어조차 따라갈 수 없는 압도적인 카르마 수치 1위가 바로 이 사람이라는 걸로 대답을 대신하겠다.

 

지금 이 아카데미에서 사람을 가장 많이 죽인 게 바로 이 눈앞의 조그마한 소녀라는 거다.

 

 

“...!”

 

 

그리고 내쪽으로 날아오는 검격을 보고 있으니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정도는 넘치도록 이해할 수 있어 보인다.

 

주인공인 엘리야조차 EX로 강화된 절체절명 스킬에는 반응조차 못하고 원 펀치에 날아갔다.

 

그런데 지금은, 반대로 내가 유리아가 휘두르는 검의 궤적에 반응하는 것이 고작이다.

 

 

“-...!”

 

 

진짜 생사의 기로라는 걸 자각하자 세상이 느리게 보일 정도로 집중력이 올라간다.

 

엘리야 때랑 다르게 오히려 이번엔 진심으로 죽이려고 날아오는 공격이라 더 그런 감도 있다.

 

목으로 날아오는 초격을 손에 잡고 있던 향로로 받아넘긴다. 그래도 유물쯤 되면 공격 몇 방에 부숴지지는 않으니까 방패 대용이다.

 

쩡! 하는 소리와 함께 불똥이 튄다.

 

 

‘뭐 이딴 괴물이...!’

 

 

인간을 깃털처럼 쉽게 날려버릴 수 있을 정도로 강화된 완력에도 불구하고 전신이 시큰거린다.

 

잠에서 깨자마자 자세도 제대로 잡지 않고 날린 일격치고는 어이가 없는 위력이겠지.

 

다행이라면, 나는 이쪽에게 더 얻어맞지 않는 방법을 알고 있다.

 

전신을 뒤로 던지듯이 구른다.

 

사실 전투중이라면 바보같은 행동이다.

 

단순히 거리를 둔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하는 움직임이니까.

 

하지만, 이 여자를 상대로는 분명히 유효하다.

 

바닥에 몸이 닿는 것과 동시에 본능적으로 상대방과 나의 거리를 가늠한다.

 

 

‘세 발자국 반.’

 

 

아마 상대방에겐 한 호흡도 투자하지 않고 접근해서 날 베어 넘길 수 있는 거리다.

 

하지만, 유리아는 그 자리에서 못 박은 듯 멈춰서있다.

 

‘자신의 세 발자국’ 안쪽으로 들어온 상대로는 반쯤 무적에 가까운 전투력을 발휘하지만, 반대로 이 여자 역시 ‘상대방의 세 발자국’ 안쪽을 침범할 수 없다.

 

모두와 강제적으로 거리를 둘 수밖에 없는 인간.

 

이 사람한테 걸린 ‘저주’는 그렇게 설계된 메커니즘이다.

 

 

[가만히 있어주시겠어요?]

 

 

물론 눈물 맺힌 눈으로 그런 문장을 허공에 띄워올리는 걸 보니, 외간 남자의 품에 덥석 안겼던 걸 그렇게 유쾌해 하지 않는 건 분명해 보였다.

 

 

“...그래야 더 썰기 편하니까?”

 

[예.]

 

 

좀 넘어가라, 그 정도는.

 

물론 그런 내 의사와는 별개로, 지금 내 상황이 진퇴양난인 건 확실하다.

 

등 뒤로는 벽. 앞에서는 검을 겨누고 있는 유리아.

 

세 발자국 이상 거리만 두면 안전하긴 한데, 이래서야 내가 빠져나갈 방법도 없다.

 

거 사람 몸 좀 닿을 수도 있지. 그거 가지고 저렇게 강렬한 적의를 불태우고 있지만 않았어도 협상이라도 해볼텐데...

 

 

“...?”

 

 

잠깐만.

 

협상.

 

협상이라.

 

머릿속으로 설정 몇 가지를 떠올린다.

 

모두와 거리를 두는 게 강제되는 인간답게, 유리아는 거의 부랑자나 다름없는 생활이 보통이다.

 

비품실 안에서 느닷없이 마주친 건 예상 밖이지만, ‘인적 드물고’ ‘그런 상태가 지속될’ 환경을 선호한다는 걸 생각한다면 아예 가능성 없는 일은 아니다.

 

교직원들도 용무가 없다면 잘 오지 않는 곳이니까 자기만의 보금자리 삼고 있었겠지.

 

그리고 그런 환경에 처한 인간은 항상 만성적으로 시달리는 게 있다.

 

 

“...”

 

 

천천히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상대방을 자극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표명하는 속도로.

 

그리고 엄숙한 동작으로 아까 전에 내가 먹던 비스킷을 꺼내든다.

 

 

“...”

 

[...]

 

 

유리아의 시선이 내가 들고있는 비스킷에 콱 틀어박힌게 느껴진다.

 

눈앞에서 흔들거리자 시선이 그쪽을 따라 스윽스윽 움직이는 걸 보면 확실하지.

 

마른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아마 배까지 무진 꼬륵거리고 있지 않을까.

 

 

“츳츳츳.”

 

 

고양이 밥 주듯이 비스킷을 하나씩 휙휙 던진다.

 

내가 출구로 향하는 방향에서 이 녀석이 멀어지도록. 헨젤과 그레텔마냥 비스킷으로 진로 설정을 해준다.

 

 

[사람을 무슨 먹을 것 가지고 꼬시려 합니까?]

 

 

공중에 띄우는 문자로 소통하는 것의 장점은, 말하는 것과 입을 사용하는 것을 구분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날아가는 비스킷을 경이적인 운동신경으로 넙죽넙죽 받아먹으면서 그런 문장을 띄우는 것만 봐도 그럴 수 있지.

 

 

[무슨 동물도 아니고. 이런 거에 넘어가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하지만 몸은 솔직한 모양이지.

 

하나씩 먹을 때마다 점점 행복해지는 게 눈에 띈다.

 

우물우물 거리면서 방긋방긋 웃고 있는 게 꼬리라도 있으면 진작에 살랑거리고 있을 분위기겠지.

 

그리고 내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본인도 깨달았는지, 이내 헉! 하고 정신을 차린다.

 

 

[이, 이런 원초적인 수단에는 안 넘어갑니다! 전 인간이에요!]

 

 

그러냐.

 

 

“더 있는데, 먹을래?”

 

[...]

 

 

잠시 후.

 

유리아는 고로롱거리면서 내가 넘겨준 비스킷을 봉지째로 우적거리고 있었다.

 

진짜 동물같네.

 

 

[그런데, 당신 누굽니까? 여긴 왜 오신 거죠?]

 

“...”

 

 

역시 사람은 배부르고 등 따셔야 문명인 같은 의사소통이 가능하구나.

 

이런 질문이 이제야 나오네.

 

 

‘...그런데 솔직히 말은 못 하겠는데.’

 

 

도둑질하러 왔다고 어떻게 말하냐.

 

아무리 유리아가 반 들짐승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지만, 지금 보이는 것처럼 의사소통이 아예 불가능한 대상도 아니다.

 

혹시라도 다른 교직원에게 이야기가 흘러 들어가면 곤란하거든.

 

뭐 좋은 변명거리 없나...

 

아, 그렇지.

 

말을 하기 전에 바닥을 나뒹굴고 있는 향로를 슬쩍 바라본다.

 

지금 이걸 그대로 들고 나가면 이 녀석의 주목이 끌릴 것이다. 그러니까 좀 입을 털어보자.

 

 

“너 밥주러 왔다. 부탁 받았거든.”

 

 

이 녀석이 신경을 쓰일 수밖에 없는 화제로.

 

 

[...예?]

 

 

유리아가 멍하니 반문했다.

 

몸 주위로 물음표 수십개가 떠오르는 걸 보니 어지간히도 당황했나보다.

 

 

“아는 사람이 그러더라. 너 좀 보살펴 달라고.”

 

[아는 사람이요...?]

 

 

사실 그런 사람 없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입을 털면 나중에 도움은 되겠지.

원작에서는 이런 식으로 변수를 만드는 건 불가능하지만, 애초에 원작 게임이었으면 비품실에서 유리아를 만날 일도 없었다.

그럼 나도 미리 만난 김에 그 기회를 이용해야 하지 않겠나. 나중에 좀 더 원활하게 풀 수 있게.

 

 

“언니는 성황국에서 잘 지내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핵심은 이 정보를 미리 전달해 두는거다.

 

유리아의 몸이 눈에 띌 정도로 확연하게 굳어졌다.

 

 

“법황은 당분간은 너랑 그쪽에 관심도 안 둘거야. 아직 아카데미에서 숨은 좀 죽이고 있어야겠지만.”

 

 

소녀가 한시도 몸에서 떼놓지 않는 사슬 칭칭 감긴 검을 강하게 끌어안는다.

 

동작은 작지만, 거기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소용돌이는 무시무시할 정도로 격렬하다.

 

이 녀석의 고향인 성황국에서 이역만리 떨어진 엘판테 아카데미까지 와서 이런 생활을 하고 있는 건 다 그 양반 때문이니까.

 

원래대로는 2챕터에서나 자세하게 다룰 내용이긴 한데, 뭐.

 

적어도 이 녀석한테 하나뿐인 가족의 동향 정도는 알려줘도 되지 싶다.

 

 

“...”

 

 

내 시선이 유리아가 지금도 끌어안고 있는 저 검에 머무른다.

 

겉보기에는 아무 특징 없는 검이지만, 저건 세라 전체를 통틀어도 악독하기로는 순위권에 들어가는 물건이다.

 

유리아는 이걸 억누르는 일종의 ‘봉인구’ 역할이고. 세 발자국과 관련된 저주도 저 물건에서 나오는 거다.

 

엘노어보다는 못해도 수시로 정신적인 타락 위협에 시달리고 있을거라 그거지.

 

희망적인 소식 정도는 알려줘야 하지 않겠나. 고생하고 있을 텐데.

 

 

[당신, 당신 대체 누구에요? 어디서 온...]

 

“난 간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것까지 자세하게 알려주는 건 또 그렇다.

 

 

‘애초에 그런 것 없으니까.’

 

 

어.

 

거짓말은 꼬리가 길어지면 밟히는 법이다.

 

가면까지 쓰고 있는 김에 신비롭게 퇴장하는 게 낫겠지.

 

아까 전 충돌의 여파로 바닥을 나뒹굴고 있는 향로를 주워든다.

 

성황국 출신이라면 분명히 이 물건의 가치를 알고 있겠지만, 방금 내가 한 말에 어지간히 충격 받았는지 유리아는 이쪽에 신경도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다행이다...!

 

입 턴 보람이 있어...!

 

 

“...또 올게.”

 

 

그래도 작별인사 정도는 남긴다.

 

아마 비품실 들러서 물건 털어갈 일이 못해도 한 번은 더 있을 것 같으니까.

 

그때는 좀 봐줘라.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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