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7 - 17. 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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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 세계관에는 영속永續이라는 개념이 있다.
어느 분야든 일정 경지를 넘어가면 세계를 아우르는 의지와 합일하는 경지... 뭐 그런 복잡한 설정이지.
그리고 그런 영속에 이른 인간들은 그 대가로서 한 가지 ‘권능’을 수여 받는다.
도저히 인간의 몸으로는 간섭이 불가능한 자연 법칙에까지 그 힘이 미칠 수 있다는 거지.
대표적인 영속자로서 역대 최강의 기사 중 한 명이라고 손꼽히는 초대 트리스탄 대공은 시간과 공간조차 한 자루의 검으로 갈라버렸다는 전설 같은 일화가 산재해 있다.
공간 자체를 베어버려 아무런 방어구도 소용이 없다더라. 검을 한번 슥 휘둘렀더니 ‘아침’이 베여 ‘저녁’이 찾아왔다더라...
그런 사람이 만들어 낸 게 지금 내가 들고 있는 트리스탄류 검술이고.
너무 허무맹랑한 이야기라 지금에 와서는 반쯤 지어낸 이야기 취급받긴 하지만.
‘그런데 그거 구라 아닐 텐데.’
당장 눈앞에 있는 영속자의 강력함을 생각한다면 차라리 과장 없이 전승된 이야기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아탈란테 스완송.
영속에 이른 대가로서 ‘불사’의 권능을 수여 받은 불사자. 그 명성은 제국뿐만이 아니라 대륙 전체에 드높다.
“어머, 학생. 일찍 오셨네요?”
하지만 그런 인간도 그냥 당장 겉보기로는 그냥 키가 좀 작은 젊은 여자처럼 보인다.
바이올렛 색깔 머리카락과 눈동자에서 생기가 좌르르 흐르는 걸 보면 이게 대체 어딜 봐서 천년 묵은 괴물-
“학생?”
“넵.”
살짝 서늘해진 기색으로 나를 호출하는 목소리에 재빠르게 자리에 착석한다.
눈치도 좋아.
“갑작스럽게 초대해서 당황했을 텐데 군말 없이 응해줘서 고마워요.”
말투야 친절하다. 방긋방긋 웃으면서 대화를 부드럽게 풀어가려는 시도부터가 그렇다.
“...”
하지만 난 아탈란테가 뭐하는 인간인지 알고 있다.
천년이나 살았음에도 누구보다 시간 낭비를 싫어하는 성격이거든.
나를 ‘독대’하자고 마음 먹었으면, 틀림없이 그만큼이나 중요한 용건이 있다는 뜻이렸다.
“이 자리에 학생을 왜 불렀는지 알고 있나요, 다우드 캠벨?”
“잘 모르겠습니다만.”
“나쁜 소식이 있고, 더 나쁜 소식이 있어요. 어느 것부터 들으실래요?”
“...”
왜 좋은 건 없냐.
“덜 나쁜 것부터 듣죠.”
“음~ 다우드 캠벨 학생은 반 배정 받기도 전에 참 여러 사건에 휘말리시네요.”
그렇게 말한 총장이 외눈 안경을 착용하며 서류를 쭉 훑어보았다. 아마 그쪽엔 내가 지금까지 겪어온 사건들이 쭉 나열되어 있겠지.
“...제 의사로 그렇게 된 일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게 눈에 보여서 더 어이가 없네요. 엘판테는 역사가 긴 만큼 정말 별의 별 학생이 다 있었지만, 첫 수업도 전에 이렇게 파란을 일으키고 다니는 학생은 처음이에요.”
그렇게 말한 아탈란테가 한숨을 폭 내쉬었다.
“하지만 거기에 휘말려서 잘 빠져나온 것도 학생의 재주겠죠. 대단한데요?”
“...그게 왜 덜 나쁜 소식이죠?”
그냥 칭찬해준 게 전부인데.
이에 아탈란테가 피식 웃으며 답했다.
“그 정도로 불운이 강하다는 건 앞으로도 또 사건에 휘말릴 거란 뜻이니까요. 그러니 나쁜 소식이죠.”
“...”
세상 맞는 말이라 반박을 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런 불운이 두 번째 소식으로 이어지는데요.”
아탈란테가 씩 웃으면서 외눈 안경을 벗으며 양손으로 턱을 괴었다.
“혹시, 학생.”
하지만.
“예?”
“악마에 대해서 어디까지 알고 있나요?”
그런 문장을 꺼내놓으며 날아오는 눈빛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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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우드 캠벨이란 남자가 어떤 인간인지는 아탈란테 역시 대단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 요소 중 하나였다.
아카데미 내부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일을 꿰뚫고 있는 그녀로서도 예측이 잘 안되는 인간이었으니.
당장 보여주는 모습만 해도 그렇다.
‘반응이 재미있네요.’
그녀가 방금 말한 문장에도 표정 하나 바뀌지 않는 다우드 캠벨을 바라보며 속으로 미소지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엘판테의 총장과 1:1로 독대를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평범한 학생은 그대로 얼어붙을 것이다. 그저 신분의 고저에서 생기는 격차만으로 위압감을 느끼겠지.
그에 반해, 이 남자는 어떤가.
‘하나도 긴장 안 하고 있잖아.’
총장이 직접 ‘악마’라는 흉흉한 화제까지 꺼내놨음에도 불구하고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다. 하다못해 조금 당황이라도 할 법 한데.
대신 침착하게 스스로의 안으로 의식이 침전하는 모습이다.
어떤 대답을 어떻게 꺼내놓아야 현재 상황에서 최선의 상황일지 고민하는 것처럼.
‘일단 이것만으로도 위기 대처 능력은 합격.’
이미 충분히 노련하다. 굳이 그녀가 채워줄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제가 그걸 어느 정도까지 아는지 말하면 안 될 것 같은데요.”
이어진 대답도 예상 외였다.
“예?”
“그걸로 또 뭘 꾸미실지 모르겠어서요.”
아탈란테가 결국 참지 못하고 실소를 흘렸다.
“...마음에 들지는 않나보군요?”
사실 자길 중심으로 뭘 꾸미고 있다는 걸 모르기도 힘들겠지. 티를 여러 번 냈으니까.
다른 학생들은 전부 수업에 들어가는 와중에 본인은 아직 제대로 된 반조차 배정받지 못했다면 누구나 그런 의문을 품기 마련이다.
“인지도가 그렇게 조작되고 있는데 좋아하기도 힘들겠죠.”
하지만.
그 구체적인 ‘수단’ 중 하나까지 언급될 줄은 몰랐다.
아탈란테가 눈을 끔뻑이며 반문했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까 말씀하신 대로, 제가 지금까지 휘말린 대형 사건만 여러 가지에요. 보는 눈이 그렇게나 많았으니까 어떤 식으로든 소문이 났겠죠.”
다우드 캠벨이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지금 시기의 패권국들은 한창 어수선할 때잖아요. 어디서든 저한테 접촉이 있어야 정상이에요. 시기가 시기라서 다들 눈에 띄는 인재라면 지옥에 가서라도 데려오려고 하니까.”
실제로, 여기저기서 그런 소식이 들려오고 있기는 하다.
부족 연합의 쿠데타, 성황국 내부의 거대한 조직도 변화. 황위 계승권을 둘러싼 권력 다툼 등등.
대륙 전체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지.
황금의 삼각형도 마찬가지다.
겉으로는 서로서로 돕고 사는 사이 좋은 이웃이지만, 그 물밑으로는 항상 최고의 인재를 채가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
그러나 이건 결코 일개 학생이 스스로 정보를 입수하고, 분석해서, 논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하물며 이런 고급 정보에 닿을 권한조차 없는 일개 남작가의 자제라면 더더욱.
하지만, 이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것들을 꺼내놓고 있다.
당연하다는 것처럼.
아탈란테가 속으로 희열에 가득 찬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어요. 누군가 인위적으로 저에 대한 정보를 억누르고 있다는 소리밖에 안 됩니다. 아니면.”
“아니면?”
“한술 더 떠서, 아예 다들 공조해서 모르는 척을 하고 있거나. 대체 뭘 얼마나 큰일을 꾸미시길래 거기까지 가는 진 모르겠지만.”
보는 눈이 없다면 일어나서 물개 박수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다.
정확한 판단이다. 정보와 상황을 저울질해서 공백을 채워 넣는 솜씨가 탁월하다.
‘정치적 감각도 합격!’
사실 워낙 앞으로의 ‘계획’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라 모자란 부분이 많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는데, 적어도 실망스러운 모습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학생 레벨에서 이 정도의 보석이 발견됐다는 점에서 기쁨의 환호성이 나올 수준이지.
그리고 그런 인재를 만난 것에 대한 흥분 때문일까.
원래 계획의 현재 ‘단계’에서는 결코 흘려서는 안 될 정보지만, 그녀는 결국 입을 열고야 말았다.
“일단, 정보 통제에 관한 부분에 대해서는 사과할게요. 하지만 꼭 필수적인 부분이라는 점은 알아주셨으면 좋겠네요.”
“...뭐, 제가 여기저기 눈에 띄면 큰일이라도 납니까?”
“예.”
아탈란테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세계가 멸망합니다.”
“...”
마침내 상대방의 포커페이스가 깨지는 모습을 보는 건 퍽 즐거운 일이었다.
아탈란테가 얼이 빠진 다우드에게 쿡쿡거리며 말을 이었다.
“거짓말 아니에요. 뭐 당장 소문이 커진다고 해서 바로 그렇게 되는 건 아니지만. 그럴 확률이 높아진다는 건 틀림 없어요.”
“...세계 멸망, 아니, 대체 무슨 소릴...?”
“일단은 학원 생활에 집중해주세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어차피 머지 않아 알게 될 테니까요. 당장은 학원에서 최선을 다해 그런 부분을 막고 있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그녀가 빙글빙글 웃으며 그에게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그보다는 이것부터 보시겠어요?”
어떤 기호가 크게 확대되어 그려진 종이 한 장이었다.
“아까 전에 악마에 대해 질문했었죠? 이것 때문이에요.”
“예?”
“퓨리파이어Purifier라는 집단의 인장입니다.”
다우드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이것도 알고 있었나 보네?’
그렇게 생각한 그녀가 다시 침착한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
“세간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꽤 유명한 악마숭배자 집단이에요. 이번 트리스탄 공녀 암살 미수에서도, 마수를 이용한 사보타주에서도 공통적으로 지목된 집단이기도 하죠.”
악마 숭배자.
전 인류의 주적인 악마를 신으로 추앙하며 그 부활을 위해 암약하는 집단.
현대에 이르러서는 가히 전 세계의 암적 존재라고 할 만 했다.
“두 번이나 트리스탄 공작가를 향한 직접적인 공격이었어요. 세 번이 없으리란 보장은 없습니다.”
“...그걸 저한테 알려주시는 이유는요?”
아탈란테가 대답 대신 묘한 미소만 띄웠다.
이미 계획에 관한 정보는 충분히 많이 알려줬다. 이 이상 말할 수는 없겠지.
그녀가 그렇게 생각하며 서랍 안에서 뭔가를 꺼내들었다.
자세한 걸 알려줄 수 없다면, 대신 그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성의 표시 정도는 해야하지 않겠는가.
“이거 가져가시겠어요?”
조그마한 검은색 ‘카드’.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특징도 없는 물건이지만, 그걸 본 다우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새삼 표정이 참 풍부한 남자라는 생각이 든다.
‘...설마 이게 뭔지도 알고 있다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상대방이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거, 총장님이 혼자서 남한테 주는 걸 결정해도 되는 겁니까?”
“...”
아무리 총장이라도 이 정도로 귀중한 걸 함부로 남한테 주면 안 된다는 기색이 담긴 문장에, 아탈란테가 잠시 멈칫했다.
진짜로 뭔지 알고 있나?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카데미 내부에서도 그녀를 포함한 극소수의 인원만 알고 있는 물건이다. 이게 뭔지 알고 있다면 그건 단순히 정보력이 아니라 거의 초능력 수준이다.
‘하지만, 혹시.’
그녀가 조금 기대감을 담아 다시 질문했다.
“뭔지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네요?”
“이거, 일주일 뒤에 그레고리 관에서 열리는-”
다우드는 그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당연하다는 듯이 술술 나오는 대답에 아탈란테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기 때문이다.
‘아, 걸작이네. 진짜.’
이 남자, 진짜 단 한 번도 그녀의 예상대로 가는 법이 없다.
마지막으로 이런 사람을 만난 게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그냥 가져가요. 어차피 당신 정도로 불운을 몰고 다니는 사람이라면 꼭 필요할 거에요.”
“...”
그리고 이렇게나 그녀를 유쾌하게 해줬다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보답도 해줘야겠지.
“뭔지 알고 있다면 쓰는 법도 알고 있겠지요. 제대로 사용하고, 챙길 것 챙긴 다음, 그 다음에 저한테 결과물을 보여줘요. 만약 정말 제대로 사용해서 내 마음에 쏙 들 정도면, 추가적인 선물을 줄 테니까. 알겠죠?”
그녀가 윙크하며 그렇게 말하자, 다우드가 얼떨떨해하면서도 카드를 품 안에 챙겼다.
“...총장한테서 숙제를 받을 거란 생각은 한 번도 못 해봤습니다만.”
“아, 참. 그렇네. 진짜 숙제로 낼 건 따로 있었는데.”
“예?”
“당신, 용사 후보랑 트리스탄 공녀와는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다우드의 표정이 끔찍하게 찌그러졌다. 질문한 아탈란테 본인이 당황할 정도로.
학교 내부에서 악마 숭배자들이 두 번이나 테러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도 안색 하나 안 바뀌던 인간이 이게 무슨 일이람.
“...잘, 지내고 싶긴, 합니다.”
뭔가 그쪽이랑 엮이기 싫다는 기색을 온 몸으로 발산하는 모습이지만.
“그럼 잘 지내도록 하세요.”
그럼에도 그녀는 이런 말을 남길 수밖에 없었다.
“반드시 그래야 할 이유라도 있습니까?”
“예.”
그녀가 싱그럽게 웃으며 답했다.
“세계가 망해요, 안 그러면.”
“...”
대체 뭔 세계가 그리 쉽게 망하냐는 표정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다우드의 얼굴에 그녀는 다시 깔깔 웃고 말았다.
이번에도 거짓말은 아니었지만.
결국.
계획의 최종 목적은, 이 세 명을 통해 이루어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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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멸망이라...”
아까 전에 아탈란테에게서 들은 말을 되뇌이며 멍하니 걷는다.
사실, 뭔지 잘 와닿지도 않는다. 너무 스케일이 큰 이야기라서.
게임에서야 배드 엔딩으로 세계 멸망 어쩌구 하긴 하지만, 지금 내 행동이 그걸 좌지우지할 정도라니 뭔가 아예 아무 느낌이 안 드는 수준이다.
‘...뭔지 모르겠는 건 나중에 생각하자.’
그보단 이거다.
“이걸 받네.”
쥐고 있는 검은 카드를 바라본다.
이건 일종의 ‘열쇠’다.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을 여는.
원래 플레이어 캐릭터에게는 절대로 주어지지 않는 물건이기도 하지. 이건 원래 아카데미 교직원 내부에서도 학장이나 총장쯤 되는 인간이 아니면 그 존재조차 모르는 물건이니까.
그리고 왜 그런 식으로 제작진이 구성했는지도 알 것 같고.
이런 걸 초반부터 먹어놓으면 밸런스가 박살 날 수도 있으니까.
메인 퀘스트 보상에 긴급 미션까지 성공적으로 수행해서 그런가, 이걸 이런 식으로 느닷없이 받을 줄은 몰랐는데.
“...”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좋아할 것도 못 되지.
‘메인 시나리오가 어긋나 있어.’
퓨리파이어는 원래 이것보다 몇 달은 뒤에 등장해야 정상인 녀석들이다. 첫 수업도 받지 않은 시점에서 그 정보가 들려올 녀석들은 아니란 거지.
시나리오의 진행이 내가 예상한 시점보다 훨씬 빠르다.
“...”
즉, 나도 최대한 빠르게 성장할 필요가 있단 소리고.
좋건 싫건 주인공과 최종 보스와 엮인 시점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시나리오와 엮이게 될 거라는 건 자명하니까.
한숨을 내쉬며 기억을 정리한다.
1챕터, ‘비밀 결사 준동’의 최종 보스인 ‘정화자’는 생각보다 꽤 까다로운 녀석이다.
뉴비 절단기라는 소리가 공공연하게 돌 정도로, 초반 보스 주제에 패턴이 악랄하게 구성되어 있거든.
비록 내가 절체절명이 있다지만 녀석의 ‘특수성’을 생각해본다면... 진짜로 죽을 수도 있지.
‘하지만 이게 있으면...’
다시 검은색 카드를 손아귀 안에서 돌린다.
생각보다 진행이 꽤 쉬워질 수 있겠는데.
이걸 사용하여 들어갈 공간에서 얻을 재료를 어떻게 활용하냐에 달렸겠지만.
이걸 추가적으로 활용할 수단을 머릿속으로 정리한다.
미리 안면을 좀 터둔 마수 연구학과, 비전 창고의 출입권, 페르시에게 사용할 1회 소원권, 전부 유기적으로 활용한다면...
‘...가능은 하겠군.’
정화자 보스전을 순조롭게 만들어줄 물건, 아마 분명히 하나 만들어낼 수 있을 거다.
“아, 여기에 있었군. 찾고 있었는데.”
그런 걸 고민하며 복도를 걷고 있자니, 건너편에서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콘라드 발타도르. 기사학부의 학장이다.
“찾고 있으셨다구요? 무슨 일로?”
“아직 네 반은 미정이지만, 그래도 수업을 못 듣게 할 순 없다는 학사팀의 공지가 있었지. 받아라.”
“...”
뭐 이딴 걸 학장이 직접 전해줘.
얼마나 날 특별 취급하고 있으면 이런 짓을 하는 건데?
“임시로 편성된 반이야. 그 인원들과 함께 내일부터 수업을 들으면 된다.”
“...”
아니.
그래.
알겠는데.
장난하냐?
“...이거 맞습니까?”
“틀린 거라도 있나?”
어. 있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적혀있는 학생 명단을 가리킨다.
반장. 엘노어 에리나리제 라 트리스탄.
부반장. 엘리야 크리사낙스.
다른 놈들은 볼 것도 없다. 이 두 명의 이름에서 이미 파멸의 냄새가 난다.
왜, 하필이면, 이 두 명을, 나랑 동시에 몰아넣는데?
“이게 맞다구요?”
“맞지.”
"학생회장이 신입생이랑 같이 수업을 듣는데...?"
"어. 맞다니까."
콘라드가 시원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총장님 지시다. 틀릴 리가 없지.”
“...”
그러고 보니, 숙제니 뭐니 하는 소리를 했었지.
둘이랑 친하게 지내라고.
‘죽이고 싶네, 그 인간.’
진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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