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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에게 사랑받는 운명입니다 (18)화 (19/258)

Chapter 18 - 18. 수업

 

 

죽을 것 같다.

 

비유적인 의미가 아니라 진짜로.

 

 

“-하여 검은 모든 상황에서 가장 기본적인 무기라고 할 만 하다. 모든 상황에 대처하기에 적합한 무장으로서-”

 

 

그렇게 말하는 교수의 귀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식은땀을 주륵주륵 내려보낸다.

 

애초에 기초적인 내용이지. 집중해서 들을 필요도 없다.

 

 

“교수. 질문이 있다.”

 

 

그리고, 그건 이 사람이 대체 왜 이딴 수업을 듣고 있냐는 의미로도 상통한다.

 

내 왼쪽에 있던 엘노어가 무표정하게 손을 들어올리자 교수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말씀하시죠, 트리스탄 공녀.”

 

“이론이 너무 장황하게 길다고 생각하지 않나? 해당 지식들은 모두 실전에서 크게 작용하지 않는 것들이네.”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

 

 

교수가 딱딱하게 웃으면서 그런 말을 꺼내놨다.

 

학생이 수업을 아무렇지도 않게 감평하고 교수가 거기에 수긍하는 대단히 기묘한 광경이었지만, 아무도 거기에 뭐라고 반박하지 않았다.

 

그 트리스탄 공녀다. 누구도 저런 태도를 지적할 생각을 떠올리지조차 않겠지.

 

그러니까.

 

한 명 빼고.

 

 

“어, 저는 잘 듣고 있었는데요?”

 

 

내 오른쪽에 있던 엘리야가 피식 웃으면서 그렇게 반박했다.

 

엘노어의 서늘한 시선을 받으면서도 전혀 쫄아붙지 않은 모양새였다.

 

 

“...그대도 설마 이런 탁상공론이 실제 전투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수업은 교수 재량이잖아요. ‘억지로’ 참관하셨으면 가만히 계시는게?”

 

 

엘노어가 불만스러운 기색으로 입을 다물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신입생인 엘리야와 달리 자신은 지금 대단히 억지를 부려서 이 자리에 있다는 걸 본인 스스로도 자각하고 있는 모양이니까.

 

후에 아탈란테에게 전해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본인이 밀어붙인 이야기라고 했으니. ‘꼭 나와 함께 있고 싶다’면서.

 

 

“하지만 아무리 기초 수업이라고 하더라도 이것보다는 좀 더 실전성 있는-”

 

“그러니까 그런 것 자체가 너무 한쪽 의견에 편향된-”

 

 

설전이 격화된다.

 

수업을 진행해야 할 교수는 차기 용사 후보와 트리스탄 공녀라는 타이틀에 짓눌려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맞아요. 선생님 생각은 어떤데요?”

 

 

그리고, 이게 바로 내가 지금 죽을 것 같다는 이유의 결정체다.

 

그렇게 지들끼리 치고박다가 결국 마지막엔 나한테 폭탄을 돌리거든.

 

 

“...일단 계속 수업을 진행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눈앞에서 새파랗게 질려 파들거리고 있는 교수가 하도 불쌍해서 일단 그렇게 말한다.

 

그 말에 엘노어의 미간이 살짝 좁아지고, 엘리야의 얼굴에 화사하게 웃음이 걸렸다. 교수도 마찬가지로 안심한 미소를 짓는다.

 

 

“아싸, 1승 추가.”

 

“...한번 졌군.”

 

 

이어서 양옆에서 흘러나오는 중얼거림에 미간을 짚는다.

 

이 녀석들, 지금까지 몇 개 이어진 수업 내내 이런 식이다.

 

내용에 대해서 자기들끼리 토론하고, 최종적으로 나한테 의견을 물으며, 어느 쪽에 편을 들어줬냐로 계속 승패를 나누고 있다.

 

그때마다 이긴 쪽은 아주 행복해서 죽으려 하고 진쪽은 진짜로 분해하는 게 더 눈에 보여서 어이가 없지.

 

내 말 한 마디가 대체 뭐라고...?

 

니들 대체 나한테 왜 이래...?

 

 

“...”

 

 

이것 때문에 다른 학생들에게서도 기묘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정도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

 

대체 저 놈은 뭔데 용사 후보하고 공녀 사이에 끼어서 저런 취급을 받는 거야? 하고.

 

 

‘나도 잘 모르겠다.’

 

 

어. 진짜 모르겠다.

 

그나마 학원 측에서 내 인지도를 잘 억누르고 있다는 증거로도 볼 수 있겠지. 날 아예 모르는 눈치도 드문드문 섞여 있었으니까.

 

그건 바꿔말하면 엘판테 자체가 내 일거수 일투족에 엄청나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단 의미와도 같다.

 

 

‘...뭐 사고 터지면 알아서 수습하겠지.’

 

 

그러니까 의식을 돌리기 위해서라도 내가 할 일을 하자.

 

다시 떠듬떠듬 강의를 이어가는 교수를 두고, 눈앞에 떠올라 있는 창으로 시선을 돌린다.

 

 

< 기프트 관련 인물 알람 >

 

♥ 엘노어 에리나리제 라 트리스탄

 

[ 신뢰 5단계 ] >>> [ 친애 1단계 ]

[ 수령 가능한 보상이 있습니다! ]

 

 

▼ 엘리야 크리사낙스

 

[ 호기심 5단계 ] >>> [ 관심 1단계 ]

[ 수령 가능한 보상이 있습니다! ]

 

 

이번에도 역시 드르륵 탭한다.

 

 

[ ‘엘노어’의 기프트 보상을 수령합니다. ]

[ ‘특성: 호흡법 – 부초敷草’를 획득하였습니다! ]

 

 

< Mastery Info >

 

[ 특성: 트리스탄류 검술 ] [ 등급: 기초 ]

[ 현재 숙련도: 58% ]

 

[ 검술 명가 트리스탄 공작가의 검식입니다. ]

 

[ ■ 무기를 가리지 않고 일정한 수준의 위력을 낼 수 있습니다. ]

 

 

[ 특성: 호흡법 – 부초敷草 ] [ 등급: 기초 ]

 

[ ■ 오랫동안 단련하면 신체의 내구와 체력을 극적으로 올려주는 호흡법입니다. 특히 트리스탄류 검술과의 궁합이 좋습니다. ]

 

 

‘...좋은데?’

 

 

부초와 트리스탄류 검식은 거의 세트로 발동되는 기술이다.

 

당장 이 조합을 잘 써먹는 사람이 내 왼쪽에 앉아계신 트리스탄 공녀지.

 

엘노어가 최종 보스로 군림하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일각을 담당하는 괴물 같은 근접 전투력은 이 두 스킬의 조합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괴물 같은 공격력을 자랑하는 주제에 신체의 내구도는 잡초처럼 끈질겨서 때려도 때려도 쓰러질 생각을 안 하니까.

 

체술 관련 특성 쪽에서는 최상급의 효율을 가진 조합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 ‘엘리야’의 기프트 보상을 수령합니다. ]

[ 2,000pt를 획득하였습니다! ]

[ 현재 보유 포인트: 2,000pt ]

 

 

얘는 특별한 뭔가를 주는 대신에 포인트로 끝인가. 그래도 주인공답게 한 번에 포인트를 화끈하게 퍼주기는 한다.

 

그래도 아쉽기는 하네. 뭔가 추가로 더 있었으면...

 

 

< System Message >

 

[ 선善 성향 인물에게 일정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 확인됩니다! ]

[ 두 번째 기프트가 개방됩니다! ]

[ ‘스킬: 악의 지배’를 습득합니다! ]

 

 

“...”

 

 

진짜 나오네.

 

 

 

 

Gift #1- 운명적 이끌림

 

[ 악惡 성향을 가진 인물의 호감도가 높아질수록 다양한 보상을 습득합니다. ]

Gift #2- 근묵자흑

 

[ 선善 성향 인물이 당신에게 가진 호감도가 높아질수록 다양한 보상을 습득합니다. ]

[ 단, 이는 악惡 성향에 비해 훨씬 미미한 수준으로 주어집니다. ]

[ 대신 선善 성향 인물을 일정 이상으로 부정적인 경향에 물들이면 큰 보상을 받습니다! ]

 

 

< Skill Info >

[ 스킬: 악의 지배 ] [ 등급: E ]

 

[ 당신에게 충분히 영향받은 선善 성향 인물에게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

[ 악의 지배가 적용된 인물은 당신이 요청한 것을 반드시 한 가지 들어줘야 합니다. ]

 

[ 적용 중인 인원: 無 ]

 

 

눈앞에 있는 텍스트를 쭉 읽어내린다.

 

 

‘...흠.’

 

 

다시 쭉 읽어내린다.

 

아니. 이해가 잘 안 가서.

요컨대.

내가 착한 녀석을 나쁘게 만들면 그만큼 보상을 얻는다는 뜻인가.

그것 참...

"..."

맞냐 그거?

   

 

 

 

시간은 쭉쭉 흘러가, 마침내 오늘 마지막 교시에 위치한 ‘생존학 개론’에 이르렀다.

 

수업 위치는 ‘요정의 숲’. 학관동을 한참이나 벗어나 걷다 보면 나오는 아름다운 삼림이다.

 

겉보기로는 평범한 숲이지만, 천년 넘은 영속자 아탈란테와 그 역사를 같이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오래된 엘판테 아카데미다. 마냥 평범한 게 있을 리가 없지.

 

이 안쪽에는 온갖 종류의 환수와 마법의 식물, 그리고 희귀 광물이 널려있는 곳이다.

 

개중에는 진짜로 목숨을 위협할만큼 위험한 것도 있고.

 

여기까지 이르니 엘노어와 엘리야도 조용해진 모습이다.

 

아마 지금까지 끊임없이 싸운 것에 지친 것도 조금 있겠지만, 당장 이 수업을 주관하는 건 수업에 대해 왈가왈부 할 수도 없는 인간이 주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잘 왔다, 병아리들.”

 

 

기사학부 학장 콘라드 발타도르가 심드렁한 어투로 말했지만, 근처에 있는 신입생들은 그야말로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마 엘판테에 조금이라도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수업이 얼마나 악명 높은지 모를 수가 없기 때문이겠지.

 

 

“생존학이라고 함은 지금도 던전이나 유적 나가서 뭐 빠지게 채굴하고 있는 녀석들이 그러모은 실전 잡기술의 총체다. 안 죽으려면 배워서 나쁠 건 없지.”

 

 

학장이 직접 튀어나와서 하는 것치곤 심드렁하기 짝이 없는 설명이 이어졌다.

 

죽도록 귀찮지만 이 강의는 대대로 학장이 첫 수업을 맡는 게 관례라 어쩔 수 없단 분위기가 철철 흘러넘치고 있었다.

 

뭐, 그만큼이나 중요한 과목이긴 하다. 황가에서도 특히 채용에 가산점을 주는 과목이라 일부 학생들의 눈은 거의 번쩍번쩍 빛나고 있지.

 

 

“할 일은 간단하다.”

 

 

그리고 그 눈빛을 모조리 죽여버릴만한 강의 내용이 이어졌다.

 

 

“지금부터 이 숲에 들어가서 내 마음에 들만한 걸 캐와라. 10분 준다.”

 

“...”

 

“아, 죽을 것 같으면 크게 비명을 질러라. 구해줄 테니까. 대신 최하점은 각오하고.”

 

“...”

 

 

조용히 침묵이 이어지는 가운데, 학생 한 명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올렸다.

 

 

“뭔데.”

 

“...그, 채점 기준은 없습니까?”

 

“방금 말했잖아. 내 마음이라고.”

 

“...”

 

“인생은 실전이야, 병아리들아. 준비 시간 5분 준다.”

 

 

아, 학생 회장은 이리 오도록. 너는 나랑 같이 채점하자.

 

그런 말을 끝으로 휙 사라져버리는 콘라드를 보고 학생들이 사색이 되는 사이, 난 혼자서 그 분위기에 동떨어져 상태창을 노려보고 있었다.

 

 

Gift #2- 근묵자흑

 

[ 선善 성향 인물이 당신에게 가진 호감도가 높아질수록 다양한 보상을 습득합니다. ]

[ 단, 이는 악惡 성향에 비해 훨씬 미미한 수준으로 주어집니다. ]

[ 대신 선善 성향 인물을 일정 이상으로 부정적인 경향에 물들이면 큰 보상을 받습니다! ]

 

 

이게 대체 무슨 의미인지 도저히 모르겠거든.

 

선 성향 인물을 부정적인 경향에 물들이라니, 말이 너무 추상적이다.

 

 

‘...좋게 지내지 말라는 건 확실한데.’

 

 

기프트 이름이 근묵자흑인 것도 그렇고, 뭔가 나쁜 짓을 하면 되는 느낌인가?

 

 

“선생님. 같이 할까요?”

 

 

창을 노려보며 생각을 정리하고 있자니, 엘리야가 빙글거리며 그런 말을 던져왔다.

 

글쎄. 관심 없는데.

 

 

“너는 가서 니 친구들이랑 해.”

 

 

그렇게 말하며 근처에서 삼삼오오 모여들고 있는 ‘주인공 파티’를 가리킨다.

 

전사 루카, 마법사 팔코, 힐러 트리샤, 사수 그리드.

 

아마 이전에 있던 암살 시도 이후로 저들끼리 친해졌는지, 지금도 멀리서 엘리야 쪽을 기다리고 있다.

 

 

“...으음, 선생님도 저랑 친구잖아요. 하는 김에 같이 하시죠?”

 

“아니, 나는 괜찮아.”

 

 

어. 진심으로 그렇다.

 

어떻게 어떻게 나랑 엮이기는 했지만, 엘리야는 주인공 파티와 당장 친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결국 세계를 구할만한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는 녀석들은 이 놈들밖에 없어서.

 

내가 저기에 끼어들어봤자 불순물 밖에 안 된다고.

 

 

“우리 그렇게까지 엄청 친하진 않잖아?”

 

“...”

 

 

내 말에 녀석이 불만스럽게 입술을 삐죽거렸다.

 

 

“...섭섭하게 하네, 진짜. 아 나도 몰라요!”

 

 

왁하고 화를 낸 녀석이 총총거리며 나한테서 멀어졌다.

 

좀 토라진 모양이지.

 

 

“저기.”

 

 

그런 생각을 곱씹고 있자니, 옆에서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금발 벽안 미남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모범생 분위기의 귀티를 철철 흘리고 있지.

 

 

‘아, 이런 캐릭터도 있었지.’

 

 

등 뒤로 삐죽 튀어나와 있는 장창을 보고 있으니 바로 누군지 기억난다.

 

탈리온 아르망드.

 

건실한 자작가인 아르망드의 장자. 이번에 입학한 신입생들 중에서도 눈에 띄는 인재임은 틀림없을 것이다.

나 역시 털어도 티끌 하나 안 나올 완벽한 캐릭터였던 걸로 기억한다.

 

청렴함. 겸손함. 침착함. 품행방정.

 

그리고 무엇보다 엘리야의 턱밑까지 따라갈 실력을 가진 녀석이지. 

덕분에 신입생인데도 팬클럽까지 존재한다나.

하지만, 그런 것들 보다도.

  

‘...얘 1챕터 중간보스 아니었던가?’

 

이 녀석, 머지 않아서 모종의 계기로 타락하여 보스로 전향하는 놈이다.

여기서 이런 식으로 마주치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런데 나한테는 무슨 볼 일이래?’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니, 탈리온이 다시 입을 열었다.

 

 

“있잖아, 용사 후보와는 무슨 사이야?”

 

“...엉?”

 

 

그렇게 물어보는 녀석의 질문에 나도 모르게 얼빠진 소리가 나온다.

 

아니, 의도가 전혀 짐작이 안 가서 그렇다.

실제로도 오늘 하루 종일 저 녀석하고 붙어있긴 했는데.

 

 

“무슨 말이야 그게? 무슨 사이냐니?”

 

“그쪽에 무슨 이유로 접근... 실례, 어떻게 친해졌냐는 뜻이야.”

 

 

어투야 정중했지만, 그렇게 말하는 녀석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나에 대해서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뜯어보려는 것처럼.

 

 

‘...아, 뭔지 알겠네.’

 

 

설정을 좀 떠올려보면, 이 녀석에게 있어 엘리야는 ‘존경하는 사람’이다. 언제 한 번이라도 반드시 닿아서 동수를 이뤄보고자 하는 목표.

 

 

“그냥 저쪽에서 친해지자고 하던데?”

 

 

사실대로 말하니 녀석의 눈꼬리가 꿈틀했다.

 

 

“...사기꾼이라는 말이 수도 없이 나오는 상대한테?”

 

 

어투가 조금 공격적으로 변했다.

 

거기에 맞춰 내 눈도 조금 커졌다.

 

딱히 이 녀석의 기색이 변해서가 아니라.

 

 

< System Message >

 

[ 선善 성향 인물이 당신에게 영향을 받아 분노했습니다! ]

[ 기프트 조건이 일부 충족되었습니다! ]

 

 

지금 내 눈앞으로 떠오른 이런 문구 때문에.

 

 

‘이런 건가?’

 

 

요컨대, 내가 지금 주도적으로 이 녀석을 화나게 하면 할수록 내가 보상을 받을 확률이 올라간다는 소리인가보다.

 

‘부정적인 경향’이라는 말엔 분노 역시 포함되는 모양이다.

"..."

생각을 조금 가속시켜본다.

만약 내가 이 녀석에게 기프트를 발동해서 '악의 지배' 스킬까지 심어넣는다면, 이 녀석은 나중에 내 요청을 반드시 하나 들어줘야 한다는 거지.

거기에 추가적으로 보상까지 타먹고.

'그거 좋은데?'

다른 놈도 아니고 1챕터의 중간 보스다. 그런 기능을 박아 넣기만 활용할 방법은 무궁무진하지.

'타락 관련해서도 굴릴 일이 생길 거고.'

내가 생각한 대로만 굴리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이다.

그럼 여기서 할 일도 간단하지.

 

기프트 조건이 충족될 때까지 이 녀석을 긁어 보는 거다.

 

 

“사기라는 증거도 안 나왔는데?”

 

“정황 상 확실해. 너와 용사 후보가 한 대련이 사기가 아니라는 증거도 없지?”

 

 

엘판테, 일 참 잘하는 모양이다.

 

내가 그거 이후로 눈에 띈 게 몇 번인데 아직까지도 학생들한테 이런 인식을 유지 시키는데 성공하다니.

 

 

“있잖아.”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런 인식에 감사해도 좋을 것이다.

 

 

“뭐 때문에 그러는진 모르겠는데, 난 그냥 저쪽에서 친해지자고 해서 응한 게 전부야.”

 

“...못 믿겠는데.”

 

“왜?”

 

 

이런 말을 꺼내서 거하게 긁어댈 수 있으니.

 

 

“네 목표로 삼은 녀석이 한 방에 무너지는 걸 보니까 벽이 느껴져서? 그래서 대련이 조작이라 믿고 싶은 건 아니고?”

 

 

녀석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솔직히 말해서 이거 정곡이다.

 

본인은 애써 그런 게 아니라고 부정하고 있겠지만, 애초에 이런 게 아니면 나한테 시비를 걸 이유가 없다.

 

“그리고.”

 

 

피식 웃으며 덧붙인다.

 

 

“내가 그런 놈이어도 네가 뭐 어떻게 할 건데?”

 

“...뭐?”

 

“내가 진짜 사기꾼이어도 너보다는 잘 칠 것 같아서 하는 말이야.”

 

 

녀석의 표정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그럼, 내기할까.”

 

 

녀석이 눈을 형형하게 빛내며 답했다.

 

 

“지금 이 안에서 누가 더 우수한 성적을 받아오는지. 어때?”

 

 

[ 기프트 선행 조건 완료! ]

[ 상대방이 대단히 분노했습니다! ]

[ 이 상태로 상대방에게 치욕적인 패배를 안겨줄 시 보상 수령이 가능합니다! ]

 

 

그렇지.

 

걸렸다.

 

 

 

 

“...이봐. 학생회장.”

 

 

콘라드가 어이가 없다는 기색으로 머리를 쓸어넘겼다.

 

그 말을 듣는 엘노어의 표정은 한 터럭도 변함이 없었지만.

 

 

“예. 뭡니까.”

 

“아무리 내가 채점을 도와달라곤 했지만, 대충하라고 하진 않았는데.”

 

“대충한 적 없습니다만.”

 

“...”

 

 

그가 말없이 엘노어가 준 종이를 바라보았다.

 

채점을 위한 서류와 필기구를 주자마자 한 짓이 바로 이거다.

 

 

“그럼 설명해 봐. 왜 수업 시작도 안 했는데 이 다우드 캠벨이란 녀석은 만점이야?”

 

“만점이니까요.”

 

“...”

 

“그 남자는 만점입니다.”

 

 

뭐라는거야.

 

콘라드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노려보자, 엘노어가 여전히 무표정하게 말을 이어갔다.

 

 

“만족하시지 못한 모양이군요.”

 

“너같으면 하겠냐?”

 

“그럼 왜 만점인지 더 자세하게 적기 위해 그쪽을 더 관찰하고 오겠습니다. 숲 속에 들어갔다 오도록 하죠.”

 

“...너 처음부터 그냥 그쪽이랑 붙어 있고 싶어서 수작 부린거지?”

 

“아닙니다.”

 

 

엘노어가 침착하게 말했다.

 

 

“그 엘리야라는 신입생과 단 둘이 두기 싫은 것뿐입니다.”

 

“...”

 

“느낌 상 지금 저 안에서 둘 사이에 뭔가 벌어질 것 같은 느낌입니다. 들여보내 주십시오.”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맙구나.”

 

 

정말로 그랬다.

 

콘라드가 싱긋 웃었다.

 

 

“죽기 싫으면 여기 있어라. 수업 방해로 내쫒기 전에.”

 

“...”

 

 

하지만, 솔직하다고 해서 전부 다 받아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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