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7 - 27. 정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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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 다우드! 괜찮나!”
아득한 의식 너머에서 그렇게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어서 무너진 건물 잔해 속에서 나를 끌어내는 손길이 느껴진다.
먼지와 부서진 돌덩이들이 내 몸 근처에서 후두둑 떨어진다.
“...엘노어?”
쿨럭거리면서 끌려 나오자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엘노어와 눈이 마주쳤다.
“그대...!”
내 모습을 완전히 확인한 엘노어의 눈빛이 흔들렸다.
어. 아마 꽤 다친 모양이지.
무너진 건물에 속수무책으로 깔렸으니 당연히 그렇다.
“...”
절체절명이 안 터지자마자 이 꼴이다.
이전에 모의 던전에서도 확인했던 사실이지만, 스킬은 나한테 ‘적의’를 가지고 죽이려고 하는 공격에만 반응한다.
단순히 충격의 여파로 건물이 무너지는 것만이라면, 그 상황에 내던져진 건 아무런 스텟 버프도 없는 올 스텟 F의 다우드 캠벨이다.
‘골절, 머리 부분에 타박상, 관절도 몇 군데 나갔고...’
시야가 흔들린다. 이마 근처에서 따뜻한 액체가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고, 사지의 거동도 불편하며, 극심한 현기증도 같이한다.
“...후.”
그래. 원래 이게 정상이긴 하지.
올스텟 F는, 이렇게 아주 간단히 죽을 수 있는 벌레 같은 능력의 인간이다. 본디 딱 그 정도의 가치지.
〚...이거 끝내주는군요.〛
흔들리는 시야로 하늘을 바라보자, 거기에는 이미 몸 전체가 변이되고 있는 리버백 후작이 공중에 떠 있었다.
아까 집어삼킨 악마의 정수가 가슴 한복판에 틀어박혀 마치 심장을 대신하여 펄떡이고 있다.
그쪽에서 꿈틀꿈틀 흘러나오고 있는 마기가 몸 전체에 마치 갑옷처럼 둘러져 있는 모습은 이미 인간에서 한참 멀어진 모습이다.
흉물.
그것말고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겠지.
〚선각자께서 혹시 모르니 챙겨주실 때만 해도, 설마 이것까지 쓸 상황이 오겠냐 싶었습니다만.〛
녀석이 씩 웃으며 나와 엘노어쪽을 내려다보았다.
〚인정해드리죠. 당신은 생각보다 골치 아픈 상대였습니다.〛
그렇게 말한 녀석이 조금 더 높은 곳으로 두둥실 떠올랐다.
〚하지만, 이것도 대처하실 수 있는지 궁금한데요?〛
그래.
나도 궁금하다 이 새끼야.
‘...1챕터부터 마인이라.’
세상 지랄같기도 이만한 게 없다.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휙 하고 저 멀리 날아가버리는 리버백 후작을 바라본다. 따라잡을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속도다.
원래 리버백 후작이 사용해야 했을 ‘타락한 힘’은 일반적으로 악마의 부산물 같은 것들이다.
그쪽의 힘을 최대한 조잡하게 흉내 내려고 인간 단위에서 연구한 힘이지.
그에 반해, ‘악마의 정수’는.
악마의 ‘잔재’가 고스란히 담긴 물건들이다. 그걸 섭취해서 마인이 된다면 극히 일부나마 그쪽의 힘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지.
예를 들어서.
-!
-!!!
무너진 건물 잔해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물체들에 엘노어의 표정이 굳었다.
지금은 인간의 형체조차 잃어버리고, 마치 녹아내린 육편덩어리들 같은 그로테스크한 형태지만.
철판을 긁어대는 것 같은 괴성을 지르는 모습은 딱 봐도 주변에 눈에 띄는 모든 생명체를 적대적으로 대하겠다는 모습이다.
“히, 히익!”
“저게 무슨...!”
그리고 느닷없이 건물이 무너지는 대형 사고에 이게 뭔가 싶어서 이쪽으로 모여들던 인간들이, 그걸 보고 다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도망치기 시작한다.
‘...안 좋네.’
악마의 힘은 그저 마기를 주변에 흩뿌리는 것만으로도 그 영향이 닿은 생명체들을 악마의 본거지인 ‘판데모니엄’의 생명체에 가깝게 바꿔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지금 이것들은 엘노어가 아까 전에 썰어넘긴 악마 숭배자들이다.
마인으로 변한 리버백 후작에게 영향을 받아 판데모니엄의 가장 최하위 청소부인 ‘맨이터’로 변하는 모습이지.
이면계와 버금가는 마경인 판데모니엄의 생명체답게 전투력도 위협적이지만, 그것 이상으로 골치 아픈 건 이 녀석들에게 죽은 인간들은 똑같이 맨이터로 부활하게 된다는 점이다.
연쇄작용이지. 마치 좀비 사태와 같다.
거기에 지금 우리들의 현재 위치는 번화가. 안 그래도 유동 인구가 많은 장소에 만월제 축제로 지금 근처에는 민간인들이 바글바글 몰려있다.
최악의 장소에 최악의 시기지.
[ 메인 퀘스트 ]〖 챕터 1 – 정화자 〗
[ ‘정화자’를 격퇴하세요! ]
[ 너무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면 게임 오버입니다! ]
[ 보상: 악의 정수 1개 ]
[ 보상: 영웅의 파편 1개 ]
[ 보상: 5,000pt ]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이번에도 날 실망시키지 않는 빌어먹을 퀘스트가 눈앞에 떠올랐다.
여기서도 사상자를 줄이라니, 농담같지도 않은 주문이다.
-!
-!!
그리고 모든 변이를 끝마치고 괴성을 지르는 맨이터들에게, 느닷없이 섬광같은 일격이 날아든다.
장창을 이용한 정석적인 일격. 일어서려던 맨이터 몇 명이 거기에 꿰뚫려서 날아간다.
“형님! 이게 대체 무슨...!”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닦아내자 저 멀리서 내쪽으로 달려오는 탈리온이 눈에 들어왔다.
방금 날린 일격은 이 녀석이 한 건가.
“굉음이 들려서 와봤더니,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저 괴물들은 뭐고, 리버백 후작님은...!”
그래. 이 상황에 보니까 반가운 얼굴이네.
원래 이즈음에는 이 녀석도 타락해서 저것과 비슷한 꼴이 되었어야 정상이다.
“너도 목걸이 차고 있었으면 저거랑 똑같은 꼴 됐어.”
“...예?”
대답 대신 맨이터 중 한 놈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아직 걸려있는 정화의 집 재단의 목걸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건 누가 봐도 시꺼먼 마기다.
원래대로는 그냥 이성을 좀 잃어버리는 정도로 끝나겠지만, 지금은 마인의 출현 때문에 완전히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모습이지.
그 모습을 본 탈리온의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이건.”
그렇게 말한 녀석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화했다.
아마 현재 상황이 어떤지 순식간에 냉철하게 정리하고 있겠지.
“한 가지만 확인하겠습니다.”
“뭐.”
“...리버백 후작이 주도한 사태입니까?”
존칭이 빠져있다. 형태야 질문이지만 자기도 이미 어느 정도는 확신한 모양이지.
애초에 저 목걸이를 돌리면서 ‘반드시 착용하고 있으라’고 평소에도 수차례 강조했을 테니까.
피식 웃으며 눈동자에 분노를 담은 탈리온을 바라본다.
이 녀석은 얼간이가 아니다.
본래 기획 의도 자체가 엘리야의 라이벌로 디자인된 녀석이니까. 긴급 상황에서의 판단력과 행동력은 이미 학생 수준이 아니란 거다.
“책임과 잘못은 나중에 따져도 괜찮아. 지금은 저거 수습 안 하면 이 자리에 지옥이 열린다.”
흔들리는 시선을 어떻게든 정리하며 그렇게 전한다.
그리고, 일부러 그런 녀석의 목걸이를 벗겨놓음으로서 ‘신뢰’를 샀다면.
그 장점들을 십분 활용해야 할 때다.
“내 말 잘 들어. 하나라도 실수하면 끝장이니까.”
그리고 지시사항을 쭉 풀어놓는다.
그걸 듣는 녀석의 표정이 처음에는 진지하다가, 나중에는 황당함을 거쳐, 종국에는 미친놈 바라보는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지만.
“...그거, 가능하긴 한 겁니까?”
“어.”
무조건 된다.
내가 괜히 그동안 여기저기에 발이 불나도록 뛰어다닌 게 아니거든.
그 정도도 못하면 안 되지.
“그러면, 그동안 형님은...?”
“나야 다른 걸 처리하러 가야지.”
‘목표는 두 가지.’
첫째는 현재 지역에 있는 민간인들의 사상자를 막는 것.
아직 맨이터들의 움직임은 굼뜨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마기가 자욱해질수록 점점 더 빠르고 강해질 것이다.
방금 탈리온에게 전해준 ‘지시 사항’의 대다수는 그쪽을 틀어막기 위해서다.
그리고 두 번째 목표는.
“근원을 제거해야 하니까.”
그 마기를 뿌린 본인인 리버백 후작을 제거하는 것.
내가 지금부터 할 일이다.
“어디로 갔는지는 알고 있나?”
엘노어가 묵묵한 목소리로 그렇게 질문했다.
빠른 속도로 날아가버린 녀석을 어떻게 뒤쫒냐는 질문이겠지만.
“예, 뭐. 예상은 갑니다.”
예상이 간다고 해야할까.
사실, 거기밖에 없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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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치는 언제나 셈이 빠르다.
갈디어 리버백 후작이 악마 숭배자가 된 이유를 따진다면 가장 근원적으로 나올 대답이 그것이었다.
그저 그런 암시장의 상인이었던 그가 후작이라는 위치까지 올라와, 이전에는 상상도 못 할 부와 명예를 누리고 있었에도. 그건 전부 그가 악마 숭배자가 된 부차적인 이유였다.
‘그들의 힘은 대륙 곳곳에 닿아있다.’
모습을 보기는커녕 목소리도 듣지 못한 선각자까지 갈 것도 없이, 그가 만난 악마의 ‘신도’들은 하나같이 가공할 힘을 갖추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선각자를 보필하는 최측근인 ‘계시받은 자’들의 힘은 그야말로 바다를 끓이고, 지축을 부수며, 천축을 갈라버리는 급이다.
자신은 그들과 비교하면 벌레와도 같은 인간이다. 그가 오랫동안 살아남은 것도 그런 사실을 스스로에게 항상 주지시킨 덕분이겠지.
그가 망설임 없이 그들 편에 서기로 한 것도 그걸 확인한 뒤였다.
대륙 어느 누구도 이들을 감히 대적할 수 없으리라는, 장사치 특유의 빠른 셈이 작용한 결과였으리라.
그리고, 리버백 후작은.
다름 아닌 지금. 자신의 선택이 결코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느끼고 있었다.
〚후우...〛
전능감이 가득 찬 한숨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몸 전체에 들끓고 있는 막대한 양의 마기.
그냥 분출하는 것만으로도 약한 생명체는 압력만으로 으깨버릴 수 있을 것 같은 압도적인 힘이다.
그저 악마라는 ‘새로운 신’의 은총을 아주 조금 받아들였음에도 이 정도 힘이다.
〚이 정도라면...〛
임무 정도야 그리 어렵지 않게 수행할 수 있겠지.
악마를 부활시키기 위해서는 각지에 절망과 혼란을 먼저 일으켜야 한다.
사람을 죽이고, 사람을 죽이고, 그 위를 다시 시체로 덮고.
당장 그것부터 저지르면 되겠지.
그가 지금 당도해 있는 곳도 그런 목적을 위한 곳이다.
〚깃들어라.〛
그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눈앞의 ‘결계’에 손을 뻗었다.
치천사가 쳐두었다는 공허 지대 근처의 수호 결계.
원래대로라면 삼엄하게 경비 되고 있을 장소고, 설사 그걸 돌파하더라도 손상시킬 엄두조차 내지 못할 것이겠지만.
지금은 만월제 기간이라 돌파하기도 쉬웠을뿐더러, 그는 지금 악마의 권능을 직접 가지고 있는 상태다.
전부 부수지는 못하더라도, 여기에 아주 조그마한 생채기를 내는 것 정도는 가능하지.
그리고, 공허지대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그것만으로도 상상도 하기 싫은 재앙이 일어나겠지.
‘...결국엔 이게 핵심인데 말이죠.’
지금 시가지에서 벌어지고 있을 난동은 연막 작전에 불과하다.
아마 가용 가능한 무장 병력은 전부 그쪽에 몰려있을 터다.
진짜 목적은 여기에 불과한데 말이지.
“오케이. 동작 그만.”
불행히도.
모두가 멍청이는 아닌 모양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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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알았지?〛
결계에 손상을 입히려던 리버백 후작이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알고 자시고, 아까도 말했지. 뻔하다고.”
리버백 후작은, 뭐라고 해야할까.
자기가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단세포다.
남들보다 우월감을 느끼고 싶어하는 부류라서. 되도록 남을 ‘속이는’ 짓을 먼저 하려고 하거든.
‘...병신 아닌가?’
솔직히, 내가 봤을 땐 그만큼 비효율적인게 없긴 하다.
그냥 맨이터들 조종해서 이쪽으로 최대한 빨리 밀고 들어왔으면 애초에 어떻게든 결계가 파손되는 건 확정인데 말이지.
“...”
하지만, 그 덕분에 이런 기회도 생기는 거다.
내가 찌르고 들어갈 부분도 그런 허영심과 자만이고.
머릿속으로 계획을 정리한다.
방해하는 맨이터들이 있었다면 꿈도 못 꿨겠지만, 지금은 오직 저 녀석만 온전히 상대할 수 있는 상황이니까.
“그래서, 그대.”
새삼 느끼지만, 엘노어의 가장 큰 강점 중 하나는 끝을 알 수가 없는 신체 능력이다.
어지간히 다쳐서 거동조차 힘든 나를 들쳐 업고 이 거리를 순식간에 이동한 것 부터가 그러하다.
“계획이 뭔가.”
내가 한 부탁 한 마디에 군말 없이 나를 이쪽까지 옮겨준 엘노어가 나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그렇게 말했다.
눈동자에 들어차 있는 건 굳건한 신뢰다.
“모든 지원을 걷어치우고 우리 둘만 이쪽으로 이동하자고 한 이유가 있겠지.”
“뭐, 그렇죠?”
시간이 촉박하니까 그렇지.
다른 사람을 부를 여유조차 없다. 여기서 저 녀석이 결계에 틈새를 조금이라도 만드는 순간 그대로 게임 오버 확정이니까.
사람들 죽고, 엘노어도 곧바로 납치당할거고, 회색 악마 풀리고.
배드 엔딩 직행이다.
그보단, 차라리 이렇게 나와 엘노어만 와서라도 결단을 보는 게 낫지.
“그래. 그러면 어떻게 해야 저 녀석을 이길...”
“못 이겨요.”
엘노어의 눈이 가늘어졌다.
“...뭐라고?”
“저희 둘로는 못 이겨요. 절대.”
어. 진짜로 그렇다.
마인을 상대하려면 ‘성검’까지 장비한 엘리야가 있어야 안정적으로 상대가 가능한 수준이다.
그런데 그거, 못해도 4챕터 이후에나 다루는 내용이다. 지금 기대하는 건 양심이 없는 수준이지.
바꿔 말하면, 상대방도 그만큼 양심이 없는 적이란 거고.
최종 보스라지만 성장치 반도 못 채운 엘노어와 지금 중상을 당해 골골거리는 나로는 범접조차 불가능한 상대라 그거다.
“...”
하지만.
믿는 구석이라면 그럭저럭 있다.
-지독한 거에 물렸네. 형태가 다 보이지도 않는데 존나 끔찍한 거라는 건 알겠다. 네 능력 때문에 들러붙은 것 같은데.
문득, 그런 말을 떠올린다. 이전에 천사 아저씨들이 그렇게 경고했었지.
그래. 나도 알아.
나한테 ‘달라붙은 것’이 뭔지도 그럭저럭 잘 알고 있다.
[ 대상 ‘???’가 당신에게 관심을 가집니다. ]
시스템 로그에 찍혀있는 문장을 보면서 피식 웃는다.
이것도 그렇고.
< 기프트 관련 인물 알람 >
♥ 엘노어 에리나리제 라 트리스탄
[ 친애 1단계 ]
[ ‘스킬 복사권’이 사용 가능합니다! ]
마지막 근거는, 이거다.
'친애' 단계의 호감도. 그리고 스킬 복사권.
아마 이걸 이용하면.
지금 수준에서는 절대 못 이기는 적이라도, 어떻게든 상대가 가능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이, 리버백 후작이 한숨을 내쉬면서 마기를 일으키고 있었다.
〚...뭐, 아무래도 좋습니다.〛
이어서, 녀석에게서 폭풍같은 마기의 잔향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물리적으로 꿀렁거리는 아우라가 눈에 보일듯한, 조금이라도 정신을 놓았다간 그대로 졸도해버릴 수준의 밀도다.
어이가 없는 건, 이게 본격적인 마기 방출이 아니라- 그냥 공격의 ‘전조 증상’에 불과하다는거다.
〚당신은 죽이고, 트리스탄 공녀만 확보하면 되겠지요. 차라리 잘 되었습니다. 코앞까지 와주셨으니. 나중에 찾아갈 수고를 덜었군요?〛
우린 지금부터, 이런 녀석과 싸운다.
심호흡을 하면서 엘노어에게 말한다.
“엘노어. 한 가지만 약속해줄래요.”
“뭔가.”
“진짜, 아플 거에요. 고통스럽고. 저를 원망하실 수도...”
“뭐냐고 물었네.”
얼핏보면 내용이나 빨리 말하라는 짜증처럼 들리겠지만.
그 올곧은 눈빛을 바라본 사람이라면 조금 다른 대답을 내놓을 것이다.
당신이 말하는 건 무엇이든지 괜찮습니다.
이미 수락했으니, 걱정하지 말고 말해주십시오.
그런 뜻이다.
“...”
속으로 쓴웃음을 짓는다.
언제나 그렇지만.
이 사람이 나한테 보내는 신뢰의 수준은 적응이 안 된다.
그러니, 나도 그 신뢰에 부응해야겠지.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반드시.”
그 시선을 똑바로 마주하며 답한다.
“제가, 이 자리에서 우리 둘을 살려서 보낼 겁니다. 알겠죠?”
“그래. 알겠네.”
“그러니.”
엘노어에게서 시선을 떼고 리버백 후작에게 고개를 돌린다.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저를 믿어주세요.”
어. 정말로.
내가 지금부터 할 짓은, 꽤나 미친 짓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과 동시에.
해일이 몰아치는 것 같은 기색으로, 리버백 후작이 이쪽으로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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