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7 - 47. 결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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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말이야.
애초에 악마에게 선택된 존재도 아닌 주제에 이런 식으로 악마를 강림시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긴 하다.
실제로도 강신 스킬을 발동하기는 했지만, 이전에 엘노어가 안쪽에 있는 조각을 각성시켰을 때만큼 주변에 퍼진 색깔이 뚜렷하지도 않다. 원래대로는 내 몸에 깃들지도 못하고 주변에 그대로 흩어지겠지.
하지만.
[ ‘타천의 인장’이 반응합니다. ]
[ 악마의 기운이 타천의 인장을 중심으로 결집합니다. ]
그래. 이럴 줄 알았다.
이 타천의 인장이란 게 정확하게 무슨 노릇을 하는진 나도 모른다. 시스템 창에도 설명이 깨져나오니까.
“...”
쓴웃음이 절로 나온다.
게임 안에서 악마란 놈들이 인간에게 남기는 ‘인장’들이 무슨 역할을 하는지 생각한다면, 훗날 이게 어떤 식으로든 나한테 큰 영향을 끼치리라는 건 자명하다.
모르긴 몰라도, 조각이 심어진 다른 악마의 그릇들만큼 내 정신에 깊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지금 당장은.
이걸 이용해 나도 아주 잠깐이나마 그릇을 흉내낼 수 있다.
“...”
세상이 느릿하게 멈춘다. 이전과 비슷한 현상이지.
하지만, 엘노어를 매개로 강림했을 때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는 모습이다.
그때는 악마의 기운이 닿은 세계 전체가 미동도 안 하고 멈출 정도였다면, 지금은 느리게나마 분명히 움직이고 있다. 내 육안으로도 파악이 가능할 정도로.
‘...이래서야.’
쓴웃음을 짓는다.
회색 악마의 기본적인 권능인 ‘침식’은 그 기운이 닿는 모든 공간에 절대적인 통제권을 가지는 능력이다.
조각이 단 하나만 모인 그릇이라도 반드시 발동하는 능력이지.
이렇게 느리게나마 분명히 움직인다는 건, 내가 인장의 도움을 받았음에도 아주 기본적인 기능조차 수행하지 못 한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흐릿하게나마, 녀석이 보인다.
엘노어의 형상을 띄고 있는 회색 악마.
윤곽선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을만큼 희미하다. 내가 완전한 그릇도 아니니까 당연한 일이겠지.
대신, 덕분에 그쪽에서 느껴지는 위압감도 훨씬 덜하다. 이전엔 눈만 마주쳐도 죽을 것 같았다면, 지금은 그래도 버틸 만은 한 수준.
“...”
하늘에서 느릿하게 내려온 녀석이, 말없이 나한테 걸어서 접근했다.
그래도 평소 엘노어와 똑같은 무표정이라는 건 확실하게 보인다.
이전에 보였던 그 어린아이 같은 반응에 비하면 틀림없이 이질적인 모습이지.
“...”
그리고 그 빨간 눈동자가 내 몸에 있는 상처를 구석구석 훑는 모습을 보니까, 그런 느낌이 더욱 강화된다.
이건 그냥 무표정한 게 아니라, 그러니까.
‘...아, 그렇구나.’
화내는 거다.
녀석이 이내 발을 동동 구르며 볼을 부풀렸다. 표정은 여전히 무표정하지만, 나 지금 상황에 불만 있다! 라는 걸 표현하는 모습이겠지.
어디 가서 이렇게 칠칠 맞게 다치고 다니냐는 뜻이겠지. 몸 좀 성히 잘 챙겨다니라는 뜻이렸다.
“...”
신기하긴 하네.
유독 이 녀석은 다른 악마들에 비해, ‘인간적인 관점’으로 봐도 순순한 호의를 보여주는 점이 그렇다.
하얀 악마나 푸른 악마같이 독한 부류라면, 이렇게 강림할 경우 내가 다쳤건 말건 지들 하고 싶은 대로 구속이든 감금이든 저지를 가능성이 높은데 말이야.
그걸 아니까 나도 이 녀석을 어느 정도 믿고 소환하는 거지만.
‘...이번엔 어쩔 수 없었어.’
그런 의미에서 쓴웃음을 짓는다.
시간이 완전히 멈춘 건 아니라서 느리게 나마 가능하다.
“...”
내 얼굴을 본 녀석이, 그제서야 발을 구르는 걸 멈췄다. 볼은 여전히 부풀린 상태였지만.
그리고 그런 얼굴을 유지한 상태로, 녀석이 조금 더 걸어 나한테 접근한다. 손을 뻗어 내 가슴팍에 접촉한다.
“어디Á¦ ÇÏ¿¡가서”
이내, 그 입이 열린다.
“맞고C¾ð¾î°¡UC¾다니지마.,̨̝̻̂̂̈́̾̀̃̐̒̀̕. 속Î̶̻̙͓͓͎̫͛́͌̀̆͊͒͆̚±̦͖̺̗͎͍̰͊̏͒̉̍̉̚͟͠×̵̢̯̥̟͖̞̔̈́̃̚͘͞상해.”
“...”
그래. 명심하마.
악마한테 이런 따뜻한 말을 들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만.
이어서, 내 가슴팍에서 은은한 빛이 솟아올랐다.
[ ‘타천의 인장’에 결집한 악마의 기운에 속성이 추가됩니다. ]
[ 기운이 머무르는 동안, ‘회색 악마’의 권능에 의해 당신의 모든 신체 능력이 대폭 증가됩니다. ]
[ 당신의 모든 공격에 ‘신성 가호’에 대한 추가적인 상성 우위가 부여됩니다. ]
“맞은¾î°¡U만큼¾îÁ¦Ç돌려줘.”
...굳이 신체 능력을 올려준 것도 그런 의도인가 보다.
뭐, 넘치도록 충분하다.
지금 내 몸에 깃든 힘에서 전달되어오는 느낌만 봐도 알 수 있다.
이 정도만 되어도 클라인 정도는 금방 도륙을 낼 수 있을 게 분명하거든.
그리고 이걸 주는 것만으로도 현현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 사용했는지, 녀석의 몸이 다시 바스라져 흩날리기 시작한다.
“...”
이전처럼, 녀석이 피식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젠 목소리도 들리지 않을만큼 힘이 소진된 모습이지만, 그래도 입모양만큼은 읽을 수 있다.
‘사랑해. 나중에 또 봐.’
익숙한 문장이다.
이 녀석, 저번에 정화자 보스전 때 처음 만났을 때도 헤어지기 직전에 이렇게 말했으니까.
그리고.
‘그때는 꼭. 너를.’
이것도 똑똑히 기억하지.
하지만, 이번에는.
‘나와 함께, 세상의 끝까지-’
그런 말이.
추가로 덧붙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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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였지?”
문득, 클라인에게서 그런 말이 흘러나왔다.
느낌이 있다. 지금도 살짝 손이 떨리고 있다.
아주 찰나지만, 방금 전에 뭔가가 이 자리에 있었다.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본능적인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뭔가가.
그 증거로, 그의 온몸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있었으니까.
“흠.”
하지만, 거기에 빠져있을 틈새도 없이.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콧숨이 그의 의식을 다시 현실로 끌어내렸다.
퍼뜩 정신을 차린 그가 다시 검을 잡고 자세를 취했지만.
“...”
건너편을 본 그의 의식이 다시 허공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거기엔 무기를 바닥에 내려놓는 다우드 캠벨이 있었으니까.
“...뭘 하는 거냐?”
모든 걸 다 포기하고 순순히 패배를 맞이하겠다는 건가?
갑자기 무기를 포기하다니?
“아니.”
상대방이 평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주먹을 쥐락펴락하면서 얼굴을 살짝 찡그리고 있다.
마치 자신에 몸에 스스로도 익숙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모습이다.
그리고 그 모습에서, 클라인은 본능적으로 한 가지 알아차렸다.
이 녀석.
뭔가 달라졌다.
아까 전에 비해, 뭔가가 ‘깃들어 있다’.
“검 쓰면 한 방에 죽을 것 같아서.”
-!
그리고 다우드가 가볍게 내지른 주먹이, 곧바로 클라인의 턱에 적중했다.
말하자면, 주먹을 톡 가져다 댄 수준이다. 그 정도로 성의 없는 동작이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도.
“...!”
몇 번이고 중첩된 가호가 마치 종잇장처럼 뚫리는 모습에 경악을 토해낼 수도 없이, 클라인이 곧바로 빈 호흡을 토해내며 뒤로 비틀비틀 물러섰다.
뇌진탕 증세 때문에 균형을 잡기도 힘들지만, 이내 또 다른 공격이 날아들었다.
이번에도 성의 없는 발차기다. 진짜 작정하고 살살 차려 노력하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하지만.
“커헉-!”
신체끼리 부딪힌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파열음과 함께, 클라인의 몸이 공처럼 날아갔다. 볼썽사납게 바닥을 구르는 동안에 입에서 뿜어져 나온 핏덩어리가 바닥으로 길게 잔상을 남겼다.
저 웃기지도 않은 동작으로도, 다시 모든 가호가 돌파당하고 늑골까지 부러진 것이다. 부러진 뼈가 폐를 찌르는 바람에 호흡에 혈향이 섞인다.
곧바로, 그의 눈으로 핏발이 올라왔다.
“...이...뭣도 없는 놈이...!”
갑자기 어떻게 이런 식으로 강해졌는진 모르게지만.
법황이 직접 보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추태를 보여줄 수는 없다.
그런 생각이 드는 것과 동시에, 몸 근처에 둘러져 있는 신성 문자들이 내뿜는 빛이 더욱 강해졌다. 일단은 재생 증폭.
뼈가 다시 순식간에 원래 자리를 찾아가고, 호흡이 안정되며, 몸에 기력이 돈다.
이어서 그의 몸에 걸려있는 모든 가호를 한 가지 속성으로 돌린다.
‘...설마 이것까지 쓸 거라곤 생각도 못 했지만!’
곧바로 그의 검에 흰색 불꽃이 피어올랐다.
고위 전투 사제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공격용 ‘기적’ 중 하나.
“에테르 화염?”
건너편에서 어이가 없다는 목소리가 돌아왔다.
“야, 대형 마수 잡을 때나 쓸만한 걸 무슨...”
실제로 이건 고작 약식 결투, 그것도 학생 상대로 사용할만한 능력은 절대 아니다.
피격자가 죽거나, 타격자가 자기 의지로 꺼트리기 전까지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 천상의 불꽃.
가호와 비교하면 수십 배의 위력을 자랑한다고 알려진 기적 중에서도 그 악랄함과 위력으로는 정평이 나 있는 기술이다.
하지만.
“죽이지만 않으면 그만이다!”
하얀색 불꽃을 머금은 검이 쏜살같이 다우드 쪽으로 뛰쳐나갔다.
목적은 죽이는 게 아니라 저쪽에도 끔찍한 고통을 주는 거다. 차라리 제발 죽여달라고 빌기 직전까지 산채로 불사르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음.”
어깨를 한 번 으쓱인 다우드가, 아무렇지도 않게 그 자리에서 주먹을 내지르기 전까지만 해도.
그리고 그 동작만으로도.
주먹에 의해 일어난 바람에, 화염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
클라인이 입을 쩍 벌리고 자신의 검을 바라보았다.
그 정도 되는 전투원이라면 이렇게 전투 도중 집중의 끈을 놓치는 기초적인 실수는 절대 하지 않아야 정상이다.
따지자면 아까 전에 피를 뿌리며 나가떨어진 것보다 이게 더한 추태겠지.
적어도 법황이 보는 앞이라면 절대 보여줘서는 안 될 모습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 그것조차 신경 쓰지 못할 만큼 지대한 충격에 휩싸인 상태였다.
고위 전투 사제인 자신이 뽑아낸 공격용 기적을.
무슨, 촛불에 바람을 불어서 꺼 버리는 것처럼.
“...이것도 되네. 상성 우위란 게 이런 뜻인가?”
“너, 너, 대체 뭐하는...!”
가볍게 말하는 상대방에게 경악한 목소리로 그런 말을 꺼냈지만, 문장이 다 끝나기도 전에 또 다른 주먹이 그의 턱에 꼽혔다.
이번에도 모든 가호가 돌파당하고, 다시 의식이 혼탁해진다.
“걱...!”
공중에 떠오른 몸에 다시 공격 몇 개가 이어졌다.
훤히 비어있는 복부에 한 방. 기억자로 몸이 구부려져 내려온 얼굴에 무릎이 꽂힌다. 젖혀지는 머리에 망치를 때려 박는 듯한 스트레이트가 추가로 날아든다.
“컥, 헉...!”
그가 할 수 있는 건, 그 모든 공격을 얻어맞으며 고통에 가득 찬 비명을 지르는 것 뿐.
따지자면 기교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동작이다. 그저 싸움 조금 해 본 일반인이나 다름 없는 모습이지.
하지만, 그럼에도 대처 할 수 없다. 반응조차 할 수 없다.
모든 가호를 진작에 재생 능력쪽 돌려서 치명적인 중상조차 회복할 수 있는 상태지만, 그럼에도 치료되는 속도를 다치는 속도가 아득히 상회한다. 상대방은 가볍게 공격을 툭툭 내지르고 있음에도.
그 정도로 압도적인 힘의 격차가 난다!
“아, 그러고 보니까.”
다우드가 피식 웃으며 말을 꺼냈다.
“죽이지만 않으면 된다고 했지?”
-!
-!!
고통이 이어진다.
코뼈가 완전히 으스러진다. 코에서 흘러내린 시뻘건 핏물이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이어서 날아온 발차기에 머리가 근처 벽에 처박혔다. 부딪힌 위치에 거미줄 같은 금이 쩌적쩌적 갔다.
‘가지고, 놀고 있어...!’
쓰러트리려면, 진작에 쓰러트릴 수 있었다.
그 정도로 압도적인 격차가 난다.
이건, 애초에 싸우는 것 조차 아니다.
상대방이 자신을 벌레처럼 짓이기는 거지!
“그, 그만...!”
다시 한 방.
재생되어 다시 돋아난 이빨들이 다시 자리를 잡을 틈새도 없이 부서져서 사방으로 흩날린다.
이어서 한 방 더.
복부에 날아든 주먹에 핏덩어리가 식도에서 울컥하고 솟아오른다.
계속해서, 그렇게 얻어맞는다.
스테이지 위로 피 웅덩이가 곳곳에 고일 정도로. 얻어 맞고, 얻어 맞고, 얻어 맞고.
결국 도저히 참지 못한 그가 비명을 내질렀다.
“그만, 그만해! 내가 잘못했다! 이제 그만...!”
전의는 이미 상실한 지 오래다. 법황이 지켜보고 있는 것도 부차적인 문제였다.
온 몸이 갈갈이 찢기는 것 같은 고통에서 당장 벗어나는 게 더 급하다!
그리고 그 자존심이고 뭐고 전부 내던져버린 비명에, 다우드가 잠깐 동작을 멈췄다.
“...!”
어쩌면 정말 이 말에 멈춰주는 것인가. 그가 살짝 희망에 찬 기색으로 상대방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곧바로 등골에 소름이 쭉 돋았지만.
상대방의 눈동자에는,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았다.
이런 가열찬 폭력을 휘두르면서도, 담담하게.
마치 그냥 ‘일’을 하는 것처럼.
“흠.”
그저.
자신이 판단한 ‘적’에게, 이 정도의 고통이야 당연하다는 것처럼.
이어서 흘러나오는 문장도 그에 맞게.
여전히, 평탄한 말투였다.
“싫어.”
다시 얼굴을 향해 날아드는 주먹이, 그가 기억하는 마지막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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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하기는 무슨.
그럴거였으면 처음부터 사람을 산 채로 고문하질 말던가.
“...”
“...”
주먹을 맞고 축 늘어지는 클라인을 잠깐 바라보다가, 주변을 슬쩍 둘러본다.
숨 막히는 정적이 가득 차 있었다.
아카데미의 학생이 고위 전투 사제를 쪽도 못 쓰게 갈아버린 것도 이유겠지만, 내가 방금 쓴 힘도 그럴 것이다.
이 자리에 있는 인간이라면 대부분이 알아차렸겠지.
내가 방금 불러일으킨 게 ‘악마의 기운’이라는 것을.
‘충격 안 받는게 이상하긴 해.’
악마의 능력, 그 중에서도 최강인 회색 악마의 권능을 아주 잠깐이나마 직접 일으킨 거다.
설정상 이 힘에 군침을 흘리고 있을 집단이 한두 군데가 아닐 텐데.
그런데, 자기들 딴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내가 이 기운을 일으키고 있으니 놀라는 게 당연하다.
심지어 그런 능력을 다루면서도, 보통의 그릇과는 다르게 정신을 잃고 폭주하기는커녕 이성을 멀쩡하게 유지하고 있다.
역사를 뒤져봐도 단 한 차례도 없는 일이겠지.
‘...그거야 내가 진짜 그릇이 아니니까 그렇지.’
이건 그냥 흉내내는 거다. 진짜 악마의 기운을 능숙하게 다루는 그릇이라면 이 정도 능력이야 그냥 애들 장난 수준이다. 난 그냥 그 편린만 조금 맛 보기로 보여주는 게 할 수 있는 것의 전부고.
하지만, ‘악마의 힘을 이성적으로 통제 가능한 인간’이라는 이미지를 이 자리에 있는 전원에게 암시하는 데는 성공했을 게 분명하지.
그것만으로도, 내 입지는 완전히 달라진다.
“...”
좀 슬프게 말하면 말이야.
아탈란테가 말한 패권국들의 지원이라는 거, 사실 그릇들을 관리할 소모품으로서 원활하게 기능하도록 도와주겠단 소리지. 나한테 뭔가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겠단 말은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
내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내 ‘가치’를 인정해주진 않았을거란 그거지.
하지만, 지금 내가 이 자리에서 보여준 모습만으로도.
앞으로 많은 게 바뀔거다.
“...”
얼마나 그렇냐면.
이런 짓까지 가능할 정도로.
“허... 브윽...”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 하는 단어를 내뱉는 클라인의 멱살을 잡고 일으킨다.
그대로 질질 끌어서.
객석 중 한 곳으로 집어던진다.
-!
클라인의 몸이 붕 날아나는 것과 동시에, 객석에서 얕은 비명이 흘러나왔지만.
거기에 충돌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몸이 날아가는 도중, 허공에 생성된 ‘신성 방벽’에 가로 막혔으니까.
“...이게, 무슨 짓입니까?”
성 크레도 바오르 2세.
신성 방벽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대로 클라인의 몸에 충돌했을 현 세대의 법황이 고저 없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보면 모르시겠습니까, 성하.”
씩 웃으며 말을 잇는다.
“저, 지금 당신한테 시비 거는 겁니다.”
주변에 있는 전원의 입이 떡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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