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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에게 사랑받는 운명입니다 (66)화 (67/258)

Chapter 66 - 66. 폭풍의 상견례 (2)

 

 

켄드리드 변경백 가문과 트리스탄 대공 가문의 알력 다툼은, 사실 그 정도에 비해 생각보다 그리 오래 된 전통은 아니다.

 

정확히는, 크라트와 기드온이 가주를 맡기 전까지는 애초에 서로한테 제국 제일의 대귀족이 누구냐에 대한 미묘한 신경전 수준의 싸움이 전부였던 집안들이다. 알력 다툼이라고 할 것까지도 없지.

 

하지만.

 

이 두 명이 가주를 맡기 시작한 요 근래, 이 두 가문의 관계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평가가 많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는 지금 당장 캠벨 남작의 집무실 안에서도 아주 잘 드러나는 분위기였다.

 

 

“...”

 

“...”

 

“...”

 

 

말없이 중압감을 침묵과 함께 견뎌낸다.

 

만약 살기라는 게 물리적인 형태로 존재해서 뭔가 현상을 일으킬 수 있었다면, 지금 이 조그마한 집무실은 그대로 폭발해서 날아가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먼저 침묵을 깨트린 것은 크라트였다.

 

 

“샌님 새끼가 여긴 무슨 일인데?”

 

 

기드온의 얼굴이 찌그러졌다.

 

웬만해서는 표정도 잘 변하지 않는 사람치곤 대단히 이례적이라 해야 할 것이다.

 

이어지는 행동도 틀림없이 그렇겠지.

 

 

“...야만인이랑 다를 것 하나 없는 놈한테 알려줄 이유는 없지.”

 

 

답지 않게, 트리스탄 대공이 노골적으로 상대방을 비웃는 것 같은 문장이었다. 크라트의 얼굴도 단숨에 찌푸려진다.

 

 

“...좋게 좋게 가자, 샌님.”

 

 

하지만 그 분노를 그대로 폭발시키는 대신, 크라트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마음 같아선 나도 네 모가지를 분지르고 싶고, 너도 내 머리통을 썰고 싶겠지. 하지만 장소가 부적절해.”

 

 

이 캠벨 남작령이라는 평화로운 동네에서 서로 치고 박는 건 그다지 그가 원하는 일은 아니었다.

 

무고한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는 건 그로서도 그다지 내키는 일은 아니니까. 하물며 척 봐도 멀쩡하게 영지를 경영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 유능한 귀족한테.

 

 

‘...이 놈은 이 와중에도 멀쩡하네.’

 

 

그가 옆에서 무표정하게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 다우드를 보고 실소를 흘렸다.

 

기색이 침착하다. 이런 화제가 날아드는 와중에.

 

자신과 트리스탄 대공, 제국에서 내로라하는 두 명의 귀족이 모두 자신 때문에 모였다는 걸 모를 리가 없을 텐데도.

 

 

“우리 둘이 싸우면 이 영지가 통째로 날아가. 너도 그걸 모르진 않겠지.”

 

“...”

 

 

트리스탄 대공이 침묵하며 크라트를 마주보았다.

 

크라트로서는 내심 놀랄 수밖에 없는 반응이기도 했고.

 

 

‘이 새끼가 내 말에 동조를 다 하네?’

 

 

원래대로면 맞는 말인 걸 알면서도 이 악물고 서로에게 어깃장을 놨어야 할 사이다. 크라트와 기드온은 그 정도의 적개심을 서로 대놓고 주고 받을 정도의 사이라는 건 만천하가 다 안다.

 

하지만, 지금 기드온은 침묵으로 무언의 긍정을 보내고 있었다.

 

자신도 이 영지에 피해를 끼치는 건 원하지 않는단 것처럼.

 

그동안 이어져 온 앙숙 관계보다, 지금 이 영지와 거기에 얽혀 있는 인간을 더 중요하게 여기겠단 뜻이다.

 

아마, 높은 확률로.

 

 

‘...이 녀석이 이 놈한테 그렇게 중요하단 소린가?’

 

 

크라트의 시선이 날카로운 기색으로 기드온과 다우드를 번갈아가며 훑었다.

 

대체 이 두 명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진 모르겠는데.

 

오히려 그렇다면 지금 더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순례 귀향이라면 너도 절차는 알겠지.”

 

 

크라트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리 가족이 이 녀석과 함께 고향에 방문했으니, 다음에는 이 다우드란 놈이 우리 고향에 방문할 차례야. 그쪽 가족도 같이 붙어서 온 모양이긴 하다만, 우리 쪽에 먼저 방문한다고 약속만 하면 깔끔하게 물러나 주지.”

 

 

그렇게 말한 켄드리드 변경백이, 옆쪽에서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는 다우드의 모습을 힐끔 바라보았다.

 

 

‘...이 놈, 가능성이 보인다고.’

 

 

단순히 엘리야가 이쪽에 척 봐도 티 나는 감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다우드 캠벨이란 녀석이 그 짧은 시간 안에 자신에게 어느 정도로 깊은 인상을 남겼는 지 생각한다면, ‘투자 가치’야 분명히 있다.

 

개인적으로 이쪽에 가지고 있는 감정과는 별개의 문제로, 이미 본인의 능력 정도야 여러 면에서 증명을 했으니.

 

켄드리드 변경백과 지근거리에서 손을 섞어 살아남고, 역으로 한 방 먹이기까지 했다. 기껏해야 아카데미 학생이.

 

그 척박하고 험난하기로 유명한 북부에서 살아남은 놈들 중에서도 그게 가능한 인간은 손으로 꼽을 정도다.

 

 

“...”

 

 

하지만 그런 생각이 무색하게.

 

여태 무표정하게 이 모임에 참석하고 있던 다우드의 기색은 계속해서 우중충해지고 있었다.

 

이야기가 어떻게 굴러갈지 한 번에 감을 잡았기 때문에.

 

요컨대, 우선 순위를 정하라는 것이다.

 

트리스탄 대공과, 켄드리드 변경백.

 

겉으로 보기에는 어느 쪽에 먼저 방문할 것이냐에 대한 조율 절차에 불과하지만, 그 속내는 이 녀석은 우리 거니까 썩 꺼지라고 상대방 측에 으름장을 놓는 것이나 진배없는 이야기다.

 

제국에서 내로라하는 대귀족 두 명이 동시에 자신에게 침을 바르려 하는 상황에서만 나올 수 있는 선택지였지만, 그의 표정은 도저히 나아질 기색이 안 보였다.

 

왜냐하면.

 

 

“...그런 애들 장난은 알 바 아니야.”

 

 

어느 쪽을 고르건, 상대방이 그런 선택을 달가워 할 리가 없었기 때문에.

 

기드온이 딱딱한 목소리로 말을 받았다.

 

 

“하지만 그런 얼음밖에 없는 낙후된 땅에 굳이 이 남자 수준의 인재를 보내는 게 탐탁치 않은 것만큼은 확실하군.”

 

“...”

 

“패배자들과 도망자들의 모임이잖나, 북부는.”

 

 

크라트가 피식 웃었다.

 

하지만 그런 반응과는 대조되듯이, 그 온몸에 푸른색 기운이 깃들고 있었다.

 

무투파 성기사들의 전투 태세나 다름없는 ‘강기’를 불러오는 모습이다.

 

방금 기드온이 꺼내놓은 문장은, 북부 변경백 가문의 ‘역사’를 생각한다면 도저히 묵과할 수가 없는 내용이었으니까.

 

 

“...보자보자 하니까 이 씹새끼가 뚫린 입이라고 자꾸-”

 

“그러면 이건 어떻습니까.”

 

 

험악하게 흘러가려던 분위기로, 그런 말이 툭 떨어졌다.

 

여태 한 마디도 하지 않던 다우드 캠벨이었다.

 

 

“어차피 어느 쪽을 고르건 상대쪽에게서 불만밖에 안 나올 것 같은데, 공정하게 상대방이 납득할 만한 이유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무슨 소리야? 둘이 결투라도 하라는 거야? 적당한 장소만 마련해주면 오히려 환영-”

 

“당신네들 둘이 싸웠다는 사실에 우리 집안 끼워넣지 마세요. 어떤 식으로든 다른 귀족들한테 물어뜯길 거리가 생기니까.”

 

“...”

 

“날 가지고 무슨 짓을 하건 상관없는데, 내 가족까지 끌고 들어가진 말라고. 알아들으십니까?”

 

 

담담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한 다우드 캠벨의 모습은, 귀족적인 예법 측면에서 본다면 대재앙이나 다름없는 모습일 것이다. 지금 당장 그들 두 명이 목을 날려버리려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다만, 그들 두 명 모두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당장 그들 입장이 이 남자를 아쉬워하는 입장이기에 그렇기도 했지만.

 

‘가족’에게 위해를 가하려 하는 대상에게 말하는 이 남자에게서는.

 

뭐라고 끼어들 수 없을 만큼 기묘한 압박감이 느껴졌기 때문에.

 

 

‘...이런 점은 마음에 든 단 말이야.’

 

 

크라트조차 피식 웃으면서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평소에 가끔 보이는 그 맹하고 멍청한 기색, 특히 이성 관계 관련해서 보이는 그 얼빠진 모습과 이럴 때 보이는 모습은 천지차이다.

 

오죽하면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을 정도로.

 

 

“너, 진짜로 몰라서 다른 놈들 마음 무시하는 것 맞냐?”

 

“...예?”

 

 

방금 전에 올라간 호감 수치가 단박에 깎여나가는 멍청한 반문이다.

 

크라트가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 있자니, 다우드가 다시 헛기침을 하면서 말을 이었다.

 

 

“아무튼, 싸움 없이 서로 좋게좋게 가자는 이야깁니다. 말하자면 그거네요.”

 

 

그런 말을 꺼내놓은 다우드가, 잠시 말을 골랐다.

 

뭐라고 설명해야 이걸 잘 포장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물론 결론은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튀어나왔다.

 

그딴 건 처음부터 불가능하다는 걸.

 

 

“제가 일 하나 시킬 테니까 둘 중 더 똑바로 하는 사람 쪽에 가겠습니다.”

 

“...”

 

“제 마음에 들도록 두 분 다 노력해주십쇼.”

 

“...”

 

 

크라트가 나지막하게 감탄했다.

 

 

‘상남자네.’

 

 

아까 전에 가라앉았던 호감 수치가 다시 급상승하고 있었다.

 

 

 

 

“...다우드.”

 

“...”

 

 

물론, 다른 사람이 보기엔 그냥 내가 미친 짓을 하는 모습 이상도 이하도 아니겠지만.

 

사색이 되어 나를 호출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일단 그쪽으로 다가간다.

 

 

“네가 괜찮다고는 했지만, 이거 정말 괜찮은 것 맞니...?”

 

“네.”

 

 

짧게 끊어서 말하자 아버지가 불신의 눈초리로 나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았다.

 

하긴. 제국의 양대 기둥이라는 대귀족 두 명에게 남작 본인도 아닌 후계자가 들이받았는데 그걸 순순히 봐줄 사람이 누가 있을까.

 

 

“...진짜로 괜찮아요, 아버지.”

 

 

하지만, 오히려 이 편이 훨씬 더 안전하다.

 

 

< System Message >

 

[ 켄드리드 변경백이 당신의 호탕한 기개에 감탄합니다! ]

[ 대상 ‘크라트’의 호감도 단계가 ‘관심 1단계’로 격상합니다! ]

[ 선善 성향 인물입니다. 보상이 축소됩니다! ]

 

“...”

 

 

항상 느끼는 건데.

 

이 게임에는 이상한 사람이 너무 많다.

 

방금 전에 그런 식으로 지르고 왔는데 오히려 호감도가 올라가는 괴짜가 제국 귀족 중 서열 두 번째라니.

 

 

‘어느 정도는 알고 지르긴 한 거지만.’

 

 

크라트는 내가 이런 식으로 들이받으면 오히려 기꺼워하며 승낙해줄 가능성이 높고, 기드온은 애초에 맺어진 게 사제 관계라 거절할 가능성 자체가 희박했다.

 

 

“...”

 

 

그리고, 이유가 그것만 있는 게 아니다.

 

당장 눈앞에 떠올라 있는 창만 봐도 그렇지.

 

 

< 기프트 관련 인물 알람 >

♥ 엘노어 에리나리제 라 트리스탄

[ 친애 2단계 ]

[ 관련 이벤트 발생까지 D-1 ]

 

▼ 엘리야 크리사낙스

 

[ 신뢰 1단계 ]

[ 관련 이벤트 발생까지 D-1 ]

 

▼ 기드온 게일스터드 라 트리스탄

 

[ 관심 4단계 ]

[ 수령 가능한 보상이 존재합니다! ]

[ 관련 이벤트 발생까지 D-1 ]

 

▼ 크라트 벨리움 라 켄드리드

 

[ 관심 1단계 ]

[ 수령 가능한 보상이 존재합니다! ]

[ 관련 이벤트 발생까지 D-1 ]

 

 

“...”

 

 

그것 참 현란하기도 하구나.

 

전부 기드온과 크라트가 만난 직후로 생성된 창들이지.

 

이렇게 많은 인물이 동시다발적으로 엮이는 거라면, 이게 가리킬 경우의 수는 딱 하나뿐이다.

 

 

‘큰 거 온다...!’

 

 

그렇게 생각하며 창을 돌린다.

 

 

< Quest Info >

 

[ 사이드 퀘스트: 소란! ]

[ 퀘스트 종료까지 D-1 ]

[ 체스터 백작가에서 계속하여 주변 영지에 분쟁을 조장하는 모양입니다. 그 이유를 밝혀내고 해결하세요! ]

 

[ 보상: 중급 유물 1개 ]

 

 

하필이면 이 퀘스트의 종료 타이밍에 전부 다 겹친단 말이지.

 

 

‘...지금 타이밍에 열리는 건 조금 빠르긴 한데.’

 

 

체스터 백작가 관련하여 유물을 제공하는 사이드 퀘스트, 그리고 이만한 숫자가 얽힐만 한 이벤트라면.

 

그거밖에 없다.

 

엘노어와 기드온 관련해서 관계의 분기를 ‘긍정적으로’ 형성하고 갈 수 있는 이벤트.

 

 

“...”

 

 

그 ‘내용’을 생각하면 쓴웃음이 절로 나오기는 한다. 그렇게 해주기가 좀 힘든 게 아니거든.

 

그래도 이렇게 빠른 타이밍에 그런 걸 해주고 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메리트지.

 

굳이 기드온과 크라트에게 ‘일을 시킨다’고 표현한 것도 그래서다. 그 두 사람을 내 입맛에 맞게 휘두를 수 있는 게 아니면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거니까.

 

엘노어 가문 관련해서 열려있는 전용 퀘스트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분기점이니까.

 

 

“마부. 체스터 백작령까진 얼마나 남았죠?”

 

“거의 다 왔습니다!”

 

 

지금 이만한 인원을 끌고 체스터 백작령으로 이동하는 것도 그래서 그렇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이런 게 떠올랐으면 바로 해결해주는 게 인지상정이니까.

 

“그런데, 아들아.”

 

 

덜컹거리는 마차 안에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아버지가 건너편에서 다시 걱정스러운 얼굴과 함께 질문을 던져왔다.

 

 

“...지금 영지에 올 사람은, 이게 전부 맞니?”

 

“...”

 

“혹시 너도 모르게 추파를 던진 여성분들이 더 있거나 하지는 않니...?”

 

 

세상에 자기도 모르게 여자를 꼬시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아버지.

 

 

< 기프트 관련 인물 일람 >

 

▼ 루시엔 그레이하운처

 

[ 관심 1.5 단계 ]

[ 관련 이벤트 발생까지 D-1 ]

 

▼ 유리아 그레이하운처

 

[ 관심 4단계 ]

[ 관련 이벤트 발생까지 D-1 ]

 

[ 스킬 복사권 1개를 사용 가능합니다! ]

 

“...”

 

 

물론 그거랑 별개로.

 

올 사람이 더 있는 것 같긴 하다.

 

슬프게도.

 

 

 

 

“터무니 없는 소리.”

 

 

체스터 백작이 짜증난다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켄드리드 변경백? 트리스탄 대공? 말이 되는 소리를 좀 해. 남작가에 그런 인간들이 얽힐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하, 하지만, 켄드리드 변경백은 정말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

 

“네놈이 잘못 본 거겠지. 켄드리드 변경백을 사칭하는 미친놈이거나.”

 

“...”

 

“그 인간이 북부에서 마지막으로 자리를 비운 게 10년 전이야. 트리스탄 대공의 결혼식 이후로 한 번도 속세에 내려온 적 없는 인간이 무슨 이런 깡촌에...”

 

 

아니, 그게 아니라니까.

 

시종장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용력, 기세, 그리고 생김새까지. 전부 그가 알고 있는 켄드리드 변경백의 정보와 완벽하게 일치했다.

 

하지만, 지금 체스터 백작은 그의 말을 믿을 생각이 추호도 없는 게 분명했다.

 

워낙 믿기 어려운 정보기는 하지만.

 

 

“그런 쓸데 없는 거에 신경 쓰지 말고, 빨리 주변 영지에서 땅이나 더 뺏어와. 그렇지 않으면 우린 다 죽은 목숨이니까. 알아들어?”

 

 

그건 시종장도 동의하는 부분이었다. 그의 목울대를 타고 마른침이 꿀꺽 넘어갔다.

 

현재 체스터 백작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다른 영지의 ‘땅’을 뺏어오는데 극히 집중하고 있다.

 

자신의 영지 한 가운데서 발견된 그 ‘괴물’ 때문에.

 

지금은 겨우 부화 단계지만, 몇 달이고 몇 년이고 시간을 더 준다면 틀림없이 영지 자체를 집어삼킬 재앙이 되겠지.

 

그런 정보를 뇌까리고 있자니, 멀리서부터 길게 목소리가 들려왔다.

 

 

“백작님! 백작니이이이임-!”

 

 

새파랗게 질린 영지 기사 중 한 명이었다. 그야말로 귀신이라도 목격한 몰골에, 체스터 백작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냐? 왜 몰골이 그 모양이지?”

 

“다른 귀족의 방문입니다. 조속히 나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방문? 일정을 잡은 건 아무 것도 없었을 텐데? 누구지?”

 

 

실제로, 그런 것도 하지 않고 방문하는 건 대단한 결례다.

 

급이 맞지 않는 상대라면 꽤 호된 대가를 치룰 생각 정돈 해야겠지.

 

 

“캠벨 남작입니다!”

 

 

남작이라. 누군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위협을 통해 커다란 망신을 주고 쫒아내면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체스터 백작이 입을 열려는 찰나에, 기사의 문장이 이어졌다.

 

 

“켄드리드 변경백과 트리스탄 대공을 호위로 대동하고 있습니다!”

 

“...”

 

 

체스터 백작의 얼굴에 대문짝만한 물음표가 박혔다.

 

그러니까.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문장이 분명했으니.

 

 

“...남작에게, 켄드리드 변경백과 트리스탄 대공이 호위로 붙어있다고?”

 

“...그렇습니다!”

 

“...”

 

 

주변이 묵직한 침묵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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