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9 - 69. 토벌대 (3)
●
“...”
“...”
타닥거리는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엘노어와 엘리야가 말없이 바닥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대귀족을 두 명이나 낀 상황에서 야영 준비까지 시킬 순 없는 노릇이다보니, 그 신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야영 준비를 모조리 전담한 참이었다.
“텐트하고, 침낭, 보존용 전투식량. 우와, 옛날 생각나네...”
“...예전에도 이런 일을 해 본 적이 있었나?”
“많이 해봤죠. 캠벨 남작가에서는 아니지만.”
“...?”
그런 정체불명의 설명이 다우드에게서 나오긴 했지만, 아무튼 그런 말이 허투는 아닌 모양인지 일행을 데리고 능숙하게 야영 준비를 뚝딱 끝내버린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본인은 대공과 변경백을 데리고 ‘토벌 계획’을 짜겠다며 휙 사라져버린 참이었다. 여기 남아있는 두 명은 불침번이고.
‘예전에 대체 뭘하고 다니던 인간이야?’
수상할 정도로 감추고 있는 재주가 많은 인간이다.
이런 건 어디 군대에서나 배우던 것 아니던가?
‘...그러고 보니.’
애초에 그쪽하고 제일 처음 친해진 이유도, 도대체 뭐하는 인간인지 궁금해서 억지로 비비고 들어갔던 기억이 있다.
틀림없이 그 인간이 트리스탄 공작가와 모종의 관계가 있을 거라 생각해서 이쪽에 접근했던가.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이유보다 그 사람 자체가 진국이란 생각에 근처에 붙어있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게 되었지만.
‘이 둘, 무슨 관계일까.’
그녀가 눈앞에서 부지깽이로 모닥불을 뒤지는 엘노어를 보고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적어도 돈독한 사이인 건 틀림없어 보인다. 둘 다 위급 상황에서 제일 먼저 의존하는 사이라는 건 눈치로라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으니까.
그렇다면.
그 인간은, 왜.
-엘리야를 저한테 온전히 맡겨주십쇼. 절대 후회 안 하게 해드릴 테니까.
왜, 그런 말을 했단 말인가.
엘리야가 눈을 부릅뜨고 귀까지 올라오는 화끈거림을 간신히 진정시켰다.
‘...아, 아직, 좋아하는 거나, 그러는 건 아니니까!’
아무튼, 자신이 트리스탄 공작가에 가지고 있는 ‘원한’만큼은 아직 건재하다.
자꾸 그 남자가 이상할 정도로 자신의 마음에 콰직콰직 박히는 말이나 행동을 자주 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자신이 함락됐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그 부분이 해결되기 전까진 절대로 그걸 받아줄 생각 없...!
‘...어, 잠깐만.’
자기 지금, 그것만 해결하면 받아줄 것이란 사실을 전제로 깔고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대체 누구한테 하는 변명인지도 모를 문장을 주워 섬기고 있자니, 느닷없이 건너편에서 엘노어가 펄쩍 뛰어올랐다.
이내 부들부들 떨면서 검을 잡는 걸 보니 어지간히 겁에 질린 기색이다. 와중에도 표정이 하나도 안 바뀌는 모습은 신기했지만.
“...!”
엘리야의 눈초리도 덩달아 날카로워졌다. 이 사람이 이런 반응을 보인다는 건 분명히 그럴만한 위협이 근처에 있다는 것-
“...”
그리고 엘노어가 검을 겨눈 대상을 본 엘리야의 표정이 순식간에 멍해졌다.
“...벌레한테 뭐하세요?”
엘노어가 믿기지 않는단 표정으로 바닥을 바라보았다.
체감상 거의 사람 손바닥 크기의 생물체가 그쪽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게 벌레라고? 마수의 잔재 아닌가?”
“시골 벌레는 다 그렇게 생겼어요. 처음 보시나요?”
“...”
대체 시골은 뭐하는 마경이란 말인가.
엘노어의 머릿속으로 그런 생각이 스쳐지나가는 사이, 그쪽으로 터벅터벅 걸어간 엘리야가 그걸 슬쩍 집어들었다.
풍뎅이. 그 중에서도 유난히 커다란 놈이다.
“어, 이거 오랜만이네.”
“...오랜만이라고?”
“제 고향에 많았거든요. 그때 이렇게 놀았었는데.”
활짝 미소 지은 엘리야가 그걸 능숙하게 핸들링했다.
손은 물론이고 팔까지 타고 올라온 벌레가 꿈틀꿈틀.
“...”
그 모습을 본 엘노어가 비틀거리듯이 뒷걸음질 쳤다.
심지어는 얼굴까지 그게 발발거리면서 기어올라왔지만, 오히려 엘리야는 그저 간지럽다는 듯이 까르륵 웃고만 있었다.
“무서운 사람한테 잡히지 말고 오래오래 살렴~”
한참을 그렇게 가지고 놀다가, 마침내 그 벌레를 놓아준 엘리야가 재밌다는 얼굴로 손까지 빙글빙글 흔들어줬다.
“...학생회장님? 왜 그러고 계세요?”
이어서, 멀찍이 떨어져 쪼그려 앉아 세상을 부정하고 있는 엘노어를 본 엘리야가 그렇게 말했다.
머리까지 붙잡고 푹 수그려 바들바들 떨고 있는 게 귀신이라도 본 몰골이다.
“가까이 오지 말게, 이 괴물...!”
“...”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사람을 썰어대던 인간 주제에, 이건 또 뭔 주책인가.
‘이 사람, 벌레 무서워 하던가?’
그녀가 그런 생각을 곱씹으면서 모닥불 앞에 다시 털썩 주저앉았다.
그래도 귀한 몰골이긴 하다.
항상 아카데미 안에서 봤을 때는 무표정에 냉엄한 분위기만 뿌리고 다녀서 이런 면이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는데.
무서워하는 게 있기는커녕, 악귀가 튀어나와도 손수 자기 손으로 목을 칠 느낌 아니던가?
“...”
그녀가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주춤주춤 다시 모닥불로 돌아오는 엘노어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늘 생각하던대로.
모든 트리스탄 공작가의 인간들은 악마나 다름없는 쓰레기들이라 생각해서, 아예 접근조차 하지 않았다면.
결코 이런 면을 발견하지도 못 했겠지.
‘...이런 것도.’
결국엔 그 남자 때문이다.
그 남자 아니었다면, 이렇게 이쪽과 얽히게 될 계기조차 없었을 테니.
“저기요, 회장님.”
느닷없이 그런 말을 꺼낸 것도,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절대 꺼내지 않을 질문이지만, 이 기회가 아니면 앞으로 할 일이 없을거란 직감이 강하게 들었으니까.
“회장님은, 대공이랑 사이가 안 좋으신가요?”
그 질문을 받은 엘노어의 눈썹이 꿈틀했다.
“...무슨 의도로 하는 질문인가?”
“실례가 된다면 답해주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하지만.”
그녀가 엘노어의 눈을 똑바로 마주보며 말을 이었다.
“저는 변경백님한테 어렸을 때부터 엄청 맞으면서 훈련했어요. 그래서 그쪽이 무섭긴 하지만, 그래도요.”
“...”
“저를 위해주신다는 느낌은 확실히 들어요. 당장 이번에 일도 바쁘실 텐데 한 걸음에 달려와주신 것만 해도 그렇죠.”
대귀족이란 인간들은, 이렇게 자리를 비우는 것조차 떠들썩한 가십거리가 될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아무리 각 영지에 업무를 대신 처리할 대리인들이 있다곤 하지만, 결국 최종 결정권자는 자신이니까.
편지 한 장 썼다고 휙 날아온다는 것 자체가 그녀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바로 와닿는 느낌이지.
하물며 친자가 아닌 양부-양녀로 이어진 사이임에도 그렇다.
하지만, 엘노어와 기드온의 관계는.
“...회장님이, 그쪽을 원수로 여기는 것 같아서.”
기드온이 엘노어를 대하는 태도라면 무시무시할 정도로 초지일관이다.
무시.
아예 엘노어를 인식조차 하지 못한다고 느껴질 만큼, 그녀가 근처에 있건 없건 일관적으로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엘노어의 태도도 어느 정도는 비슷하다.
다만.
기드온과는 다르게, 가끔 그쪽을 볼 때마다 숨길 수 없는 적의가 그녀의 눈에서 흘러나온다.
“이상하더라구요. 자식이 부모를 그렇게까지 쳐다볼만한 이유가 있나, 해서.”
“대단히 실례되는 질문인 건 맞군, 엘리야 크리사낙스.”
“...”
그건 그래.
엘리야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간단하게는 답변해줄 수 있겠군.”
어, 진짜로?
엘리야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쪽을 바라보고 있자니, 엘노어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이유라면 여러 가지 있지.”
어렸을 때부터 가혹할 정도로 그녀를 훈련 시킨 것이나, 귀족 영애로서 지켜야 할 모든 규범을 학대에 가까울 정도로 주입시킨 것이나.
어디를 봐도 자식이 부모를 좋아하긴 힘든 기억들로 점철되어 있다.
“...”
그럼에도, 어릴적의 기억을 반추해보면.
아버지와 사이가 나쁘지만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오히려 화목했던가.
분명히, 어느 순간까진.
“하지만 가장 큰 거라면... 글쎄.”
그 기억은 아직도 생생했다.
“트리스탄 대공이 내 어머니를 죽였네.”
엘리야의 호흡이 일순 잦아들었다.
이 인간, 지금 뭐라고 하는거야?
“죽였다니, 그게 무슨...?”
“그 말 그대로야. 덧붙일 것도 없군.”
여름날이었다.
쨍쨍 내려쬐는 햇빛. 아버지의 서재.
한참 어렸던 엘노어는 아버지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어 활짝 웃으며 그쪽으로 달려갔었더랬다.
뭐였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날 자신이 그렸던 그림을 자랑하고 싶어서였던가.
그리고.
문 바깥으로도 흘러나오던 피비린내.
피묻은 검을 들고 있던 아버지. 그리고, 바닥에는.
“...”
엘노어가 잠시 침묵하며 눈을 감았다.
하지만, 다시 눈을 밀어올렸을 때는.
“그 남자는.”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여전히 담담했다. 표정도 변함없이 무표정했고.
“내 부모가 아니야. 언젠가 내가 거꾸러트릴 적수에 불과하지.”
어째서 그런 일이 일어났냐고, 왜 그런 짓을 한 거냐고, 물어볼 새도 없었다.
그 말을 하는 와중에 그 눈빛에 담긴 적의는.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온 몸에 솜털이 곤두서는 것 같은 그 흉흉함은.
엘리야도 꼼짝하지 못할 정도로 무시무시했으니까.
“이만하면 답변이 되었나?”
“...”
얼어붙은 분위기가 묵직하게 주변으로 자박자박 내려앉았다.
정작 그런 말을 꺼낸 엘노어야 평탄한 표정으로 불씨를 뒤적거리고 있었지만.
‘...이 사람.’
그냥, 적이라고만 생각하고만 있었는데.
보기보다 훨씬 복잡한 사정을 품고 있는 게 분명해 보인다.
조금 더 깊게 알아보고 싶단 생각이 들 정도로.
엘리야가 그런 생각을 하며 상대방을 바라보고 있자니, 엘노어가 문득 입을 열었다.
“그보다. 질문에 답변해줬으니 나도 무엇하나 물어봐도 되겠나.”
“...어, 네?”
“그대. 다우드하고는 어디까지 나갔나?”
“...”
나가긴 뭘 나가.
“...그건 무슨 의도로 하는 질문이신데요?”
“흠.”
엘노어가 턱을 쓰다듬으며 콧숨을 흘렸다.
“나는 아직 포옹까지밖에 못 했거든.”
“...예?”
“뭐, 나도 이제 그 남자가 어디 가서 멋대로 여자를 후리고 오는 건 반쯤 포기 상태네. 태생이 그런 모양이지.”
“...”
“하지만.”
엘노어가 서늘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잠자코 듣고 있던 엘리야가 몸을 움찔할 정도였다.
“불장난과 ‘진짜’를 구분 못하는 건 안 되거든. 나보다 먼저 앞서 나가는 다른 여자가 있는 건, 조금 곤란하네. 못 참을 수도 있겠군.”
“...못 참으면 어떻게 하실 건데요?”
“...”
엘노어가 역으로 침묵하며 다시 턱을 쓰다듬었다.
그것까진 생각 안 해봤다는 기색이다.
“아, 그렇군.”
이내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는 것처럼 입을 열긴 했지만.
“그 여자를 죽이는 건 어떻겠나?”
“...”
“다우드를 죽일 순 없으니 말일세. 그대 생각에도 그게 좋겠지?”
뭘 좋아.
미친 사람 아니야 이거.
“그래서, 그대는 어디까지 나갔냐고 물었네. 다우드가 나보다 먼저 그대와 먼저 고향으로 내려간다는 약속까지 잡은 걸 보면 꽤 수상-”
“...이, 일단 저는 손도 못 잡아봤습니다!”
번개같은 이실직고였다.
이런 내용을 말하는 게 조금 슬프긴 하지만, 그래도 당장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겠지.
“...”
그 말을 들은 엘노어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하면 괜찮다는 기색이었다.
“손까지는 허락해주지.”
“...”
“하지만 포옹은 안 돼. 나도 거기까지 밖에 못 했으니까. 알겠나?”
“...”
그렇군.
어째 솔선해서 자신을 여기까지 보낸 트리샤가 본다면 가열찬 한숨을 내쉬겠지만, 엘리야는 그냥 고개만 끄덕이기로 했다.
아니, 일단 경쟁이고 뭐고 살고 봐야하지 않겠는가.
지금 눈앞에 이 공녀는 진짜로 다우드에게 다른 여자가 정도 이상으로 엮인다면 죽이고도 남을 기색이었으니까.
“우왓!”
“와악!”
그런 생각을 곱씹고 있자니,
공중에서 느닷없이 인간 두 명이 떨어졌다.
“...”
어째 이 남자 주변에 있다보면 이런 식으로 느닷없이 다른 사람이 튀어나오는 경험을 자주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녀가 가늘게 뜬 눈으로 바닥에 털푸덕 착지한 두 명을 훑어보았다.
“그 남자, 하여간! 좌표 하나 지정해주고 그쪽으로 튀어오라고 하면 그만입니까! 전부터 느끼는 거지만, 사람 부리는 게 험하기 짝이 없어요!”
“언니, 그렇게 말하면서 다우드 씨가 하라는 건 전부 다 했잖아.”
“...조용히 하렴, 유리아.”
그렇게 투덜거리면서 몸을 일으키는 인간 두 명을 본 엘노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루시엔 성녀님?”
“어, 트리스탄 공녀?”
옷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내던 루시엔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서로의 위치가 위치다. 직접 이야기를 나눠본 적은 없어도 공적인 자리에서 스쳐 지나간 적은 몇 번 있지.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이 어느 정도의 거물인지 알고 있는 엘노어로서는 답지 않게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
“...원래대로는 트리스탄 대공하고 켄드리드 변경백이 모두 모인다는 소리를 듣고 그쪽을 중재하려고 왔습니다만.”
그렇게 말한 루시엔이 캠프를 훑어보았다.
일단 당사자들이 직접 모습을 보여야 확인이 되겠지만, 인원 숫자를 생각했을 때 적어도 ‘같이 야영한다’는 건 확실해 보인다.
서로 뭔가 목숨 걸고 치고박을 분위기는 아니란 소리지.
“...모습을 보아하니 뭔가 그런 걸 해야 할 분위기는 아닌 것 같군요. 틀림없이 또 뭔가를 시키려고 부른 느낌인데...”
“다우드 씨는 어디에 있어?”
언니가 꺼내놓던 문장을 유리아의 말이 툭 자르고 들어왔다.
그것 말고 다른 건 아무래도 좋다는 기색이었다.
“...”
그 말을 들은 엘노어가 움찔했지만, 유리아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손은 초조하다는 듯이 목줄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이거, 좀 만져주셨으면 좋겠는데.”
“...”
“아니면 평소처럼 잡고 집어던져주셔도...”
“...너 대체 무슨 버릇이 든 거니?”
루시엔이 현기증이 난다는 목소리로 그렇게 딴지를 거는 와중에.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엘리야가 등골로 서늘한 감각을 느끼며 고개를 휙 돌렸다.
엘노어의 몸이 움찔거리는 걸 넘어 부들거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름을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으응?”
엘노어의 말에 유리아의 고개가 엘노어쪽으로 돌아갔다.
“유리아 그레이하운처에요. 그쪽은... 트리스탄 공녀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유리아 그레이하운처. 말씀하신대로, 엘노어 에리나리제 라 트리스탄입니다.”
문장이야 예의 발랐다. 그렇게 말한 엘노어를 보는 엘리야의 등골은 점점 싸해지고 있었지만.
“혹시, 다우드 캠벨과 무슨 사이인지 여쭈어도...?”
유리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잠시 곰곰이 생각하는 모습이다.
“...저한테 엄청 중요한 사람?”
“...”
엘노어의 표정에 쩌적, 하고 금이 가는 것 같은 경련이 생겨났다.
“그럼, 그 목줄은, 대체...?”
“다우드 씨가 달아줬어요.”
“...”
“차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져서 좋아요. 예전에 이거 잡고 끌고 다니실 때가 가장-”
그쯤 말하는 걸 들었을 때, 엘리야의 머릿속으로는 방금 들은 문장이 플래쉬백 되고 있었다.
-불장난과 ‘진짜’를 구분 못하는 건 안 되거든. 나보다 먼저 앞서 나가는 다른 여자가 있는 건, 조금 곤란하네. 못 참을 수도 있겠군.
다른 사람이 그 남자랑 포옹하는 것도 못 참는 사람이.
목줄 차고 그 남자에게 끌려다니는 걸 좋다고 말하는 여자랑 만났다라.
“...”
그녀가 흠, 하고 침음성을 흘렸다.
‘...다우드 씨 큰일 났는데?’
정말로 그랬다.
●
“...찾긴 찾았는데요.”
마공학 망원경을 집어넣으며 그렇게 말한다.
산 중턱에서 산발적으로 흘러나오는 회색 기운이 눈에 띈다.
“생각보다 훨씬 잡기 힘들겠네요.”
저런 식으로 눈에 띌 정도로 마기가 피어오르고 있다는 건, 악마의 조각이 마수와 대단히 깊게 융합했다는 뜻이다.
상정하고 온 전투 난이도보다 더 높게 올라갈 수도 있단 소리지.
“위험해 보이네. 신성력 전문가라도 있는 게 아니면 애 좀 먹겠는데.”
크라트가 그렇게 말했지만, 대답하는 대신 실소만 흘리며 높은 바위에서 내려온다.
“그건 이미 초빙해뒀어요.”
아마 지금쯤 베이스 캠프에 도착하지 않았을까.
‘베이스 캠프라고 하니까...’
굳이 이번엔 기드온과 크라트만 끌고 나온 이유도 있지.
< System Log >
[ 대상 ‘엘리야’와 ‘엘노어’가 서로 간에 진솔한 대화를 나눕니다. ]
[ 두 인물 간의 유대감이 조금 높아졌습니다! ]
[ 유대감이 축적된 멤버들로 파티를 구성하면 능력치에 각종 보정을 받습니다! ]
그렇지.
이런 식으로 사이드 퀘스트를 진행하는 도중에 파티 멤버들끼리 따로 붙여두면 ‘유대감’을 형성하는 이벤트가 종종 발생한다. 그것도 특히 같이 ‘숙소’에 붙여두면 그런 경향이 더 강하고.
보통 메인 퀘스트는 며칠 안에 와바박 빠르게 일어나고, 사이드 퀘스트는 굽이굽이 길게 가는 경향이 있는 걸 감안하면 시스템 상 그렇게 구성해둔 모양이지.
“어이, 샌님. 아까부터 왜 그렇게 말이 없어?”
“...”
그런 생각을 곱씹고 있자니, 크라트가 옆에 멍하니 서 있는 기드온에게 그런 말을 던졌다.
기드온은 대답하는 대신 말 없이 손만 쥐락펴락했지만.
“...참견하지 마라, 야만인.”
이내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그렇게 툭 자른 기드온이 몸을 휙 돌려 어딘가로 걸어갔다.
“뭐야, 어디가?”
“...근처에 마수를 몇 마리 사냥하러 간다.”
내일이 토벌인데 느닷없이 또 필요 없는 전투를 벌이러 간다는 선언이었지만, 나나 크라트나 굳이 그걸 제지하지는 않았다.
지금 저 인간이 뭐라도 베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상태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야.”
아까보다 살짝 목소리가 가라앉은 크라트가 그렇게 말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너, 쟤 지금 상태 심각한 거 알지?”
“알죠.”
“그리고 그걸로 뭔가 꾸미고 있고?”
“...어떻게 아셨습니까?”
“숨기는 척도 안 하네, 이 새끼.”
크라트가 피식 웃으며 답했다.
“보면 알아, 보면. 네가 머리 안 굴러가는 놈도 아닌 것 같은데, 저렇게 딱 봐도 통제 안되는 놈을 여기까지 데리고 왔잖아.”
한숨과 함께 문장이 이어졌다.
“저 샌님 집안에 얽힌 저주야 알지? 공략 도중에 까딱 잘못하면 쟤 땜에 우리 다 죽을 수도 있어.”
“...”
알지.
하지만.
엘노어와 저 인간 사이를 중재해놓는 건, 내가 생각하는 저 집안의 저주를 풀어놓는 필수 단계 중 하나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히려 기드온은 저 상태를 유지해주는 편이 훨씬 좋다.
“...당신만 도와주면, 생각보다 쉽게 풀릴 겁니다.”
“뭐, 아무래도 좋아. 이왕 너랑 엮인 김에 뭘 할 수 있나 다 봐주마. 할 수 있는 데 까지 해 봐. 날 어떻게 써먹건 일단 따라주지.”
크라트가 웃는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지만.
“잘못해서 엘리야가 다치면 너 죽는다?”
“...”
하여간.
이 사람도 지극한 딸바보다.
‘...칼리반이 보면 기뻐하겠네.’
손목의 아뮬렛을 보며 그런 생각을 뇌까린다.
이 사람이 이렇게까지 엘리야에게 헌신적인 이유는, 이 안쪽에 있는 사람이 이 사람과 함께 나눈 ‘약속’ 때문도 있다.
뭐, 어느 쪽이건 엘리야가 주축으로 굴러가는 4챕터 가서 다 풀릴 이야기지.
지금 크라트와 관계를 맺어둔 것도 그때 분명히 도움이 되어줄 것이다.
“...그럴 일 없으니까 돌아갑시다. 푹 자야 내일 토벌도 잘 하죠.”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돌린다. 할 일이야 다 끝냈으니, 계획만 마저 정비하면 될 것이다.
오늘 밤은 그래도 좀 여유롭게 보낼 수 있을 지도-
[ 위기 상황이 감지됩니다. ]
[ 생명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 수준으로 판단합니다. ]
[ ‘스킬: 절체절명’을 EX등급으로 적용합니다. ]
< System Message >
[!경고!]
[ 당장 캠프로 돌아가시는 걸 권장합니다! ]
“...”
이건 또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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