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71 - 71. 기드온 (2)
●
[ ‘탐색안’을 사용합니다. ]
[ 대상의 정보를 불러옵니다. ]
[ 같은 대상에게는 24시간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적용됩니다. ]
< Character Info >
[ 기드온 게일스터드 라 트리스탄 ]
[ 특징: 트리스탄 대공 ]
[ 상태: ... ]
< Status Info >
[통상]
근력: S+
민첩: S+
내구: A
행운: F
권력: S+
[이능]
마력: SS
법력: F
신성: F
[기술]
검술: SS+
마력 운용: SS+
직관: SS+
< Misc. >
[ ‘악마의 조각’이 대상을 잠식하는 중입니다! ]
[ 현재 0%, 잠식 종료까지 2분 남았습니다! ]
화려하구만.
단순히 스펙으로만 따지면 크라트보다 아래지만, 밸런스가 훌륭하게 잡힌 스텟이다.
제국 최강의 기사라는 호칭은, 당연하지만 그리 쉽게 딸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리고 그 중에서도.
‘...이쪽도 사람 규격은 아니긴 하지.’
크라트의 무투술과 동급으로 찍혀있는 SS+의 검술, 그리고 이어지는 ‘마력 운용’과 ‘직관’ 스탯을 바라본다.
그러니까, 마력을 이용한 기교로는 따라올 자도 별로 없는 사람이.
전투 중에 본능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선택지를 찾아가는 능력은 거의 도가 텄다는 뜻이다.
괜히 스텟이 파멸적으로 차이나는 와중에도 크라트랑 동수를 이룰 수 있는 게 아니지.
미리 짜둔 계획으로 상대방의 외통수를 치는 방식으로 싸우는 걸 즐기는 내 입장에선 한숨부터 나오는 특성이다.
“그러니까.”
그리고 방금 내가 꺼내놓은 이 전투의 ‘목적’을 들은 크라트가, 헛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슬슬 눈동자가 흉흉한 적색 빛을 뿌리고 있는 기드온이 천천히 일어서며 검을 뽑고 있었다.
저건 완전히 광화에 접어들고 있다는 증거다.
“완전히 훼까닥 돌아서 달려드는 제국 최강을 ‘산채로’ 제압하자고?”
“아뇨.”
엄밀히 말하면 기드온이나 이 사람이나 ‘제국 최강’은 아니다.
‘기사’나 ‘성기사’ 중에서 최강이라고 한다면 얼추 뜻이 맞겠지만.
‘...황궁 안에 있는 그 괴물 몇 명만 아니었어도 틀린 말은 아니지.’
쓴웃음을 지으며 그런 생각을 곱씹는다.
그 놈들이 보통 강력한 게 아니라서.
뭐, 아무튼.
그거 말고도 틀린 점은 하나 더 있기도 하다.
“완전히 돌진 않았어요. 적어도 전투 중에 필요한 판단 정도는 평소보다 더 잘할 수도?”
억누르던 가문의 광증도 터져나왔을 거고, 생명체라면 뭐든 죽이고 보려 하는 악마의 조각까지 저쪽을 잠식하고 있다.
두 개의 공통점은 사람 죽이는 데 있어서 버프를 줬으면 줬지 디버프를 주진 않는다는 거다.
“...너 진짜로 여기 있는 놈 다 죽일 생각이냐?”
크라트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당연하지만, 산 채로 제압하는 건 그냥 죽이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니까.
하물며 상태가 저 상태의 기드온이라면, 크라트를 낀 상태에서도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다.
하지만.
“제가 당신하고 싸운다고 했을 때도 다 그런 반응이었죠?”
“...”
상성이 안 좋고, 산채로 제압하는 건 불가능하고, 어쩌고 저쩌고.
불안 요소야 많겠지만.
“변경백.”
“뭐.”
“이거 진짜 안 될 것 같으면 전 이미 튀었을 겁니다.”
“...”
그거 다 가능하니까 하는 거다.
나도 내 목숨은 아깝거든?
확신이 없으면 안 하지.
“그럼, 그 뭐냐. 목표는 방금 말한 것처럼... 2분 동안 ‘버티기’입니다.”
볼을 긁적이며 말을 고른다.
“계획은 다 들었으니까, 그대로 움직입시다. 계속 말하지만, 얼마 안 걸려요.”
심드렁한 목소리로 문장을 잇는다.
“후딱 대공님 담구고 집에 갑시다.”
“...”
무슨 말을 해도 그렇게 하냐는 시선이 사방에서 날아오는 사이.
“...-!”
기드온이 괴성과 함께 이쪽으로 돌진했다.
●
원래 기사를 잡으려면 본인이 아니라 타고 있는 말부터 잡으라고 했던가.
첫 번째 타겟은, 당연스럽게도 주변에 지원을 퍼줄 수 있지만 전투력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은 성녀님이다.
“...!”
같은 최상위권 기사 중에서도 전투 중의 기교라면 따라올 자가 없다고 평가받는 게 트리스탄 대공이다.
마력을 압축해서 등 뒤로 분사하는 것만으로 그 순간 가속력은 크라트의 속도마저 뛰어넘는다. 제대로 반응한 인간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못, 지나가요!”
다행히, 그 부분에 있어서는 대단히 믿음직한 경호원이 있다.
가까운 거리 안에 들어온 거라면 뭐든지 베어낼 수 있는 인간이 있었으니까.
상대와의 거리, 두 발자국.
별철 서클릿이 번뜩인다. 영겁이라고 불러도 좋은 세월을 이어온 고대의 저주가 유리아의 검에 끔찍할 정도의 위력을 부여한다.
-!
그러나.
불똥이 튀는 것과 동시에 유리아의 눈이 크게 떠졌다.
“받아냈어?!”
엘리야가 경악한 비명을 지른다.
같은 거리에 있던 별철제 오토마톤조차 일격에 양단낸 유리아의 일격이다. 하지만, 기드온은 앞으로 달려나가는 와중에도 그걸 받아낸다.
물샐 틈 하나 없는 마력의 운용, 보법, 팔 각도와 검의 접촉면. 실전에서 보통 인간이라면 하나라도 제대로 생각하기 힘든 모든 미세한 변수들을 통제하여 만들어 낸 기적같은 결과다.
그리고 그렇게 단절자를 받아낸 기드온이 물 흐르듯이 유리아를 ‘제쳤다’.
“...!”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유리아의 눈이 크게 떠졌다.
실제로.
유리아는 간격 안으로 들어온 상대를 대상으로는 무적에 가까운 전투력을 발휘하지만, 이렇게 그냥 ‘무시해 버리면’ 그것 자체로 무력화된다.
기드온이 유리아의 능력을 알 리가 없다. 내가 이 파티원들끼리 서로 소개시켜준 적도 없으니까.
다만 한 없이 정답에 가까운 길만을 선택하는 직관이, 검을 한 번 맞대자마자 굳이 이쪽을 더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괴물이네.’
나처럼 ‘원작 지식’ 같은 걸 통해 모든 정보를 꿰뚫고 있는 게 아닌데도, 적합성과 적시성이 모두 나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머릿속에 공략집이 달려있는 인간과 실시간으로 전투를 치루는 인간 사이에 간극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단 뜻이지.
이 인간에게 달린 그 화려한 스텟들이 괜히 달린 게 아니라는 증명이렸다.
이어서, 곧바로 성녀님에게 기드온의 검이 흉악한 빛을 발하며 날아갔다. 주변 공기가 모조리 불타오르는 것 같은 살기에 그대로 노출된 루시엔의 얼굴이 새파래진다.
하지만.
이미 그 앞에 ‘대기하고’ 있던 인간이 하나 있다.
처음부터 이쪽을 노릴 거라는 걸 알고 있던 나다.
[ 위기 상황이 감지됩니다. ]
[ 생명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 수준으로 판단합니다. ]
[ ‘스킬: 절체절명’을 EX등급으로 적용합니다. ]
[ ‘스킬: 신앙의 증명’을 발동합니다. ]
[ 모든 스텟 추가분이 ‘내구’와 ‘신성력’으로 전환됩니다. ]
[ ‘스킬: 성흔’을 발동합니다. ]
3단으로 이어지는 스킬 콤보.
뻥튀기되는 스텟에, 그걸 전부 내구도에 신성력으로 치환하고, 그대로 영향을 받아 더 단단해진 신성력 방패가 만들어진다.
물론 당장 내뻗어지는 검은 제국 최강의 기사란 칭호를 따낸 사람의 일격이다. 이 정도로는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지.
발카서스의 금술을 상대로도 꽤 준수하게 버텼던 보호막이 마분지처럼 찢겨나간다. 그대로 검이 루시엔에게 쇄도하지만.
여기에 이어서.
“칼리반.”
[ ‘스킬: 심상 세계’를 발동합니다. ]
내가 받고 있는 버프가 그대로 루시엔에게도 전달되며, 루시엔이 간신히 때에 맞춰 세운 방어용 가호들에 단단함을 더해준다.
덕분에, 성난 멧돼지처럼 날아들던 기드온의 검이 불똥을 튀기며 멈춰섰다.
어이가 없을 정도다. 고작 일격 하나를 막는 데 어느 수준의 노력이 들어갔단 말인가.
하지만 그런 노력이 헛되지는 않았는지, 주변에서 역습이 날아든다.
유리아, 엘리야, 그리고 크라트.
제일 앞에 선, 인간 형태의 전차나 다름 없는 변경백이 기회를 연다.
주변에서 다른 이들이 접근하는 걸 알아차린 기드온이 다시 검을 휘두르지만, 그걸 변경백이 ‘맨손’으로 잡아챈다.
“...”
미친 인간이네, 진짜.
물론 손이 베인다. 검이 손을 자르고 팔까지 일부 파고든다. 내가 아무리 공격을 해도 흠집 하나 없는 그 강철 같은 육체에도 손상이 간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이 인간은 기드온의 일격을 ‘고작 그 정도로’ 틀어막았다.
과연 라이벌이랄까.
“갈겨!”
그 말에 맞춰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유리아와 엘리야가 동시에 도약한다.
물론 기드온이나 크라트에 비하면 하자가 있는 공격수들이지만, 지금처럼 크라트가 몸을 희생하여 기드온의 공격을 통째로 봉쇄한 경우라면 꽤 유효타를 먹일 수 있겠지.
하지만.
“...”
기드온이 심호흡을 하면서 검을 그대로 ‘놓았다’. 크라트가 당황하고, 조금 거리를 벌린 기드온이 그대로 ‘눈을 감는다’. 검사가 검을 놓고 시야마저 스스로 포기하는 상황이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이게 대체 뭔 자살 행위인가 싶겠지만.
“이런, 미친-!”
아무 것도 없는 허공에, 강철이라도 찢어발길 참격이 느닷없이 생성된다.
선동작도, 몸의 움직임도, 마력의 운용도.
공격을 감지할 수 있을만한 징조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일격에, 유리아와 엘리야의 몸이 동시에 튕겨져 나간다.
가히 신기神奇에 가까울 정도의 기술에 엘리야와 유리아의 얼굴로 경악의 감정이 떠올랐다.
성녀님이 때에 맞춰서 생성해둔 가호가 아니었다면 정말 크게 다쳤을 수도 있겠지.
여러 가지 색깔로 빛나는 보호막이 그 두 명의 몸에 덧씌워져 있다.
‘...신성 장갑?’
물리 타격에 대해 대단히 높은 내성을 가진 방어용 가호.
이런 걸 기도문도, 성물도 없이 즉석에서 연성해내는 걸 보면 역시 성녀님은 성녀님이다 싶다.
하지만, 그렇게 공격이 둔화된 사이에 이미 기드온은 크라트의 몸에서 검을 회수하고 있었다. 제지하려는 크라트의 몸을 걷어차며, 그 팔에 박혀있던 검을 뽑아내며 거리를 벌린다.
놀랍게도 저 인간을 상대로 근접전에서 주도권을 점했다는 뜻이다.
“...이 새끼, 예전엔 이 정도 거리 안까지 들어왔으면 아무것도 못 했는데...!”
그거야 악마의 조각이 붙었으니까.
엘노어의 예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조각이 얽히게 된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대상의 강력함이 추가된다. 지금 기드온한테 잠식이 진행될수록 점점 스텟 보정치가 붙고 있을 확률이 높다.
즉, 이 싸움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우리한테 불리하다.
이어지는 교전도 그런 모양새다.
이쪽의 공격은 모조리 다 흘려내고, 본인의 공격은 모조리 다 성공시키며, 일방적으로 이쪽에 피해를 누적시키고 있다.
놀랍게도, 단신으로 이만한 멤버들을 상대로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딱히 내가 산채로 제압하는 게 아니라 죽이라고 주문했어도 이런 구도에서 크게 변하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
아니, 바꿔말해야겠다.
이 정도 멤버니까 이만큼이나 버티고 있다고 봐도 될 정도다.
그만큼 현재 기드온이 보여주고 있는 무력은 그야말로 일당백 수준이다. 아무리 평소보다 전투력이 더 올라와 있다지만 너무한 수준이지.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
이런 말하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는데.
기분이 좋다.
아니, ‘악마의 조각’이 깃든 기드온이 저만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건 틀림없이 호재다.
왜냐하면.
저 전투력을, 분명히 시나리오 어느 지점에서 내가 고스란히 써먹을 지점이 있을 테니까.
“그래서, 선생님 계획대로 가니까 일단 어떻게 어떻게 상대는 하고 있는데!”
엘리야한테서 이런 비명이 튀어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
“저런 걸 어떻게 생포하겠다고-!”
하지만.
“이미 잡았어.”
“...예?”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렇게 말하는 엘리야에게는 미소만 지어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전투의 목적을 착각하면 안 된다.
난 분명히 처음 시작할 때 2분 동안 ‘버티는’ 게 목표라 그랬거든.
< Misc. >
[ ‘악마의 조각’이 대상을 잠식하는 중입니다! ]
[ 현재 90%, 잠식 종료까지 12초 남았습니다! ]
[ 대상에게 ‘회색 악마’가 깃들기 시작합니다! ]
그런 창을 눈으로 훑어내며, 기드온의 모습을 슬쩍 바라본다.
땀 한 방울 안 흘리던 기드온의 호흡이 거칠어진다. 이내 몸 주변으로 회색 마기가 뭉게뭉게 뿜어져 나온다.
회색 악마가 저 몸에 완전히 깃들기 시작한다는 증거다. 모든 그릇이 한 번은 반드시 거쳐가는 과정.
이어서 지금까지 잠자코 있었던 유일한 멤버를 호출한다.
“엘노어.”
“...”
엘노어가 시선만으로 내게 말을 전한다.
‘이거 정말 확실해?’라고 묻는 것 같은 눈치지만, 나도 그냥 고개만 끄덕인다.
“...”
결국 엘노어가 한숨을 내쉬며 마지못한 걸음으로 뚜벅뚜벅 걸음을 옮겼다.
내가 시킨 일이라면 뭐든 군말없이 해주던 사람치고는 이례적인 모습이겠지만, 이내 행하는 행동을 보면 당연한 반응이다.
그대로 걸음을 옮긴 엘노어가, 무지막지한 전투가 이어지는 공간 한 복판으로 무방비하게 걸음을 옮긴다.
검을 뽑아들지도 않고, 아무런 가호와 방어술식도 받지 않고. 그냥 맨몸으로.
“잠, 저게 무슨!”
경악해서 그쪽으로 가호를 덧씌우려는 성녀님도 내가 제지한다.
“괜찮아요.”
“...예?!”
“두고 보시죠.”
이어서, 엘노어가 마침내 기드온이 휘두르는 검의 범위 안쪽으로 진입한다.
그대로 간다면 거기에 베여서 치명상을 입게 될 절체절명의 상황.
하지만.
엘노어가 그 안쪽으로 진입하자마자.
기드온의 검이 멈춘다.
누구를 향해서든 망설임 없이 살수를 날리던 그 무시무시한 검이.
엘노어가 그 중간에 걸리자마자 그대로 멈춰선다.
“...”
“...”
눈을 크게 뜬 엘노어와, 홍채까지 전부 새빨갛게 물든 기드온이 그대로 그 눈동자를 마주 본다.
기드온의 검이 부들부들 떨린다.
악마의 조각에게 잠식당하는 와중이라 살아있는 거라면 뭐든 죽이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고 있을 텐데도. 와중에 가문의 광증까지 겹쳐서 이성까지 전부 날아간 상태인데도.
엘노어 앞에서만큼은 검을 멈춘다. 동작이 굳는다.
“뭐...?”
“무슨!”
그 모습을 다른 인간 전원도 당황하여 동작을 멈췄다.
-!
이어서 그 마기가 주변으로 확 뿜어져나온다.
여러 번 봐온 장면이다.
마기가 닿은 곳 전부가 느려진다. 이내 모든 것이 멈출 때까지 느려지겠지.
그리고.
이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던 인간이 한 명 있다.
“...”
재빠르게 기드온에게 접근한다.
잠식이 충분히 완료되어 회색 악마가 깃들고, 기드온이 완전히 굳어 내가 부담없이 이쪽에 접근할 수 있는 지금 이 상태야 말로, 이번 전투의 핵심이다.
< System Message >
[ 악마의 기운을 확인합니다. ]
[ ‘타천의 인장’이 반응합니다! ]
일단 여기서 필요한 건.
[ 스킬 : 판데모니엄의 왕 ] [ 등급: A ]
[ -위대한 군주를 경배하라!- ]
[ 지옥의 지배자가 가진 위엄을 만천에 드러냅니다. 스킬 사용 시 5분 동안 악마 타입에 대한 상성 우위를 갖습니다. ]
이거지.
이전에 하얀 악마의 권능은 치명적인 매력 스킬로 저항할 수 있었다면, 회색 악마의 권능은 이걸로 조금이나마 상쇄시킬 수 있다.
[ ‘스킬: 판데모니엄의 왕’을 발동합니다. ]
[ 5분 동안 악마 타입의 적에 대한 절대적 상성 우위를 가집니다! ]
[ 동격의 능력을 가진 대상과 마주합니다. ]
[ 대상의 고유 능력 ‘권능: 침식’에 저항합니다! ]
모든 것이 느려지는 와중에.
나만은 멀쩡하게 움직인다.
“그만하면 충분하지?”
지금까지 이 녀석과 마주할 때 이걸 쓴 적은 없었다만, 당장은 필요하다.
실소를 흘리며 입을 연다.
난 이 녀석과, ‘협상’을 해야하니까.
“나와 봐. 이야기 좀 하자.”
그런 말과 함께.
세상이 회색으로 물들었다.
●
몸이 무겁다.
엘리야 크리사낙스가 제일 먼저 떠올린 생각은 그거였다.
“...”
의식이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것처럼 멍하다.
기억에 있던 경험이다.
이전에, 만월제 행사 때 시야에 들어오는 공간 전체를 뒤덮던 회색 기운과 똑같다. 범위 안에 들어오는 건 모조리 다 멈췄던가.
다만, 그때랑은 다르게 지금은 그녀도 몸을 간신히 움직일 수 있다.
‘...어라.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자신에게 뭔가 특별히 변한 것이라도 있던가. 자기 기억에 그런 건 딱히 없었는데.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지금 가능하니 몸을 움직여보자.
힘겹게 눈을 밀어올리자,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회색.
그리고 제일 이어서 눈에 들어오는 것은.
“2분 동안 ‘네 후예’를 다뤄보니까 어때. 그래도 괜찮지?”
이 모든 것이 느려진 상황 속에서도, 평소와 다름 없이 움직이는 다우드. 완벽하게 정상은 아닌 모양인지, 그래도 평소보다는 ‘느린’ 모양이지만 눈도 겨우 밀어올리는 그녀와 비교하면 훨씬 정상적인 속도다.
그리고, 그런 말을 듣는 건너편에 있는 것은.
“...!”
시야가 불타오르는 것 같다.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시신경을 타고 독이 흘러들어오는 느낌이다.
불가해한, 역겨운, 끔찍한. 무슨 안 좋은 말을 가져다 붙여도 ‘저것’과 견줄 만큼 악惡한 문장이 없을 느낌.
그 형태조차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다. 정신이 오염되는 것 같아서.
“일부러.”
심지어 그쪽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더 하다.
“나를¾î°¡U불러서, 이 남자에게 ±̦͖̺̗͎͍̰͊̏͒̉̍̉̚͟͠×̵̢̯̥̟͖̞̔̈́̃̚͘͞·̶̛͈̪͚̹̺͖͉̪̇̎̃̏̃̎̚͡ͅ ̷̥͉̞͎̯̥̫̳̻͆͊̉̀̾͘͞·̴̢̥̱̝̘̟͎͊͐͌̿̎̋̕͜͟͝͞Î̶̻̙͓͓͎̫͛́͌̀̆͊͒͆̚를 Ç̳͈̟̯̻̾̿̔͆̃̋́͌͘̕Ḁ̷͉̞͎̯̥̫̳̻́͆͊̉̀̾͘͞·̴̢̥̱̝̘̟͎͊͐͌̿̎̋̕͜͟͝͞Î̶̻̙͓͓͎̫͛́͌̀̆͊͒͆̚±̦͖̺̗͎͍̰͊̏͒̉̍̉̚͟͠심은 거야?”
끔찍한 노이즈가 껴서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느낌.
그녀가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느낌에 고통을 받고 있자니, 눈앞의 남자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약속 하나만 해줘.”
그런데.
대체 어떻게 저런 것과 태연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건가, 저 남자는?
“나중에 한 번. 내가 부탁할 때, 기드온에게 깃들어줘. 지금 일부러 여기 있는 사람들이 전부 목숨 걸어서 그럴만한 ‘기반’을 만들었으니까.”
“...”
그러고 보니, 이 사람은 처음부터 전투에 들어갈 때 2분을 ‘버틴다’고 했지, 한 번도 저쪽을 이기는거라고 한 적 없었다.
그게 전부, 지금 이 사람이 말하는 ‘뭔가’를 위한 밑작업이었던 모양이지.
“그러니 지금은 얌전히 엘노어 몸에 깃들어 주면 좋겠네. 어차피 저쪽에 조각 세 개는 전부 다 모아둬야 하니까. 너도 그게 편하지?”
“...”
엘리야가 멈칫했다.
방금 이 사람이 말한 게 대체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본능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정보라는 걸 간파했기 때문에.
“너희들한테 그런 걸 말할 때 대가 없이 부탁해서는 안 된다는 거, 알고 있어. 그러니까.”
그런 생각을 곱씹고 있자니, 다우드가 느닷없이 상의를 벗어던졌다.
“...”
흠.
어쩌면 그 고생을 하면서 시야를 확보한 게 그리 헛된 일만은 아니었을수도 있겠군.
엘리야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다우드 쪽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아무튼 현재 상황에서 저쪽을 쳐다본다고 해서 자신을 규탄할 사람은 별로 없어보였으니까.
하지만, 이내 그녀의 시선에 이상한 게 포착되었다.
‘...저게 뭐야?’
가슴에 새겨져 있는 ‘문신’.
아니, 그냥 문신이라고 하기에는 어폐가 좀 있다.
마치, 그 몸에 ‘뿌리를 박고’ 뭔가를 ‘공급’해주고 있는 분위기일 것이다.
그건 마치.
저 남자를 뭔가로 ‘바꿔놓기’ 위한 의도처럼 보였다.
“그 대가로, 나는 내 ‘미래’의 일부분을 너에게 바친다.”
“...”
아무 말도 없었지만.
엘리야는 본능적으로 직감할 수 있었다.
그 말을 들은 다우드 건너편의 흉물이, 대단히 충격받았다는 것을.
아니.
정확히는, ‘슬퍼하고 있다’라고 표현하는 편이 맞을 지도.
“처음에는 이게 뭔가 싶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얼추 답이 나오더라고. 얼마 전에 선각자란 놈을 만났거든.”
“...”
“아직 그게 정확하게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적어도 나 때문에 그렇게 된 놈이라는 건 알겠어.”
“...”
“이거, 네가 ̵̢̯̥̟͖̞̔̈́̃̚͘͞·̶̛͈̪͚̹̺͖͉̪̇̎̃̏̃̎̚͡ͅ ̷̥͉̞͎̯̥̫̳̻͆͊̉̀̾͘͞·̴̵̢̢̥̱̝̘̟͎̯̥̟͖̞͊͐͌̿̎̋̔̈́̃̕̚͘͜͟͝͞͞·̶̛͈̪͚̹̺͖͉̪̇̎̃̏̃̎̚͡ͅ ̷̥͉̞͎̯̥̫̳̻͆͊̉̀̾͘͞·̴̵̢̢̥̱̝̘̟͎̯̥̟͖̞͊͐͌̿̎̋̔̈́̃̕̚͘͜͟͝͞͞·̶̛͈̪͚̹̺͖͉̪̇̎̃̏̃̎̚͡ͅ ̷̥͉̞͎̯̥̫̳̻͆͊̉̀̾͘͞·̴̢̥̱̝̘̟͎͊͐͌̿̎̋̕͜͟͝͞를 막아주고 있는 거지? 그 녀석처럼 되지 말라고.”
“...”
엘리야가 흠칫했다.
방금.
다우드가 말을 할 때도, 저 흉물이 입을 열때와 비슷한 분위기가 났다.
마치 서로 닮아가고 있는 것처럼.
“그러지 마. 끝까지 진행해버려. 난 이미 각오 다 끝내고 왔으니까.”
“안¾î°돼. 당î°¡U신, 그랬±̦͖̺̗͎͍̰͊̏͒̉̍̉̚͟͠×̵̢̯̥̟͖̞̔̈́̃̚͘͞다간¾ð¾...”
“...그 녀석과 수준을 맞춰가려면, 아무래도 그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아서.”
다우드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어차피 그 놈 상대하지 못 하면, 나 죽잖아.”
그렇게 말한 그가 주변을 쓱 둘러보았다.
회색 공간 안에 정지해 있는 인간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는 것처럼.
“...이 사람들도 전부 죽고.”
그리고, 기분 탓인지.
앞의 말보다는 뒤의 말에 훨씬 더 진심이 실린 기분이기도 했다.
“...”
이어서, 한참을 슬프게 다우드를 바라보고 있던 그 흉물이.
천천히 걸어가 다우드에게 접근했다.
간신히 식별하기로는, 그를 끌어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마치, 그를 위로하듯이.
앞으로 그가 걸을 고행길에 대신 슬퍼하듯이.
- 사랑해. 나중에 또 봐.
그런 말이, 이어서 흘러나왔다.
- 그때는 꼭. 너를.
지금까지 했던 말 중에, 엘리야도 유일하게 똑바로 알아들을 수 있을만큼.
- 나와 함께, 세상의 끝까지.
지고지순한 순정이 담긴 문장이었다.
- 이전에는 이루지 못했던 것을, 영원토록-
그리고 그 문장이 끝나기 전에.
회색이, 세상에서 급격하게 걷혀나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