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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에게 사랑받는 운명입니다 (75)화 (76/258)

Chapter 75 - 75. 교차 (3)

 

 

사실 세간의 인식과 다르게, 리루 가르다는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앞뒤 안 가리고 상대방에게 들이받는 인간은 아니었다.

 

오히려 일방적인 폭력으로 보이는 사태의 대다수는 냉정한 계산 하에 이뤄진 경우가 훨씬 더 많았지.

 

자신은 공격받기 쉬운 존재다. 그렇다면 귀찮은 일을 피하기 위해서는 압도적인 힘과 공포를 모두에게 때려박는 게 제일이겠지.

 

적어도 그녀 또한 자신이 이 학교에 제대로 섞이지 못하는 이질적인 존재라는 것쯤은 넘치도록 깨닫고 있었으니까.

 

 

‘약해 빠진 놈들뿐이야.’

 

 

처음 이 엘판테 아카데미라는 곳에 왔을 때부터 그렇게 생각했고, 그런 생각은 단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었다.

 

딱 두 놈 빼고.

 

어떻게든 틈이 나면 시비를 걸 생각 만만이었는데, 그쪽은 뭐 어떻게 된 게 얼굴 보기도 힘든 인간이다. 어딜 그렇게 돌아다니는지.

 

그 정도로 강력한 전사는 역시 제국에서도 중요 취급하나보지.

 

 

“니들, 그러다 죽는다?”

 

 

그리고, 남은 한 놈이 바로 이 녀석이다.

 

 

‘...이 놈, 분명히.’

 

 

이전에 참관 수업때 한 번 본 녀석이다.

 

자신과 제법 수를 겨뤘던 기억이 있어서 똑똑히 기억하고 있지.

 

 

“...”

 

 

그녀가 당혹스러운 눈으로 남자를 쳐다보았다.

 

자신의 앞에 서서 상대쪽을 바라보고 있다.

 

마치 등 뒤에 있는 그녀를 지켜주기라도 하려는 듯이.

 

 

“...다우드 선배?”

 

 

용사 파티 중 마법사 팔코가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선배?”

 

“이제 2학군이시잖습니까. 저흰 아직 신입생인데요.”

 

“아, 그랬지.”

 

“...뭐, 그런 건 아무래도 좋습니다. 왜 끼어드셨죠?”

 

“말 그대론데. 니들 그러다가 죽어.”

 

 

리루의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과 동시에 용사 파티 전원의 표정이 굳어졌다.

 

누가 들어도 의도가 뻔히 보이는 문장이었으니까.

 

 

“...왜 그런 여자를 편드시는 겁니까?”

 

“편든 적 없는데?”

 

“...”

 

 

팔코가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다우드의 이마에서 주륵주륵 흘러내리는 혈액을 바라보았다.

 

그러면 뭐하러 저렇게 자기 몸을 작살내면서 나섰단 말인가.

 

아주 중요한 이유가 있지 않고서야 저렇게까지 할 이유가 없다.

 

 

“...저기, 얘들아.”

 

 

그리고 옆에서 잠자코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트리샤가 모두의 팔을 쓱 잡아당겼다.

 

 

“이쯤하고 그만하자.”

 

“뭐? 아니, 애초에 먼저 시비를 건 게 저쪽-”

 

“우리도 정확하게 무슨 일이 있는지 제대로 듣지도 않고 끼어든 건 맞잖아.”

 

“...”

 

 

그건 그랬다.

 

무작정 리루의 이미지가 안 좋다는 것만 생각하고, 이번에도 이쪽이 잘못한 일이겠거니 하고 발생한 상황이었으니.

 

 

“그건 뭐, 어렵지도 않지.”

 

 

그렇게 말한 다우드가 이내 몸을 휙 돌려 리루와 처음 대치했던 남학생 쪽으로 다가갔다.

 

전신에서 피를 주륵주륵 흘리면서 절뚝거리며 걷는 모습엔 기묘한 압박감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너, 처음 리루한테 뭐라고 했냐?”

 

“나, 나는, 아무 말도...!”

 

“거짓말 하지 말고.”

 

 

다우드가 싱긋 웃었다.

 

피범벅이 된 얼굴 위로 피어오르는 싱그러운 미소에 남학생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처음부터 알고 물어보는 것 같은 압박감에, 결국 남학생이 떠듬떠듬 거리면서 방금 자신이 한 말을 꺼내놓았다.

 

 

“...우와.”

 

“...”

 

 

그리드와 팔코의 얼굴이 찌푸려지는 것과 동시에 루카의 얼굴에도 곤혹스러운 기색이 퍼졌다.

 

상대방의 가족에 대한 강도 높은 인신 공격으로 점철되어 있는 대단히 저급한 욕설이 계속해서 튀어나오고 있었으니까.

 

 

“...아무리 폭력이 금지라고 되어 있어도, 이 정도면 참작 가능하겠는데. 보통 악질이 아니야.”

 

 

오죽하면 가장 온건한 편인 팔코마저 그런 말을 꺼내놓을 정도였으니.

 

특히, 리루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루카는 오히려 본인이 리루에게 미안해 하고 있는 기색이었다.

 

 

“...사죄해야겠군.”

 

 

루카가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부족 연합의 전사에게 씨족을 모욕하는 건 곧 생사결을 신청하는 것과 똑같은 수준이지. 내 생각이 짧았다.”

 

“...”

 

“하물며 지금 네 씨족들은-”

 

“닥쳐.”

 

 

리루가 싸늘하게 쏘아붙였다.

 

 

“네가 뭐라고 생각하건 알 바 아니야. 안 싸울 거면 빨리 꺼져.”

 

“...아니, 그럴 순 없다. 전사에게 명예란 두 번째 목숨이고, 난 방금 네 명예를 훼손시킨 것이나 다름 없으니.”

 

 

그렇게 말한 루카가 품 안에서 뭔가를 꺼내들었다.

 

짐승의 이빨과 뼈를 엮어서 만든 드림 캐쳐.

 

그걸 본 리루의 눈이 곧바로 휘둥그레졌다.

 

 

“한 번 추방 명령을 받은 자는 다시는 부족 연합에 돌아갈 수 없다. 하지만 족장과 그 직계가 사면한 자는 예외로 적용되지.”

 

 

그렇게 말한 루카가 담담하게 그걸 리루에게 내밀었다.

 

 

“하이룰 산맥의 붉은 재규어족을 다스릴 차기 족장인 루카 한-차이가 선언한다. 리루 가르다. 너는 우리 부족의 비호 아래 부족 연합의 땅을 한 번 밟을 수 있을 것이다.”

 

“...”

 

“네가 그토록 원하는 권리겠지. 이건 그 약속의 증표다. 받아다오.”

 

 

멍하니 그걸 보고 있던 리루가, 이내 다시 표정을 날카롭게 굳혔다.

 

분명히 저건, 본인이 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마음 속에 남아있는 자존심이 다시 고개를 치켜들던 참이었다.

 

깊게 생각하기도 전에 반사적으로 입이 열렸다.

 

 

“...필요 없-”

 

“네, 감사합니다.”

 

 

냉큼 끼어든 다우드가 그걸 낚아채서 리루의 손목에 걸어주었다.

 

이내 그가 잔뜩 당황한 리루의 몸 근처로 고개를 숙였다.

 

이어서 딱 그녀에게만 들릴 수준의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받으세요, 리루.”

 

“뭐?”

 

“안 받으시면 후회하게 될 걸요.”

 

“...네까짓 게 뭘 안다고?”

 

“제가 후회하게 된다구요.”

 

“...”

 

 

리루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이, 몸을 살짝 일으킨 다우드가 이내 다시 모두에게 들리도록 말을 이었다.

 

 

“화나신 건 알아요. 무례한 부탁인 것도 알구요. 하지만 절 봐서라도 받아주시면 안 될까요?”

 

 

그렇게 말하며, 잔말 말고 가져가라는 것처럼 드림 캐쳐를 그녀의 손목에 묶어준다.

 

이에 욱한 기색으로 답하려던 그녀의 목소리가 사그라들었다.

 

어쩐지, 이 남자의 ‘진의’가 느껴졌으니까.

 

무례한 부탁이다 어쩐다 하는 건, 그냥 그녀의 체면을 세워주는 것뿐이다.

 

지금 상황은 분명히, 그녀가 얄랑한 자존심 하나 때문에 이걸 걷어차려는 상황이니까. 그런 그녀에게 맞춰준 것뿐이겠지.

 

 

“...”

 

 

하지만, 왜?

 

새삼 이 인간을 위아래로 훑어본다.

 

자신에 대해 아는 것 하나 없는 인간이 분명한데. 마주친 적도 얼마 없는데.

 

왜, 이렇게까지 다치면서 자신을 도와주려 했을까.

 

이 아카데미에서 자신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득보다 실이 더 많을 게 분명한데도.

 

심지어는 이렇게 비굴하게까지 보이는 모습을 견지하며, 자신에게 더 많은 것을 챙겨주려 한다.

 

 

‘...대체.’

 

 

이건 뭐하는 놈이지.

 

그리고, 이걸 받지 않으면 본인이 후회한다는 건 또 무슨 말이란 말인가.

 

그녀가 부족 연합에 돌아가게 되는 게 대체 본인이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

 

 

“...”

 

 

마치.

 

그녀에게 중요한 일이 자신에게도 중요한 일이라는 것처럼.

 

이 남자가 말하는 건, 그렇게밖에 안 들렸으니까.

 

 

“...”

 

 

결국, 리루는.

 

남자의 눈을 똑바로 마주치지도 못하고 잠자코 손목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

 

 

 

 

일단 이득 두 가지.

 

 

< System Message >

 

[ ‘악마의 기운’이 옅어집니다. ]

[ ‘타천의 인장’이 잠잠해집니다! ]

 

 

솔직히 싸울 기색 만만인 리루 앞에 끼어든 것 치고는 대단히 평화적으로 끝났으니까.

 

내가 지금까지 봐온 모습도 그렇고, 원작 안에서의 모습을 생각해봐도.

 

이럴 때의 리루는 니가 뭔데 끼어드냐고 내 머리통부터 으깨놓는 게 자연스러운 인간이다.

 

나도 믿는 구석이 있긴 했다만.

 

 

< System Message >

 

[ 대상 ‘리루 가르다’의 현재 상태를 확인합니다! ]

[ 이전보다 ‘스킬: 치명적인 매력’에 영향을 받기 쉬운 상태입니다! ]

[ 대상의 분노가 누그러듭니다! ]

 

 

엘노어도 그랬고, 유리아도 그랬다.

 

악마의 그릇은 내 스킬빨을 엄청나게 잘 받는다.

 

그러니 나한테 대놓고 엄청난 위협은 가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은 있었거든.

 

그래서, 뭐.

 

아까부터 뭔가 뜨끈한 게 계속 머리 위에서 흘러내리고, 다리 한쪽도 작살나긴 했는데.

 

그것치고 당장 악마의 힘이 모습을 드러내는 건 막았다. 싸게 먹혔지. 용사 파티도 전원 살렸고 말이야.

 

이 사람이라면 싸우면 반드시 죽는다는 내 진심 어린 호소가 꽤 잘 먹힌 모양이다.

 

이거 다 니네들 위해서 하는거라고. 음.

 

 

“...그런데, 선배님 말은 듣네요. 편드시는 이유를 알겠어요.”

 

“뭐?”

 

“역시 소문은 진짜인가 봐요. 저 광견도 선배님 앞에선 얌전한 걸 보니까.”

 

“...”

 

 

어쩐지 자꾸 내 시선을 피하는 리루의 손목에 드림 캐쳐를 감아주는 사이 그런 찜찜한 말을 남기고 사라지긴 했는데.

 

소문이라니. 대체 무슨 소린지 저는 몰라요.

 

아무튼 모릅니다.

 

그런 생각을 애써 떠올리며 리루의 손에 감아주고 있는 드림 캐쳐를 마저 묶는다.

 

두 번째 이득이라면, 바로 이 장신구 자체다.

 

개빡친 리루한테도 제발 받아달라고 고개 숙여서 간청할 만큼 중요한 물건이거든.

 

 

‘내구 스텟을 올릴 기회...!’

 

 

리루한테 이거 안 받으면 내가 후회하게 될 거란 것도 순도 100퍼센트 진심이었다.

 

루카의 드림 캐쳐라면, 3챕터에서 있는 숨겨진 분기를 열어줄 수 있는 물건이다.

 

신뢰도 MAX를 찍어야 주는 물건이라, 원래는 루카한테 시간을 죄다 갈아 넣어야 지금 타이밍에 겨우 얻을 수 있는 물건이라고.

 

그리고 히든 분기를 타야지만 먹을 수 있는 ‘내구 스텟 전용’ 아이템이 있단 말이지.

 

다른 건 몰라도 내구 스텟은 올리기 가장 빡센 스텟 중 하나다.

 

안 그래도 요즘 몸이 축나는 일이 많은 내 입장에선 그만큼 귀중한 것도 없다...!

 

 

‘뭐, 아무튼 이 정도면.’

 

 

그럭저럭 잘 마무리 한 것 같아서 다행이다.

 

리루의 캐릭터 배경을 생각한다면, 부족 연합에 돌아갈 수 있는 ‘희망’이 생긴 것만으로도 내일 있을 교환 학생 선발에 열성적으로 참가할 확률이 높다.

 

여태는 신포도 보는 느낌으로 고향을 멀리한 거였으니까.

 

이 사람 능력이라면 통과하는 건 그렇게 무리가 아닐테니, 일단 투쟁의 용광로에 데려다 놓기만 하면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다 묶었습니다. 전 이만 가볼게요?”

 

 

아까부터 계속 시선을 피하는 리루에게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그렇게 말한다.

 

뭐야.

 

끼어든 게 그렇게 화났나?

 

만약 그렇다면, 난 여기서 최대한 투명 인간처럼 빠져나가야한다.

 

그리 생각하며 걸음을 옮기려 하자, 느닷없이 몸이 공중에 턱 걸린다.

 

 

“...어딜 가려고.”

 

 

왜 그래.

 

나 진짜 그쪽 신경 안 긁으려고 노력했잖아...!

 

아득해지는 정신줄 너머로, 리루의 머뭇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몸으로는 걷기도 힘들겠다.”

 

그쪽을 바라보니, 내 옷자락을 손가락 두 개로 빼꼼 잡고 있다.

 

여전히 고개는 이쪽에서 돌린 상태다.

 

 

“...따라와. 응급처치 정도는 해줄 테니까.”

 

 

그리고, 그런 문장과 함께.

 

눈앞으로 느닷없이 ‘세 번째 이득’이 떠올랐다.

 

 

< System Message >

 

[ 스킬: 치명적인 매력이 발동합니다! ]

[ 스킬의 발동 효율이 굉장히 높습니다! ]

[ 대상 ‘리루 가르다’의 호감도가 ‘관심 1단계’로 대폭 상승합니다! ]

[ 수령 가능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

 

 

...뭣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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