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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에게 사랑받는 운명입니다 (85)화 (86/258)

Chapter 85 - 85. 친선 대련

 

 

“대족장으로 앉혀놓은 알란 바-토르의 통치권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연합 대다수의 족장들이 슬슬 불만을 표하고 있지만, 바라시는 수준의 지배권은 여전히 기능 중입니다.”

 

 

타티아나의 목소리가 아무도 없는 개인실 안으로 소복소복 내려앉았다.

 

대족장의 최측근이라는 위치 덕에 널찍한 개인실을 쓰는 건 항상 그녀가 올리는 ‘정기 보고’에 별다른 지장이 없다는 걸 뜻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항상 걸고 있는 가면을 결코 무너트리지 않았다.

 

실눈, 웃는 얼굴.

 

그 이유야 간단했다. 선각자가 그녀에게 이렇게 다니라고 명령했으니.

 

그녀는 선각자에게서 받은 명령은 반드시 지키는 편이었다. 설사 자신의 목숨이 경각에 달하더라도.

 

 

[그쪽 세뇌시키는데 들어간 유물은? 아직까지 잘 작동해?]

 

 

그렇게 말하는 가면을 쓴 얼굴에서 하얀 김이 뭉게뭉게 올라왔다.

 

아마 지금쯤 제국 북부에 있는 것이 분명했다. 켄드리드 변경백이 다스리고 있는 영지.

 

저쪽에 무언가 ‘꾸밀 것’이 있다고 하던가.

 

 

“예. 적어도 바라시는 기간 동안은 유효하게 작동할 것입니다.”

 

[그래. 혹시라도 거기에 문제라도 생기면 재미있는 장면도 다 놓치잖아. 똑바로 관리해야 한다?]

 

“받들겠습니다.”

 

[길게 갈 필요도 없어. 엘판테에서 온 교환 학생들이 체류하고 있는 10일 동안만 그 상태 그대로 있으면 돼.]

 

 

누군가 듣는다면, 아마 광인들의 대화로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저, ‘재미있는 장면’을 보기 위해서, 그것도 고작 10일동안 있는 ‘아카데미의 행사’ 하나 때문에.

 

대륙 패권국 중 한 명을 세뇌 시켜서 자기들 좋을대로 써먹고 있다니.

 

 

[악마의 그릇이 네 개나 한 자리에 모이는 진귀한 기회라고.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잖아?]

 

“...네 개라고 하셨습니까?”

 

 

말한 것 중 그릇 두 개는 이미 만나봤다.

 

엘노어 에리나리제 라 트리스탄. 회색 악마의 그릇.

 

유리아 그레이하운처. 하얀 악마의 그릇.

 

그런데도 나머지 두 개가 더 있단 말인가?

 

 

[푸른 악마하고... 붉은 악마. 두 개 다 지금 이 자리에 있어. 나한텐 느껴지거든. 그릇이 누군지는 이제부터 찾아야겠지만.]

 

“...명심해두겠습니다. 꼭 만족스러운 결과를 보고할 수 있도록-”

 

[아- 아니아니, 그렇게 힘 쓸 필요 없어. 어차피 다 찾아오거든.]

 

 

그렇게 말한 선각자가 하품을 하면서 손을 휘휘 내저었다.

 

 

[우리한텐 세상에서 가장 성능 좋은 ‘덫’이 있잖아?]

 

“...”

 

 

그건, 확실히 그랬다.

 

가만히만 있어도 악마의 그릇이 제발로 찾아오는 자석 같은 남자가 존재하지 않는가.

 

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이라면 분명히 있었다.

 

 

“...한 가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음? 평소에는 뭐든 고분고분하더니 웬일로 질문을 다 하고?]

 

“어째서 그 남자에게... ‘극복 가능한 시련’만을 주시는 겁니까?”

 

 

첫째로는 리버백 후작, 둘째로는 소년왕 발카서스.

 

그 전투를 거치면서, 그 남자는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지금 동료라고 할 수 있는 악마의 그릇들과는 점점 더 사이가 돈독해지고 있고.

 

전지전능에 가까운 선각자의 능력을 생각하면, 그 남자가 그런 결과를 낸 건 이분께서 극복 가능한 시련만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런 결과가 나올 리 없-

 

 

[그런 적 없는데.]

 

“...예?”

 

[나 진심으로 걔 죽이려고 붙여둔 것들이야. 진짜 전력을 다하진 않았지만, 기적이 일어나야 겨우 숨만 붙을 수준으로 맞춘 조건 정도는 충분할걸?]

 

“...”

 

[그걸 항상 최상의 결과로 극복하고 올라오는 건 순전히 그놈 능력이라고. 볼 때마다 재미있다니까?]

 

“...”

 

 

낄낄 웃은 선각자가 문장을 이었다.

 

 

[뭐, 그런데도 굳이 전력을 다하지 않는 이유를 찾자면... 걔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우리한테도 나쁜 일은 없거든.]

 

“무슨... 뜻입니까?”

 

[시련을 극복해서, 그 남자가 강해지고, 악마의 그릇들과 사이가 돈독해지고. 그것만으로도 좋잖아. '목표'를 이루는 게 더 수월해지는 걸?]

 

 

그 모든 사실은, 선각자 자신이 꿈꾸는 ‘최종 목표’로 가는 길에 필요한 조건들과 동일 선상에 놓인 것들이다.

 

그 끝에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그녀나 그 남자나 분명히 다르겠지만, 결국 악마의 그릇들에 모든 조각을 모아둔다는 그들의 일차적 목표에 그 남자는 역설적으로 크나큰 도움이 되는 인간인 건 틀림 없었으니까.

 

 

[겸사겸사, 난 다우드가 살아남겠다고 열심히 몸 비트는 모습을 보면 세상 지루할 일이 없어서 좋고.]

 

 

말이 없어진 타티아나의 모습을 본 선각자가 다시 실소를 흘렸다.

 

 

[질투라도 하고 있어?]

 

“...”

 

[내가 걔 칭찬 해주니까 기분 엄청 나빠 보인다?]

 

 

화상 통화 건너편에 있는 선각자의 장난스러운 목소리에, 타티아나가 잠시 침묵했다.

 

아마, 선각자는 지금 일부러 이러는 것이다.

 

선각자를 위해서라면 몸이고 영혼이고 전부 바칠 수 있는 그녀가, 이런 말을 들었을 때 그런 감정을 느낄 거란 걸 모를 리가 없을 테니까.

 

 

[맞아. 일부러 하는거야.]

 

“...”

 

[할 수 있는 진심으로 그놈 죽여봐. 쉽진 않을 거야. 그 교활한 리버백 후작도 못 했고, 최강의 금술사인 소년왕도 못 했으니까. 너는 과연 어떨까?]

 

“...”

 

[그 남자보다 네가 더 재미있어 보이면 칭찬 정도는 해 줄 수 있을지도?]

 

“...”

 

[힘내 봐, 뒤집힌 해일의 사도. 바다 근처면 네가 가장 유리한 지역이지?]

 

 

통신은 그걸로 끊어졌다.

 

한참을 그 앞에서 말 없이 앉아있던 타티아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

 

 

그녀가 문득 항상 걸고 다니는 자신의 목걸이를 잠깐 바라보았다.

 

녹색 빛깔을 음침하게 뿌려대는 보석이 그 중앙에 박혀 번쩍이고 있었다.

 

눈을 감으면, 그 안에 있는 ‘것’이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이 투쟁의 용광로 근처에 있는, ‘거대한 존재’가.

 

뒤집힌 해일의 사도. 바다 아래에 묻힌 고대의 존재를 섬기는, 역사에서 잊혀진 일족의 마지막 생존자.

 

그 모든 힘을 이용하여.

 

다우드 캠벨을 죽인다.

 

10일 안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받들겠습니다.”

 

 

그녀가 조용히 중얼거리며 목걸이를 양손으로 움켜쥐었다.

 

 

 

 

좋은 소식 하나와 나쁜 소식이 하나씩 있었다.

 

 

< System Info >

 

[ 꾸준한 운동의 효과가 발휘됩니다! ]

[ ‘근력’ 스텟의 랭크가 올라갑니다! ]

[ ‘민첩’ 스텟의 랭크가 올라갑니다! ]

 

 

< Status Info >

 

「다우드 캠벨」

[통상]

근력: E (랭크 업까지 10%)

민첩: E (랭크 업까지 10%)

내구: F

행운: F

권력: D

 

 

좋은 소식은 이거다.

 

다우드 캠벨, 드디어 감격의 첫 랭크 업.

 

영지 안에 있을 때는 진짜 아무리 농사일을 도와줘도 랭크가 안 오르더니, 사자의 목걸이를 끼고 몇 달 지옥처럼 운동한 결과가 드디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이걸로 절체절명의 효율도 이전에 비해 배는 뛸 수 있을 것이다. 트리스탄류 검술이나 격투술을 사용할 때 그 효과를 톡톡히 보겠지.

 

그리고, 나쁜 소식은 이거다.

 

 

“각, 흐악, 아아악, 악, 아아-”

 

 

랭크가 올라간 스텟으로도 도저히 카사가 작성해준 훈련 코스를 따라갈 수가 없다는 것.

 

 

“...”

 

 

숨소리가 아니라 거의 비명 같은 소리를 내뱉고 있는 내 모습을 본 리루가 눈을 가늘게 떴다.

 

오늘은 카사가 나에게 지시한 ‘훈련’의 첫날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본인 기초 체력 훈련.

 

 

‘...원래대로라면 무슨 미친 소리를 하냐고 펄쩍 뛰어도 이상하지 않은데.’

 

 

원래 기초 체력이란 게 하루아침에 늘어나는 게 아닌데, 바로 어제까지 쓰레기였던 스텟을 그렇게 단기간에 늘릴 수 있을 리가 없잖은가.

 

그 시간에는 이 사람의 ‘기술’을 일단 전부 전수받는게 효율적이다.

 

그렇게 카사한테 따지려고 했지만.

 

 

‘그럼 오늘부터 10일 동안 내가 몇 십년을 쌓아올린 격투술을 전부 익히겠단 네 목표는 말이 되고?’

 

‘...’

 

‘너도 수단이 있으니까 나한테 그런 말을 했겠지, 아가. 나도 생각이 있으니까 이런 걸 시키는 거란다. 다른 의견 있니?’

 

 

있을 리가 없지.

 

아무튼 난 카사한테 그 사람이 인생을 바친 격투술을 10일 안에 끝을 본다고 공언한 상태다.

 

그런 말을 듣고도 순순히 넘겨줬다면 무슨 짓을 시켜도 군말 없이 따를 수밖에 없지.

 

 

“...야, 그만. 더 달리는 건 의미도 없겠다.”

 

 

그리고 옆에서 내 페이스 메이킹을 위해 붙어있던 리루가 혀를 끌끌 차며 나를 멈춰세웠다.

 

 

“미안, 아아아, 합니다아아악-”

 

“...말하지 말고 숨이나 골라.”

 

 

한숨을 푹 내쉰 리루가 거의 구토라도 하는 것처럼 숨을 몰아쉬는 나에게 다가왔다.

 

 

“똑바로 서봐.”

 

“...예?”

 

“...”

 

 

리루가 살짝 붉어진 얼굴로 나를 노려보았다.

 

괜히 설명하게 만들지 말라는 표정이었다.

 

 

“...마사지 해줄 테니까. 똑바로 서라고. 너 이대로 운동 그만하면 서 있지도 못 해.”

 

“...예?”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죽여버린다?”

 

 

사납게 날아오는 문장에 나도 모르게 몸을 곧추세우니, 리루가 내 팔과 다리를 잡고 주물거리기 시작했다.

 

부끄러움 때문인지 힘이 콱콱 들어가서 조금 아팠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찢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올라오던 팔다리의 통증이 둔해진다.

 

 

“...”

 

 

뭐지.

 

이 사람 왜 이렇게 친절하냐?

 

원작에서의 모습을 생각하면 이것도 못 하냐고 싸늘한 경멸의 눈초리로 봐야 정상인데?

 

아무리 호감도가 있다는 걸 감안해도 이 사람의 성격을 생각하면 이건 틀림없이 이례적인 모습이다.

 

 

“...할멈은 너한테 기대를 많이 걸고 있어.”

 

 

그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건지, 리루가 웅얼웅얼 말을 이었다.

 

 

“나한테도, 너한테 최대한 잘 해주라 하더라고. 그러니까 하는 거야. 원래 이딴 헛짓거리는 너 같은 놈한테 절대 안 해줘.”

 

“...그러십니까.”

 

 

그런 것치고는 본인도 엄청 열심히 해주는 느낌인데.

 

그런 말에 실소를 흘리며 가만히 있자니.

 

온 몸에 소름이 쭉 돋아난다. 불길한 감각이 전신을 타고 달린다.

 

 

“...”

 

 

생각해보니까, 나쁜 소식은 하나 더 있었다.

 

 

“저기요, 리루.”

 

 

입 모양만으로 말한다. 지금 내가 주의하는 인간은, 아주 작은 소리만 내도 그걸 들을 인간이었으니까.

 

 

“뭐야?”

 

 

이쪽도 눈치가 있는지, 입모양만으로만 말하는 내 모습에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장단을 맞춰준다.

 

 

“아직도 있나요?”

 

 

리루가 말 없이 이마를 짚었다.

 

내가 방금 느낀 감각을 본인도 느낀 모양이다.

 

 

“있어.”

 

“...”

 

“기가 막힌 추적술이야. 나로서는 절대 못 찾겠는데.”

 

“...못 찾았는데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

 

“살기가 줄기줄기 흘러나왔거든. 내가 방금 네 몸을 주무를 때 미친 듯이 튀어 오르던데.”

 

“...아. 그걸로.”

 

 

나도 '뭔가를' 느끼긴 했으니까.

 

그런 쪽에 둔감하기 짝이 없는 나도 어렴풋하게 알만큼 무지막지한 뭔가 였나보다.

 

“너 대체 저쪽한테 얼마나 사랑받는거야?”

 

 

나도 몰라 인간아.

 

저거, 엘노어다.

 

오늘 아침부터 계속해서 내 뒤를 밟고 있다. 아마 리루가 알려주지 않았다면 저러고 있는 줄도 몰랐을 거다.

 

 

‘...왜 저러는 거야?’

 

 

갑자기 무슨 생각으로 저러는 건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무섭다.

 

진짜로 무섭다.

 

지금도 리루와 조금이라도 거리가 가까워질 때마다 온몸이 찌릿거릴 정도의 감각이 나한테도 전달될 정도다.

 

 

“...그보다, 이제 슬슬 움직여야겠네요.”

 

 

시계를 본 내가 한숨을 내쉬며 기지개를 쭉 켰다.

 

이른 아침부터 리루와 함께 운동을 한 덕분에 기력을 쭉 빼앗기긴 했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퍼져서 쉴 수는 없다.

 

첫 번째 교환 학생 행사인 ‘친선 대련’이 곧바로 예정되어 있었으니까.

 

 

‘...말이 친선이지.’

 

 

절대 상대 국가의 아카데미에 밑지기 싫어하는 특성이 여실히 반영된 덕분에, 부상을 넘어 중상자까지 심심찮게 나오는 행사라고 들었다.

 

물론 그런 특성보다도, 나한테 중요한 점이라면.

 

 

‘...내구 스텟 올릴 기회.’

 

 

그 행사에서 우수한 성과를 거둔다면, 리루가 루카에게서 받아온 ‘약속의 증표’로 꽤 괜찮은 아이템을 획득할 기회가 생긴다.

 

그걸 위해서라도 허투루 해서는 안 될 행사지.

 

 

“...그런데, 너 괜찮겠냐?”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있자니, 리루가 다시 입모양만 써서 그런 말을 전해왔다.

 

 

“...예?”

 

“솔직히 말해서, 네 실력으로 대련 상대 찾기는 꽤 힘들 거거든.”

 

 

그건...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절체절명 없는 상태의 난 쭉쩡이나 다름 없으니까. 겉보기에 약해 보인다고 무시 당한 게 지금까지 대체 몇 번이던가.

 

 

“그런데, 그거 못 찾으면 아마 아무도 없는 대기실 복도에서 혼자 죽치고 가만히 서 있어야 할 걸?”

 

“...”

 

 

아까 돋아난 소름이 다시 쭉 돋아난다.

 

 

“너 그렇게 혼자 있을 때 저 여자한테 아무 짓도 안 당할거라 장담할 수 있어?”

 

“...”

 

 

아.

 

 

 

 

제국에서 온 교환 학생들과 서로 실력을 겨루기로 예정된 이 대련장은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물론 대다수는 부족 연합측의 열기였고, 제국 쪽의 인원들은 반쯤 시체처럼 대기열에 서 있었지만.

 

투쟁의 용광로에서 벌이는 이 친선 대련은 몇 번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엘판테 학생들의 처형식이나 다름없는 행사였다.

 

다른 분야라면 몰라도, 부족 연합 전사들의 대인 전투력은 그야말로 정평이 나 있는 수준이었으니.

 

그리고, 이 행사에 지원한 바델 굽-타는 코웃음을 치며 제국쪽 학생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약해빠진 제국놈들.’

 

 

그가 거의 자신의 신장만한 대검을 어깨에 들쳐메며 경멸하는 시선으로 제국의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전부 눈에 안 차는 놈들 뿐이다. 1년 전과 비교해도 달라진 게 전혀 없다.

 

이런 놈들이 자신들과 똑같이 ‘3대 패권국’의 일원으로 묶인다는 게 어이가 없다. 작년에도 그런 생각으로 이 행사에 지원했지.

 

아, 참으로 즐거운 기억이었다.

 

제발 그만하라고 애원하는 제국 쪽의 학생을, 제대로 말도 하지 못 하도록 이빨을 전부 부숴놓을 때까지 때려눕히는 감각은 지금도 주먹 끝에 황홀하게 남아있었으니.

 

 

‘이번엔 어디 그렇게 두들길 놈 없나...’

 

 

아무튼 친선이라는 취지답게, 이 대련은 투쟁의 용광로의 학생들과 엘판테의 학생들이 서로 자유롭게 상대를 찾아 짝을 짓는 식으로 상대가 성사되는 방식이었다.

 

그런 점에서, 바델은 특히나 약한 녀석을 찾아내는 것에 공을 들이곤 했다.

 

본인의 실력에도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지만, 천천히, 힘조절을 하며 괴롭히는 것이 그의 취향이었으니까.

 

적당한 ‘먹잇감’은 금방 눈에 들어왔다.

 

 

‘...남자답지도 못 한 놈이군.’

 

 

창백한 얼굴로 주변을 계속 두리번 거리는 남자.

 

계속해서 조급한 눈초리로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자진해서 다른 학생들에게 가서 제발 자신과 대련해 달라고 통사정을 한다.

 

하지만, 투쟁의 용광로의 학생들이 연신 인상을 찌푸리고 고개를 젓는다. ‘너무 약해서’ 안 될 것 같다는 태도가 분명하다.

 

그럴 때마다 남자의 표정에 절망이 깃든다.

 

 

‘...이상한 놈이군.’

 

 

저런 실력으로 대련을 해봤자 흠씬 두들겨 맞을 게 뻔할 텐데.

 

이건, 뭐라고 해야 할까.

 

저렇게 해서라도 ‘반드시 상대를 찾아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 같은 태도다.

 

마치 누군가에게 쫒기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렇긴 하지만.

 

겉보기에 약해 보이는 것도 그렇고, 태도가 당당하지 못한 것도 그렇고, 분명히 바델의 ‘취향’이다.

 

이름표를 살펴본다.

 

다우드 캠벨.

 

 

“어이. 네놈은 나랑 붙자.”

“어, 정말?!”

 

 

다가가서 그런 말을 건네자, 바로 그 남자의 표정이 확 밝아지는 것을 본 바델이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손을 잡고 흔드는 녀석에게 다가가서, 사악한 표정으로 귓가에 속삭인다.

 

지금부터 공포에 얼어붙는 이 녀석의 표정을 보고 싶었으니까.

 

 

“멍청하게 기뻐하긴. 미리 각오나 해두지 그래. 나를 상대하기로 한 순간 이미 늦었어. 지금부터 당장 대련을 시작해서 행사가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괴롭혀 줄-”

 

“고맙다...!”

 

“...”

 

 

누가 들어도 진심이 충만한 그 반응에, 바델은 그대로 할 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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