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90 - 90. 용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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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한숨을 내쉬며 PDA 비슷한 물건을 조작했다.
이건 말하자면 신문 비슷한 거다. 부족 연합 기술 수준에 맞게 종이 대신 ‘전자 기기’로 대체된 모습이지만.
부족 연합의 대족장 알란 바-토르가 직접 투쟁의 용광로를 시찰하러 온다는 기사가 거기에 적혀 있었다.
어떤 창구든 가리지 않고 대서특필된 걸 보면 틀림없이 중요한 소식인 건 맞다.
‘몸이 달았구만.’
표면적으로는 그냥 대단한 사람이 이 아카데미를 방문한다는 소리겠지만, 이 인간을 움직이는 건 타티아나라는 걸 항상 명심해야 한다.
내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아마 엘노어가 한 번 거하게 뒤집어엎은 뒤로 꽤 긴장감이 생긴 모양이지.
알란을 움직이는 건 일종의 ‘보험’이다. 한 번 엘노어 때문에 된통 당했으니 확실하게 날 죽여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쪽까지 부른 게 틀림없다.
혹시 엘노어가 진심을 다해 본인을 죽이려 한다 하더라도 ‘시간’ 정도는 벌어줄 수 있는 대상이니까.
“...”
정확히는, 본인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뜻이지.
폭주한 회색 악마의 그릇이면 이 게임 최종 보스다. 그 정도 가지고 막을 수 있을 리가 있나.
물론 내 입장에서는 좋건 싫건 엘노어의 힘을 쓰는 건 지양해야 하니까 쓸데없는 사실이긴 하다.
단순히 내가 결혼을 하면 안 돼서 그런 게 아니라, 융합률이 높아지는 것 자체가 새로운 조각을 불러일으키는 전제 조건이다.
세 번째 조각은... 시나리오의 메인 이벤트 중에서도 가장 커다란 파급력을 불러오는 것들이다. 괜히 굽이굽이 뒤에 배치되어 있는 게 아니지.
아무튼.
< Quest Info >
[ 메인 퀘스트 ] 〖 챕터 3 – 뒤집힌 해일의 사도 〗
[ ‘대결투’ 사건까지 5일 남았습니다! ]
[ 해당 사건 이후 곧바로 보스전으로 이어집니다! ]
나한테 좋은 점은, 타티아나가 그렇게 ‘몸을 사리는’ 태도를 취한 이상 적어도 이 기간 동안 대놓고 암살자를 보내느니 바닷속의 뭔가를 소환해내느니 하는 짓은 하지 않을 거란 거다.
이미 전력을 다해서 들이박으려다 엘노어의 힘을 보고 식겁을 했을 테니, 그걸 막아낼 수단이 정비되기 전까진 본격적으로 날 죽이려는 생각은 하지 않을 거란 소리지.
“...”
그리고 그런 여유 기간은, 내 스펙을 올릴 수 있는 대단히 좋은 시간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부족 연합의 전통 제례를 올리고 있는 리루를 바라본다.
죽은 풀들만이 말라비틀어진 살풍경한 해안 절벽 위에서, 불을 피워 목걸이들을 태우고 있다.
“길을 열어다오, 하늘아.”
눈을 감고 그렇게 중얼거린 리루가, 조용히 불 위에 다시 다른 목걸이를 집어넣었다.
“전사가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이전에, 리루가 지었던 거의 다 무너져 가던 집에 고이 보관되어 있던 것들이다.
부족 연합 전사들에겐 신분증처럼 이용되는 거지.
거대한 돔 형태로 된 투쟁의 용광로 안에서 얼마 되지 않는 탁 트인 하늘이 보이는 장소답게, 그렇게 피워 올린 연기가 뭉게뭉게 올라가 공중으로 흩어졌다.
“...”
조용히 눈을 밀어 올린 리루가 그렇게 흩어지는 연기들을 바라보았다.
한참을 아무 말 없이 그쪽만을 계속해서 바라 본다. 어떻게 보면, 울음을 꾹 참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설정을 좀 생각해보면.
알란 바토르가 이전 대족장인 카사에게 그 지휘권을 넘겨받기 위한 ‘대결투’를 신청한 날 밤에, 리루와 카사를 살리기 위해 대신해서 죽은 씨족들의 물건일 테다.
저 사람이 어떻게든 부족 연합에 돌아오려고 이를 악물었던 것도, 고향 땅에 제대로 묻히지도 못한 전사들을 저렇게 기리기 위함이지.
각 씨족에게 할당된 부족의 땅에서, 장례 의식을 똑바로 치루지 못 한 전사들은 하늘에 있는 ‘전사들의 고향’에 돌아가지 못 한다는 믿음이 널리 퍼져 있었으니까.
“...”
그리고, 그 연기가 퍼져나가는 동안.
나는 해안가 절벽 아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넌 뭐하냐?]
“외우고 있잖아요.”
[외워? 뭘?]
“들어가는 길이요.”
[...길? 무슨 길? 그냥 바다밖에 없는데?]
“그런 게 다 있어요.”
칼리반이 의아해하는 기색이 여기까지 전달된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파도가 치는 바다밖에 없을 테니까. 내가 보는 것도 그냥 조류만 끊임없이 보고 있는 거고.
하지만, 진짜로 그런 게 다 있다.
내가 괜히 타티아나한테 이걸 제일 먼저 요구한 게 아니다.
내 내구도 스텟을 올릴 방법과, 챕터 보스의 머리통을 쪼갤 수 있는 핵심적인 힌트, 전부 다 여기에 있다.
저 미친 듯이 몰아치는 파도 ‘안쪽’에.
저거 관찰하려고 나도 일부러 여기에 온거다. 이쪽에서만 보이는 게 있으니까.
“...고맙다.”
그러고 있자니.
모든 목걸이가 재로 돌아가도록, 한참을 앉아서 모닥불을 지켜보고 있던 리루가 문득 꺼내든 말이었다.
“네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단기간 안에 이런... 원을 풀 수 있는 기회조차 없었겠지.”
“...”
그건 그랬겠지.
원작 진행을 생각하면 리루가 이 장소에서 오는 것 자체가 루카의 목걸이를 받지 못 한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내가 중간에 개입하지 않았으면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을 확률이 높지.
이걸로 이 사람의 마음의 짐 하나는 크게 덜어준 것 같으니 다행이긴 하다만.
“앞으로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런 내 질문에, 리루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한참을 생각하고, 조용히 침묵하다가, 이내 결연한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연다.
“...복수해야지.”
“누구에게 말씀이십니까.”
“우리 씨족의 죽음과 관련된 녀석들 전부에게.”
리루가 서릿발같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놈들은 전부 내 손으로 죽인다. 억울하게 죽은 이들을 마지막으로 기리기 위한 당연한 권리야.”
그건 나도 부정할 생각 없다.
딱히 잘못도 없는 선량한 사람들이었을테니. 하물며 그건 리루의 가족들이다.
원래 다른 사람들을 죽이려거든 무덤을 두 개 파야하는 건 진리다. 죽이는 쪽도 거기에 맞는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하지 않겠나.
‘...아니, 그래도 잠깐만.’
식은땀을 흘리며 그 몸 근처에 깃드는 푸른 기운을 바라본다. 악마의 기운이다.
하여간 화가 조금이라도 나면 이렇게 펑펑 새어 나오는 게 탈이다.
“뭐, 그건 저도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리루의 손을 덥썩 잡는다.
“힘 내자구요. 저도 카사랑 약속한 게 있으니까.”
“...”
리루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와 마주 잡은 손을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소, 손은 갑자기 왜 잡고 난리야?”
얼굴을 확 붉힌 리루가 그렇게 말하며 내 손을 떨쳐내었다.
나야 푸른 악마의 기운이 주변으로 휙 흩어지는 걸 보고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지만.
이 사람, 보다보면 은근히 남자랑 접촉하는 거에 내성 자체가 없는 느낌이라.
곁에 붙어있으면서 화가 날 것 같을 때마다 내가 일부러 이렇게 달래주고 있다.
“...”
가끔 스스로의 처지에 처량함이 느껴질 때도 있지만.
뭐 어쩌겠나.
살려면 참고 살아야지.
[아. 아. 중앙 통제실에서 전파한다.]
그런 서글픔을 곱씹고 있자니, 확성기라도 쓴 것처럼 멀리 울려 퍼지는 목소리가 우리가 있는 곳까지 들려왔다.
[폭풍우가 오고 있다. 주술사들 말로는 요근래 온 것들 중 가장 큰 것이라고 하더군.]
확실히.
하늘을 올려다보면 우중충하기 짝이 없다. 조만간 커다란 뇌우와 풍랑이라도 한 번 올 모양이다.
아마 제정신 박힌 장소라면 여기서 얌전히 안에 틀어박혀 사고치지 말란 소리를 하겠지만.
여긴 투쟁의 용광로다. 틈만 나면 학생들을 극한 상황에 박아넣는 곳.
[그러니 지금 전 학생은 해안가 근처 광장으로 집합할 수 있도록. 이상.]
그럼 그렇지.
쓴웃음을 지으며 몸을 일으킨다.
3챕터의 시작을 본격적으로 알리는 이벤트.
‘사냥꾼의 밤’이 시작한다는 걸 알리는 안내 방송이었다.
“...”
문제는 이쪽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리루 쪽을 바라본다.
내가 괜히 이전에 3챕터 클리어의 핵심을 이 사람의 난폭한 면을 계도시키는 것이라 한 게 아니다.
부족 연합에서 현재 리루를 취급하는 상태와 이 사람의 성격을 생각해봤을 때.
이 3챕터를 진행하는 동안, 리루가 화를 못 참고 여기저기랑 충돌한 가능성은 거의 확정 사항이다.
원작에서는 그냥 진행에 애로 사항이 꽃핀다 정도로 끝나는 문제점이지만, 지금은 거기에 살짝 화나기만 해도 터지는 푸른 악마가 얽혀있다는 점이 최악이다.
악마가 폭주해서 엘노어 꼴이 되지 않도록, 가능하면 내가 챕터 진행하는 동안 내내 밀착 마크로 달라붙어서 케어 해줘야 한다는 소리지.
즉.
5일 동안 해야 할 일 정리.
1. 상시로 리루가 정도 이상으로 화내지 않도록 멘탈 케어 해주기.
2. 엘노어와 유리아에게 머리통 쪼개지지 않기.
3. 카사에게 격투술 전수받기.
...정도다.
한숨이 절로 나오는 목록이지.
‘잘 되려나.’
언제나처럼.
눈코 뜰새 없이 바쁜 일주일이 될 게 분명했다.
●
폭풍 같은 비바람이 치는 해안가.
투쟁의 용광로 플랫폼 바깥으로 이어져 있는 외부 시설에는 그런 날씨 아래에 맨몸을 노출한 우락부락한 인간들이 다수 늘어서 있었다.
남자고 여자고 하나같이 태닝이라도 한 것처럼 구리빛 피부에 건강한 신체를 가진 놈들 뿐이다.
“...”
몸 미쳤네, 다들.
난 아무리 운동해도 저렇게는 못 되겠다.
“집결!”
하탄 우-줄.
마수 사냥을 전담해서 담당하는 학부인 ‘사냥꾼의 전당’의 학장을 맡고있는 사람이니까, 이런 종류의 행사에 직접 튀어나오는 게 당연하다.
“원래 이맘때쯤이면 새 학기도 시작이겠다, 자기 소개같은 것 좀 간단하게 한 번 돌리고 가겠다만... 여긴 투쟁의 용광로다. 그런 건 니들도 필요 없지?”
하탄이 사납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새 학기 시작부터 짧고 굵게 간다. 몇 년 만의 사냥꾼의 밤이다, 새끼들아. 가장 명예로운 전사가 빛날 시간이다!”
그런 말에 주변으로 우레같은 환호성과 함성이 터져 나왔다.
마치 진심으로 기다리고 있던 축제가 찾아오기라도 한 것 같은 분위기에, 제국에서 온 학생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볼 뿐이었다.
아니, 지금 몸 가벼운 사람은 그대로 날아가도 이상하지 않은 폭풍우가 몰아치는 참인데. 이 미친놈들은 뭐가 신나서 저러고 있단 말인가?
“사냥꾼의 밤이 뭔지는 여기 있는 놈들이라면 다 알겠다만, 마침 제국에서 온 손님들도 있으니 적당히 설명해주마.”
그렇게 말한 하탄이 공중에 금속 구체를 하나 던졌다.
홀로그램 드론이다. 앞으로 여기에서 뭘 어떻게 할 건지 개괄적으로 전부 정리된 계획표가 영상으로 쫙 쏘아올려졌다.
“부족 연합은 대륙 모든 국가 중 가장 마수가 많이 출몰하는 곳이고, 그래서 우수한 전사는 곧 우수한 사냥꾼이란 말과도 똑같아. 우리 아카데미 전체가 마수의 사냥에 특히 중점을 두고 교육을 시키는 시설이지.”
이어서 홀로그램의 영상이 바뀌었다.
불타는 화산지대. 눈보라가 몰아치는 대설원. 밀림에 가까운 정글. 그리고 지금 우리가 서있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닷가.
각각 가장 척박하고, 혹독하며, 가장 악명 높은 마수들의 서식지로 유명한 곳이었다.
“투쟁의 용광로 자체가 그런 마수들을 상대하기 위해 아카데미 내부에 인공적으로 마수들의 생태계를 그대로 조성해놨다. 최대한 실전에 가까운 경험을 그대로 할 수 있도록.”
설명이 쭉 이어졌다.
“그리고 사냥꾼의 밤은. 이 아카데미 근처에 있는 모든 마수들이 가장 ‘사냥하기 어려워지는’ 시기다. 특수한 능력이 추가되고, 단순 전투력은 더욱 강해지며, 심지어는 아무리 죽여도 죽여도 안 죽는 놈들도 더러 있다.”
홀로그램 영상이 계속해서 바뀌며 여러 마수들의 모습을 비춰주었다.
투명화하는 마수. 평소에 비해 발톱과 가죽이 수 배는 더 단단해진 마수. 아예 잘린 목을 재생하는 마수.
“며칠 동안 진행되는 이 행사에선, 각기 다른 환경에서 가장 우수한 역량을 보인 사냥꾼에게 아카데미에서 선사할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영예를 내리는 커다란 행사다. 제일 중요한 시기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이해했나?”
제국 학생들이 서로를 마주보았다.
이해 못 하기가 더 어려운 말이었으니까.
간단하게 말해서, 학원 전체가 평소보다 수십 배는 더 위험해지는 시기라는 말 아닌가.
“...그러면 굳이 왜 저희들을 바깥으로 부르신 겁니까? 아카데미 안쪽에서 안전한 장소에 있어야-”
“무슨 소리야.”
하탄이 씩 웃었다.
사나움이 그대로 담겨져 있는 미소였다.
“이런 때니까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그런 놈들을 쳐죽이려고 해야지.”
“...오히려 죽을 위험이 훨씬 높은 것 아닙니까? 마수의 기본 공략은 약해지는 시기를 노려서 최대한 사상자 없이-”
“무슨 소리야. 위험할수록 보상은 더 큰 법인데.”
“...”
열심히 반박하던 제국 학생이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아예 사고 방식이 다르다는 걸 이제야 알아차린 모양이다.
이 장소가 원래 이런 동네다. 상대가 강하면 강할수록 더 독종처럼 달려들라고 가르치는 미친 싸움닭들만 살아남는 곳.
괜히 매사에 이성적인 접근을 시도하는 제국 학생들이 이쪽에서 개무시를 받는 게 아니다.
엘판테에서 미친 개 소리 듣던 리루조차 여기서는 그렇게 난폭한 축에 못 들어간다는 점에서 말 다했다.
“뭐,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해주마. 죽을 것 같으면 나 불러. 구해줄 테니까.”
그렇게 말한 하탄이 싸늘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물론, 그 정도 담력도, 솜씨도 없는 놈들은... 굳이 이 아카데미에 남길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긴 한다. 최하점은 각오해두는 게 좋겠지.”
“자, 잠시만요. 투쟁의 용광로에서 내리는 채점은 저희들 성적에도 반영이 되는데요.”
“그래서?”
“...”
“너희들도 잡아오면 되지. 뭐가 문제인가?”
그 심드렁한 대답에 제국 학생들의 얼굴이 새파래지는 사이, 하탄이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사냥꾼의 밤, 그 첫 번째는 ‘바다 사냥’이다. 가장 먼저, 가장 강력한 걸 잡아오는 놈한테 가장 커다란 명예가 돌아간다!”
해안가 근처에 여기저기 정박되어 있는 보트 몇 개를 가리켰다.
작살, 그물, 그리고 기타 본격적인 사냥 장비가 포함된 배들이었다.
“배는 준비해뒀어. 이제 출발해!”
그런 말과 함꼐, 투쟁의 용광로 학생들이 저마다 함성을 지르며 삼삼오오 갈라져 보트 하나씩에 나눠타기 시작했다.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제국 학생들은 가만히 있었지만.
“...저게 단가요?”
내 옆에 있던 탈리온이 허탈한 목소리로 말했다.
“배는 어떻게 쓰는 지, 사냥할 마수는 어떻게 찾는지, 찾았으면 어떻게 잡는지, 뭐 아무것도 안 알려주고?”
“그걸 왜 알려줘?”
같이 있던 리루가 오히려 더 어이가 없다는 목소리로 말을 받았다.
“사냥은 원래 본인이 직접 부딪히면서 깨달아야 가장 빨리 숙달되는 법이야. 배움을 청하는 건 실패 이후에 하는 게 가장 잘 습득이 되니까.”
“그렇다고 하네.”
피식 웃으며 그게 뭔 개소리냐는 표정을 짓고 있는 탈리온의 어깨를 툭 친다.
지금 여기서 나와 같이 팀을 이룰 놈은 이 녀석밖에 없었으니까.
엘노어도, 엘리야도, 심지어는 유리아에 성녀님까지 지금은 뭔가 바쁜 일이 있다고 억지로 불참했으니까.
“...”
대체 다들 뭐가 그리 바빠서 여기까지 와놓고 본인들 할 일 삼매경인지는 모르겠다만.
결국 지금 이 자리에서 함께 나갈만한 건 리루와 탈리온뿐이다.
“바다 사냥은 못해도 하루 꼬박 배를 타면서 하는 사냥이야. 끝장나게 재미있지.”
나와 함께 보트로 자박자박 걸어가면서, 리루가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
눈동자가 반짝반짝거리는 게 어지간히도 흥분된 기색이었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리루가 이내 고개를 갸웃거리며 답했다.
“왜 그렇게 쳐다봐?”
“아뇨. 역시 그쪽은 부족 연합에 있어야 어울리는 사람 같아서.”
“어?”
“기뻐 보이시네요. 제국에 계실 땐 항상 화가 잔뜩 나 있으시더니.”
“...자기가 데려왔다고 생색내는 거야, 뭐야.”
그렇게 투덜거린 리루가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침묵했다.
기분탓인지 얼굴이 슬쩍 붉어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 왜.”
옆에서 팔을 톡톡 두들기는 탈리온의 모습에 고개를 돌리니, 이번엔 녀석이 눈을 번쩍거리며 주먹을 꽉 쥐었다.
“역시 형님이십니다.”
“...”
“저번부터 눈독 들이신다고 느끼긴 했지만, 역시 곧바로 한 명을 더 추가로 공략-”
“...배 조종은 니가 해라.”
헛소리를 하는 대가로 제일 힘든 파트는 이쪽에 던진다.
“...하루 꼬박 배 조종을 저 혼자 하라구요? 가능은 한데,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그 정도로 오래 할 생각은 나도 없어. 되도록 빨리 큰 놈 하나만 잡고 돌아가자.”
“그거 좋네. 가장 커다란 놈을 잡아서 돌아가자고. 뭘 잡을래? 크라켄? 거대 철갑상어? 아니면-”
“우리는 그냥 사냥하러 저기 나가는 게 아니에요, 리루.”
“...뭐?”
황당하다는 어투로 답변하는 리루에게, 피식 웃으며 답한다.
3챕터의 뒤집힌 해일의 사도는, 이전에도 슬쩍 보여줬지만 바다 아래에 있는 ‘고대의 존재’와 연이 닿아있는 놈이다.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다시피, 무지막지하게 강력한 놈이고.
그리고 그걸 악마의 도움 없이 클리어 하려면.
나도 나름 ‘규격 외’의 존재와 접촉할 필요성이 생긴다. 이 사냥꾼의 밤 기간 내내 해야 할 일이기도 하고.
특별히 그 마수들이 강력해지는 시기에만 가능해지는 일들이 있거든.
“우린 이 바다의 왕을 만나러 갈 겁니다.”
일단.
놈의 홈그라운드인 바다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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